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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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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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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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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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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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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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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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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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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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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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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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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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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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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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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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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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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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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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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계통 민족들과 켈트족의 동족설은 사실 확인이 되었는가?
- 독일 유전과학연구소에서 2004년 할슈타트와 하라인 지역에서 발굴된 켈트 인 유골과 프랑크 족, 수에비 족, 부르군트 족, 롬바르드 족, 고트 족 등 게르만 계통 유전자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90% 이상의 유사한 유전자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구분될 수 있었던 것은 게르만 계통 민족의 언어와 켈트인의 언어가 달랐기 때문인데 이들의 언어가 다른 이유는 켈트인들이 주로 유럽의 고지대에 살았고 게르만계 민족들이 저지대에 살았다. 상대적으로 북독일 지역과 중부 독일 지역, 폴란드 지역은 알프스나 피레네가 위치한 지역과 고도와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사진 자료를 검토해보면 독일 유전과학연구소의 Müller Rosemarie는 Reallexikon der Germanischen Altertumskunde이라는 사전을 만들면서 켈트와 게르만족이 동족일 확률이 높으며 실제 유전자 배양에서 일치된 형태가 많았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Katz Solomon는 게르만 족이 노르만 족과 동족이며 스칸디나비아 기원설을 끝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에 할슈타트를 뛰어넘는 고대 유적이나 할슈타트의 켈트-게르만계와 유사성 있는 유물이 발견된 적이 없고 이 역시 스칸디나비아에서 그동안 유럽 중부 지역 전역에 걸쳐 발견된 게르만계 관련 유물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또한 고(古) 노르만어와 고(古) 게르만어가 동일한 형태의 수사를 가지고 있고 두 언어 모두 스칸디나비아 계통이라는 Hachmann Rolf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 연구자가 연구했을 때 이 역시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보았다. 할슈타트에는 19세기 게오르그 람자와(Georg Ramsauers)가 발견한 무덤 외에도 청동기 시대 말기(B.C. 900~B.C. 800)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광산 지하도가 다수 발견되었다. 이러한 갱도의 전체 길이는 3,750m, 총면적은 3만 평방 km에 이를 정도로 대단히 넓었다고 하며 이곳에는 몇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롬바르드, 수에비 족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갱도 속에서는 당시 이들이 착용한 의복과 가죽 띠, 소금 덩어리를 파내기 위한 도구 등이 발견되었고 이는 켈트 족이 사용된 유물들과 대략적으로 유사했으며 켈트족처럼 돌무더기 무덤을 가지고 있었고 관이 놓여 있는 형태도 같았다. 이는 거의 같은 민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매장 풍습으로 보았고 추가 발굴을 한 비엔나 과학 아카데미 측도 1892년 보고서를 냈을 때 이를 매우 중시하여 기술했다. B.C. 600년경, 할슈타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라인(Harain)이라는 지역에 새로운 암염광이 개발되면서 할슈타트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라인 지역은 교통이 편리해서 할슈타트보다 교역에 더 적합했고 할슈타트와 하라인 두 지역에서 게르만의 원형으로 보이는 종족들의 유골들이 약 60여구가 발굴되었다. 그리고 아일랜드 켈트족과 유전적으로 유사한 켈트인 추정되는 유골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 프랑크 족과 수에비 족, 부르군트 족이 있었으며 이들은 켈트인과 섞여 살았고 두 종족이 혼혈도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할슈타트는 소금 교역지로도 번영을 누렸는데, 기존의 학설과 달리 북쪽 보헤미아에서부터 남쪽 이탈리아 지방까지 이미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철기시대로 접어든 상태였다. 이것이 기존 스위스 라텐 지역에서 발굴된 라텐 청동기 문화와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럽 최초의 철기 문화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는데 언어적으로도 당시만 해도 게르만계 언어와 켈트계 언어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라인에서 이들의 유골이 섞여 나왔고 연대는 거의 동일 시기인 B.C 800~700년으로 나타났으며 섞여 거주한 것으로 볼 때 의사소통도 그리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덤에 따라 부장품의 종류와 매장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후대 연구자들은 당시 켈트와 게르만 사회가 신분제 사회였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종족 계통에 대해 크게 구애 받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켈트인과 게르만계 민족 모두 황금, 혹은 은제, 청동 장식들이 출토되었고 이 모든 것들이 서로가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신분제였지만 종족이나 민족 계통으로 신분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로마 측에서 기록도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갈리아 전쟁기>에서는 카이사르가 사로잡은 베르킨케토릭스 왕을 켈트 족으로 서술하고 있는 반면에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는 게르만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중국 사서에서 진개가 고조선 땅을 천리 취한 것과 2천리 취한 것의 기록이 다르듯, 그리고 동호의 땅을 취한 것과 조선의 땅을 취한 것이 다르듯, 서로 상이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도에서 분포도를 보아도 같이 겹쳐 살고 있는 지역이 많다. 비록 카이사르나 플루타르코스가 켈트와 게르만의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 민족이 그 민족이라 생각해서 상반되게 적어도 별 문제 없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기록들, 과학적인 분석, 고고학적인 분석 등을 통하여 둘은 동일 민족, 혹은 켈트의 일파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이 햇갈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 첫째는 무엇으로 두 민족을 구분했으며 함께 섞여 살았기 때문에 통혼이 자유로워 혼혈 계체들이 많이 탄생했으며 이들을 또한 무엇으로 구분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갈려 나갔는가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물론 이 햇갈리는 부분은 현재 연구 중이기 때문에 본 연구자가 아직은 밝힐 수는 없지만 (사실 이런 것을 비공개 블로그에 적고 있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기록 문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카이사르 정복 후에 기록 문화가 나타나지만 그 양도 많지 않아 고고학이나 현대 유전학, 언어학, 민족학, 인류학 등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가 가능한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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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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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계통 민족들과 켈트족의 동족설은 사실 확인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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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을 선택한 이유
- 인도는 한국보다 상황이 아주 안좋은 국가다. 북으로는 거대한 중국과 영토 분쟁을 하고 있다. 고대 시대부터 중국과 인도는 사이가 의외로 좋았던 편이었다. 영토 분쟁 지역이 겹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고 두 나라가 서로 교류할 부분들도 많았다. 더불어 서로 간의 영토가 겹치지 않으니 두 나라 사이에 전쟁도 거의 없었다. 중국에 뿌리내린 불교의 원산지가 인도였으며 그 중화사상이 강했던 중국에서 인도를 천축국이라 부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어 20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두 나라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물론 인도가 무굴제국 이후 진정한 통일국가를 만든 일이 없어 중국 같은 큰 나라와 충돌할 만한 상황도 잘 만들어지지 않았고 과거 중국은 현재 영토보다 더 서쪽 영역이 적은 상태였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 지역 근처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였기에 서로 직접적으로 상대할 일이 없었던 것도 있다. 19세기 말, 인구 밀도나 국경 개념이 희박했던 지역에 수천 km 떨어진 영국의 외무부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임의로 국경선을 굿게 되면서 인도의 독립 후에 양국의 충돌을 새로이 불러온 셈이 되었다. 마침내 1962년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에서 이른바 인중전쟁으로 불리는 첫 국경분쟁이 발생했고, 이 전쟁에서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 주요한 영토 분쟁지역은 중국이 소유한 카슈미르 일부 지역인 아크사이친, 인도가 소유한 아루나찰 프라데시이다. 물론 중국 측이 소유한 영토가 인도가 소유한 영토보다 여러모로 쓸모없는 영토지만 원래 인도 영토였기에 인도 정부 측에서 중국 정부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2017년 중국과 인도의 완충 국가인 부탄이 국경에 접하고 있는 도클람 지역에 도로를 신설하면서 부탄 측이 크게 반발했고 인도도 역시 중국을 비판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이후 국경 지대에 두 나라는 각각 3,000명의 병력들이 대치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으며 이어 인도군은 중국과 대치 국경지역에 최대 20만의 병력을 집결시켰다. 중국 측에서는 이에 대응해 군수물자와 수술용 혈액을 티베트 자치구에 집결시키는 등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2020년 6월 16일에는 두 나라 사이에서 물리적인 충돌까지 발생한다. 2015년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파키스탄과 미얀마, 스리랑카에 파이프를 박았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전통적인 적대국이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핵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 인도도 핵을 갖고 있긴 하지만 중국의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파키스탄에 인도는 매우 긴장하는 분위기이다. 사실상 종교 때문에 갈라선 인도와 파키스탄은 역사적인 문제에서도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인도는 무굴제국의 통치시기를 이슬람의 강점기로 인정하고 있는데 비해 파키스탄은 전형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이기에 무굴제국을 공식적으로 인도를 통치한 종주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카슈미르를 두고 두 나라간의 전쟁 비슷한 충돌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2016년부터 미얀마에 일대일로의 사업을 구상했고 교부장관 왕이가 2017년 11월에 인도 동부 지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미얀마를 방문하면서 “人”형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구상을 제시했다. 이 구상은 중국이 주창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레임의 새로운 개념에 포함된다. 중국 정부가 운남 지역을 개발하면서 미얀마와의 기초인프라 건설 중점으로 한 지역적인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고, 양국의 전면적인 전략 협력관계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운남성 일대를 동남아시아 일대일로 최대거점으로 육성하고자 잇단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운남성은 미얀마-태국-라오스-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미얀마의 경우, 중국과의 일대일로를 군부가 절대적으로 밀고 있다. 여기에서 중국이 전략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이 차우퓨 항이다. 이곳을 제2의 시아누크빌로 만들겠다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시진핑은 2020년 1월 미얀마를 방문하여 차우퓨항을 특별경제구역(SEZ)으로 지정하고 7개의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로써 중동산 원유를 실은 중국 유조선은 차우퓨 항에서 육상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중국 운남성 쿤밍까지 보낸다. 차우퓨 항이 일대일로 에너지 전략의 요충지인 셈인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는 미얀마 군부가 중국의 일대일로를 다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나섰다. 중국은 인도양 진출을 위해서 미얀마에 오랜 기간동안 공을 들이고 일대일로 참여를 독려해 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는 거대한 중국 세력으로 인해 동쪽 (미얀마), 서쪽 (파키스탄), 북쪽 (중국)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고립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의 남쪽에는 스리랑카가 있다. 역시 인도와 스리랑카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스리랑카의 주류 민족인 싱할라족들은 일단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주류 민족 타밀족과 인도-아리아와 드라비다로 민족이 갈라지기 때문에 민족 간의 문제가 있어 오래전부터 계속 충돌해오던 관계였다. 게다가 종교도 인도는 힌두교이고 스리랑카는 불교국가이다. 종교적인 부분에서의 마찰도 적지 않다. 스리랑카 내전도 스리랑카에 거주하는 소수 타밀족과 스리랑카의 주류 민족인 싱할라족과의 분쟁으로 일어난 전쟁이었고 인도도 이 전쟁에서 남부 타밀나두의 타밀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스리랑카 정부의 편을 들어줘 어느 정도 완화되었지만 이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가 끼어 들어오면서 양국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중국이 스리랑카에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함반토반 항구를 임차하고 콜롬보 항구까지 개발에 나서자 인도는 남쪽의 스리랑카까지 중국의 영향을 받게 되자 완전히 포위된 형국이 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에 빌린 거액의 부채를 갚지 못한 스리랑카는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99년 동안 중국에 조차해주는 조건으로 넘겼고 중국은 여기에 자국의 군함과 해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완전 포위된 인도는 말 그대로 국가 자체가 백척간두의 믹서기 칼 날 위에 서있은 셈이다. 그래서 인도는 국가 예산의 43%를 국방력 강화로 쓰고 있다. 2020년에 인도와 중국간에 국경 분쟁이 일어나자 인도 측은 러시아로부터 최신 무기를 구매했다. MiG-29 UPG 버전 21대와 Su-30MKI 12대 총 33대의 러시아 전투기를 긴급 도입했다. 그리고 2021년 4월 28일에 러시아는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인도에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제공했고 인도의 세럼 인스티튜트가 2021년 9월부터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생산하게 되었다. 해군은 호위함, 구축함, 항공모함, 잠수함 가릴 것 없이 러시아제, 혹은 러시아와 합작 개발한 함정들이 존재하며, 공군도 MiG-21이나 Su-27 계열기들을 다수 운용 중이고 Su-57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심지어는 탄도미사일이나 대공 미사일까지 러시아하고 협업 중에 있다. 2021년 11월 14일에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의 인도 공급이 시작되어 러시아 무기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자국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주 적국인 파키스탄과 중국으로 향해 있다. 한편 인도는 21세기에 들어서 점화된 미국-중국 패권경쟁의 일환이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도-태평양 지역의 대중국 포위망의 주요 국가로서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만큼 인도는 1962년 인중전쟁에서 패배한 전력도 있기 때문에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며 미국과의 동맹을 도모하고 있다. 미중간 패권경쟁으로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소비시장이 필요한 미국이 인도를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2016년에 인도와 미국은 Logistics Exchange Memorandum of Agreement 에 서명했고 인도는 미국의 주요 방위 파트너로 선언되었다. 미국은 일본, 인도와 함께 인도양에서 연합훈련을 1992년부터 행하고 있는데, 2017년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이 수립되었다. 중국과 인도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인도는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진행했고 최근 이런 인도와 미국의 합동 군사훈련이 자주 실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도는 러시아와 미국, 서방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아주 능숙하게 잘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를 통해 중국의 위협을 외교로 견제하고 미국을 통해 중국과 싸울 수 있는 우방을 확보했다. 그리고 두 나라로부터 무기를 수입함으로써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또한 인도는 우리 대한민국에게도 K-9 자주포를 수입했다. 그 자주포는 파키스탄과 중국의 위협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인도에게 있어 무기 판매의 주 고객이 되고 있다. 군사적 화력에서 중국에게 밀리는 인도는 러시아와 미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중국을 이기는 것은 어렵다. 말그대로 "친러용미", "친미용러"를 자유자재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두 나라 사이에서 인도는 중립이 가능했던 것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인도는 처음부터 중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대러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충분히 밝혔다. 현재 러시아와 인도는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현재 경제 제재로 인해 달러가 요긴하게 쓰이지 않을 경우, 인도에 와서 달러로 바꾼 다음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인은 인도를 90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으며 뉴델리와 꼴까타, 뭄바이에는 모스크바 세레메쩨보로 연결되는 직항 노선이 있다. 인도는 분명 안보에서도 한국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경제적 여건도 1인당 GDP 2,000불로 한국보다 더 좋지 않다. 그런데도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가 인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고 혹시나 모를 중국의 배신?에 러시아 입장에서 인도는 보험용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유능한 지도자인 모디 총리의 현명한 결단에 나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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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을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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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푸틴, 반러 세력의 끔찍한 사보타주가 러시아를 단결시키고 있다.
- 러시아의 대선 투표 분위기가 다른 대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대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반푸틴, 반러 세력의 선거 방해, 미국이나 집단 서방의 반푸틴, 반러 세력에 대한 지원, 게다가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푸틴의 5번째 연임에 대한 도전 등,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다. 미사일 포탄과 드론이 날아다니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모스크바를 비롯해 러시아 곳곳에서 투표함에 녹색 잉크를 붓기, 기표소 방화, 화염병 투척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최악의 사보타주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의하면 러시아 대선 투표 첫 날인 15일과 둘째 날 16일에 일부 지역에서 투표소가 설치된 공공 건물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그러한 소동에 기표소가 방화로 불타게 되었고 각지에서 투표함에 녹색 잉크가 투척되며 선거 방해 행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선거방해 행위는 러시아 형법 제141조(선거권 행사 또는 선거관리위원회 활동의 방해) 1항과 2항에 의하면 "선거권 행사 또는 국민투표 참가를 방해하거나 비밀투표 위배행위를 하거나 선거관리위원회 또는 국민 투표 실시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한 자는 200,000 루블 이하 또는 18월 이하의 임금 또는 기타 수입에 해당하는 벌금, 또는 1년 이상 2년 이하의 교화, 또는 6월 이하의 구류, 또는 심각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다. 예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사건들이 이번 대선에서 계속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2년이 넘도록 진행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대와 수감 중에 돌연사한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저항으로 알려졌다. 전국 각지 기표소에 불을 지른 뒤 이를 휴대폰으로 찍는 할머니가 있었고 투표함에 녹색 잉크를 부은 뒤 이를 촬영하는 20대 여성, 그리고 화염병 투척 순간을 기록하는 여학생 등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들을 보면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들이 아닌 뭔가 신념에 차 있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투표소 방화사건을 본다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투표소가 설치된 학교로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우랄 지역 한티만시 자치구에서는 한 여성이 화염병으로 투표함에 불을 지르려고 했다. 15일 첼랴빈스크에서는 80대 여성이 투표소에서 폭죽을 터트렸고, 투표소의 기표소가 불타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방화, 기타 인명살상의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로 명백히 테러 행위에 간주된다. 러시아 형법 테러 관련 조항을 보면 205조 1항에는 "권력기관 또는 국제기구의 결정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폭발, 방화, 기타 인명살상의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 막대한 재산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 또는 기타 사회적으로 위험한 결과를 발생하게 행위를 행하거나, 위와 같은 목적으로 위와 같은 행위의 협박을 행한 자는 8년 이상 1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선거 방해 공작까지 하여 이와 같은 행위들을 저지른 자들은 두 죄목 모두 합산해 17년 형에 처해질 수 있다. 엘라 핌필로바(Элла Памфилова) 러시아 선관위 위원장이 밝히길 이틀 전, 16일 20개 지역의 29개 투표소에서 조직적인 투표 방해 사건이 발생해 214개 투표함이 훼손됐다면서 투표함의 보안을 강화할 것을 언급했다. 팜필로바 위원장은 투표함에 녹색 액체를 부은 사람은 선거 방해 혐의로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것이라면서 그들은 돈을 받고 이와 같은 쓰레기 짓을 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녹색 잉크 테러에서 녹색이 주는 상징성이 존재한다. 지난 달 옥중에서 사망한 나발니는 2017년 괴한으로부터 녹색의 살균제 테러를 당해 실명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러시아 선관위 측은 녹색 잉크로 훼손된 투표함은 봉인한 뒤 새로운 투표함을 설치, 투표를 계속하도록 조치했다. 물론 녹색 잉크로 젖은 투표 용지를 두고 표결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할지에 대한 여부는 추후 논의된다. 이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된 뒤 사건을 저지른 이유를 본다면 모스크바에서 투표함에 녹색 잉크를 부은 여성은 우크라이나의 정보 기관에 속았다고 진술했다. 즉, 우크라이나의 정보 기관의 사주를 받았다는 직접적인 범인과 증인을 확보한 셈이다. 다른 잉크 테러를 저지르려는 순간 체포된 한 남성은 은행 대출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전화로 받고 이같은 행위를 하게 됐음을 진술했다. 또 다른 여성은 3만 루블을 받는 것으로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모두 우크라이나 정보 기관이 있고 우크라이나 정보 기관의 배후에는 미국과 집단 서방이 있다. 이러한 녹색 잉크 테러가 모스크바를 비롯해 보로네시, 로스토프, 카라차이-체르케시야,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으며 형량을 낮추기 위해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게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도발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이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군의 강한 공격이 이어졌다. 헤르손 주 카호프카와 브릴료프카 투표소에는 15일 우크라이나군의 포탄이, 자포로제 지역에선 드론이 날아들어 투표가 중단되었다. 또다른 도시에서는 투표소 인근 쓰레기통에 설치된 즉석 폭발 장치가 폭발했고, 베르단스크에서도 유사한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러시아 국경 도시를 겨냥한 우크라이나 군의 포격도 이어지고 있다. 벨고로드 주 주지사인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Вячеслав Гладков)는 16일 텔레그램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주민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고 적시했다. SNS에는 벨고로드에서 포격으로 차량이 파괴되고 화염이 치솟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는 다분히 민간인을 목표로 한 공격이다. 또한 사마라 지역의 정유 공장 2곳도 이 날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 더불어 사이버 테러도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의 집권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은 16일 웹사이트와 도메인 등이 디도스 공격(DDoS)을 받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비필수 온라인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와 같은 사이버 디도스 공격은 특정 서버에 많은 양의 접속을 유발해 인터넷 서비스를 마비시키는 해킹의 일종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긴급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부터 더 많은 원조와 무기를 받기 위해 러시아 대선 기간 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대선 투표를 방해하려는 우크라이나의 도발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표 방해를 위한 우크라니아의 도발과 반러 세력 및 나발니 추종자들, 반푸틴 세력의 행위들이 오히려 역풍을 부르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 포스트(WP)가 15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거의 매일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는 벨고로드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측의 이번 미사일 공격에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공격이 러시아의 사기를 약화시키기는게 아니라 자신들이 희생자이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더욱 공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겁을 주고 있지만, 자신들은 여기에 꺾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말하며 오히려 러시아 전체를 단결시키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왔다. 결국 그러한 결과가 개표를 앞두고 출구조사에서 87.97%의 푸틴 대통령 압승을 불러오고 있다. 이런 수준이면 현재 개표가 진행되고 있지만 80% 이상의 득표는 가볍게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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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푸틴, 반러 세력의 끔찍한 사보타주가 러시아를 단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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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못했던 이유
- 1996년 핵을 완전히 제거한 우크라이나는 1998년 당시 러시아의 주도로 이란 부셰르(Bushehr) 지방에 핵 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이란이 미국의 적국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는 미국의 심기를 심하게 거스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란의 핵실험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프로젝트에 참여해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미국의 적국을 돕는 것이니 우크라이나에 경제 원조를 중단한다는 초유의 발표를 하게 된다. 원래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의 행동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여전히 핵 기술자들이 남아있고 발전소 설계도에 대한 복사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게다가 앞서 포스팅했던 유즈마쉬(Южмаш)와 유즈노예(Южное)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저렴한 전기 공급을 위해 드네프르 강의 수력발전과 테르노필과 지토미르에 설치한 풍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결국 당시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핵 발전소 건축을 허가해달라 요청했고 결국 클린턴과 미 행정부의 허가를 받게 된다. 핵 발전소를 허가해주고도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이를 군사적인 방향으로 전용할 것을 우려하여 미국과 우크라이간 핵 에너지의 평화적 사용에 대한 협정 (Agreement for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Ukraine Concerning Peaceful Uses of Nuclear Energy)까지 맺으며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견제했다. 또한 폴란드 등 옛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독립 직후 나토에 서둘러 가입했던 것에 비하여 우크라이나에 나토가 사무소를 차리던 당시인 1997년에는 혹시나 모를 우크라이나의 핵확산 및 유즈마쉬의 기술로 러시아와 연대해 크림반도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어 실험할 것을 우려하여 나토 가입을 반대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내 나토 가입 여론은 찬성 37%, 반대 28%, 미결정 34%로서 그다지 환영받는 입장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했기에 친러성향이 높았던데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게다가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해군까지 상시 주둔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공공연히 반러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미국도 우크라이나가 이란 부셰르(Bushehr) 지방에 핵 발전소를 건립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문제로 인해 그다지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체결한 유의미한 공식 외교관계는 1996년에 양국이 체결한 전략적 파트너쉽(Strategic Partnership) 하나가 전부였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러시아가 경제적 공황을 심각하게 겪고 있던 암혹기였기에 그다지 큰 위협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국-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은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취임하고서 부터였다. 군사행동을 통해서라도 독재국가에 미국적 민주주의를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네오콘이 장악한 미국 행정부는 지금까지의 좋지 않았던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레오니드 쿠치마도 역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는데 레오니드 쿠치마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이라크에 파병까지 결행하면서 미국의 환심을 사려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언론인들을 옛 KGB의 방식처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미국의 적이었던 사담 후세인에게 군사장비까지 팔아 먹으며 돈을 챙기는 이중적인 면모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요청에 결국 우크라이나는 2002년 나토에 대한 가입 의사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고 오렌지 혁명으로 인해 대통령으로 집권한 친서방파 정치인 빅토르 유센코는 NATO 가입 의지를 피력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우크라이나의 국내 여론은 나토 가입에 대해 점점 더 부정적인 상태였고 반미와 친러 성향이 짙어졌었는데 이는 당시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 및 전쟁과 더불어 금융위기와 같은 실정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가 매우 낮았다는 점과 빅토르 유센코로 대변되는 친서방파가 매우 무능했기 때문에 결국 민심을 잃어 나토 가입의 길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미국은 나름대로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게 되지만 2006년 우크라이나와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했던 최초의 합동 해상 훈련이 현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취소되는 등 민심은 여전히 반미 여론이 강했다. 실제로 2012년 부시 대통령 임기 종료 직후 여론 조사기관인 갤럽이 실시한 바에 따르면,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미국 리더쉽에 대한 신뢰도는 33%로서 유럽 국가들 중 중하위권에 속하는 수준이었으며 2008~2009년 당시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국가들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러시아와 미국 중 양자택일의 상황이 오면 어느 국가를 선택하겠냐고 문의한 설문조사들에 의하면, 러시아를 버리고 미국을 택하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겨우 12%에 불과했으며 미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44%로 엄청난 차이를 기록하였다. 우크라이나 함께 나토 가입을 오랜 기간 동안 요구했던 조지아만 하더라도 같은 조사에서 미국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24%, 러시아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28%로 비등한 수준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우크라이나의 당시 대미 성향이 우호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인 인구가 상당히 많은데다 우크라이나인들 중에서 과거 같은 소련인이자 동슬라브 계통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결혼한 사람이 많아서 이들을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지리적인 이유로 인해 상당부분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겹쳐서 반러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도 어렵다 판단했다. 나토에 가입하겠다며 의사만 표명했을 뿐 적극적인 행동에 있어 상당히 많은 제약 상황이 있었고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음으로 인해 최대한 회피했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우크라이나 친서방파 입장에서는 나토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차례 놓치게 된 것이다. . 그러던 중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손꼽히는 <부쿠레슈티의 나토 정상선언문>이 2008년에 발표되었다. 이 선언문 23조에서 NATO는 조지아,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의 염원을 환영하며, 나토의 외무장관들이 가입 절차의 다음 순서인 멤버쉽 행동 플랜(MAP) 적용 시기를 결정한다고 명시하게 된다. 당시 임기가 끝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부시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빨리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보다 구체적이며 즉각적인 플렌을 요구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에 에너지 교역 및 지원을 받고 있던 프랑스와 독일이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해 반대하는 바람에 최종본과 더불어 가입 만을 약속하는 형태로 수정되고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허용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선언문의 파급 효과는 생각보다 크게 작용했다. 자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우크라이나가 언제든지 나토로 넘어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러시아에 심어진 것이다.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부 친러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나토 가입을 최대한 막고자 했고 친서방파의 무능에 지쳐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대통령으로 2010년 선출하여 친러로 선택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다시 한 번 멀어지게 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못한 이유이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로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글을 남긴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에 신속히 나토(NATO)에 가입해야 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신속히 가입할 수 없었던 원인들을 알아보지도 않고 신속히 가입했어야 한다는 말은 현재 판단해서 내린 "결과론"에 불과하다. 역사라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현황을 보고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을 10~15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랬어야 했다" 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국제관계학적 역사관이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윤 대통령이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주위에 보좌관들이 코칭을 했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오류와 사관이 그대로 표명이 된다는 것은 보좌관들이 대단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수는 없기에 주위에 뛰어난 보좌관들이 윤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참 아쉬운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안 한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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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못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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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선 이후에 바뀔 것들 - 2편
- 그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면서 매우 소극적으로 전투에 임해왔다. 첫번째, 키예프와 6대 도시를 런던이나 도쿄대공습처럼 엄청난 공세를 퍼부을 수 있었고 미국이 바그다드를 공습한 것처럼 아예 도시를 녹여 버릴 수도 있었다. 러시아도 그렇게 할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의 증거가 바로 그로즈니 공습이다. 러시아는 체첸 전쟁 때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완전히 녹여버릴 작정으로 무자비한 공습을 자행했다. 그로즈니 공습에 비하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비롯한 오데사, 하리코프, 드네프르 페트로브스크, 크리프이 리, 리보프 등 6대 도시들에 대한 러시아의 공습은 그로즈니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걸프전 당시 이라크 바그다드를 공습했을 때와 최근 이스라엘이 가자를 맹공하여 공습한 것에 비하면 러시아의 대우크라이나 공습은 사실상 미미한 것이다. 두번째, 러시아는 민간인 시설을 왠만하면 공격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주로 노린 곳은 군사 시설과 에너지 시설, 기간 산업, 공단 이런 지역을 노렸지 민간인 지역을 타겟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이는 민간인 지역이든, 군사시설이든, 산업시설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포탄, 미사일을 쏘면서 공습을 자행했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략에 비하면 현 전쟁은 너무 신사적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러시아가 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형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공격을 피한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항복한 우크라이나 병사들과 포로들을 상대적으로 잘 대우해주었다. 상대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포로들의 다리에 총을 쏘는 등, 잔인하게 학대했다. 세번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산업 시설과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가장 기본은 산업 시설과 에너지 시설의 초토화다. 그런데 러시아는 그나마 최소한의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만 남기도 때렸다. 그러니까 산업시설이나 에너지 시설 10곳이 있다면 8곳을 때리고 2곳은 일부러 남겨놨다. 우크라이나는 파괴되었어도 남겨진 2곳을 기반으로 폭격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몇 곳을 더 지어 확충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어쩌고 굉장히 인도적인데 살아 남은 민간인이 이용하라고 일부러 남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군은 학교, 병원 등을 공격하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학교든 병원이든 사정을 봐주지 않고 때린 것에 비하면 러시아가 때린 것은 손에 꼽는다. 게다가 공항의 활주로, 기차역 등은 공격대상이다. 지금까지 키예프의 두 국제공항인 보리스필, 줄리아니가 폭격받아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없다. 키예프 중앙역은 확실히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공항은 남아있다. 네번째, 우크라이나의 ATM기가 되주고 있었던 미국과 나토, 집단서방의 지출이 이전만도 못하고 있고 앞으로 손절할 가능성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 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에 퍼준 비용과 무기들이 어마어마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미국 의회에 올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자 승인한 자금은 미국 총 국방 예산(7,150억 달러)의 약 5.6%인 400억 달러에 달했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군사지원에 사용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377억 달러의 추가 지원금 배정을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퍼주고도 전황이 지지부진하다. 나토가 거의 재고를 드러낼 정도로 퍼주는데 이러고도 우크라이나가 승리를 못하면 헛 돈 날린 셈이 되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이걸 우크라이나에서 회수하려면 이제는 암담한 상황까지 처하고 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패하여 나라가 완전히 날아가면 미국의 쇠퇴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전쟁은 과거 100년 전 러일전쟁처럼 영국이 대리전을 일본이 치뤘듯이 나토의 대리전을 우크라이나가 치르고 있는데 이 전쟁이 장기화 되면 될수록 러시아가 유리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집트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가자지구의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 군은 활로를 못 찾고 있고 하마스는 수성에 계속 성공하는 분위기다. 미국 입장에서 한 쪽을 퍼주다가 혈이 막히면 다른 쪽의 분쟁을 이용해 혈을 뚫어주었는데 이제는 우크라이나, 가자 모두 혈이 막히니 이 두 곳의 혈을 뚫어줄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가장 유력한 곳이 동북아시아, 우리한반도다. 북한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 러시아, 중국이 북한과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미국, 일본이 대치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러시아, 중국은 가깝지만 한국, 일본과 달리 미국은 멀다. 러, 중, 북이든 누구든 한 발만 쏴도 미국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은 이걸 미끼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상 우리는 대 미국 태평양 전략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앞으로 푸틴이 집권할 5기부터는 모든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아브데예브까 함락 이후,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공격의 템포를 약간 늦추고 있는데 대선이 끝나고 5기 임기가 시작될 때, 이제는 눈치 볼 것 없이 빠른 템포의 공격이 가능해질 수 있다. 러시아 내 우크라이나 가족을 두고 있는 시민이 100만이 넘는데 그동안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자제했던 부분이 선거가 끝나면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마 인정사정 보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가자지구 분쟁도 유태계 러시아인들의 표를 얻을만큼 얻었으니 선거가 끝나고 중립이었던 입장을 친하마스로 바꿀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구실로 친하마스로 노선을 확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푸틴 집권 5기는 지난 집권 1~4기와는 완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여진다. 더 강해지고 빨라질 것이며 푸틴은 6년의 세월 동안 1~4기에 걸쳐 준비해왔던 것들을 이제는 확실하게 매듭짓고자 총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푸틴의 정권 5기를 이전과는 다르게 보고 다른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 이제는 이전의 러시아가 아닐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그 변화에 맞춰 발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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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선 이후에 바뀔 것들 - 1편
- 러시아의 북극항로 개척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소련 시대부터 종종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8~90년대 소련이 경제 파탄으로 인하여 북극항로 개척에 대해 진척이 없다가 고르바초프가 뻬레스뜨로이까 정책을 내세우며 개방을 강조하게 되면서 북극 개발 이야기가 전면으로 부각되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북극항로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환경적, 비용적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북극 해빙의 두께가 얇아지면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북극항로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동방경제포럼 때 이러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해서 극동과 유럽을 이어주는 항로로 북극항로에는 북미와 유럽을 이어주는 캐나다 해역 북서항로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항로로 분류된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현재 항로보다 운항시간이 10일가량 단축되기 때문에 도로 사정이 낙후한 시베리아로의 운송업이 회복될 수 있고 경제 무역적인 가치도 높아지며 시베리아의 지하자원들이 개발되면서 시베리아의 경제가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동방경제포럼 때 이러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해서 극동과 유럽을 이어주는 항로로 북극항로에는 북미와 유럽을 이어주는 캐나다 해역 북서항로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항로로 분류된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현재 항로보다 운항시간이 10일가량 단축되기 때문에 도로 사정이 낙후한 시베리아로의 운송업이 회복될 수 있고 경제 무역적인 가치도 높아지며 시베리아의 지하자원들이 개발되면서 시베리아의 경제가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국제법상 북극해는 공해이기는 하지만 유빙과 빙산 때문에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야 통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이용료를 지불하고서라도 이용하는 선박이 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이용 시기도 길어지고 쇄빙선의 도움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어서 유망한 분야이기도 하다. 다만 INMARSAT 이용에 제한이 따르다보니 바닷가에서 100해리 이상 떨어져서 운항하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2025년을 목표로 북동항로(NSR) 위성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위성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 기술이나 우주 기술에 관심이 있다면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타링크의 경우, 어디까지나 범용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지향하기 때문에 위성 배치 계획으로 본다면 극 지방은 비어 있는 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동항로와 북서항로의 경우, 경제적인 가치로 인해 수많은 도전과 탐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지금은 러시아와 캐나다 등에 지명으로 이름을 남긴 비투스 베링(Vitus Bering, 1681~1741), 윌리엄 배핀(William Baffin, ? ~1622), 헨리 허드슨(Henry Hudson, 1550~1611), 드미트리 랍테프( Дмитрия Лаптева, 1701~1771), 빌럼 바렌츠(Willem Barentsz, 1550~1597),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 1786~1847) 등의 탐험가들이 항로 개척에 나섰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북극해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탐험가들이 귀환하지 못하고 탐험지에 사망했다. 결국 실패했기 때문에 같은 시기의 서인도 제도나 인도 항로 개척에 비해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편에 있다. 이에 세계 최초로 북동항로를 완주한 인물은 핀란드에서 태어난 스웨덴 탐험가 닐스 아돌프 에릭 노르덴시욀드(Nils Adolf Erik Nordenskiöld)인데, 1878년에 증기선 베가 호를 타고 스톡홀름에서 출발해, 베링 해협을 건너 1880년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참고로 북서항로의 경우, 그 유명한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1906년에 처음 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실제로 북극항로가 유라시아 물류혁명을 선도하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우선 거리에 비해 과다한 항행 비용이 문제에 있으며 현재의 단계에서 쇄빙선 운항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는데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쇄빙선이 6대이고 그 중에서 북극항로에 투입되는 쇄빙선은 3척에 불과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지금도 북극항로 쇄빙선 이용 비용은 상당한 문제점으로 남고 있다. 러시아 쇄빙선 업체들은 수에즈 운하와의 경쟁력을 비교하면서 가격 책정에 부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리는 수에즈 항로의 절반 수준이지만 가격 경쟁력을 고민해야 할 수준이기 때문에 그 높은지 비용이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북극항로를 이용해보려 했으나 쇄빙선 가격 문제로 포기한 사례가 있다. 수면이 얊게 언 부빙해가 많은 북극항로는 온난화로 인해 개척된다 해도 유빙해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전히 내빙선 등의 특수 선박이 필요해진다. 또한 온난화가 진행된다 해도 연간 항행 가능 기간은 8개월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연간 4개월은 북극항로 돌파를 위해 쇄빙선, 내빙선 등의 각종 장비와 북극항로 인근에 막대한 비용을 추가하여 건설한 항만, 도시 등의 인프라들이 잠정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손해가 있을 수 있다. 현재 북위 66도 이북 지역은 전파가 잘 잡히지 않고 있으며, 온난화로 인해 기존의 북극지역 항구 도시들이 해수면에서 멀어지는 등 북극항로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수에즈 항로에 비해 투자 소요가 엄청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 투자가 요구되는 구간이 수에즈 운하와는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것이 큰 고민이다. 이러한 상황이라 업계에 따라서는 북극항로의 가능성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가속으로 2030년 즈음에는 연중 운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알렉세이 체쿤코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은 작년에 북극항로 물동량이 3,300만t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고 자축하면서 현재의 목표는 2030년까지 1억 t이라는 놀라운 물동량에 도달하는 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했다. 올가 스미르노바 극동·북극개발부 고문은 북극해 항로가 남쪽에 위치한 수송로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항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북극항로 개발에 있어 화물 운송의 환경안전을 우선 분야로 두고 있고 적절한 종류의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활용에 집중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러시아는 북극해 항로를 활용하면 수에즈 운하를 통한 항로보다 선박 항행거리를 40%가량 줄일 수 있다고 선전 중이다. 2021년 10월 7일 북극항로와 북극해안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북극함대가 창설될 수 있다고 러시아 해군 관계자가 타스 통신을 통해 언급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28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컨테이너 선 벤타 머스크호가 부산항을 출발했고 이들은 8월 22일 블라디보스톡항을 출항하여, 보스토치니 항과 부산항을 거쳐 9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항에 입항하는데 성공하여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푸틴의 5기 정권은 러시아 경제의 진보적 이상향을 위해 북극항로 개발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북극 개발이 푸틴 정권의 마지막 승부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북극항로는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인도로 향하는 항로로 부상할 것이며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경제권이 관계되어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에 지정학적, 지리적, 경제적, 미래 산업 발전에서 이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장 먼저 북극 개발 입찰에 뛰어든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은 1990년 아시아 최초로 북극 연구 활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북극 활동의 포문을 열었으며,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이르기까지 북극항로에 중점을 둔 국제공동연구 프로그램(INSROP, JANSROP) 등을 기반으로 점차 북극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2000년대 일본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종합 해양 정책 본부가 설치되고 이후 북극 이사회 잠정 옵저버, 정식 옵저버 등의 지위 확보했다. 이후 국가 차원의 북극 정책 수립을 통해 분야별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그 다음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을 자국으로 연계가 가능한 중계항구로써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북극항로와 연결되기 때문에 중국의선적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항구가 되었다. 우리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북극항로에 있어 동해와 동남아시아 사이를 연결해주는 대각선 정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항은 동남아시아와 러시아를 연결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충지에 위치항 항구다.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부산은 매우 중요한 도시가 되는 셈이다. 이는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이다. 지난 리야드와 엑스포 유치를 두고 사활을 걸었을 때 부산은 한류가 아니라 북극항로의 요충지가 될 수 있는 중요성, 그로 인한 중개 무역에 대한 이점 등을 전면적으로 내세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리야드와 대등하게 표 경쟁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부산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푸틴이 5기 정권 때 북극항로 개척에 올인 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부산은 북극항로의 새로운 요충지이자 중심지로써 경제적 호황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만약 그걸 준비하지 못하면 그 또한 일본에게 뺏길 수 있다. 부산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그나마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곳은 일본의 항구들 밖에 없다. 가장 유리한 위치를 갖고 있어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이번에도 일본에게 경쟁에서 질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기회를 제대로 잡아 활용하는 측이 매우 유리해질 것이다. 우리는 제발 현명한 선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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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선 이후에 바뀔 것들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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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대해 우려되었던 부분
- 당시 시위를 지켜보면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움직임이다. 중국은 2016년부터 미얀마에 일대일로의 사업을 구상했고 교부장관 왕이(Wang Yi)가 2017년 11월에 미얀마를 방문하면서 “人”형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구상을 제시했다. 이 구상은 중국이 주창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레임의 새로운 개념에 포함된다. 중국 정부가 운남 지역을 개발하면서 미얀마와의 기초인프라 건설 중점으로 한 지역적인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고, 양국의 전면적인 전략 협력관계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 실시된 것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운남성 일대를 동남아시아 일대일로 최대거점으로 육성하고자 잇단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운남성은 미얀마-태국-라오스-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의 발원지로 메콩강의 수원을 장악해 동남아시아 전체의 경제력에 목줄을 쥐려 하고 있다. 그 첫번째 대상이 라오스였고 그 다음이 캄보디아, 미얀마 순이다. 라오스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일대일로를 도입하면서 최근 몇 년간 50여개 수력발전 댐을 메콩강 유역에 추가 건설해왔다. 또한,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하나로 중국 쿤밍에서 싱가포르까지 연결하는 고속철도 사업에 참여했다. 자국 내 구간 고속철도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다. 그 결과 라오스는 현재 채무불이행(Default)의 위험수위에 놓이게 되었고 중국은 라오스에 최대 채권국이 되었다. 2020년 9월 라오스의 외화보유액이 10억 달러(1조1885억원) 이하로 줄어 디폴트 위기에 빠졌으며, 라오스 정부 관계자가 최대 채권국인 중국에 채무조정 가능성과 관련해 상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국의 경제 식민지가 될 확률이 높아진 셈이다. 라오스 국가부채는 165억 달러(19조 6102억원)로 국내총생산(GDP)의 65%에 달한다고 추정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다. 라오스가 중국에 부채를 갚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그 부채를 갚기 위해 라오스는 중국에 영토나 관광지 등을 조차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스리랑카의 경우인데 거액의 부채를 갚지 못해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99년 동안 중국에 넘긴 사례가 그것이다. 스리랑카의 능력으로 그 거액의 부채를 갚는다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스리랑카는 항구 운영권 자체를 아예 중국에 넘겨준 셈이 되었다. 캄보디아 역시 대표적인 친중국가로 라오스 다음으로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을 함께하면서 부채가 늘어가고 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 사이에는 메콩강이 흐르고 중국이 운남성을 기점으로 타이만까지 빠져나가는 수운을 개척하면 동남아시아 자체가 중국에게 생존권까지 먹히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게다가 캄보디아 쪽으로 빠져나가는 메콩강과 톤레삽 강의 수운으로 볼 때 프놈펜에서 상당하 물류를 확보하고 시아누크빌 항구를 통해 타이만으로 빠져나가 말레이 해협 통과, 해상 실크로드로 알려진 길목들을 장악하여 막대한 부를 쌓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중국이 캄보디아와 FTA에 서명함에 따라 경제관계를 강화해 동남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증대를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캄보디아 최대 항구 시아누크빌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곳이라 훈 센 총리가 중국인들의 진출을 적극 장려했던 곳이다. 시아누크빌은 건설 현장 대부분이 중국 자본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캄보디아 내 중국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공사장도 중국, 그 현장 인부, 자재도 중국, 그들이 자는 곳도, 먹고 마시고 노는 곳도 모두 중국 자본 업체들이고 중국이 캄보디아에게 일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외 도움 주는 것은 없다고 보면 된다. 시아누크빌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 규모를 1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참고로 시아누크빌 현지인 인구는 15만 명이다. 특히 중국이 일대일로를 하면서 시아누크빌에 하는 사업은 바로 카지노다. 2016년 당시 13개에 불과하던 시아누크빌 카지노 수는 현재 110개 이상으로 업주가 대부분 중국인이다. 결국 시아누크빌을 비롯한 대다수의 캄보디아 경제를 카지노로 중국이 빨아먹겠다는 심산인 셈이다. 미얀마의 경우, 중국과의 일대일로를 군부가 절대적으로 밀고 있다. 여기에서 중국이 전략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이 차우퓨 항이다. 이곳을 제2의 시아누크빌로 만들겠다는 것이 중국의 목표다. 시진핑은 2020년 1월 미얀마를 방문하여 차우퓨항을 특별경제구역(SEZ)으로 지정하고 7개의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로써 중동산 원유를 실은 중국 유조선은 차우퓨 항에서 육상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중국 운남성 쿤밍까지 보낸다. 차우퓨 항이 일대일로 에너지 전략의 요충지인 셈인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는 미얀마 군부가 중국의 일대일로를 다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나섰다. 중국은 인도양 진출을 위해서 미얀마에 오랜 기간동안 공을 들이고 일대일로 참여를 독려해 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것이다. 순조롭게 이어오던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이 갑자기 막히게 된 것은 이번에 터진 군부쿠데타와 그로 인한 민주화 시위였다. 현재 중국은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침묵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중국은 겉으로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유혈충돌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중국은 미얀마 군부가 계속 집권하기를 원하고 있다. 군부가 적극 밀어줬기 때문에 이 사업을 하고 있고 군부가 축출된다면 미얀마에 오랜 기간 공을 들였던 중국 정부에게 미얀마 측이 어찌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위가 시민들에게 유리한 향방으로 흘러갈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적극 나설 공산이 크다. 가장 최악으로 우려되는 것은 자국 기업과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중국의 인민군이 미얀마에 파견될 가능성이다. 이미 차우퓨 항을 통해 중국과 연결되는 송유관 문제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미얀마는 민주화 시위만큼이나 중국과 미국의 치킨게임도 신경써야 하는 매우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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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대해 우려되었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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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시작되는 러시아의 대선은 어떻게 봐야 하나?
- 2023년 9월 러시아 두마의원 보궐 선거의 결과는 3월 대선 투표율의 '바로미터'로 제시된다는 예상이 있다. 당시 집권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압승을 거두었지만, 투표율이 20~40%대로 낮아 선거의 정당성 확보에는 실패힌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투표율이 낮은 원인 분석을 놓고 여러 논의들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민생 문제가 결과적으로 투표율 저하를 야기했다는 해석도 나타났다. 그러나 러시아 내 부정적 상황이 누적되면 시민의 투표 참여가 오히려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같이 나오고 있다. 오늘 15일부터 사흘간 진행되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이 당선될 것인가의 여부는 더 이상 논쟁의 가치가 없다. 다만 투표율과 그가 얼마나 득표할 것인가의 정도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 뿐이다. 정작 러시아 대선이 3일 간 치러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특수군사작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점령 지역에서도 투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자투표도 도입됐다. 러시아 선관위에 따르면 유권자 수가 러시아 국민 약 1억 1,230만명과 해외 거주 러시아인 약 190만 명이다. 대선 후보는 무소속의 푸틴 대통령 이 외에도 자유민주당의 레오니트 슬루츠키(Леонид Слуцкий), 새로운 사람들(Новые люди) 정당의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Владислав Даванков), 공산당(Коммунис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의 니콜라이 하리토노프(Николай Харитонов) 등 여기에 3명이 더 있다. 푸틴 대통령을 제외하고 언급한 3명 외의 나머지 3명은 득표율이 제로에 가깝지만 이 또한 정치 경력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중에 두마 선거 때 이 이력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뭔가 정치 경력에 이름을 남기고 경력 한 줄 채우는 것이 목표인 후보들이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은 3명의 후보들은 참가에 의의를 둘 뿐이다. 여기에서 물론 야당 중 역대 공산당 후보가 주요 경쟁자로 꼽혔지만, 2004년에 이어 두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니콜라이 하리토노프(Николай Харитонов) 후보는 당선 가능성은 비록 낮지만 푸틴 대통령의 특수군사작전을 지지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정책적으로 별다른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나이에서 걸림돌이다. 현 나이 75세로 러시아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과 맞서는 후보들의 공약들도 푸틴 대통령과 나아보이는 부분도 없어 아마 압승이 예상되는데 몇 % 참여와 득표를 할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물론 예상은 역대 러시아 연방공화국이 세워진 이후, 최다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며 80% 이상의 득표를 할 수 있을까 여부다. 참고로 지난 2018년 러시아 대선 때 푸틴 대통령은 76.69%를 득표하여 80% 이상의 득표에 실패했다. 당시에는 러시아의 사회, 경제 등이 정체하고 있었던 시기이고 2015년 크림 합병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로 경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던 암울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진행 중인 것도 있고 서방 및 나토와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그에 따른 애국심 또한 충만한 상황이다. 게다가 2018년에 비해 대통령 후보들의 네임벨류 매우 약한 편이다. 당시에는 공산당의 파벨 그루즈닌(Павел Грудинин), 자유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끼(Владимир Жириновский) 같은 걸출한 정치인들이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니콜라이 하리토노프(Николай Харитонов)를 제외하고 기타 후보들의 네임벨류들이 러시아 전문가인 나 조차도 왜 나왔을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정치 경력이 부실하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매우 안정적이다. 나 또한 2015년 이후, 러시아에 있으면서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해 루블화 가치가 쓰레기 됐을 때의 최악의 상황을 겪은적 있는데 그 때에 비해 오히려 지금의 제재가 더 강화됐지만 흔들리던 2015~2018년에 비해 지금은 그때보다 안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푸틴 대통령이 80% 이상의 득표율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 80% 득표율을 얻는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대 서방과의 대리전에 있어 정국을 누구의 방해와 제지도 받지 않고 무난히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80% 이하의 득표율을 얻는다면 전쟁 수행에 여러 장애 요소들이 등장할 확률이 높아진다. 80~85% 사이가 가장 무난하고 85% 이상을 받으면 아주 최상의 조건이다. 대통령 선거는 러시아에 있어 러시아인들의 선택인 것이고 푸틴은 러시아인의 선택을 재확인 받는 시기이기 때문에 러시아에서의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마나한 선거가 아니다. 러시아인 절대 다수의 신임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쪼개져 또 다른 갈등의 요소를 만드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단결하여 푸틴 대통령에게 몰아주면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고, 그것을 못하면 러시아 혁명 때처럼 끌어내려진다. 이게 러시아의 선거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서방이나 한국의 선거와 다른 점이다. 그에 비해 중국이나 북한은 일반 국민들의 투표나 선거가 없다. 러시아의 또 다른 관건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했을 때 이후에 있다. 집단서방과 반러 세력, 반푸틴 세력들의 사보타주급의 준동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단골메뉴급으로 늘 등장하는 것이 "부정선거 및 부정투표" 논란이다. 앞서 집권 4기 때보다 이번 5기 때부터 "부정선거 및 부정투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강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집단서방은 반러 세력, 반푸틴 세력들을 이용해 이러한 논란에 계속 불을 지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5기를 자신의 마지막 대통령 임기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집권 4기 시절 헌법 개정을 통해 현 헌법상 불가능한 2024년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고 한 차례 쉰 다음 2030년 대선에 출마하는거 아니냐는 질문에 "내가 100세때까지 이 자리에 있을 것 같나?"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에 있다. 그도 그럴것이 2030년 대선때는 78세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가 보기에 이번의 푸틴 대통령의 마지막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여러 과제 중 가장 유력한 것이 세 가지인데 첫번째가 옐친이 푸틴에게 권좌를 넘겨줬을 때처럼 정치적 후계자 선별, 두번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마무리와 집단 서방 및 나토와의 대리전에서 러시아를 가장 유리한 상황으로 끌어 올려 다극 세계의 대표 국가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 세번째는 북극항로의 완성이다. 이 세 가지의 과제가 푸틴 정권 5기의 핵심이라 볼 수 있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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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시작되는 러시아의 대선은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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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국부(國父) 쑤파누봉과 파테트라오
-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라오스는 급격히 혼란해졌다.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이싸라(Lao Issara)라는 공산정당을 만들어 라오스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라오이싸라(Lao Issara)는 베트남 공산정권인 베트남 민주공화국과 긴밀하게 유대관계를 맺었다. 프랑스와 라오스 독립파의 전쟁은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1949년 7월 19일 프랑스는 라오스를 독립시켰지만 국방과 외교, 재정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가 여전히 가졌다는 것에서 결국 형식적인 독립에 불과했다. 하지만 친 프랑스 파로 대표된 우익과 좌익 사상을 가진 공산 조직과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우익의 지도자는 라오스 왕국의 총리가 된 수바나 푸마(Souvanna Phouma, 1901~1984)였고 좌익의 지도자는 쑤파누봉(Souphanouvong, 1909~1995)이었다. 쑤파누봉은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분콩(Bounkhong) 왕자의 세 아들 중 하나였고 왕가의 여인으로부터 태어난 이복형제들과 달리 평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지만 엄연히 그는 왕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 Prince가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쑤파누봉은 프랑스와 베트남에서 교육받았으며, 호치민과 자주 만나 교류하여 인도차이나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하여 “붉은 왕친”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1950년 쑤파누봉을 중심으로 라오스의 공산세력이 단합하여 파테트라오가 탄생했다. 쑤파누봉과 파테트라오는 프랑스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으며 1953년 10월 22일, 프랑스-라오스 조약에 의해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독립 이후 내전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라오스 내전으로 불려지는 전쟁이다. 라오스 내전은 파테트라오와 라오스 정부군 간에 일어난 전쟁으로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렬한 시대적 배경이 존재했다. 이는 라오스 왕국 정부의 파테트라오에 대한 탄압이 원인이 되었다. 파테트라오는 1950년 8월에 결성된 단체로, “조국 라오스”라는 뜻을 가진 공산집단이었다. 파테트라오의 지도자인 쑤파누봉은 라오스 공산 임시 정부를 만들어 스스로 총리를 자임했다. 내전이 발생하자 라오스 북동부를 파테트라오가 장악하면서 왕실과 우파 민족주의자, 좌파 민족주의자 간의 전투가 크게 벌어진다. 쑤파누봉은 유엔과 미국의 평화 협상을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1973년 민족 정치 자문 위원회(NPCC)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1975년 남베트남이 북베트남군에게 항복하자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라오스 국왕이 퇴위하고 수바나 푸마 총리도 사임하여 라오스는 사실상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1975년 12월 1일 긴급하게 소집 된 인민대표 민족회의는 라오스 왕국을 폐지하고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 건국을 선포했으며 쑤파누봉이 초대 주석으로 취임하면서 30년 내전의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라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의 통치가 시작했다. 이웃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베트남 전쟁이 발생해 라오스도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북베트남군은 전쟁 물자를 라오스를 통과하는 이른바 “호치민 루트”를 통해 전선에 수송하였다. 미군은 라오스의 일부 소수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호치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비밀리에 라오스 전 국토를 폭격하게 된다. 이에 1964년부터 1973년까지 58만 회의 폭격이 이뤄졌고, 200만t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어 전 국토가 황폐해졌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종전 때까지 폭격과 라오스 내전에 개입했던 사실 등을 부인해서 이 전쟁은 “비밀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현재까지도 폭격으로 인한 불발탄에 끊임없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1986년 이후에는 푸미 봉비치트(Phoumi Vongvichit)가 국가주석 대리가 되면서 쑤파누봉은 권력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1991년 이후에는 봉비치트의 주석 대리인 카이손 폼비한(Kaysone Phomvihane)이 국가 주석이 되며 쑤파누봉은 형식적인 국가 주석의 지위에서도 물러나게 되면서 라오스의 국부(國父)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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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국부(國父) 쑤파누봉과 파테트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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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시대 의학의 혁신(Innovation), 마취(Anesthesia) 약품의 개발
- 중세 유럽의 외과술은 이발소에서 무허가 의료인인 이발사에게 시술을 맡겼기 때문에 상당한 부작용이 따랐다. 그런 곳에서 마취가 있을리 없었고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수술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위험하고도 어려운 치료였다. 물론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은 증상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당연히 환부를 도려내거나 꿰매는 등 상당한 통증을 유발하는 치료법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통증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마취법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환자들이 고통으로 인해 수술을 망칠 수도 있고, 고통이 심한 경우에는 쇼크사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취는 필수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화타가 마비산을 이용하여 마취를 했다고 전해지며 급한 대로 독한 술을 이용해서 수면 상태로 놓이게 하거나 고통을 경감시키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세계사적으로 마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정확한 마취에 대한 정의는 각 기록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하나로 정의한다면 약물에 의한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인 중추신경계의 억제이다. 외상이나 대사 문제과 같은 기타 원인이 아닌 약물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이는 당연하게도 마취가 끝난 후 의식이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비(非) 가역적이어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적절한 억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마취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은 일종의 무의식(Unconsciousness) 상태, 기억 상실(Amnesia), 진통(Analgesia), 무운동성(Immobility), 유해 자극에 대한 자율신경계의 반응 감소(Attenuation of autonomic response to noxious stimulation)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권에서는 침을 이용해 마취를 했지만 유럽권에서는 침술이 발달하지 않아 마취에 관한 기술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이 있던 19세기 초에는 전장에서 절단수술을 할 때 독한 술을 먹이고는, 머스켓 총알을 입에 물리고 수술을 진행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고통을 참고 견디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숙어인 'Bite the bullet' (총알을 물다)라는 용어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치과에서 이를 뽑을 때도 대단한 통증이 수반되었다. 19세기까지 서구에서는 이를 집게로 뽑았다. 물론 중세 시대에는 전문가나 의사가 뽑은 게 아니라 대장장이를 불러서 쇠를 잡는 집게로 뽑았다고 한다. 그래서 헬륨가스를 마시게 한 채로 치아를 빼면 고통도 없는 마취가 가능하다고 영국의 젊은 치과의사인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가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헬륨을 너무 많이 마셔서 환자들이 되려 산소부족 증세로 사망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고 호레이스 웰스 본인도 헬륨을 너무 많이 마셔서 1848년 33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본격적인 마취제의 발명은 1847년에 영국에서 발명된 탄소와 염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인 클로로포름(Chloroform)이었다.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James Young Simpson, 1811~1870)이 에테르를 사용해서 최초로 무통 분만을 시험했다. 1847년 후반에는 클로로포름이 마취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임산부의 출산 시 고통을 줄이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1853년에는 산부인과 의사보다는 공중 보건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으로 현대에 널리 알려져 있는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는 빅토리아 여왕이 4번째 아들인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여왕이 클로로포름 냄새를 맡게 함으로써 통증 없이 분만을 유도하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 이에 대해 클로로포름에 의한 마취 효과에 만족한 빅토리아 여왕은 베아트리스 공주를 낳을 때도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무통 분만을 또 다시 시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음으로 인해 클로로포름 마취법은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임스 심슨의 클로로포름 마취 요법을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수많은 반대와 좌절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의학적인 처치에 적용하는 것에서 클로로포름의 부작용과 각성현상이 있음을 지적했지만 여러 고통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던 탓에 오히려 이와 같은 마취 요법이 널리 알려지는 기법이 되었다.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의 산부인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취 시술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제퍼슨 의과대학에서 40년 동안 교수로 지낸 찰스 D. 메이그스는 마취가 산모에게 끼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는 아기가 산모의 몸에서 나오는 데 필요한 힘과 산모의 고통 사이는 절대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여겼고, 마취의 영향으로 산모가 의식을 잃었을 때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 시대에 있어서 경막외 마취를 하면 산모가 힘을 줄 수 없어 분만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재기되었다. 이러한 전문의들의 지적은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계에서 '여성이 분만할 때 잉태의 고통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는 이유로 인해 조직적으로 마취제를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철저히 연구한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A. D. 파르(A. D. Farr)는 1980년 Anaesthesia라는 의학 저널에서 "교회가 조직적으로 마취를 반대했거나, 개개인들의 반대가 만연했었다는 점에 관해서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 말했다. Farr는 연구를 거듭한 결과, 종교적 이유로 마취시술을 거부하는 환자들이 나올 것을 우려한 심슨이, 환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를 미리 마련해둔 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편견이 널리 퍼진 이유는 19세기 과학과 종교의 대립관계로 역사를 관찰한 드레이퍼나 화이트 같은 학자들이 그들의 저서에서 출산 때 마취제의 사용이 성경적 근거와 불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억압되었다고 계속하여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을 우연히 접한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그의 저서 『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 에서 이러한 종교적으로 편승된 잘못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오류를 범했고, 그 결과로 인해 오늘날 이와 같은 편견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반대파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환자들 개개인이 종교적 이유로,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마취를 거부하는 일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 중에는 비(非) 과학적인 미신에 근거해서 거부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산모의 출산에 대해 '마취를 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아기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한다'라는 식의 편견이 아직도 현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지 기독교계 차원에서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 밝혀둔다. 전신마취는 인류에게 큰 축복이었고 외과수술을 비롯한 의학 일반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과거의 수술에서는 무조건 통증의 지속시간을 줄여야 했으므로 속도가 관건이었고 따라서 정교한 기법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끊어진 혈관과 신경을 이어붙이는 등 섬세하고 정교한 수술을 여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는 전신마취가 통증 조절뿐 아니라 수술 목적에 맞게 환자의 생리적 상태를 유지하거나 조절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제 마취과 의사는 통증 전문가일 뿐 아니라 생명 유지의 첨병으로도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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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시대 의학의 혁신(Innovation), 마취(Anesthesia) 약품의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