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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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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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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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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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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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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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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 경남도지사배와 개인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박소야 회장 -소송에서 이기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었지만 저의 아픔을 같이하면서 응원해주신 미용인들, 선, 후배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일단 법정소송이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중앙회 측은 그것을 이용해서 어찌했던 징계 주고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고생에 지치게 되지요. 중앙회는 그것을 이용하는 거구요. 박소야가 그렇게 겁납니까? 세상일은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것이란 소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무리를 하면 탈이 나는 법이지요. -소송과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고 넘어질 게 없으면 경남지회 강사들, 강의 사진을 한 곳에서 찍어 올렸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를 합니까? 이해가 갑니까? 돈을 횡령한 것도 아니고 강사들에게 강의하고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지급했는데, 고맙게도 경남에 기술강사들이 지회 살림이 어려우니 보태서 운영하라고 전액 협찬금으로 입금했는데, 위생회계에서 강사료 나간 금액이 한푼도 어김없이 일반회계로 들어왔는데, 징계를 준다는 게 지금 중앙회입니다. 그 많은 서류에서 더하기 빼기 계산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중앙회 측의 말만 듣는 거지요. -회장으로 복권되어 며칠 만에 경남도지사배를 훌륭하게 치르셨는데... 경상남도지사배 미용 예술 경연대회를 마산 실내 체육관에서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준비가 조금 짧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세심한 곳까지 챙기면서 약 천여 명의 많은 선수 출전과 미용인의 참여로 신, 고전 헤어쇼와 장기자랑 등 한층 더 즐겁고 유익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의 각 지역 시, 군지부장들과 마음 맞춰 또 한번 더 하나로 단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서도 두 번째 개인전시회도 성공적으로 치르셨는데... 개인전 역시 도지사배와 겹치는 주였지만 그동안 틈틈이 작업해둔 작품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특히 금전수와 해바라기, 천년의 사랑으로 꽃피운 황금 소나무는 진주시 문화예술과에 예술품으로 납품도 하였으며, 총 8작품이 판매되는 등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소신이나 미용철학은? 미용 철학이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미용 예술인의 한 일원으로서 같이 미용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저는 깡패와 같은 보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용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미용계가 나아갈 방향 저는 진주시지부장 6년을 거쳐 현재 경남 도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한미용사회 반영구 위원장을 맡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미용실로 미용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유권한과도 같은 반영구가 문신사법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한숨만 나옵니다. 도대체 중앙회에서 하는 짓거리는 우리의 주권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있으며 내부 총질에 전염해서 매 이사회 열릴 때마다 징계위원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과 회원을 내쫓는 징계는 소송으로 가서 전부 패소하고 있습니다. 또 일사부재의 원칙도 모르고 같은 사건에 재차 징계를 난발하고 소송비로 회비를 탕진하는 중앙회는 도대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얼마나 후퇴가 되어야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가 회원들을 위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초심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협회를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일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해결하고 타협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미용사회가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는 날까지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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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회 박소야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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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 Interview(정수옥)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얼뷰티코리아, 정수옥헤어&예얼두피, 예얼뷰티아카데미의 대표 정수옥입니다.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고, 1994년부터 두피 전문 관리를 연구해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현장 시술·교육·제품 개발을 통합한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그 연구와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 소감 그동안 미용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강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는 신념으로, 두피 건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용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번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은, ‘예얼 마그네틱 브러쉬’와 ‘예얼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 등 예얼의 특허 기술뿐 아니라, ‘두피에센스·두피팩·목크림’ 등 예얼 제품군과 이를 기반으로 한 ‘예얼 테라피’ 시스템 전체가 인정받은 결과라 생각해 더욱 뜻깊습니다. 오랜 시간 고객과 미용인들과 함께 걸어온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건강한 두피에서 시작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법 예얼은 ‘예쁜 얼굴’의 줄임말이자, 밝은 얼굴을 되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두피의 건강을 관리하고 얼굴의 균형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통합 케어 프로그램입니다. 미용과 건강의 균형을 함께 다루는 융합형 브랜드로, 두피 열을 내리고 순환을 회복하는 예얼 테라피를 중심으로 전문 관리와 홈케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수옥헤어(미용실), 예얼두피(두피 전문 센터), 예얼뷰티코리아(제품 브랜드), 예얼뷰티아카데미(교육기관)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두피와 얼굴 피부를 진단기기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술·홈케어·운동법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미용적 변화뿐 아니라 머리가 가벼워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두통이나 탈모로 인한 불편이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합니다. 또한 예얼은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예얼 제품을 활용한 살롱 메뉴화·운영법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무 중심의 교육 시스템은 예얼 브랜드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제품 개발 동기 및 장점 1994년 두피 관리를 미용에 접목하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고, 그 결과 미용실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용실을 확장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측 어깨 마비와 두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꾸준히 해오던 두피 관리를 하면 통증이 완화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피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얼굴에 좋다는 고가의 화장품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용적인 부담이 커졌고, 직접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트리콜로지스트, 건강관리사, 식품치료, 대체의학 과정을 공부하며 두피와 인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얼의 제품과 예얼 테라피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와 ‘브러싱 가이드 시스템’은 특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예얼 제품은 단순한 미용 제품이 아니라 예얼 테라피의 원리와 기술이 녹아 있는 건강 관리 도구입니다. 예얼 마그네틱 브러시, 두피에센스, 두피팩, 목크림 등은 미용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각각의 제품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예얼 운동법과 함께하면 두피열 완화, 스트레스 감소, 두통 완화, 얼굴 리프팅 등 건강한 변화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얼은 기술, 제품, 철학이 하나로 연결된 두피 전문 뷰티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미용에 대한 생각이나 미용철학 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외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피가 손상된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얼은 미용의 본질을 ‘균형’과 ‘건강 관리’에 두며, 두피의 열을 완화하고 순환을 도와 피부와 얼굴, 그리고 몸이 편안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미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 이어지는 인문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인들에게 항상 “고객의 머리만 보지 말고, 고객의 얼굴까지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고객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용인들이 직업병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얼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길이 아닐까요? -미용을 하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예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고객이 “요즘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이 맑아졌어요”라고 말할 때입니다. 두피나 피부는 눈으로 바로 확인되는 부분이라, 고객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하며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예얼 교육을 통해 배운 미용인들이 현장에서 고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시술 방향이 달라졌어요.” “고객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노하우가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받는 듯한 뿌듯함을 느낍니다. 결국 미용은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예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두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얼 테라피와 제품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뷰티문화관광협회와 협력하여 거점 미용실을 중심으로 K-뷰티 웰니스 문화를 확산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미용인들이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건강도 돌볼 수 있도록 교육과 강사 양성 과정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저는 미용이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념을 지켜가며, 예얼을 통해 진정한 건강미(健康美)의 가치를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기타 한 말씀 오랜 시간 미용 현장에서 느낀 건,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얼은 고객의 두피 건강뿐 아니라 미용인들의 행복과 성장을 함께 지향합니다. 예얼은 과학입니다. 예얼은 두피 열을 완화하고 자율 균형을 돕는 과학적 루틴을 지향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K-뷰티의 웰니스 브랜드로서, 머릿속 순환이 맑아지면 얼굴의 나이가 내려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K-뷰티 웰니스 시장을 선도하고,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 번 경험하는 예얼 루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얼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얼, 한국에서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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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 수상한 정수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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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 저자 초대석(이현 시인)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이현 시인 -본인 소개 저는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2022년에는 시전문 월간지 《우리詩》에서 비평 신인상을 수상한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을 직접 만나 말을 얻어 시를 쓰고, 또 그러한 언어를 만나 해석하는 글을 씁니다. 실체적 존재는 나 하나이지만 언어를 표현하는 입과 손은 기능과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위험하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에서 늘 길을 잃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아직 시를 제대로 ‘쓸’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류의 시인이고 비평가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잘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시집 가운데 「자목련」이란 제목의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는 것이/무거워// 아무 시나/쓰고 싶지 않아// 돈벌이 학원강사를 했는데// 돈은커녕/ 아무 시도 쓸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시는 한동안 제가 시를 멀리 하고 일부러 외면했던,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의 길에서 서성이던 저의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저는 결국 아직도 시를 찾아가는, 시가 못내 그리운 시인입니다. -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소개 시집의 해설을 기꺼이 감당해 준 김정수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는 “‘나’를 지켜 ‘당신’의 마음을 얻으려는 영혼의 고백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기거하는 노래들은 ‘나’를 잃어버린 세월에서 얻은 긴 상처의 고백이고, 그 상처를 ‘잃어버린 타자’를 통해 치유해 나간 기록의 과정입니다. 즉 살아온 삶의 고통과 상처를 수용하고 그것을 힘으로 전환하는, ‘길’ 위의 여정에 선 자의 자기 부정과 자기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세상과 타인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바닥을 밟은 자의 상처가 준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신앙이나 관용 없는 신념이 가져다줄 수 없는, 고통의 힘과 슬픔의 손이 인도하는, 행복한 세계를 향하는 자의 소박한 언어들입니다. 다시, 그래요, 아직은 미궁인 미래를 걸어가는 꿈의 발자국입니다. -좋은 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입니다. 이 말은 제가 써 온, 그리고 쓰는 시들이 아직 내가 원하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바라는 시가 무엇이냐 하면 또 무어라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동(流動)」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존재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생성되며 변화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처럼 '유동'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이자,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시도 이와 비슷한 영역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실체입니다. 시는 기본적으로 ‘자유’입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불완전함을 전제로 ‘가망 없는’ 완전을 꿈꾸는 행위입니다. 아울러 시는 세상 낮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들의 상처를 함께 하는 무력한 위로입니다. 시는 그래서 ‘사랑’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타인의 슬픔과 절망을 대신 지고가는 ‘곡비’ 같은 존재라고도 합니다. 시는 결국 멈추지 않는, 멈출 수 없는 상처에 지어지는 언어의 집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대상과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완전한 노래를 합니다. -시 한 편 소개 어느 날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 없이 떠났습니다. 사는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었습니다. 이윽고 저녁 무렵 낯선 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오는 부둣가 풍경으로 앉아 화석처럼 바다를 바라보다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는 바다와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 날아오르는, 깊은 상처의 힘으로 깊고 파란 물을 그물로 낚아올리는 목숨의 힘을 보았습니다. 후포 1 지친 발 어루만지며/저무는 바다를 본다 어둠의 시작은/물 밑 깊은 아래였구나 깨달음은 늘 /늦어서야 새로웠으니 생의 어둠도 끝모를 심연/ 바닥의 안에서 시작되었다 2 온밤을 바다와 누워 출렁이다 잠을 깬다 아침이면 바다는 제 살을 떼어내 새들로 환생하며 날아오른다 새는 바다의 상처이다 꿈이 깊은 자들은 언제나 아프고 사람들은 상처로 목숨의 힘을 얻는다 뭍으로 날아온 바다가 후포리 낮은 지붕을 흔들어 깨우면 헐거운 영혼의 살을 벗겨 칼자욱을 문신한 사내들은 깊고 시퍼런 물결을 밟고 나가 먼 바다 바닥까지 그물을 내린다 -앞으로의 계획 저에게 계획이란 그리 큰 의미를 갖는 말이 아닙니다. 규격화되고 틀을 갖춘 그 말은 오히려 미래의 길을 제한하는 일련의 억압 같아 무거운 언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무얼’ 하고 싶고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은 막연히 할 수 있을 것인데요. 저는 집을 짓고 허물어 다시 짓듯이 저 자신을 지우고 다시 세운 자리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 같은 언어를 만나고 싶습니다. 세상을 처음 만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언어를 말이죠. 이런 꿈이 가능하지 않은 꿈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지요. 어쩌면 저는 날마다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무모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이 불완전함을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불완전함으로서 완전한 그것이 시인의 길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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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세상에서 제일 높은 의자' 출간한 이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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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 저자 초대석(전영관 시인)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전영관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첫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부터 『부르면 제일 먼저 돌아보는』, 『슬픔도 태도가 된다』, 『미소에서 꽃까지』 및 이번 시집 『에덴입장권』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산문집도 5권 냈습니다. 많이 썼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51에 데뷔했으니 마음도 급하고 그간 담겨져 있던 문장들이 터져나온 거 아닌가 하고 저를 생각해봅니다.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욕심은 아니고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생지 나이 학력같은 규격들은 생략하고 책으로만 소개올렸습니다. -시집 <에덴 입장권>을 소개하면? 시인은 시 안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화자(話者)를 구축하게 되는데 흔히 말해 부캐라할 수 있겠습니다. 제 부캐는 사랑을 잃은 독신, 자본주의에 치이는 급여생활자, 방을 얻느라 거리를 방황하는 주거난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의 진술과 시선이 시집의 흐름과 내용을 알려주는 셈이죠. 간간히 아내와의 추억, 가장의 애환 같은 것들을 수록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게 시집 소개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시에 등장한 사람의 시선, 걸음을 따라가는 듯이 읽으면서 느끼는 방법이랄까요. 그러다보면 풍경도 보이고 냄새까지도 느껴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도의 로드뷰로 그 지역을 돌아다니고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좀 극성스럽죠 (웃음). 「반계리」라는 시의 반계리 은행나무도 고속도로 CCTV를 통해서 얼마나 물들었는지 확인하고 갑니다. 결국 시집을 읽는 팁은 마음의 로드뷰, CCTV가 되겠네요. 북토크처럼 독자여러분이 저와 함께 걸으시면 더 행복하겠습니다. -평소 시에 대한 생각 시집이 생필품은 아니지만 세탁기 설명서 같아서 싱겁고,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책값이 아까운 경우도 있는데 취사선택은 독자들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정의는 너무 넓어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모호하고 싱겁거나 참혹한데 읽고나니 마음이 환기되는 글이라면 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그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청평호 하 많은 비밀들을 들었을 텐데 담담한 호수에서 고해소를 생각했다 살아온 일렁임을 엄살 부리고 싶어 드넓은 물만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면 서늘해질 곳을 서로 잘 아니까 아카시아 꽃향기가 달곰해서 시럽도 필요 없겠다는 둥 우리는 말랑한 화제로만 에둘렀다 수면을 헤적이며 채록하는 물버들의 필체를 읽을 수 없다는 듯 나비가 팔랑거렸다 나이라는 죄를 지어서 엄살도 못 부리고 아비라는 종신형을 받아서 참기만 하고 남편이라는 굳건함을 자청했으니 댕돌같이 살았다 아픈 아들의 완치를 기원하는 눈 마주치면 눈 젖는 형편이니까 호수만큼이나 서로에게 빚을 진 사이여서 옆얼굴과 하늘만 번갈아보았다 행복과 우환이 갈마들어 불안해지면 왼손과 오른손의 이치라고 웃었다 호숫가의 하루를 잘 보내면 추억이라는 골동품이 되고 번민에 휩싸이면 고물상 개업하는 셈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오늘 오후는 우리 접시라고 믿었다 모든 속살거림이 다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빛이 물빛이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의 계획 가장이고 직장인이니까 그 본분에 충실하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인으로서의 자발적 가난"은 동의하지 못하고요. 안정된 생계 위에서 시를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인은 곤궁한 뒤에야 비로소 뛰어난 시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말도 있습니다만ᆢ 시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더 낼수 있겠는데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니 출판사에게 부담만 주는 짓이라 서글픕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출판사와 제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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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에덴 입장권' 출간한 전영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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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대표
-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은 삶의 에너지, 기쁨, 행복이다” 가온헤어살롱 이영숙 대표 삶 자체가 미용인인 사람 -이영숙 대표 우리 옛말에 쪼끄만한 사람이 야무지다라는 말이 있지 헤어아티스트 이영숙은 그러하였지 쪼끄만 체구지만 야무지고 단단했지 기술을 배울 때도 박사 학업을 계속할 때도 눈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지 자기 계발 연구 기본기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온 삶 컨슈머 1위를 하고 후배 양성과 진로 지도 봉사하는 삶을 통해 미용인의 긍지를 함양하지 근면 성실 정직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온 삶 미용은 이제 에너지 기쁨 행복으로 다가와 삶을 빛내고 있지 아담한 체구, 그러나 당찬 미용인 소싯적부터 작았던 기자는 아담한 체구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존경해마지 않는 부모님이 작았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물웅덩이가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의 시초는 작은 잠자리의 날갯짓에서 비롯됩니다. 시골 등, 하교길에서 본 조그만 야생화가 주는 감흥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작은 별들은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동경심을 심어주었던가요. 처음부터 주제가 많이 빗나갔습니다. 기자가 이영숙 원장을 만난 때는 아주 오래전입니다. 이영숙 원장이 미용 국가대표가 되어 파리 M.C.B. 대회에 출전할 때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자리 원장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소감은 작은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힘이 넘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는 매일매일 미용일기를 쓰는데 당시 미용실에서 만난 이영숙 원장을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담한 체구, 미용에 대한 강한 자부심, 똑소리 나는 말투, 잘 빚은 조선백자 같은..., 미용계의 기린아 느낌을 받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기자는 이영숙 원장에게 표지 연출을 맡기는 등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간간이 이영숙 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 기자는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 송년회에 초대되어 갔었고, 우리는 기쁘게 해후했습니다. 모처럼 만에 만났는데도 예전의 그 얼굴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변하지 않은 모습이 기자는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과정까지 이수 이렇게 좋은 인상은 평생 가는 법인가 봅니다. 행사와 무관하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미용 기술과 실력 그리고 인간성을 탑재하고 있는 이영숙 원장은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미용 재료상을 운영하셨는데, 미용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추천해주셨습니다. 저도 미용을 배우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저에게 천직인 것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 했는데 끊임없는 학구열과 주경야독으로 노력하여 문화예술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용을 선택할 만큼 미용에 대한 자랑스러운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이영숙 원장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영숙 원장은 그 여세를 몰아 프랑스 M.C.B. 대회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합니다. “38년 동안 미용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느 날, 세계 38개국 회원국이 함께하는 M.C.B. 세계대회의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컨슈머 부문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위 선양을 했습니다. 그때 프랑스 in Paris에서 헤어아트를 전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미용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희열이 엔돌핀이 되어 더욱더 성취욕을 느껴 이후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여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미용인으로서의 참된 삶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영숙 원장은 한국 미용을 세계에 알렸고,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노력하고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도 원도 없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꿈에 그리던 세계대회에서 1등했을 때, 미용기능장이 되었을 때, 박사 논문을 쓰고 졸업했을 때, 특히 정말 어렵게 매년 공단에서 15년 이상 현업에 종사한 기술 숙련자를 대상으로 각 분야마다 선정하여 최고 수준의 보유 숙련기술자로 인정받는 자격증과 업적을 평가해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기술강국 한국을 빛내는 영광의 주인공들, 우수숙련기술인’으로 선발되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저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업적의 보물들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함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꿈을 이룬 사람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숙 원장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용인으로 살면서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어가는데, 어느 날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아온 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습니다. 생각 즉시 행동하여 살롱을 옮기고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식사하고 커피를 즐기며 여행하는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1인 숍으로 만들어 여유로운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미덕 실천 미용인들도 이제는 삶을 즐기며 살 시대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 행복을 추구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이영숙 원장은 일찍이 간파하고 멋지게 삶을 개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영숙 원장은 미용인의 주된 덕목인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월 둘째 휴일은 요양원에서 식사 봉사와 미용 봉사를, 넷째 휴일은 장애인들의 이, 미용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을 통하여 예뻐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외모를 가꾸어주며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봉사활동은 미용인으로서의 보람이자 긍지입니다.” 이영숙 대표는 미용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들의 본능인 예뻐지기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기에 자기 계발과 연구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미용인으로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트렌드를 받아들이며 기본에 충실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힘주어 말합니다. 미용기술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임을 강조하는 이영숙 원장은 우리 미용계의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프로필 *가온헤어살롱 대표 *서경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 박사 졸업 *이, 미용기능장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2급 교사자격증(고용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 선정(고용노동부) *인천광역시 미용직종 명장심사(서류 및 현장실사)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9기 기술강사(현) *M.C.B 세계 38개국 프랑스파리 컨슈머 1위 *(사)한국미용장협회 13대 이사 (현) *소상공인진흥공단 역량강화컨설턴트(전) *소상공인진흥공단 채움멘토 컨설턴트(현) *보건복지부 장관상(권덕철)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2기 강사(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부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 은평구지회 상임위원(현) *(사)한국미용장협회 9대 서울지회장(전) *삼육보건대학 겸임교수(전) *(사)한국미용장협회 헤어트렌드연구 위원장(현)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총무(전) *서울시장배 헤어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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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 아주 특별한 미용인, 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전덕현 교수는 우리 미용계의 소중한 보배다. 미용인 2세로서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협회 지도자, 유명강사, 대학교수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용인의 미래 청사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미용의 기술력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 제2의 미용인생을 설계하는 전덕현 교수를 찾아 한국미용에 대한 애정어린 생각을 들었다. <편집자주> 전덕현, 특별한 미용인 Trend & Classic 끊임없이 미용연구와 사색, 정진하는 미용철학, 미용에 대한 태도, 저를 표현하는 단어는 트랜드와 클래식입니다. 현장미용인으로서, 미용교수로, 미용협회 임원으로, 해외 진출 미용경영인으로 46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미용을 처음 접한 당시, 남성최초의 학사미용인으로(경희대 사학과 졸업)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 당시 금남의 직업인 것처럼 여겨져서 일반남성들은 생각지도 못한 미용인의 길을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명동에 "장현경미용실"과 패션의 메카처럼 여겨졌던 이대입구에 "이화의집"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곳의 미용실은 젊은 층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미용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잠재적인 "끼"와 고교시절 교복 나팔바지, 대학시절 청바지 등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두 갈래길이 숲속에서 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덜 밟는 길을 택했고 그것이 제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미용의 길은 처음에는 기술적인 숙련이 필요했기에 고생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바둑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잠자리에 누워서도 복기와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매일매일 머리속으로 두상 각도 층 커트 드라이 펌 등등 브레인스토밍의 연속이었습니다. 추억 속의 모멘트 몇 장면 추억의 몇 가지 중요장면을 살펴보면, 1980년 초 명동 장현경미용실에서 근무할 때, 연예인들의 집합소인 유지승미용실을 안부인사 겸 견학을 했는데, 이것은 첫 입문한 미용인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당시에는 타 미용실 방문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니었던 시절입니다.) 1988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기술강사 2기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오정순 중앙회장님께서 세계적인 추세를 이야기하시면서 “미용이란 직업도 세계적으로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미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로 한국에서도 남성미용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회에서 많은 이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성미용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미용계의 존경받는 어르신이 오정순 회장님이셨습니다. 커트 철학을 접하다-HEAD WAY 동희산 선생님{재미교포로 1990년 LA비달사순 아트디렉터}으로부터 커트의 과학적인 분석은 물론 디테일을 사사 받았습니다. 철학적인 개념이 HEAD WAY입니다. 그 당시 BOB단발스타일을 커트하는데 무려 1시간이 걸린다해서 무척이나 많은 문화적 쇼크를 받았습니다.(그 당시 컷은 10분 내외로 하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입니다.) 또한, 한국의 소나무 청자곡선을 제시하면서 한국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셨으나, 그 당시에는 그리 가슴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스승의 그 제자로 지금은 Head WAY를 강조하고, 한국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강의와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Pivot Point 교육 Program을 새한화장품에서 도입했을 때 압구정동 전덕현미용학원도 같은 Program을 강의하였습니다. 그 당시 2가지 큰 쇼크를 받았는데, 미용의 교육 교재 제목이 Scientipic Approach to the Hair Sculpture(헤어 조형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 2번째 놀란 것은 대인관계 기술이었습니다. 미용기술만 강조되었던 그 시절에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단하였고, 그 당시에 미용실은 기술중심이라 접객의 중요성은 그리 강조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접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많은 미용인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 개념을 빨리 적용한 미용인은 성공적인 미용실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미용최고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 10년간 봉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미용실 원장님들이 한 기수에 사오십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너지효과 집단지성의 면에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미용에 대한 철학 트랜드 & 클래식 태도 자세를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용협회 임원봉사는 강남미용협회 회장, 중앙회 기술분과 위원장, 부회장, 수석부회장으로 아시아 OMC부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무대에서 많은 지도자와 교류를 갖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과 활약 중국진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시즌에 중국직항이 없었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북경으로 들어가서 만리장성에서 헤어쇼, 연길 TV초청 미용세미나 헤어쇼를 개최하였는데 그게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한중국교전은 첫 중국세미나 쇼였기 때문에 많은 매스컴에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중국미용협회 주최 ’21세기 중국미용발전 방안 세미나‘에서 주 강사로 초빙되었고, 많은 중국 미용인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인연으로 20여 년간 중국미용협회 자문위원 위촉을 받았습니다. 2002년 북경 대종호텔 회장님의 중국진출 요청으로 전덕현미용실을 개설하였고, 그 후 중국 전국 세미나 강사로 중국미용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미용 연재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인 최초로 중국미용잡지 표지모델( COVER STORY)로 선정되었으며, 공로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진시 대학의 종합미용학과 등에서 초빙받아 특별세미나를 하였습니다. ‘땔감은 떨어져도 불씨는 살려라'라는 속담이 있듯 아직도 중국미용시장은 한국미용인에게는 큰 시장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중국미용협회 창립 25주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외국인 미용인 3명 중 1인(하종순 회장님, 일중우호협회 회장님, 전덕현)에 해당하는 영광입니다. 북경 10대 건축물인 SOHO WANGJING(동대문DDP 설계자-자하 하디드, 미래주의 건축물 설계자)에 미용실을 개설하였는데, 한국적인 인테리어, 한국적인 서비스로 한국미용 기술의 우수성을 알려 젊은이들의 Hot place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헤어케어시스템 머리영양에 대한 개념이 약한 중국미용실과 대조되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영양을 하여 인기가 좋았습니다. 국내 귀국 고향은 언제나 좋은 곳입니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미용실들이 경제적으로 위축되고 세미나도 축소되고 공부하는 그룹들의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미용실의 불황 해결방법은 미용기술의 향상밖에 없습니다. Trend와 Clasic의 철학적 배경의 이해 K-Wave 한류가 세계의 Trend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손흥민 현상-손흥민의 발리슛에서 그동안의 훈련의 결과인 기본 classic을 읽을 수 있고요, GD드래곤의 콘서트에서 K-POP의 위력과 Fashion을 느끼며 Trend를 읽습니다. 이 두 개념의 결합-얼마나 많은 창작과 창의성을 위한 노력의 결과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더 훈련하고 연마한 기초 Classic Basic 위에 Fashion-Trend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미용실이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Trend와 Classic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고객이 우리 숍에 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특별한 Service 메뉴를 만들어야 합니다. 차별화된 고품격 Service만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세련된 미‘를 찾아 방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부터 세련미로 무장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안심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배우며 행복한 미용인이 되자 박진영은 K-POP의 선구자로 대중문화 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장관급)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취임 일성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경할만합니다. 그의 목표 비젼은, “첫째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 둘째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입니다. 너무나 멋진 위원장으로서의 포부입니다. 우리 미용계도 박진영 위원장 같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제도적 장치로 K-Beauty 확산을 위해 K-뷰티진흥법, K-뷰티진흥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식진흥법-한식진흥원은 이미 10여 년 전 설립된 바 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미용인의 정치 참여도를 적극적으로 높여 국회의원과 정부를 설득하여 정치적인 발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이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습니까. 네팔 청년의 다음과 같은 외침,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절망의 어둠 속에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의 태양처럼 떠오를 것인가.“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역사의 길 위에 변화의 기념비를 세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용인이 "진, 선, 미"와 더불어 미덕, 품위, 품격을 고객과 함께 누리면서 행복한 미용과 경제적으로도 큰 성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미용인들은 물론 특히 ’뷰티라이프사랑모임‘ 가족들과 그동안 못다 한 교류를 더욱 강화하여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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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현 교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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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현실이 됩니다
- “생각이 현실이 됩니다” 아뜰리에뷰티아카데미 원주캠퍼스 최인영 대표 최인영 대표 -자기소개 및 미용계 입문 과정 “아름다움은 여성의 철학이다.”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말은 “아름답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름다워 지고 싶은 마음은 영원불변의 법칙입니다.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미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아뜰리에뷰티아카데미 원주캠퍼스 최인영 대표입니다. 벌써 뷰티업계에 종사한지 2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평생 직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직장을 다니며 미용에 입문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게 너무 간절하고 절실했습니다. 메이크업 기술을 익힌 다음 태평양 본사 프로모션 팀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화장품과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했습니다. 그 후 인재 양성에 뜻을 두고 미용학원에서 원장으로 18년을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감사하게 아름다움을 많은 분들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메이크업을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메이크업 박스를 며칠 동안 머리맡에 놓고 잠을 잘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저는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뜰리에뷰티아카데미 원주캠퍼스의 자랑과 소개 아뜰리에미용학원은 미래의 성공을 함께합니다. 저의 역할은 수강하는 분들을 “미용인으로 성장”시키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성공한 미용인을 양성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습니다. 처음 학원을 방문할 때 어떻게 할지 막막해 했던 수강생들이 지금은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꿈을 스케치하고 스케일 업 하는 미용고등학교 교사로 대학교수로 미용을 배워 사업가로 변신한 분, 취업을 해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 1인숍 창업하시 사장님,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 제가 18년 동안 학원 일을 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을 미용인으로 성공 시켰더군요. 미용을 꿈꾸는 분들의 성공을 함께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3개월 정도 배우면 실전 현장에서 시현을 할 수 있습니다. 국가자격증 합격률이 또한 굉장히 높습니다. 교육에 대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시스템화 되어 있습니다. -아카데미 운영의 애로점과 긍지 학원으로 상담 받으러 오신 분들은 나름 고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미용에 대한 목표가 분명하신 분들은 실행력이 있어 결과도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는 분들은 매번 고민만하다 시간을 보내고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상담을 받고 또 상담을 받으면서 망설이고 있는 분들,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급하게 창업을 서두르시는 분들, 다양한 분들을 만나 보면서 느낀 점은 생각이 너무 앞서간다는 것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하는데 그런 분들을 만날 때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확신을 가지고 함께 했던 분들이 목표를 이루고 감사하다고 찾아 올 때 그때 정말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습니다. -평소 미용 철학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되고,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역시 그렇게 된다. 결국 생각이 현실이 된다. 그리고 성공을 오래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꾸준하다. -미용계에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 최근 2023년 7월 원주보훈요양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청춘 사진을 촬영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80대 9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처음으로 화장을 하시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장수사진을 보고 자녀분들이 자신들이 해드리지 못한 것을 해주셨다며 인사를 해주실 때 정말 미용으로 누군가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장, 단기 계획 미용을 배우고 있는 중, 고등학생들과 성인들이 대학과 취업, 창업으로 자신들이 꿈꾸는 것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K뷰티를 글로벌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제 꿈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말씀도 이 자리를 빌려 밝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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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공부하는 미용인
- 미용인보(美容人譜)54 평생 공부하는 미용인 엘미강헤어 이미정 대표 이미정 대표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이미정 대표 열일곱 아리따운 나이에 미용을 시작했다 멋쟁이 어머니는 손재주가 뛰어난 딸을 미용의 길로 안내하신 길라잡이 새로운 도전은 희망을 낳고 인고의 시간도 가졌다 미용인은 끊임없이 공부하며 봉사하는 삶 인턴들에겐 따뜻함과 칭찬 디자이너들에게는 비전과 경험 사랑으로 다가갔다 드디어, ‘아름다운 여인의 시작은 강릉으로부터’ 엘미강헤어가 세상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성공은 시작에 불과할 뿐 석사에서 교육자로 세계를 넘나드는 봉사자로 우뚝 섰다 그래도 이제는 박사다 모든 걸 갖춘 미용인이 되기 위해 오늘 또 달린다 많은 미용인들의 추천으로 만남 성사 강릉하면 많은 미용인들은 엘미강헤어를 떠올리고 엘미강헤어하면 이미정 대표를 연상한다. 그만큼 강릉에서 엘미강헤어를 운영하는 이미정 대표는 미용인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기자가 이미정 대표를 만난 것은 여러 미용인들로부터 이미정 대표를 추천받아서이다. 이미정 대표를 만나기 전까지 많은 미용인, 특히 젊은 미용인들이 강릉의 이미정 대표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인간성과 미용 실력을 고루 갖췄는데, 특히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드디어 한 미용계 헤어쇼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인사 후 친숙하게 후일을 기약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만남은 이처럼 운명처럼 다가오는 법이다. 그 후 우리는 몇 번 세미나장과 행사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지난 2018년 11월호 우리 잡지의 헤어 연출을 이미정 대표께 맡겼다. 그때의 소회를 기자는 개인 SN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11월호 표지모델은 모델업계의 기린아 최종문 양. 헤어와 메이크업은 강릉 미용계의 유명스타 엘미강헤어 이미정 대표가 맡아 가을미를 물씬 풍기는 작품을 만들었다. 화기애애한 스튜디오, 역시 일은 재미있게 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신명나게 촬영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여세를 몰아 올 4월호 표지 연출도 이미정 대표가 맡았다. 5년만의 표지 연출 재회였다. 역시 기자는 SNS에 “4월호 표지 모델은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문초희 양. 헤어는 강릉에서 엘미강헤어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정 대표. 이미정 대표는 우리 미용계의 엘리트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미용계에서 스마트한 경영으로 미용인의 귀감이 되고 있는 이미정 대표는 향후 미용계를 이끌 재원임에 틀림없다고 기자는 확신한다.”라고 썼다. 이미정 대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이런 표현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그래서 인간은 마음으로 통하고 이어진다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어머니의 권유로 미용 시작 이미정 대표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미용의 길로 입문했다. 무교동 뉴 국제 관광호텔 미용실, 이대 앞, 명동을 거쳐 강릉으로 내려갔다. 강릉의 성남동 샛별미용실, 지금은 사라진 남문동 옥수탕 옥수미용실 등 좁고 좁은 미용실 단칸방에서 지내며 미용기술을 익혔다. 어린 나이에 겪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강릉에 살며 현재의 남편을 만났고, 강릉에 정착했다. 첫째 아들을 가지기 전 성남동의 부림장여관 1층에 부림미용실 문을 열었다. 작은 체구에 뽀얀 피부, 어린 여 원장을 만만히 보고 무례하게 구는 손님도 있었지만 당당히 응대하며 기죽지 않았다. 한 명의 직원과 함께 부림미용실을 꾸려나갔다. 그 사이 첫째 아들과 둘째 딸도 태어났다. 두 자녀와 시어머니를 모시며 피곤한 줄 모르고 쉬는 날도 없이 일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옆 동네 명주동으로 이사했다. ‘이미정 헤어휴’라는 세련된 간판도 내걸었다. 시청과 관공서가 모여 있던 강릉시내의 명주동에서의 여정은 순탄했다. 문전성시로 손님들이 찾아왔고 자연스럽게 직원 헤어디자이너의 수도 늘었다. 가게 앞 강릉시청은 홍제동으로 이전하고, 교동택지라는 신택지가 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이자 도전을 결심했다. 교동택지가 조성되던 시기, 그곳의 중심가 상가에 세를 얻었다. 성남동과 명주동 구도심을 떠나 신도심에서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거느리는 헤어디자이너와 인턴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때 분점 확장에 대한 고뇌를 시작했다. 그 시기에 우연히 만난 민스헤어 박창준 대표와의 인연으로 ‘민스헤어 강릉점’으로 새 단장했다. 고객 한분 한분에 대한 섬세한 케어와 소통으로 매출은 더 오르고 올랐다. 민스헤어 전국 프랜차이즈 지점 중 최고 매출 지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시기를 거치며 민스헤어 교동점, 교동택지점, 입암점으로 분점을 오픈했다. 강릉에서 민스헤어가 머리 잘하는 미용실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였다. 엘미강헤어의 탄생 민스헤어 강릉점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이미정 대표의 미용 철학과 신념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졌다. 직원들과 주변 지인들, 가족들, 친구들에게 브랜드 이름 네이밍을 자문했다. 결국 새로운 이름은 ‘엘미강 EMK’으로 결정했다. 프랑스어로 여자를 의미하는 elle 엘르, 한문 아름다울 미(美), 강릉의 강. 이 세 글자를 조합해 ‘엘미강헤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그렇게 엘미강헤어 본점, 엘미강헤어 교택점, 엘미강헤어 교동점, 엘미강헤어 입암점으로 4개의 매장이 생겨났다. 이미정 대표는 2007년, 건국대학교 산업대학원 향장학 전공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일주일에 강의는 이틀.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일주일에 두 번을 강릉과 서울을 오갔다. 늦은 밤까지 수업을 듣고 강릉으로 내려가고, 다시 다음날 미용실로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밤낮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학위논문을 작성했다. 그리하여 2010년 8월, ‘향장미용학 석사’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하나 더 얻었다. 그야말로 형설지공, 불철주야 노력의 결과였다. 석사학위의 취득 후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상지영서대학교와 충북 제천에 위치한 대원과학대학교의 부름을 받았다. 미용학과의 겸임교수로서 출강을 하게 된 것이다. 강릉의 헤어숍을 경영하고, 직원들을 교육하는 것 뿐 아니라 미래의 미용인재들을 양성하는 귀중한 일을 맡게 된 것이다. 헤어커트, 퍼머넌트, 업스타일, 헤어컬러 등의 과목들을 지도했다. 십여 년을 두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이후 강릉 가톨릭관동대학교에 뷰티디자인학부가 신설되면서 그곳의 겸임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대한민국 미용을 이끌어 갈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매학기 보람차고 뿌듯한 일이었다. 이미정 대표는 오랜 시간을 미용계에 몸담고 일하며 배우고 익힌 것들을 단순히 가르치는 일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매년 엘미강헤어의 헤어디자이너 인턴들과 장애인 학교인 강릉오성학교를 찾아 미용봉사활동을 한다. 순수한 미소로 맞이해주고 아름답고 멋지게 변신한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만족해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미정 대표는 나누는 것의 감사함과 기쁨을 배웠다. 기술과 능력을 베풀고 나누기 위해 나가는 봉사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받고 돌아오는 것 같다고 이미정 대표는 말한다. 지난 2018년 겨울,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대회의 개막식 행사에 초청을 받아 내빈들과 선수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축제의 자리에 한축의 귀한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봉사는 국내에 그치지 않았다. 케냐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한민국과 케냐의 수교를 기념하여 여는 한복쇼에 궁중머리(올림머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고 이미정 대표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고전미의 아름다움을 있는 힘껏 전해주고 왔다. 배움에는 제약이 없다 이미정 대표는 이제 60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늦은 나이일 수 있지만 배움에는 나이 제약이 없으며 학업의 길을 끝이 없다고 이미정 대표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융합산업학과의 미용학 박사과정, 현장 경험과 기술, 거기에 학술과 이론까지 겸비한 공부하는 미용인이 되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정 대표를 보면 인간의 능력은 한계는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씨와 봉사 정신, 미용에 대한 애정으로 미용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이미정 대표가 있기에 미용계의 미래가 밝다고 기자는 확신하는 것이다. 이미정 대표 프로필 건국대학교 대학원 향장학 석사 졸업 서울벤처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중 전) 원주영서대학교 피부미용과 [겸임교수] 서울중앙회 미용대회 고전머리 부분 입상 서비스 최우수숍 선정 이미정 헤어 오픈 엘미강헤어 1.2.3.4.5.6호점 오픈 전) 가톨릭관동대학교 뷰티디자인학과 [전임] 평창 패럴올림픽 헤어 담당 장애인직업안정연구원 한국 몽골 해외봉사 한국 케냐 수교 55주년 한복페스티발 헤어담당 한국아유르베다 심리학 기본유형 제7유형 균형단계 수료 현)대한미용사중앙회 고전머리 특별위원회 기술강사 전)대원 과학대학 겸임 교수 전)사임당 로타리클럽 회장 역임 강릉시 주최 야행 헤어&메이크업 담당 강원FC 헤어&메이크업 지정업체 영국 비달사순 살롱 크리에이티브 코스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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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공부하는 미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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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밀해진 슬픔, 인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시집
- 저자 초대석(오성인) 농밀해진 슬픔, 인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 출간한 오성인 시인 오성인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시 쓰는 오성인이라고 합니다. 1987년 9월,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기독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연인지 이 병원이 264번지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1904∼1944) 선생의 수인번호와 똑같지요. 출생 당시 아버지가 벌교세무서의 세무공무원이었던 까닭에 벌교에서 잠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세무공무원이 적성에 맞지 않은 아버지가 세무서를 그만 두셨어요. 그 바람에 자주 직장이 바뀌어서 순천, 정읍, 인천, 의정부, 창원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태어난 곳인 광주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가 1996년 가을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이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2006년 초까지 10년 가까이 광주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재개발에 들어가고, 대학 통학 문제도 있어서 형편에 맞는 곳을 알아보다가 부모님과 나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2006년 봄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까 이제는 광주보다 오래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등단까지 했네요.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고 2013년에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푸른 눈의 목격자』와 금번에 출간한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가 있습니다. 대산창작기금과 나주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시집 소개와 함께 소회도 말씀해주시지요. 5년 전에 첫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로 광주와 전남 지역이 지니고 있는 생태, 문화, 역사 등을 조명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서려 있는 비극성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 비극성에는 할아버지부터 시작되어 아버지, 어머니 대까지 이어져 온 집안의 잔혹사와 본의 아니게 모순과 슬픔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린 한 소시민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1980년 5월 군부대에서 상부의 지시로 계엄군들의 진압봉(충정봉)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진압봉이 계엄군들 손에 쥐어져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했습니다. 이때 아버지와 절친한 삼촌들도 크고 깊은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는데요. 그런 일로 아버지는 평생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언젠가 저에게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치를 떨 듯 말한 바 있었는데, 그런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시로 옮기면서 광주라는 공간을 이전보다 심도 있게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런 과정에서 소멸 위기가 점점 가속화되는 지역의 소리를 채록할 수 있었습니다. 한층 농밀해진 슬픔을 선사하면서 인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시집입니다. -이번 시집을 내게 된 동기가 있다면? 광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바라보면 변두리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광주 출신인 저에게 만큼은 변두리가 아닌, 중심지이지요. 또 광주는 단순한 생활공간이라기보다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요. 여전히 곳곳에서 혐오 발언을 일삼거나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광주를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광주를 말하지 않고서 저는 시를 쓸 수 없습니다. 더불어서 남도만이 가지는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있는데 기존의 흐름을 답습하지 않고 이를 제 나름의 호흡과 감각으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광주가 중앙에 대비되는 지역이 아닌, 동등한 지역으로 인식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번 시집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이번 시집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무려 구십여 차례나 나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제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데요. 다만, 아버지 안의 비극성을 폭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담겨지는 목소리는 아버지의 것이 아닌 저의 목소리여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시간이되 동시에 저의 이야기이지요. 그런 이유로 이번 시집의 화자 대부분은 유년(과거)과 성년(현재)을 오가며 끊임없이 대화를 청하고 증언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고자 했습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을 추천하신다면? 시집 2부 후반부에 있는 「심부름」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면목이 없다 나처럼 살지 말아라 절대로 나를 닮아서는 안 된다 일체 곡기를 끊고 소주로만 속을 채웠던 아버지는 심부름을 보내며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남은 돈은 너 쓰려무나 하고 싶은 일 하고 갖고 싶은 것 있으면 사려무나 나처럼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처럼만 소주를 사러 가는 동안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고작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아버지는 될 수 없겠지만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곡기를 끊은 아버지에게 소주 대신 밥과 반찬을 사 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 것인데 알면서도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결국 소주 서너 병을 사서 돌아간다 술을 사고 남은 몇백 원으로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골몰하는 사이 나를 기다리다 빈 병처럼 누워 쓸쓸히 잠든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시집을 내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회의 모순, 물질문명의 폭력성, 자본의 폐해 등을 주로 소재로 다뤄왔던 까닭에 대부분의 시가 계몽적(교훈적)이라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호흡이나 감각이 낡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판사에 투고했던 원고 대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썼습니다. 이번 시집에 실은 작품들 대다수가 어떤 매체도 발표된 적 없는 신작이에요. 원고를 아예 새로 준비하느라 그 좋아하는 술과 거리를 뒀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건강도 챙겼어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 시집이 출간된 지 꼭 세 달 되었습니다. 첫 시집은 설익은 부분이 많아서 많이 아쉽고 부끄러웠는데 이번 시집은 첫 시집에서 단점으로 치부되었던 점들이 상쇄돼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집 전반에 걸쳐 아버지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했음에도 당신이 어째서 이런 삶을 살게 됐는지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는데요, 조만간 첫 시집과 두 번째 사이를 잇는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에 있습니다. 책 내는 일과는 별도로 나주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시 읽기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광주와 아버지를 거쳐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모색하고자 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고들 하는데 저의 경우는 ‘아(我) 답다’에서 파생되지 않았는지 유추해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를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틀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유무를 떠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또 다른 ‘나’로 인식할 때 시는 발현됩니다. 시를 사랑하는 누구나 시인입니다. 시심(詩心) 충만한 가을이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집이 저의 아버지만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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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밀해진 슬픔, 인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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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추억과 풍경이 있는 이야기
- 저자 초대석(황종권) 따뜻한 추억과 풍경이 있는 이야기 <방울슈퍼 이야기> 출간한 황종권 시인 황종권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여수의 작은 슈퍼집 아들로 태어나 동네 꼬마들한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엄마 몰래 과자를 훔쳐 친구들과 나눠 먹길 좋아했으며, 특히 수업 중에 먹는 비비탄 사탕 ‘짝궁’을 좋아했습니다. 인생이 과자처럼 달지 않다는 걸 알면서부터 시를 쓴 것 같습니다. 2023년 현재는 고양예고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으며, 아이들의 과자 값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메일링 서비스 주간 <슈퍼맨>을 운영 중입니다. -<방울슈퍼 이야기> 출간 소회 시집은 8년 만에 출간할 정도로 애도 쓰고 힘도 들었는데, <방울슈퍼 이야기>는 그에 비하면 아주 편하게 출간을 하였습니다. 애를 쓰지 않아도 받아 적을 수 있는 마음이 있었고, 혼자 쓰는 게 아니라 그리운 것들과 함께 쓰는 것 같았습니다. 책은 제 이름은 냈지만, 그리운 이름들이 더 많이 남습니다. 비록 책 한 권이지만 잃어버렸거나, 잊고 지낸 사람의 풍경을 찾은 것 같아 마냥 반갑고 따뜻합니다. -<방울슈퍼 이야기>는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요즘 슈퍼 찾기가 참 어렵지요? 편의만을 위한 편의점만 즐비한데요. <방울슈퍼 이야기>는 추억의 풍경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에 울고 웃던 풍경, 가난과 이웃하면서도 사람의 정은 충만했던 풍경, 슈퍼 앞 평상에서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자시는 풍경, 동전을 짤랑거리며 오락기에 푹 빠져있는 풍경, 연탄불에 쫀드기를 구워 먹는 풍경 등 그 시절 우리를 따뜻하게 했던 추억의 풍경과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많은 북콘서트를 하고 계신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석민재 시인이 운영하는 양보책방 북콘서트가 기억이 납니다. 면장님부터, 도의원님까지 출두한 제법 큰 행사였습니다. 보통 지역행사를 하면 높은 분들, 귀빈들 소개하기가 바쁩니다. 그런데 <방울슈퍼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는 높이보다 곁을 챙기는 마음, 낮은 자를 먼저 살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북콘서트에 가장 먼저 소개된 분은 정치인도 귀빈도 아니라, 전어 굽는 아저씨였습니다. 떡볶이와 어묵탕을 만들어주신 아줌마였습니다. 책의 마음을 그대로 실천하는 작가를 보고 크게 웃고, 크게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방울슈퍼 이야기>는 과자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무엇인가요? 저는 사브레를 가장 좋아합니다. 보통 과자는 달거나, 짜거나 맛이 전부인데 사브레는 프랑스의 풍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극적인 맛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풍미로 끌어당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버터향은 지금 맡아도 국경을 넘은 듯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왜 방울슈퍼인가? 혹시 가족 중에 방울이란 이름이 있는가? 보통 가족 이름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짓는데, 방울 슈퍼는 망한 가게의 이름이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망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울 슈퍼 자리가 안 좋다, 망하는 이름이라고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방울 슈퍼를 들어서자마자, 방울 슈퍼로 일어서리라 결심했답니다. 사랑에 빠지면 종소리가 들리듯 어떤 희망의 종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방울슈퍼 이야기>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어머니를 단 한 줄로 표현한다면? “희망의 문을 닫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방울 슈퍼가 망하던 날에도 희망 쪽으로 문을 열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얼굴에 기미가 상당히 많았는데, 화장품 카운슬러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다들 그 거무튀튀한 얼굴로…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본인이 김태희, 전지현, 한지민보다 더 설득력 있는 모델이 되어 수십 년 동안 아모레 카운슬러 수석지부장을 지키고 계십니다. 지금은 그 누가 봐도 환한 피부의 소유자, 객관적 피부 미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저는 요즘 제 2시집과 캠핑 에세이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법 정리가 되긴 했는데, 서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빨리 내는 것보다 제 가치를 알아주는 곳을 찾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사랑 받으려는 마음보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방울 슈퍼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 사랑을 받고 있어, 소중한 것들이 특별해지고 있습니다. 소박하고, 별거 없는 마음에도 언젠가는 볕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계절로 데려갈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는 게 아무 팍팍해도 희망 쪽으로 숨을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말고 곁을 잘 지키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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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추억과 풍경이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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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라이프 9월호 표지 촬영
- <2023년 9월호 표지 촬영> 모델: 최종문(MC 겸 모델) 헤어: 신순희(한국방송고전머리협회 부회장), 임수빈(회장) 메이크업: 범효경(사무국장) 사진: 박제승(오리지날스튜디오 대표) 9월호 표지 모델은 MC 겸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최종문 양이다. 최종문 양은 예쁜 얼굴과 몸매는 물론 상냥한 마음씨를 가진 최고의 모델이자 MC다. 자기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에게 힘찬 박수를... 헤어는 추석을 맞이하여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 신순희 부회장이 맡았다. 임수빈 회장이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역시 고전머리는 우리의 재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9월호 표지로 고전머리가 더 많이 알려지길 기대한다. 메이크업은 범효경 협회 사무국장이 맡아 협회의 위상을 뽐냈다. 같은 일을 해도 즐거움이 배가 될 때가 있다. 이번 표지 촬영이 그런 날이다. 우린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뒤풀이를 2, 3차로 이어갔다. 일은 즐겁게, 뒤풀이는 더 신나게...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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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라이프 9월호 표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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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한 편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
- 한 편 한 편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 디카시집 『도나 노비스 파쳄』 출간한 리호 시인 리호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시 쓰는 리호라고 합니다. 시집에 실린 프로필로 대신하자면, 2023년 전 2100광년 떨어져 있는 M2-9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파인애플을 먹다가 지구에 불시착했습니다. M2-9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도 그 행성을 가본 이가 없어서 믿을지 모르겠습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2014년 실천문학 제3회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제3회 <이해조문학상>과 제4회 <디카시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는 『기타와 바게트』가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로는 곰과 지구, 양 세 마리와 토끼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번 시집 『도나 노비스 파쳄』은 어떤 시집일까요. 'Dona Nobis Pacem'은 라틴어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아픈 사람들을 위한 마음의 위안서이자 '토닥이 책'으로서 개인의 아픔, 사회의 아픔, 그리고 지구의 고통까지 한 편 한 편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입니다. 추천사를 쓴 김종회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리호 시인의 디카시는 ‘신박’하고 창의적이다. 이번 시집 『도나 노비스 파쳄』에서도 그의 새롭고 튀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디카시의 형식 속에서 기묘한 안정감을 구축하고 있는 그 시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매번 다른 시인이 가지 않은 ‘미개척의 서부’로 떠날 것 같다.”라고 평했습니다. 시는 텍스트로서의 상상만 하면 되었지만 디카시는 거기에 하나 더 영상까지 합쳐져서 두 배, 아니 네 배로 뇌 속의 회로가 복잡합니다. 디카시 쓰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해봤습니다. 곁가지를 모두 쳐냈을 때의 그 뼈대가 얼마나 단단하고 역설적이고 창의적일 수 있을까 리호의 ‘서부’는 앞으로도 계속될 듯합니다. -디카시와 디카시집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와 시(詩)의 합성어로 사진과 5행 이내의 시적인 언어가 결합하여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을 말합니다. 사진과 시가 별개의 작품성을 지니는 포토 포엠(photo poem)과는 달리, 디카시는 두 가지 요소가 하나로 융합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토 포엠은 자연스러운 풍경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반면, 디카시는 화학적인 혼합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를 섞어 만든 마요네즈처럼 새롭고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죠.(웃음) -디카시집을 내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2017년 계간 ≪디카시≫에 「투영」이란 작품을 발표했는데 뜻밖에도 2018년 제4회 디카시작품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얼떨결에 디카시 잘 쓰는 시인이 되었고(하하하) 그 후 꾸준히 작품을 쓰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시집은 5년간의 발표 시와 신작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발표 지면이 많지 않아 신작 시가 더 많이 수록되었습니다. 1회 수상자인 공광규, 2회 김왕노, 3회 송찬호, 5회 이운진 시인들 모두 디카시집이 나온 터라 등 떠미는 이가 없어도 괜히 시집을 출간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시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 일사천리로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도서출판 실천의 이어산 발행인과 멋지고 세세하게 살펴주신 편집부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번 시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다 보면 아주 작은 것들에도 흥미가 생깁니다. 오래 전 제게 시는 가장 힘든 시기에 다가왔습니다. 시를 쓰면서 다시 삶의 기운을 얻었습니다. 시가 제게는 약방문이 된 셈입니다.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살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잃을 수도 있고,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심장이 먹먹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디카시를 쓰면서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디카시 쓰는 과정은 자신을 낮추고 더 깊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이번 시집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스스로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주위의 아픔도 보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지만 결코 쉽지 않고, 어렵지만 결코 어렵지 않은 새로운 문학 장르, 디카시입니다. -해설 부분이 독특하던데요, 혹시 이번 디카시집을 엮으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시집 뒤편에는 'Agnus Dei'라는 제목의 해설 모음이 총 8편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리호의 디카시를 나이와 직업군이 다양한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앉은 곳과 포즈는 모두 다르지만 바라보는 눈은 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재학생부터 시인, 평론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아홉 분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분이 사실은 저의 ‘야스 오마니 순달씨’였습니다. 31년생 올해로 93세이신데 큰 글씨로 파일을 전송해도 읽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싣지 못했습니다. 만약 두 번째 디카시집을 출간하게 된다면, 빔 프로젝터 등을 활용하여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살짝 알려주세요. 이번 디카시집이 나오고 보니 큰 숙제 하나를 마친 듯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삽니다. 계획이 있을 수 없고요, 하루가 일생이라 생각하고 산 지 꽤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 살아있구나, 태어났구나, 오늘은 무엇으로 살아볼까, 꽈배기는 어떨까, 아니지 핫핑크나 청록으로 살까, 아니지 그냥 우비를 사랑하는 빗방울로 하자’ 그래서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이제 마음 편하게 두 번째 시집 준비하는 척해도 될 듯합니다. 이르면 내후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살다 보니 제가 시곗바늘인지 사람인지 착각에 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과 화해하며 살까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25년간 꿋꿋하게 근사한 글쟁이로 남을 수 있을까요?(하하하) -이번 디카시집에서 딱 한 편 소개해 주신다면요. 「입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독자가 가장 많이 질문하는 디카시라서 뽑아봤습니다. 디카시가 일반 시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순간성에 있습니다. 순간 포착한 형상, 즉 이 모습은 세상에 딱 한 장밖에 없다는 겁니다. 「입추」라는 작품의 사진은 출근하면서 문득 눈에 보인 현관 차양막을 찍은 것인데, 가만 보니 오랫동안 비, 바람, 눈 등 즉 자연이 툭 내려놓은 ‘위로의 말’ 같았습니다. 그 풍경이 제게 “먹구름이 흘린 눈물로” 만든 “가을 종유석”으로 다가왔고. 그것을 “먹구름”이 “그린” 가을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극사실적인 순간 포착은 디카시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의 배우 오정세의 남자조연상 수상소감을 듣던 중 맘을 단단하게 하는 문장이 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에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367일을 디디는 힘이 ‘신의 잔소리’라면 368일을 견디는 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혹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것’이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카메라에 찍힌 찰나의 지구든 사람이든 하늘 우물 속 바람이든 간에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도나 노비스 파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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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한 편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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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께 전문적,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노력합니다"
- “회원들께 전문적,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노력합니다” 박민숙 대한미용사회 서초구 지회장 박민숙 지회장 -자기 소개 안녕하세요. 서초구 8백 미용인들과 함께 미용인들의 권익과 행복을 향해 뜨겁게 매진 중인 사단법인 대한미용사회 서초구지회 지회장 박민숙입니다. 뷰티라이프의 오랜 구독자인데 이렇게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서초지회의 자랑 서초구는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 순위 1위입니다. 3대 부촌으로 자리하는 서초구인 만큼 서초구에서의 미용업이 타 지역에 비해 이윤이 높다거나 구인이 수월할 거라는 예상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물론 미용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할 만큼의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나 정, 재계 유명인사, 연예인 고객을 보유한 높은 경쟁력의 브랜드숍이 다수인 건 맞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걷다 보면 100미터마다 눈에 띄는 수많은 미용실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쟁력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초지회는 오랜 세월 미용업에 종사하며 성실하게 업장을 운영해 오신 원장님들이 진정한 미용 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1인 미용실을 오픈하며 홀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원장님들의 패기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원장님들의 실력에 트렌드에 민감한 감각을 더하시라고 최신유행과 기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무료세미나를 자주 개최하고 있구요. 미용실 운영에 필요한 계약, 세금, 회계 등과 같은 전문분야에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서초지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고 계신지. 앞서 말씀드린 저희 서초지회가 우선하고 있는 과업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발 빠른 실행력과 더불어 재정적인 뒷받침이 절실했어요. 2019년 첫 지회장 취임 당시 본인과 함께 지회를 이끌어가는 신민순 국장님, 윤미연 과장님께 맨 처음 전달 드린 당부가 “우리 허리띠를 졸라 매자”였지요. 당시 서초지회의 재정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거든요. 협회 회원을 늘려서 재정을 불리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협회 운영비를 감축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업계 관련 분들을 많이 만나 뵙고 조율하면서 회원 분들에게 무료강의, 세미나 등을 준비해 놓았지만 곧바로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면서 많은 계획들이 무산되었죠. 소통이 불발된 상황에 막막했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미용인들의 생존력을요. 꿋꿋이 이겨낸 서초지회 미용인과 함께 미처 펼치지 못한 목표들을 꼭 이뤄내고자 재선에 걸쳐 다시금 서초지회장에 연임되었고, 임원 분들과 회원 분들의 든든한 격려 하에 많은 과업들을 차근차근 실행 중에 있습니다. -소녀감성 유지비결은? 공부를 아주 잘하진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가 취미인 소녀였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불러서 동네 어르신들이 아주 예뻐했죠. 주로 친구들 화장해주고 머리 꾸며주며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비록 생김새는 세월을 담아 변해왔지만 여전히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들이 그대로인 걸 보면 소녀감성 맞는가 보네요. 비결이랄 게 있을까요? 그저 세상에 다치고 사람에 치여도 딱지 같은 마음의 응어리를 남기지 않고 다시금 새살 같은 말랑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하는 회복력이 좀 강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원망, 미움, 좌절, 실패 등등의 감정들을 재빨리 지워버리는 거요. 그런 감정들을 품고 있어봤자 독 밖에 안 되잖아요. 소녀처럼 꿈꿀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마음을 늙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해요. -봉사활동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서초지회 임원들과 함께 주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커트, 펌 등을 해드리곤 하는데요. 봉사라기보다는 ‘재능나눔’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예뻐지고 멋져지는 기쁨을 드리고 그분들은 진심으로 좋아하고 만족해하며 저희에게 감동을 주시거든요. 미용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기술’이 아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예술’이 되는 순간이죠. 참 감사한 순간이고 나눔이라서 일방적인 ‘봉사’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함께하신 분들이라면 분명 공감하실 겁니다. -평소 미용 철학 평소, 후배들이나 직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을 직접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다. 의상, 신발, 시계, 안경, 악세사리 등의 디자인을 하는 직업과는 차별점이 있다. 우리는 디자인 할 대상을 직접 대면하고 현장에서 디자인해야 한다. 옷이나 신발 등등은 고객 자신이 선택하고, 맘에 안 들면 다른 제품으로 바꿀 수 있지만 우리가 디자인 하는 것은 고객, 그 자체이므로 고객이 거울을 보는 매순간 만족할 수 있도록 완벽한 작품을 바로 완성시켜야 한다.” 라구요. 실제로 저희는 고객의 헤어스타일을 디자인하면서 고객 특유의 두상, 두피, 머릿결뿐 아니라 직업. 나이, 취향, 성향, 상태까지 모든 것을 고려해서 순간적인 판단력과 창의력을 발휘합니다. 매우 어렵고 긴장되지만 그만큼 짜릿한 종합예술을 매순간 펼치고 있죠. 저는 미용업을 단순한 기술자라 생각지 않습니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무대에 선 배우처럼 고객과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는 발명가처럼 고객의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해낼 줄 알아야 하죠. 그만큼 우리 미용인은 지적인 소양, 창조적인 역량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합니다. 거창할지 몰라도 저는 모든 미용인들이 미용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과 자부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 스스로를 단단하게 해줄 거라 믿으니까요. -미용계에 종사하며 흐뭇했던 일 젊은 시절의 저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을 개발하고 싶은 바램과 욕구가 커지더라구요.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깨어있고자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죠. 그 중에 가장 뜻 깊은 시도가 ‘미용전문강사 자격취득시험’에 도전한 일이었어요. 사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강사시험에 도전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독학으로 공부하며 밤새워 연습에 매진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네요. 실기연습도 만만치 않았지만 중앙회장님 이하 선배님들, 교수님들 앞에 작품을 들고 나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며 느꼈던 떨림과 희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늦은 나이, 어려운 도전이었던 첫 시험에 높은 득점으로 당당하게 합격했고 미용계의 꽃 중에 꽃! 미용강사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달게 됐죠. 제 미용 인생을 빛내주는 값진 경험이자 결실이 되었답니다. -장, 단기 계획 지금 서 있는 지회장 자리에서의 남은 3년 동안 저의 소견과 임무, 해내고자 계획했던 사명들을 잘 마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아요. 박수 받고 내려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겁니다. 그 이후에는, 오래 전부터 꿈꾸던 일이 하나 있는데요. 오랜 세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맞닥뜨렸던 희노애락을 담은 책 한 권을 집필하고 싶습니다. 소소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인생의 굴곡을 성실한 끈기로 살아내며 가정을 지켜낸 수많은 미용인들의 삶이 저의 글 한 자락에 녹아들면 좋겠어요. 저와 같은 길을 걸어오신 수많은 원장님들이 저의 글을 읽고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 책에 담고 싶어요. 중간 중간 제 개인의 삶이 양념처럼 묻어난 오래 전부터 끄적여 놓았던 시들도 곁들여 맛있는 책 한 권 꼭 써 보려구요. 상투적이긴 하지만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함 못지않게 지는 석양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전하는 미용인이자 엄마, 그리고 아내로서의 삶에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 싶습니다. 박민숙 회장 프로필 2004 중앙회장상 표창 2012 중앙회장상 표창 2013 KBF 소상공인 기능경진대회 신부메이크업 은상 수상 2020년 8월 25일 서울특별시장상 표창 2022년 6월 28일 중앙회장상 표창 각종 미용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 -서초구지회 임원 경력 2008년 5월~2010년 5월 서초구 상임위원으로 활동 2010년 5월~2019년5월3일 서초구지회 부지회장으로 활동 2019년 5월31일 서초구지회장으로 당선 2023년 8월 현재 사단법인 대한미용사회 서초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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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께 전문적,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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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초대석
- “시 한 편에서 위로와 용기 얻기를...” 등단 40주년 기념시집 『고비에서』 출간한 고운기 시인 고운기 시인 -본인 소개 1961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한양대 국문학과와 연세대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문학박사)했습니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고비에서』 등 7권의 시집이 있습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시집 『고비에서』를 내신 동기 및 소감 등단 후 5-6년 간격으로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고비에서』는 제 6시집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이후 6년 만에 내는 제 7시집으로 개인적으로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입니다. 40년이 그냥 눈 깜짝하는 사이에 흘러간 듯합니다. -이번에 내신 시집은 시인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 6시집 이후 간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나, 투별 과정에서 인생과 문학을 근본에서 다시 생각하는 소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보이는 순간의 엄숙함과 귀중함, 시 한 편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새삼 내가 시인인 것을 진정 고맙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비사막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란 뜻도 있지만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곳인데, 인생의 고비는 넘기 힘들어도 그것을 넘어서면 확 트인 새로운 세계, 고비사막과 같은 넓은 초원이 보이는 것처럼 서로 변증법처럼 연결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인생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고, 어려움을 넘어서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고비에서’라는 제목으로 쓴 시 가운데 두 번째 작품입니다. 아주 잠잠한 날도 병원 뒤쪽 언덕의 숲속 바위 턱에 가만 앉아 있으면 바람이 나뭇잎 살랑이더군 겨우 알아챌 만큼 실처럼 불어오더군 내 더운 몸 식히러 우주가 움직이는 낌새 수술을 마친 주치의가 말했어. 시뮬레이션 해보니 5년 뒤 생존율 65%, 순간 작은 한숨을 들었는지 다시 젊은 의사는, 수치일 뿐이지만요, 급히 말을 고쳤어. 서로 약속한 듯 멋쩍게 미봉彌縫. 5년 뒤, 그 때 나는 65 아니면 35 어느 쪽에 들어 있을까. 남은 수명 헤아려지니 기다릴 일과 소용없는 일 가려지더군 그러라고 바람이 살랑이며 실처럼 다가오는데 나는 문득 내 눈 안에 총명하게 발을 담가다오, 다짐하더군 -시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면... 수술을 받은 병원의 뒤편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어서, 그쪽으로 자주 산보를 나가는데, 더운 날도 가만 앉아 있다 보면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선선할 수 없었습니다. 투병 중엔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입니다. 안 좋을 때는 좋을 때 마음 다잡았던 기억을 꼭 떠올려야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음 흔들리지 말고 여여(如如)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때 “내 눈 안에 총명하게 발을 담가다오”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바람≒발’ 같아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맑고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읽어서 신나는 시, 노래로 만들어 불러서 좋을 시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처럼 큰 병을 앓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 또 나 자신이 절망에 빠졌을 때 시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스스로 위안이 되는 그 무언가를 하나씩 품길 바라는 마음을 써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말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뷰티라이프의 독자와 시인의 마음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를 읽으며 트인 마음이 생활 속에 실천되어 나가기를 바라는데, 뷰티라이프의 독자는 누구보다 이런 마음에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시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외모로 드러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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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엔, 강화 소화약제 솔루션으로 리튬계 배터리 화재잡는다.
- 최근 전 세계적인 친경결 정책에 힘입어 배터리 시장이 급상장하는 가운데 배터리 화재 빈도도 늘고 있다.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빠르면 수초 안에 1000 ℃ 가 넘는 열폭주가 발생하고 물과 일반 소화기로는 진압이 되지 않아 위험성이 크다. 이 때문에 현재 소방 당국도 물을 이용한 이동식 차수소 사용 등의 화재 확대 방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에엔(ESN대표 김형균)이 배터리 열폭주를 차단하고 재발화까지 막아주는 강화소화약재를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에스엔은 이 강화액을 기반으로 전기차 화재를 초동 조치하는 소화장치와 에너지저장장치(ESS)화재를 자동소화 하는 솔루션까지 개발해 리튜이온 배터리 화재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화재 진압이 어려운 이유는 화재에 취약한 배터리 구성요소, 고온의 열폭주 폭발, 배터리팩 방수 기능 등 다양하다. 특히 전해질은 시너(thinner)같이 불이 잘 붙어 물과 일반 소화약제로는 소화가 어렵다 또 배터리 온도를 낮추지 않으면 재발화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현재 기술과 장비로는 완벽한 화재 진압이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특허받은 강화액 소화약제와 냉각 가스를 혼합해 개발한 이에스엔 배터리 소화 솔루션을 사용하면 배터리에 붙은 불을 끌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또 1350℃ 로 폭주하는 배터리셀을 빠르게 300~20℃로 냉각해 재발화도 막아준다. 현재 시판 중인 제품 중에 재발화 발생이 없는 제품은 이에스엔 제품이 유일하다. 앞서 한국화재보험협회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진행한 열폭주 전이 방지 실험 결과 ,열폭주 감지 센서와 연동해 강화액 소화약제를 방출하는 방안이 배터리 손상이 가장 적었다. 모듈 단위에서도 강화액 소화약제를 투입했을 때 물,노백,침윤 소화약제를 사용했을 때보다 열폭주 전이가 가장 적게 발생했다. 김형균 이에스엔 대표는'이에스엔 강화액 소화약제는 앞서 연구에 사용된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라며 "한국 소방산업기술원(KFI)형식 인증과 품질관리 인증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스엔은 배터리 화재 및 재발화 방지에 탁월한 강화액 소화약제를 기반으로 ▲리튬계 전용 소화장치 ▲전기차 전용 소화장치 ▲ESS(모듈 단위) 자동 소화장치를 개발했다. 해당 장치 모두 특허를 출원했다. 우선 리튬계 전용 소화장치는 수계 소화약제와 냉각 가스를 혼합한 소화기로 리튬계 배터리에 직접 분사하는 조금 큰 소화기로 생각하면 된다. 전기차 전용 소화장치는 전기차를 살짝 들어 올리는 리프트와 배터리팩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타공 드릴을 활용해 직접 분사할 수 있게 만든 냉각 소화장치다 무기력함만 느끼게 했던 C급 소화기와 달리 전기차 배터리팩에 직접 분사 할 수 있어 적극적인 초동 조치를 가능하게 한다. ESS 자동 소화 장치는 배터리 모듈에 연결된 디력셔널 밴드(배관)를 통해 모듈 단위에 소화액을 직접 투입,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는 장치다. 실시간 화재 탐지 센서와 함께 사용하여 모듈 물받이를 통해 인접 모듈 피해도 최소화한다. 김 대표는 "ESS 자동 장치는 오는 12월 중국 나라다에너지 배터리를 대상으로 인증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전기저장시설의 화재안전기준 개정에 따라 ESS에 소화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에스엔 제품은 국내배터리 기업이 적용한 노백가스 및 물 사용 인증 솔루션보다 성능이 탁월하고 환경오염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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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엔, 강화 소화약제 솔루션으로 리튬계 배터리 화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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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태화산 작은마음선원 연우(延祐) 주지스님, 명상과 힐링 통해 가족성 회복한다
-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포함해,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괴로움, 우울증, 각종 가정불화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움과 분노 등 오탁(五濁)이 많아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오늘날 경제적으로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정신적인 면에서는 그만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가정과 사회를 바로 세우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의 힘이 절실한 때이다. 본지에서는 불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태교 명상, 햇빛 명상, 무지개 명상 등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통로’를 제시하는 ‘태화산 작은마음선원(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로)’ 연우 주지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우 스님은 먼저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만나고, 형제와 사회를 만나고, 또 스승과 친구를 만나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와 인류를 만나 사랑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것”이라며, “마음을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원만해지기도 하고 일그러지기도 한다”고 설파했다. 이어 “이 세상 모든 일은 인과(因果)가 따른다. 마음속에 선한 일을 생각하면 말과 행동 또한 그러해 기쁨이 따르고, 마음속에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괴로운 일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따라서 “어머니는 아이를 잉태하기 전부터 명상을 통해 과거를 순화시키고, 이 순간을 올바르게 살면서 선한 영향력을 주면, 그에 맞는 인연과 평화로운 가정이 찾아온다.”라고 연꽃같이 맑은 가르침을 전했다. 연우 주지 스님은 그동안 명상 및 힐링 강좌를 통해 물질에 떠밀려 다니는 현대인이 스스로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일깨울 수 있는 길을 제시해 가족성의 회복에 도움을 두고 있다. 또한, 연우 스님은 소중한 마음 찾기 명상과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 ‘연우 스님 TV’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힐링 강좌와 오염된 마음을 씻어줄 것 같은 아름다운 ‘찬불가’를 만날 수 있다. 태교 명상을 통해 모성을 회복한다 최근 ‘가족은 있지만, 가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은 감수성을 잃은 삭막한 도시에서 마음을 잃은 채 물질에 지배되어 살고 있다. 성공이나 출세에 대한 평가 기준도 오로지 경제력으로 좌우되어 그만큼 인성은 메말라가는 세상이다 보니 사회적 범죄는 물론, 각종 가정문제와 가족 간에서도 패륜적인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에 대해 연우 스님은 “메말라가는 사회에서 불교의 참선ㆍ명상수행을 통해 자신을 일깨우고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생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경전의 말씀를 자주 듣고 가까이 하여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질 수 있도록 전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명상야기와 찬불가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스님은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혼하기 전에 받은 충격적인 일이나, 스트레스도 당시의 세포가 살아있어 태아에게 영향을 끼치니 명상을 통해서 당시의 상처를 치유, 회복하고 임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자신이 잘못했다든지, 또 부부간 싸움을 했던 것까지도 아이는 모태 안에 있을 때부터 모두 듣기 때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라고 강조했다. 연우 스님이 특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요즘은 아기를 많이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태교 명상을 활성화를 못 시키고 있는데,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건 태교 명상”이라며, “문제 아이들이 많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예전에는 옳은 소리를 하시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어른들이 거의 없다”라며, 따라서 “가정에서 여성이 외모만 가꾸는 데 치중하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과 모성본능을 찾아 먼저 모범을 보이고 자녀들을 많이 포용해줘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행복의 꽃을 피우고 싶으면 행복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데 분노·다툼·미움의 씨앗을 뿌리면 어떻게 행복이 열리겠냐”면서, “아이에게 따뜻하고 선한 에너지를 줘야 귀한 자녀를 얻을 수 있다.”라고 가르침을 전했다. 덧붙여 “자신이 열심히 정진해 긍정적으로 변하면 상대방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자신이 미혹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잘못된 영향을 끼친다.”라며, “정이 넘치고 갈등이 없는 가정으로 전환하려면, ‘나’라는 자신부터 변화하여야 한다.” 따라서 “햇빛 명상을 통해 ‘나’를 올바로 돌아보고 올바로 살필 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아이가 행복해지고, 가정이나 사회 더 나아가 나라가 밝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음을 쉬게 해 이로운 원동력을 얻는다 불교에서는 인간 행위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에 있다고 말한다. 이고득락이란 괴로움을 떠나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면한 문제들을 풀고 참으로 인간 본연의 삶을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주는 일이 불교의 사명이며 목적이다. 그래서 ‘나’를 먼저 알고 ‘참나’를 닦으라고 가르친다. 또 인간의 궁극적 관심에 해답을 제시하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고통과 불안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한다. 연우 스님은 “햇빛 명상을 통해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긍정적 기운을 가져올 수 있다”라며,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있는 지혜를 자각하고 어리석음을 지혜로 바꾸면 개개인 모두 지혜로워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라고 가르침을 전했다. 혹여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무조건 “하지 마!”라는 말을 삼가고, “아이를 먼저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라고 했다. 특히 “햇빛 명상으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마치 모태에서 태교 명상을 하듯이 ‘우리 아이의 심성이 착한 아이가 됐다’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면서 원격치료를 해야 한다”라고 연우 스님은 설명하며,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들이다. 가정의 화목과 자녀들을 따뜻하게 품는 것이 인성교육의 시작이며 행복한 사회 조성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햇빛 명상은 과학적으로도 밝혀졌듯이 인체는 자기의 몸에서 발하는 빛과 같은 파장의 빛을 자연에서 받아들인다고 알려졌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개의 무지갯빛과 몸에서 내는 빛깔이 서로 공명함으로써 사람은 빛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또한 자신도 빛을 발하는 빛의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물질은 자기가 발하는 빛과 같은 파장의 빛을 흡수한다고 알려졌다. 각자의 고유한 색깔과 마음을 알고 싶다면, 매달 2번씩 올리는 유튜브 ‘연우 스님 TV’ 채널에서 만날 수 있고, 또 댓글을 통해 질의응답도 할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해 연우 스님의 운명을 바꾸는 명상 습관과 색채가 가진 고유의 맛깔나는 이야기 그리고 각각 지닌 색깔을 주제로 한 강의와 함께,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나를 귀하게 하는 명상’, 취업준비자나 직장인, 사업가를 위한 자기 능력을 일깨우는 ‘창조 명상’, 결혼, 이혼, 재혼자를 위한 사랑을 얻는 ‘행복 명상’, 귀한 자녀를 얻는 ‘태교 명상’ 및 연우 스님이 직접 작사, 작곡한 아름다운 찬불가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생을 순화시키고 아름답게 개척할 수 있는 시간 만들어보자. 스님의 간절한 서원을 담은 찬불가 연우 스님은 코로나로 힘든 시기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주옥같은 ‘찬불가’를 직접 작사, 작곡해 음성 공양의 원력을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중이다. 스님의 찬불가는 단순한 음악을 뛰어넘어 중생들의 마음의 등불을 밝혀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정신적인 위로의 역할을 한다. 연우 스님의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가 빚어낸 찬불가를 듣고 있으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되뇌게 하고,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나무아미타불~~을 따라부르게 되며, 근원 속에 아련하게 쌓여있던 죄업이나 업장이 소멸하여 가는 듯한 느낌에 빠져든다. 그래서 듣고 부르면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우 스님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삶도 바뀐다.”라면서, “한 많고, 이별하고, 슬퍼하고 그런 노래를 부르면 인생에도 한이나 슬픔이 많아진다.” 따라서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듯이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찬불가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마음자리를 찾는 전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덧붙여 “아직은 미흡하지만, 찬불가 20곡 정도 만들었다”며, “음성 공양으로 대중들에게 위로가 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서원한다”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부처님 말씀을 대중들이 들으면서 전법 되는 찬불가는 ‘나’를 저절로 내려놓게 되는 어떠한 힘에 이끌리게 되는 아름다운 수행법이다. 연우 스님이 뜻한 바와 같이 찬불가를 통해 많은 사람이 참된 향상의 길로 나아가고 참된 행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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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태화산 작은마음선원 연우(延祐) 주지스님, 명상과 힐링 통해 가족성 회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