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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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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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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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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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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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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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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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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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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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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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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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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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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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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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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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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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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취득한 강순자 광주 서구지회장
- -자기소개 늘 아름다운 청춘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원장 강순자입니다. 올해로 35년째 헤어디자이너로서 오너로써 여러 지점을 운영하였으며 후진들 양성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개발 고객 창출을 위해 많은 선진 교육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미용의 길이 개인에게 최고의 멋진 직업으로 여기며 설레는 하루를 맞이하는 광주에서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소형 살롱을 오픈하여 연구실 겸 1인 살롱을 운영 중이며 대한미용사회 광주서구 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사가 되셨는데 소감 한 말씀 네, 마음에 늘 담고 있었던 학업을 늦게 시작하여 석사는 미용이 아닌 스피치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너무나 즐겁게 학업에 열중하였지만 가슴 한 구석엔 뭔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생각했던 현장의 경험과 기술을 학문적으로 적립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나에게 있어서 대학원 박사 진학은 후회 없는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앞으로 교육자로써 그동안 숙련된 기술적 노하우와 이론을 바탕으로 최고의 멋진 미용인이 되기 위해 첫발을 내딛고 싶습니다. -박사 논문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박사 논문은 “바실리 칸딘스키 작품을 적용한 헤어아트 화장성 연구”에 관한 것입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시대별 작품세계, 헤어아트의 개념과 유형에 관한 이론적 연구를 위해 관련서적, 선행연구, 인터넷 자료를 통해 고찰하고 실증적 연구를 위해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업 시기별 대표 작품 청년기시대, 청기사파시대, 러시아시대, 바우하우스시대, 파리시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시대별 작품에 관하여 고찰한 후 작품에 표현된 색채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적용한 색채계획에 따라 헤어아트작품 총 5점을 선정하고 한국 표준색 색채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작품에 표현된 색채를 분석하였습니다. 색채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유사색상과 반대색상을 도출하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색채디자인을 계획하고 시대별 작품 5점에 대한 동일색상, 유사색상, 반대색상의 헤어 아트작품 총 15점을 제작하였습니다. 헤어아트 분야의 학문적 연구방법에 대한 영역을 확대하고 헤어아트 작품제작 연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추상미술 분야의 예술작품에 표현된 조형성 중 색채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다양한 색상의 연출이 가능한 모발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을 모발이라는 소재로 제작해 봄으로써 예술작품의 표현범위를 확장시키고 추상미술작품을 헤어아트에 적용하여 제작함으로써 예술작품의 표현 범위를 확장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습니다. 색채분석과 색상에 의한 배색인 동일, 유사, 반대색상을 적용한 헤어아트 작품연구를 통해 헤어아트 분야의 학문적 연구 방법에 있어 접근 방법을 확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칸딘스키의 작품에 표현된 색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작품에 표현된 조형성은 형태만큼이나 색채를 통해서도 전달되고 있으며, 그가 생각했던 내적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색채를 통해 작품을 보고 이해하게 하는 상호작용의 수단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별 작품을 동일, 유사, 반대색상을 적용하여 헤어아트 작품을 제작하면서 같은 형태에 색상을 다르게 적용함으로써 작품에 반응하는 시각적 변화와 감정의 다채로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조형적 요소 중 색상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과 시각적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헤어아트 작품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티브의 형태 또는 색채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기존 헤어아트 관련 선행연구와는 차별화된 색채분석을 통한 헤어아트 색채 화장성 연구를 통해 연구방법의 확대와 헤어아트 예술 작품의 영역 확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색채분석 프로그램과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도출된 동일색상, 유사색상, 반대색상을 헤어피스에 염색하는 과정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도출된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 헤어메니큐어를 혼합하는 과정에서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았으며, 연구자의 시각에서 최대 흡사한 색상을 제조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본 연구의 한계점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박사를 받으시기까지 애로점이 있으셨다면? 2년 동안 학업과 논문준비, 그리고 현장에서 고객에게 작업을 하는 주어진 시간의 한계에서 이론적으로 부족한 부분과 컴퓨터 활용능력, 헤어아트에 대한 다양한 테크닉에 대한 것들이 벽에 부딪히며 번복되는 아까운 시간들로 잠을 설치고, 교수님이 거는 기대에 부응하는 많은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은 저에게 다시 오지 않는 귀한 추억이었고, 저에게 황금을 얻어준 행복한 시간이었기에 애로점이 아니라 기쁨과 설렘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교수님들의 사랑으로 뛰어다니며 어린 아이의 순수함 그 자체로 2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미용사회 광주 서구지회장도 맡고 계신데 서구지회의 자랑 우리 서구지회는 역대 고문님들께서 깊은 사랑으로 후배를 아끼고 보살피는 아름다운 지회입니다. 세미나를 하면 맛있는 반찬과 밥을 대접하면 참여하시는 분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따뜻한 분위의 협회입니다. 풍족한 마음으로 교육도 받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언제나 주고 받는 사랑으로 웃음꽃이 핀답니다. 저희 서구지회의 자랑은 1년에 한 번씩 멋진 뷰티 페스티벌 축제를 합니다. 멋진 스타일을 연출하는 스타일을 기획하여 향상된 선진 기술 지도를 제공하며 2024년도에는 회원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실시합니다.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살롱에 유익한 유능한 강사진을 모셔서 실시합니다. 소상공인교육 외 각종 많은 지원을 회원들에게 제공해 주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 회장으로써 봉사하는 첫째 목적은 회원들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동안의 노하우를 나눠주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올해는 회원 방문을 우선시하여 애로사항들을 귀 기울여 잘 듣고 회원들에게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행복 전도사가 되겠습니다. -평소 미용 철학 “처음처럼” 최선을 다하여 역할을 잘하는 깨어 있는 미용인이 되자. 즐겁고 행복하게 보고 싶은 인연을 많이 만들자. 등입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몇 개의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후배 미용인과 한 가족으로 지내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한곳을 바라보며 살았던 시기에 많은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퇴사한 직원이 어려운 것들을 의논하고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주며 사는 관계, 오픈 준비하는 시기에 장소와 인테리어 디자인 등 여러 일들을 의논하며 더불어 함께한 생각이 납니다. 저와 같이 있을 때 그때까지만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그 지난 후부터는 동등한 오너나 대표로써 인정하는 동등한 관계로 생활합니다. 디자이너로서 강순자는 고객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손길이 그립다며 찾아오실 때 유능한 디자이너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뿌듯함이 또한 너무 기쁩니다. 마음을 보여주는 관계가 가장 편안하고 좋은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런 인연은 진행 중입니다. 아직도 설레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프로필 -1992년 ~ 레나강헤어비스 경영 -2010년 ~ 2021 이가자헤어비스 경영 -2008년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대한민국 기능 미용장 -2011년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대한민국 기능 이용장 -현재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미용 자격시험 감독 -2019년 ~ 현재 사)대한미용사회 광주시 서구지회장 -2021년 ~ 2022년 사)대한미용사회 광주시 협의회장 -2009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12기 -2014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분과 기술강사 4기 -2016 ~ 2017년 국제라이온스 355B1지구 상록라이온스클럽 회장 -2016년 호남대학교 산업대학원 스피치 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 -2024년 광주대학교 대학원 뷰티미용학과 박사 -현재 레나강헤어비스 경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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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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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취득한 강순자 광주 서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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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동부지회 조명주 부회장
-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여수시 학동에서 신데렐라 헤어를 28년 간 운영하고 있는 조명주입니다. 배우자인 남편도 미용사인데 전엔 따로 운영을 하다가 지금은 같이 일을 한 지도 10년이 되었습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남편과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아이들도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행복합니다. -미용실 자랑 ‘신데렐라 헤어’라는 상호로 한 동네에서 30년 가까이 미용실을 하다 보니, 꼬마 때 오던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과정을 보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느낍니다. 이렇듯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단골손님들 또한 나이가 들어가고 오래된 단골이 되어 있네요. 나름 인지도 있는 미용실로 인식되고, 깐깐하고 미용 요금도 높고, 할 말을 하는 원장이지만 커트와 염색, 퍼머를 손상 없이 잘하는 미용실로 손님들이 인정해주고 찾아주니 나름 보람과 뿌듯함을 느낍니다. -전남동부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현 하옥현 지회장님이 전남동부 지회장과 전남동부 여수지부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하옥현 지회장님의 회원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인드가 좋아 옆에서 보좌하며, 11개 지부를 두고 있는 동부지회에서는 부지회장을, 동부여수지부에서는 감사직을 맡아 협회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현 중앙회 기술강사로서 여수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회장님을 비롯, 임원진들과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을 위한 메이크업과 헤어 봉사 활동, 도서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미용 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의 기술 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회장님과 찾아가는 소규모 세미나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협회 교육장을 활용해 계속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전남동부지회의 자랑 전남동부 11개 지부를 관할하는 동부지회는 지회장님을 선두로 각 지부가 요청하는 교육지원과 애로사항을 지회장님과 5명의 부지회장이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으며, 각 지부의 지부장님들과 연1회 야유회로 친목과 결속력을 다지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철학 미용업을 하다보면 많은 손님들을 만나게 되고, 시술 시간 동안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되고, 듣게 됩니다. 미용사로서 미용이론과 헤어 기술로 손님들에게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 되어야 하고, 손님들과 충분한 소통이 되기 위해선 그 외에 사회, 경제, 정치, 교육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정 사에 지쳐있는 손님들이 쏟아내는 푸념을 많이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공감하는 마음 치료사도 되어야 하구요. 우리 미용사들끼리는 요금 경쟁자가 아닌 실력 경쟁을 해야 하며, 실력에 뒤지지 않게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기술 평준화를 위해 서로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세상에 도태되지 않게 공부에 집중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미용을 하는 마지막 날까지는요. -미용을 하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즐겁고 보람되었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지도에 힘써주신 스승이신 하옥현 지회장님께 감사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목표를 이루어내었을 때 큰 기쁨 이었습니다. 그리고 흐뭇했던 일은 행정복지센터에서 주관했던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 시간이었습니다. 어쩜 마지막 남을 예쁜 얼굴 모습일지 모르는 사진이라 더 신경 써서 화장을 하고, 헤어스타일도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해드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화장과 드라이를 하고 한복을 입고 나니 새색시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너무나 흐뭇하고 보람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장, 단기 계획 단기 계획으로는 미용협회 임원으로서 회원들을 상대로 무료교육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기술공유를 한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회성이 아닌 매 기수를 모집하여 교육하고, 더 이상 접수회원이 없는 날까지 해볼 계획입니다. 장기 계획으로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더욱 건강에 중점을 두고, 일은 줄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나눔 봉사도 꾸준히 하며 보람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프로필 -현 신데렐라 헤어 대표 _현 전남동부지회 부지회장 -현 전남동부 여수지부 감사 -세계 여수엑스포 시장배 미용경기대회 심사위원( 2008.6~2011.9 ) -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13기 기술강사 -국회위원상, 전남도지사상, 여수시장상, 순천시장상, 대한미용사회 중앙회장상 그 외 다수 -전남도지사배, 국제미용페스티벌 등 다수 심사위원 역임 -도지사배, 국제한국미용페스티벌 미용경기대회 다수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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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동부지회 조명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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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풍양지부 허정원 지부장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남양주시 풍양지부 지부장이며, 현 오남읍에서 헤어가든 미용실을 운영 중입니다. 회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늘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원들은 지부장이 너무 많은 일들을 벌인다고, 적당히 하라고 하면서도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많은 일들을 함께 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미용인은 잘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항상 밥하는 지부장입니다. 늦은 시간 세미나에 참석하는 회원들을 위해, 임원들과 함께 떡볶이와 오뎅을 끓입니다. 저희 지부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세미나보다 먹는 시간이 먼저입니다. 항상 제 때 식사를 못하는 회원들을 위해 다양한 메뉴로 함께 합니다. 서로 낯설어 인사도 나누지 않던 회원들이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가 경쟁업소가 아닌, 회원들 간의 친구 같은 지부가 되었습니다. 미용인은 미용인과 대화 할 때가 가장 유쾌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운 지부를 만들게 되어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 지부는 정이 넘치고 웃음과 활력으로 한 가족 같이 살고 있습니다. -풍양지부의 자랑 저희 풍양지부는 다산, 별내, 오남, 퇴계원, 진접 5개 지역으로 이루어진 지부입니다. 회원들을 위한 정기적인 교육 및 기타 프로그램을 만들어 회원들과의 대면 모임을 자주 만들고, 구역별 소모임을 진행하여, 서로 끈끈한 정으로 회원들 간의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풍양지부는 병중으로 입원하거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전 회원에게 애경사에 화환과 축의금을 드립니다. 회원들에게 감동을 주는 지부입니다. “아나바다” 마켓을 열어 회원들이 사용하지 않는 미용용품을 나누거나 바꾸어 쓰고, 지역 업체를 통해 제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미용사가 미용사 머리해주는 날도 있습니다. 저희 지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미용봉사 및 치매예방 가맹점을 가입하여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회원은 풍양지부 소속감에 매우 만족할 수 있도록 임원 분들과 저는 노력하고 있으며, 풍양지부는 회원들의 열정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풍양지부를 어떻게 이끌어오고 계신지? 지부장으로 취임하면서 風양지부가 되겠다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풍양지부!!로 만들겠다고 회원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회원들이 일단 협회로 모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회원들이 모여야, 회원들이 협력해야, 작은 일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 밥하는 지부장이 되었습니다. 회원들이 협회에 오면 일단 식사부터 하고, 식사하면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저희 지부는 어떤 세미나가 있어도, 먼저 밥부터 먹는 게 시작입니다. 식사하면서 쌓는 친분은 쉽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되었고, 이제는 회원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반갑게 맞이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저는 직접적으로 매출을 빠르게 끌어낼 수 있는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인연이 있는 유명강사님과 상의하여 인원수에 상관없이 무조건 수업을 해 주시기도 하고, 작은 강의료에도 달려 와주신 강사님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업을 받은 회원들은 복습을 할 수 있도록, 저희 샵으로 다시 모이도록 하여, 궁금한 것들을 복습을 하도록 도왔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지부가 되었습니다. 매출을 발생시키는 제품교육을 통해 협회는 회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저는 회원들이 문턱이 닳도록 협회에 올 수 있는 행사 및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이제 회원들은 협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교육준비를 해줍니다. 의자와 책상 등을 정리하고 쓸고 닦아줍니다. 이제는 힘들지만 웃을 수 있습니다. 지부장이 갑자기 바뀌고 국장이 없는 상태에서 지부장으로 취임한 저는 회원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빈 정 상할 정도로 문전박대를 당했으나, 지금은 가는 곳마다 사탕을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미용실 테이블에 있는 먹거리를 주머니에 넣어줍니다. 샵을 하면서, 협회 일을 병행하느라, 고생하지만 회원들이 가는 곳마다 지부장님이 애쓴다고 안아주고 등을 쓸어 줄 때 마다, 회원들에게 위로와 보람을 찾게 됩니다. -풍양지부는 질 높은 세미나를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은 곧 매출과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매출로 이어지려면, 기술향상이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있으려면, 교육의 힘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강사님을 섭외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사람의 관계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강사님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열악한 재정으로 협회를 끌어가기엔 어렵고, 높은 강의료는 부담스럽지만, 그동안 친분이 있던 강사님들은 강의료와 상관없이 언제든 달려와 주셨습니다. 덕분에 회원들은 샵을 비우고 강의를 받으러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 일부러 샵을 비우고 강의를 오지 않도록 세미나와 교육도 늦게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의 참석률이 좋습니다. 그동안 함께 수고해주신 강사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지면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다양한 회원들의 니즈에 맞는 교육, 트렌트에 맞추어 발 빠르게 교육을 준비하고, 인스타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준비합니다. 고객보다 앞서가는 미용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회원들을 위해 매출을 향상 시킬 수 있도록 교육을 1년 스케줄을 만들어 강사님들을 섭외하고 회원들 분들께 홍보합니다. 교육이 없는 달은, 협회가 업체에 지원금을 요청하지 않고, 좋은 제품. 신제품 세미나 등을 협회에서 할 수 있도록 무료세미나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자료도 공유하고, 제가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집에서 복습을 한다고 합니다. 미용인들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합니다. 그러나 배움 뒤 복습이 부족해 매번 배운 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포기합니다. 비싼 강의료만큼의 수확을 얻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스터디를 만들어 매월 1회씩 모여 강의도 듣고, 복습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하는 시간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교육은 곧 자신의 부가가치를 상승시켜 매출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교육, 필요한 교육, 회원들이 원하는 교육을 찾아 고민을 많이 하니 교육과 열정이 넘치는 지부로 소문이 난 것 같습니다. -지부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애로점 회원들이 함께 하는 행사를 더 많이 기획하고 회원들이 협회를 통해 기술발전의 동력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욕심은 많으나 재정이 열악한 관계로 사무국장이 없어 임원들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사무업무까지 바쁜 하루하루가 더 많은 아이디어를 설계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평소 미용 철학 미용인은 고객들의 외모와 자존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미용은 사람의 외모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미용 작업은 고객과 함께하는 시간도 많다보니,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스트레스가 가득한 사람은 상담과 조언을 나누며 마음까지 치료해주는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봉사하며 사는 많은 미용인들에게도 박수를 드립니다. -장, 단기 계획 협회는 회원을 위해 존재합니다. 회원이 협회를 통회 원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매출이다.” 회원들 자신의 기술력 향상을 통해 매출 상승까지 함께 성장하는 지부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休 회원들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드리려고 합니다. 저희 지부는 정기 총회 후 개그맨은 초대하여 함께 레크레이션을 하고 회원을 위한 선물을 아낌없이 나누고 있습니다. 회원 분들과 함께 새로운 활력을 넣어 드리기 위한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회원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워크샵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전문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풍양지부가 되겠습니다. 프로필 -현)헤어가든 원장 -현)대한미용사회 남양주시 풍양지부 지부장 -사회복지학 행정 학사 -현)남양주시소속 휴먼북 강사 -현)이주민연대 샬롬의집 이사 -전)삼육보건대 뷰티헤어과 출강 -전)삼육보건대 산업체 뷰티헤어과 출강 -전)송곡대학교 K뷰티과 출강 -전)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용교육학과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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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 풍양지부 허정원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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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김정숙 박사
- 평생의 업, 미용교수 -김정숙 교수 환하게만 웃는 게 인생인 줄 알았어요 미용인 줄 알았어요 미용인생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름다운 것 모두 다 주었지요 준다는 것, 행복의 다른 말이라는 것 깊이깊이 느끼며 살고 있어요 제자들의 성장이 미용인들과의 관계가 삶의 보람이며 생의 기쁨이 된 지금 미용 교수의 추억이 예술학 박사의 혼이 마음을 젊게 해요 봄날의 햇볕 같이 보드라워요 미용교수가 평생의 업이었음을 오늘도 반추하며 살아요 미용계의 전통은 정과 의리, 동지의식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뷰티산업학에서 이번 8월 말 정년퇴임을 하는 1기 졸업생 김정숙 교수(유원대)의 특별한 정년퇴임 기념식이 지난 8월 24일에 열렸다. 지난 8월 24일에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뷰티산업학에서 특별한 정년퇴임 기념식을 진행하였다. 이번 8월 말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김정숙 교수(유원대)의 정년퇴임 기념식이었다. 이날 정년퇴임 기념식은 김정숙 교수의 동기 및 후배들의 자발적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들” 주제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정숙 교수의 지도교수 윤천성 교수(서울벤처대학원대)와 대학원 동기, 후배, 유원대학교 제자 외 김정숙 교수의 가족들도 함께 참석하여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또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동기 및 후배와 유원대학교 제자들의 감사 기념 글을 담아 정년퇴임 영상과 기념집을 제작하여 전달하며 특별한 정년퇴임 기념식을 마무리했다. 기자가 장황하게 지난 잡지를 뒤적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은 우리 미용인의 상징이랄 수 있는 정과 의리, 동지의식을 잘 나타내주는 기사가 떠올랐고, 그 기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미용계는 아직도 정과 의리, 동지의식이 살아있는 사회입니다. 갈수록 그런 의식이 약해지고 있음이 안타깝지만 그건 세월의 흐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다른 사회에 비해 우리 미용계가 훨씬 천천히 변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앞서 말한 미용인(계)의 특징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는 으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년회 및 신입생 환영회, 졸업식 및 송년파티, 각종 학술 세미나 등등에서 보여주는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모습은 기자에게 좋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미소가 잘 어울리는 김정숙 교수 김정숙 교수를 기자가 처음 만나 것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행사 때였습니다. 윤천성 교수의 소개로 만났는데, 소녀적인 모습과 사람을 밝게 하는 미소가 참 잘 어울리는 교수였다. 아름다운 미소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숙 교수는 그런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행사에서 만났고 여전한 미소로 기자의 마음을 환하게 했다. 김정숙 교수는 현재 앞서 게시한 기사처럼 정년퇴직을 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지금은 평온한 삶을 바쁘게(?) 살고 있다. 김정숙 교수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두어 가지 있습니다. 미용계의 첫 직장인 (주)아모레 퍼시픽 시절의 이야기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신제품 교육을 하게 되었는데, 대강당에 모인 직원들이 모두 비스듬히 누워 발을 의자에 올려놓은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아니 보이고 발만 보이더랍니다. “김정숙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발바닥 선생님들!” 당황하지 않고 위트 있게 상황을 잘 정리한 덕에 첫 강의는 우레와 같은 웃음으로 시작되었고, 그 덕에 인력개발부, 마케팅부, 미용책 교안의 편집을 주관하는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 두 번째 에피소드는 대학에서의 첫 수업 시, “나, 교수는 지도해야 할 (을)입니다. 여러분은 학생으로서 수업을 받아야 할 (갑)입니다. 나는 온전히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온전히 수업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네~”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우렁찬 열정의 강의 소리가 복도를 울립니다.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는 순간, “그래 계단에 오를 기운도 없이 다줬군. 잘했어.” 이럴 때, 김정숙 교수는 가슴을 토닥거리며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교육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이며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 사람의 참된 교육자는 많은 사람의 인생길을 개척하고 바꾸어줍니다. 가르치며 느끼는 보람 김정숙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수로서의 보람을 진정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놓칠 수 없는 것이 봉사 정신 함양입니다. 학생들은 매월 1회 양노원이나 장애인 복지센터 등 정기적인 봉사를 시행하여 마음과 정성으로 보살펴주며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봉사 정신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희생이 기쁨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체험케 합니다. 어눌하게 접하는 학생들의 행동이 어느 새 할머님 할아버님에게 스스로 준비해온 사탕을 입어 넣어주고, 간지럽게 해주며 깔깔 웃는 모습으로 행복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인간의 심성은 한없이 곱고 깊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봉사에 충실할 것을 스스로 다짐합니다. 평생교육 과정과 뷰티 건강 프로그램을 실시할 때면 3시간 내내 가장 밝고 맑은 웃음가득 시간을 보냅니다. 스스로 밝은 표정이 아름다움이란 사실을 찾게 되는 수업이지요. 중요한 것은 표정만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웃고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수업하는 교육자로서 받아오는 행복이 더 크다는 생각에 참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런 교육자에게 누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고운 심성과 교육자의 마인드를 가졌기에 우리는 김정숙 교수를 성공한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치에 맞게 행동하는 미용인 강조 김정숙 교수는 또 말합니다. “미용이란 단어의 개념부터 살펴보면 ‘얼굴과 머리를 아름답게 꾸미다.’입니다. 아름다움이 외모만 꾸민다고 진정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요? 표정과 건강 수업을 하면서 배운 교훈은 웃으니 행복하고 행복하니 아름다워 진다는 사실을 교육생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으로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니 아름다운 단어가 나오고 어느 새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신기한 듯 행복해 합니다.” 미용인으로서의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소망입니다. 노자는 ‘사람은 개나 닭을 잊어버리면 찾아 나서면서도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지 않는다.’고 한탄을 했는데, 잃어버린 자기 자신조차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미용인의 정신을 알 수 있겠습니까? ‘너 자신을 알라.’ 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미용인들이 나 자신을 알고 있냐고 스스로 한번 반문 해 봅시다. 핵심은 철학이 있는 Philosophy & Doctor 정신입니다. 미용인은 스스로 Philo(사랑) sophy(지혜) & Doctor(도움)임을 아셔야합니다. 미용을 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이란 사랑이 있고 지혜가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의무를 부여 받은 미용인임을 아셔한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곧 자신의 발견이고 가치에 행동하는 미용인의 시작입니다. ‘가치에 맞게 행동하는 미용인’으로서 우리는 뷰티산업과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며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을 아셔야 합니다.” 미용교수로서 미용과 미용인에 대한 오랜 성찰이 이런 애정 어린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조언은 기자를 포함한 모든 미용인에게 살아 있는 지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미용계에는 많은 교수들이 계십니다. 미용계 교수들은 나름대로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미용계 발전의 시금석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교수 중 김정숙 교수는 아름다운 마음씨와 미용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용계 제자들의 양성에 힘썼습니다. 사람들을 밝게 만드는 미소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 힘이 지금 우리 미용계 곳곳에 뿌려져 우리 미용계가 더욱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프로필 -아모레퍼시픽 인력개발원 마케팅부 미용시책 담당 -유원대학교 뷰티케어학과 부교수 정년 퇴임 -서울벤처뷰티산업박사클럽(SBDC) 1기 회장 -현 유원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현 한국뷰티산업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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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김정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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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능력, 시집 출간한 이재무 시인
- 이재무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그는 198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40여년 시를 써오고 있는 시인이다. 또 (주) ‘천년의 시작’ 출판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면서 여러 대학과 대학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시집 <고독의 능력> 외 14권의 시집과 시선집 <얼굴> 외 2권,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 외 4권을 간행했으며, 수상으로는 소월시문학상, 이육사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가난과 다혈질과 말솜씨를 유산으로 물려받아 비교적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한다. 다음은 시인 자신이 밝히는 내용이다. -시집 <고독의 능력>에 대하여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런데 이 외로운 감정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외로움의 노예가 되어 감정을 질질 흘리고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외로움을 창조의 동력으로 삼는 이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사는 법에 익숙해야만 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고독에도 능력이 있어야 삶을 생산적으로 창조적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번 시집은 바로 그러한 저의 사유의 편린들을 모아 구성한 것입니다. -이번 시집을 엮으며 기억나는 에피소드 이번 시집이 나오기까지 특별히 겪은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다만 2년 전 강화도에 농막을 하나 장만하였는데 일이 없거나 약속이 잡혀있지 않은 경우 주말에 가서 이틀이나 사흘을 묵었다 오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자연 풍경을 접하면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강화도의 자연은 자연스럽게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프리즘 혹은 필터로 작용하게 되었고, 이렇게 걸러진 정서나 생각이 시가 되기도 하고 에세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시에 대한 생각 평소 시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상투적이긴 하지만 시가 세계에 대한 발견과 인간 삶의 성찰적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 통념을 벗어나 대상과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힘을 부여한다는 것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저에 대한 소문에 과장이 있는 듯합니다. 저는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인이 못됩니다. 극히 제한된 소수의 독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속된 욕망입니다만 베스트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습니다. 소수의 독자들에게 그저 잊히지 않는 시인으로만 남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알겯는 소리> 알겯는 소리가 좋았다 알겯는 소리가 나고 얼마 후 닭장 구석 어두운 모래밭 암탉이 낳은 알이 뽀얗게 빛났다 산고 치른 닭은 알 낳았다는 소식을 울음소리로 알렸다 낳은 알 모아지면 꾸러미에 담아서 장에 내다 팔고 큰 인심 쓰듯 엄니가 찜을 해서 저녁상에 올리기도 하였다 졸음 부르는 햇살 환한 봄날 하오 어디선가 알겯는 소리가 들려와 괜스레 고개를 좌우로 돌려 본다 우리들 어둡고 구차한 생활에도 소소한 기쁨의 알겯는 소리 들려올 일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의 계획은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과거의 일은 개입할 수 없으므로 가급적 집착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고 미래의 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미리 앞당겨 걱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직 주어진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저의 계획이라면 계획이 되겠습니다. -독자들께 한 말씀 하라니 주제넘게 말씀드리면 인생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번 주어진 인생인데 아등바등 억지 부리며 살지 말고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타자를 위한 삶을 살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아갔으면 합니다. 이것은 이기주의와는 다른 말입니다. 주체적으로 삶의 주인이 되어 살라는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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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능력, 시집 출간한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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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출간한 허향숙 시인
- 허향숙 시이은 충남 당진에서 나고 자랐다. 여고시절 대전에서 생활했고 대학은 서울에서 보냈다. 이후 서울시에서 공무원을 지내며 이후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2021년 첫 시집 [그리움의 총량 (시작시인선 379, 2021)] 을 펴냈다. 이후 두 번째 시집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시작시인선 499, 2024)]로 다시 독자 분들을 찾아 간다. 현재 시낭송과 스피치를 가르치고 있으며 전문 시낭송가와 MC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하는 시인 자신이 밝히는 시집에 대한 답변이다. -이번 시집을 소개하면? 시집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비는 아래로 비상한다>에서는 일상 속 사유에서 얻은 시편 17편을 실었습니다. <2부: 옷처럼 생을 벗고 입을 수 있다면>에서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 중의 하나인 그리움에 대한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 21편입니다. <3부: 사랑은 그대를 입고>에서는 사랑의 형식과 형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성찰의 시편들로 17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부: 소리를 지운 말꽃>에서는 17편의 시편들을 들여 놓았습니다. 현대인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입니다. 허연 시인의 표4 일부로 갈음할까 합니다. “허향숙 시인이 가리키는 곳은 어디일까. ‘그늘’이다. 그의 말대로 주장도 차별도 편애도 없는 그늘이 시인이 가리키는 기착지다. 그의 그늘에서는 밝을 때는 빛을 내지 못했던 것들이 웅성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그들은 따뜻한 위로다. 때로는 추억의 이름으로 때로는 죽음의 이름으로 때로는 가난하고 유약한 것들의 이름으로 시인은 그늘을 찾아 들어간 우리를 위로한다.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그늘에게서 위로를 받는 기분이란. 시인의 절묘한 서정은 절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무너질 때를 알고 무너지는 미덕이 있다. 그가 이제는 하늘에서 별이 되었을 어린 딸의 마지막을 기록하면서 썼듯 그의 시에는 ‘달개비 꽃처럼 떠는’ 세상의 모든 가냘픈 것들에게 던지는 위로가 있다. 왜 자꾸 가슴이 뭉클해질까. 그가 데려간 그늘에서 나는 오늘도 코끝이 찡하다. 그의 그늘이 좋다.”-허연- -이번 시집의 출간 소회 및 동기 매일 같이 왼종일 온통 詩였습니다. 아니 일찍 이승을 벗어 놓은 채 떠난 수야 생각뿐이었습니다. 다 못 준 사랑, 다 못 준 환희, 다 못 준 그리움.... 줄 것이 많은데 아무 것도 주지 못한 것 같아 못내 후회되고 아쉽고.... 그래서 생과 함께 죽음을 바라고 그녀와 함께 시를 바라 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수 백 편의 시편들을 정리하며 생몰에 대해 생각하고 나도, 그녀도 오랜 과거와 미래를 이끌고 현재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라는 문장을 만났고 시집명으로 정했습니다. 첫 시집 [그리움의 총량]이 출간 한 달 만에 1000권 모두가 독자의 품에 안겼고 지난 2월에 3쇄를 찍었습니다. 많은 시인과 평론가들께서 다뤄주셨고 지금도 독자 분들께서 매일 읽어 주고 계시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이고 위로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 영혼의 둘째도 기쁜 이들께 많이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슬픈 이들께 많은 위로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운 이들께 많은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모든 이들께 감동이 되길 원합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문학은 공통어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는 더욱 그렇지요.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전문 용어를 써가며 이야기 하지만 시는 그 모든 영혼의 마지막 휴식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학에서, 詩에서 감동이 없다면 비윤리적이다, 라고 존경하는 중견 시인의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시적 개연성과 감동을 중히 여기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어떤 시를 쓰시고 싶은지? 시를 통하여 감당할 수 없을 슬픔에 대해, 아픔에 대해, 그리움에 대해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비울음을 통해 밤새 울고 일어난 땅의 맑은 얼굴 같은 그런 시를요. -애착이 가는 자작시 한 편 소개 [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에 수록된 72편 모두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굳이 한 편을 소개하라 하시면 시집 처음에 수록된 '무애를 살다'로 하겠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 거대한 슬픔으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내면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무애를 살다 슬픔이 흘러왔다 흐르게 두었다 분노가 돋아났다 돋게 두었다 기쁨이 엎질러졌다 그냥 두었다 현요함이 날아들었다 번지게 두었다 감정의 숲에 봄날의 오후 같은 천진이 피었다 난만하게 두었다 -앞으로의 계획 막내가 사회인이 되면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런 중에 가능하면 시전문 서점을 내고 싶고 그동안 써 온 동시들을 모아 동시집도 발간하고 싶구요. 또한 그동안 찍어 온 수많은 사진들에게 호흡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디카시집도 내고 싶습니다. 그동안 써 온 산문들을 모아 산문집도 낼 예정이구요. 가만 보니 욕심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은근 욕심이 많네요.(미소) -독자들께 한 말씀 이 귀한 만남을 중히 여기며 내내 함께 하겠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생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독자 분들의 내, 외면의 강건함과 아름다움, 조화로운 개성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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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미래에서 너를 만나고, 출간한 허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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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미용협회 이선희 지부장
- “동두천시미용협회는 하나로 뭉친 끈끈한 협회입니다” 동두천시미용협회 이선희 지부장 -자기소개 아무리 큰나무라 하여도 혼자서는 울창한 숲을 만들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 동두천시미용협회는 180명의 회원님, 13분의 임원님들이 모여 동두천시미용협회를 발전과 변화 아래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동두천시미용협회 이선희 지부장입니다. 저는 미용에 입문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많은 희로애락이 있었지만, 미용이란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이선희헤어샵’을 운영하고 구역장, 부지부장, 현 동두천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그 누구보다 저 자신이 누구에게 힘이 되고 저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큰 소개라고 생각합니다. -동두천시미용협회의 자랑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 지부는 회원 180명과 임원 1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원분과 임원분들이 봉사활동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고 계십니다. 동두천시장애인복지관, 배드민턴장애인분들에게 매월 첫 번째 주 화요일 미용봉사 및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동두천시 자원봉사자대회에서 자원봉사센터 박형덕 이사장님(현 동두천시장님)에게 저희 동두천시미용협회가 단체상(자원봉사대상)을 수여받았으며, 동두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감사장도 수여했습니다. 바쁜 시간을 할애하여 회원분들과 임원분들이 솔선수범으로 봉사를 함께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끈끈한 동지애를 만드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동두천시미용협회는 40년 역사를 이어오기까지는 1대 최영희 고문님부터 14대 고민화 고문님에 이르기까지 후배들을 사랑하시고 존중해주시며 아낌없이 기술이나 노하우를 알려주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선, 후배님께 고문님들에게 받아 왔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동두천시미용협회는 그 어떤 단체보다도 하나로 뭉친 끈끈한 협회라고 생각합니다. -봉사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현재 동두천시미용협회 지부장, 동두천시여성단체 부회장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관 봉사, 명절 전 부치기, 장수 효사진 미용봉사,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 자원봉사자 축제(65세 어르신 커트봉사), 학교 밖 청소년 밑반찬 밀키트 자원봉사, 어린이날 아이스크림 봉사, 김장 봉사 등 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힘에 부치는 나이가 되어도 체력이 도와주는 한 끝까지 봉사하고 싶습니다. -미용 지도자는 어떤 자질과 품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직업을 가지든 기본은 성품입니다. 특히 우리 미용인들은 사람과의 밀접한 접촉을 하는 직업이기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음가짐도 만져 줄 수 있는 큰 성품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아름다움을 이어줄 수 있는 튼튼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평소 미용철학 뷰티케어매니저 교육을 이수하여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과 장애인분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진행하였고 앞으로도 꾸준하게 실행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려운 이웃에게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직업에 대한 큰 보람이 생깁니다. 제가 서 있는 곳에서 늘 빛이 되고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저의 손길이 손님들의 모습을 변화시켜 주었을 때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봉사를 할 때 어르신이나 장애인분들이 꼭 움켜쥔 손으로 사탕을 내밀며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건넬 때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더 많은 봉사로 나눔을 해야겠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욱더 생깁니다. 이선희 지부장 프로필 -현) 이선희헤어샵 운영 -미용사회중앙회 최영희, 이선심회장상 표창, 동두천시 박형덕시장상 표창, 국회의원 김성원의원상 표창, 경기도도지사 공중서비스향상 이재명상 표창 그 외 다수 -2013년 동두천시미용협회 부지부장 -2015년 경기북부도지회 감사 -2019년 국제한국미용 페스티벌 트레머리 은상수상 -2020년 뷰티케어매니져 이수 -현) 2022년 동두천시 지부장 -현) 2022년 동두천시자원봉사 이사장 -현) 2023년 동두천시 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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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미용협회 이선희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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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
- 소외받는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집 『사는 거, 그깟』 출간하여 호평 받는 이호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시인이자 여행작가 이호준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많은 산문집과 기행산문집을 펴냈습니다. 대표적인 것만으로도 산문집에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1, 2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 『자작나무숲으로 간 당신에게』 등이 있고 기행산문집으로는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 『나를 치유하는 여행』, 『세상의 끝 오로라』 등을 썼습니다. 2013년 등단했고 2018년에 첫 시집 『티크리스강에는 샤가 산다』를 냈습니다. 6년이 지난 올 2월에 두 번째 시집 『사는 거, 그깟』을 출간했습니다. -이번 시집 <사는 거, 그깟>을 소개하면? SNS에 『사는 거, 그깟』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시집의 콘셉트는 ‘떠돌이 시인 이호준이 세상의 약자들에게 내미는 소소한 위로’, ‘외롭고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차려내는 따뜻한 밥상’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처럼 소외받는 대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제 시들은 그렇게 떠도는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적은 일종의 ‘보고서’입니다. 특히 세상의 그늘진 곳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쓴 시가 많습니다. -이번 시집이 나오기까지... 앞에서 말한 대로 6년 동안 떠돈 궤적이 시 속에 담겨 있습니다. 많은 분이 제 시를 읽고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시가 됐다”고 평가해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집을 내라는 권유가 여러 번 있었는데, 뭔가 미진한 것 같아서 계속 미뤘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72편의 시가 실렸는데, 그 72편을 고르기 위해 100편 이상의 시를 버렸습니다. 제 눈에 미흡한 시는 독자에게도 미흡할 테니까요. 어느 정도 완성된 시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저는 평론가나 시인을 대상으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오로지 독자를 바라보고 씁니다. 전문가들의 눈높이에 맞춘 시를 써서 좋은 평가를 얻기보다는 대중에게 깨달음을 전하고 그들과 소통하는데 더 마음을 쓴다는 뜻입니다. 인기에 영합하겠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이 시로써 위로받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어려운 시어(詩語)를 택하지 않습니다. 제 시만큼은 많은 사람에게 편안하게 다가가, 가슴 데워주는 역할을 하기 바랍니다. -많은 독자들께 사랑받는 이유? 글쎄요. 사랑을 받고 있는지 장담하기는 어렵겠지만, 만약 사랑받고 있다면 위에 말한 이유 때문일 겁니다. 제 시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은 분들이 박수치고 격려해주시는 덕분이겠지요. 시를 읽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분, 시를 읽다 전율이 일었다는 분, 제 시를 모두 필사했다는 분들의 고백이 제겐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지고 갈 빚이기도 하지요. 시인은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고 오만해져서도 안 됩니다. 박수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시를 쓰는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애착이 가는 자작시 한 편 소개 이런 질문이 가장 난감한데요. 제가 쓴 시는 하나하나 똑같은 무게로 애착이 갑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2월 아침에」라는 시더라고요. 제 애착보다는 독자의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2월 아침에 겨우내 파먹은 김장독 우묵 깊어도 쌀독 바닥 긁는 소리 늑골 적셔도 뒤축 떨어진 고무신마냥 나뭇간 헐거워도 2월이 반가운 이유는 다리 끝에서 3월을 만날 수 있기 때문 일부러 입술 동그랗게 내밀어 봄! 불러볼 수 있기 때문 외길 따라 걷다 모롱이 돌고 내 건너면 겁겁한 밭종다리 아침놀에 풍덩 온몸으로 팔매질하는 소리 괜스레 마음 총총한 늙은 홰나무 푸르르 살비듬처럼 쌓인 시간 터는 소리 -앞으로의 계획 시인의 계획은 늘 시에 머물게 마련이지요. 다행히 이번 시집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 힘이 납니다.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저와 제 시에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께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올해는 시집 외에도 산문집을 한 권 낼 계획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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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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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유지하며 사는 김현남 원장
- “20년 젊게~! 20년 아름답게~!” 젊음을 유지하며 사는 김현남 원장 “20년 젊게~! 20년 아름답게~!”라는 신념 아래 매일 감사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김현남입니다. 미용이라는 직업으로 평생 살아온 자존감은 과거도 행복하였고 현재도 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모레 퍼시픽 회사에 25년간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미용산업 발전에 깊이 참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김현남 원장은 밝혔다. 1970년대 일본시세이도화장품회사에 수십 회 미용연수와 전달교육, 1980년대 글로벌미용의 세계화에 중추적으로 활동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경력으로 남부대학교 전임교수를 역임했으며, 대학에서 K-뷰티를 주도한 전문 미용 후배양성에 힘쓴 것입니다 2005년 "뷰티디자인" 명칭의 코리아 뷰티디자인학회 창립을 하였으며, 2019년 "미용복지"라는 이슈를 공론화하는, 미용복지연합회 창립을 주도하였던 바 있습니다. 선제적 이슈를 만들어 소통하며 실천하고 공유하였으며 결론은 이슈 방향대로 사회 변화에 일조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음을 유지 하시는 비결 “20년 젊게(내면미)~, 20년 아름답게(외면미)~” 매일 감사하고 기쁨으로 살고 있습니다.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 결론으로 마무리합니다. 호기심이 여전히 많아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모르는 것은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급변하는 사회에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며 매일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젊음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하시는 일 시니어 외부 특강 & 재능기부 및 지역문화 정체성 찾기에 참여하고, 블로그(뉴시니어 뷰티교실)와 유튜브(김현남TV)를 운영하여 매일 매일을 기록하며 남기고 있습니다. 젊은이처럼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돌이켜보면 순간순간 모두가 즐거웠고 행복이었습니다. 미용계에 계신 모든 분들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특히, (주)아모레퍼시픽 근무 때는 시세이도(일본) 미용연수를 통한 사내전달 교육으로 미용산업화 기여, 세계미용인 초청세미나 실시, 해외 미용연수단 모집하고 인솔하여 오늘날의 K-뷰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인재육성의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숙명여자대학교 초빙교수로서 미용이라는 기능에서 미용예술분야로서 꽂을 피웠고, 남부대학교 전임교수 시절 진정한 미용인 육성에 전념한 것, 전임교수로서 "코리아 뷰티디자인학회"의 회장으로서 ‘미용학이 인문학을 만나다’라는 주제로서 다양한 전공학문분야와 공동학술 발표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20년 젊게!~ 20년 아름답게!~”라는 슬로건으로 2000년경부터 우울증 예방과 치매예방의 미용복지에 대하여 시니어뷰티로서, 뷰티테라피 미용심리치료가 100세시대의 보편적 복지로써 미용복지 필요함을 소리 내었습니다. -미용 철학 어떤 학문이든지 기초(이론, 기술)가 탄탄하여야 하며, 내공의 연마로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스타일이 표출됩니다. 미용분야는 좌뇌(논리적사고)와 우뇌(창조적 발상)의 기능을 골고루 연마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뇌를 개발하는 풍부한 감성 경험을 하려고 했습니다. 미용은 인공지능으로 할 수 없다는 신념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미용인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K-pop, K-뷰티의 화룡점정은 우리 미용인들이 있음으로서 아름다움은 완성된다는 자긍심을 갖아야 되며, K-뷰티의 세계화와 더불어 미용기술도 세계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미용인 여러분! 몸이 건강해야 100세 시대에 사랑하는 미용을 오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미용을 향한 열정만큼 건강도 열정적으로 돌볼 것을 권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그동안 소홀하였던 것들의 재발견 및 이를 정리하는 것에 힘쓰고자 합니다. 우리 미용니들과 오래오래 행복을 공유하며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남 원장 프로필 현)-서원뷰티코칭교육개발원 원장(“20년을 젊게~ 20년 아름답게~”) -한국미용복지연협회 -코리아뷰티디자인학회 -상표등록출원 다수 전)-남부대학교 향장미용학과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초빙교수 (미용산업최고경영자과정) -㈜아모레퍼시픽부장 -(일)시세이도화장품회사 담당과장(시세이도화장품회사 국제부 미용부과장 매니지먼트교육 및 국내 미용연수 20회 이상) -태평양아카데미 교육부부(일본 및 유럽 유명미용연구가 국내미용초청 세미나 개최 일본 및 유럽 해외미용연수 프로그램 운영) -한국디자인진흥원 (생활산업팀)디자인정책위원 위원 및 위원장 -대한민국뷰티디자인엑스포 조직위원 및 세미나분과위원장 -월드미스유니버시티 조직위원회 샤프롱 및 심사위원 -소상공인진흥원 미용비법전수전문가 -미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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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유지하며 사는 김현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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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 인생 아름다웠노라
-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 인생 아름다웠노라 정순옥 미용장 정순옥 미용장(사진=본인제공)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시가 된 미용 인생 -정순옥 미용장 늦은 나이에 미용을 시작했다 값비싼 경험 끝 최고의 미용은 기술력 절치부심 노력 끝에 미용장이 되고 미용장 서울지회장이 되고 미용인들과의 단합이 생의 즐거움이었다 명예와 부는 건강할 때 지키는 것 병마와 싸우며 처절하게 배운다 백지 위에 그리움, 원망 적셔놓았다 이제 시인이 되어 분신들을 쏟아놓을 터 가거라, 가서 미용 인생 30년의 인연은 아름다웠노라 전해주거라 시집 세 권을 낸 시인 미용인들 중에는 미용 외의 분야에서도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를 쓰는 시인은 물론이고 화가, 서예가, 시낭송가, 역학자, 가수 등등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기자는 이처럼 문화예술계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미용인들을 위해 대한미용예술가협회(가칭)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미용예술가협회 내에 시 분과, 시낭송 분과, 미술 분과, 가수 분과, 캘리그라피 분과 등을 소속 분과로 둘 계획입니다. 미용인 예술가 중 시인들이 특히 많습니다. 특히 정순옥 미용장은 첫 시집 <음표 없는 멜로디>에 이어, 두 번째 시집 <기다림의 언덕>을 간행했고, 세 번째 시집 <바람 따라 쉼표 하나>를 출간 준비 중입니다. 시집 편수가 시인의 역량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현역으로 활동하는 시인들 중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정순옥 미용장은 시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늦은 미용계 입문 정순옥 미용장은 결혼 후 늦게 미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직원들이 일을 하고 그저 관리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영등포에 헤어, 피부, 웨딩드레스, 화장품판매까지 하는 토탈숍을 차렸습니다. 결국 2년 만에 권리금, 시설비, 비품 등 서울에서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을 지불하고, 미용은 기술력이 좌우한다는 큰 경험을 얻게 됩니다. 미용실 실패 후, 친정엄마, 오빠의 도움으로 미용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술만이 미용인으로 살아남는다는 각오로 낮에는 직원들 뒷바라지를 하고 밤에는 여러 스승님들을 찾아다니며 미용대회, 헤어쇼 참여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불철주야 각고로 노력한 끝에 공부하는 미용사로 자리를 잡았고, 미용장 자격증에도 도전하여 당당히 합격하였습니다.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었음은 물론입니다. 노력의 결실은 달콤합니다. 정순옥 미용장은 사단법인 한국미용장협회 제 7대 서울지회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미용장협회 서울지회장 재직 시 회원들과 몇 날 밤을 새워 만들던 작품들 중 머리카락공예로 만든 숭례문을 잊지 못합니다. 작품성도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회원들과의 단합이 으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족한 공부를 하면서 배우고자하는 미용인들에게 스승이 되기도 하고, 미용인 손길이 필요한 봉사도 참 열심히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때를 미용인으로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시기로 정순옥 미용장은 기억합니다. 책임감과 미용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했던 정순옥 미용장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찾아온 병마 시로 승화 정순옥 미용장은 또 말합니다. “미용은 기술이 첫째라면 인성도 첫째라 생각합니다. 적당히 명예를 얻었을 때 내려오고, 나누고 베풀 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요즘 많이 듭니다. 가족도, 건강도 지키면서 자랑스런 미용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미용인에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지 말자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순옥 미용장은 몇 년 전, 혈액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어 현재는 항암치료로 검게 변한 얼굴, 심한 뼈 통증 등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어두운 모습이 싫어 친구들, 지인들 모두 보고 싶은 마음을 닫고 지냈었습니다. 이때 마음을 다잡게 해준 것이 시였습니다. 신이 주신 시련을 하얀 백지에 쏟으며 토닥토닥 자신을 위로하며 백지 위에 그리움, 원망, 회한을 쏟아 부었습니다. 정순옥 미용장의 주옥같은 시들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병마의 고통을 시로 승화한 것입니다.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람이 되어 여기에서 전에 기자가 소개한 정순옥 시인의 시 한편과 해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람이 되어 정순옥(1960~ ) 봄 내음 가득 담아 발길 닿는 대로 너에게로 가고 싶다 그리움을 풀어 놓은 향기 속에 녹아내리는 뜨거운 가슴 붉게 익어버린 홍시 하나 수줍음에 바람이 되어 눈이 덮인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본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시는 정순옥 시인의 “바람이 되어”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연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 비해 나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온갖 만물 중 인간만이 자연에 빙의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천둥, 번개, 하늘, 신선, 구름, 물, 새, 꽃, 바위, 나무 등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거개의 것들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듯한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바람”은 어디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인간의 생각을 빙의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대중가요나 시에 바람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람은 그런 연유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입니다. 이 시에서도 바람은 시인의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는 대체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계절을 통틀어 시인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봄 내음 가득 담아’서 ‘너에게로 가고 싶’은 바람으로, ‘그리움을 풀어 놓은’ ‘뜨거운 가슴’으로, 그리움에 익어버려 붉게 물든 ‘홍시’로, 나타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다. 겨울에는 ‘눈 덮인 소나무 가지를/ 흔들어’ 소나무의 고단함을 풀어주려는 사랑을 가득 담은 바람으로의 동화(同化)를 꿈꿉니다. 바람이 되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것은 이웃이나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에 다름 아닙니다. 사계절 내내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니 더욱 숭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인이 꿈꾸는 아름다운 상상이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정순옥 미용장의 꿈은 자연에 순응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용인으로서 열심히 살았고, 이제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픔의 고통을 시로써 승화하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보고 싶은 지인들도 만나고 약선요리, 천연발효식초 등 취미생활도 하며, 엄지 척 해주는 아들딸에게 감사하며 예쁜 손자들과 여행을 다니며 남은 생을 즐기고 싶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소박한 삶을 꿈꾸고 있는 정순옥 미용장은 미용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미용인으로, 시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시인으로 오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정순옥 미용장의 쾌유를 그래서 우리 미용인 모두는 간곡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정순옥 미용장이 건강하게 미용인들 앞에 다시 설 날을 기대해봅니다. 정순옥 미용장 프로필 -미용장 -사)한국미용장협회 제 7대 서울지회장 역임 -산업인력공단 미용장 실기채점위원 역임 -대한미용사회 용산구지회 부회장 역임 -도모헤어 원장 -시인 -시집 <음표 없는 멜로디> <기다림의 언덕> <바람 따라 쉼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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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 인생 아름다웠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