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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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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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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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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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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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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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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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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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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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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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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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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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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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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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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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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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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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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가시의 시간, 시집 출간한 배선옥 시인
- 따뜻하고 가슴 촉촉한 시집,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시인 배선옥입니다. 인천에서 시화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기도 하고 방송대 생활체육지도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기도 합니다. 3-4년 전부터는 취미삼아 서각도 하고 있습니다. 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하였습니다. 그동안 <회떠주는 여자>, <오래 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 <오렌지모텔>등의 시집을 출간하였고 얼마 전 네 번째 시집 <초록가시의 시간>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 <초록가시의 시간>을 소개하면? 2016년 인천문화재단의 문예진흥기금으로 출간한 <오렌지모텔> 이후 8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냈습니다. 이번 시집은 4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크게는 두 개의 구성이라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직장생활과 일상 속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과 사람들 그리고 그 관계들이 모티브가 된 시편들과 저의 어린 시절이 담긴 지역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대한 기억들이 모티브가 된 시편들입니다. 따뜻하고 촉촉한 시편들로 엮어진 시집을 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는데 이번 시집에서 그 소망들이 어느 만큼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을 내게 된 동기가 있다면? 시인이 시를 열심히 쓰고 잘 쓰고자 노력해야 하고 또 잘 쓰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집이란 시인의 삶 또는 시인이 완성하는 시의 생애에 관한 문제가 얹혀있다고 봅니다. 어느 시기부터 어느 시기까지 시인의 삶과 시의 삶을 함께 정리하고 계획을 다진다는 의미이겠지요. 시간의 정리가 시집을 묶어내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시인의 시 창작론이 있다면? 저는 대단한 이즘이나 창작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낮게, 작게, 소박하게 라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사물과의 어깨를 맞추고 작고 낮은 곳에 자리한 사물들과도 눈을 맞춰보려 노력합니다. 엄청난 기교나 교훈을 넣어 가르치는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제 나름의 창작원칙입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더군요. 낮고 작고 소박한 글감과 문장들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꾸밀 수 없는 민낯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글도 행동도 매사에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만 아무리 꾸미고 가꾸어도 결국 글을 쓴 사람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시의 세계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나름의 시창작론이기도 합니다. -애착이 가는 자작시 한 편 소개 <초록가시의 시간> 첫 페이지에 실렸던 ‘전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생前生 구두를 잃어버렸다 그저 소박하게 살았던 지인의 소박한 장례식장에서였다 옆 상가喪家와 뒤섞인 출입구 잠시 주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신발들끼리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줄을 서야한다며 술렁거리는 사이 슬그머니 내 신발이 낯선 주인을 따라가 버린 모양이다 뒤늦게 짝짓기 프로그램 출연자 같은 얼굴로 나타난 임자를 찾아 신발들 흩어지고 난 뒤 우두커니 남겨진 낡은 신발 한 켤레 내 눈치 보며 안절부절 못한다 보아하니 얘야, 너도 나만큼 고단한가보구나 뒤축도 닳고 앞창도 살짝 들린 그 놈 내려다보다 눈 질끈 감고 발 들이밀었다 양말 신겨지듯 착 달라붙던 -앞으로의 계획 계획을 세워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열심히 살자로 원칙을 좀 바꿨습니다. 현재 저는 방송대 생활지도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생활체육지도사와 스포츠경영관리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1차 필기는 합격을 했으니 올해는 실기 시험에서 성공하는 것이 우선은 목표입니다. 시 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세계인데?라고 의아해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제대로 된 좋은 시를 쓰려면 시인이 아는 게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때 수학을 열심히 공부한 적도 있었는데요, 당시 수학의 어떤 부분이 시와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에 빠졌던 거 같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꾸준히 공부하고 열심히 시를 쓰고 좋은 시집을 출간해내는 시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우아하게 나이 먹는 것입니다. 나이에 걸맞게 곱게 나이 먹은 여인네가 되는 것도 계획이라는 계획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미용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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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가시의 시간, 시집 출간한 배선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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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계 발전을 위해 1억 원 기부, 코코리움 헤어샵 탁진학 원장
- 지난 24일 대구를 찾아 현지에서 '코코리움' 헤어샵을 운영하는 탁진학 원장을 인터뷰했다. 올해 17년 차 헤어디자이너로 13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탁 원장은 현재 2개 지점과 30여 명의 직원이 함께 근무하고 있고 또 미용 전문 플랫폼 ‘헤어베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탁 원장은 ‘헤어베어’라는 플랫폼을 통해 미용인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종합적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서경대와 한성대, 계명문화대 등 미용학과를 가진 대학과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학생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플랫폼은 학생들을 위해 한국장학재단과 연계해 장학 지원 및 취업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이나 힘든 시기에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대표를 위해 구인·구직 및 아카데미 운영, 그리고 경영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탁 원장은 “‘헤어베어’ 플랫폼을 통해 미용 인재들이 졸업 후 구직과 업체 대표들은 유능한 인재를 구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이 될 것이다. 또 업체 운영과 관련 서비스 제공을 통해 모두 시너지가 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타 사와 다른 점과 장점 탁 원장은 “현재 미용업계 구인·구직 사이트는 몇몇이 존재한다. 하지만 ‘헤어베어’ 플랫폼은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플랫폼”이라 전했다. 그러면서 “사이트와 플랫폼의 차이점이 뭔지 아시나요?”라며 “사이트는 어떠한 서비스를 실행할 수 있는 웹”이라 말하며 “그와 다르게 플랫폼의 뜻은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연결된 관계를 맺으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설명했다. ‘헤어베어’플랫폼은 단순 구인·구직자를 연결하는 서비스 웹이 아니다. 미용 대학생의 장학금 지원, 온라인 교육을 통한 커리어 성장 클래스, 미용인들 간의 소통 커뮤니티 공간 등을 마련한 미용 전문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또 실무 외에 미용업계 성장을 위해 필요한 콘텐츠 제작 능력, 마케팅 지식 등 제2의 요소를 배울 수 있는 능력향상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미용인이 다른 제2의 분야의 지식을 적용해 매장관리, 매니저 역할 등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 '헤어베어'의 장점이라 설명했다. 탁 원장은 “경력 10년 이상의 업체 대표이자 현직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만큼 원장, 디자이너, 취업준비생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 밝혔다. 홍보 및 마케팅 전략 헤어베어에는 많은 미용인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학생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미용학과 학생들이 향후 10년 간 우리 미용업계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며, 미용산업에 이바지할 역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학생들에겐 어떤 고민이 있을까, 어떠한 도움이 필요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과, 헤어베어는 미용학과를 보유한 전국의 대학교와 산학협력관계를 형성하였고, 가족회사 및 MOU 체결을 통해 최대한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취업 지원금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푸른등대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재학생 및 졸업생에게 1억 원 이상의 장학금과 지원금을 전달하고자 하였고, 이는 '헤어베어'에서 기부한 금액을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오직 미용관련 학과에만 지원될 수 있도록 장학사업을 연계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학금 및 취업 지원금은 재학생 및 졸업생의 출결점수, 교수님의 추천점수, 근태점수 등을 합산하여 지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헤어베어의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장학금 및 취업지원금의 증액과 더불어, 이 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헤어베어'는 앞으로 미용인이 될 많은 미용초년생들을 위해, 언제나 앞장설 것을 약속드립니다. 홍보 및 마케팅 전략 탁 원장이 말하는 플랫폼의 중요 사항에 대해서 “‘헤어베어’에는 많은 미용인이 활동한다. 그중에 학생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미용학과 학생이 향후 10년간 우리 미용업계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다.”라고 말했다. 또 “ 미용산업에 이바지할 역군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학생들에겐 어떤 고민이 있을까, 어떠한 도움이 필요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헤어베어는 미용학과를 보유한 전국의 대학교와 산학협력관계를 형성하였다. 가족회사 및 MOU 체결을 통해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장학금 및 취업지원금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렇게 “푸른 등대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1억 원 이상의 장학금과 지원금을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헤어베어'에서 기부한 금액은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오직 미용 관련 학과에만 지원될 수 있도록 장학사업을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재 장학금 및 취업지원금은 재학생과 졸업생의 출결 점수, 교수님의 추천점수, 근태 점수 등을 합산하여 지급하고 있다. 앞으로 헤어베어의 이용자가 많아지면 장학금 및 취업지원금의 증액은 물론 다양한 방법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헤어베어'는 앞으로 미용인이 될 많은 미용 초년생들을 위해, 언제나 앞장설 것을 약속한다.”라고 말했다. 평소 미용 철학 평소 미용업계에 종사하며 철학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탁 원장은 “미용 서비스가 고부가 서비스산업은 맞지만 제가 미용을 시작했던 2007년 미용업계는 이미 레드오션에 접어든 사업이었다.”라며 “현재는 한 집 건너 한집이 미용실이고 OECD 국가 인구 대비 중 미용실, 미용사 숫자가 가장 많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농업적 근면성을 가진 헤어디자이너가 되자.”라고 직원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이라 했다. 진정한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특히 미용사는 고객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장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꼭 두 발로 서서 일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늘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제자들과 직원들을 생각하고, 한층 더 높은 품질의 헤어디자인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시간이 모여 저희 헤어샵이 발전해 나가는 원동력이자 저의 미용 철학”이 되었다고 말했다. 미용계에 종사하며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이렇게 기자가 묻자 탁 원장은 “매일 직원들과 합을 맞춰 일하는 시간도 매우 즐거웠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고객에게 인정받는 순간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처음 온 고객이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고 10년 혹은 그 이상 오랜 단골손님이 되신 분을 마주하면 얼마나 기쁘고 뿌듯하다.”라고 답변했다. 또 탁 원장은 “네이버플레이스나 카카오헤어샵에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받았을 때, 예상치 못한 놀라운 매출을 달성했던 것도 즐거웠습니다.”라며 “결국 함께 성장하는 직원과 제자를 보며 더 즐거움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0년 이상 함께한 직원도 있고 얼마 되지 않은 직원도 있다. 이들이 성장해 나아가는 모습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라고 일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그러며 “헤어베어 플랫폼을 만든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 시작된 일이다. 앞으로 저희 '헤어베어'를 통해 많은 미용인이 선배로서 후배를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었으면 한다. 또 후배들은 발맞춰 나아가며 함께 상생하는 상상에 더욱 행복하다.”라고 밝혔다. 미용인들께 한마디 이러한 질문에 탁 원장은 “업체 대표, 미용과 학생 등 여러 미용인이 각자 원하는 목표에 맞게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플랫폼)을 만들어 나아갔으면 한다. 우리 플랫폼의 궁극 목표인 미용업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라고 전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헤어베어'라는 플랫폼은 미용인을 위한 구인·구직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온라인 교육 콘텐츠, 미용인 연합 포럼, 대학교 특강 등 여러 프로그램을 접목해 고도화할 예정이다. 현재 근면 성실한 학생들이 장학금과 취업지원금을 통해 우수한 미용인으로 사회에 첫 발돋움을 하는 순간에 저희가 든든한 지원군 역할 하는 것이 목표라 탁 원장은 말한다. 그리고 힘든 시기지만 업체 대표님들께 잘 성장한 미용 인재를 보내드리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미용인 모두 '헤어베어'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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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계 발전을 위해 1억 원 기부, 코코리움 헤어샵 탁진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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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자 지부장 회원 '자질 향상' 고객만족 실현
- 대한미용사회 광양시 이근자 지부장을 만났다. 이 지부장은 34년 동안 미용인으로 외길 인생을 살며 현재 리헤어 피카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미용사회 광양시 지부장과 도지회 수석 부지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지역사회의 장애인과 독거노인을 비롯해 취약계층에 재능기부와 봉사활동을 통해 회원들과 기술 공유 및 화합을 다지고 있다. 이근자 지부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 회원 숫자는 인근 타 시의 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열정과 화합, 그리고 단결과 봉사는 어느 시·군 못지않게 우수하다. 그리고 회원 상호 간에 끈끈한 결속력은 서로 힘든 부분을 다독이며 풀어가는 멋진 지부이다.”라며 자랑했다. 이 지부장의 지부 운영에는 철학이 있다. 첫째, “회원이 있어 지부가 존재하는 것”이라며 회원들과 소통을 최우선으로 한다. 둘째, “개인의 실력 인정과 기술 보급 우선”이라며 각 세미나를 통해 교육에 힘쓴다. 셋째, “타 단체와 협약 봉사활동을 같이 이끈다.”라는 기준으로 미용 단체를 알리고 있다. 광양지부 이 지부장은 소외 계층이나 복지센터, 장애인 시설과 노인을 대상으로 미용 서비스를 재능기부하고 있다. 또한 대화를 통한 심리 안정 유도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 지부장은 “전남 동부지회 하옥현 지부장님은 기술교육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강조하는 분이며 소규모 세미나를 이끌고 계신다”라며 자신의 멘토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지부장은 “저도 적극적인 미용 기술 보급에 힘써 질 좋은 미용 기술을 널리 알리겠다.”라고 밝혔다. 또 “회원의 자질향상과 회원 모두를 어우를 수 있는 넉넉한 포용력 및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미용계 지도자가 가져야 할 품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용 기술은 끝없이 배우고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끝이 없다.”라는 지론이다. 그렇기에 “고객의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치유도 미용을 통해 제공돼 수혜자에겐 행복을 전달하는 뜻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미용업을 하며 행복한 기억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코로나 시국 이전 광양시 미용인들의 단합을 위해 주관한 체육대회가 행복한 기억”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서로 단결과 합심으로 응원을 외치고 함께 땀 흘려가며 결속력을 보였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올해 제2의 한마음체육대회를 광양시지부 원장님들과 함께 개최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억으로 “권기형 교수님의 GHS(Global Hair Study)를 통해 여러 원장님과 기술교육을 함께 배우며 여러 작품을 만들어 순천 ‘미인전’이란 작품전시회를 열었다.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출품하고 전시했을 때 그동안 노력의 결실이 매우 행복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봉사활동을 이야기하며 “여러 단체와 활동하며 제가 건강해서 재능기부를 할 수 있고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이 오히려 참 감사했다.”라고 회고했다. 이런 점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모두를 이롭게”라는 모토로 아름다움에 대한 교육으로 미용인 직업에 긍지와 자부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속적 기술교육과 회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통해 결속력 있는 지부로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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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자 지부장 회원 '자질 향상' 고객만족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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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나아가고 있습니다"
- “회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리미용협회 박정임 지부장 박정임 지부장(사진=본인제공)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뷰티라이프 애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구리미용협회에서 3선으로 연임 중인 박정임 지부장입니다. 중앙회 기술 강사 4기이며, 현재 구리시에서 ‘박정임헤어’를 32년 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용을 시작한 지는 벌써 46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구리지부의 자랑은? 저희 지부는 구리지역 회원 여러분과 임원 분들이 동지애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동지애로 똘똘 뭉쳐 있다는 예가 많이 있지만 실제 예를 들자면, 2년 전 지부의 자금 사정으로 회비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단 한 분의 탈퇴도 없이 회비 인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지부의 임원들은(13명) 지부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임원회의 후 협회 자금을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따로 회비를 거두어 그 돈으로 식사와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애써주시는 모습을 볼 때 지부장으로서 뿌듯함을 넘어 감사한 마음이 넘쳐나고도 남습니다. 이런 우리 구리지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끈끈한 동지애를 만든 비결이 궁금합니다. 정말 어렵게 코로나라는 터널을 지나왔지만 펜더믹이 끝난 지금의 상황이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들 합니다. 저희 미용업이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구리 미용 원장님, 회원들을 위해 올해는 무료 미용아카데미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그리하여 현재 구리시청에 지원을 요청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용아카데미를 통하여 구리 미용인들의 재교육으로 보다 질 좋은 미용서비스로 미용실 매출을 향상시키고자합니다. 그리고 미용봉사를 활성화시켜 미용협회의 지역사회 공헌도를 높이고자합니다. 미용인을 위해 사심 없이 일했던 것이 우리 구리 미용인들을 똘똘 뭉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부장님은 우리 미용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걸로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미용사로서 46년을 살아오며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중앙회 기술강사로 제주에서 서울까지 전국을 누비며 강의를 해왔고 미용학원을 운영하며 후배양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46년을 지나오며 후배 양성하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만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저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미용계를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강사로서 인기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제가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러나 지금까지 제 할일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평소 미용 철학은? 저의 미용철학은 항상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저는 지금도 동영상이나 기타 방법을 다하여 선진 미용기술이나 선, 후배들의 기법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번 익힌 기술은 누가 훔쳐갈 수도 없습니다.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앞서가는 미용인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간 즐거운 일도 많으셨지요? 20년 전 지부장을 퇴임하고 미용 일에만 몰두하며 지내는데, 지난 2018년 경 이숙희 전 도지회장님께서 다시 한 번 지부장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과 이끌어 주심에 다시 협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또 지부장을 2번 연임하며 저희 임원들과 울고 웃으며 지부의 현안들을 헤쳐 나갔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김진숙 명장님 후보시절 후보님을 도우며 후보님의 열정적인 모습은 지켜보며 함께했던 그때가 행복했고 기억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때 김진숙 명장님 선거 운동하던 부산의 정두심 회장님이 계셨는데 너무나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서 눈시울을 적시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단기적으론 올해 계획하고 있는 구리미용아카데미 개최에 주력하여 이 아카데미가 일회성이 되지 않고 매년 개최되어 구리지역 미용인들의 재교육을 통해 구리지역 미용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미용인의 생업이 더 나아지는데 이바지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그리고 지부장을 그만두고 미용실을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가위 하나들고 남편과 전국 오지를 다니며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봉사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 할 수 있겠네요.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정임 지부장 프로필 -세종대 경영대학원 수료 -1991년 IBS 미국 미용선발대회 금상 -미국 비달사순 수료 -영국 알랑 인터내셔날 수료 -우즈벡공화국 초청 미용페스티발 개최 -러시아 위생성 장관상 -1995년 기능올림픽 심사위원 -미용 국가고시 심사위원 -2000년 복지부장관상 -2000년 경기도 신지식인상 -1991년 IBS 뉴욕 세계미용대회 한국대표 -현재 구리미용협회 3선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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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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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너무나 행복한 직업입니다
-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 -최명주 지부장 미용이 좋아 미용을 시작했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미용인을 위해 노력하네 하나 되는 미용인을 꿈꾸네 미용은 존재감을 깨우쳐주는 일등 공신 지부장으로서 회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 고민하네 소중한 아내, 네 딸의 어머니 가정의 행복이 제일임을 아네 남편은 진정한 동반자 30년이 한결같네 복 많은 사람임을 매일매일 알려주네 한 식구 같은 광주 미용인, 동료 미용인 변하지 않는 남편과 딸들 행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네 이 행복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고 싶네 모두에게 고루고루 나눠주고 싶네 좋은 인연은 맺을수록 좋다 좋은 사람과 인연은 맺을수록 좋다. 더해 생각하는 바가 같고 성격이 비슷하다면 금상첨화라 한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은 가까워지는데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그중 물리적 시간 관계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간혹 물리적 시간 관계를 뛰어넘는 관계도 종종 존재한다. 기자와 최명주 지부장과 관계는 이 경우다. 기자는 특성상 인터뷰 대상이나 작품을 의뢰할 때 지인의 소개를 받곤 한다. 그 첫째 이유는 지인에 의한 소개는 신뢰감이 상승이다. 믿음을 사회생활의 중요한 담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지부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기자가 가장 신뢰하는 한 사람 중 오해석 前 경기도 지회장의 추천이었다. 오 전 지회장은 "인품과 성격, 그리고 기술력 중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다."라며 최 지부장을 소개한 터였다. 먼저 전화 통화를 했다. 얼굴은 마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미용계를 이끌 수 있는 재원(才媛)이란 확신이 들었다. 첫 만남 그리고 인터뷰 강원도 속초의 미용 행사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에는 바빴다. 이후 표지모델을 제안했고 표지촬영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표지촬영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기자는 당일 미용 일기장과 SNS에 다음과 같이 썼다. 표지 연출을 맡은 최 지부장은 중앙회 기술 강사 출신이며 실력과 인성, 미모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앞으로 미용계를 이끌 재목임이 분명하다. 좋은 미용 친구 한 분을 또 만났다. 앞으로 기대가 크다. 촬영을 마친 후 뒤풀이 때 우리는 분위기를 핑계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부군과 사이가 좋고 매우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어 기뻤다. 최 지부장은 “남편과는 남편이 고등학교 다닐 때 미용실 고객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결혼 30년이 되었다. 그 과정에 네 딸을 둔 딸 부자로 만들었다.”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항상 처음부터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리고 남편의 한결같은 마음에 저도 항상 놀라고 감탄한다.”라며 남편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했다. 또 “남편은 제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제가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며 “혼자서는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었다. 남편이 늘 수족처럼 함께 해 주어서 가능했다.”라며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최 지부장은 슬하에 딸 넷(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고 ‘최명주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현재 광주시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활동에 많은 애로가 있었을 것이라며 남편에게 감사하는 최 지부장의 금슬에 기자는 부러웠다. 모범적인 지부 운영 최 지부장은 광주시에서 교육비를 지원받아 회원들에게 전액 무료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치과, 내과, 정형외과 등과 협약해 회원들 병원비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또 광주시 여성 보육, 노인 장애인, 자원봉사 단체와 협약을 맺고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최 지부장은 미용협회 위상과 미용인 자긍심 고취에 일조하고 있다. 최 지부장은 “미용은 저에게 기적이고 선물이며 성장이다. 제가 미용인이 되지 않았다면 내성적 성격에 단조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라며 “미용인으로 살며 다양한 삶의 고객과 만나고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지부장직을 수행하며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며 “무엇보다 미용은 제게 다양한 면에서 풍요로운 삶을 선물했다. 미용인의 나의 삶 속에 가족 다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저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다.”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함께할 저의 모든 것이다.”라고 밝혔다. 최 지부장의 가족과 미용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진 최 지부장의 이런 마음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최 지부장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다. 하나 되는 미용인을 위해... 최 지부장은 협회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최 지부장은 “저는 협회와 같이 성장하고 있는 미용인이며 그래서 더욱 협회에 애정이 크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회원이 되고 싶어 하는 협회, 그런 협회를 함께 만들었으면 한다.”라며 “경쟁과 개인의 이익보다 미용인 전체에 이익이 되는 마음이면 좋겠다.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이 되는 미용인이 되기를 부탁한다.”라고 당부했다. 기자는 미용계 생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랜 세월 이 방면 일해 온 탓이다. 최 지부장의 말은 깊은 공감을 줬다. 그래서 최 지부장의 말처럼 미용인이 하나의 마음으로 움직이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 지부장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화만사성'이란 한자 성어가 있듯 제가 먼저 추구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다. 그래야, 일이 잘되는 것이 맞더라.”라며 “첫째 가정의 행복, 둘째 지부의 행복, 셋째 강사 활동을 통해 더 많은 미용인을 만나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부분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 말한다. 하지만 행복은 추상적 목표에 함몰되는 있는 경우가 많다. 최 지부장은 가족과 자기 일을 기반으로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 목표를 가는 것이 삶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실천하는 최 지부장에게 앞으로 기대가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 “삶을 성공 했다.”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최 지부장.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최 지부장. 선택에 있어 양심에 따라 옳은 선택에 고민한다는 최 지부장.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 노력하는 최 지부장이 있기에 기자는 미용계 앞날의 희망을 본다. 한 사람의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이 한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귓가를 맴도는 마음 훈훈해지는 하루다. 최명주 지부장 프로필 산업예술전문학사. 경기도지사배 미용예술경연대회 심사위원 역임. 소상공인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국제한국미용페스티벌대회 심사위원 역임. 한국미용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대한미용사회 경기도지회 상임의원 역임. 현, 제 18기 대한미용사회회중앙회 기술강사. 현, 대한미용사회 광주시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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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너무나 행복한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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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나에게 마음의 스승이다
- 미용인보(美容人譜)57 미용은 나에게 마음의 스승이다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시지회 노인선 회장 노인선 회장 참된 미용인의 표상 -노인선 회장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미용! 성실함으로 오늘의 나를 만들었네 미용인은 고객의 겉면만을 꾸미는 사람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가슴속으로 다가가 내면까지 이름답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걸 비로소 깨닫네 오늘도 공부하네 그리하여 기술을 전수하고 마음을 전하고 봉사를 실천하여 미용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네 참된 미용인으로 미용인의 표본으로 길이 남네 우뚝 솟네 미용을 하게 된 이유 미용을 오래하셨던 미용인들을 만나면 기자는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셨느냐’는 질문을 꼭 하게 됩니다. 이는 기자의 호기심의 발로이지만 엉뚱한 대답이 나오길 기대하는 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미용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눈치들 채셨겠지만 가난에서의 탈출이 주된 이유입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사는 사람들이 없지만 몇 십 년 전의 우리나라를 상기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미용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노인선 회장의 대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면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가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꿈을 꾸기가 어려웠고, 이를 위해 자본을 스스로 구축하자고 계획했습니다. 이에 선택한 것이 미용이었습니다. 그 시절 미용 기술은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서비스 산업으로 대두되었고, 미래지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야무진 대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인선 회장의 대답은 이어집니다. “젊은 날에는 단순히 현실적인 이유로 미용을 선택하였지만,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고, 그에 맞게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은 고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가게 오픈과 동시에 결혼, 출산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한 곳에서 계속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강의에서 ‘가슴 뛰는 꿈은 없다, 작은 꿈을 만나 내 가슴이 뛸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곧 이제까지 미용이라는 꿈과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나의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 학위까지 그렇습니다. 노력만이 인간을 완성시켜나가고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을 노인선 회장은 일찌감치 간파한 것입니다. 노인선 회장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좋아했으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사회생활을 먼저 하면서 주경야독하며 기본 교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면학에 힘써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몇 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랄 지경이었을 터. 노인선 회장은 이러한 노력 뒤에서도 미용인의 참된 삶을 실천하고자 봉사하는 데에도 전력을 다했습니다. 평소 해왔던 봉사 외에도 미용 기술을 주도적으로 프로그래밍하여 취약한 계층을 위한 사회기관에 접목, 코로로 인해 미용기술이 효과를 발휘하는 흐뭇한 경험을 갖기도 했습니다. 노인선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운영해왔던 미용실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계명문화대학교에 겸임으로 재직하고 그 외 대학생과 같은 교육이 필요한 곳에서 강의와 실무자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후학 양성에도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장을 맡아 서울 지회의 발전과 나아가 미용장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미용산업 발전에 기여케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이 정도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노인선 회장의 매력이자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인선 회장은 앞서가는 미용인답게 미용에 대한 생각도 남다릅니다. 미용은 마음의 스승 “나에게 미용은 마음의 스승입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본인들의 아름다움, 개인에 대한 존중들이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많은 고객들이 겉으로만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개개인의 겉면에 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상이 내면적으로는 본인에 대한 깊은 존중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깊은 통찰력과 이해 없이는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기자는 느낍니다. 노인선 회장의 미용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성실함입니다. 항상 매일매일 자기 전 내일의 계획, 더 나아가 한 달의 계획, 일 년의 계획으로 확장해나갈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계획을 실천하여 습관을 들여갔습니다. 이 하루하루의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노인선 회장은 앞으로의 미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앞으로의 미용? 현재와 미래는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용 산업에 대해서도 겉면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이것이 내면적으로의 아름다움으로 발전하기까지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입니다. 향후의 미용도 이와 관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곧 미용 산업에서는 단순히 기술적인 면모보다는 정신적인 힐링으로써 외면과 내면이 동일시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미용도 하나의 문화로 거듭나면서 개인 한사람 한사람이 힐링하는 여가 시간으로도 볼 수 있고 미용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사회생활에 피곤했던 자신의 모습을 서비스 받는 동안 잠시 휴식하며 정신을 쉬게 하기도 하고, 서비스 후에는 그것이 곧 본인의 이미지가 되면서 본인의 모습이 되고, 그것이 곧 내면으로 이어지며 본인 그대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용은 곧 외면적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개인 성향에 맞춰 개성 있게 만들면서 내면적으로도 자신에게 힐링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용인은 기술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그것이 곧 선진 미용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이라는 직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애정이 합쳐져서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리라. 미용계 리더의 생각은 역시 다르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대답입니다. 미래의 주인공은 미용인 미용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역시 노인선 회장답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연구하고, 창출해내는 우리 미용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돕고,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시간을 많이 나누게 된다면 더욱 활발한 미용 산업속의 아름다운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미용 생활 40년이 된 노인선 회장, 남은 시간은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사회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함께 할 것이라는 노인선 회장, 언제나 있던 그곳에서 끊임없이 찾아주시는 고객님들과 힐링하며 지내고 싶다는 노인선 회장! 노인선 회장의 이런 바람이 이루어질 때 우리 미용사회도 더 밝고 진취적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하게 됩니다. 노인선 회장 프로필 -고추잠자리 미용실 대표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장 -미용장 -이학박사 -서울시 중부, 남부 기술교육원 외래교수 -계명문화대학교 겸임교수 -국제교류협회 부회장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명장현장평가 심사위원 -산업현장교수 심사위원 -과정형평가 검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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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문화, 고전머리에 꽂히다
- 미용인보(美容人譜)56 우리의 전통문화, 고전머리에 꽂히다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 임수빈 회장 임수빈 회장 고전머리에 건 미용 인생 -임수빈 회장 손재주가 뛰어났던 아이 동생들과 친구들의 머리를 예쁘게 꾸며주며 장난치던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이었네 그 재능 우리 민족 전통 미용 문화로 물줄기를 이어오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였나니 이제 눈물과 땀방울이 토대가 된 우리 미용계의 지평을 크게 넓힌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로 큰 싹을 틔우네 고전머리가 미용학과의 전공필수가 되는 그날까지 여정을 멈추지 않으리 전통을 제대로 알아야 미래가 바로 서는 법 떨잠의 떨림처럼 오늘도 고전머리를 완성시켜 나가는 한 미용인 있네 미용계의 지평을 넓혀가는 미용인 기자는 우리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고 미용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미용인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미용인들의 손재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뒤떨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기술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 미용인들이지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었다면, 체계적인 교수법이나 이론이 없이 도제식으로만 제자들을 가르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지의 미용학교에서 체계적인 미용 교육을 받은 미용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미용대학에서 미용을 전공한 미용인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이론과 실기 모든 면에서 세계 미용계를 선도하고 있는 몇 국가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선배들을 존경하고 후배들을 아끼는 우리 고유의 전통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미용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미용계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미용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는 우리 미용인 사회적 위상을 드높여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미용의 영역을 확대해나간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고전머리(전통머리), 미용역학, 헤어스케치, 헤어아트, 증모 가모 가발술, 반영구화장술 등이 있으며, 특히 고전머리 부분에서는 혁혁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 창립 그 중 오늘 소개하는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 임수빈 회장은 고전머리를 일반인에게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하고 계신 미용인입니다. 임수빈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는 ‘우리 옛 여인들의 머리 형태를 통해 조상들의 삶과 여정, 슬기와 지혜를 배우며, 전통과 문헌사료들을 고증하고 현대인의 트렌드를 리드하면서 다양하게 변화된 머리모양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우리 고전머리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설립한 협회’입니다. 그렇다면 임수빈 회장은 언제부터 이런 고전머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미용에 입문하면서부터 우리 민족의 전통 미용문화는 어떤 것일까? 각 분야에 전통 문화는 그런대로 연구되고 복원되고 있지만 왜 유독 미용분야는 그 연구가 미미하고 척박할까? 미용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저의 궁금증이자 호기심이었습니다. 분명 우리 민족에게 미용 문화도 있었을 텐데... 이런 지적 갈증이 전통미용 문화와 고전머리에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된 이유입니다.” 임수빈 회장은 이런 이유로 고전머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전머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부단한 노력과 공부를 계속합니다. 사료적 연구나 자료가 부족했지만 고전머리를 향한 임수빈 회장의 집념과 열의는 대단했습니다. 그 결과물의 산실로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는 그야말로 노력과 땀방울로 이어진 협회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미용계에서 없어서도 안 될 학문이고 꼭 있어야만 하는, 미용학과의 전필이 바로 고전머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고전머리를 연구하여 이제 25년을 성장시켜왔습니다. 지금 되돌아보고 다시 가라하면 너무 먼 길이지만 역으로 보면 임수빈이라는 고전머리 전문가가 고전머리의 핵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또한 고전머리에 여러 부문을 접목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고전머리를 알고 있으며 또 이어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배우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전머리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의 머리 ,복식이 서로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어져온 만큼 우리나라의 고전머리는 우리 미용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미용대학교에서 고전머리가 전필로 선택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가 지켜가고 이어가야 할 가장 큰 핵심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머리가 전공필수가 되는 그날까지... 임수빈 회장은 고전머리가 당연히 미용학과의 전공필수 과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전통과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밝은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5,000년 동안 이어온 역사가 있습니다. 저는 고전머리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공부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중국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중국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각 시대마다 조금씩 중국의 어떤 왕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복식과 머리와 장신구가 변했습니다. 그래서 5,000년을 추적을 해보니 시대별로 복식, 머리, 장신구들이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K-뷰티, K-푸드 등 세계시장을 선도하게 된 이유도 바로 5,0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발맞춰서 지금 우리가 지켜야할 학문이 K-POP, K-뷰티에서 일어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인 고전머리 분야의 고전머리 명칭, 고전머리 장신구 등이며, 어느 시대에 어떤 것들이 유행을 했는지를 고증학적으로 잡아줄 때인 것 같습니다.” 고전머리 전문가로서 임수빈 회장이 느끼는 책임감은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자리이지만 임수빈 회장은 그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 임수빈 회장은 대학교, 뷰티학원 등에서의 초청 강의를 통해 고전머리를 다방면으로 알리고 전파하는데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를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고전머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이 고전머리라는 테마를 어떻게 이어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고전머리 과정을 재해석하고 공부하는, 그녀의 발자취를 다시금 재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수빈 회장의 개인적인 일에 그치지 않고 우리 고전머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토탈 종합 미용인으로서의 임수빈 회장 임수빈 회장은 고전머리만 연구하고 잘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10년 동안 수빈헤어메이크업이 코리아디자인센터와 함께 웨딩산업을 이끌어나가기로 결심했어요. 수빈헤어메이크업이 K-뷰티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우스갯소리로 한 말씀만 하겠습니다. 우리 제부가 코리아디자인센터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제가 너무 고전머리 얘기만 해서 일반 헤어메이크업을 못하는 줄 아셨대요, 근데 제가 고전머리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헤어, 네일, 피부, 메이크업 등 토탈 종합 면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빈 헤어 메이크업에서도 일반 머리, 염색, 퍼머까지 다 합니다. 저의 이름을 딴 미용실이 고전머리와 잘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본 임수빈 회장은 천상 미용인입니다. 고전머리에 대한 임수빈 회장의 자부심과 긍지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 자긍심을 믿기 때문에 고전머리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게 기자의 생각입니다. 미용은 창작이며 창조라고 생각하는 임수빈 회장, 작품을 대하는 마음에 진심이 담겨야만 한다는 임수빈 회장, 고전머리의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임수빈 회장의 행보에 우리 미용계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수빈 회장 프로필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 회장 -(주)오색단장 대표이사 -수빈헤어&메이크업 대표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고전머리 명인 -우리문화계승선양회 집행위원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가체장 명장 -서경대학교 미용예술대학원 졸업 박사학위 취득 -호서대학교대학원 뷰티디자인학과 수석졸업(석사 취득) -인덕대학교 방송뷰티디자인과 외래교수 -청담동 차치위원회 뷰티분과 위원장 -공로패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명장패 ‘한국무형문화유산 가체장’ 공로패 ‘글로벌 기부 문화공헌 대상’ (재단법인 기부천사클럽) -대한민국 문화공헌 대상’ (국회의원 이종걸) -공로상 ‘대한민국 봉사 대상’ (사)한국유엔봉사단/(사)한국국제연합봉사단 -표창장(국회의원 송영길) -감사장 ‘청와대 사랑채 전통공연 시연’ (청와대) -박사학위 논문 “불화 속 여인들의 머리 형태를 응용한 퓨전 업스타일 개발”(서경대학교 대학원) -저서 <고전머리 이론과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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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문화, 고전머리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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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울음을 쏟아내 듯 절규를 표현한 시집
- 영혼의 울음을 쏟아내 듯 절규를 표현한 시집 <저 별이 지기 전에> 출간한 이영태 시인 이영태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1944년 강릉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교직에 계시던 황금찬 시인님의 영향을 받아 후에 문예지 <문학광장>에서 등단하였고 평소, 복장기술 디자이너 1급 기능사로 업계에 종사하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이 5시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간 낸 시집을 소개해주시지요. 제 1시집 <발자국 소리>, 제 2시집 <초대의 빈자리>, 제 3시집 <시로 물드는 사랑>, 제 4시집 <그 겨울의 연가>, 제5 시집 <시 찬 뜰>에 이어 이번에 제 6시집 <저 별이 지기 전에>를 출간했습니다. 그 외에도 공저인 <현대 명시 특선집>과 <한국문학 대표시선>, <대한민국 대표 명시선> 외 다수가 있습니다. -시집 <저 별이 지기 전에>를 출간하게 된 동기 및 소감 건강이 안 좋아서 자연치유를 하며 숲속의 맑은 영성과 교감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시들을 저 세상에 먼저 간 임들께 전하고 싶었는데 출간되어서 기쁩니다. -이번에 낸 시집은 시인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인생이 저무는 걸 느끼며 영혼의 울음을 쏟아내듯 절규한, 생의 마지막 시집처럼 여겨집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절실한 시들이 많습니다. -시의 모티브는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어릴 적, 한학자이신 아버지와 시인들이 모여서 흥겹게 시를 읊을 때 그 앞에 꿇어앉아 먹을 갈며 시에 눈 떴고, 아버지의 시서 육예에 대한 엄한 훈계와 가르침이 중심사상이 되어 시의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시의 스승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그 해, 가리봉동 겨울 담금질 당하듯 치열한 고뇌의 침잠 속에 지새우는 밤 동트기 바쁘게 별을 안고 꿈꾸다 별 따라 나가는 좁은 계단에 사정없이 얼어붙은 눈 위를 달은 구두로 곡예를 하고 고달픈 하루를 어깨에 메고 오면 허름한 옥탑방 구석에 헌 이불을 감싸고 외론 들고양이처럼 웅크린 내 남루한 실존이 서럽고 싫었던 자폐가 주는 우울증 환자같이 황폐한 삶 극한의 비린내가 날 만큼 그해, 가리봉동 겨우살이는 그랬다 그래도 시골스럽고 정감 있던 그 이웃들 아픈 추억이 자꾸 떠오른다 지금도 외로운가 보다, 늙는 것이... -독자들께 한 말씀 아름다운 라이프 스타일이 느껴집니다. 겸허히 지성을 배우겠습니다. 독자 분들 모두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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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울음을 쏟아내 듯 절규를 표현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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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서 줄탁동시라는 말을 늘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 “교수로서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을 늘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뷰티산업교육대상 수상한 김진숙 교수 김진숙 교수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진숙입니다. 미용예술학 분야의 헤어미용을 포함하여 미용학 전반을 교육하고 있으며, 한국뷰티산업학회,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한국미용학회 등 우리나라 미용예술 분야 학술단체에서 부회장, 학술위원장,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술적으로는 예술학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기술적으로는 미용사(일반), 미용사(피부), 컬러리스트 기사, 미용장 등 헤어 미용 분야 자격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미용 및 예술 전문가와 석․박사 후진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뷰티산업의 헤어, 피부, 메이크업, 네일 등의 시술은 예술과 미학, 기술(디자인)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에, 뷰티산업과 학문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손끝과 열정을 기초로 문화적인 현상과 함께 이의 학문적 근거를 찾고 싶은 의도로 산학협력 분야에 접근하였습니다. 이를 실현하고자 뷰티디자인 저술을 포함한 국내 미용예술학 분야의 학술적 발전을 위해 미용예술 분야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재 5권을 집필하고, 국내전문학술지(KCI급) 15편을 포함하여 36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특히 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 및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부문에서 총 4회에 걸쳐 6년 간 선정되어 미용예술 분야 학술발전에 기여한 연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용교수가 되기까지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요. 우연한 기회에 미용에 입문하여 미용사, 미용기능장, 컬러리스트, 평생교육사, 직업훈련교사 1급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여 미용과 함께 한지가 30여 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평생교육원에서 미용교육을 시작하면서 학자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예술학석사와 박사를 취득하고 김천대학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서울벤처대학교대학원은 박사학위를 받은 모교로서, 모교에서 교수의 직 수행은 저에게는 의미 깊고 가치 있는 계기이지만 저 개인적인 발전보다도 모교 발전을 위해 매진해 달라는 책무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훌륭하신 선후배와 동기, 후배님들과 함께하는 교직생활에서도 항상 지도 편달해 주시는 윤천성 교수님의 도움으로 많은 결실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내 부문에서는 각 분야의 현장전문가인 다수의 석사와 박사를 배출하였으며, 교외 부문에서는 국가기술 자격 시험문제 출제 및 검토위원, 실기시험 감독 및 채점위원 등의 평가를 맡으며 전문성 향상을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뷰티산업교육대상을 수상하셨는데 소감 한 말씀 지금까지의 어떤 상보다 이번 뷰티산업교육대상은 제게 특별히 의미 있는 상이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참 어렵고 두려운 일을 시작한지 27년이 되었습니다. 그중의 반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수상을 하게 된 성과는 저의 힘이 아니고 저의 스승님의 지도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뜻에서 학생들을 위해 참 교육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국뷰티산업학회에서 수여하는 뷰티산업교육대상은 공적심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상으로 저 자신에게는 지금까지의 저를 평가받는 척도였고, 제자들에게는 ‘교수로서의 역할과 소명을 다하였는가.’라는 나름대로의 평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함께 동문수학한 동기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석․박사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 소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는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원대학교로서 석사와 박사를 양성 배출하는 고등교육기관입니다. 학과는 융합산업학과, 부동산학과, 사회복지상담학과 3개 학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는 대한민국과 세계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 벤처 정신이 충만한 글로벌 인재들을 키우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의 강남에 위치하여 편리한 교통과 각 분야의 훌륭한 교수진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가 자랑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미용교수가 되고자 하는 분들께 한마디 교수직은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되어야 하며 미용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업무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미(美)를 다루는 우리 미용교수는 사회의 트렌드를 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적’으로 읽을 수 있고 표현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미학적 현상’을 고려하여 미용행위로서의 '미’를 이해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문적으로는 선행 연구자들의 업적과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미용학 발전을 위한 합목적적 적용과 연구개발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선배 교수님들이 이루어 놓은 지금까지의 미용학이라는 학문은 결코 하루 아침에 쉽게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며, 선배 교수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용학으로 부상하여 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학문이든 마찬가지의 상황이므로 더욱더 발전시키려는 태도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미용학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미용이 평생 한길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음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미용교수로서의 철학 교육은 수요자인 학생들에게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시작되는 교육목적 달성과 관련된 유형·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물질적, 정신적 만족을 실현시켜주는 일체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경험과 자기계발 등을 통하여 나를 위한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 사상과 철학이 있어야하며, 차별화된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여 학습자의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켜 직업인으로서 삶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미용교육은 우리들의 삶의 질 추구와 자기만족과 자기성취의 행위적 과정이기 때문에 총체적인 교육과 예술가로서의 자세와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로서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을 마음에 늘 새기고 있는데,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쫄 때 어미닭이 밖에서 그 알을 동시에 쪼아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수가 주도적이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학습자에게 어미닭의 마음으로 실력과 모범을 보이되, 신뢰와 믿음으로 이끌어가는 강의가 저의 교육 철학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만났을 난관, 혹시라도 좌절감이 있다면 미용기술 습득이 자부심이 되고 새로운 자신을 개척하는 용기 있고 현실적인 힘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프로가 되는 길은 배우고 공부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미용계에 있으면서 흐뭇했던 일은 당연히 제자들의 성장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석․박사논문을 완성하고 학위를 받고 뿌듯해하는 제자의 모습은 저도 성취감을 느낄 수 기회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런 저런 형편을 가진 제자들의 산업역군으로서의 자리매김, 산업현장에서 당당히 창업하여 홀로 우뚝 서는 것을 보면 정말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연구자로, 전문가로, 교수자로 살아오면서 어려운 시기에 저와 함께 고행의 길을 걸으며 공부했던 제자들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때의 잠재적 기능과 역량을 배경으로 국내의 다양한 기관과 업체에서 우수한 인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오랜 기간 교육자로서 자존감을 어떻게 지키고 살아왔나를 생각해봅니다. 나 스스로가 나에게 거는 기대에 도달했는지? 얼마나 지적 정서적 사회적 풍요를 추구하며 왔는지를 생각해보고 부끄럽지는 않았는지? 당당했는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마음을 비워 나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을 막고자 담을 쌓고 스스로를 비우고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덕과 인품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마음을 나누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인간의 개성은 다르지만 개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예와 의를 행하지 않는 것을 개성이라고 말해버리기보다 내 주위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되돌아보며, 그동안 쌓아올린 미용지식을 바탕으로 미력하나마 미용업계가 필요로 하고, 이웃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환경에서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또한 삶의 가장 큰 가치는 지금처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한 동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숙 교수 프로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한국뷰티산업학회 부회장 -한국인체미용예술학회 학술위원장 -한국미용학회 이사 -미용장(한국산업인력공단) -컬러리스트 기사(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선정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사업선정 -제15회 대한민국 자치대상 교육부문 대상수상 -(전)진토탈뷰티샵 대표 -(전)한국방과후 및 자유학기제 강사연합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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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서 줄탁동시라는 말을 늘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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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핸드 가위는 세계최초의 인체공학적 미용가위입니다
- “엑스트핸드 가위는 세계최초의 인체공학적 미용가위입니다” 엑스트핸드 가위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정은재 강사 정은재 강사 -오랜만입니다. 미용계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그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군을 제대 하자마자 어떤 계기로 인해 미용에 입문해서 남성 미용가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을 즈음에도 ‘헤어스타일이란?’ 또 ‘헤어 스타일리스트란?’에 대한 갈증을 풀길 없어 미용 13년 차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선진 미용을 접하면서 헤어스타일리스트가 갖춰야 할 덕목이 첫째가 기본기에 충실하라, 둘째가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쌓아라,란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간직한 채 5년 만에 귀국해서 국내 최초로 일본식 샤기컷을 3년 강의하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중국 미용인들에게 일본식 커트와 한국식 퍼머 교육으로 전국 투어를 하면서 동시에 미용재료 유통업을 겸하다가 12년 만에 귀국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엑스트핸드 프랑스 특허 가위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 가위야말로 우리 미용인들의 건강과 테크닉을 책임져줄 가위다.’하는 확신이 서서 보급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주)엑스트핸드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주)엑스트핸드는 특허가위로 아시아 총판권을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 본사 회장님의 요청으로 가위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시아 총판을 담당하고 계신 (주)엑스트핸드 마재구 대표님은 미용가위 유통업계에서 유명하신 분입니다.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엑스트핸드 마재구 대표 -엑스트핸드 가위의 소개와 장점은? 엑스트핸드 가위는 프랑스 인체공학 전문가들이 5년여의 연구개발로 탄생한 세계 유일의 링이 없는 미용가위입니다. 특허설계로 손목과 어깨를 편하게 해주며 통증을 감소시켜주고 커트 시 불편한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세계최초의 인체공학적 미용가위입니다. -가위 유통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현재 유럽과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에서 판매 중에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점진적으로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중입니다. 오프라인 세미나와 유튜브 등을 통해 광고 중에 있습니다. -특별한 가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엑스트핸드 미용가위는 링이 없어서 처음에는 어색함을 느끼나 직접 사용해보니 편한 자세와 인체공학적인 그립으로 사용할수록 편안한 자세로 인해 손목, 어깨의 통증을 줄여주고 일반 미용가위로 구현하기 어려운 커트 테크닉 기법도 쉽게 할 수 있는 특화된 미용가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엑스트핸드 미용가위 무료 체험 행사도 한다면서요? 네. 미용인이라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매달 1, 3주 화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동대문에 있는 강의장(동대문구 장한로 129 지층 102호 GTB뷰티아카데미)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전액 무료로 진행하고 있으며 예약은 필수(010-4587-3623)입니다. 미용초보자이거나 학생들도 환영합니다. -미용인들께 한마디 엑스트핸드 미용가위는 미용인들을 위해 만든 인체공학적인 가위입니다. 미용인들이 편안한 자세와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커트로 일하는 즐거움을 주는 가위가 될 것입니다. 커트에 처음 입문하는 초보자가 엑스트핸드 가위를 사용해서 커트 자세로 인한 불편을 해소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각 지역 총판 대리점 문의: 1661-7801) 정은재 강사 프로필 - 일본 미용 유학 5년 - 한국 최초 샤기컷 강의 - 뷰티라이프, 뷰티클럽에 샤기컷 3년 연재 - (전) 한라대 외래 교수 - 한국과 중국 헤어쇼 및 세미나 260여 회 출연 - 프랑스 엑스트핸드 가위 국내 수석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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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핸드 가위는 세계최초의 인체공학적 미용가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