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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10-27
  •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 문화
    • 인터뷰
    2025-10-27
  •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 문화
    • 인터뷰
    2025-10-27
  •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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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5-10-27
  • 이영숙 대표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 문화
    • 인터뷰
    2025-09-28
  •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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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김진숙 교수
    미용인보(美容人譜)63 미용 교육자로서의 삶을 개척하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김진숙 교수 김진숙 교수 미용의 참 교육자 -김진숙 교수 미용 시작 후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했네 생각하면 흐뭇했던 일 즐거웠던 일 마음 아팠던 일 어찌 없었으리오 내 할 일은 제자들의 성장을 돕는 일 제자들이 삶의 질 추구와 자기 성취를 이룰 때 나는 예술가가 된다네 가위 대신 분필로써 사람을 새롭게 탄생시킨다네 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미용인의 뒤를 돌봐주며 그들의 앞길을 밝혀야겠네 하나의 등불이 되어야겠네 어와둥둥 미용의 숲 이뤄야겠네 미소만으로도 반가운 사람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김진숙 교수는 미용계의 신사라고 기자는 말하고 싶습니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행사, 예컨대 신년회라든지 학술발표회, 졸업식, 입학식 등 1년에 많지 않은 횟수지만 만날 때마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러나 예의 그 반가운 마음을 전하는 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기자도 그런 김진숙 교수의 품성을 잘 알고 있어서 멀지 않은 발치에서 보내는 미소만으로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가깝게 지낸다고 염두에 두고 있었던 김진숙 교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만나서 웃고 떠든(?)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작년 11월, 김진숙 교수가 한국뷰티산업학회에서 주최하는 <뷰티산업교육대상>의 수상자로 정해졌을 때,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뷰티산업대상>은 ‘뷰티산업교육대상’과 ‘’뷰티산업경영대상’ 등 두 부문으로 나뉘어 매년 시상하는데,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2024년 수상자로 김진숙 교수가 교육대상을 받았고, 기자는 시상 후 김진숙 교수의 인터뷰를 했던 것입니다. 2024년 <뷰티산업교육대상> 수상 수상 후 인터뷰했던 기록을 찾아보니 김진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상보다 이번 뷰티산업교육대상은 제게 특별히 의미 있는 상이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참 어렵고 두려운 일을 시작한지 27년이 되었습니다. 그중의 반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수상을 하게 된 성과는 저의 힘이 아니고 저의 스승님의 지도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뜻에서 학생들을 위해 참 교육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국뷰티산업학회에서 수여하는 뷰티산업교육대상은 공적심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상으로 저 자신에게는 지금까지의 저를 평가받는 척도였고, 제자들에게는 ‘교수로서의 역할과 소명을 다하였는가.’라는 나름대로의 평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함께 동문수학한 동기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석․박사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진숙 교수는 패션 디자인과 헤어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가지다가 헤어 디자인에 좀 더 매력을 느끼고 미적 감각을 적용하여 손쉽게 외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용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헤어디자이너로서 활동하게 되면 학문적으로 미용교육을 전문 직업인으로 하거나, 해외 진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간접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하마터면 훌륭한 인재를 패션 쪽으로 뺏길 뻔했습니다. 김진숙 교수는 천상 교수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식을 줄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교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습니다. 애정과 존경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올 때 진심이 됩니다. “미용학계에 재직하고 있으면서 흐뭇했던 일들은 당연히 제자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석․박사 논문을 완성하고 학위를 받고 뿌듯해하는 제자의 모습에서 저도 성취감과 희열을 함께 느낍니다. 저 또한 연구자로서, 미용인으로서, 교수로서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선정과 신진연구사업선정은 매우 기쁜 일이었습니다. 저의 지도교수님께서‘허허’웃으시면서“교수 안 됐으면 어쩔 뻔 했어요?”하시던 말씀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도교수님께 인정받은 느낌이었지요.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미용전공자로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성장이었으므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천상 미용교수 김진숙 교수는 정년을 앞두고 그동안 미용인으로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 왔는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지나온 길을 되새기고 살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많은 학생들과 함께 했지만 개개인의 학생들이 자기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앞으로 남은 기간 겸허한 자세로 마무리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마음을 열어 놓는 진지한 인생 동행자로서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참 교육자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던 교수였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김진숙 교수의 품성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인 된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미용교수로서 우리의 선진미용을 위한 제언과 미용인들에 대한 말씀도 잊지 않습니다. “미용산업에는 미용예술이 포함되어야 하고, 한국의 미용예술에는 전통적인 우리의 미용문화가 깃들여 있어야 합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우리의 고유한 미용문화는 세계 각국과 비교하여 보아도 탁월했다고 판단됩니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미용 디자인과 미용 기술, 미용 용품 등 고유한 우리 미용 문화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K-미용’브랜드를 창출하여 해외에 전파 보급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K-미용’특유의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절실합니다. 미용인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미용인 스스로 지키고 개척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법률가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사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미용인은 미용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각각 사회에 제공하는 서비스의 형태가 다르고 개별적이고 구체화된 기능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효용에 기여하는 역할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용인 스스로 자신이 가진 직업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용인이 주 업무인 미용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향상시키고자 미용시술 용어의 당위성을 국내 최초로 피력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풍요로워짐에 기여 그렇습니다. 김진숙 교수의 이러한 노력으로 이제는 미용학계와 법원의 판례에서도 미용시술 용어를 보편적 개념으로 인용하고 있으며, 미용인 스스로도 특정한 자격과 기술을 지닌 전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마음을 비워 자기를 지키고 싶다는 김진숙 교수, 이것을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는 김진숙 교수, 그동안 쌓아올린 미용지식을 바탕으로 미용업계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김진숙 교수, 감사한 마음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김진숙 교수가 우리 미용계에 있기에 우리의 삶도 풍성해지리라는 생각을 기자는 해봅니다. 김진숙 교수 프로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한국뷰티산업학회 부회장 -서울벤처뷰티산업 박사클럽(SBDC) 1기 회장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학술위원장 -한국미용학회 이사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선정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사업선정 -제15회 대한민국 자치대상 교육부문 대상수상
    • 문화
    • 인터뷰
    2024-07-02
  • 대전 중구지회 박종래 회장
    박종래 회장 -자기소개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한미용사회 대전 중구지회장 박종래입니다. 저는 2016년 초선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9년 동안 중구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24년의 미용경력을 가지고 있고 미용기능장, 향장미용학석사, 대한미용사회 기술강사 등의 자격을 갖추었고, 전)대한미용사회중앙회 이사, 전)대한미용사회 기술운영위원, 전)대한미용사회 대전광역시협의회장, 전)대덕대학교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대전 중구지회의 자랑 1965년 사단법인 대한미용사회 충남지부로 발족한 모태가 1985년 대전광역시협의회 중구지회로 설립되었습니다. 지금까지 5명의 고문님이 계셨고, 제가 10대 지회장이 되어 지금 12대 집행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대전 중구미용협회는 대전의 보물산 보문산 자락 밑에 한화이글스 경기를 치르는 이글스파크를 마주보고 자리하고 있습니다. 530명의 회원과 그 회원을 대표한 15명의 임원진과 직원이 열심히 일하면서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 드리고 있습니다. 매월 세 개의 팀을 이루어 요양병원 봉사로 200명의 환자들의 미용을 담당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 하는 장수봉사 사진 미용봉사와 매년 대전중구의 축제 뿌리축제에 참여하여 우리 미용협회를 알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전 중구지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고 계시는지? 저는 2016년 초선으로 당선되었을 당시 제 슬로건은 “회원이 주인인 협회”,“머슴 같은 지회장”화려하지는 않지만 뚝배기 같은 장맛을 내는 지회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9년째 일하고 있는 지금도 항상 솔선수범의 자세로 우리 회원님들의 울타리 같은 회장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용강사로서 인기가 많은 이유 ㅎㅎㅎ!!!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강의를 시작한 것은 벌써 15년 전이었습니다. 학원에서 자격증반을 교육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면서 미용인들을 대상으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잘난 척하는 강사가 아니라 이해가 쏙 가게 설명하는 세분화한 과목의 강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2017년 염색의 전문가이신 스마트칼라링의 박태영 강사님 수업을 들으면서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천천히 차분하게 우리 눈높이에 맞는 정확한 설명과 실습!!! 저런 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계기로 박태영 강사님의 1호 제자로 졸라서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쉽게 설명하려고 했던 부분이나 미용실에서 직접 제 경험담을 접목하게 되고 해마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처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소 미용철학 오늘 하루를 잘 살자!!!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내 인생이 된다. 그래서 오늘 하루 내 옆에 있는 사람, 상황에 최선을 다 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미용인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기술은 연습만이 살길이다!!! 저는 최고의 직업인만큼 기술 없이는 퇴보과정이 반드시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AI는 우리 미용계를 침범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머지않아 그 시대는 올 것입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연습한 기술은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기술이야말로 우리를 최고의 미용인으로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매월 요양병원에서 봉사를 하면 중환자실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와상에서 커트해 드립니다. 환자분은 의식이 없는 분도 계시지만 열심히 커트해 드립니다. 다음 달 다시 중환자실에 갔을 때 그 병상에 다른 분이 계시면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울컥 찡한 마음이 들지만 내가 해 드린 예쁜 머리로 좋은 곳으로 가셨겠지 하는 마음에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의 계획 우리 협회는 시청과 구청 교육, 그리고 기술분과 집중교육을 통해 회원님들의 기술역량강화에 힘써서 그 기술들이 매출로 이어져서 사업장에 부흥을 가져오길 바랍니다. 단기적으로는 교육을 강화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그 결과물이 중구 미용발전에 큰 주춧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타 하시고 싶으신 말씀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저 또한 제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20년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해 줄까? 라고 한다면 저는 NO! 살아왔던 그 시간만큼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없습니다. 열심히 살아 온 지금의 제가 좋습니다. 얼마 전 제가 존경하는 대한민국 미용명장1호 김진숙 명장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자! 제가 생각하는 오늘 하루를 잘 살자는 철학과 맞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매일매일 만나는 새로운 인연에게 잘하며 살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4-05-23
  • 포항 남구지부 오성우 지부장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포항시 “미용명장” 1호로 선정된 오성우입니다. 현재 “The bella”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학 강의, 전국 순회 강의를 통해 기술 전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가자헤어비스에서 10년 간 강의를 했던 경험과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로 오랜 기간 강의를 해왔던 경험으로 최근에는 “오성우 hair cut” 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운영 중입니다. -포항 남구지부의 자랑 포항 남구지부는 미용인 후배들을 위해 진심어린 조언과 아낌없는 지원으로 새로운 인재 개발에 최선을 다하는 지부입니다. 포항 남구지부 1대 김옥숙 고문님을 시작으로 저를 미용협회에 몸을 담고 기술강사로 만들어주신 6대 김정순 고문님, 7대 류숙희 고문님, 8대 김미애 고문님 그리고 제가 포항 남구지부장이 되도록 힘써주신 9대 정경희 고문님, 회원 한 분 한 분께 진심을 다하는 박영옥 사무국장님을 비롯하여 지부장인 저를 도와 협회 중대사에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김순덕, 정라온 부회장님을 주축으로 임원 여러분들의 선, 후배 아끼는 마음으로 가득한 지부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선, 후배 아끼는 마음과 더불어 임원 모두가 회원들을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는 봉사를 위해 언제든지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커트를 잘하는 미용실로 유명하던데... 미용을 하면서 헤어커트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고, 20년 이상 헤어커트 강의를 해오다보니 헤어커트 잘하는 미용실로 인식이 되어 있고, 고객분들 100% 가까이가 알아서 얼굴형에 맞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만큼 헤어커트에 자신이 있고 헤어커트에 진심으로 철학이 있습니다. 최근에 “오성우 hair cut”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들을 보고 경기도, 전라도, 인천, 강원도 등 먼 거리에서 헤어커트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한분한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용실은 1층 “바이더벨라” 2층 “더벨라” 1, 2호점으로 운영 중이며 포항에 미용분야 “명장” 4명이 선정된 가운데 3호로 선정된 제 아내 은현주 명장님께서 “바이더벨라” 대표로 있으며 지역 최고의 미용명장 두 명이 함께 운영하는 미용실이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미용인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 20년 넘게 오프라인 강의를 해오다 보니 가는 지역마다 알아보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특히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가 되면서 전국 미용협회 위생교육 강사로 활동했던 부분이 전국에 계신 미용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사랑을 받았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온라인과 친밀하지 못한 중장년층 미용인들에게 좀 더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미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또한 전달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평소 미용철학 “오픈 마인드”-마음을 항상 열어두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으며 경력이 오래되지 않고 숙련도가 떨어지는 미용인이라도 항상 배울 게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늙어는 가되 낡지는 말자.”라는 말처럼 몸도 마음도, 미용기술도 낡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움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미용인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 인구감소로 인해 미용을 배우는 미용인이 적어 인력난에 힘들어하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미용기술과 더불어 기술 외의 것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이 갖춰진 경력자들이 마케팅 경쟁에 밀려나고 있고 기술 없이 마케팅만으로 살아남으려고 하고... 앞으로는 더 많은 무한경쟁 속에 살아 갈 것인데 현재 우리의 미용기술이 앞서간 선배들의 손끝과 손끝에서 이어져 왔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후배들에 대한 바램과 기술 외의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시대에 맞는 미용문화를 받아들여 어느 한쪽도 치우치는 않는 미용 선,후배간의 아름다운 동반성장을 부탁드립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아무래도 미용을 하면서 교육자로서의 길을 오래 걸었기 때문에 대학 강단에서 지도했던 제자들이 미용현장에 입문하고 디자이너가 되어서 교수님 생각나서 찾아오거나 선물을 받았던 일들, 소상공인 강의를 통해 교육받았던 원장님들께서 매출증진에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올 때가 가장 즐겁고 흐뭇했으며 미용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최고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장, 단기 계획 유튜브 채널 “오성우 hair cut”을 통해서 그동안 오프라인 강의로만 해오던 부분을 많은 미용인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꾸준히 다양한 작품들을 업로드 할 계획이니까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 된 인연은 전국미용협회를 통해서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포항남구 지부장으로 남은 임기 동안 회원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봉사할 것이며 끝으로 저를 이 자리까지 만들어주신 제 스승이자 미용 어머니 윤분례 원장님, 성수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성우 지부장 프로필 •포항시 “미용명장“ 1호 선정 •대구대학교 미용학석사 •대구 계명문화대학교 헤어디자인과 겸임교수 •영국(런던) saco아카데미 advance 과정수료 •호주(시드니) Toni & guy 아카데데미 advance 과정수료 •2004~2014 이가자헤어비스 점장/교육디렉터(director) •2012 KBBF 미용대회 그랑프리(종합1위) •2021 한국미용페스티벌 “헤어아트 금상” •2022 한국미용장 트렌드 공모전 “트렌드컷 금상” •2021 네이버 지식인 “expert” 선정 •2023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現 소상공인 기술강사/컨설턴트 •現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現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 기술강사 •現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위원회 감사 •現 미용 기능장 •現 사)대한미용사회 포항 남구지부 지부장
    • 문화
    • 인터뷰
    2024-05-23
  • 책 '엄마를 팝니다'출간 조서정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06년에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한 조서정입니다. 어려서 아버지가 저녁마다 편지 답장 대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당시 시골에는 글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타지에서 나간 자식들한테 온 편지에 답장을 쓰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었습니다. 유년기부터 자연스럽게 글공부를 시작해서 시인이 되었고, 그 이후로도 사보기자, 신문기자, 방송 작가, 정부 부서 각종 홍보 책자 등을 만들면서 글을 팔아 밥을 벌어먹는 글쟁이입니다. 시집으로 <모서리를 접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를 냈습니다. -<엄마를 팝니다>를 소개하면? 20호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엄마를 위해서 두 분이 만나게 된 사연부터 혼인 3일 전에 약혼 선물 사러 다녀오는 길에 산 고개에서 치른 첫날밤, 애 못 낳는다고 구박받다가 백마강에 뛰어들려고 했던 사연, 평생 한량으로 살다 간 아버지 대신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팔아 4남매를 키워낸 이야기, 시어머니 똥수발 10년 등등, 저의 부모님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작은 산골 마을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들어있습니다. -책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저의 부모님은 평생 나눔을 실천하신 분들입니다. 지금도 시골에 혼자 살고 계신 엄마는 무엇이든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가끔 사다 드리는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그런 것보다 조금 더 의미 있는 나눔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엄마 이야기가 담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나 데려다가 해 준 것이 뭐가 있냐고 따지니까 아버지가 자식을 넷이나 낳아줬다고 큰소리를 쳐서, 엄마가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씨 안 넣어줘도 자식이 생기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부모님의 잠자리 이야기까지 다 까발린 딸입니다. 얘 뭐냐? 하실 분들이 계실 듯하여 팁을 드리자면, 저는 평생 자식만을 위해 여성성마저 잃어버린 채 살아온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자식들의 엄마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아내이자 여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죄송함과 아버지도 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자식의 몽매함을 반성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도 자식들의 부모이기 이전에 한 남자였고 한 여자였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를 팝니다>가 갖는 의미 엄마에게 책을 가져다 드렸더니 엄마가 꼬깃꼬깃 접은 오만 원 권 몇 장을 손에 쥐어주시면서 “그래도 엄마는 팔지 말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제목을 잘못 지었나 싶어 식겁했습니다. 엄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엄마 하나 팔아서 우리 사남매 돈 걱정 없이 잘 살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디로 팔려 가도 상관없다. 그런데 다 늙은 늙은이를 누가 사 가겠냐, 돈을 붙여 놓고 사 가라고 하면 돈만 떼어갈 텐디...” 저의 가족은 평소에서 농담을 많이 합니다. 천만금을 줘도 팔 수 없는 귀한 엄마라는 반어법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밥을 버느라 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신문사 미디어팀장, 정부부서 홍보 책자 작가, 시인, 지구의 기후 위기를 걱정해서 시작한 유아숲지도사 과정 등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들인데 그중에 가장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을 꼽으라고 하면 이제는 제 시와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지구의 기후 위기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는 환경 관련 글이나 환경 관련 직종에서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환경 관련 자격증이나 산림치유사 과정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엄마와 많이 놀아 드리고 싶습니다. -독자들께 한 말씀 독자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평소에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미용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택시 운수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가장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미용업과 택시 운수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삶의 현장에서 가장 밀접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주시는 최초의 심리치유사라고 생각합니다. 또 뷰티라이프 잡지를 읽으시는 독자님들 또한 저와 가장 가까운 삶의 도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를 팝니다>를 읽으면 함께 웃고 공감해 주실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기타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워낙 가난한 마을이다 보니 딸들은 당연히 산업체고등학교에 보내고 아들들은 공고, 농고, 상고에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된 삶이었습니다. 저도 친구를 따라 산업체 고등학교에 원서를 썼는데 아버지의 배려로 겨우 상업고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돈 벌어서 집에 보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또 부모님은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켰다는 미안함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미안해하는 사이, 저는 씩씩하게 제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후,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 너무 많이 부족한 어미의 삶을 살다 보니 시인이 되었고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렵게 박사과정을 시작했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자퇴한 후 또다시 삶의 현장에서 긍정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근래에 니체라는 철학자에 빠져 살다가 최근에는 양자역학과 신유물론에 빠져 행복의 의미를 새롭게 써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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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4-05-23
  • 닥터6MP 송정빈 대표
    미용계의 팔방미인 송정빈 대표 여신의 강림 -송정빈 대표 어머니는 하느님의 또 다른 분신 어머니는 하느님을 대신해 자식들을 돌본다네 미용인은 아프로디테의 대리인 미의 여신을 대신해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지 여기 헤어와 더불어 메이크업, 스킨, 두피관리, 제품 개발까지 미용인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미의 여신이 있으니 그 자태 찬란하여라 미용인의 자부심을 높이고 헤어아티스트의 격을 숭상하고 이웃들에 봉사하니 그 모습 아름다워라 오늘도 미의 여신은 아름다움을 전파하려 새벽달까지 그리고 있나니 지상엔 미의 향기 만발 업권을 확장하는 미용인 미용계엔 미용 외적인 부문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헤어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용인이라면 미용실 경영이 우선이겠지만 경영, 기술 이외에도 미용계의 업권을 확장하는 이들을 볼 때 기자는 경이의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내, 외적인 아름다움까지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송정빈 대표는 앞서 열거한 그런 모든 면을 포괄하고 있는 미용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미용계 행사를 많이 다니다보면 특출 난 외모나 특출 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거개는 보통 속빈 강정에 다름없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오버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송정빈 대표는 예외였습니다. 오래 전에, 송정빈 대표를 미용계 행사에서 몇 번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비해 말이 별로 없었고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행사장에서 조용히 자기 일만 하는 듯해 보여서 괜찮은 미용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우리 잡지의 표지 연출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한 달에 한 번만 할뿐 아니라 연예계와 미용계를 잇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많은 미용인들이 표지 연출하기를 희망하고 가교역할을 하는데 열심입니다. 2019년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용계 몇 분과 미용계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우리 잡지 표지 연출에 대해 말하는 기회가 있었고, 그 중 한 분이 송정빈 대표를 적극적로 추천했습니다. 미용 실력과 미모, 인간성 모든 부분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기자는 열심히 메모했습니다. 그리고 송정빈 대표는 2020년 4월호 뷰티라이프 표지를 연출하였습니다. 표지 촬영 후 우리는 거하게 뒤풀이를 했고 인연은 깊어졌습니다. 송정빈 대표가 두 번째 표지 연출을 한 때는 지난 23년 1월호, 신년호였습니다. 기자의 미용 일기장과 개인 SNS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1월 신년호 표지는 이은주 양. 헤어는 송파에서 바르데헤어살롱을 운영하고 있는 송정빈 대표가 맡았다. 송정빈 대표는 박사학위 소지자로 뛰어난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미용계의 재원이다. 이번에 두피 관련 신제품도 개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박수를 보낸다. 바르데헤어 흥하라!”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나간 미용 일기장을 뒤적이니 그때의 감회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표지 촬영 후 3차까지 이어진 뒤풀이에서 송정빈 대표의 인간다움도 진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irb 탈모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송정빈 대표는 국내 최초로 인체 실험을 통한 irb 탈모논문으로 201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탈모 특허를 12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는데, ‘그레이스송 너리싱 샴푸’, ‘그레이스송 너리싱 엣센스’, ‘그레이스송 너리싱 앰플’ 3가지 구성과 ‘그레이스송 너리싱 샴푸’, ‘그레이스송 너리싱 엣센스’ 2가지 구성이 있습니다. 이 중 ‘그레이스송 너리싱 3종 샴푸 세트’는 두피와 모발에 있는 미생물과 땀 그리고 두발용 화학제품의 잔유물인 두피 질환 및 탈모 등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4계절 기후가 확실한 우리나라에서 자란 토종 식물을 주원료로 하여서 특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레이스송 샴푸’는 송정빈 대표의 박사 이력과 20년 실무 경력의 결정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업계에서 신뢰감이 높습니다. ‘강남사모님 커트대통령’ 이뿐만이 아닙니다. 송정빈 대표는 헤어디자이너로서도 인정받아 ‘강남사모님 커트대통령’이라는 애칭까지 얻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커트로 ‘원장을 가르치는 원장’으로 헤어와 두피문신, 반영구문신, 웨딩 메이크업에 이르기까지 고객들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화예술대학교와의 산업협력으로 국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전문 기술 인력의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고 기술개발과 정보교환 및 상호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송정빈 대표께 미용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2절 말씀 ‘사랑’을 제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좌우명은 우공이산(愚公移山), 반복의 힘입니다. 노력과 반복되는 연습은 중요합니다. 목표 백 가지를 세 번씩 하는 것보다, 세 가지 핵심 과제를 백 번 실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좌우명을 기준으로 미용학 지도자, 경영학 박사 학위, 미용 관련 특허 다수 보유, 세계 특허 PCT 146개국 출원, 미국 특허 출원, 인체 실험 의학 부문 IRB획득에 이어 고객 분들의 탈모 케어 고민을 해결할 너리싱 샴푸, 헤어에센스, 두피앰플 이렇게 두피 3종 세트에 이어 2종 세트까지 개발하여 시제품 판매까지 이뤄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험을 통한 조언은 살과 뼈가 된다 그렇습니다. 송정빈 대표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 이것이 오늘의 송정빈 대표를 만들지 않았겠느냐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습니다. 송정빈 대표의 체험을 통한 조언은 살이 되고 뼈가 될 수 있습니다. “뷰티 업계의 선진화만큼 후배 미용인들 또한 아름다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먼저 스스로를 아름다워지도록 가꾸고, 바로 곁의 동료들을 아끼고, 그 마음 그대로 고객을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찾아 드리고 멋있게 연출해 드리는 예술가, 헤어아티스트의 길은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이 세상 최고로 멋있고 예쁘게 연출해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고객을 시술하셔야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 분들께 인정받고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송정빈 대표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던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헤어살롱은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라 생각합니다. 구성원들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 고객은 본인의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얻을 수 있고 구성원들은 리더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느끼는 보람이 제가 미용을 하는 이유가 되고 큰 즐거움입니다. 또 지역 복지센터에서 재능기부 봉사 활동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 머리를 해드리는데,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미용을 통해 세상의 작은 빛이 되 고자 합니다.” 뛰어난 미모와 미용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 여기에 더하여 배움에 대한 열정, 제품 개발과 수출 등 미용인의 영역 확장에 기여하고 있는 송정빈 대표는 우리 미용계의 자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로필 -미스코리아 심사위원 -미스인터콘터넨탈 코리아 심사위원 -코리아브랜드어워즈모델 심사위원 -국제 전통의상콘테스트 심사위원 -대한민국 대표모델선발 콘테스트 심사위원 -한복모델심사위원 (mrsmodek.co.kr) -남자모델심사위원(mrsmidek co.kr) -NTV 슈퍼서바이벌 심사위원 -한국 반영구화장 입법추진 연합위원회 -"NCS 교육 훈련 지도사" 수료 -베스트 k 브랜드 대상 -한국을 빛낸 대상(친환경 헤어케어 부문) -대한민국 미 브랜드 대상(바이오 헤어 샴푸 부문) -친환경 대상(뷰티 바이오화장품) -스칼프 헤어 대상(미시즈 10,000명 모델 선정) -바이오 샴푸 부분 대상(미시즈 10,000명 모델 선정) -미용 특허 12개 -2023 한국경제신문 문화대상(미용부문) -세계평화공헌대상 -IRB 인체 실험 박사 -현)닥터6mp 대표
    • 문화
    • 인터뷰
    2024-05-23
  •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출간한 박준영 박사
    박준영 박사(사진=본인제공)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문화인류학자 박준영입니다. 저는 10년 정도 삼성전자에서 연구개발직과 인사과장으로 일했습니다. 학부 때는 화학공학을 석사는 경제학을, 세계 일주를 다녀오고 박사는 문화인류학을 했습니다. 밥벌이로 반도체 관련된 산업과 기술 강의, 반도체 기업의 컨설팅을 합니다. 공학, 경제학, 인문학 조금 어려워 보이실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고, 결국 말과 글로 먹고살려는 노동자입니다. 그런 것들을 엮어서 연세대학교, 삼성전자, 동부구치소 등 정부, 기업, 학교에서 자본주의 인류학, 경제 인류학, 인문학 강의도 합니다. -저서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를 소개하면? 그간 기업 특히 삼성 같은 대기업은 언제나 주인공이 회사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 임원과 CEO의 이야기, 성공스토리가 주를 이룹니다. 이 책에서는 전문학사로 삼성에서 35년 간 일한 부장이 주인공입니다. 부장의 시선에서 그려보는 책입니다. 인류학 연구자들은 주로 통계보다는 이야기, 자료보다 현장을 찾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글을 씁니다. 인터뷰 대상자는 저와 삼성에서 함께 일을 했던 실제 인물인데요, 이분과 50여 시간 대화를 나누고 A4 용지로 500쪽이 넘는 녹취록을 정리해서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의 특별한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요. -책을 내게 된 동기 회사, 공동체, 국가 그 무엇이든지 사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간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강한 자의 몫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회장은 딱 1명, 임원은 전체 임직원의 0.8%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직원 혹은 노동자로서 99.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삶은 잘 기록된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놀라운 압축적 성장에는 전시 동원 체제 속 수많은 피땀 눈물과 고된 희생이 있었죠. 그 궤적을 찾아 남기는 일이 한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와 장치가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결국에 저는 10년 단위로 커다란 변화를 겪으며 이뤄낸 기업과 국가의 발전에 필요조건이었던 ‘불가피한 정신 승리’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도달할 수 있는 미래를 열기를 바라며 책을 썼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에피소드가 있다면? 책의 초고를 쓰고 나서 수정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한 인간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한계를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화상 또한 어떨 때의 나일뿐이니까요. 그것은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했던 분에게는 원고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원칙이기도 한데요. 한국에서 한 인물을 다루다 보니 그와 관계를 생각해서 원고도 확인하고, 불편해할 내용은 삭제해서 우회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글은 어색하지 않으니, 기대해 주세요! -책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제목을 보고 반도체를 다뤄서 어려운가 싶으실 텐데, 반도체 기술적인 내용은 아주 조금만 나오고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역사 흐름과도 만나는 점이 있으니 흥미 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요즘에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적 개념들을 각 꼭지 글마다 수록했고, 참고문헌도 적어놨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인류학자가 돼보시는 경험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가 갖는 의미 우리나라 기업들이 내부 최적화가 많다 보니 외부에서는 잘 알 수가 없죠. 그렇다 보니 인류학자들이 근대 초기에 원시 부족들을 연구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한국 사회의 기업들이 접할 수 없는 지역이 된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부장의 시선, 부족하나마 인류학자의 이야기로 들어보시는 기업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든 첫 책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네, 저는 계속 기업, 산업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할 것입니다. 기술과 조직, 인간이 함께 융합하고 갈등하면서 만드는 생생한 말들을 엮어서 콘텐츠를 만듭니다. 어떤 면에서 ‘숙련’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사람과 사회를 엮는 것을 ‘문화’라고 한다면 마음으로 존중하고 몸으로 성실하게 남겨서 기업의 문화인류학자로 걸어가려고 합니다. -독자들께 한 마디 언제나 하루를 아름답게 여시는 독자님들께 제 책과 삶을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지, 덕, 체가 자기화 되어 분연히 움직일 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자기를 숙련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여지시길 기원하고, 계시는 삶에서 읽으시는 분들 덕분에 진짜 아름다움이 피어나시리라 믿습니다. 프로필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경제학석사, 문화인류학 박사 졸업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 본사 인사과장 -박사학위 논문 [첨단IT기술의 출현과 금융노동: 딥러닝 및 블록체인 핀테크스타트업에 관한 에스노그라피] -법무부 교정위원: 인문학 강의 분야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의 교수
    • 문화
    • 인터뷰
    2024-04-24
  • 권지영 시인
    권지영 시인(사진=본인제공)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시를 쓰는 권지영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시와 동화, 그림책, 동시, 에세이 등을 써서 책으로 나왔어요.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누군가 두고 간 슬픔>,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푸른 잎 그늘>, <너에게 하고픈 말>, <달보드레한 맛이 입 안 가득>, <재주 많은 내 친구>, <방귀차가 달려간다>, <팔랑팔랑 코끼리>, <행복>,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전설의 달떡>, <노란 나비를 따라>, <하루15분 초등문해력> 등이 있습니다. -<팔랑팔랑 코끼리>를 소개하면? 청룡의 해의 첫 번째 책이자 이번 봄에 새로 나온 저의 네 번째 동시집입니다. -책을 내개 된 동기나 의미 이번 동시집은 투고를 통한 출간이 아닌 청탁받아 출간된 책이라 제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이전의 동시집은 순우리말로 기획해 쓴 동시집이었습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책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참 오래 걸렸습니다. 다 써놓고도 투고하거나 출간 준비를 빨리 하지 못한 이유에서였어요. 5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다행히 품은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뻤습니다. 그 이후 일반 동시집으로 나온 책이니 정말 반갑고 뜻 깊은 동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에피소드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이어서 아동문학 출판사에서 책을 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권의 어린이책들이 출간이 되었는데요. 그 발판이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린 <노란나비를 따라>라는 시 그림책 원고였어요.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시집에 실리기도 했었던 시를 그림책 원고로 고치고 출판사에 투고를 했었지요. 출판사에서는 원고가 누락되어 열람 자체를 하지 못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 대표님을 뵙게 되어 시간이 지난 후 여쭤보게 되었어요. 다행히 지난 메일들에서 발견을 하셔서 계약을 하고 그 이후로 동화책과 그림책 등의 어린이책들을 내게 되었어요. 운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출판사랑 제 성향이랑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해요. 출판사에서 동시집 시리즈를 출간할 계획이라며 원고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시집이 시리즈의 1번이 될 예정이라 하셨고 몇 권의 책과 함께 같이 출간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다른 책들이 먼저 나오게 되어 시리즈의 세 번째로 출간이 되었어요. 동시집 시장은 특히나 어린이 도서 분야에서 판매가 쉽지 않은 편이라 제 역할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시와 동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오랫동안 쓰다가 아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동시로 쓰게 되었습니다. 시와 동시의 간극은 크지만 본질은 삶에서 비롯되기에 맞닿는 부분도 많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대상에 따른 시선과 인식이 시와 동시에서 다를 때가 많기도 하지요. 어린이의 마음으로 더 다가가서 사유하고 바라보는 것이 동시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소개하고 싶은 동시 한 편 이번 동시에는 특히 아이들의 실제 입말을 많이 담았습니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해드릴게요. 왠지 저는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그리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바람 먹는 날 킥보드를 타고 차 없는 시골길을 쌩쌩 달리니 나무 냄새 햇빛 냄새 한꺼번에 달려온다. 배에서 가슴까지 시원한 바람이 빵빵하게 차오른다. 오늘은 바람 먹기 좋은 날! -앞으로의 계획 저는 글과 책으로 숨 쉬며 살아가고 있어요. 힘이 들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 뚜벅뚜벅 문장 위에서 조심조심 견고히 걸어가고자 해요.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나부끼더라도 금방 끝나진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쓰는 시와 글들을 더 기본적으로 공부하며 다시 찬찬히 써나가고 싶어요. -독자들께 한 마디 독자님들께서도 오랜 기간 동안 현업에 종사하시며 역사를 쌓아오셨겠지요. 앞으로도 묵묵히 걸어 나가실 길에 저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어떤 일을 하시든 다 잘 되시기를 빌어요.
    • 문화
    • 인터뷰
    2024-04-24
  • 대구 북구지회 원동호 지회장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1983년에 미용을 시작하여 41년째 헤어 디자이너로서 현 대구시 북구에서 ‘헤어포레’를 운영하며 23년 간 학교강의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대구 북구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원동호입니다. ‘항상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마인드로 자기개발에 게을리 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와 새로운 제품들을 받아들여 많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전달하는데 행복함을 느끼며 미용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구 북구지회의 자랑 저희 대구 북구지회는 단결과 화합이 잘돼는 지회입니다. 회원님들이 모든 행사에 적극적입니다. 기술교류 세미나 때도 지회 사무실이 꽉 차도록 열정적이며, 해마다 진행하는 가을야유회 또한 80명 이상이 참석하여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화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회장으로서 회원님들의 열정에 항상 감사를 느끼며 회원님들에게 좀 더 많은 공유와 혜택을 주고자 상임위원님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구 북구지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고 있는지... 항상 열정적이시고 긍정적이신 임순남 사무국장님은 대구 최초 여성 사무국장으로서 모든 회원님들을 가족처럼 잘 살피시고 알뜰살뜰 살림을 잘 사셔서 다른 지회보다 부럽지 않는 살림을 이루었고, 다른 지회에서 항상 부러워 할 정도로 상임위원님들끼리 화합이 잘 되어 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지회라는 자부심은 화합된 상임위원님과 사무국장님께 감사함을 돌리고 싶습니다. 매달 요양원 봉사를 진행하고 있고, 병원과 연계하여 예방접종, 건강검진 등 할인혜택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아트교실도 열어 헤어 악세사리 만들기도 하고 있으며, 월 8회 줌바, 나인댄스 교실을 열어 건강과 화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평소의 미용철학은? ‘항상 처음처럼’, ‘항상 깨어있는 미용인’, ‘고객님의 머리를 내 머리라고 생각하고 작업에 임해라’ 등입니다. 풀어 얘기하자면, 처음 디자이너가 되어 첫 고객을 맞아 설렜던 그 마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초심으로 하자. 고객은 0.5mm에도 민감하다. 항상 내 머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중하게 아껴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미용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초심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항상 처음처럼, 인연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미용을 시작하면서 혼자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 우리 미용 산업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나고 있습니다. 훌륭한 선배님들의 많은 노고 덕분에 우리 미용인은 사회적인 위치나 기술면에서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기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나에게는 누가 있었는가를 되새김하는 생각을 한번 씩 해보았음 합니다. 많은 인연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미용 산업발전을 위하고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미용문화를 물려 주기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미용인 전체가 하나 되어 아름다운 미용 산업발전에 함께 할 수 있는 미용인이 되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미용을 하시면서 즐거웠던 일, 흐뭇했던 일이 있었다면? 여러 봉사를 많이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200명의 어르신 장수사진 봉사와 각 구에 요청하여 다문화부부나 어려워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모집하여 19쌍의 무료 합동결혼식 봉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지회장으로서는 코로나가 시작되어 모두가 두려워 할 때 각 회원업소의 신청을 받아서 소독을 해드렸을 때 협회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회원님들에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23년째 학교 강의를 하면서 후배들이 훌륭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학생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조언과 격려를 줄 수 있다는 게 제가 정말 미용하기를 잘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장, 단기 계획은? 지금 한 지회의 지회장으로서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서 회원들에게 많은 도움과 어떤 혜택을 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술공유를 위해 매 기수를 모집, 아카데미를 신설하여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 중입니다. 유명강사를 초청하여 빠른 트렌드 세미나를 계획 중이며 남은 임기 동안 비회원들에게 많은 홍보와 교류를 통해 정회원 70% 목표로 최선을 다 할 예정입니다. 격려해주시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미용학석사 -헤어포레 운영 -대구보건대학교 겸임교원 역임 -대경대학교 겸임교원 역임 -K.B.F 한국미용 페스티벌 심사위원 역임 -대전광역시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감사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감사 역임 -사)서울특별시장배 미용경기대회 심사위원장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대구광역시 북구지회장 -사)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대구광역시 협의회장 역임 -경일대학교 특임교수 역임 -계명문화대학교 겸임교수
    • 문화
    • 인터뷰
    2024-04-24
  • 김경란 CMC-CAT 회장
    한 집안의 대통령상 두 개 -김경란 회장 어머니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세 분이 모두 미용을 하셨지요 하지만, 미용은 힘든 직업 어머니와는 다른 미용을 위해 불철주야 공부했지요 세상은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 않네 울산 1호 미용예술학 박사 울산 1호 명장 선정 울산 1호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여기에 더하여 대한미용사회 울산협의회장 및 동구지회장 CMC-CAT 세계미용예술연합회 한국회장 찬란하여라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네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 두 딸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미용을 하고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네 3대가 함께하는 미용인의 삶 한 집안에 대통령상이 두 개 부러울 것이 없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네 미용인의 권익향상 이미지 부각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달려간다네 3대 미용인 미용인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고 직업적으로도 평균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서 미용인은 우리 사회에서 꽤 괜찮은 직업군으로 분류된 지 오래됐습니다. 여러 가지 지표가 이를 방증하지만 우리 미용계에 2세 미용인이 많다는 것은 이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표식이 될 것입니다. 성공한 미용인 치고 한 두 자녀가 대를 이어 미용을 하지 않는 미용인 집안은 드뭅니다. 앞의 시(詩)에서도 언급했듯이 김경란 회장은 미용인 집안 출신입니다. 어머니,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께서 미용을 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힘든 삶을 몸소 느끼면서 자랐습니다. 따라서 미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피는 속일 수가 없었나 봅니다. 결국은 미용을 택했고, 대신 어머니와 다른 미용 길을 걷고자 노력에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김경란 회장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해 2014년에 울산1호 미용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고, 2015년엔 전국 최연소 지역 명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에는 울산1호 미용 산업현장교수로 선정되는 등 산업도시이자 공업도시인 울산에서 미용을 알리고 뿌리내리는 일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김경란 회장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22년엔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경사를 맞습니다. 뒤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둘째 따님까지 대통령상을 받았으니 한 집안에 대통령상을 2개나 보유한 미용 집안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미용계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경란 회장을 생각하면 유명 텔레비전 MC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미용계에는 3대 유명 사회자가 있습니다. 신한대학교 김민정 교수, 청암대학교 이수희 교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김경란 회장 이렇게 세 분입니다. 이 세 분은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우리 미용계 행사에서 탁월한 실력을 자랑합니다. 세 분은 우리 미용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자산이라고 기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이 모자랄 만큼의 역할 김경란 회장은 한 자리에서 미용실을 2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용실 운영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올해는 14년간 강의했던 영산대학교 강의를 접고 집 근처의 울산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미용실 원장님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대한미용사회 울산협의회장 및 울산 동구지회장을 맡고 있으며, 울산광역시에서 선정한 울산광역시 명장님들의 모임인 울산광역시 명장회 회장을 2대 째 연임 중입니다. 울산에서 두 단체의 회장을 맡아 숙련기술인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기술교육이 필요한 후배들을 만나 특강을 하는 등 후학양성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CMC-CAT(세계미용예술연합회)의 회장 직까지 맡고 있으니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CMC-CAT(세계미용예술연합회)는 87년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미용단체입니다. 한국회장을 맡아 이어가며 언어의 벽이나 거리의 어려움들이 있어 힘이 들긴 하지만 미용계의 산 증인들과 함께하는 단체라는 뿌듯함과 의미를 기억하며 단합된 모습으로 서로에게 시너지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단체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열정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따님과 함께하는 행복 김경란 회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따님을 두고 있습니다. 두 따님은 엄마의 뒤를 이어 자랑스런 미용인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때 미용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두 딸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두 자녀는 대학생활 동안 전체 장학생을 유지하며, 큰 자녀는 미용고등학교 교사로 현재 재직 중에 있고 둘째 자녀는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헤어디자인직종 국가대표로 세계대회 출전해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는 감사하고 대견스러운 일을 해냈어요. 자식자랑은 밤을 새며 이야기해도 다 못할 것 같습니다. 자녀까지 3대째 미용을 천직으로 알고 살다 보니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들이 생기다 보니 더 행복한 날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정다운 국가대표는 한국산업인력공단 홍보대사로 선정되어 각종 방송 프로그램 출연과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미용인들의 이미지 쇄신 등 삶의 가치를 올리는 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녀가 같이 미용을 하며 25살의 나이에 국가대표,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살롱실무 능력까지 겸비한 자녀로 성장하고 있다 보니 아바타라고 해야 할까요? 힘든 일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이래서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미용가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미용인으로서 미용계 전체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으니 미용계의 보석이라고 여길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용인의 권익향상을 위해 최선 이처럼 행복한 미용 생활을 영위 중인 김경란 회장은 미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미용을 시작하며 명예로운 미용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에 열심히 공부하며 후학양성을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미용인의 이미지 쇄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용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더 올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용인들이 하기 힘든 많은 다양한 활동을 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출마, 대출심사, 자격시험 심사, 학교 운영위원장, 민주평통자문위원회 울산여성위원장, 체육회 이사, 기능경기대회 지도교사, 회계멘토, 컨설턴트, 미용대회 MC 등이 다 이런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의 깊이에 따라 그 조직의 앞날이 좌우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조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미용계가 김경란 회장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김경란 회장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기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현재의 삶에 너무 만족하며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제자들, 후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들과 미용인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나 미래는 현재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에 만족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미래의 삶 또한 미소가 가득한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계발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미용계의 한 사람으로서 미용인의 사회적 권익 신장 및 이미지 쇄신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김경란 회장이 있기에 우리 미용인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며 기자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경란 회장은 우리 잡지에도 지난 2018년부터 매달 빠짐없이 연재를 하고 계시니 우리 뷰티라이프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우리 모든 뷰티라이프 식구들 사랑합니다. 프로필 -2022년 대통령 표창 「직업능력의 달」 -2021년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선정 (울산1호) -2021년 백년가게 선정 -2017년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5년 울산광역시 명장 선정 (울산1호) -2014년 미용예술학박사 (울산1호) -울산광역시 명장회 회장 -사)한국미용장협회 중앙회 이사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울산협의회장 및 동구지회장 -CMC- CAT 세계미용예술연합회 한국회장 -한국표준협회 회계멘토 -방어진중학교 운영위원장 역임 -국제기능올림픽 은메달 부지도위원 -기능경기대회 지도교사 -영산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울산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의 중 -아모담 by 김경란 박사 대표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지방기능경기대회 2년 연속 금메달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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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4-04-24
  • 4인 4색 나눔 강연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사랑의 후원금 전달
    복지의 사각 지대의 있는 1인가구 시각장애인에게 따뜻한 마음이 전달 될 수 있도록 4인의 강사들이 강사비와 후원금을 모아 남양주시사회복지관 북부희망케어센터에 기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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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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