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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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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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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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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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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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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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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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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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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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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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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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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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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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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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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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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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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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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한민국 정부에 ‘홍해 보호’ 지원을 요청함에 대한 비판적 견해
-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에도 ‘홍해 보호’ 지원을 요청해서 청해부대 파견을 검토한다는데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명박 정권 때 "아덴 만의 여명" 작전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하긴, 현 정권 인사들이 MB 측 인사들이니 그 사건이 떠오르긴 하겠지만 예멘 후티 군대는 "아덴 만의 여명" 작전 때의 소말리아 해적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군사들이다. 후티는 사실상 예멘의 정규군에 가깝고 나름 최신 무기들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훌륭한 수준은 아니지만 소말리아 해적들의 무기보다는 훌륭하다. 그리고 우리가 나서는 순간 단순히 홍해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수준이 아니다. 캐나다, 호주, 독일, 프랑스 등도 사실상 참여를 거부했는데 고스란히 중공, 북괴의 위협에서 우리 전력을 분산시켜 파병해야 할 필요가 있나? 후티를 없애기 위해 예멘 땅 본토 상륙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상륙 작전은 군 피해가 늘어날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 선박이 후티에게 공격 받은적 없고 이스라엘에 무역 반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이스라엘로 향하는 선박이 공격을 받는 것이지 다른 나라로 가는 선박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티는 오래 전부터 그런 사실을 공표해왔고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선박은 실제로 공격한 바 없다. 다만 이스라엘로 가는 상선만 공격했었다. 그걸 전체 상선을 공격하는 양, 집단 서방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면서 희망봉을 우회하는 것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우리가 서유럽, 북아프리카 및 터키, 동유럽과 교역하는 선박이면 여태까지 수에즈 운하 넘나들며 잘 교역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후티 군대를 자극해 그들의 표적이 되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도 경제가 반 토막 날 것은 자명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혼자 예멘 사태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동맹국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미국이 정말로 세계 최강이자 강대국이라면 왜 동맹국들의 손을 빌리는가? 혼자 해결하면 되는 것을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은 더 이상 최강이 아닌듯 하다. 미국이 진정한 세계 최강이고 여전히 건재한다면 이번 기회에 입증하면 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자 무적이라면 스스로 증명하고 입증해야 한다. 동맹국들이 거부하는데 강제로 참전을 독려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후티를 반군이라 부르며 폄하하는데 무엇이 무서워서 반군과 싸우는데 동맹국들의 힘이 필요하단 말인가? 진정한 세계 최강의 능력을 이번 기회에 보여줘야 한다. 미국은 우리 한반도의 평화와 안녕과 직결되어 있는 국가이니 북한과 중국을 꼼짝 못하게 스스로 해결하는 최강국의 면모를 보여주길 소망한다. 이러한 미국의 전면전은 결코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군의 역량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가 어찌될지 판가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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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한민국 정부에 ‘홍해 보호’ 지원을 요청함에 대한 비판적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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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노바 공국의 성립과 해상 무역으로 인한 지중해 경제의 성장
- 인문주의적, 르네상스적인 기반 속에는 나침반의 실용화와 지리상의 여러 발견들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점령당하고 난 이후에 오스만투르크의 세도를 피해 인도와 교역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찾고자 하는 직접적인 필요성이 야기되었고, 긴 항로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재정상의 자금도 함께 축적되어지는 동시에, 인문주의, 르네상스적인 새로운 정신 풍토가 조성되어 지리상의 큰 발견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 했다. 용감한 항해사의 노력은 종합적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규모는 작지만 영국의 물자 보급의 도움을 입어 두 갈래의 방향으로 항해를 했다. 첫째, 아프리카를 주항하면서 인도 영해에 이르는 항로와 둘째, 대서양을 횡단하여 인도에 닿는 항로였다. 그리고 훨씬 뒤에 또 다른 방향, 이를테면 지구 전체를 주항하는 항로가 추가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주항하는 탐색 항해는 포르투갈 출신인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o Diaz)가 1486년에 시도하여 현재의 희망봉에 상륙할 수 있었고, 1497∼1498년에 스페인 출신인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는 포르투갈의 원조를 받아 모든 계획을 실현시키면서 인도의 서쪽 연해인 캘리컷(Calicut)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미 대서양을 횡단하여 인도에 이르는 항로 역시 개척되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 1451∼1506)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고, 스페인 정부의 원조를 얻어 1492년, 1493∼1495년, 1498년, 1502∼150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항해를 시도했다. 비록 아시아 영해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새로운 대륙인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새로운 대륙을 아메리카(America)라고 명명한 것은 콜럼버스의 세 번째 항해 시 재정을 부담했던 피렌체 출신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아메리카의 광대한 대륙 발견으로 유럽의 지배 계급들은 새로운 행운과 번영을 멀리서 바라보며 낡은 대륙의 경제적, 사회적인 기존 상태를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투르크의 선박과 실세에 눌려 동방 제국과의 기존의 무역 항로는 어렵게 되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스페인의 해상 무역 선박은 점차적으로 투르크의 상선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지중해의 해상 항로는 대서양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여기에 더불어 경제적 구조에 대한 균형에 심각한 변화가 가해진다. 15세기에 이탈리아의 수공업, 특히 견직물과 모직물은 유럽의 상거래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1500년에 들어서면서 약간의 성숙기의 변동은 있었지만 대체로 심각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그 당시 경제적 생활의 지배적인 요소가 되어 있던 농업 역시 시대에 후진적인 경작 방법에 의존하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독일, 폴란드에서는 농촌의 경제적, 사회적 조직을 대토지 소유자인 영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교역과 그 창의력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던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무역 활동이 정체되든지 독일 야콥 푸거(Jakob Fugger) 금융업자들에게 의존해 가는 형편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적, 상업적 활동 역시 독일 금융계가 중심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와 제약도 일반적으로 유동적인 자본의 부족으로 느슨해졌다. 이는 무역 확대로 얻어진 이윤의 대부분이 토지에 투입되고, 정치 생활의 불확실로 이탈리아를 통제하기 위한 주둔군의 부정적인 결과는 그와 같은 사업에서 철수하는 반면, 금전을 저축하는 것에 방향을 두었던 것이다. 따라서 화폐 유통의 침체와 중단은 화폐 단위의 현저한 절상을 야기 시켰다. 전제 군주들이 정치 · 군사적 유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이 필요했던 시대이니만큼 막대한 금전을 조달할 수 있는 소수의 금융업자와 동맹을 맺는 것이 절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금융업자인 푸거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 상호간에 체결되는 깊은 유대가 그들의 재정적인 최후의 지주였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는 제노바 출신이나 베네치아 출신의 이탈리아 인들도 활약했고, 이탈리아 금융계의 자본이나 전문 지식이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전후로 하여 여러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가세함으로써 많은 수익을 이탈리아에 주었던 사실은 비교적 정확하다 볼 수 있다. 실상 이탈리아 여러 도시의 지난 과거의 번영을 이야기해 주는 화려한 궁전의 많은 부분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것보다는 오히려 16~17세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지리상의 대륙 발견이 추진된 하나의 계기는 오스만투르크의 근동 제압으로 인해 제노바와 베네치아 등 근동 지방의 상업 기지를 약탈당하고, 무역상의 독점적인 특권을 탈취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해상 무역의 독점권 상실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중해 무역의 진출을 허용했던 반면, 피사와 리보르노의 항구를 장악한 피렌체(토스카나 공국)에게 해상 무역의 규모를 확장해 갈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리보르노 항은 영국 선박의 기지로 이용되기도 했고, 그 선주들은 포르투갈의 여러 항구와 통상 관계를 유지하면서 1600년대의 동서 중계 무역에 많은 번영을 누리게 했다. 제노바는 15세기 말경 다시금 키프로스 섬을 점령하는 것 이 외에 약간의 식민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여, 오스만투르크에 연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오스만투르크의 보호 하에 동방 무역의 안전을 보장받아 동방 무역의 번창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이리하여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경유하는 베네치아 중계 무역으로 종래의 향료 무역이 되살아나 베네치아는 향료의 거래량으로는 포르투갈을 능가할 수가 있었고, 서남 독일의 광산업의 번창으로 독일-이탈리아 상호간의 통상은 16세기에 크게 확장되었다. 제노바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서 근동 상업에 크게 세력을 유지해 오면서 모직물 공업을 비롯한 견직물 공업과 유리 공업 등이 번창하는 수출 공업의 중심이 되었다. 제노바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북 · 중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은 17세기 초에 와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공업 지대의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축적된 자본은 유럽의 국제 금융 시장으로 흘러가 이탈리아의 금융 활동은 16세기 후반 국내 대도시에 공립 은행의 창립을 보게 되었다. 또, 16세기 중엽 제노바의 영향을 받은 인근 도시인 밀라노의 상공업의 번영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유럽의 중심적 주요 도시와 정기적으로 결속하는 공립 우편 제도를 발달시켰다. 16세기와 비교하여 17~18세기 초의 이탈리아는 정치, 경제, 사회생활 전반에 현저한 침체 현상이 일어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 침체의 근본적인 요인으로서는 근대적 번영의 기반이 될 산업 자본가 계급의 성장이 처음부터 단절되어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북 · 중부 이탈리아의 경제적 전진 지역에서 중세 도시의 국가적 정치 · 경제 체제가 너무나 강하게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래의 도시 번영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이에 대신해서 새로운 번영을 일으킬 요소가 구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농촌 사회는 막대한 농지를 농민이 아닌 도시민들이 소유하여 지배적인 소작 제도(Mezzadria)로 운영되고 있어서, 유럽에서 보는 근대 자본주의 발달의 기반인 독립 자영 농민층이 결핍되어 있었다. 더구나 도시 중심의 통제적 식량 보급 정책이나 전쟁과 흉작 등이 악영향으로 작용하여 농작물 상품 생산의 발전이 막혔고, 중 · 소지주의 몰락과 종교 단체와 대 귀족들의 대 농토 소유와 소작 제도로 인한 봉건적인 사회 제도가 다시 부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낙후 지역이었던 남부 이탈리아에도 봉건 영주들의 권력에 붙어 이득을 취하는 대소작인들의 중간착취로 농촌의 빈곤을 가속화시켰다. 이탈리아에 있어서 근대사는 중세 시기가 막을 열었던 것과는 별 차이가 없는 상태의 역경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중세사가 야만인들의 지배라고 하면 근대사는 외국인들의 패권 장악에 있다. 아무튼 이러 저러한 운명 속에 이탈리아는 매우 큰 위기를 겪으면서 자신이 자치권을 상실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정원을 향해 홍수들이 밀려오는 것과 같이, 야만적인 종족들이 내려와서 로마 전통의 흔적 위에서 군주 국가를 세워 나갔다. 반대로, 근대사는 이미 전쟁에 숙달된 군대를 거느리며 민족적인 기반을 형성하고 있던 알프스 이북의 여러 강대국들이 이탈리아 방면으로 확장해 오면서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그 세력권에 예속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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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노바 공국의 성립과 해상 무역으로 인한 지중해 경제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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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유물을 파괴하고 유물에 대한 명칭을 짓는 것에 근거가 없는 이유
- 4년 전, 한 스님과의 짧은 시간의 만남과 대담에서 스님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문화재를 보호해도 모자를 판에 왜 파괴하고 유물에 대한 명칭을 짓는 것이 근거 없이 아무렇게나 막 지을까요?" 그러자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애정이 없으니까요" 해외에서 숱한 유물과 발굴 현장, 유적을 보며 연구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분은 비단 능현스님 뿐만이 아니었다. 춘천 중도 유적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레고랜드를 지으려 하는 것을 반대하는 분들도 그렇고, 경주 쪽샘 고분 발굴 책임자도 그랬다. 그리고 나를 만난 양심있는 고고학자들과 관계자들 모두가 공통된 질문을 했다. 모두들 고고학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명칭도 짓고 도로를 내고 유흥시설과 아파트를 짓는다며 유적을 함부로 파괴한 것에서 시작된 질문이었다. 애정이 없으면 관심도 없게 된다. 그러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한반도는 단위면적상 땅만 파면 고대 유적과 고대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고대 문화 유적 발굴만으로 세계 5위권 안에 들어가는 국가다.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의 영국과 포르투갈도 땅파면 이 정도로 고대 유적과 고대 유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우리는 고대 문화적으로 엄청난 혜택을 받은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거나 그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국,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A.D 3세기의 켈트 유물, 특히 유리잔 조각만 나와도 국가의 자랑이라고 대서특필이 되며 갖은 호들갑을 떠는데 우리는 깨진 토기도 거름 되라고 뿌리는 형국이니 복에 겨워 터졌다고 봐야 한다. 하다 못해 일본도 5세기 토기 사발 하나 나와도 국보로 소중히 모셔가는데 말이다. 고고학의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어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귀함을 아는 애정이다. 애정이 관심을 부르고 관심이 보존과 복원에 대한 생각과 지식을 부른다. 한국의 고고학자들과 관계자들은 고고학자인 나에게서 뭔가 유럽고고학의 거창하고 해박하며 학술적 용어를 원하고 써먹기 위해 질문을 한 것이겠지만 해박하고 유식한 용어를 배우고 머리에 담기 전에 나는 먼저 가슴으로 담으라고 말하고 싶다. 가슴으로 한반도 역사와 유적, 유물에 애정을 가지는게 먼저라고 말이다. 고고학자들이 최고의 기술과 학술이라고 높이 떠받드는 유럽고고학의 기초도 바로 Affection과 Heart 이기 때문인데 이 나라는 그게 없다. 오히려 대를 이어 장기적으로 꾸준히 발굴하여 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도로 묻거나 춘천 중도 유적이나 대전 용계동 유적처럼 파괴하기 바쁘다. 중도 유적도 한국 고고학 혼자서 감당이 어려우면 해외 고고학계에 협력을 요청하여 발굴 및 보존하면 될 것인데 그깟 레고랜드가 대수인가? 한국 관계자에게 내 신분을 밝히고 고고 유적 촬영을 요청했지만 허가되지 않았다. 내가 한국보다 훨씬 더 고고학이 발달한 러시아, 터키, 그리고 중앙아시아 고고학 유적 등 수많은 고고학 현장을 다니고 발굴을 하면서 사진 촬영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발굴 현장 사진을 허가 쉽게 받고 자유롭게 찍을 수 있었다. 그 흔적은 내 메인 사진들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런데 한국 고고학 현장은 참 이상한 곳이다. 발굴현장에 대한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 물정이 어두운 나지만 도대체 무엇때문에 현장촬영이 허용되지 않는가? 멀리서 찍을 수밖에 없는데 타 고고학계와 교류조차 하지 않으려는 한국 고고학계의 폐쇄성이 아쉽다. 현장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그에 대해 논쟁과 비판이 활성화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거늘.. 이 나라는 그 조차도 막아버리니 참 이해하기 어려운 폐쇄성을 갖고 있다. 고고학이란 학문 자체를 그렇게 다루니 유물, 유적들을 우습게 보는 일반인들이 나타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낙서하고 파괴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 자체가 없다. 저 학생이 무식하다 욕할게 아니라 저 상황을 만든 고고학계 및 문화재 보존학계에 대한 성토도 이어져야 맞다. 그들조차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없는데 누구한테 죄를 묻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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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유물을 파괴하고 유물에 대한 명칭을 짓는 것에 근거가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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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그레이트 게임
- 최근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그리고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지역에 대한 오래된 영토 분쟁과 민족 분쟁, 무엇보다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 지역의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루지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및 중앙아시아로 통칭되는 광대한 지역은 대개 이와 같은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러시아와 영국, 두 나라는 제국주의적인 팽창에 몰두하였으며, 실질적인 지도에 없는 땅인 중앙아시아 지역을 자국의 세력권에 넣기 위해 경쟁하고 충돌했다. 이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은 과연 달라졌는지 의문에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는 여전히 매우 낮은 편이며, 주로 자원 확보나 개발 등 경제적인 부분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에 걸쳐 발생한 그레이트 게임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영국과 러시아가 경쟁을 벌였던 신장과 티베트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독립을 꿈꾸었으나 중국으로부터 갖은 압제를 겪으며 아직도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략적 요충지로 영국과 러시아가 장악하려 했던 아프가니스탄은 오늘날까지도 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아 있다. 카프카스 지역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도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었다가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자원 쟁탈 지역이 되고 있다. 이에『실크로드의 악마들(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의 저자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현재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시금 국제적 격랑에 놓여 있는 이 지역은 그 향방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지구의 축소판과도 같다. 홉커크는 당시 발간된 국제 정세를 다룬 문헌이나 영국과 인도, 러시아의 정부 문서,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했던 개인들의 여행기나 논문 등 방대한 자료를 두루 섭렵하면서도 역사적 서술의 전형에서 벗어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제국주의적 흐름 속에서 분투했던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행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애국심이나 개인적 야심을 위해 험준한 산맥과 황량한 사막을 따라 이동하면서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했던 이들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목적에 봉사하게 된다. 탐험가이자 첩자, 군인이자 야심가였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묘비명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에 묻혔는가 하면 일부는 고국에 돌아와 명성과 권력을 얻기도 했다.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두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경쟁과 갈등 관계를 표현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영국 동인도 회사 제6 벵골 원주민 경기병대 소속의 정보 장교인 아서 코넬리(Arthur Conolly) 중위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루디아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소설『킴(Kim)』(1901)에 나온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그레이트 게임의 시기는 1813년 러시아-페르시아 조약 체결 이후부터 시작되어 1907년 영국-러시아 협약 체결로 종료되었다. 이보다 강도가 덜한 2차 그레이트 게임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작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영제국은 동방 최대의 보물이라 불리던 인도를 차지함으로써 제국주의 경쟁의 선봉에 섰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지칭되어질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러한 영국에게 인도를 식민지로 유지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한편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이후 국력을 키워가던 러시아도 아시아로의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었다. 따라서 두 제국은 러시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이 지역은 지도상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땅,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선, 본국이나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물품을 팔기 위한 시장으로 인식되었을 뿐 독자적인 전통이나 역사를 지닌 지역이 아니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애초에 양국 간의 전면전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두고 있던 대영제국이나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고 있던 제정 러시아는 쉽사리 국가 차원의 전쟁에 뛰어들 수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개인들의 참여로 시작되었다. 애국심과 야심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순례자나 현지인 말 장수로 변장하고 험난한 지형을 탐사하며 지도를 그리고, 지역의 부족들과 지도자들을 만나고 정세를 살폈다. 이후 본국에 돌아와서는 상대 국가의 위협을 강조하는 책과 논문을 작성함으로써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 정부가 지금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정복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처음에 이들의 견해는 무시되고는 했으나 점차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러시아 공포증’이 만연하여 중앙아시아 점유에 소극적이었던 정부를 압박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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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그레이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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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 파리와 영국에서는 베드버그와의 전쟁 중
- 2024년에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 파리와 영국에서는 베드버그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인류가 동굴에 입주했을 때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인간과 더불어 잘 살아왔던 베드버그는 유럽에서 저가 숙소인 호스텔을 이용하거나 어딘가에서 베드버그가 붙어 온 다른 여행자 때문에 베드버그가 들러붙어 고통받는 일이 생기고 있다. 요즘 같이 베드버그가 가장 왕성할 때, 목조건물이 많은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 여행가는 것이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베드버그와 전쟁 중이라니 베드버그의 청정국이었던 한국은 어느새 유럽에 갔다온 자들의 물건에서 옮겨오거나 해외에서 배송된 택배로 인해 함께 실려왔을 확률이 높다. 베드버그는 오래되고 낡은 목조건물에 주로 기생한다. 그 이유는 나무 속이 오래될수록 따듯하고 적당히 습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무 속에는 베드버그 뿐 아니라 각종 곤충들의 서식처가 되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무 내부온도가 벌레들의 서식처가 되기에 알맞은 온도를 갖고 있다. 특히 초겨울로 진입하는 때 난방은 베드버그의 안정된 서식을 돕게 한다. 나도 유럽에 있을 때 무려 6차례 베드버그로 인해 고생한 적 있는데 세르비아에서 4차례, 코소보에서 1차례, 슬로바키아에서 1차례 겪은 바 있다. 베드버그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은 해안가 지역 도시들이다. 한 겨울에도 따뜻하고 해안가 특유의 높은 습도로 인한 습기는 베드버그 서식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한 때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해안 지대가 베드버그들의 천국이었고 요즘은 내륙으로도 확산 중이다. 서유럽에서 베드버그는 1950년대 아주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여행객이나 이주민들이 많아지고 유럽인들이 먼 곳으로 여행 가서 묻혀오기도 하여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기다 화학 살충제에 내성이 생겨 퇴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강한 살충제를 마구 사용할 수도 없다. 그리고 번식력도 좋다. 한 번 들여오면 금방 퍼지는 이유다. 빈대는 벼룩, 이, 모기, 등에와 달리 꽃의 꿀이나 나무 수액을 먹지 않으며, 동물 피를 빨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모기는 번식기의 암컷만 흡혈을 하는 데다 가구에 숨어 서식하지 않는 반면, 베드버그는 최소한의 환경이 갖춰진 따뜻하고 습한 장소를 발견하면 눌러앉아 낮에는 철저하게 어두운 곳에 숨고 밤에 나와 흡혈하며 엄청난 속도로 번식한다. 베드버그는 모기보다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가 잘 나오는 곳을 찾을 때까지 한 번에 수 방에서 수십 방 씩 이동하며 계속 문다. 이 때문에 보통 발 끝이나 팔 끝에서 시작해서 직선으로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혈관을 찾지 못해 몸을 기어다니다 대충 피부가 연하다 싶은 곳은 다 물고 보기 때문이다. 베드버그는 모기처럼 피를 흡입할 때 마취 및 혈액 응고 방지 성분이 섞인 산성 액체를 피부에 주입하며, 이 성분이 면역계와 반응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되면서 미친듯이 가렵게 된다. 가렵다가도 따갑게 변하기도 하는데 산성액체가 피부에서 완전히 분사되지 않고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경우 그렇다고 한다. 긁거나 건드릴 경우 빠른 속도로 물집이 확대되며, 심하면 흉터가 생길 수 있다. 물론 물리면 약국에서 항히스타민제를 구매하거나 심할 경우 피부과에 가서 따로 치료제를 처방받아야 한다. 세티리진 같은 비수기성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가려움증이 진정된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나의 견해에 의하면 베드버그에 물리면 우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가려운 부위에 샤워기를 대고 뜨거운 물을 붓으면 처음에는 더 가렵다가 어느새 가려운 부위에 열이 끌어올라 가려움이 점차 시들해진다. 그리고 낮이 되면 운동을 하든 뭘하든 땀을 내서 피부 점막에 땀을 배출하면 독소가 땀과 함께 빠져나간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라. 그런식으로 3~4일 정도하면 대개 약 안 쓰고도 가려움증이 낫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무 베드가 아닌 철제 베드를 사용하자. 베드버그는 날개가 없어 날카로운 다리 축으로 나무나 천 조각에 붙어 이동하는데 철제의 경우, 미끄럽기 때문에 타고 올라가는게 불가능하다. 특히 유럽 여행하다가 베드버그에 물리거나 베드버그를 발견했을 경우, 옷가지들을 전부 비닐봉지에 밀봉해야 한다. 한 곳에 몰아넣지 말고 최대한 나눠 밀봉해야 한다. 그리고 50도를 넘는 뜨거운 물에 세탁을 하고 캐리어의 경우, 규조토, 살충제를 발라 방제하며서 뜨거운 태양볕에 수 시간 건조하는게 좋다. 가죽 배낭의 경우, 가방까지 통째로 드라이 클리닝을 맡기는 것이 좋고, 여의치 않다면 뜨거운 물로 세탁하고 건조기에 넣어 가방을 포함한 옷가지 모두를 세척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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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 파리와 영국에서는 베드버그와의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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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대한 역사학자로써 단상
- 필자는 역사학자로써 수많은 나라의 독립 기록들을 보고 연구한 사람이다. 그것이 고대가 되었던 중세가 되었던 근현대가 되었던 마찬가지다. 특히 구소련의 14개 국가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해 있는 독립국가연합의 동구권, 몽골 등의 국가들이 어떻게 독립했는지, 체첸이나, 쿠르드, 팔레스타인, 후티 같은 종족들이 왜 독립에 실패했고 혹은 미승인 국가로 남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인도권 국가들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역사학자로써 그 분야의 연구는 현재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진단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나는 그 안에서 독립을 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헌신들이 독립의 근원이 되었음을 알고 민족 자결권에 의한 자유와 독립을 얼마나 열망했으며 그 독립을 자랑스러워함을 잘 알고 있다. 그로 인한 희생과 헌신은 매우 고귀한 것이며 남의 나라 국민들이지만 그 숭고한 기록들을 읽고 내심 그 민족들을 존경한 적도 있다. 그만큼 한 나라에 정복되었다가 독립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 안에, 무력투쟁, 비폭력, 다른 강대국과의 외교적인 행위 등등 많은 노력들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그 어떤 독립운동의 행위든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나는 터키 동남부 지역을 답사하고 있었다. 특히 디야르바크르에서는 많은 수의 쿠르드족을 만났다. 이들은 독립하고 싶어했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 독립을 희망하는 지역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의 이해까지 같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즉, 석유 매장량이 중동에서 2위를 다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쿠르드족을 독립에 대한 지원을 해주고 독립시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여태까지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즉,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나, 현 시리아 정부, 러시아 등과 싸우는데 이용만 하고 이후에는 철저히 버렸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독립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서방은 쿠르드를 독립이라는 명제로 또 다시 이용하려 할 것이다. 나는 사실 쿠르드족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롭다는 느낌이 있다. 독립을 위해 100여 년 넘게 싸워왔는데 결국 3대에 걸쳐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편에 서기도 했고 서방과 미국의 편에 서기도 했으며 온건하게 터키와 시리아에 다가서서 협상하기도 했다. 그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독립은커녕 생존권을 보장도 못 받고 있다. 국제 관계, 국제 정치는 그처럼 냉혹한 것이다. 한국인처럼 선악구도로 침략받고 공격받는자가 불쌍하다며 눈물 흘려주는 나라는 없다. 자기 국가와 국민이 우선이라, 철저히 이해득실에 의한 계산들이 존재할 뿐이다. 지구상에서 힘 없는 나라는 힘 있는 국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연명해야 그나마 콩고물이라도 받아 먹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 그것이 국제 관계와 정치, 지정학의 본질이다. 문제는 그걸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갖는 사람들, 그 소수를 제외하고 만나본 적이 없다. 국제 관계와 정치, 지정학적 판단과 결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게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혹자는 대한민국의 독립이 외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원폭 두 방으로 미국이나 소련에 의해 우리가 독립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것이 역사고 팩트다. 이 독립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러나 숱한 국가들의 독립에 대한 과정을 지켜본 나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의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폭력 3.1운동이나 6.10 만세운동이든, 독립군들의 게릴라식 무장투쟁이든, 상해임시정부와 의열단 등의 활약은 훗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든, 독립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출이다. 미국에서는 이승만, 상해임정 등의 외교적 노력과 그 외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확고한 독립의 의지가 쌓이고 쌓여 미국이나 소련 측의 검토가 이루어지고 그러한 것들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가브릴로 프란치스의 총알 한 방이 세계대전을 불러왔지만 유고슬라비아의 독립과 통합, 티토 정부를 이끌어 낸 것, 그리고 프랑스 망명정부와 폴란드 망명정부의 나치 독일과의 게릴라적 투쟁, 호치민의 외교술과 디엔비엔푸의 승리 등이 각각의 독립을 이끌어 냈듯이 우리도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원폭 두 발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키주는 게 가능했을까? 독립을 하고자 하는 다양한 의지들이 쌓여 있었고 이를 검토한 것은 미국이다. 그리고 그 보증은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서주기도 했다. 여러 노력들이 있었기에 광복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선 항일투쟁이나 독립운동이라는 것에 있어 이를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그나마 우리는 그런 의지들이 반영이 되고 훌륭한 분들이 많았기에 대한민국 여권으로 189개국을 무비자로 돌아다니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지만 수많은 각고의 희생과 노력에도 국제사회에 인정을 못받아 지금도 미승인국, 혹은 독립을 못하고 디아스포라 민족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많은 보수우파들이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절하에 나서고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 또한 독립운동가였고 일본을 지독히 싫어하신 분이었다. 오죽하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과 맞붙는 홈 & 어웨이 방식, 일본 축구단이 한국에 발도 못 붙이게 강력히 반발하셨을까?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도 함께 평가절하 되는건데 건국절 주장하시며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자들은 이런 생각도 하면서 평가절하 하는 것일까? 근현대사에 있어 수많은 나라들이 서구열강의 지배에 벗어나기 위해 독립투쟁을 했다. 그 사이에 한국처럼 이데올로기에 빠져 좌편향 독립투쟁으로 빠지는 자들도 있고 민족주의 우편향 독립투쟁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국가 간 내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의 경우, 무식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았다. 한글과 한문 몇 자 겨우 깨친 홍범도 장군도 마찬가지고 제2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손에 꼽았다. 이들에게 있어 사상이 무엇인인지, 공산주의나 민주주의가 뭔지 알았겠는가? 독립운동 하신 분들 중, 대학 나온 인물이 몇이나 될까? 그 극소수인 분들은 공산주의 패악을 알았지만 그 외의 분들은 공산주의라는 것 자체가 뭔지나 알았을까? 역사는 그 시대에 무엇이든 눈높이를 맞춰서 봐야한다. 인터넷이라곤 전무한 시절, 우파 분들이 학교 다닐 돈도 없는 가난한 상태, 그리고 조선 민씨 일가 같은 자들에게 수탈만 당하고 있던 상태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공산주의가 뭔지 설득한다는 안 넘어갈 자신이 있을까? 절대로 그 부분은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 현재의 기준에서 판단한 결과론일 뿐이다. 최근 페이스북 보면서 답답함이 밀려오는데 몸과 마음, 머릿 속이 고단해진다. 이러면서 또 남의 나라 독립 투쟁사, 독립 과정들을 또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당시 그 때, 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피땀 흘려가며 투쟁하여 역사를 만들었는지, 그 과정들을 보고 나면 아무리 우리가 스스로 독립하지 못했다고 해도 갖은 행위들로 독립하고자 노력했던 그분들을 차마 욕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역사학자로써 그건 비난하기 어려운 숙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파들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 보는 위치에서 알아서 생각하는게 좋고 일일히 설득도 어렵다. 그래서 현 상황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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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대한 역사학자로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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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980년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에 대한 의미
- 1980년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들이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을 비롯하여 <북방 영토 문제의 해결 촉진에 관한 결의(北方領土問題の解決促進に関する決議)>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일본의 모든 도도부현 의회와 시정촌 의회, 전국지사회, 전국시의회의장회, 전국시장회, 전국정촌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결의가 채택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결의가 모아지는 것을 계기로 총무청에서는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을 검토하기로 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1980년 12월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에 대한 간담회가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게 된다. 간담회의의 결과에 대해 답신을 받은 일본 내각은 1981년 1월 6일에 열린 내각 회의에서 매년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정하는 안을 채택했다. 왜 2월 7일로 설정을 했냐면 가증스럽게도 1855년 2월 7일 에도 막부와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사이에 맺은 조약인 러일 화친 조약(露日和親條約)이 체결된 날이 그 날이기 때문이다. 화친(和親)이란, 국어사전적 의미로 볼 때 '서로 의좋게 지내는 정분', 혹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 이라도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친조약을 체결한 2월 7일을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로 지정한 것이다. 사실 이 가증스러운 행위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념한 날인데 일본은 오랫동안 잃어왔던 자국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의미로 지정한 것에서 그 의미가 맞지 않다고 보여진다. 친하게 지내자는 것은 평화와 우의를 동반하는 것인데 1981년부터 현재까지 41년 동안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지정하고 다양한 축제를 비롯해 행사를 거듭하여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평화와 우의의 상징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참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러시아, 일본 두 나라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양국은 식민지 개척 정책의 일환으로 사할린을 자국 영토라 주장하기 시작하며 마찰을 빚게 된다. 그러자 두 나라는 1855년 2월 7일 러일 화친 조약(露日和親條約)을 맺어 사할린을 공동으로 관할하는 구역으로 만들게 된다. 이어 187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사할린을, 일본이 쿠릴 열도를 차지함으로 합의를 보았다. 일본이 쿠릴열도가 자국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것을 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1941년 소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된다. 그러면서 안심하고 때린 것이 진주만이다. 이와 같이 양국 간에 불가침 조약이 있었지만 1945년, 소련은 얄타 회담의 결과에 따라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공격을 결정한다. 이로써 소일 불가침조약은 결국 파기되었고 만주 기습 작전으로 일본은 만주, 몽골, 조선 등의 식민지를 상실하게 된다. 소련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에도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양국은 계속 휴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이래, 대일외교가 전면적으로 수정된다. 1956년 흐루시초프는 소일 공동선언을 함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회복시켰고 일본은 소련과도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반공을 국시로 소련을 비롯한 모든 공산권 국가들을 차단했던 우리와는 심히 대조적이다. 그러나 공동선언 제9항에서 소련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평화 조약 체결 후 일본에 넘기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에 서명했다는 것에서 후일 북방 영토 분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정치적으로 일본은 소련을 사실상의 주적으로 규정해 소련군의 상륙을 대비해서 홋카이도에 전차를 집중적으로 배치했었지만 문화적, 경제적 교류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톨스토이나, 푸쉬킨, 도스토예프스끼, 막심 고리키 등의 작품들이 냉전 시대 때 일본에서 별다른 검열 없이 성행했었던 것도 문화 교류들이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후, 2000년대에는 일본이 북방영토 회복 문제를 제기했고, 러시아는 도쿄 근해에 폭격기를 근접 비행시키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북방 영토를 두고 일본과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우리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 일본과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등의 분쟁에 대해서 중국 편을 들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태도에 일본은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후에도 추가 제재를 단행하거나, 친러시아파 자산을 동결하고 독자 제재까지 검토하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두 나라의 사이는 골이 깊다. 2019년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에는 러시아가 일본의 태도를 보고 이틀 연속 일본 공해 근처까지 가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당시 한국은 반일 불매 운동 시기였는데 일본의 동해와 독도를 두고 벌인 신경전에서 러시아가 일본의 행위에 대해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군함들이 쿠릴열도 지역을 방문했다.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전몰 수병 추모 항해차원으로 쿠릴 열도와 하바로프스크 지역 등을 24일 동안 항해한다고 하는데, 이를 5년 동안 계속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는 실효지배(Effective control over territory) 강화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실효지배는 굉장히 중요한 외교적 용어다. 영유권을 두고 실제로 국가가 직접적인 컨트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자기 땅이라고 하든, 온갖 잡소리를 해도 조용히 무시해버리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실효지배하고 있는 측에게 항상 우위를 내줄 수밖에 없어 실효지배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뭐라 떠들든 신경쓸 바가 아니다. 쿠릴 열도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뭐라 떠들던 러시아는 신경 쓸 필요없이 일본의 도발에 대비해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고 실효 지배를 더욱 강화했다. 우리도 더 이상 말 나오지 않기 위해 일본이 뭐라 떠들던 상관없이 독도와 가까운 울릉도나 독도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면 깔끔하다. 그런데 2019년 2월 7일 일본 북방 영토의 날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는 다른 해의 북방 영토의 날 행사와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것은 키예프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쿠릴열도는 대일본의 영토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우크라이나 방송사가 중계 방송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러시아의 배후인 일본을 움직여 러시아를 자극시키고 여기에 분쟁이 벌어지면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장악하기 위해 군을 움직이려는 전략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부터 이를 염두해두고 일본과 손잡으려 했던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일본 내에도 우크라이나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데 러시아인 공동체의 일부를 이루는 경우도 있어 현재 일본 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의 주동이 되어 있다. 이들 네트워크들의 목소리는 일본의 넷우익 같은 극우단체와도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네트워크가 일본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이에 일본은 쿠릴 열도를 반환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도 이러한 일본에게 적극적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며 화답했다. 말 그대로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적극적인 친일 국가인 것이다. 이런 추세로 일본은 쿠릴 열도 뿐 아니라 독도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의 동의를 구할 것은 뻔한 일이다. 러시아는 로마노프 제국 시절부터 해군성 수로국이 팔라다 함대의 탐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1857년 '조선 동해안 지도'를 발간하여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공식 인정했다. 최근에도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하여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항의하자 러시아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영공 침범 안했다"고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같은 항의를 했던 일본한테는 철저히 무시로 일관했다. 이는 러시아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외로 독도가 한국 영토로 인식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독도를 다케시마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더 많다는게 해외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격이 되었다. 그런데 2년전까지만 해도 반일 불매운동 하던 한국 사람들은 이런 점에 있어 굉장히 무감각하디. 반일 불매운동에 열성적이었던 한국인들이 독도가 우리 영토라고 인정했던 러시아를 배격하고 친일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물론 침략은 어떠한 행위로도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와 일본 간의 깊숙한 관계, 북방 영토를 일본 영토로 인정하면 우리 독도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북한 미사일에 우크라이나 엔진이나 기술이 들어가 있다는 것, 등의 여러 문제를 고려해서 최소한 한국 사람들은 이 문제에서 감정적으로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보여 진다. 러시아와 관계는 푸틴과의 관계를 떠나서 매우 중요하다. 솔직히 러시아와 푸틴이 우리에게 잘못한게 뭐가 있나? 우리 기업들 기 살려주고 투자할 수 있게 해주고 한국 제품 마음껏 사줬지, 독도는 우리 땅 지지해줬지, 러시아 땅 어디든 무비자로 자유 여행할 수 있게 해줬지, 고려인들 위치도 많이 올려줬지, 도대체 러시아가 우리에게 뭘 더 잘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늘 고마움을 편중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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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980년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에 대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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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에서도 유태인 이주 플렌이 존재, 일본 제국이 추진한 유태인 이주 계획, 복어 계획(河豚計画)
- 1933년 나치와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독일 및 독일의 점령 지역에서는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다른 국가들로 이주하려 했다. 한편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은 1931년 만주를 침공하여 괴뢰국인 만주국을 수립한 이후, 만주 지역에 대한 개척을 위해 대규모의 인구 및 자본 유입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 때 유럽의 유태인들이 나치 독일의 학정을 피해 대거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일본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은 만주 지역에 유태인들을 이주시킴으로서 만주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고자 했다. 유태계 외국인, 특히 유태계 미국인들의 자본을 유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복어 계획(河豚計画)이다. 이에 대한 특이한 점으로 이 계획의 입안자들은 시온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의 내용을 믿으면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유태인 조직의 정보망 및 자금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따라서 이들은 유태인들에게 만주국이라는 도피처를 제공함으로써 유태계 인사들로부터 확실한 호의와 물질적인 지원을 약속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사실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으나 의외로 유태인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었다. 우선 일본은 동양 국가의 특성상 유태인과 역사적으로 접촉한 기간이 아주 짧았으며 일본 내에도 유태인 사회가 전무했기 때문에 일본 내 반유태주의가 횡행할 리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제국이 이미 러일전쟁 당시 유태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 제국은 러일전쟁의 전비 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했지만 동양 국가인 일본을 얕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당연히 일본 제국이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어느 누구도 일본 국채를 매입하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전비 고갈로 패배의 위기에 직면해 있던 일본 제국을 구원한 것이 거물 유태인 금융가인 제이콥 쉬프(Jacob Schiff, 1847~1920)였다. 쉬프는 포그롬으로 유태인을 탄압하여 유태인들의 적이었던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을 붕괴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전쟁하고 있던 일본의 국채를 매입했다. 이 때 쉬프는 러시아 제국에 대항해서 일어난 일본 제국은 하나님의 지팡이였다고 말하며 일본 제국을 찬양했다. 쉬프가 일본 국채를 매입하고 다른 유태인 금융가들에게도 일본 국채를 매입하도록 주선하여 일본의 전비를 조달해주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은 조선에서의 경쟁 세력인 러시아를 물리치며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로써 일본 제국은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거듭났으며 서구 국가들에게도 일본은 인정받게 되었다. 일본 제국이 열강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른바 유태인 금융자본의 도움을 크게 받은 것이다. 제이콥 쉬프의 도움을 받았던 일본 제국이 유태인 자본의 힘을 높게 평가하고 유태인들의 힘을 빌리려 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동하지 않았다. 이러한 복어계획을 입안한 사람은 일본 해군대좌 이누즈카 고레시게(犬塚惟重, 1890~ 1965) 이 외에도 야스에 노리히로(安江仙弘, 1888~ 1950) 육군 대좌, 히구치 기이치로(樋口季一郎, 1888~1970) 육군 대좌, 닛산(日産) 그룹의 전신인 닛산 콘체른의 총수인 아이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1880~1967) 등이다. 이들은 당시 일본 국내에서 유태인에 대한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이 외에도 전부터 만주 및 중국 침략을 주장하던 관동군 내 일부 인사가 여기에 참여하였다. 계획의 명칭인 복어는 생선 복어에서 따온 것으로, 계획 입안자 중 한 명인 이누즈카 제독의 연설에서 이 계획이 상당히 위험하긴 하지만 성공할 경우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며 이를 맛은 좋지만 비싸고 맹독을 지닌 복어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 복어 계획을 세운 입안자들은 동아시아 지역의 유태인 인사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유태인 자치구 건설을 위해 유태인 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하지만 복어 계획은 중대한 장애물을 만나게 되었다. 1936년 독일과 방공협정(Anti-Comintern Pact)을 맺는 등 독일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점점 돈독해지고 있었고, 유태인에 대한 옹호 정책은 독일과의 외교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요인 때문에 이를 심각히 고심하게 된 것이다. 1938년 일본 정부는 논의를 벌인 끝에 유태인 대책 요강이라는 합의문을 만들었는데, 이는 독일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유태인에 대한 배척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전제 하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합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현재 일본 및 만주 지역에 있는 유태인은 타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 ② 일본 및 만주에 입국하는 유태인에 대해서는 다른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출입국 규칙에 따라 조치할 것. ③ 적극적인 유태인들의 이민은 피하면서 기술이나 자본 유치 등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엔 허용할 것. 이와 같은 3개조의 합의문이 발표된 이후에도 소수이긴 하지만 유태인들을 일본 및 만주 지역으로 이주시키려는 움직임이 존재했다. 또 일본 주 리투아니아 영사인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 1900~1986) 등 나치에 맞서 유태인들을 구한 일본인들도 소수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1940년 추축국 동맹에 일본이 가입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더 이상 유럽의 유대인들을 이주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후 1942년 일본은 유태인들에 대한 이주에 대한 지원을 완전히 중지하고, 유태인 대책 요강을 무효화하게 된다. 독일 측에서는 상하이 등 일본 점령지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처리 할 것을 일본 측에 건의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게토에 유태인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선에서 끝냈다. 일본의 유태인 학살은 없었지만 게토의 거주 및 경제적 환경은 매우 열악해서 병으로 사망하거나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유태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45년 8월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복어 계획은 유태인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발상으로만 입안된 것은 아니다. 나치에게 유태인들이 박해받는 처지를 이용해 유태인들을 괴뢰국인 만주국의 경영에 이용하여 일본의 국익을 도모하려는 의도에 있었다. 물론 입안자들은 시온 의정서를 믿었기 때문에 유태인들의 경제적인 능력을 과대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 이주하기를 원하는 유태인들은 그들 특유의 금융 경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는 유태인들의 이주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원하던 일본 국내의 지지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계획은 실패로 종결되었다. 물론 이 계획은 당시 나치 독일의 심각한 박해를 받던 유태인들에게 비록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몇 안 되는 구원책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 등의 노력으로 인해 유태인들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중국 및 미국 등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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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에서도 유태인 이주 플렌이 존재, 일본 제국이 추진한 유태인 이주 계획, 복어 계획(河豚計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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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
- “예수믿고 구원받으라!” 지하철 서울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울역사를 올라갈 때마다 듣는 소리이다. 소음에 가깝다. 서울역사 앞에 확성기를 켜놓고 예수 믿으라고 떠드는 종교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그 광경이 신기해서 그 근처를 둘러보았다. 3곳이나 천막을 펼쳐놓고, 천막 안에는 테이블도 갖춰 놓고, 천막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춤추는 신도들도 있었다. 다행히 호객행위는 하지 않았다. 저들은 왜 저럴까? 내 눈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들의 행위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미소가 넘치기조차 한다. 그들 눈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내가 아픈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천막에 써놓은 글씨로 봐서는 예수 전도회, 천리교라는 단체로 보인다. 서울역사를 방문할 때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루는 지인과 함께 서울역사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지인이 말한다. “저 사람들 왜 저러는 거야? 매번 저러고 있어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렇게 열심히 예수를 찾으니 예수가 사는 천국에 가면 저 사람들은 분명히 큰 상을 받을 것 같아요.” 확성기를 통해 전달되는 말의 내용은 단순하다. “예수는 다시 이 땅에 오신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으라.” “천국의 백성이 되어라. 예수믿고, 구원받으라. 할렐루야!”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선교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왠지 모르게 사이비종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교의 자유는 인정하겠지만, 확성기의 소음은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관할 경찰서에 문의해 봤지만, 법적 권한이 없기에 자신들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한 반성이 없을 때 사이비가 탄생할 것이다. 자기 편향에 매몰되어 비판적으로 자기반성을 할 수 없기에 맹신이나 맹종의 싹이 움튼다. 사이비종교는 그런 토양에서 자란다. 저들이 믿는 하느님의 자리에 히틀러가 자리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저들은 현대판 나찌즘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는 아직도 나찌즘들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히틀러가 나찌즘은 만든 것이 아니고, 모래알처럼 흩어진 나약한 개인들이 나찌즘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의 모든 것은 나의 덕택이고, 나의 모든 것은 여러분의 덕택입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대중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과 히틀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 상호의존적인 관계였다. 전체주의는 그런 곳에서 탄생한다. 아렌트는 유럽 계급체계의 붕괴에서 나타난 대중적 인간의 고독한 심리적 상황에서 전체주의의 뿌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00여 년 전 유럽에서 전체주의가 탄생한 것은 국민을 국가에 묶어두었던 보이지 않는 끈들이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들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뿌리뽑힌 대중들이었다. 잉여존재였다. 그들은 그들의 공허함을 채워 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전체주의 운동은 그러한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오늘날 한국 땅에서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는 것도 그러한 운동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의 계급 붕괴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오늘날 현대는 계급의 붕괴가 아니라 정체성 혼란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끝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이다 보니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 그들이 설 수 있는 땅이 사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찾아오는 개인의 고독이나, 외로움, 그리고 불안이라는 감정이 맹신과 맹종을 낳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맹신이나 맹종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현상이다. 사이비와 정통의 기준이 참된 자기반성으로 본다면, 태극기부대는 왠지 모르게 사이비에 가깝다고 보인다. 그들의 집회에 성조기도 보이고, 이스라엘 국기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특히 정치적인 분야에서 사이비들이 많다. 민주당의 친문, 비문이나 친명, 비명이라는 구분도 일반 시민이 바라보기에 우습게 보인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건국전쟁>을 언급하면서 이승만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가에 의해 객관적인 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방적으로 이승만을 찬양하는 일부 역사가들도 있다. 그들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나 차이점이 무엇일까? 전체주의는 개인을 조직적으로 외롭게 만든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자기들끼리의 강한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강철의 끈으로 서로를 강하게 결속시킨다. 그곳에서는 생각의 자유를 누릴 공간이 없어진다. 그 속에서는 자유가 박탈당한다. 그들만 모를 뿐이다.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지만, 그들은 현실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기대어 설 땅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유하는 인간들이다. 전체주의는 과거의 역사적인 한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조건만 형성된다면 전체주의는 다시 탄생할 수 있다. 서울역 광장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선교하는 집단이 바로 전체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온다면 그들을 위하여 서울역 어느 한 곳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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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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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발다이 클럽 연설에서 나타난 한국의 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관한 경고의 의미
- 푸틴 대통령이 지난 발다이 클럽의 연설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 그 기본 입장에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폴란드와 방산 계약을 체결했고 무기는 폴란드로 인도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 결정했다는 이야긴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적 입장에서 압박하기 위해 이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 이런 무기 지원설이 나온 이유는 체코 일간지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Mladá fronta DNES)의 온라인 매체에서 보도 때문이다.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Mladá fronta DNES)는 영국의 가디언, 더 썬이나 미국의 타블로이드 종류급의 신문이 아니다.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Mladá fronta DNES)는 역사도 77년을 이어오고 있는 체코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져오고 있는 신문 중 하나다. 이 신문은 1945년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프라하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사회주의 청년동맹(Socialistického svazu mládeže)이라는 단체가 에드바르트 베네시(Edvard Beneš),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대통령의 후원을 받아 Mladá fronta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 선전용 언론으로 일간지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목적은 체코 청년들에게 체코 공산주의에 협력을 촉구하는 기관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제가 환란에 닥치고 언론사들이 부도나기 시작하면서 Mladá fronta 또한 프랑스 언론회사인 Socpresse에 매각되었다. 이후 독일의 RBDV 라는 회사에 재매각되었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라는 기업가가 2013년에 다시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신문사는 프라하의 중앙 뉴스룸과 14개의 지역 뉴스룸으로 구성되어 있고 편집장은 야로슬라브 프레슬(Jaroslav Plesl)로 한 때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언론인으로 그가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Mladá fronta DNES)를 담당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신문사가 체코 각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결코 가벼이 볼 수 있는 신문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매체에서 지난 9월 29일 기사로 "Tajný obchod. Korejské zbraně za 75 miliard zamíří na Ukrajinu přes Česko (비밀 거래. 750억 상당 한국 무기, 체코 경유 우크라이나로 간다)라고 되어 있다. 이 750억이 체코 화폐인 코루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매체의 말로는 "동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으며 공격받은 국가는 반격을 위한 새로운 무기 공급이 필요하다. 체코는 현재 완성되고 있는 것 중, 큰 사업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인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려는 계획이 합의되었다."라고 발표하면서 "한국 무기가 체코를 경유해서 우크라이나로 갈 것이며 미국이 이 비용을 지급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으로 방공무기를 서방에 요구해왔다. 이들은 주로 헬리콥터와 같은 저공비행에 방어할 수 있는 방어망 구축을 원했다. 게다가 계속 이란제 드론으로 폭격받고 있으니 이를 방어할 수 있는 대공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기로는 우리의 현궁과 신궁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에 대한 도입을 원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본 매체도 미국이 지대공 미사일 등 30억 달러 상당의 한국산 무기를 구매해 체코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10월 1일에 보도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러시아가 문제 삼는 것은 그동안 한국과 잘 지내왔는데 왜 이런 문제에 한국이 관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어찌 되건 한국 국익과는 별 상관이 없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있는 한국 기업보다 러시아에 들어가 있는 한국 기업이 훨씬 많고 교민들 숫자도 비교 불가의 수준이다. 러시아와 한국과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한국은 사면초가에 몰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건 에너지 문제다. 중국과 대만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중동에서부터 들어오는 석유와 가스가 일시적으로 차단될 문제가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유럽보다 더한 에너지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유지하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도 언제든 회복할 가능성도 남겨놔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이 매우 중요한 현실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주거하는 교민이나 기업들, 유학생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으며 이미 비우호국가로 찍힌 이상 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 지내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만약 체코를 통해 우회적으로 모종의 밀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에 있는 모든 한국인, 기업들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체코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 같은 보도가 나오고 있는 문제라면 겉으로는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을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라 했던 것은 거짓말이 된다. 이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비무기체계와 인도적 지원만을 시행해 왔다고 하지만 뒤에서 모종의 거래로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하려 한다는 얘기이니 이것은 최악의 상황이나 진배없다. 러시아의 정보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따위 모종의 밀거래 정도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다. 체코군의 무장을 위해 무기 수출이라면 정당한 국익의 문제로 특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에 모종의 밀거래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우회적으로 무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면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수출한 무기가 어떻게 사용되는가는 우리의 관심 밖이다. 하지만 국제 정세 속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러시아를 제재하고 반러주의를 표방하게 되며 고립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현재 아시아에서 우크라이나 편들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대만, 싱카포르 정도이다. 대부분은 중립, 아니면 중동과 같이 러시아에 넘어간 상황이라 좀 더 포괄적이고 냉철하게 국익을 위해 따져야 하는 시간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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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발다이 클럽 연설에서 나타난 한국의 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관한 경고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