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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10-27
  •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 문화
    • 인터뷰
    2025-10-27
  •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 문화
    • 인터뷰
    2025-10-27
  •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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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5-10-27
  • 이영숙 대표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 문화
    • 인터뷰
    2025-09-28
  •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9-23

실시간 인터뷰 기사

  • '르아이 헤어&메이크업' 김정인 대표
    “미용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며, 본인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직업” '르아이 헤어&메이크업(Leai Hair & Makeup)' 김정인 대표 김정인 대표 김정인 원장은 14세에 미용을 시작해 올해로 30년을 맞이한 뷰티 전문가이다. 프리미엄 살롱 '르아이 헤어&메이크업(Leai Hair & Makeup)'의 대표로 활동하며, 실무뿐 아니라 대학에서의 강의와 기업 세미나, 전문 디자이너 양성에도 힘써오고 있다. 또한 건강한 두피와 모발을 위한 코스메틱 브랜드를 직접 개발하고 런칭하며, 실력과 감각을 겸비한 뷰티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헤어아티스트 김정인 대표를 만났다.<편집자주>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르아이(Leai) 살롱의 대표 김정인입니다. 저는 14세에 미용이라는 길에 들어선 후, 30여 년 동안 오직 이 한 분야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기술 이상의 철학과 감각,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진심을 바탕으로,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고객의 이미지와 인상을 섬세하게 완성해왔습니다. -'르아이'는 어떤 공간이며, 어떤 가치를 담고 있나요? 르아이는 서울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호텔 내에 위치한 프리미엄 살롱으로, 단순한 미용실이 아닌 ‘고객의 삶의 순간을 디자인하는 공간’입니다. VVIP,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 외교 관계자 등 고위층 고객을 대상으로, 완벽한 프라이버시 속에서 품격 있는 맞춤형 스타일링을 제공합니다. 르아이는 단 한 번의 방문이 아닌, 오랜 관계를 전제로 한 신뢰 기반의 브랜드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고객의 신뢰를 꾸준히 얻어오신 비결은 무엇인가요? 고객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스타일은 단순히 예쁜 머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목적과 상황에 맞춰 조화롭게 표현해내는 작업입니다. 저는 고객의 요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때로는 그 이상을 제안해드리며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집중력과 꾸준함이 결국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습니다. -고품격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 팀워크와 조직 운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고객에게 전달되는 서비스의 질은 팀 내부의 문화와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살롱을 운영할 때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각 구성원이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도록 신뢰 기반의 구조를 만들고,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팀워크를 지향합니다. 르아이의 분위기는 경쟁이 아닌 협업, 지시가 아닌 소통에서 나옵니다. 그런 조직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고객에게 진심으로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고객과의 깊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단순히 스타일링 대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맥락과 감정을 함께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직관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은 경험을 통해 서서히 다듬어지는 것이기에, 결국 본질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전달될 때, 고객은 자연스럽게 신뢰로 응답해 줍니다. -국제 무대에서도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경험들이 있었는지 소개해주세요. 네, 국내 활동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특히 글로벌 기업 행사, 고위급 인사 대상 스타일링, 국제 컨퍼런스, 영화제, 패션위크 등에서 뷰티 디렉터로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요구를 빠르게 파악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저에게도 의미 있는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더 유연하고 입체적인 전문가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미용 인생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고객분들께서 제 일정을 고려해 주시거나, 중요한 자리에 저를 동행자로 생각해 주실 때 마음 깊이 감사함과 보람을 느낍니다. 대사관 행사나 외교 모임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저를 필요로 해주실 때, 단순한 기술자 그 이상으로 신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모든 관계들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정성과 진심으로 쌓아온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습니다. -‘미용’이라는 직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미용은 ‘즐거움이자 창조’입니다. 매일 새로운 얼굴을 만나고, 그 사람의 매력을 발견하고 드러내주는 이 작업은 저에게 늘 신선한 자극과 성취감을 줍니다. 고객이 행복해지는 순간, 저도 똑같이 기쁩니다. 감정 소모가 아닌,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즐겁고, 감사한 마음이 커집니다. -후배 디자이너들을 교육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술은 디자이너로서의 기본이며, 인성은 그 기술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를 결정짓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즐기는 자세'입니다. 이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나만의 리듬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아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즐겁고 충만해야 고객도, 팀도 에너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삶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시나요? 초창기에는 삶의 대부분을 일에 쏟았습니다. 지금은 건강과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이 곧 고객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도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습니다. 일과 삶 모두에서 ‘지속 가능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미용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즐기면서 하세요. 미용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직업입니다. 내가 이 일을 즐기면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고객에게 전달되고, 그게 결국 나만의 스타일이 되고 경쟁력이 됩니다. 진심을 담고 즐겁게 임하다 보면, 길은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AI와 디지털 기술이 많은 것을 대체하겠지만, 사람을 직접 만나고 교감하며 감각적인 손길로 변화시켜주는 미용이라는 직업은 오히려 더 큰 가치를 가질 것입니다. 기계는 따라할 수 없는 촉감, 분위기, 공기, 감정의 흐름 같은 것들이 미용 현장에는 존재합니다. 고객의 표정, 눈빛, 말투, 심지어는 그날의 기분까지도 읽어내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완성하는 과정은 인간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AI 시대일수록 사람다운 감각과 정성이 더욱 귀해질 것이며, 미용은 그 중심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후배 여러분도 이 직업의 본질을 믿고, 더 당당하고 자부심 있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5-20
  • 의정부 120% 쿨 구민주 대표
    “하면 된다”, “위기가 기회다” 뚝심의 리더십 ‘의정부 120프로 쿨 에비뉴점’ 구민주 대표 구민주 대표 -자기소개 미용 30년 차 ‘의정부 120프로 쿨 에비뉴점’ 대표 구민주입니다. 미용계의 대표잡지 뷰티라이프를 통하여 인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용실 소개 및 자랑 저희 미용실은 120평 규모의 최고의 분위기를 추구하는 매장으로 의정부 중심가인 로데오거리에 자리한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많으면 서로 이해하기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직원들은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협업이 잘되며 여느 미용실보다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본인 고객님이 아니더라도 바쁘면 샴푸 및 시술을 자신의 고객님처럼 지원합니다. 시기 질투를 하지 않고 서로의 신뢰를 잘 유지하며 항상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타 미용실과의 미용실 운영의 차별화 전략 및 장점 저희 매장은 10년 넘게 매일 오전 9시 30분의 조회를 시작으로 디자이너들이 당일 예약과 고객님 데이터 분석을 브리핑합니다. 고객님 한분 한분을 전략과 전술로 만족도를 높이고 재방문하실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연 3회에 정해진 행사를 진행합니다. 2회의 정액권행사 1회의 알씨투 키핑행사 때마다 혜택은 매번 다르게 진행함으로써 뻔한 행사의 이미지를 주지 않고 항상 기대를 뛰어넘는 마케팅을 진행합니다. 또한 행사 시 직급 경력 고객 수에 따라 매출 및 고객 수를 맞춰 디자이너들이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합니다. 더불어 고개님들의 만족도 높이기 위해 매년 3회의 교육을 실시합니다. 매장교육 2회는 열펌, 컬러 실기교육 1회는 디자이너별 레벨에 맞는 커트교육을 의무적으로 진행합니다. -평소 철학 저는 미용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안 될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철학은 “하면 된다”입니다. 안 해서 못하는 거지 시도도 하지 않고 안 된다는 것은 실패한 사람들의 변명이라 생각합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모든 대표님들도 같은 생각을 하시겠지만 직원들의 멋진 성장이 대표로서의 즐거움이 아닐까요? 인턴으로 입사해서 디자이너과정까지의 힘든 과정을 잘 견뎌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23년도 알씨투 키핑행사 때 전국 1위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이 행사를 기회로 직원들의 사기가 충족되었던 것 같고 아직까지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현재 경제가 힘든 상황이라 저희도 지금 체감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직원들과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기가 기회다.” 이 기회에 기술력과 그리고 마케팅에 투자를 더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시고 많은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4-24
  • 사이리즘 아카데미 사이 리 대표
    카리스마 넘치는 미용재교육계의 작은 거인 사이리즘 아카데미 사이 리 대표 사이 리 대표 미용인의 길라잡이 -사이 리 대표 카리스마는 아무나 쉽게 얻는 게 아니지 천 년의 힘을 비축한 화산의 응집력과 고요한 나비의 날갯짓이 융합하면 카리스마가 탄생하지 무대 위에 선 그대의 모습도 이와 같아서 갈고 쌓은 내공의 힘과 미용을 향한 솟아오르는 사랑이 무대 위에서 꽃을 피우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지 이제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기술 미용을 살찌울 그대 손안의 비법 새롭게 책으로 엮어내고 있으니 이 또한 카리스마 아닌가 -아름다운 쇼 -인내력의 끝판왕 미용인들에게 그대는 참다운 길라잡이가 되리 무대 위 넘치는 카리스마 사이리즘 아카데미의 사이 리 대표, 하면 우선 생각나는 대목이 무대 위에서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입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용계는 헤어 세미나, 헤어 쇼의 전성시대였습니다. 그 당시는 번성하는 재교육기관과 미용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앞다투어 대형 미용 세미나나 헤어 쇼를 통하여 많은 미용인들과 교류하던 시기였습니다. 나라의 경제가 휘청이는 IMF 시대였지만 반면에 미용계는 호황 아닌 호황을 누리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미용계는 나라 경제와는 별도로 세미나와 헤어 쇼를 통하여 풍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듯했습니다. 미용인들의 삶의 만족도도 이때가 높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많은 헤어 쇼 중에서도 사이리 대표는 특출난 강사에 속했습니다. 미용계에서 연예인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대 위에 선 그의 모습을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은 많은 미용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99년 사이리즘 아카데미 탄생 그렇다면 사이리즘 아카데미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이리즘 아카데미는 국내 최초의 미용 재교육 브랜드로, 1999년 4월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보다 앞선 1996년, 영국TONI & GUY브랜드와의 계약을 통해TONI & GUY Korea를 창립하고, 전국 단위의 재교육 세미나, 특강, 헤어쇼 등을 진행하며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이리즘 아카데미는 1999년 4월에 역삼동에서 시작해 동대문구, 신사동을 거쳐 현재는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용학원은 자격증반과 연구반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학원 수료 후에는 헤어살롱에서 실무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구조였습니다. TONI & GUY아카데미와 사이리즘 아카데미의 등장은 미용인들에게 체계적인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사이리즘을 필두로 한국의 재교육 아카데미는 한국 미용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2025년 현재 사이리즘은 2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연하게도 우리 잡지는 1999년 7월호로 창간했습니다. 기자가 창간 작업을 하기 시작한 때가 1999년 3월부터이니 사이리즘 아카데미와 출범 시기가 정말 비슷합니다. 같이 창립 27주년이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이구요. 재미있는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재교육계의 기린아이자 선봉장 역할을 했던 사이 리 대표는 “미용일과 교육활동도 즐거운 일이지만, 국내외 헤어쇼나 세미나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 보다 역동적이고 강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특히 서적을 집필하고 출간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의미가 깊었다.”고 즐거운 기억을 소환합니다. 사이 리 대표는 지금도 꾸준하게 아카데미를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미용재교육기관이 성행했던 2000년대 초 같지는 않지만 미용교육을 향한 그의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습니다. 매년 한 권씩 단행본 출간할 계획 사이 리 대표는 현재도 교육에 전념하고 있으며 건강 관리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2022년 4월에는 Design&Formula, 2024년에는 질감마스터, 2025년5 월에는 뉴베이직마스터라는 서적을 출간하였습니다. 정해진 기간은 없지만 매년 한 권씩 단행본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사이리마스터 레퍼런스노트 출간을 기획 중입니다. 그의 미용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이 리 대표는 미용은 “아름다운 쇼”이자 “인내력의 끝판왕”이라고 말합니다. 테크닉과 감성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미용인의 일상은 마치 매일 펼쳐지는 한 편의 아름다운 쇼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턴에서 디자이너, 원장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요구되는 인내와 서비스 마인드는 그 자체로 배려와 인내력의 미덕을 담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굴곡을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봉사 정신이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힘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에 대한 애정과 깊은 관심이 없으면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이 리 대표는 미용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용 재교육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습니다. 미용재교육의 선구자 역할에 대한 자부심 “한국 미용 역사에서의 미용 재교육은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미용 재교육의 시작은 1996년 국내 최초 TONI & GUY Korea의 설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 보편적인 미용학원의 틀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를 통한 체계적인 재교육의 서막이었고 미용 재교육을 전국적으로 확장함으로써 미용인들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TONI & GUY Korea에 이어 사이리즘 아카데미는 서울, 대전, 부산에 직영점을 운영하며 전국에 분교를 설립하게 되고, 커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재교육이 이루어지며 대학과 기업에서도 활발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학의 경영대학원 등과 2년제 전문대 및 4년제 대학의 미용학과 등이 개설되기도 했습니다. 사이리즘은 재교육 초기부터 올해로 2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 SNS나 살롱 자체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재교육의 양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평생교육의 흐름 속에서 개인과 기관의 지속적인 노력은 한국 미용을 더 빛나게 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미용재교육의 선구자답게 그의 미용교육에 대한 철학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사명의식과 자부심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사이 리 대표는 교육 후 수강생들로부터 감사의 손편지나 메시지를 받을 때, 그리고 사이리즘 강사 출신 제자들이 박사 학위를 받고 해외에서 활동하거나, 살롱을 오픈해 원장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볼 때 감동을 느낍니다. 더불어 제자들과 수료생들이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제자 사랑이 남다른 그의 품성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대목입니다. 앞으로도 미용 재교육에 대한 사명을 이어가고 싶다는 사이 리 대표,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교육과 서적 등 그만의 방식과 창구로 나누고자 한다는 사이 리 대표, 매년 서적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이 리 대표, 나아가 한국의 미용 재교육을 해외에 알리는 활동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라는 사이 리 대표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 한국 미용의 세계화가 앞당겨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이 리 대표 프로필 -사이리즘 프로페셔널 대표 -사이리즘 아카데미 대표 -S클럽 회장 -카사 프로페셔널 회장 역임 -르사크 프로페셔널 회장 역임 -대한국제커트협회 회장 역임 -숙명여대 초빙교수 역임(1999~2010) -일본동경미용전문학교 졸업 -일본TONI & GUY Japan아카데미 수료 -영국TONI & GUY아카데미 졸업 -영국Vidal Sassoon아카데미 졸업 -사이리즘 테크니컬 연구소 오픈 -영국호〮주TONI & GUY팀과 헤어쇼 -사이리즘 씨토 도구 사업 오픈 -사이리즘 30개 분교 개설(특강교육) -아모스 헤어숍(아크팀) -그리에이트 헤어쇼 -일진 헤어쇼(아크팀) -러시아, 홍콩, 태국 헤어쇼 -이탈리아 볼로냐 코스모프로프 연속 2회 헤어쇼 사이 리 대표 저작 -사이 리 커트(대학교재용)서적 출간(1999) -이미지트랜드4&4서적 출간(2003) -르사크 아방가르드 서적 출간 -헤어살롱 매뉴얼 서적 출간 -대한국제커트학회 클래식 출간 -대한국제커트학회 어드밴스 출간 -르사크 업스타일 서적출간 -Design & Formula서적 출간(2022) -질감마스터 서적 출간(2024) -뉴베이직 마스터 서적 출간(2025) -사이 리 헤어 커트2000커트 비디오 제작 -사이리즘 이미지 트랜드 커트 비디오 제작 -사이 리 커트 동영상 촬영(TV헤어)
    • 문화
    • 인터뷰
    2025-04-24
  •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 쓴 김동규 교수
    광고의 숨겨진 역사를 탐험하는 책: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 : 하드셀과 소프트셀은 어떻게 세상을 중독시켰는가>를 쓴 김동규 교수 김동규 교수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명대학교에서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김동규 교수입니다. 학교에 오기 전에는 대홍기획, LG애드, FCB코리아 같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The New York Festivals, 한국광고대상 같은 여러 광고상을 받기도 했지요. 《카피라이팅론》, 《미디어 사회》, 《계획행동 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 같은 전공 책 외에도 《여성 이야기 주머니》, 《사람이 온다》와 같은 꽁트집이나 산문집을 썼습니다.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를 소개하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체계적 세계광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뼈대는 간단합니다. 2천 년 이상 전개된 광고 역사를 하드 셀hard sell과 소프트 셀이soft sell라는 두 가지 창작 방법을 통해 살펴보는 겁니다. 이를 위해 로마시대 검투사, 흑인노예, 전쟁과 여성, 인디언 박해, 21세기 뇌과학과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스토리가 잔뜩 펼쳐집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현대 광고 산업이 정교한 심리학 이론과 행동과학을 무기로 어떻게 소비자를 설득해서 물건에 대한 욕망을 창조하는가의 구조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는 거지요. -책을 내게 된 동기 지난 수 백 년 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광고역사를 주제로 하는 다채로운 책들이 출간되었습니다. 광고가 산업혁명 이후에 구미를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광고의 역사를 해설하는 교양서가 많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제자들 가르치면서 오랫동안 그런 갈증을 느껴왔는데, 사정이 그렇다면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세계 광고사 책을 내가 직접 한번 써봐야겠다 마음을 먹었지요. 이 책이 그 결실입니다. -이번 책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프랑스에 로베르 게랭Robert Guérin이란 수필가가 있는데,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는 질소와 산소와 광고로 구성되어있다. 우리는 광고 속을 헤엄쳐 다닌다”. 자기가 호흡하는 순간을 의식하는 사람은 잘 없잖습니까. 광고도 그럴 정도로 현대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는 뜻이지요. 이 책도 그렇게 부담 없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873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입니다마는, 술술 잘 읽힌다는 반응들이 많습니다. -현대인과 광고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하여 광고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상품의 장점을 알리고 좋아하게 만들고 최종적으로 구입을 설득하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빙산의 물 위에 드러난 부분이 10퍼센트밖에 안 되듯, 광고의 진면목도 숨겨져 있습니다. 광고야말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적 사회제도’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쉼 없는 페달을 밟아야만 쓰러지지 않는 두발자전거에 비유되는데, 광고를 통해 상품에 대한 욕망을 계속 창조하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 거지요. 이 책은 그처럼 숨겨진, 광고의 경제사회적 역할에 대한 명쾌한 해설서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개인적 소망으로는 곧 정년퇴임인데, 어디든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로 이사 가서 몸과 마음을 푹 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충전을 한 다음 새로운 광고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습니다. 보다 인간미 넘치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이 책에서 못 다 담은 '광고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싶은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독자들께 한 마디 독자분들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4-21
  • '희망이라는 절망' 출간한 정한용 시인
    ‘산문시’에서 얻는 새로움의 발굴, 『희망이라는 절망』출간한 정한용 시인 정한용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충북 충주에서 났고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과 1985년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간 시집으로『유령들』, 『거짓말의 탄생』,『천 년 동안 내리는 비』, 『희망이라는 절망』 등 여덟 권을 냈고요. 평론집으로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 문학론/산문집으로 『초월의 시학』, 『따로/같이』 등을 출판했습니다. 영어 번역 시선집 『How to Make a Mink Coat』, 『Children of Fire』와, 스페인어 번역 시선집으로 『Registros de la experiencia humana』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 지금까지 네 번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시집 <희망이라는 절망>을 소개하면? 이 시집은 가장 최근에 나온 저의 여덟 번째 시집입니다. 이 시집의 끝에는 다른 비평가의 ‘해설’ 대신 제가 ‘작가노트’라는 것을 써서 붙였습니다. 그 글에서 이번 시집의 의미를 나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꽤 긴 글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그 글로 대신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이번 시집이 여타의 다른 시집과 구별되는 특징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으셨다면, 수록 작품 전부가 산문시라는 것, 예, 그렇습니다. 잘 알다시피, 시는 행을 나눠 들쭉날쭉하게 쓰는 게 보통입니다. 물론 행을 나누지 않은 산문시도 낯설지는 않으실 텐데요, 그렇다고 이 시집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산문으로만 채운 경우는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산문시집’이라는 걸 내세우고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내게 된 소감 이번 시집 이전에 제겐 일곱 권의 시집이 있습니다. 초기 네 권은 흔히 시인들이 그러하듯, 몇 년 쓴 작품을 그저 한곳에 모아 책을 냈습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시집 한 권을 하나의 테마로 ‘기획’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잡은 주제가 ‘제노사이드’였습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시집 『유령들』은 인류 역사에서 피비린내 나는 대량학살 사건들로 채웠습니다. 시집 전체를 테마화하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되더군요. 그래 이후 시집도 기획하게 되었는데, 여섯 번째 시집 『거짓말의 탄생』은 주제가 ‘판타지’였고요, 일곱 번째 시집 『천 년 동안 내리는 비』의 주제는 ‘미래문명’이었습니다. 이 세 권의 시집은 우리 역사에서 과거-현재-미래를 통괄하여, 인간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존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하겠습니다. 이제 주제로 보면 제가 더 할 말은 없는 셈이었지요. 그래서 여덟 번째 시집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떠올린 게,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 새로움을 찾아보자 생각했고, 그때 떠오른 것이 ‘산문시’였습니다. 지난 몇 년간은 산문시에서 내가 어떤 새로움을 발굴해 낼 수 있을지 화두로 삼으며 글을 썼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이미 ‘작가노트’에서 언급했습니다. ‘왜 산문시집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신하면 빠를 듯합니다. 저는 요즘 시에서 운문과 산문의 경계가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산문화된 운문이나, 운문화된 산문이 가능할지, 이것을 실험하고 싶었습니다. 시를 쓰며 꼭 행을 갈라야 하나,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꼭 마침표를 모조리 지워야 하나, (이것도 좀 할 말이 많은데) 꼭 시적인 상징이나 은유를 깔아야 하나, (이건 당연하다 여기실 것 같은데) 꼭 남들이 쓰는 대로 따라 써야 하나? 물론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제가 산문시에 대한 정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에서 배회하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며, 나는 이 시집의 시를 썼습니다. 다행히 읽고 난 독자들께서, 일단 재미있고 색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다고 평가해 주시니, 조금 보람을 느낍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모든 시인이 그렇겠지만, 이 시집에 실린 시는 저에겐 모두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어느 한 편만을 고르기가 정말 쉽지 않네요. 할 수 없이 시집의 표제작인 「희망이라는 절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희망이 싸졌다. 십여 년 전부터 공급이 넘치기 시작하더니 가격이 폭락했다. 백화점 명품코너에서 VIP 고객에게만 밀거래하듯 판 적도 있었는데, 이젠 동네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희망을 생산하던 지식 엘리트들의 담합이 깨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방송에 나와 떠드는 자칭 전문가에 의하면 원래 효과가 미미한 것이었는데 드디어 소비자들에게 그 정체가 들통났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우리처럼 평생 희망이란 걸 사본 적 없는 보통 사람들이야 값이 오르든 내리든 상관이 없지만, 나는 어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을 겪었다.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소평 씨가 선물이라고 준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에 상한 희망이 한 봉지 들어 있었다. 아마도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비행기로 오는 도중 탈이 난 듯했다. 준 이도 몰랐지 싶다. 속이 무르고 색깔이 변했는데, 우리나라 썩은 희망과 비슷해 보였다. 그냥 버려야 하나, 준 이를 생각해 잠시라도 보관해야 하나,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희망이 조금씩 조금씩 절망으로 변질돼 갔다. 세상 썩는 냄새가 고약했다.” -앞으로의 계획 이번 시집의 초점은 산문시였으니, 다음 시집은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할지 고민입니다. 잠시 쉬면서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뭔가 새로운 게 있을까,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하여튼 평균 5년 주기로 시집을 냈는데, 두 번 정도는 더 출판하는 게 남은 생의 목표입니다. 흠, 그리고 글 쓰는 것 외에 제가 하는 일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요, 작년에 전시회를 열었으니 2년쯤 지나 새 전시회를 열고 싶고, 그러자면 당분간 멈췄던 그림 그리기에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자책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것인데요, 이것도 일이 꽤 많습니다. 세상에 내 재능을 봉사로 돌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하는 일입니다.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날까진 계속해야겠지요. -독자들께 한 마디 삶과 미용과 문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감히, 이 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여러분도 그 숭고한 작업의 도반이라는 의미에서 깊은 애정을 느낍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4-21
  • 미학연구소 'La belle' 이재숙 소장
    지식과 살아 있는 현장 경험을 접목하다 미학연구소 “La belle” 이재숙 소장 이재숙 소장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이재숙 소장 미용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예술 창작의 한 분야 미용의 예술성은 삶의 질과 만족을 고양하는 것 오로지 미용을 위해 미용교수로서 미용전문가로서 미용계 두루두루를 경험하면서 제자들을 육성하고 미용계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면서 보낸 세월 그 성과는 이제 미용계 곳곳에서 빛을 발하네 후학들에게 멘토가 되고 미용인 모두의 귀감이 되네 정년 퇴직은 새로운 시작 미학연구소 ‘라 베르’ 미용인들의 꿈이 시작되는 곳 미용 현장의 변화를 완성하는 곳 라 베르의 성장이 미용계의 성장으로 귀결하듯 모두의 응원이 모여 뿌리 깊은 나무처럼 반석을 놓으리라 <2022 광주 미용 이야기> 전시회에서 첫 만남 “광주를 대표하는 미용명장들이 모여 우리 미용사에 큰 획을 그을만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광주 전일생활문화센터에서 지난 10월 7일 개막한 <2022 광주 미용 이야기>는 광주 멋쟁이를 탄생시킨 최초의 미용실과 오늘날 광주 미용을 이끌어온 협회 지역 미용인들의 활동 및 그들이 지역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을 각종 사료와 작품을 토대로 재현한 획기적인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주인공들은 김진숙(한울이미용실 원장, 대한민국 미용명장 1호)를 비롯, 정찬이(라인미용실 원장, 대한민국 미용명장), 이순(한국미용박물관 관장, 광주시 명장), 이숙자(중앙헤어스튜디오 원장, 광주시 명장), 이예순(천지미용실 원장, 광주동구미용협회장), 강수경(광주여자대학교 교무처장) 등이다.” 앞의 글은 기자가 지난 2022년 광주 전일빌딩에서 열린 <2022 광주 미용 이야기> 전시회를 다녀와서 잡지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 이 해, 10월 7일에 개막한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자는 이날 축사를 맡은 박준뷰티랩의 박준 회장과 함께 광주행 기차를 탔습니다. 행사 시작 전 도착한 박준 회장과 기자는 전 전남도청 건물을 구경하며 광주라는 도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전시회를 보며 박수와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그날 전시회는 폭을 확대해 미용계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행사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이 행사 때 이재숙 소장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날 행사의 감흥은 무척 컸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김진숙 명장과 몇몇이서 근처의 주점에서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예향의 고장답게 뒤풀이 주점은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흥을 나누기에 충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겸손하며 자기만의 소신 확실 이날 처음 소개받은 이재숙 소장은 그 당시 광주여자대학교에 재직하고 계신 교수였습니다. 작은 체구, 아름다운 모습, 교양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회장 직도 맡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재숙 소장은 딱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겸손하면서도 자기만의 학문적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이재숙 교수(당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몇 번의 행사에서 만날 수 있었고, 우리 잡지 2023년 월호에 <“미용은 궁극의 미를 완성하는 작업”-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이재숙 회장>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자기 소개를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교육자의 길을 가든, 어떠한 길을 선택하여 살아가든 누구나 존재와 삶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향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의미를 깨닫게 되다 보면 저절로 여유롭고 자유로워집니다. 제자를 양성하는 학자로서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또 하나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인식에서부터 자기반성과 각성은 시작되기에, 부족함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학자의 태도일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끝없이 日新又日新하며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고 있는 교육자입니다.”라고 대답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졌으되 학자로서 자기 인식이 분명하였으며 자기 계발에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미학연구소 “라 베르(La belle)”운영 현재 이재숙 소장은 올 2월 28일부로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라 베르(La belle)”라는 미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용학과에서 쌓은 지식과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소를 통해 새로운 이론과 기법을 연구하며, 현장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미용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또한, 후학들에게 미용의 깊이와 진정성을 전달하고, 미용인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미용이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계획입니다.” 한 마디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용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계획은 우리 미용계의 앞날을 생각할 때 무한한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식과 산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 베르의 성장이 우리 미용계의 무한 성장과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우리 미용계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교수들이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또는 은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노하우를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미용계 발전을 위해 접목해야 하느냐가 미용계 현안 중 하나라고 기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접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재숙 소장과 같이 앞선 생각으로 정년 이후에도 미용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용교수로서 미용인으로서 화려한 이력 이재숙 소장의 활동 이력은 화려합니다. 2008년 2008년 광주여자대학교 미용과학부 교수로 임명된 후 학과장, 대학원 주임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미용학회 이사,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편집위원장,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20여 권의 저서와 논문 80여 편을 발표하여 학계와 학회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또한 배출한 제자들인 미용고 교사, 대학 전임교수, 현장 전문가들과 함께 미학을 생활화하기 위한 미용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미용 발전을 위해 노력도 해 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국가자격증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기술 자격검정 시험문제 출제 및 검토위원(미용사, 이용사), 이·미용기능장 국가기술자격검정 실기시험 감독 및 채점위원(미용장, 이용장),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우수숙련인, 명장 선정 서류 및 실사 심사위원, 한국중등교원 임용고시 미용 문제출제, 채점위원 및 기획위원, 이·미용관련 기관 평가 등 다양한 심사, 출제, 평가를 맡으며 전문성을 인정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년 이후에도 미용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이재숙 소장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재숙 소장의 앞으로의 발걸음이 우리 미용계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고 기자는 단언합니다. 이재숙 소장 프로필 -現)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現) 중등학교 정교사 2급-現)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 1급-前)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회장 -現)미학연구소 "La belle" (라베르) 소장 -前)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편집위원장 -前) 한국중등교원 임용고시 미용 문제출제 및 채점위원, 기획위원-前) 전북중등교원임용고시 미용 문제출제 및 채점위원 -前) 대한민국 명장 선정 서류심사 및 현장실사 전문위원 -前)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선정 심사위원 -前)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前) 기능장 실기시험 감독위원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前) 인권교육원 법정이사-前) 미용과학회 회장-前) 미용교수협의회 부회장
    • 문화
    • 인터뷰
    2025-03-20
  • 엠로이컴퍼니 김경호 대표
    Interview(김경호 대표) “많은 미용인들께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엠로이컴퍼니 김경호 대표(로이대표원장) 김경호 대표 -자기소개 저는 엠로이컴퍼니 김경호 대표이자 미용인들을 위한 성장멘토 로이대표원장입니다. 20년 이상을 미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으며 최근 10년 간 미용 경영인으로도 교육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엠로이컴퍼니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파트너 살롱들과의 제휴를 통해 살롱과 미용인들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또한 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새롭게 성장할 새내기 미용인들을 양성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엠로이컴퍼니는 어떤 회사인가요? 제가 처음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기술인으로서의 미용인이 아니라 경영인으로서의 미용인으로 새로 접하게 되는 문제들, 어려움, 해결 방안들을 모색해가면서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미용 경영인들이 같은 문제점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경영상의 부분뿐 아니라 개개인 미용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교육 및 체계적인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용인의 성장을 돕고 개인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 체계적인 시스템, 성장하는 미용 경영을 위한 시스템으로 제 자신이 성장함과 동시에 다른 분들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여서 엠로이컴퍼니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엠로이컴퍼니는 미용실 운영 컨설팅 자문 및 위탁경영, 마케팅 자문 및 대행, 파트너와 디자이너들 교육 시스템, 개인별 매장별 성장 포트폴리오 등을 제휴업체인 파트너 살롱과 기타 위탁계약 살롱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파트너 살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엠로이컴퍼니와 업무 제휴를 통해 살롱의 성장과 구성원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있는 곳이 저희 파트너 살롱입니다. 경영 컨설팅, 위탁 업무 등을 통해 매장의 성장과 매출 향상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받고 있으며, 교육과 포트폴리오 상담 등을 통해 매장 구성원들의 성장과 관리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미용실 특화 마케팅을 위탁하여 매장에 맞는 마케팅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파트너 살롱으로는 보그헤어 신도림역점, 박승철헤어스투디오 신도림홈플러스점, 보그헤어 목동점, 이가자헤어비스 신도림점, 이가자헤어비스 NC백화점구로점, 프리미엄 이가자 일산차병원점, 이가자헤어비스 신촌이마트점, 이가자헤어비스 숙대입구역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또 새로운 파트너 살롱들과 함께 그들의 성장과 꿈의 실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싶습니다. -미용실 운영의 차별화은? 저는 살롱의 성장은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원 개인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살롱은 저절로 성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어 가게 되면 구성원도, 살롱도 함께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용인으로서의 시작점에서부터 디자이너 나아가서는 미용실 경영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비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경력 없는 파트너에서부터, 신입 디자이너, 경력 디자이너로 기술과 고객을 위한 길을 밟아나가는 과정은 물론, 미용실 운영을 위한 리더쉽 과정,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자 과정 등을 거쳐 진정한 리더쉽을 가진 경영인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그 모든 스텝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평소 철학 철학이라고 할만큼 거창한 생각은 아니지만 저는 평소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 개인의 성장과 성공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큰 꿈을 가지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으며, 부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저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관해서, 사회적 인정에 관해서 저는 소위 말하는 ‘인정받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일’은 나의 성장을 위한 것이며, 일을 진지하게 하는 것은 ‘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나의 일을 해내는 실력을 키워 성과를 내는 것이 진정으로 나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일이며, 자신을 대체 불가한 실력자로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역량을 갖춘 진정한 실력자가 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피드백해가며 역량을 키우고, 그 역량을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방법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목표를 세우고 정해진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노력한다면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던 일 저는 저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힘든 과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꿈을 위해 한 단계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저희 파트너 살롱에는 오랜 기간 함께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경력 없는 파트너 생활부터 시작하여 디자이너가 되어 고객님들과 즐겁게 얘기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또 매장 운영이라는 꿈을 위해 매장 경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교육에 참여하고, 매장 운영을 위한 고민과 연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대학에서 수업을 받았던 제자가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저는 저와 함께 하는 이들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그 과정 하나하나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와줄 수 있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향후 계획 미용 기술인으로서의 삶도 무척 보람차고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기술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새로운 미용 트렌드에 큰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고객님과 함께 하는 시간도 즐겁습니다. 고객님을 편안하게, 아름답게 해드리는 일은 무척 즐거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많은 미용인들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경영과 관리에 고민이 많은 분들께는 솔루션을 드리고 싶고, 성장을 위한 미용인을 위한 교육 시스템과 지원 시스템을 더 확대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는 저희 파트너 살롱뿐 아니라 더 많은 살롱과 미용인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파트너 살롱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타 더 하고 싶으신 말씀 저는 저 자신도 아직 성장과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움과 성장에는 끝이 없고 그 과정을 거듭해 가다보면 저의 성과도 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인으로서 즐거운 점 중 하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과 서로 응원하고 협력하며 즐거운 일의 과정을, 만족스러운 삶을,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미용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2-25
  • 박사학위 취득한 이정옥 박사
    Interview(이정옥 박사) “많은 사람들께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습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받은 이정옥 박사 이정옥 박사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양천구 목동에서 ‘뷰티마레 샾’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옥입니다. 어느 날, 한 지인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여 콘서트를 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아 저 역시 회갑이 되었을 때 어떤 특별한 의미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지만 마음에 와닿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경기대에서 오서진 교수님을 만나뵙게 되었고, 교수님께서는 대학원 진학을 제안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제 나이에 학업이라니 망설여졌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와 인연이 닿아 윤천성 교수님을 만나뵙게 되었고, 교수님께서는 "성실하게만 임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는데... 학업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있었지만,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 덕분에 7년이라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제 마음은 마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환한 빛을 마주한 것처럼 벅차오릅니다. -박사힉위 내용을 간단하게... 박사학위 <한국형아유르베다 심리유형에 따른 뷰티지향행동과 만족도 관계에서 심리적 안녕감과 신체적 자기효능감의 매개효과 연구 결과>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20대부터 70세 이후 남녀 4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실시한 주요 연구 결과는 뷰티지향행동이 단순한 외적 관리를 넘어서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개인의 심리적 안녕감과 신체적 자기효능감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며, 이를 통해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선순환 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뷰티케어가 현대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 간직하고 계신 철학 저의 삶의 모토는 매일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내면의 만족과 평화를 찾는 여정이라고 할까,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이는 작은 친절과 따뜻한 미소로 시작하여, 제가 받은 축복을 나누며, 주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을 즐기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많은 미용인들과 소통하며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2-25
  • 박소야 경남 전 회장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예술인의 자부심으로 옳음을 실천하며 사는 삶 박소야 경남 전 지회장 박소야 전 회장 미용예술을 완성하는 그날까지 -박소야 전 회장 미용인이 예술인임을 모르는 자 누구랴 단아한 모습 맑은 심성으로 타인을 아름답게 가꾸며 헤어아트 분야를 개척하고 전시회 개인전 통해 머리카락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미용인 섬섬옥수 황새 나는 듯한 솜씨 유명세 삼아 나만의 오롯한 미용실을 만들었네 이제 꿈은 미용예술을 완성하는 공간 전원 미용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정직하게 살아왔으니 그 꿈 이루어져 미용인의 귀감이 되려니 노력으로 이루어질지니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헤어아트 황금공예 찬란하게 빛날 그날 여명처럼 다가올지니 지켜주고 싶은 미용인 기자는 개인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삶을 즐기며 사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끊이지 않는 사람, 라일락 향과 대밭의 수런거림을 알며 살 것 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목소리는 차분함과 함께 고향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는 음색이라면 금상첨화겠지요. 적지 않은 세월 미용계에서 머물다 보니 이와 같은 분을 더러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품성과 태도를 지닌 미용인 몇 분이 일부 미용계의 부조리와 타협하지 못하고 미용계와 멀어질 때 그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미용인을 더욱 지켜주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습니다. 소녀 같은 심성을 지닌 박소야 전 회장을 기자가 처음 만나 때는 2003년입니다. 뷰티라이프 영업부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안산에서 미용재료상을 하던 후배의 요청으로 송부자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일본 오사카로 해외 연수를 갔습니다. 스트록 커트의 창시자인 유타이 준메이 선생의 특강을 듣고 미용실도 방문하는 등 유익한 연수였습니다. 미용의자로 유명한 다카라 벨몬트 사 본사와 전시장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용인 30 여분이 같이 갔습니다. 그 중 박소야 원장은 기품 있고 품위 있어서 농담을 핑계 삼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귀국하고 나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교류를 했습니다. 작품도 게재했었습니다. 그 후 박소야 원장은 승승장구하여 진주시 지부장과 경남도 지회장을 역임하는 등 미용계의 지도자로 성장하였습니다. 대학에서 미용교수로 할동하며 후학 지도에도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용장 취득은 물론 신지식으로 선정되는 등 미용인의 사회적 위상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실력과 품위, 마음 자세까지 미용인 지도자로서 손색없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기자는 단언합니다. 헤어아트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미용인은 예술가라는 인식을 사회에 심어놓기도 했습니다. <헤어아트 길잡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으니 그 공이 지대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용계의 지도자로 성장 “제가 처음 미용을 시작한, 언니가 하는 미용실은 시골 읍내에 있었지요. 미용실 한가운데의 연탄난로에는 연통이 기다랗게 창밖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추운 겨울 연통을 안고 추위를 녹이다 빨간 조끼가 연탄난로에 닿아 눌러붙기도 했어요. 그 연통 밑에 빨랫줄을 걸어 수건을 말리기로 했지요. 그리고 참 제가 처음 미용을 할 때 한일 짤순이가 처음 나왔으며, 수건은 무조건 핑크빛 밝은 수건에 손빨래를 했어요. 짤순이에 짜서 널어 말리면 어찌나 빨리 마르던지 좋아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저는 마샬 아이롱의 마지막 세대이며 드라이기의 첫 세대라고 할까요. 처음 마샬 아이롱을 연탄불에서 버너에 옮겨 데워서 손님 머리를 하다 태워 먹기도 하고 제 손을 데기도 하면서 시작했는데 드라이기가 나오면서 편리해졌던 것 같습니다. 미용인으로 어언 40년, 뒤돌아보면 미용쟁이, 미용실 원장님을 ‘마담’이라는 칭호로 낮추어 말하던 옛날이 그 시절이 있었네요. 정식 대학이 생기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바라보는 미용사의 퀄리티를 올리는 데는 많은 미용 선배님들의 노고가 있었으며 그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뜻있는 만남 그리고 미용을 위한 길 옛일을 회상하는 박소야 전 회장의 모습에는 미용계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박소야 전 회장은 일본 해외 연수 후 송부자 선생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업스타일과 아이롱 물결웨이브를 연출하는 송부자 선생님은 저의 우상이 되었으며, 우리 마용계의 발전을 위해서 저에게 큰 목표를 안겨 주셨습니다. 며칠 전에도 긴 안부 통화를 나누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 당시 말씀하신, 선생님이 피난살이 시절 대구에서 중학교를 나오시고 미용에 첫 입문하던 때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 청소하며 원장님께 칭찬받고 기술 하나라로 더 배울 욕심에 노력하셨다는 말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뜻있는 만남은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물론 그 귀중한 만남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 박소야 원장의 마음자세가 오늘날의 박소야 전 회장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에게는 복과 돈이 저절로 들어온다는 믿음을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진주시 하대동, 핫대동이라는 곳에서 유일하게 불경기와 상관없이 오롯이 미용생활만으로 4층짜리 빌딩을 소유하고 1층에 ‘박소야 헤어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의 목표는 정원이 잘 가꾸어진 전원 미용실을 운영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의 미용실 고객 80%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고객님들입니다. 그리고 그 고객분들 모두가 ‘박소야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씀에 어디에 가도 살아남을 자신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2009년 마산대학교 겸임교수를 시작으로 지금은 진주보건대 겸임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제자를 지도하며 저의 욕심과 필요에서보다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저는 쉼 없이 교육받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용 지도자는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박소야 전 회장의 노력과 마음자세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미용 지도자는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박소야 전 회장은 앞에서도 말했듯 ‘헤어아트’ 분야를 개척하며 미용인은 예술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바쁩니다. “지난해, 저는 헤어아트로 단체 전시회 2회. 개인전 1회 등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그때 멀리서 소문을 듣고 고객 한 분이 ‘아내가 병환으로 하늘의 별이 되어 남은 머리카락을 예술로 승화시켜 영구 보관하고 싶다.’고 찾아오셨습니다. 수차례의 탈색과 클리닉을 반복하고 컬러를 입혀, 고인이 살아생전 핑크빛 장미를 좋아하셨다는 부탁 말씀을 상기하여 장장 3개월, 100여 일의 시간을 들여 작은 장미꽃 화병을 완성해서 드렸습니다. 의뢰인이 기대 이상으로 감사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미용인으로서, 머리카락 예술인으로서 너무 보람있었습니다.” 미용인의 위상은 스스로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노력과 실력이 결합되어 타인에게 감동을 선사할 때 시나브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박소야 전 회장은 이런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지난해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소나무 아트를 시작으로 철사공예와 머리카락 황금공예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 경남의 미용인들과 함께 매진하고 있으며, 올해 60의 나이로 오랫동안 70, 80이 되어도 미용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침마다 남강둔치 자전거 하이킹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박소야 전 회장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짐과 함께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됩니다. 소녀 같은 맑은 심성을 가진 박소야 전 회장이 우리 미용계를 위해 우뚝 설 날을 기대합니다. 박소야 전 회장 프로필 -박소야헤어 아카데미 원장 -대구대학 디자인대학원 석사 -전)마산대학 뷰케어학과 겸임교수 -현)진주보건대 뷰티과 겸임교수 -국가기술자격 미용기능장 -중소기업부 장관 백년가게 선정 -2024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2024 신지식인 인증 -저서 헤어아트길잡이 -전)대한미용사회 진주시 지부장 -전)대한미용사회 경상남도 지회장 -전)대한미용사회 중앙회반영구 위원장 -한국미용장협회 논문학술위원 -보건복지부장관상 표창
    • 문화
    • 인터뷰
    2025-02-24
  • 김종미 원장
    미용인보(美容人譜)69(김종미)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삶 김종미 원장 김종미 원장 삶을 예술로 바꾸다 -김종미 원장 미용인은 헤어아티스트 예술가라네 미래의 직업에도 AI가 대신할 수 없는 유망직종이라네 사람들을 아름답게 한다네 여기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장애인센터를 찾아 미용 봉사하고 미용실을 찾는 고객들에게는 해맑게 웃고 있는 유화 작품들로 행복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으니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고 무엇이랴 미용은 사랑이라네 머리를 하고 봉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아름다운 미소를 전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네 그녀는 헤어아티스트 사랑을 실천하는 예술가라네 미용인은 헤어아티스트다 미용인들은 스스로를 헤어아티스트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서 마음까지 행복하게 하니 그 어떤 예술가보다도 예술가답다고 말합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내, 외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미용인들은 진정 아티스트임이 분명합니다. 아티스트들은 많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습득도 중요하지만 사회나 역사, 문화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야 함은 당연합니다. 미용인들이 특히 헤어아티스트로서 대접받기 위해서는 미용 기술 외에 시대를 꿰뚫어보고 문화를 이끌어가는 흐름을 읽고 따라가야 합니다. 기자는 미용인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이 날 때, 영화, 연극을 보거나 미술관 탐방, 박물관 구경하기를 권합니다. 세상을 책으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소 보거나 체험하는 것이 몇 배의 효과가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뷰티라이프사랑모임’ 식구들에게는 이 점을 강조합니다. 뷰사모 정모 때, 종전에 하던 기술 세미나를 지양하고 미술품 감상을 한다거나 뮤지컬 관람, 지역 문화 탐방을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 개최와 개인적인 의견은 개개인의 뜻과 맞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술의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김종미 원장 기자는 영화관이나 미술관, 연극무대를 자주 찾는 편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찾곤 하는데 미술관에서 자주 만나는 미용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김종미 원장입니다. 이러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사람은 더 반가워지고 친숙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동질감으로까지 이어져 무한한 신뢰를 하게 됩니다. 이런한 만남은 김종미 원장을 기자가 남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김종미 원장의 미용실은 예술의 전당과 가까운 서울남부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습니다. 기자는 예술의 전당을 종종 찾는 편인데,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김종미 원장의 미용실을 먼저 방문합니다. 많은 유화 작품들로 채워진 김종미 원장의 미용실은 그야말로 미술관에 다름 아닙니다. 더구나 그 유화들이 김종미 원장이 직접 그린 작품이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화 수준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김종미 원장의 미용실에서 그녀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유화를 구경하는 재미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행복입니다. 기자가 예술의 전당을 더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에 밴 미용 봉사 활동 김종미 원장은 평소 미용 봉사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복지관에서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요리봉사를 하다가, 소년소녀들의 머리가 깔끔하면 남들이 볼 때 부모 없는 아이들인 줄 모를 것 같아 대충 배워서 해주는 것보다 이왕이면 확실히 배워서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미용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그때 제 맘속으로 내 몸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꾸준히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과의 약속이었기에 그때부터 현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미용을 시작한 이유가 남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니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발을 오래 하신 아버지의 영향이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타고난 유전자의 힘과 더불어 봉사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합쳐져서 오늘날의 김종미 원장을 만들었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김종미 원장은 미용 봉사할 때와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봉사 활동이 그의 태생적, 원초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어졌다면, 그림 그리기는 그녀의 후천적 노력에서 비롯되어졌습니다. 김종미 원장 미용실의 대부분의 고객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통통 튀는 성격의 그녀답게 유화 그림들도 그녀를 닮아서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젊은 고객들이 많아서 연예 상담도 해주고, 그런 고객들이 유화 작품을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낄 때, 김종미 원장 또한 무한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행복은 주고받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그럴 때 더 느끼며 미용인으로서의 자부심도 한층 고조되는 것입니다. 미용은 사랑이다 “미용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든 아름답게 해줄 수 있고, 수 많은 직업들 중 건강이 허락하는 한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는 매력이 미용이라는 직업에는 있습니다. 내 자신도 꾸밀 수 있어 미용인들은 나이보다 늙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미용인임이 진정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고객들에게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미용 봉사 활동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아 실현을 하고 있는 김종미 원장은 행복한 미용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용 봉사활동을 30년 동안 하다 보니 가평 꽃동네부터 독거노인, 치매센터, 장애인센터, 다문화가정, 보육원, 병원 등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늘 꾸준히 하다 보니까 이젠 그냥 안 해서는 안 될 일상 생활이 되었습니다.” 김종미 원장의 말에서 사랑은 실천이라는 말이 새삼 각인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미용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미용을 사랑하는 선, 후배 분들께 제일 먼저 건강부터 챙기시고,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나중에 후회 안 되게 무조건 도전해서 보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건강이 최고의 미덕입니다. 건강하신 후에 배움과 도전을 하신다면 꼭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예요.” 김종미 원장은 건강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건강이 육체적인 건강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육체적인 건강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정신적이 건강이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내적, 외적인 아름다움을 고객들께 선사하고 있는 미용인들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본업인 미용 일도 열심히 하고, 취미 생활인 유화 작품도 꾸준히 공부하면서 출품도 계속할 것이며, 작품집도 출간하고, 개인전시도 계획 중인 김종미 원장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포부가 머지않아 꼭 이루어질 것이라 기자는 굳게 믿습니다. 이웃을 위하는 선천적인 마음으로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종미 원장이기에 기자의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종미 원장 프로필 *현재 리베떼헤어 운영 *현재 대한미용사회 서초구협회 감사 *대한민국 문화예술제 서양화 입선, 특선 *충무공숭모예술대전 서양화 입선, 특선 *방과후 미용교육 강사 1급 *캘리그라피 지도자 1급 *미술심리 상담사 1급 *퍼스널컬러 컨설턴트 1급
    • 문화
    • 인터뷰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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