몰도바의 숨겨진 복병 "가가우지아 공화국"

입력 : 2024.05.1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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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몰도바 남부에 위치한 자치 지역이 하나 있다. 이 지역을 흔히 가가우지아(Gagauzia)라고 하는 곳이다. 이 지역은 1,832km²의 면적을 갖고 있으며 크기는 제주도(1,846km²)보다 약간 작다. 이들 인구의 83% 정도가 투르크계 출신인 가가우즈 인이며 다른 투르크계 민족들이 무슬림들인 반면에 이들은 정교도인들이다. 가가우즈 인들이 사용하는 가가우즈어 또한 터키어와 거의 비슷해서 터키어만 하는 사람이라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터키의 공영방송인 TRT가 가가우지아에서도 공식적으로 송출되고 있다. 따라서 나의 경우, 터키어와 러시아어 모두 되기 때문에 어떤 언어를 선택해도 어려움은 없다. 그리고 가가우즈어 또한 우랄-알타이어 특성을 갖고 있어 한국어와는 어순이 같다는 장점 또한 존재한다.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달리 가가우지아는 독립을 선언하지는 않았고 몰도바 정부로부터 자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명목상이나 실질적으로나 몰도바 내의 자치 국가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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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가가우지아 공화국 시작 표지판 출처 : National Anthem of Gagauzia - Tarafım (gagauzia anthem, 가가우지아의 국가), 유튜브

 

가가우지아의 인구의 80% 이상이 가가우즈인이지만, 도시에 사는 가가우즈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러시아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가가우지아 공화국의 수도인 콤라트(Komrat)에서도 러시아어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일상에서 가가우즈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가가우지아 전체 인구의 54.2% 정도로 나타난다. 러시아어는 전체 인구의 40.3%가 사용하고, 불가리아어는 1.6%, 루마니아어는 1%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 원래 가가우즈 지역에는 몰다비아인으로 알려진 루마니아계 민족들과 루테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몽골-타타르계의 크림 칸국이 침공하여 약탈을 당했고 이어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이 지역이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대거 황폐화되었다. 18세기 말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은 이 지역을 합병하면서 인구를 보충했다. 로마노프 제국은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가가우즈 지역을 전초 기지로 삼는다는 명목 하에 노가이 칸국의 노가이족 12만여 명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유르트를 전부 불살러버렸다.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에 의해 강제로 이주된 노가이족들은 투르크계 민족으로, 4세기 훈족과 더불어 유라시아를 왕래하며 거주하던 다양한 유목 종족들이 혼합되어 형성된 민족이다. 4~8세기 동안에는 불가르족, 하자르 족과 같은 종족들이 노가이인과 합류했고 9~11세기에는 페체네그족, 11~13세기에는 킵차크-쿠만족이라 불리는 폴로베츠 종족이 노가이 민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노가이인의 출현에는 투르크계 민족들의 이합집산의 영향이 컸지만, 13세기 중엽 킵차크 칸국이 세워진 이후 몽골-타타르 족과 그로 인한 몽골 문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노가이인들이 16세기에 서쪽 우랄 강 하류로 이주하기 전까지 자신들을 ‘만기트(Mangit)’라고도 불렀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본래 만기트는 몽골계 부족으로 킵차크 칸국의 동쪽에 주로 거주했다가 그곳의 투크르계 종족과 혼합되었다. 노가이(Nogai)라는 명칭은 사실 민족 이름보다는 킵차크 칸국의 분열 이후 세워진 노가이 칸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노가이는 킵차크 칸국의 사령관이자 모든 행정을 관리하는 직위에 있었던 인물로 킵차크 칸국의 칸(Khan)을 승인하거나 퇴위시킬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노가이는 유럽 국가들로 원정을 나갔으며 비잔틴 제국,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을 정복하면서 약탈했다. 노가이는 킵차크 칸국과는 별개로 도나우 강에서 돈 강까지의 영토를 직접적으로 관할했다. 이 중에서 우랄 강과 카자흐스탄 서북부에 위치한 엠바 강 사이의 영토들이 15세기 킵차크 칸국에서 분리된 노가이 칸국의 토대가 되었다. 노가이라는 민족명칭은 노가이라는 인물과 더불어 노가이 칸국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투르크-몽골(Turco-Mongol) 혼합체가 나타났는데 14세기의 차가타이 칸국과 킵차크 칸국이 투르크화 되었다. 

 

이것이 노가이 칸국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들 노가이 칸국의 지배 계급은 투르크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대부분 투르크화 되었다. 이들이 러시아에 정복을 당했고 정착한지 수십년 후 19세기 초 노가이인들이 대거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탈주하자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은 이 지역에 불가리아인 난민들과 조지아인들을 비롯한 각종 민족들을 다시 가가우즈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원래 노가이족이 살던 비옥한 평야 지역들은 우크라이나의 선조로 알려진 코사크인들과 독일계 러시아인들이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옥토로 탈바꿈 되었으며, 해당 지역의 노가이인들은 오늘날 몰도바 남부의 가가우지아인이 되었다. 불가리아인 난민들은 자국의 영토인 트라키아 지방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치하에 있었는데 많은 불가리아인들이 오스만투르크에 독립하기 위해 봉기를 했던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오스만투르크 제국 내 비정규군들이 불가리아를 약탈하면서 많은 불가리아인들이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의 영내로 피신했으며 인도적인 차원으로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여 가가우지아로 이동시켰다. 

 

이들은 가가우지아에 살면서 노가이와 함께 같은 종족으로 동화되어 갔고 불가리아계 가가우지아인이 되었다. 이들 불가리아계 가가우지아인들은 본래 불가리아 제국의 옛 수도인 벨리코 토르노브 일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학설이 21개가 있을 만큼 불가리아계 민족들의 출처에 대해 논란에 쌓여 있다. 오늘날 가가우지아인들 중 불가리아계, 루마니아계는 자신들이 13세기 발칸 반도에 정착한 셀주크투르크의 이젯딘 케이카부스 2세(Izzeddin Keykavus II 1236~1276)가 이끄는 오우즈 투르크인들과 그리스인의 혼혈 투르코폴레스의 후손으로 여기고 있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1307년 케이카부스 2세의 아들인 에세 할릴이 케이카부스가 이끌고 온 투르크인들을 이끌고 다시 아니톨리아의 다른 무슬림 투르크인들에게 귀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이들을 두고 페체네그인이나 쿠만족 후손으로 보는 학설도 있다. 제2 불가리아 제국 시절에는 쿠만족의 상당수가 불가리아 군에 합류했던 적도 있었기에 그와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불가리아에서 오늘날의 가가우지아 일대와 부자크로 이주해오기 전 불가리아계 가가우지아인들은 자신들을 히리스티얀(Hiristiyan, Christian) 불가르, 하슬리(Hasli) 불가르 (True Bulgars), 에스키(Eski) 불가르 (Old Bulgars)로 칭했다 하며 당시 가가우지아라는 말은 일종의 비하적인 의미가 담긴 별칭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러시아에서 루마니아로 넘어갔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유사하게 몰도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루마니아계 몰도바인들 사이에서 몰도바를 루마니아에 병합하자거나 루마니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가우지아 인들은 이와 같은 루마니아와의 통일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1990년 콤라트에서 가가우지아인들은 자치 공화국을 선언했으나 몰도바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고, 이어서 1991년 가가우지아는 독립을 선언한다. 몰도바가 독립한 이후, 1994년 몰도바에서 민족주의자들이 물러나고 정권이 바뀌게 되자 몰도바 정부는 가가우지아인들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약속했으며 가가우지아는 몰도바에서 자치 지역이 되었다. 2014년에 2월 한 주민투표에서 관세 동맹과의 결속 강화에 98.4%가 지지했고 EU와의 더 밀접한 결속에 대해서는 97.2%가 반대했다. 

 

EU와 결속에 대해 반대가 압도적이었던 이유는 루마니아가 EU에 속해 있고 몰도바 정부가 루마니아와의 통일을 시도하기 있기 때문에 이러한 통일 과정이 EU의 중재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루마니아는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다. 그렇다보니 루마니아와 몰도바가 통일되었을 때, 가가우즈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몰도바가 가가우지아인들의 처우까지 봐달라고 할 이유 또한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루마니아-몰도바의 통일에 대해 러시아가 개입하여 통일을 무산시켜 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도바-루마니아가 통합될 시 가가우지아가 독립할 권리에 대해서 98.9%가 찬성했다. 즉, 두 나라가 통일되면 가가우즈는 독립 국가를 세우고 독립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선거에서도 친러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으로 가가우즈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 함께 러시아에 속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 또한 98%로 절대적이다. 그리고 2014년 총선에서는 친러파인 사회당과 공산당이 합쳐서 70% 가까이 득표하기도 하면서 가가우즈는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더불어 몰도바 배후에서 친서방주의를 위협하는 큰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가가우즈가 독립할 경우 몰도바, 혹은 통일된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내륙국이나 비연속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경제적으로 지금보다 더욱 낙후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2022년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남부와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가 남부 몰도바 지역의 영토를 교환 내지는 몰도바로부터 매입하여 단절된 국토를 붙이려고 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편이다. 어쩌면 몰도바나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보다 더 다급한 지역은 가자우즈 자치공화국일 가능성도 매우 커지고 있으며 오데사가 아주 중요한 지정학적, 전략적 요충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를 장악하고 오데사를 점령하게 된다면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몰도바 남부의 가가우즈, 도나우 습지 일대까지 영역화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몰도바 남부의 가가우즈와 도나우 습지 지역은 러시아가 흑해 북안을 완전히 장악하고 서안으로 진출해 친 EU 및 나토 성향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 곳이다. 오데사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가우즈 공화국의 판세가 결정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정길선 기자 lukybaby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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