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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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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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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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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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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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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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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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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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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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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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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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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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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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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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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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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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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메이크업에 바친 일생
- 미용인보(美容人譜)49 안미려 회장 50년을 메이크업에 바친 일생 안미려 (사)한국메이크업전문가직업교류협회 회장 운명처럼 다가오다 -안미려 회장 한 사람의 삶은 운명처럼 다가오지 하늘 위의 구름처럼 찾아오기도 하고 뒷산의 바람처럼 스며들기도 하지 바위처럼 묵묵히 다가오기도 하지 여기 아름다움을 위해 우리 곁에 다가와 메이크업의 길을 세우고 있는 사람 오직 한길만 고집하다 망부석이 될 사람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K-뷰티가 세계에 우뚝 서는 날 가슴으로 힘껏 안기를 고대하는 사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미용의 분화 기자와 안미려 회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특히 2000년 대 초반, 메이크업 인들이 협회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많은 지각 변동이 있었고, 그때마다 기자는 묵묵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몇몇이 어울려 술추렴을 하며 앞날을 예단하기도 했었다. 이제 시대는 많이 변했고 미용은 헤어, 피부, 메이크업, 네일 등으로 분화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예전부터 미용은 보건복지부 소속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문화체육관광부 예하여야 하느냐는 논쟁거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메이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에 속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어떤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토대는 확실한 자기 인식이 확립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전체적인 면에서 미용과 메이크업이 상생과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말이 많이 빗나갔다. 안미려 회장과는 미용계 여러 행사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스친 정으로 치자면 이웃사촌이 되고도 남겠다. 한편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만나서 담소를 나눈다거나 술자리를 같이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기자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었으리라. 역으로 생각하면 안미려 회장도 기자와 같은 성격일 거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의 오류를 범하던가. 어찌됐든 안미려 회장은 메이크업에 대한 애정으로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었다. 더구나 난공불락의 성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무나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라고 기자는 믿고 있다. (주)태평양 입사하면서 미용계 첫발 안미려 회장이 미용계에 첫발을 내딛은 때는 지난 1973년 (주)태평양에 입사하면서다. 태평양에 입사하기 전 당시 조흥은행에서 고3 졸업을 앞두고 수습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주)태평양에서 고3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차밍 메이크업 강좌를 열었고, 그녀는 강의에 참석하였다. 그때 미스코리아처럼 아름다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그 당시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제복과 스튜디어스처럼 모자를 쓰고 강의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없을까’라는 막연한 동경과 함께 학교 담임선생님께 은행 근무보다는 미용사원(그 당시에는 뷰티션을 미용사원으로 불렀다고 한다.)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운명처럼 취업의 기회가 주워졌다. 미용사원으로 입사하여 23년 간 ㈜태평양에 재직하며 기초부터 메이크업까지 뷰티를 접하게 되었으며, 23년 재직 기간 중 마지막 7년은 인력개발원에서 직급별, 계층별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재직하면서 문화센터 및 기업 등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퇴사 후 본격적으로 선진국의 미용트렌드를 배우기 위해 일본, 파리, 이태리 등 해외 연수를 통해 초창기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자기 계발에 충실했다. 안미려 회장은 태평양 재직 시절을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던 시기라고 되돌아봤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연마한 덕분이었다. 태평양 인력개발원에서 화장품 지식과 메이크업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이후 미용사원 업무(마케팅 시책, 미용실 영업 및 교육, 인력 개발원 등)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회사와 더불어 성장하는 자신이 즐거웠고 자랑스러웠다. 해외 출장 시 선진국의 해외 미용연수를 하면서 그 나라의 뷰티 문화와 역사를 아는데 많은 공을 들인 것도 오늘날의 안미려 회장을 있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배움에의 열의가 남달랐던 것이다. 뷰티업계 종사 50년 이제 안미려 회장은 뷰티업계에 종사한 지 50년이 지나고 있다. 한국메이크업전문가직업교류협회장으로서 하는 일도 많다. 생애 주기를 100세 시대로 간주했을 때 거의 1/2를 협회와 함께 하고 있다. 우선 올해 계획되어 있는 것만 해도 <아시아미페스티벌 뷰티아티스트 콘테스트 2023> 온라인(4/22일)과 오프라인(5/20일) 대회가 있다. 그 이외에도 21개국과 함께하는 전시회, 공모전, 자격증 개발, 교재개발, 해외 교류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협회 스텝 및 직원들과 협회 이사진, 회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협회 개설 20년을 앞두고 협회 사무실을 리모델링하여 교육장을 개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5월부터는 매주 토요일마다 세미나도 계획하고 있다. 또한 2012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27개국이 참가하는 2023 아시아모델페스티벌(뉴페이스오브아시아, 오픈컬랙션, 아시아모델시상식) 행사에서도 뷰티 갈라쇼를 기획하고 있다. 일 욕심이 끝도 없다. 협회 홍보에도 주력하여 인스타, 페이스북 등 sns를 활성화하여 대 내외적인 홍보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해외에서 유입되는 아티스트들과도 교육의 교류를 활발히 할 예정이다. 안미려 회장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일에 대한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하루 생활을 협회에서 시작하여 협회에서 끝내지만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매일 감사하며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성공적인 삶이라면 나이 들어서까지 자기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직도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고맙고 대견하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별별 일이 많다. 좌절, 우울, 한탄, 등등 남을 원망하면서 살아간다면 결국 내 자신이 피폐해진다. 나도 이런 사람이었다. 허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면서부터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가능한 미움을 없애려고 기도하고 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 성실, 노력, 시간활용, 열정, 끈질긴 근성 등은 기본에 속하며 남을 돕고 베풀고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안미려 회장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같은 업계의 후배들을 생각하는 안미려 회장의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다. 글로벌하게 협회를 알리고 싶다는 안미려 회장, 스위스의 시데스코처럼 우리나라 민간자격증을 세계화 하고 싶다는 안미려 회장, 트렌드에 맞는 자격증을 개발하여 교육의 검증단계를 완성시키고 싶으며, 정부지원을 받아 교강사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안미려 회장, 해외 유명 대회도 출전케 하여 글로벌한 아티스트로 발돋음할 수 있도록 하고, 뷰티를 배우고 싶은 불후한 청소년들에게 협회가 장학금을 지원하여 청소년들의 미래를 열어주고 싶다는 안미려 회장, 아티스트를 위한 공모전을 통해 검증된 작품들을 전시, 교재개발, 공정한 대회, 해외 교류 등 한국의 뷰티 문화를 선도하고 싶다는 안미려 회장의 모든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려본다. 그리하여 50년 간 뷰티계에 있으면서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해오신 선구자적인 선배, 동료, 후배가 있기에 더불어 나 자신도 성장하고 오늘의 이 자리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안미려 회장의 말씀이 우리 미용계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미려 회장 프로필 > - 청운대학교 호텔경영학과 학사 - 남부대학교 산업정책대학원 향장미용 석사 -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예술학 박사 - 現 (사)한국메이크업전문가직업교류협회 회장 - 現 (사)한국뷰티스타일리스트직업기능협회 회장 - 現 (사)아시아모델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이사27개국) - 한국산업인력공단 미용사(메이크업) 필기 출제위원 - 한국산업인력공단 미용사(메이크업) 실기 감독위원 - NCS메이크업 학습모듈 개발자 - 現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뷰티예술전공 겸임교수 - 現 서울사이버대학 석좌교수 - 現 부천대학교 외래교수 - 現 (사)한국모델협회 고문 - 아시아 美페스티발/ 아시아 美어워드 총괄 디렉터 - 아시아 모델 페스티발 조직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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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만선 동서울농협 조합장 "화합과 소통 바탕으로 ‘농협다운’ 발전 추진"
- 서울 동대문구와 중랑구를 중심으로 관할하고 있는 동서울농협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화합’과 ‘소통’이다. 제17대 조합장으로 취임한 장만선 조합장(前경제상무)는 취임식에서부터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며 직원들과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농협다운 사업을 펼칠 것을 다짐했다. 농협에서 지점장과 경제상무, 농협대 교수를 지낸 장만선 신임 조합장은 누구보다 동서울농협을 잘 아는 인물이다. 조합원들의 신임과 기대를 받으며 취임한 장만선 조합장으로부터 새로운 동서울농협의 청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조합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신임 조합장으로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취임사에서도 밝혔듯, 무엇보다도 화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님들과 직원들 모두 우리 동서울농협을 함께 이끌어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또 열린 마음으로 조합원들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개선해 나가려 노력하겠습니다.“ - 이번 임기 중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사업이 있다면 “지금까지 농협은 금융기관처럼 예대마진으로 주로 수익을 냈습니다. 앞으.로는 더 ‘농협다운’ 사업을 많이 시도해 보려 합니다. 우리 조합원들께서 원하시고 이용하실 수 있는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어요. 조합원 가족의 결혼을 돕는 결혼상담소라든지, 동물과 관련된 반려동물센터 같은 사업들. 또 도시에서 농촌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농촌에서 며칠 머물거나 ‘열흘 살기’ ‘한 달 살기’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촌관광사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협답게 발전할 수 있는 사업들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려 합니다." - 동서울농협은 대도시에 있는 농협으로서, 도농 상생 발전을 위한 사업도 많이 진행하시지 않습니까. “주로 자매결연을 통해 농가 일손 돕기도 하고, 부녀회나 내부 조직을 통해서 농산물도 구입해서 오고… 여러 사업을 하죠. 도시농협의 목적 사업인 하나로마트를 통한 유통도 하고 있고요.” - 동서울농협에도 특별히 특산물이 있나요? “저희는 ‘황실배’가 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이 먹골배 지역이에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배 재배 단지가 많이 없어지고 남양주 일대로 옮겨가긴 했지만, 원래 여기 중랑구쪽이 먹골입니다.” - 농협은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데,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고객들이 찾아볼 만한 대출 상품이 있을까요?“요즘은 대출이 옛날처럼 획일화되어 있지는 않고 개인마다, 법인마다 다 달라요. 또 농업인 대출은 따로 있고요. 목적에 맞게 다양한 대출이 있기 때문에 막연하게 대출 이율만으로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으신 건 사실이죠. 그분들에게는 최대한 저희가 상담을 통해 완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일반 시중은행과 농협의 차이라면 어떤 점을 꼽을 수 있을까요? “농협은 순수 민족자본입니다. 일반 금융기관은 대부분 외국 자본에 많이 의존해 있고, 수익이 나면 외국으로 나가는 부분이 많죠. 저희는 수익이 나면 지역주민, 농민들, 농업인들에게 전부 돌려드립니다. 그래서 농협을 이용하시면 농촌을 돕는다는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아요. 같은 조건으로 예금이나 대출을 이용하면서도 농촌을 돕는다는 보람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동서울농협에서 29년간 일하셨고, 농협대학에서 강의도 하셨으니 이곳에 대한 애정이 크실 것 같습니다. “제가 직원 생활을 29년 했고, 대학에 있었던 시간까지 하면 37년 넘게 중랑구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제가 왔을 때만 해도 여기가 대부분 흙길이었어요. 아파트는 하나도 없었고, 산에서 뻐꾸기 울던 곳이었습니다. 화물차에 기사님과 함께 비료, 농약 싣고 흙길로 마을 곳곳을 다녔습니다. 아스팔트 도로도 없을 때였으니까요. 제2의 고향이고, 그만큼 애정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기회가 주어졌으니 역할을 잘 해서 더 좋게 만들어야지요.” 화합과 소통을 취임사에서도 강조하셨습니다. 직원들, 그리고 조합원들간 화합을 어떻게 추진해 나가실 생각이신가요? “직원들의 불만 요소를 찾아보면 주로 승진이나 인사 같은 부분이에요. 이런 것들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직원들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주면 그런 불만은 없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또 동호회 활동 같은 것들을 지원해서 업무 외 시간에도 화합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유인해보려 합니다. 사실 어떻게 해도 불만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겠지요. 조합원들도 화합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농협은 선거가 참 많아요. 대의원 선거, 임원 선거, 조합장 선거…. 그렇게 선거를 계속 하다 보니까 경쟁을 하게 되고, 편이 갈라져요. 그게 반복이 되면서 같은 지역 조합원들끼리도 갈등이 많이 쌓입니다. 그런 갈등을 풀어내는 게 첫 단추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동서울농협의 리더로서 직원들과 조합원들께 드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농협의 ‘화합할 협’(協)자가 열 십(十)자에 힘 력(力)자 세 개가 모여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세 사람이 힘을 모아 열 사람의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죠. 결국 힘이 화합하지 않으면 발전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취임사에서도 밝혔듯 2017년 퇴직 후 5년간 일반 조합원으로서 동서울농협의 발전 방향을 구상했습니다. 조합장으로서 여러분의 그 화합을 이끌며 구상했던 바를 실행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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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만선 동서울농협 조합장 "화합과 소통 바탕으로 ‘농협다운’ 발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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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상사 활불선원 주지 세준 스님, 우주와 자연, 인간 조화로운 불국토 구현
- 무상사 활불선원 주지 세준 스님은 새로운 시대의 명상가이자 수행자로 불린다. 실제로 철학박사이기도 한 스님은 불교 철학을 기반으로 명상심리와 풍수지리를 통해 사부대중의 깨우침을 위해 설법을 행하면서 묵묵히 깨우침의 길을 걷고 있다. 용안수, 약사여래불 모신 활불자재 도량… 꼭 한 가지 소원 성취 무상사 활불선원은 해발 547m로 아담하고, 바위도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자랑하는 서운산 자락에 절터를 잡았다. 안성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어 안성시민뿐만 아니라 수도권, 경기도, 충청도 등지에서 휴식과 명상을 위해 찾아온다. 특히, 무상사 약수터는 예로부터 양수와 음수가 나오는 동류서출(東流西出)의 자연 삼탕의 용안수(龍眼水)라 불려 약수의 효험을 경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 약수터의 이름을 따 무상사의 주봉도 용안봉이라 이름 지어졌다. 무상사 약수와 절터에 얽힌 설화는 다양하다. 삼한시대 한 왕비는 이곳의 약수를 마시고, 순산한 후 그 태를 이 부근에 매장해 태릉과 왕릉이 있었으나 도굴되어 지금은 흔적이 없어 ‘능꼴’이라는 지명만이 구전으로 전해진다. 신비로운 약수는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곱추가 낳았다는 등 웬만한 속병은 장기적으로 마시면 모두 낳는 감로수라고 전해진다. 무상사 주지 세준 스님은 “물은 높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낮은 바다로 흘러간다. 그래서 깨달음을 낮은 곳을 향하는 물의 흐름처럼 하심(下心)이라 부르는 것이다. 무상사 약수터의 감로수를 마신 모든 중생이 여여하고, 청정하게 깨달아 갈증을 해소하고, 무명업장을 소멸하고 이르길 바란다”고 했다. 무상사라는 절 이름을 직역하면 ‘위가 없다’라는 뜻이 된다. 안으로는 평안, 밖으로는 평화, 사부대중은 평등 ,한 마음은 평정심으로 회복적 깨달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주지 세준 스님의 발원이 담겨있다. 주불로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다. 이는 무상사 활불선원 도량에서 활불을 만나 생사자재의 법문을 듣고, 약수를 마신 후 한 가지 소원을 빌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활불자재(活佛自在)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주지 세준 스님은 철학박사이면서 전통 풍수사상의 권위자다. 한국에 현공풍수를 처음 전한 창시자로 저서 ‘현공풍수학’를 집필했다. 단순한 학문적 체계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현대인들의 삶의 여유와 휴식을 풍수적인 입장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보다 근원적인 인간 존재의 물음으로까지 나아간다. 명상심리 지도사 풍수인테리어 두 가지 자격증 과정을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에서 강의 중이다. 명상심리란 심신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신체 기능 조절 능력과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방편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회복적 깨달음으로 창의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스님은 ‘판단 없는 관찰’로 깨침의 이해를 돕고, ‘응시(사마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기다림’으로 현재에 머무는 감정 에너지를 조절하고, ‘통찰(전체 보기)’로 탐욕과 편견을 깨트리기까지의 과정을 지도한다. 세준 스님은 “우리 몸은 호흡과 수행을 통해 혈장이 확장되고 근육이 이완되면서 면역성이 증진되고 내분비가 활성화되며, 이를 통해 나의 집중력을 보다 강화할 수 있다. 명상이란 어떠한 과거와도 연결 짓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알아차리는 것이다. 경험을 통한 동일성과 연속성으로 상대방을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보는 것, 즉 직관이다. 그에 비해 투사는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개입시키는 일종의 선입관이다. 명상심리 교육을 통해 행복하고, 창의적인 삶이 가능해지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세준 스님의 명상심리 지도자 자격과정은 매우 과학적이다. 총 과정은 명상, 명상심리, 명상심리치유, 명상심리치유와 호흡, 게슈탈트 심리치료, 실습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으로 구성했다. 단순한 불교적 명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 불교학자 게오르그 그림(Grimm.G),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신경생물학 연구학자 투레 폰 윅스퀼(Thure von Uexkull), 신경생물학 연구의 선구자적인 학자 에릭 켄들(Eric Kandel) 등의 철학과 맞닿은 전체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을 설한다. 명상적 사고로의 전환, 뇌에 말 걸기, 뇌에 기억시킬 것이 아닌 몸에 입력하기 등 매우 현대적인 방식의 명상을 창조한 것이다. 풍수지리, 명상심리로 현대인에게 삶의 여유와 행복 전파 스님이라는 단어는 ‘스승님’의 줄임말로, 진리를 밝혀주는 스승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준 스님은 불도를 행하며 진리를 밝혀주는 스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세준 스님은 현재 동국대학교 부설 미래융합교육원에서 불교 명상 과정의 일환으로 ‘풍수 인테리어 지도사 과정’과 ‘인테리어와 팔괘풍수’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생활공간에 에너지가 원활하게 움직이고, 자연이 준 공간에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 때 좋은 기운이 머물 수 없을까에 착안하여 체계화한 이론이 바로 세준 스님의 풍수인테리어 공간심리학이다. 스님은 “마음은 공간을 낳고 공간은 시간을 낳고 시간은 물질을 낳는다. 공간은 무한한 시간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한량없는 기(氣)의 바다로, 인간이 대우주의 지구라는 공간에서 자연과의 호흡은 생명의 원천이 된다. 생활공간에서 인간은 인공적인 것을 자연적으로 가장 효과 있게 응용하는 학문이자 철학이 바로 풍수지리”라고 말했다. 언뜻 명상심리와 풍수지리의 개연성에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흔히 명상을 하기 위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일부러 찾아서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연관이 없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 다시 말해 풍수지리는 자연과 인간,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이다. 스님은 현대인에게 주거 본연의 아름다움과 가장 기본적 개념을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을 가장 보람 있는 업(業)으로 여기며 풍수지리의 원초적 개념과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풍수지리 커리큘럼은 풍수 인테리어의 기본 원리부터 현공풍수법, 팔괘구성법과 인테리어 응용, 풍수 가구배치 인테리어, 풍수내부구조물-기둥・바닥・천장 및 사무실, 공부방, 침실 인테리어 구성, 외부 인테리어 풍수-진입로 문・창문・출입구・계단・도로, 브랜드 네이밍, 풍수 인테리어와 심리관계, 환경심리의 영향 인테리어 등에 관해 깊이있게 배울 수 있다. 실제로 풍수지리는 사찰의 건물 배치를 이르는 ‘가람배치(伽藍配置)’에도 적용된다. 가람배치란 탑·금당(金堂)·강당(講堂) 등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를 일컫는 말이다. 좋은 가람은 단청의 문양, 건물을 이루는 장식물인 탑, 풍경풍수 같은 조형물 등이 사람을 위주로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사찰은 선풍수적인 대칭 황금비율 비대칭의 역동적 무의식을 깨우는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좋지 못한 건물은 ‘사람을 구겨 넣는 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이란 본디 인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건축구조가 잘 못 되면 인간의 심리적인 안정이 깨져버린다. 풍수지리의 모든 요소는 우주 만물의 근원에서 비롯된 만큼 자연과 사람, 우주의 조화를 꾀하는 천문지리 풍수의 시공법이 전해지길 바란다.” 이처럼 과학적인 체계와 개념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접목해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삶의 여유와 명상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풍수지리연구원을 개설했다. 풍수지리학을 통해 우주 만물과 인간, 자연과의 조화를 연구하는 풍수지리 분야 후학 양성과 불국토를 이루고자 힘쓰고 있다. 끝으로 스님은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행복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움’과 ‘베풂’의 실천을 통해 그것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그것을 넘어섰을 때 반드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드러난다. 무상사 활불선원【홈 폐이지참고】 (http://moosangsa.com)에서 내가 행복해지면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이치를 더 많은 분이 깨닫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재 무상사 활불선원 명상센터 각하용전에서는 정기 명상심리 특강과 숲치유명상ㆍ명상심리콘텐츠 등을 개설하고, 사부대중을 대상으로 활불자재를 위한 교육을 시행 중이다. 바쁜 일상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안성 무상사 활불선원에서 산책과 명상을 통해 여유로움을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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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상사 활불선원 주지 세준 스님, 우주와 자연, 인간 조화로운 불국토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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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문화예술 선도해온 서강호 평택예총 지회장
-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가 창립한지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한국예총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이 땅에 그 향기를 활착시켜왔다. 또한 각 예술장르 간의 소통과 융합을 통해 한국예총의 위상을 높여왔다. 특히 한국예총 산하 지역예총은 지역문화예술 진작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오늘날 지역문화예술의 뿌리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역예총의 발전이 곧 한국예총의 발전이라는 점도 굳게 견지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지난 3월 7일 당선된 제 8대 평택예총 서강호 지회장을 만나서, 평택예총의 향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선출된 서 지회장은 앞으로 4년 동안 평택예총을 지휘하게 된다. 오랫동안 현장중심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해온 서강호 신임 지회장은 먼저 “평택예총의 위상과 예술인의 권위를 위해 노력하신 이전 회장님들과 원로예술인, 회원 모두에게 감사하다. 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당선 소감과 인사를 전하며, “평택예총이 지역예술인의 대표 단체란 이름에 걸맞게 성장하고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격려해주신 만큼 제시했던 모든 공약을 잘 이행해 나갈 것이고, 또 각 지부가 예총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평택예총의 예산을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또 모든 행사관련 예산은 8개의 산하 지부가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평택시는 외부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도시로서, 시민들의 문화욕구가 높은 만큼 예술문화로 결집되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준비하겠다”면서 “회원 단체가 상생하고 협력해 평택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는 단체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강호 지회장은 1979년 평택중학교에 입학해 관악부 활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오롯이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중앙대 음악대학 관현악과를 졸업한 후, 평택에서 활동하며 평택브라스콰이어 대표를 맡아 크고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평택음악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2017년 평택음악협회 부지부장, 2020년 평택음악협회 지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한 번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든 소신 있게 추진하는 뚝심 있는 예술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평택지역의 재능 있는 음악인재를 발굴·육성하고자, 다양한 기획을 통해 청소년의 향상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의 변화를 통해 화합·발전한다 평택시는 현재 총인구 약 60만여 명에 달하는 가운데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늘어나면서 이 지역의 문화예술도 활기를 띌 전망이다. 특히 평택은 문화·예술의 후발지역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높은 문화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인 및 관련 단체들이 힘을 모아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에 대한 평택시민의 기대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그 중심에는 1989년 설립된 평택예총이 있다. 서강호 회장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발전할 때가 가장 살기 좋은 시대”였다며, “상생을 추구하는 예총으로서, 예술인들은 활동에 주력할 수 있도록 하고, 시민들에게는 예술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 문화예술 창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문화예술을 계승·발전시켜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예술의 고장을 이룩하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몇 가지 선거공약을 제시한 바가 있다. 한마디로 안정적인 예총의 바탕을 마련하고 그 토대 위에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공약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예총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이 함께 공유해야 할 중요한 기관으로서, 회원단체와 상생하고 협업하는 관계로서 예총과 회원단체가 하나 되어 발전하고 성장해 그 수혜를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평택예총을 개방하고, 회원단체가 상생하는 공간, 소통이 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예총은 행정을 맡고, 주요 행사예산은 회원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회원단체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배분하겠다”며, “그동안 평택예총 회장을 중심으로 집행됐던 평택예술제 예산 1억 2천만 원 등을 9개(현재 8개) 지부 및 지부장으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결정해 집행하도록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제시한 공약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특히 서강호 회장은 “평택예총은 미술협회·사진작가협회·연예예술인협회·국악협회·음악협회·문인협회·무용협회·영화협회 등이 모여 구성된 대표 단체이고,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것처럼 예총의 주인은 회장이 아닌 각 지부와 회원”이라고 강조하며, “각자의 독창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라 단합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각자도생하면 예총도 발전하지 못 할뿐 아니라 기관과 함께 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더 큰 통로를 열고 협의 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한다”고 단합을 호소했다. 한편 그는 평택예총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며 분업화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사회’의 역할은 예총에서 주요 현안이 발생했을 때 심의하고 결정하는 의결기구이고, ‘부회장단’은 포럼이나 세미나 등을 개최해 예총의 발전방안을 맡아서 하셔야 한다. 그리고 행사나 예산, 프로그램은 ‘협의회’에서 지부장님들이 맡아야 할 부분으로 평택예총의 조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맡은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계획을 전하며, 또한 “모든 행정은 사무국장님 중심으로 그 역할을 다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문화예술에 있어서 예산도 중요하지만 예산에 너무 눈길을 가지면 발전 없다. 앞으로 회원단체 지부장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예총 예산·운영을 협의하고 결정토록 하려고 한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도 이 모든 일은 저 혼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부장님들이 ‘함께’ 협조해주시고 저도 주어진 임기에 최상의 결과를 얻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과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 서강호 평택예총 지회장은 앞으로 클래식, 연극, 영화, 대중음악 공연 및 다양한 전시 등의 수준 높은 문화콘텐츠를 제공하고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기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는 “평택예총이 주최·주관하는 포럼 및 세미나를 활성화해 예총 중심으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이끌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연 1회 신규 기획안을 제출해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중에서도 평택예총 산하 지부가 기획하고 협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려나가는 등, 보다 예총의 토대를 탄탄하게 다져 평택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또한 평택의 젊은 예술인들이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폭을 넓히고, 각 장르간 협업과 콜라보를 통해 시민들에게 풍성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 지회장은 “보다 문화수준이 높아진 시민 요구에 부응하려면 다양한 장르간 콘텐츠가 필요한데 현재 문인협회가 시를 쓰고 음악협회가 작곡해 공연하는 창작가곡제가 유일하다”며, “문화예술인들이 고민해 꾸준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여야 한다. 이러한 협업으로 규모가 커지면 기존에 하지 못했던 색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를 통해 “문화를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참여 폭이 넓어진다면 평택의 문화예술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협업간 콜라보에 대해서도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8개 지부가 반드시 하나로 동그랗게 모여 있어야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문화예술행사를 보면 예산이 많다고 반드시 성공하지 않는다. 참여하는 문화예술인들이 한마음으로 어우러질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단합에 대해서도 반복 강조했다. 끝으로 “평택시·문화재단·문화원 등 관련 기관과도 서로 협업하고 방안을 찾아내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에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예술인의 권익보호는 물론 각자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시민들에게는 평택예술제뿐만 아니라 일상 속으로 문화예술이 스며들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니 시민여러분들도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시민들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는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 등을 통해 평택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한마당을 제공해,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겠다는 서강호 지회장, 앞으로의 향방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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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문화예술 선도해온 서강호 평택예총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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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을 보장하는 노인교육 전문가 양성의 산실
- 수명연장으로 인한 고령화는 세계적 현상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전체인구수 대비 노인 인구의 비중이 2015년 13.1%에서 2060년에는 4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며 초고령사회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대표적인 노화현상인 치매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65세 노인 중 치매 환자의 수는 2020년 10.3%(84만명)에서 2050년 15.9%(302만명)까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른 정부의 치매관리 비용도 현재 17조 원 규모에서 2050년 103조 원 가량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치매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43%가 치매를 꼽을 정도로 나이가 들수록 암보다 치매를 더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치매의 발병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교육은 여전히 미진한 상황. 이에 ㈜한국실버교육협회 평택지부의 서희정 지부장을 만나 노인 인지 개선을 위한 교육의 실태를 들어보고 관련업계의 미래까지 진단해봤다. 반드시 필요한 노인전문 강사 시스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치매로 진단받을 경우 병의 중증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장기의료보험공단에서 필요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치매를 치료하는 약이 없기에 거의 대부분이 간병비로 쓰이고 있는 상황. 하지만 경도인지장애 수준일 경우, 혹은 초기에 발견했을 때 뇌를 활성화시키는 교육을 꾸준히 받으면 중증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몸이 불편하면 재활치료를 받듯이 뇌도 재활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뇌인지 교육은 공단에서도 적극 권장하는 사항이다. 처음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인지 교육을 시작하던 당시는 일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던 노래교실, 웃음치료, 국악교실 등이 전부였다. 그러나 치매는 엄연한 병이기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교육시스템의 효과가 미미해 정부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실버교육전문가와 인지놀이지도사 등의 치매노인 전문 강사 시스템이다. “사실 정상군의 사람도 인지교육을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만 특히 치매 어르신들은 교육을 받을수록 진행이 확연히 늦어집니다. 등급에 따라 책정되는 보험수가도 달라지기 때문에 정부 역시 현재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죠. 주먹구구식 교육이 아닌, 보다 체계적인 실버교육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이유입니다.” 오랜 시간 현장경험을 익힌 전문가 양성 실버교육전문가는 치매의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만 교육이 가능하다. 어르신들의 패턴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하는 자체가 어렵고 따라서 지속적인 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치매는 발현기전이 다양하기 때문에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해야만 적극적인 교육이 가능하다.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공부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반드시 현장에서 충분히 부딪히고 익혀야만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다는 것이 서 지부장의 설명이다. 한국실버교육협회는 노인들을 겨냥한 전문 교재와 교구를 제공할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실버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자격증 전문과정을 습득한 후에도 반드시 최소 3개월 이상의 현장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그동안 협회가 갈고 닦은 다양한 현장 노하우를 제공해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 등 필요한 기관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렇게 양성된 전문 인력들은 노인 전문 교재와 워크북 등을 통해 어르신들이 즐겁게 교육받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뇌를 움직이도록 만드는데 주력한다. 치매 어르신들의 인지수준이 3, 4세 아이 수준까지도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우거나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돕는 것이다. “최근에는 퇴직하거나 일상적으로 봉사를 하시던 분들이 많이 배우러 오십니다. 나이제한이 없으니 하고자 하는 의지와 책임감만 있으면 가능하죠. 성실하게 배우고 일하시기만 한다면 누구든 제대로 훈련시켜 기관으로 보낼 자신이 있습니다.” 조기 발견, 빠른 치료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치매는 일단 발병되면 개인차가 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도인지장애, 혹은 5등급으로 초기에 진단을 받았다 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교육을 받고 몸을 관리하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현재의 인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서 지부장의 설명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빨리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며, 스스로 노력하고 교육받으려는 의지 또한 필요하다. 이에 서 지부장은 치매 안심 상태의 노인들이라도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라고 연락을 취하고, 치매 자가진단법을 가르쳐 해당되는 느낌이 반복되면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교육한다. 그러나 문제는 치매가 시작된 노인들은 스스로 자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부해야 한다는 인지조차 불가능해 교육을 받기 어렵고, 특히 경도인지 장애는 건만증 등이 있을 뿐, 인지능력은 이상이 없는 상태여서 치매 어르신과 함께 교육받은 것을 원치 않는다. 간혹 어르신 중에는 함께 받는 교육을 완강히 거부하는 분도 있다. 따라서 서 지부장은 이러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아이들 방문학습지와 같이 짧은 시간이라도 정기적으로 일대일 개인학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지교육전문가 및 현장경험을 활용해 지역사회와 함께 치매의 예방과 관리를 홍보하고 지역사회 치매관리 시스템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노인들에게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나이 든 부모를 둔 자식들 역시 치매에 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안전교육이나 성희롱교육 등을 하듯,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모님들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반드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육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늙어요. 언젠가 우리도 늙으면 이러한 교육과 관심이 필요한 때가 올 것입니다.”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분명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그러나 꼭 필요한 일이다. 초고령화시대를 앞두고 있는 현실에서, 서 지부장과 같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더 많은 노인 교육 인력이 양성돼 어렵고 소외된 노인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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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을 보장하는 노인교육 전문가 양성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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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희종 안성인삼농협 조합장, 안성 인삼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젊은패기 조합장
- 뿌리 모양이 사람과 비슷하고 귀신 같은 효험이 있다고 해서 신초(神草)로 불리기도 한 인삼.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잘 알려진 인삼은 사포닌, 폴리페놀 등을 함유하고 있어 원기 회복, 면역력 증진, 항암 효과와 더불어 자양 강장에 높은 효능을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강식품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인삼은 일본, 중국의 삼과 달리 사포닌 함량이 높고 특히 한 종류가 아닌 34가지의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인삼 종주국이라는 자긍심에도 불구, 최근 인삼 재배 농가들은 몇 년간 이어진 가격하락으로 큰 위기에 봉착해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려운 시기 안성 인삼농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새롭게 취임한 안성인삼농협의 양희종 조합장을 만나 해결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해봤다. 생산비는 늘고 내수는 감소, 수출까지 막혀 인삼 가격이 하락하면서 재배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진 지도 3년이 지났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초기,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 국민의 주목을 끌었던 것도 잠시, 대면 판매가 불가능해지자 내수시장에서의 판매량은 수직하강 곡선을 그렸고 그 사이 각종 농자재와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생산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는 농가들이 늘어났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던 중국 수출길까지 막히자 인삼 농가들의 빚이 늘어나면서 생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수출실적을 보면 전체 농수산식품의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달성한 반면, 인삼류는 1억1천570만 달러로 전년대비 4.3% 감소한 수치를 보였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백질, 비타민 등 건강기능식품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각종 영양제와 식품들이 유행처럼 등장하면서 트렌드를 따라가는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인삼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 수삼은 가공식품과 달리 포장상태가 길어지면 품질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식품분야에서 온라인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배송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져 고객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위한 선물로 가공ㆍ포장된 각종 건강기능식품을 보내면서 인삼의 수요는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인삼을 가공한 홍삼을 선물한다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관장’ 브랜드만을 선호합니다. 정관장이 전체 시장의 80%를 잠식하고 있어요. 나머지 20% 시장을 두고 국내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답은 항상 현장에 있다 90년대 인삼산업법 개정으로 인삼공사가 민영화되고 허가제였던 홍삼가공업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전국에 천여 개가 넘는 홍삼 가공업체들이 생겨났다. 이후 실제 인삼시장은 정관장과 농협, 일반업체로 나뉘어졌는데 문제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고정되면서 같은 기술력과 효능에도 불구하고 정관장 외의 제품들이 외면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국인삼공사의 민영화 이후 인삼산업의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국가전략산업으로서의 인삼산업 자체가 고사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양희종 조합장이 당선된 것은 어찌 보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을 조합원들이 증명해준 것이라 볼 수 있다. 행정가 출신으로 경제사업의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난 30년간 인삼산업의 전체 흐름을 꿰뚫어온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안성인삼농협에 입사한 그는 창고 및 배달업무로 일을 시작해 지도업무, 수신대부계, 기획총무, 유통 반장, 지점장을 거쳐 경제사업본부장까지 모든 업무를 섭렵했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늘 조합원들과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맥이 두터워지고 정이 쌓였다. “본점이 안성에 있지만 이곳 인삼농협은 2도 6개시를 관할하는 큰 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항상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농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조합원들을 위해 변함없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왔다고 자부합니다.” 5~6곳 지점 증설해 안정적 수입원 확보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그는 취임하기도 전에 다시 현장으로 나가 조합원들을 만났다. 그들의 고충을 알아야 제대로 사업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최근 장기화된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나마 수출물량이 회복되고 있어 올해부터는 다소나마 희망이 보인다는 양 조합장.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지역별 건의사항을 종합해 조율된 사항을 중앙회와 농림수산부에 강력하게 건의하고, 인삼업계를 향한 정부의 도움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행동을 준비할 계획이다. 더불어 경기흐름에 민감한 산업 특성상 신용사업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로 조합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향후 5-6곳의 지점을 개설해 안정적으로 수입원을 확보함으로써 조합원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 조합의 중심이 조합원인만큼 향후 방향과 목표를 공유해 상호간에 발전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발전위원회를 신설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참여기회를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예전 지도사업을 하며 배달 업무도 직접 했습니다. 하나를 시켜도 배달을 갔어요. 그렇게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며 경제사업이 발전했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족감보다는 감동을 주자는 목표 아래 계속 뛰어왔어요. 이제 저희 조직은 10년 이상 젊어졌고 이 젊은 혈기에 제 노하우를 불어넣어 조합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전 임직원의 역량을 집중할 생각입니다.” 수많은 조합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는 인삼산업 전체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조합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조합원들을 볼 때마다 다시 한 번 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긴다는 그에게서 젊은 만큼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인삼산업 전반을 꿰뚫는 깊은 통찰력으로 중무장하고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고 있는 젊은 인삼농협의 비상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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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희종 안성인삼농협 조합장, 안성 인삼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젊은패기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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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과 함께하는 서울시지회를 만들겠습니다"
- “회원들과 함께하는 서울지회를 만들겠습니다”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시지회 노인선 회장 (사)한국미용장협회 노인선 서울시지회장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1983년 미용종합 면허증을 취득 후 미용을 시작한지 5년 만에 샵을(은평구 응암동) 오픈하여 한곳에서 오롯이 35년 간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노인선입니다.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장이 되신 소감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회장을 맞게 되어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책임 또한 무한하게 느낍니다. 앞으로 한국미용장협회는 물론 서울 회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겠습니다. -그간 미용계에서 많은 일을 하셨는데... 미용장을 취득한 이후 미용장 교육 강사를 시작으로 현재 계명문화대학교 겸임으로 재직 중입니다. 사회활동으로는 국제교유협회의 부회장을 맞고 있고, 사회봉사로는 선(Sun)사랑봉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외 대한미용사회 은평지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고, 사)한국미용장협회 부총무 역임(2015년~2017년), 서울지회 부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2020년~2022년) -앞으로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이신지? 우리 지회 회원님들은 현장에서 실무와 경영 등 다양한 업무를 통해 후학 양성 및 미용계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지회는 미용장님들의 귀한 재능을 토대로 회원님들 간에 상호 정보를 공유하여 개개인의 사업장이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미용계 있으면서 즐거웠던 일이나 흐뭇한 일이 많으셨지요? 첫 번째가미용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가공인 미용장을 취득한 일이었고, 이후 중단했던 대학 학업을 시작하여 동덕여자대학교에서 석, 박사를 졸업한 날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두 번째는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지회봉사를 했던 것이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용을 시작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은 사회봉사를 가장 가깝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용을 한 지 5년 만에 헤어샵을 운영하면서 선덕원이라는 어린이 복지시설에 처음 봉사를 시작하여 오늘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은평병원, 서부아동심리센터, 지방 노인복지원 등의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미용봉사 활동으로 기관(서울 은평병원) 직무강의를 하여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유익한 업무로 변신하게 되었고, 병원 내 환자들을 위생적이고 단정한 용모를 할 수 있게 하여 큰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첫째, 1년은 회원들 간의 소통에 치중하겠습니다. 둘째, 회원님들과 함께하는 일입니다. (예) 작품전시, 봉사, 또는 교육) 등 셋째, 회원님들과 함께한 일을 결과로 만들어서 회원님들 한분 한분의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두루두루 발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선 지회장 약력 고추잠자리 미용실 35년 운영 미용기능장 동덕대학교 이학박사 계몀문화대학교 겸임교수 선(Sun)사랑봉사단 단장 선(Sun)헤디자인경영연구소 원장 명장현장실사 심사위원 산업현장교수 심사위원 지방경기대회 심사위원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산업관리공단 심사감독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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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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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과 함께하는 서울시지회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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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헤어를 운영하는 원장님들께 최대의 수익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 (주)바이오로지 홍가인 대표이사 -미용계 입문 계기 오랫동안 금융업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스핀제품을 만나 제 고질병인 아토피 피부질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스핀워터샤워기를 쓰면서 아토피 피부질환이 호전되고 스핀다이 천연염색을 하면서 이 제품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스핀제품을 영업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렇게 좋은 제품을 널리 알려서 저같이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는 많은 분들께 좋은 일도 하면서 사회 환경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영업에 뛰어들어 30년 된 회사 주)바이오로지 회사의 총괄이사를 거쳐 대표이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주)바이오로지 회사 소개 당사는 친환경 사업을 목적으로 최첨단 기술을 응용하여 연구, 개발하는 기업으로써 빠른 변화의 경쟁시대 속에서 힘차게 도약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창조된 지구가 더 이상 변질되지 않도록, 환경오염을 방지하거나 오염된 환경을 회복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물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과 시설을 제공하여 날로 병약해져 가고 있는 현대인의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기여하는 기업입니다. -주)바이오로지 제품 소개 저희 회사의 원조는 물을 다루는 것입니다. 그 중 ‘스핀워터’란 게 있습니다. 스핀워터는 미국의 리훼 박사가 말기 암환자 16명을 대상으로 100% 완치시켜 인정받은 놀라운 ‘고주파 바이오 파동’으로 의학계에 ‘MRI’라는 공신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기술응용으로 우리 곁에 손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주파 자장원리를 이용하여 물속에 용해된 유기화합물을 감소시키며, 물 분자 구조의 미립화를 통해 경도를 낮추어 세척력을 향상시키고 인체의 건강과 미용에 좋은 영향을 주는 물을 스핀워터라고 합니다. 스핀워터는 물이 통과하는 관에 헥사 파동 공명장치로 인체세포액이 가능 좋아하는 다이아몬드형 분자 고리구조와 약알칼리(ph 7.2~7.4)로 변화시켜 체내 세포에 침투력을 빠르게 하여 산성 노폐물을 체외로 배출시켜 자연면역력을 가져 노화방지 및 질병예방에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향균성에 대해 한국원적외선 협회로부터 인증마크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핀워터의 특성을 살펴보면, -항균성 기존의 규산 염산 등의 계속되는 약품첨가나 100ℓ 이상의 물은 버려야만 하는 필터 여과방식이 아닌 원수 통과 후 버려지는 물이 전혀 없이 항균성을 발휘하는 세계최초의 유일한 유지 관리비가 필요 없습니다. -항산화성 산화는 곧 노화를 의미합니다. 우리 몸의 주 에너지원 중 하나인 산소는 격렬한 운동이나 스트레스, 흡연과 음주 등의 원인으로 노화의 원인이 되는 불안정한 상태의 활성 산소(유해산소)로 변환이 되는데, 스핀워터는 활성산소에 안정화 작용을 하여 본래의 유익한 산소의 상태로 되돌려 줌으로 우리 몸의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줍니다. -흡수성 체내흡수율이 증가되어 신진 대사가 활발해져 건강을 유지시켜 주며 또한 피부에 붙어있는 세균과 미세중금속 등의 이물질을 피부와 분리시켜 청결한 피부를 유지시켜 줍니다. -보습성 스핀워터는 침투력이 뛰어나 피부를 보습할 수 있는 물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켜 매끈하고 아름답고 탄력있는 촉촉한 피부를 장기간 동안 유지시켜 주며 연약한 아기 피부에도 큰 도움을 주고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줍니다. -클러스터 물 입자의 크기를 표현한 단위이며, 일반적인 물의 경우 50~60개의 물분자가 합쳐져서 클러스터로 존재합니다. 물분자 5~6개 사이의 클러스터로 이루어진 좋은 물입니다. 세계 10대 장수촌의 물 검사 결과 모두 10~25개의 클러스터가 작은 것으로 검사되었습니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저희 바이오로지에서 생산하는 미용샤워헤드는 안전하고 건강한 물입니다. 이러한 물을 기본으로 염색약을 비롯한 미용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제품의 유통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당사 제품의 유통은 미용실, 염색방에서 로지헤어 간판을 걸고 하는 프랜차이즈와 일반인들이 가게를 보유한 후 주)바이오로지 제품을 진열 또는 판매를 위해 특약점계약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바이오로지 제품이 미용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염색의 문제점 특히 천연염색 헤나의 문제점을 완벽이 커버하고 있으며 (색초침작 NO, 부작용 NO, 시간 30분 축소, 한 번 만에 염색의 색깔 체인지 됨)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사 브랜드 “스핀” 제품은 이온화된 음이온 즉, 자기장공법으로 만든 음이온으로,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제품 차별화가 가능했습니다. 모양이 비슷해도 진짜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 장점을 가진 주)바이오로지 미용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미용인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주)바이오로지 뜻은 “물은 생명과학이다.”입니다. 좋은 물 특히 주)바이오로지에서 개발된 음이온 이온수로 제품을 개발하다보니 특히 피부질환 등 두피케어에 효과가 뛰어납니다. 현대인들의 고민이 탈모라고 합니다. 음이온의 건강한 물로 두피케어와 모발이 건강해진다면 앞으로 100세 시대의 고민을 해결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주)바이오로지 브랜드 “스핀” 최고의 제품들을 공급하여 건강은 물론 미용실 매출에 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사의 개발자이자 창업주는 장세형 회장님이십니다. 회장님과 더불어 주)바이오로지 스핀제품 브랜드를 부각시켜 현재 스핀제품을 공급받는 곳들과 올해 프랜차이즈 및 체인점을 1000개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주)바이오로지 간판브랜드 “로지헤어”를 운영하시는 소상공인 원장님들의 수입을 안정시켜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시고 성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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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헤어를 운영하는 원장님들께 최대의 수익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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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나의 삶, 철학, 천직"
- 미용인보(美容人譜)48 “미용은 나의 삶, 철학, 천직” 이숙자 광주광역시 미용명장 1호 이숙자 광주광역시 미용명장 1호 교육자의 힘 이숙자 광주광역시 미용명장 미용사는 어릴 적부터의 희망 주경야독으로 따낸 기능올림픽대회 금상 미용학사, 석사, 박사 여기에 더하여 이, 미용기능장, 기술강사, 직업훈련교사1급 많기도 하여라 신기술 개발로 미용기술 전수, 후배 양성 미용재능봉사 밤낮이 따로 없는데 우수숙련기술자 광주광역시 미용명장은 또 다른 훈장이었네 쪼끄마한 체구에, 미용정신으로 똘똘 뭉친, 빛고을 광주에서 대한민국 미용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아름다운 미용인 믿음이 가는 미용인 ‘쪼그맣다’라는 전라도 사투리는 ‘작다’란 의미에 더하여 ‘내실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강가의 조약돌이 그래서 더 단단해 보이며 햇볕에 더 반짝이는 것이리라. 이숙자 광주광역시 미용명장(이하 명장)을 생각하면 시골 산속 밤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깊은 산속 밤나무의 밤은 알은 굵지 않으나 단단하고 빛나는 때깔을 자랑한다. 때깔만 고운 것이 아니다. 단단한 밤은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그 안에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미용 실력을 안으로 다지고 다진 이숙자 명장을 그래서 기자는 강가의 조약돌과 시골 밤에 비유하지 않을 수 없다. 행사장에서 만나는 이숙자 명장은 항상 바쁘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인 듯하다.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다. 바삐 움직이되 소리가 나지 않게 자기 일을 다 한다. 믿음이 가는 행동이다. 기자가 이숙자 명장을 안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흉금을 터놓고 술자리를 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던 듯싶다. 내성적인 기자의 성품과 이숙자 명장의 성정 탓이었으리라. 우리는 대부분 행사장에서 만났고, 행사장이라는 것이 겉만 보이기 십상이지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기는 어려운 것임을 상기할 때 거개의 인간관계가 수박겉핥기식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참 모습은 어디에서건 드러난다. 그리고 자석에 이끌리듯 동화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각설하고, 이숙자 명장을 제대로 알고 나니 이숙자 명장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숙자 명장의 주변에는 그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이는 법. <2022 광주 미용 이야기> 전시 후 뒤풀이 최 근래 술자리 만남은 지난 해 10월 7일 광주 전일문화센터에서 개관한 <2022 광주 미용 이야기> 때였다. 이날 전시회는 광주 멋쟁이를 탄생시킨 최초의 미용실과 오늘날의 광주 미용을 이끌어온 협회를 비롯한 지역 미용인들의 활동 및 그들이 지역 사회 전반에 걸친 영향을 각종 사료와 작품을 토대로 재현한 획기적인 행사였다. 그날 전시회를 기획, 주최한 주인공들은 광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숙자 명장을 비롯, 김진숙(한울이미용실 대표, 대한민국 미용명장 1호), 정찬이(라인미용실 대표, 대한민국 미용명장), 이순(한국미용박물관 관장, 광주시 명장), 이예순(천지미용실 대표, 광주동구미용협회장), 강수경(광주여자대학교 교무처장) 등이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기자는 ‘미용계의 인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기사 말미에 썼다. 어쨌든 행사 후 우리는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 만찬을 가진 후, 분위기 있는 음악이 나오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뒤풀이를 즐겼다. 광주 미용인의 정서와 이숙자 명장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어떤 사람의 진면목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그 어디에 비교해도 뒤처질 수 없다. 그 후, 우리는 어느 새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광주의 아니, 대한민국의 대표 미용인 중 한 사람인 이숙자 명장은 어떻게 미용계에 입문하게 되었을까? “4남 2녀의 막내로 성장하며 어려서부터 미용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미용사의 “꿈”을 안고 미용기술을 배웠습니다. 1982년 미용입문 당시 광주시 금남로에 위치한 광주백화점 내 ‘미지미용실’에서 보조원으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객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미용 산업 발전과 전문기술 교육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때 근면과 성실한 저를 인정한 미용실 원장님께서 기능올림픽대회 출전을 추천하셨고, 미용기능과 예술, 창의력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힘든 도전이었지만 신기술 습득과 기술 연마라는 목표를 두고, 주경야독으로 반복 훈련을 하여 1983년 ‘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년 연속 광주시 대표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하였고, 이것이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함의 대명사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예시하지 않더라도 이숙자 명장은 인간성에 더하여 타고난 근면함을 바탕으로 미용 기술을 익히고 배웠던 것이다. “미용실에 꾸준히 근무하던 중 고객서비스를 위한 미용의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고 다양한 테크닉과 숙련된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학문적 지식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주경야독으로 미용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광주여자대학교로 편입학하여 미용학사, 석사, 박사,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사단법인 대한미용사회 중앙회 기술강사를 취득하였습니다. 비달사순, 피봇포인트, 타야커트 기술강사, 직업 훈련교사1급의 자격을 갖추고 미용실 고객서비스와 기술전수, 후배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숙자 명장은 취약계층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미용 봉사활동도 열심히 병행하고 있다. 또한 신기술 개발과 후진양성에 다양한 교육방법을 적용하고 성과로 나타나게 된 공적을 인정받아 2020년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되었고, 2020년 12월에는 광주광역시 미용 명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숙자 명장은 (사)한국미용장협회 부회장 및 이사직을 9년간 수행했다. 중앙헤어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취업, 창업을 위한 미용인재 및 후진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명인 명장 도제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광주광역시에 제안, 선정되어 2년 연속 많은 소상공인에게 신기술을 보급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경영난을 해소하고 취, 창업을 위한 교육 및 알선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광주광역시 미용 명장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에 우리나라 K-뷰티 미용을 알리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미용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트렌드 교육을 하고 우리나라 전통머리 작품들을 전시하는 등 그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대한민국 미용의 위상 높여 뜻있는 한 미용인의 힘은 이렇게 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선진국의 성공사례와 탐방을 통해 글로벌 미용 산업을 분석하고 우리나라 K 뷰티산업의 플랫 홈을 만들어 새로운 융·복합 살롱 현장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고객을 위한 현장형 신기술을 세분화하고 표준화된 매뉴얼로 미용 인재를 육성하고 성장시키는데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미용인에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동안 쌓아온 기술적 노하우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후진 양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다하겠다는, 후진들이 평생 직업인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성장 마인드 교육, 뷰티 친절서비스와 신기술 개발 및 기술 전수와 복지환경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보유하고 있는 독창적인 숙련 기술을 특성화 미용 고등학교, 미용대학, 미용 산업체 종사자들에게 미용 전문 강좌 개설과 도제교육 등으로 후진들에게 자기 주도적인 평생학습을 통해 성장하도록 미용기술을 재능기부하겠다는 이숙자 명장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가자는 기원한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미용이 세계로 우뚝 설 날을 기대한다. 이숙자 명장 프로필 •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자 • 광주광역시 미용명장 1호 • 미용장 · 이용장 • 미용학사, 미용학석사, 미용학박사 • 소상공인 진흥공단 컨설던트 • 기능올림픽대회 헤어디자인 지도교사 금,은,동 메달 다수 배출 • 사단법인 한국미용장협회 이사 및 부회장 역임 • 사단법인 한국미용장협회 광주·전남 지회장 역임 • 사단법인 대한미용사회 중앙회 기술강사 • 1996~ 피봇포인트 교육강사 • 전) 비달사순 교육강사 • 전) 타야커트 교육강사 • 현) 중앙헤어스튜디오 원장 • 현) 광주보건대학교 뷰티케어과 겸임교수 • 현) 광주여자대학교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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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나의 삶, 철학, 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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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회 발전과 미용인의 권익신장을 위하여...
- 미용인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천남동구 김미숙 지회장 ‘행복한 사람들은 어떻게 봉사할지 찾고 발견한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봉사는 남에게 베푸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특별한 행동이다. 개성시대 헤어콜렉션의 대표이자 대한미용사회 인천남동구지회를 이끄는 김미숙 지회장은 타고난 봉사자다. 오랜 기간 지회에서 구역장, 상임위원,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6년 5월 16일 지회장 경선에서 남동구 회원들의 높은 지지로 인천남동구지회장으로 선출되어 3회 연임 중이다.김미숙 지회장은 미용 30여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미용사이며 현재 중앙회 홍보위원회위원 및 고전머리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니라 인천시 남동구지역에서 다양한 단체에서도 활동하며 인천남동구 발전에 크게 기여해오고 있다. 김미숙 지회장은 “어릴 때부터 종교 활동을 하면서 봉사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미용을 하면 봉사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시작했습니다.”라며 “봉사를 위해 배우다보니 흥미를 느끼고 미용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재능기부를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김미숙 지회장은 지역내 요양원과 장애인복지관 등을 돌아가며 남동지회 임원진, 회원들과 함께 봉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역 외에서도 봉사를 해왔었지만 최근에는 구민들에게 더 많은 양질의 봉사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 연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한 예전에 했던 다문화 가정, 독고노인 등 봉사할 수 있는 반경을 넓혀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생각이다. 자고로 미용사라면 실력을 갖추고 늘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미숙 지회장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교육을 따로 받기 어려운 회원들을 위해 수시로 무료 교육이나 세미나를 실시하여 앞으로 더 발전될 남동구 지회를 위해 노력 중임을 밝혔다. 아울러 인천남동구지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년 연속 중단은 하였지만 새로운 뷰티트렌드 등 미용인들의 기술 향상과 홍보를 위해 인천남동구 미용페스티벌을 2018, 2019, 2022 등 3회 실시하여 미용인들의 아름다움과 위상 정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올 9월에는 제4회 미용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다 김미숙 지회장은 “남동구미용협회는 임원진과 실무진 모두 한마음으로 정직하고 바르게 회원들과 소통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며, 회원들의 권익신장과 기술력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며 회원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김미숙 지회장은 자신이 운영 중인 인천남동구 구월동 소재 ‘개성시대 헤어컬렉션’의 차별점에 대해서도 탁월한 의견을 밝힌다. “디자이너의 실력은 노력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지만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고객의 마음을 채워주는 일이기에 분명 차이가 있고, 저 또한 많은 고객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고객 제일주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덕분에 김미숙 지회장의 헤어숍을 찾는 고객들의 만족도는 최상일 수밖에 없다. 요즘 지역 내 요양원과 장애인복지관 등을 남동지회 임원진, 회원들과 함께 하며 꾸준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김미숙 지회장의 행보는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아름다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아름다움까지 고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미용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기자의 마음이 뿌듯하다. 김미숙 지회장은 끝으로 “시냇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듯이 모든 미용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미용사법이 잘 재정되길 기원합니다.”라며 최영희 의원이 공동발의한 미용사법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표현했다. 한 사람의 미용인으로서 남동구지회 회원에 대한 애정과 미용사회 전체의 발전을 바라는 김미숙 지회장은 분명 우리 시대의 미용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미숙 지회장 프로필 대한미용사회 인천남동구지회장 대한미용사회중앙회 홍보위원 대한미용사회 고전머리기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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