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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물어 가는 2025년의 마지막 즈음, 2026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2025년 말 세계는 전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불안정한 국면에 놓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중동과 동북아에서도 긴장이 누적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식 거래외교로 유럽과 거리를 두며 변수가 되고, 중국은 유연한 이중전략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 유럽은 분열과 재무장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은 외교 복원에 성과를 냈지만 남북관계는 정체돼 있다. 국제정치는 가치보다 이익이 우선되는 선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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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1
  • 자유의 위기와 자기 진실성의 윤리
    본 글은 서구 자유주의의 역사적 흐름과 한국 사회에서의 왜곡된 이해를 짚어보고, 현대 자유주의가 직면한 이기적 개인주의와 양극화의 문제를 비판합니다. 저자는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사회』를 통해 개인주의 팽배, 도구적 이성의 지배,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세 가지 불안을 진단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기 진실성(본래성)의 윤리'를 제시하며, 인간이 고립된 존재가 아닌 타인과의 연대 및 '존재의 거대한 고리'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상호 인정과 공정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파편화와 배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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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2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 이후 국제정세
    2025년 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세 속에 평화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영토 문제와 병력 제한 등 핵심 쟁점으로 진전은 더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나토 가입 유보안을 제시했고, 마이애미 실무 협상이 향후 전개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럽의 무기력함 속에 동아시아는 중국-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며, 한국은 북러 밀착과 미중 갈등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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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훗날 문제 삼을 가능성 높은 러시아 지배하의 쿠릴열도
    러시아가 쿠릴열도 남단 이투루프·쿠나시르 섬을 대규모 군사도시로 개발하며 러일 영토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해 일본은 여전히 4개 북방도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경제특구 지정과 군사기지 조성으로 실효 지배를 강화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국내 정치 결속과 외교 전략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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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0
  • 프랑스 마린 르펜의 체포와 피선거권 박탈의 적법성
    프랑스 대법원이 마린 르펜에게 징역 4년(2년 집행유예)과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하면서 2027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졌다. 르펜은 EU 자금 횡령과 보좌진 허위 고용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 관할과 형법 적용의 적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영향이 작용했다는 ‘정치 보복’ 의혹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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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9
  • 트럼프의 관세율 인상에 따른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의 현황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 10% 이상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는 46%, 캄보디아 49%, 태국 36% 등 동남아 주요국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중국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라벨갈이’ 수출을 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베트남은 이에 나이키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동남아의 미중 균형과 인도·태평양 전략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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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8

실시간 Nova Topos 기사

  •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에서 회담을 주목하며
    북한을 떠나 20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일정을 가졌다. 야쿠츠크-평양-하노이로 이어지는 일정은 다른 국가 정상이었다면 피곤할 수도 있는 일정이다. 미국 바이든 같으면 그런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 푸틴이 암에 걸렸다. 혹은,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등 와병설이나 위독설이 제기되었지만 그런 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고도 암에 걸렸다. 혹은,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등 와병설이나 위독설 등은 전 세계 뉴스 찌라시들의 헛소리이자 희망 사항으로 밝혀졌다. 이번 베트남 방문 또한 북한 방문에 이어 또 다른 의미의 방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1. 지정학적 외교적인 부분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현재까지 좋은 관계다. 그러나 상호 간에 그리 미덥지 못한 관계인 것은 맞다. 최근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손상된 노르드스트림1 송유관과 거의 같은 양인 연간 500억 입방미터(bcm)의 가스를 러시아 북부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운반할 새로운 가스관을 건설하기 위해 협의해 왔다. 그런데 이 공사가 현재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주요 세부 사항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시베리아의-2 전력을 운영하게 될 가즈프롬은 2030년까지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을 포함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합의는 아주 요원한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 측은 여전히 계산과 추정을 하고 있고 경제적 이익에 대해 합의가 신통치 않다. 후문에는 중국이 가스값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기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후려친 가격으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겉으로 큰 부분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좋은 협력관계로 보이지만 세부적인 면으로 볼 때,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미 삐걱거리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도 있기에 정치, 외교적으로 겉으로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지만 사실상 세부적으로 볼 때 서로 아직까지 완전히 믿지 못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중국이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완전히 지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단서방, 미국 등과 맞서기 위해 상호 간의 친밀감을 과시하며 견제하는 용도일 뿐이다. 이를 서로 간에 경제적으로 러시아가 먼저 들어가면 중국이 따라 들어오고 중국이 먼저 들어가면 러시아가 따라 들어오는 스텐스를 취하며 저마다 국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라 볼 수 있겠는데 당사자들끼리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속으로 서로 견제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국제 관계의 속성상, 중국을 외교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베트남이라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기 위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둘 다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여차하면 중국을 지렛대로도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베트남은 서로 국민 감정도 좋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중국이 베트남의 적성 국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북한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에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였지만 때에 따라서 서로 견제하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파트너로 맞아 들인 부분도 있다. 최근 베트남에는 화교 집단들의 세력이 커지며 당 중앙에까지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부정부패 사건을 터뜨려 이를 계기로 숙청을 단행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 국가 주석인 보 반 트엉이 푸 쫑 서기장에게 숙청을 당했는데 이는 명목상 부정부패였으나 실질적으로 베트남 남부 지역 화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보 반 트엉은 호치민과 남부 지역 화교들이 경제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며 남부 지역의 주축으로 자리 잡아갈 때 화교에 대한 권익을 많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친중적 성향을 갖게 된 배경이 있다. 따라서 푸 쫑은 이를 적극 견제에 나서 보 반 트엉을 실각시키고 외부적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친중파 각료들과 화교 집단, 이들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도 있다. 그런 의미로 베트남은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하는 UN의 결의안 투표에서 여러 번 기권을 택했다. 심지어는 러시아에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베트남은 모두와 친구로 지내되 공식적인 동맹은 맺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은 과거 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국과도 협력하고 러시아와도 동시에 우방관계를 유지 중에 있다. 이는 모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특히 스프래틀리 군도 분쟁과 파라셀 군도(Paracel Islands) 영토 분쟁은 베트남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보다는 러시아를 통해 대화의 창구 및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베트남은 지정학적, 혹은 외교적인 부분에서 상호 지렛대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하노이 방문함으로써 이를 공고히 하려는 이유가 크다. 그리고 러시아는 베트남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약화시키려는 부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전술, 전략으로 북한과 베트남을 써먹을 수 있다는 것에서 푸틴 대통령 지정학적인 전략을 잘 구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경제적인 부분 오늘날 베트남의 경제는 세계 시장에 통합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베트남의 대러 무역 규모는 중국, 아시아, 미국,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적은 편이다. 이는 거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90~2000년대에 러시아 경제가 파탄 상태에서 서서히 끌어 올라오는 시기였기에 양국 경제적인 부분에서 협력은 그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베트남 또한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를 받아 축적하는 것을 늘리고 남중국해 석유 탐사에서 러시아 석유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합의했다. 더불어 사할린 에너지의 안드레이 오호트킨 이사가 밝히길 사할린-2에서 생산하는 LNG 수출 지역을 베트남을 거쳐 인도까지 늘린다고 했다. 게다가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1981년 소련의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례가 있기에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손수 챙겨왔었고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 그룹 창업자 팜 냣 브엉(Phạm Nhật Vượng) 회장 역시 러시아 유학생 출신이다. 이러한 인연들로 인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강화 및 확대는 푸틴 대통령의 하노이 방문으로 인해 대폭 이루어질 전망이다. 더불어 베트남 또한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 전력량 사용이 급증하고 있고 최대 300% 이상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베트남의 경우, 한국과 달리 납부기한을 초과하는 즉시 얄짤없이 전기가 끊긴다. 베트남의 시골에는 이유 없이 전기가 나가 1시간 가까이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도시의 경우,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아니고는 발생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호치민의 경우, 간간히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마도 그것은 발전 용량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을 내 전기를 수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전반적으로 전기 수급이 원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남부 지방에는 메콩델타 최대 발전사업으로 현재 베트남전력공사(EVN)와 싱가포르 회사가 협정을 맺어 발전단지를 만들고 있지만 이 또한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원전을 짓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원전 기업인 로사톰(Росатом)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에 원자력 과학기술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 원전 기술 제공을 도울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원전에 대해 러시아의 도움을 받는다면 고질적인 베트남의 전력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북극항로와의 연결점이다. 최근 러시아가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동방경제포럼 때 이러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북극항로에 있어 동해와 동남아시아 사이를 연결해주는 대각선 정점에 부산이 위치해 있고 러시아는 이런 형식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고 싶어한다.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이자 그 종심적 역할을 베트남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을 통해 인도네시아까지 나아갈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요충지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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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2
  • 2022년 카라칼팍스탄 시위의 배경과 현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고민
    카라칼팍스탄은 우즈베키스탄 서부 지역에 위치한 자치공화국으로 주로 카라칼팍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우즈베크어보다 카자흐어에 더 가깝지만, 장시간 동안 우즈베키스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볼 때 우즈베크인과 더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크기에 비해, 카라칼팍인은 우즈베키스탄 인구의 2.2% 정도이며 약 75만 2천 명밖에 되지 않는 인구다. 역사적으로 카라칼팍스탄의 영토는 여러 제국에 소속됨을 반복하다가, 17세기 히바 칸국에 소속된 유목 민족과의 연합으로 현재와 비슷한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카라칼팍인들은 카자흐인과 문화적인 교류를 했으며 언어도 카자흐어와 비슷한 킵차크 투르크어계에 속하며 오구즈 투르크계 언어를 가진 우즈베크인과 다른 언어를 형성하였지만 같은 투르크계 언어로써 볼 때 큰 차이는 없다. 소련의 수립을 거치며, 스탈린 집권 시대의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소련 초기에 파악한 인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주의 지도층이 참여한 지역 공산주의 기구의 주도로 공화국 간 경계를 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에 여러 지역에서 다중 언어 사용이 가능한 인구가 많고 스스로를 여러 국가의 소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환경에서 새로운 경계가 형성되자, 언어와 인종으로 나누었던 경계는 도시와 농촌을 정치적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1925년 카라칼팍 자치주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 소속으로 설립되었고,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1932년에는 카라칼팍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되었으며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완전히 병합되었으나 자치권은 그대로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 갈등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1990년 12월 뻬레스뜨로이까 도중 카라칼팍 최고 평의회에서 밝히기를, 소련으로부터 한 '국가 자주 선언'을 통해, 주민 투표를 거쳐 독립할 수 있음을 선언하게 된다. 이후 실패한 8월 쿠데타 직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도 독립을 선포하였으며, 이 당시 카라칼팍스탄은 소련 중앙정부에서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1991년 11월 최고 평의회의 결정에 따라 평의회 의장인 다울레트바이 샴셰토프(Даулетбай Шамшетов)가 카라칼팍스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992년 6월,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영수인 카리모프가 강제 권고하여 사퇴할 때까지 대통령으로써 직무를 수행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인 1992년 1월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92년 우즈베키스탄에 헌법이 도입됨과 더불어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자치공화국으로 복속되었다. 1993년에는 20년 간 지속되는 카라칼팍스탄의 우즈베키스탄 합병 조약을 논의하며, 주민투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당시 조약에는 국민 투표로 우즈베키스탄을 탈퇴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헌법 17장 74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헌법 제71조에는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은 독자적인 헌법을 가지며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의 헌법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헌법과 배치될 수 없다고도 명시되어 있다. 이쯤되면 독립하는게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합병조약의 시효가 만료됐음에도 카라칼팍스탄의 자주권 증대 및 독립 요구 등은 우즈베키스탄 당국의 동화 전략과 이주 정책 등으로 인해 유무형적인 탄압으로 묵살되고 있다. 약속된 20년 째 되던 2013년에 이 조약이 만료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탄압으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독립의 기운이 말라가며 조약이 만료된지 10년이 다 되어가던 2022년 6월 말,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 미르지요예프는 우즈베키스탄 헌법에 대해 170가지 수정안을 제시해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하였다. 당시 수정안 중 대표적인 논란 사항은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임기 횟수 제한을 없애는 것이 주 내용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라칼팍스탄의 자치권을 상당수 소멸시키고 주민투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삭제해버린 것이다. 이에 7월 1일, 카라칼팍스탄의 수도 누쿠스에서 헌법 개정 안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한다. 이는 카라칼팍스탄의 변호사이자 기자인 다울렛무라트 타지무라토프(Даулетмурат Тажимуратов)가 누쿠스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체포된 것이 시위가 촉발된 원인이었다. 시위 다음 날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카라칼팍스탄의 자치권과 관련된 헌법 개정안을 취하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카라칼팍스탄 정부는 시위대가 정부 건물에 무단으로 진입하려 시도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인터넷 접속이 완전히 차단되었고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7월 4일에는 정치인 풀라트 아후노프(Пулат Ахнов)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비상사태 선언과 통금령 개시를 통해 상황이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나, 이 시위가 우즈베크인과 카라칼팍인 간의 민족 분쟁으로 격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틀 전, 주말에 미르지요예프는 카라칼팍스탄을 두 차례 방문하여 카라칼팍스탄의 친 정부파 인물들을 만나 헌법 개정 안에 대한 대중의 반대를 미리 파악하여 전달하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그리고 7월 4일 열린 카라칼팍스탄 대리인과의 회담 이후, 미르지요예프는 시위대 지도층이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 정부 건물을 탈취하려고 시도했다면서, 사람 수가 많은 것을 이점으로 삼아, 사법부 소속 인물들을 공격해 심한 폭행으로 상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르지요예프의 언급에 따르면, EU 정상회의 대표 샤를 미셸과 시위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위한 회담을 열었으며, 여기서도 폭력 사태의 책임을 범죄 조직에게 돌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시위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민간인과 경찰 모두에게서 사상자가 나온 점을 인정하였으며,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파괴적인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풀라트 아후노프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최소 5명이 사망했다고 사망자수를 고의적으로 축소하기도 했다. 카라칼팍스탄 보건부 장관 술탄베그 지야예프(Султанбег Зияев)는 누쿠스의 병원이 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을 입은 시위대로 넘쳐났으며, 수천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7월 4일 우즈베키스탄 대검찰청은 누쿠스에서 18명이 쥭고 24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하였으나, 반대 측은 이 수치가 실제로는 더 높다고 밝혔다. 이후 7월 18일 검찰청은 병원에서 3명이 더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우즈베키스탄 방위군 대변인 다브론 주마나자로프(Даврон Зуманазаров)는 7월 1일부터 2일까지 516명이 구금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누쿠스(Nukus)를 방문하여 카라칼팍스탄 대표단에 사과했으며, 개헌 과정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자 시위는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이후부터 우즈베키스탄의 통제력이 갑자기 강화되었다. 그 전까지 외국인 체류자들에 대해 완화된 거주등록이 갑자기 3일 안에 반드시 거주등록을 해야 하는 것으로 강화되었고 거주등록증을 여권과 함께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유심 카드에 대해서도 IMEI를 강화해 반드시 휴대폰 기기 등록을 해야 하며 IMEI를 등록하지 않고는 아무리 심카드를 끼워도 통화와 인터넷 이용이 불가능하도록 설정했다. 그리고 2016년 이전 전임 대통령인 이슬람 카리모프 때처럼 타슈켄트 시내에 경찰들이 대폭 늘어났다. 물론 카리모프 때처럼 100m에 경찰 한 명씩 여권과 소지품 검사를 하는 등의 검문을 강화하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시위와 선동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특히 7월 9일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치뤄지기 때문에 보안을 강화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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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 PKK와 다른 성향의 쿠르드인, 반(Van) 쿠르드계 사람들
    나는 반 100주년 기념 대학에서 쿠르드족에 대한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현 터키와 쿠르디스탄의 관계, 그리고 쿠르디스탄 내의 분파들과 사람들을 고찰해보았다. 흔히 터키 동부와 동남부 지역의 대부분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인들은 모두 같은 종족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우선 이들 모두 같은 쿠르드족인 것은 맞다. 그래서 반은 맞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다르다. 터키 동남부는 가지안테프-샨리우르파-마르딘-바트만-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쿠르드족은 비교적 억센 편에 속하며 터키 정부에 저항적이다. 그리고 매번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어 터키 정부와 터키 국민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 그러나 반 호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반 지역, 그리고 반 동북부 이디르 지역이나 카르스, 그리고 일부 이란 접경 지역 쿠르드인들은 터키 정부에 협조적이고 동남부 북쿠르디스탄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독립보다는 터키인과 함께 살기를 원하며 기질은 매우 순박하고 선(善)하다. 필자가 반(Van)에 거의 일주일을 머물고 있는데 확실히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쿠르드족과는 성향이 다르다.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한 쿠르드족은 PKK의 모태 부족이기 때문에 터키 정부와 시리아, 이라크 정부에는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16년 쿠르드족 부족 대표자들은 반(Van)에 모였다. 이들은 PKK를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그러나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는 쿠르드 부족 대표들은 이에 반발했다. 이들은 현재 감옥에 있는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의 석방을 요구하며 터키 정부에 저항하려 했고 반(Van)에서 발표된 성명을 비난하여 터키와 같은 청소해야 할 자들이라 비난했다. PKK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테러리스트들을 이용해 2016년 8월, 반(Van)의 이키 니산(İki Nisan) 지역 경찰서에 차량 폭탄 테러를 일으켜 3명의 사망자와 71명의 부상자를 나오게 했다. 그런데 이 때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이 같은 쿠르드인들이었다. 문제는 당시에 사망자 중 2명이 쿠르디스탄 자유의 매(Teyrêbazên Azadiya Kurdistan, TAK)라고 부르는 과격 분자 요원이었다는 것이다. TAK은 원래 PKK 소속이었지만 2010년 당시, 터키 정부의 PKK의 휴전 협상에 반발하여 탈퇴하고 만든 터키 정부에 대한 저항 조직이었고 조직원들 대부분이 마르딘과 햑카리 출신이었다. 결국 PKK의 반(Van) 테러는 건들지 말아야 할 엄청난 조직을 건든 셈이 되었다. TAK는 PKK를 기습 공격하면서 저항 조직 간에 내전이 발발했다. 햑카리에서 벌어진 이 내전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터키는 햑카리의 안정을 위해 군을 투입해 이 둘을 제압했지만 둘의 사이는 현재까지도 진전을 보이지 않은 채 서로 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반(Van)의 쿠르드계 또한 이 두 조직 모두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쿠르드족 사회의 대중적 지지와 쿠르드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성이 누구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여러모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PKK와 터키 정부는 오랜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내전 수준의 대치 상태에 있었다. 실질적으로 쿠르드 공동체 지도자들은 당연히 터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봐야할 수 밖에 없다. 반면 현재의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alkların Demokratik Partisi)과 거의 매 선거마다 강제 해산 되면서 이합집산이 반복되었던, PKK, 그러면서 좌파 쿠르드 민족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하고 터키 당국에서 항상 인민민주당의 2중대로 여겨졌던 인민노동당(HEP), 민주사회당(DTP)과 같은 쿠르드계 좌파 정당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전국적으로 5% 이상의 득표율을 유지해 적어도 터키 내 쿠르디스탄 지역인 동남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다른 정당들과 다르게 우세를 유지해왔다. 이를 고려해 볼 때, PKK가 터키 내 쿠르드 공동체 모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이미지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차원의 지지가 전혀 없다거나 미약하다는 것 또한 잘못된 인식이다. 특히 PKK가 활동하는 지역들은 쿠르드인들의 빈곤율과 실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들이고 터키 정부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게다가 환장할 일인 것은 미국이나 집단서방이 국제 인권을 터키에 강요하는 바람에 시리아 난민들이 쿠르디스탄 지역까지 들어와 있으며 그 숫자는 날로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에 PKK나 TAK 또한 조직원들을 늘리기 위해 시리아 난민들을 채용하여 훈련시키고 있다. 이들의 용도는 바로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되거나 터키 군경 최일선 선봉으로 내세워 총알받이 시키고 있다. 이들을 총알받이, 혹은 자살폭탄테러에 이용하는 것은 간단하다. 시리아 난민 가족의 처우와 이들을 조직이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거액의 금액을 아낌 없이 나눠준다. 물론 이 거액의 금액들 또한 미국이나 집단서방이 PKK가 자신들의 말을 안 듣는 터키 정부의 소요 사태를 만들기 위해 지원하는 지원금으로 추정된다. PKK와 집단서방과의 관계는 검색만해도 우후죽순으로 나오니 그다지 놀라운 얘기도 아니다. 그리고 현재 터키도 내부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미국이 갖은 제재로 하고 있어 리라화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동남부 지역 쿠르드인들에게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터키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청년층은 PKK를 포함한 쿠르드 무장단체를 경멸하여 반(Van)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동남부 쿠르드계 청년들에게 터키 정부는 확실한 대우와 더불어 일자리도 알선해 주는 등 갖은 편의를 주고 있다. 이 같은 터키 정부의 노력은 PKK 조직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PKK 조직원들이 빠르게 대원들을 수혈하지 않으면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 쿠르드 청년들의 지원이 줄어드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리아 난민들을 고용해 테러리스트로 키울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따라서 터키는 최근 반(Van) 지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낙후된 도시를 현대화하는 방식이다. 현재 반(Van) 시가지는 완전히 현대화 됐다. 가지안테프나 샨리우르파, 디야르바크르에 비하면 대형 쇼핑몰들이 운집했다. 그리고 각종 현대화된 시설들이 들어서니 낙후한 동남부 지역의 쿠르드계 청년층들이 대거 반(Van)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반의 쿠르드계는 PKK를 매우 경멸하고 있다. 반 쿠르드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PKK는 태생부터가 비합법적 반군 단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평화로운 동부 지역을 피로 물들게 만든 원흉 단체로 보고 있다. 이들은 PKK 지도자로써 감옥에 있는 압둘라 외잘란을 왜 사형에 처하지 않고 있는지 불만이라고 했다. 반 쿠르드계 사람들은 PKK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의 평화로운 삶에 피해를 주는 자들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쿠르드족이 있기에 모든 쿠르드인들이 터키의 적이며 테러리스트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는 에르도안 현 터키 대통령도 "터키의 적은 PKK 쿠르드족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도 일반 쿠르드족과 PKK를 구분해서 보는 것도 필요하다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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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 보살과 위버멘쉬
    니체와 불교에 관한 글을 읽다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 있나? 한 게임 하자!” 나는 그 친구의 제안에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무한한 긍정이다. 읽던 책을 덮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 친구와 만나면 하는 일이 항상 동일하다. 당구 게임으로 승부를 가리고 지는 사람이 술 한잔 사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졌다. 늦은 점심과 함께 소주 각 일병씩 마셨다. 술안주로 각자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회복지사로 활동 중인 친구의 이야기는 이렇다. 재산이 무척 많은 90대의 어르신이 몸이 불편해서 재가 복지 서비스를 받는데, 자신을 돕기 위해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에게 안 줘도 될 돈을 준다고 한다. 그분의 생각은 이렇다. “저 사람이 부유하지도 않을 텐데 나를 위해 저렇게 봉사를 하니 내가 당연히 보상해야지!” 부자도 저런 부자가 많은 사회라면 그들을 귀족으로 대우해주는 귀족사회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니체를 읽고 있어서 든 생각이었다. 니체는 귀족주의를 강조했다. 니체는 동정을 부정했지만, 이런 이야기도 했다. “고귀한 인간도 역시 불행한 자를 돕기도 하지만, 그것은 연민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넘쳐흐르는 힘이 낳은 충동 때문이다.” 그 어르신도 분명히 넘쳐흐르는 힘에 의한 충동으로 자신을 돕는 요양보호사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지급했을 것이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가 그 어르신과 같이 자기 자신의 충만한 힘을 바탕으로 삶을 긍정하는 자세라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귀족주의의 역시 저런 유형의 귀족이라면,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니체는 평등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주 한잔하면서 친구에게 털어놓은 나의 고민도 그 부분이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니체가 강조하는 힘에의 의지와 삶을 긍정하는 니체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수용할 수 있는데, 평등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난하고 대중을 경멸한 부분, 그리고 위계적 질서를 강조하는 니체의 귀족주의는 니체의 해석에 아직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논란이 되는 부분을 니체의 전체 사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현대에서도 수용가능한 하나의 줄기로 풀어내야 하는데, 아직도 그 실타래를 풀지 못한 것이 나의 고민이다. 하지만 사실은 고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즐기고 있기 떄문이다. 아모르 파티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한다. 그리고 즐긴다. 물론 니체 전공한 학자들이 니체의 귀족주의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힘을 야만적으로 발휘하는 착취적인 영웅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극복을 해나가는 고차적인 도덕적 인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는 한다. 또한 나의 은사이기도 하며, 독일에서 니체를 전공한 1세대 니체 전공자라고 불리우는 정동호 선생님은 “니체가 평등을 거부하고 엘리트 산출을 위한 인간 사육을 획책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가 거부한 것은 인간을 퇴화시키는 계량화된 평등이었으며 인간 사육 역시 인류 전체의 양육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니체는 인류의 정신적 치료사라는 이야기이다. 나의 지인인 우희종 선생님은 언젠가 나에게 물었다. “이 선생님은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습니까?” 그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한 내 마음을 전했다. “대학 때 계속 공부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석박사과정을 밟지 못했습니다.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을 60이 넘은 나이에 실현해 보려고 책을 읽습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학부 4년 동안 여러 교수님에게 교육받은 노트를 아직도 보관 중인데 얼마 전에 풀어헤쳐 보았다. 두꺼운 대학 노트 12권에 작은 글씨로 빽빽이 적어 놓은 노트를 펼쳐보니 놀라웠다. “이런 수업도 들었나?” 특히 한문과 수학 기호로 가득한 한국철학과 기호논리학 노트는 외계인의 글씨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러한 수업 모두 A학점을 받았다. 4.0만점에 나의 졸업 평균 학점은 3.8점 이상이다. 그러니 한때는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했다는 말이 된다. 내가 니체와 불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미래의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립하고 싶어서이다. 불교, 특히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은 보살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누구나 보살이 될 수 있다. 니체에게 있어서도 인간은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이다. 니체에게 있어서 미래의 인간상은 위버멘쉬이다. 니체는 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동양의 불교를 기독교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하면서 신의 빈자리에 위버멘쉬를 두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보살과 위버멘쉬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니체는 대승불교에 관한 지식은 없었을 것이다. 니체가 알고 있었는 불교는 초기불교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읽었던 나의 짧은 독서로서는 그렇다. 지금까지 독서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무량심은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과 미혹을 없애주기 위해 보살이 가지는 자, 비, 희, 사의 4가지 무량심을 의미한다. 불교는 연기설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체계이기에 관계 중심적인 세계관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하기에 불교의 중심은 자비를 통한 중생의 구제이다. 이는 분명히 파리떼나 무리 군중이라는 비유로 대중을 비하는 니체의 사유와는 다른 부분이다. 니체는 위버멘쉬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가능성의 존재이고, 위버멘쉬로 나아가야 하는 도상의 존재이다. 위버멘쉬는 니체 사상의 핵심인 힘에의 의지를 바탕으로 영원회귀라는 운명을 사랑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삶에 대한 긍정과 우주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통하여 세계와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살과 위버멘쉬의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가 강조하는 자비와 니체가 강조하는 힘에의 의지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건널 수 없는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나는 내일 또 다시 니체와 불교에 관한 책을 읽을 것이다. 새벽 두 시의 상현달이 창밖에서 나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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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0
  • 러시아-북한 회담 '포괄적 전략 동반자'의 의미
    김정은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어제 있던 19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는 매우 급격한 관계 격상으로 보이는데 이를 동맹으로 의미하면 안 되고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러시아와 한국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체결되어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9월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여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하여 올해 1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포괄적 전략 동반자"의 의미는 "상호 보존 원칙"에 의거한 것이다. 2000년 '선린 우호 관계'를 맺은 이후, 이 관계를 약간 격상한 것 뿐이다. 더불어 동맹의 전 단계로 만들면서 어느 누구도 동맹을 만들지 않고 선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는 북한만이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몽골, 베트남, 아르헨티나, 우즈베키스탄과 맺고 있기에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이들 나라 수준으로 끌어 올려준 것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오늘 푸틴 대통령은 같은 포괄적 전략 동반 국가인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이러한 협력 관계 명칭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외교 전문가들의 견해에 나는 동의한다. 모처럼만에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포괄적(Всесторонний)"이라는 수식어에 군사 뿐 아니라, 경제, 무역, 외교, 우주항공 등 전방위적인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어제 포스팅에 두만강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안보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분명히 여기에 "양자 간에 침공을 당했을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침공을 당했을 경우, 유사시에 러시아군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즈베스띠야에 따르면 "В частности, соглашение подразумевает оказание взаимной помощи в случае агрессии против одного из участников, при этом оно носит оборонительный характер. (이 합의는 참가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이 발생할 경우 상호 지원 제공을 의미하지만 방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라고 했다. 즉, 북한이나 러시아가 침공을 받는 경우에만 작동되는 협정이다. 따라서 북한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을 때,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해도 아무런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반대로 북한의 안보가 위협을 받으면 러시아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북한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상호 안보 형식으로 국방을 강화하고 수성하는 측면에서 안전을 보장 받았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김정은이 전략을 잘 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꾸 소요사태를 일으키려는 미국, 그리고 대북방송과 삐라를 북으로 보내며 도발하는 한국으로부터 러시아라는 강력한 뒷배를 둠으로써 전략적으로 수성을 더욱 견고화시켰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어 있는데 북한이 선제 공격했을 때, 러시아가 돕는다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협정에 넣지 않은 것은 우리 대한민국과의 관계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일 러시아는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복원될 때, 양국 간의 파트너쉽으로 인해 남북통일에도 전략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만약 대한민국이 여전히 러시아에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 문제에 조금 더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 된 것이고 큰 구도로 보자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이 러시아에 의해 상호 대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그 전에까지만 해도 간접적으로 러시아에게 경고도 하고 압박을 주면서 제재도 했지만 19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 체결되면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더 깊이 관여하게 된 셈이 되었다. 미국은 주한미군도 축소되어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원조를 보내느라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미국 대선으로 볼 때 트럼프가 당선이 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했을 때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이 핵과 같은 비대칭 전력을 갖는다면 서방의 제재도 받을 수 있고 사드 배치에 환장했던 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해 어떤 제재를 가할 지 알 수 없기에 반대를 하는 입장이었다.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 맺어지고 안보상 상호 보완적 요소가 강화되자 우리도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핵과 같은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모스크바로 날아가 이 부분에 대한 협상을 하고 러시아로 하여금 중국을 설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을 설득하기에는 어려운 일이고 이는 러시아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는 러시아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셈이다. 러, 북, 중이 가까워진 이상, 우리도 러시아와 중국을 전략적으로 잘 이용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러시아는 우리에게 먼 나라가 아니고 동북아시아 문제에 있어 가까이 해야 할 나라가 됐다. 이제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 11월에 벌어진 미국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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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0
  • 푸틴이 방북, 두만강 개발에 대한 이야기에도 초점을 맞춰야
    18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북한을 국빈 방문하기로 한 푸틴 대통령이 19일 새벽 북한에 도착했다. 오전 2시가 넘은 시각 푸틴 대통령이 북한 수도 평양에 도착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일정은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러북 밀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곳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년 전부터 푸틴 대통령이 동방으로 눈을 돌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앞으로 러, 북, 중 3자 간 회담도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방문 일정의 기간이 1박 2일에 불과하기에 많은 얘기보다는 양국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에 주목될 예정이다. 유리 우샤코프(Юрий Ушаков) 보좌관이 언급하기를 안보 문제를 포함한 각 부문 협력을 망라하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협정은 기존의 러북 간에 체결된 문서들, 즉 1961년 소련과 북한의 소-북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 2000년 '우호·선린·협조 조약', 2000년과 2001년 러북 선언 등을 대체할 것이라 했다. 또한 당연히 국제법의 모든 기본 원칙을 따르고 어떠한 도발적 성격도 없으며 어느 국가를 직접 겨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언론들이 말한 것처럼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전략적인 부분을 주고 북한은 러시아에게 대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 무기를 공급하는 등의 상호 군사 협력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리고 북한과 "군사동맹" 체결하려 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뉴스랍시고 보도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두 정상은 또 경제와 안보, 에너지, 우주항공, 교통, 국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하게 되는데 경제, 에너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생각된다. 데니스 만투로프 제1 부총리와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 부문 부총리를 비롯해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미하일 무라시코 보건장관,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연방우주공사) 사장, 올렉 벨로제로프 철도공사 사장 등이 푸틴 대통령을 수행하기에 단독 비공식 정상회담에서는 수행원 중 특정 인원들이 포함되며,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이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러시아 입장에서 군사적인 부분보다 가장 중요한 현안은 두만강 문제다. 과거 1960년대 소련은 중국, 북한과 더불어 두만강 일대의 개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의 영토분쟁이 발발하고 북한과 중국 간의 협의도 강화되면서 이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이 두만강개발계획(TRADP :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의 일원이자 유엔개발계획의 지원으로 출범한 광역두만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 GTI)이다. 당시 이 프로젝트의 참여 국가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였지만 2009년 북한이 이 프로젝트에서 탈퇴해 현재 대한민국, 중국, 몽골, 러시아만 회원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5년 만에 북한이 이 프로젝트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본래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울산과 속초를 이어주는 동해안 일대, 북한의 나진, 선봉시 등 두만강 유역, 중국의 동북 3성과 내몽골 몽골 동부지역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일부를 아우르는 매우 광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최대 개발 계획이며 다자간 대형 프로젝트로 키우려고 했었다. 한반도 동부 회랑으로 알려진 환동해 지역이 이 계획에서 중심점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인 이익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는 가입 회원국들 간 서로 이익이 어느 정도 충돌하지 않으면서 주도권이 어느 정도 분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관련 총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게 이것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러시아와 몽골이 매우 소극적이고 북한이 탈퇴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중국 간의 정상회담에서 두만강 프로젝트 논의가 나오면서 이 일대 개발 이야기가 공론화 되었다. 러시아는 그동안 중국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중국 선박 항해에 부정적이었으나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북한이 접근하는 등 3국간 역학관계가 바뀌어 이제는 두만강이 중요해지게 됐다. 우선 러시아-중국이 합의했지만 문제는 북한의 동의와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가 성사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동북 3성 일대의 물류 허브가 생성되는 것이고 비약적 경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연변이나 만주 일대, 하얼빈의 조선족들이 더 이상 한국을 찾지 않을 것이다. 자국 내 경제가 성장하는데 대한민국에 일하러 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지역이 잘 되면 대한민국에 있던 조선족도 한국 생활 정리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조선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우리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희소식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낙후된 하산 일대를 군사 지역에서 민간 지역으로 개방하고 하산 지역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동안 버려진 깡촌에 불과한 하산이 중국 심천과 같은 경제 물류 허브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하산의 잠재적 가능성은 높았었지만 군사 지역으로 묶여 있었던데다 북한, 중국 등과의 관계가 냉랭해져 사실상 활용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북한 간의 정상회담으로 이 지역의 길이 열린다면 하산 지역은 육로 지역으로 판별해 볼 때 3국 간 육상 최대 요충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는 나진, 선봉 지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 부총리와 올렉 벨로제로프 철도공사 사장이 이번 방북에 동행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나진, 선봉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 그리고 중국의 지원 등이 이루어진다면 환동해의 새로운 물류 허브로 탄생할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나진, 선봉보다 속초와 부산을 염두해 두고 환동해물류 허브로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인해 생각보다 느리게 진척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나진, 선봉이 열리면 속초는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이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양양 국제공항은 막대한 적자를 내며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집중하고 있는 북극 항로의 문제도 여기에 있는데 나진, 선봉이 열리며 굳이 물류 선박이 부산에 기항하지 않아도 된다. 나선 지역에 기항하고 동남해안으로 그냥 통과만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부산도 사실상 손해를 보게 된다. 그만큼 환동해 경제적인 부분으로 볼 때 우리 대한민국에도 매우 중요한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한테도 아직 골든타임은 남아 있다. 가장 시급한 부분은 우리 대한민국과 블라디보스톡 간의 항공 운행이 재개 되어야 한다. 모스크바는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블라디보스톡만큼은 이전처럼 항공 운행이 재기되어야 연해주 지역 문제에 다시 관여할 수 있다. 그러면서 환동해 지역 전체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를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광역두만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 GTI)의 회원국이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제 환동해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의 대 동방 정책으로 인하여 동북아시아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숟가락 담그지 못하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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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0
  • 유럽의회 선거 결과,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카드는 독배인가 아니면 승부수인가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 연합회원국들이 자국의 선거법에 따라 정당에 투표하며, 그 결과에 따라 각 회원국은 인구에 비례해서 할당된 의석수 내에서 당선인을 배분해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한다. 프랑스의 경우에 할당된 의원 수는 총 720석 중 81석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당 지지율인데, 프랑스 집권 여당인 중도성향의 자유당 그룹에 속하는 ‘르네상스당’은 약 14.5% 정도를 득표했던 반면, 극우 성향의 ‘정체성과 민주주의’에 속하는 ‘국민연합’은 약 31.4% 정도를 득표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준으로 총선을 생각해 보면, 집권 여당은 전체 하원 의석 577석 중 현재 249석이니까, 그 절반 정도인 125∼155석 정도가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국민연합은 현재 89석보다 150석 정도가 많은 235∼265석 정도가 될 것이다. 원래 정치 일정대로 총선이 실시된 경우에, 집권 여당은 완패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각국 집권당에 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해 있는 제3당인 중도 자유당 그룹은 현재 102석에서 79석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반대로 극우 정당인 정체성과 민주주의가 현재 49석에서 58석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여기에 이탈리아의 멜로리 총리가 속하는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유럽의 보수와 개혁’이 현재 69석에서 73석으로 늘어나게 되면, 이 두 정치 그룹의 예상 의석수는 합쳐서 128석이 되기 때문에, 제3당이 자유당 그룹을 앞지르게 될 것이다. 거기에 무소속과 기타 정당의 의석수가 100석 정도로 극우에 가깝다고 하면,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극우파의 약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러한 결과를 인정하면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프랑스의 의회해산권이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통해 프랑스 국민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면서 표심의 결과에 따르려는 것이다. 그런데 외견상으로 이것은 분명히 ‘국민연합’의 허를 찌른 것이다. 르펜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의 기세를 몰아 원래 정치 일정대로 진행하게 되면, 2027년 4월에 대통령 선거에서 2022년에 패배를 설욕하게 되고, 그해 6월에 총선이 실시될 것이니까, 총선도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 이 시나리오는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원래의 정치 일정을 뒤집어서 3년이나 앞당겨서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되면, 그 결과에 따라 르펜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변수들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 국민연합의 대표인 바르델라도 현재는 르펜과 함께 하지만, 그 결과에 따라 다른 행보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라면, 총리가 바르델라가 되면, 르펜은 대선후보로 나갈 것이다. 이것은 극우파가 대통령도 총리도 되는 최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도성향으로 프랑스의 정치지형으로 보면 주류 정치와 다소 거리가 멀고 이른바 제3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1차 선거 결과로 24.01% 득표율을, 2차에서는 66.10% 득표율로 당선했다.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는 과거에 7년이었지만, 시락크 대통령 재임 때 임기를 5년으로 단축했고, 1번 연임은 가능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에 1차에서 27.85% 득표율을 기록했고, 2차에서는 58.54% 득표율로 재선으로 당선했다. 이러한 양상으로 보면 마크롱 대통령은 결선에서 표심을 모으는데 분명히 일가견(一家見)이 없지는 않다. 사실 그는 제3의 길을 지향하다 보니, 자신의 취약한 지지기반으로 인해 때론 좌충우돌과 돌출발언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카드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녹록하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극우파가 약 29.5% 지지율을, 좌파가 약 18.5% 지지율을, 중도파가 약 18% 지지율을 보인다. 이번에 마크롱 대통령의 총선 조기 실시에 관해 프랑스의 원로정치인들도 극우파의 집권을 걱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지금과 같은 여세로 극우파에게 집권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거기에 정통 우파인 ‘공화당’의 시오티 대표가 ‘국민연합’과 동맹을 제안했다가, 제명 위기로 번졌다. 아무리 그대로 나치독일에 맞서 드골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정통우파 정당의 대표가 극우파인 ‘국민연합’과 손을 잡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개인적 의견이라고 해도, 극우파와 협력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금기를 깬 것은 정도(政道)를 넘어섰다는 당 안팎에서 강한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초라한 공화당의 현재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좌파 연합(‘굴복하지 않은 프랑스’,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도 공천 문제로 균열의 조짐이 벌써 나타나기도 한다. 극우파에 맞서 4개의 연합체로 이루어진 좌파 연합은 극좌 성향의 멜랑숑 대표가 온건파를 공천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내분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프랑스 현재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있어 많은 문제가 정치적으로 있지만, 그래도 극우파 집권만은 안 된다는 생각에 전국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수십만의 시위 인파가 반극우세력 연대의 물결로 가득 채우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러한 점에서 일종의 도박과 같은 정치적 승부수를 과감하게 그리고 빨리 던진 것은 직접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의 하원 선거(총선)에서 중도파를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계산이다. 물론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라는 카드 이외에 다른 마땅한 카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집권 여당의 의석수는 총 577석 중 250석으로 야당 전체가 327석보다 적다. 그러다 보니 각종 정부 정책이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도파가 그동안에 외연을 확장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손익계산만을 분주히 했을 뿐, 실질적으로 프랑스가 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성과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것은 현재 집권 세력이 당면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비전 그리고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신뢰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각종 개혁과제와 경제침체 등등으로 인한 국민의 실망감과 분노, 젊은 층들의 미래에 관한 절망감 때문이다. 또 거기에 편승해서 포퓰리즘적인 정책 남발로 극우파가 표심을 파고들면서,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의 정책이 수행될 수 있는 것처럼, 표심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극단주의가 득세하게 되면, 그 역풍은 누구도 어떤 세력도 결코 막을 수 없게 된다. 또 극단주의가 프랑스적인 정서와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프랑스사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프랑스 국민은 마크롱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해서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나치독일의 치욕과 악몽을 경험했기 때문에, 극우파의 집권만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 거리에 나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극단주의란 결국 서로를 스스로 파멸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취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조기 총선을 앞두고 각 정파는 합종연횡을 통해 의회 권력에 서로 다가가려고 하지만, 누가 갈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프랑스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일 ‘대이변’이 일어날 경우, 프랑스는 격동에 휩싸일 것이고, 마크롱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에 상당한 사임 압박에 더욱 시달릴 것이다. 현재의 조기 총선으로 인한 일시적 혼란보다 더 큰 혼란이 벌어진다면, 사실 극우파는 오히려 역풍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극우도 극좌도 싫다면, 이번 총선의 투표가 최선도 최악도 아니라면, 결국 프랑스 국민은 차악(遮惡)의 선택권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기에 마크롱 대통령의 어설프지만, 현재로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카드가 독배도 될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아마도 마크롱 대통령은 독배를 마신 이후 시간이 좀 지나서 독배였음을 알게 될 수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처음부터 독배가 아니었는데, 마크롱 자신이 독배로 먼저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든 이번 프랑스 조기 총선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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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9
  • 이슬람 문화권에서 베두인의 정의와 민족적 실체
    이스라엘 군에도 베두인들로 구성된 경보병 특수부대가 4차 중동전쟁 때까지도 존재하고 있었으며 해당 부대의 지휘관 또한 당연히 베두인이었다. 이스라엘의 베두인들은 2차와 3차 중동전쟁에서의 공훈으로 인해 이스라엘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이나 현재는 폐지되고 없는 상태이다. 그래도 베두인 병사의 지원 복무는 계속되고 있어서 수백 명 단위의 베두인들이 이스라엘 군에서 복무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군에는 베두인들로 구성된 BDRB (Bedouin Desert Recon Battalion) 부대가 있다. 물론 팔레스타인 베두인들에게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만 이스라엘 외에도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거주하는 베두인들도 있다. 시리아에도 베두인이 62만 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시리아의 베두인들도 주변 국가인 요르단, 레바논, 터키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베두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편이다. 베두인들은 예루살렘과 가자 지구에서 유태인 정착촌 등에 섞여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의해 많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가까운 촌락에도 먼 길을 돌아가야 했으며 귀중한 재산인 당나귀를 사살당해도 이에 대한 손해 배상을 못하며,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도 유태인 아이들에게 온갖 구타와 학대를 당해 학교도 못가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베두인이 자주 나타난다. 더구나 베두인들은 대부분이 가난에 시달리며 이스라엘의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극우 유대인들은 이들도 팔레스타인, 베두인-아라비아 인, 흑인들과 동급의 야만적인 종족으로 간주해 그들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베두인 거주지를 파괴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베두인들에게서 반(反)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이 폭발했다. 2013년에는 베두인 주민 수천 명이 거주지 파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여 여기에 놀란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달래려고 베두인 강제 이주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베두인들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그들을 강제 이주시키며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나서면서 베두인들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베두인-아라비아 인들과 한편이 되어 그들 무장단체에 들어가 이스라엘 타도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많다. 유목민들에서는 부계(父系) 출생을 엄격하게 지키며 확대 가족과 씨족을 사회생활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흑염소의 털로 만든 유르트와 가축, 가재(家財) 등은 가족 전체의 소유물이다. 하나의 유르트에는 아흘 알 바이트(Ahl Al-Bait)가 한 사람 있어 주부의 일을 한다. 우물은 씨족에게 소속되고 이동 및 숙영(宿營)지 확보도 씨족 전원이 협력하여 한다. 몇 개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형성하고, 부족과 지족(支族)의 수장은 세습제로 일정한 가계에서 나오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낙타는 부족들의 공유물이었고, 부족 전원이 세력을 연합해 적들과 전투를 벌인다. 보통 베두인들은 일부다처제이며, 6종의 카스트 계층들이 있다. 귀족과 평민들은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이고, 정착하여 농경을 하는 아라비아 제족들과 베르베르 제족은 종속 민들이며, 사하라 사막 남부나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흑인의 농노(農奴)가 존재하고 있고, 노예와 천민(賤民)이 있다. 노예는 남부 유럽에서 데려온 지중해 코카소이드형 백인도 있었으나, 나중에는 동아프리카 수단의 흑인들에만 국한되었다. 이들은 아라비아의 노예사냥에서 체포된 사람들인데 그들의 자손은 혼인 등에서 차별화된다. 카스트 제도로 구분되는 계급 사회는 잦은 정복 전쟁에서 생긴 것으로, 같은 카스트의 남녀 이외에는 결혼이 허락되지 않는다. 베두인들은 기마(騎馬)에도 능숙하여, 창을 사용하고 유럽 중세 기사와 같은 우월감을 가지며, 고귀한 존재라고 자부했다. 이교도인 베르베르 인과 흑인을 이슬람 화 시킨 것도 그들인데, 베두인 제족은 농경의 종속 민들과 오아시스 통상로의 상인으로부터 약탈과 재물에 대한 보호의 대가로 공납금을 취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중앙 정부의 세력 증대로 약탈과 공납에 의한 수입이 감퇴하였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경을 왕래하는 유목 경제가 곤란하게 되어 목축을 포기하고 농경을 생활 수단으로 하는 베두인 족도 증가하였다. 대부분 베두인 유목민 출신인 요르단 인들은 타인에게 지극한 환대를 보이고 혈족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러한 생활 태도로 볼 때 고대 베두인들 삶의 방식이다. 유목민에 기반을 둔 근대의 촌락 생활 방식은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지만 그러한 기반이 되는 요소는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촌락의 나이 많은 여성, 때로는 젊은 여성들은 전통 의상인 길고 검은 토부(Thobe)를 입는데 어깨와 소매 등에 복잡하고 화려한 색의 작은 수를 놓아 입기도 한다. 도시 역시 전통적인 가치관이 존속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요르단 인들은 관대함과 따뜻함, 친절함 등을 배워왔으며 요르단 사회 핵심에는 부족 간의 조화와 가족을 존중하는 사상이 많이 남아 있다. 요르단은 높은 수준의 공예로 유명하다.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들이 요르단 수도 암만의 상점과 수도에서 떨어진 근교의 작은 마을 시장을 채우고 있다. 이러한 공예품으로는 그릇, 장신구, 수예품, 카페트와 전통 의상 등이 있다. 암만에서는 지역적 특성의 예술을 지닌 유리 제품을 만드는 유리를 깔때기로 부는 장인을 만날 수 있다. 유목 경제적으로 볼 때 베두인이 기르는 양은 모직의 중요한 공급원이다. 이러한 양털로 작은 베틀에서 여러 종류의 모직제품을 만드는데 관광객 및 외국인들에게 가장 널리 판매되는 것은 아라비아 융단이나 카페트이다. 각각의 카페트에는 독창적인 특징과 독특하고 섬세한 디자인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아랍 문학 작품인 <천일야화 : 아리비안나이트>는 요르단 인의 작품이며 20세기의 작가로 뛰어난 문체와 사상을 표현한 시인 무스타파 와바 앗 탈은 아랍의 주요한 시인으로 나타나며 이들 모두 베두인 출신이다. 이슬람 발생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에는 베두인(Bedouin : 사막의 유목민)과 오아시스의 정착민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두 민족 모두 부족 단위로 공동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부족에는 부족장(shaykh 또는 sayyid), 신관(神官, Kāhin), 전시 군사 지도자(Qā’ìd) 및 중재자(Ḥakam) 등의 요직이 있었으며, 이들은 부족 구성원 총회(Majlis)에서 선임되었다. 부족장은 특별한 권한을 누렸다기보다 동등한 구성원 가운데 제1인자의 역할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른 부족들과의 교섭에서 부족을 대표하는 정도였다. 그는 덕망이 높고 나이가 많은 구성원 중에서 주로 선출되었다. 베두인의 신관은 부족의 제사와 축제 및 장례 등의 의식을 관장하였으며, 전쟁 시 군사 지도자로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 기상이변 등 위기 시에는 연로한 부족장보다는 군사적 식견과 활동력이 좋은 중년의 구성원이 더 적격으로 여겨져 선임되기도 했다. 중재자들은 부족 구성원들 간의 분규를 조정하여 해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부족 구성원 총회에서 토의하여 최종 결정하였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는 부족 내부의 관행(Sunnah)이 매우 중요시되었다. 베두인들은 넓은 사막을 배회하면서 초원을 찾아 방목하여 생활을 이어 나갔으나, 도시의 정착민들은 농경 생활을 영위하거나 상업 활동을 통하여 생계를 이어나갔다. 오아시스 도시 가운데 메카와 메디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메카는 예멘과 시리아, 이라크와 에티오피아를 이어주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상업 도시로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또한 이 도시들은 토질이 척박하여 주민들과 가장 큰 부족인 쿠라이쉬(Quraysh) 부족은 주로 상업과 무역에 종사하여 생계를 이어나갔다. 도시의 중심에는 카바(Ka‘bāh)라는 성역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쿠라이쉬 족의 신상(神像) 뿐만 아니라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아라비아 반도 부족들의 신상도 존재하기 때문에 메카는 종교적 중심지 역할도 하고 있었다. 따라서 메카는 예멘에서 실어 온 향료를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및 이집트 등 각처에 공급하였고, 보다 개화되어진 지역들의 문물을 가져와 아라비아 반도에 보급한 문명의 중개도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메카 북방 약 300㎞에 위치한 메디나는 단순히 농업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쿠라이쉬 부족은 교역 활동을 통하여 협동력, 조직력 및 자제력을 함양하였으며, 베두인의 용맹성과 결합하여 후에 이슬람 제국 창건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에 베두인-아라비아 인이라는 개념은 인종과 혈통적인 성격보다는 셈어라는 아랍어 계통을 모국어로 공유하는 민족들의 집단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나타난다. 6세기까지 아라비아 인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주민들에 한정되었지만, 이슬람교의 전파로 이집트인, 메소포타미아인, 혹은 이라크인, 시리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중동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언어적으로 동화되면서 베두인-아라비아 인으로 통칭되었다. 이러한 아라비아 인들은 한때 이베리아 반도의 안달루시아까지 진출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20세기 초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유럽 열강들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 운동 중에서 범아라비아주의가 발흥하였고, 아랍어 화자들 사이에 베두인-아라비아 인이라는 민족의식이 강화되었다. 7세기 이전의 아라비아 지역은 아라비아 반도 지역을 지칭했으나, 이슬람 문화권이 확장되면서 중동과 그 인근의 이슬람 문화권을 통칭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변화되었다. 또한 아라비아 지역은 역사적인 세력들로 볼 때 아라비아 제국을 뜻하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아랍 연맹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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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8
  • 불가리아 정부의 부정부패와 전쟁은 현재진행형
    불가리아는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인해 보이소프 총리와 내각이 사퇴를 했으며 당시 정부는 국민에게 사죄를 했고 선거에서도 패배하여 의석이 117석에서 97석으로 크게 줄게 된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새로운 연정 정당인 사회당과 민주당 연정 정권 또한 정확히 과반인 120석의 의석 중 하원이 84석을 얻었고 상원은 36석을 얻었지만 여기에 불가리아 유럽 발전 시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사회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에 패가 갈려 조기 총선 요구와 더불어 정권에 대한 반대 시위를 6년 여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19년 소티르 차차로프 불가리아 검찰총장에 의해 플라멘 게오르기에프 반부패위원장에 대한 체포 영장이 떨어지게 된다. 체포 혐의는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수도 소피아의 고급 아파트를 저가에 사들였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혐의로만 보면 불가리아 최대의 부패 스캔들 중 하나인 고급 아파트 스캔들인데 이와 같은 저가 매입 혐의는 명백한 불법으로 다른 직책도 아닌 반부패위원장이 그와 같은 범죄 행각을 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대해 EU는 불가리아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EU는 각종 개혁의 기준을 정해주고 평가와 재정지원을 연결함으로써 부정부패 척결과 개혁 작업을 촉구하고 있다. 개혁 작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사법부와 경찰 조직이다. 불가리아 정부는 일선 경찰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2019년부터 동영상 신고제를 도입했다. 경찰의 뇌물 수수나 근무 태만의 경우 시민들이 촬영 후에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동영상 신고제는 이미 2012년부터 도입이 되었지만 효과가 미미했었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시민들의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수사를 진행해 확인하고 때로는 부패가 확인되면 공무원들을 경질하면서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지방 경찰들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지방정부에 주어진 경찰의 통제, 명령, 작전권을 중앙경찰로 가져왔다. 또한 조직 범죄에 맞서기 위해 강력 범죄 총국도 신설하고 모든 경찰 지휘권을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경찰 사무국장에게 집중시키기도 했다. 당시 파블린 다미트로프 내무부 사무총장은 경찰이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얻지 못하는 상황에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각종 개혁을 통해 변화를 하고자 한다며 이를 통해 우호적인 여론도 이끌어 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와 같은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수많은 화물과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으로 부정부패의 소지가 많은 국경의 세관과 경찰에 대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부패와 마피아의 자금원 역할을 해온 국경 부근 면세점을 폐쇄했다. 또한 2008년에는 EU의 가입과 더불어 각종 화물의 통관 업무도 일원화해 부정부패의 소지를 줄이기도 했다. 국경 이미그레이션을 총괄하는 코미사르 페테루이코프는 2019년부터 뇌물 수수 관련 감시 기관이 생겨나 돈을 주고 받으며 무마하려는 경우 바로 붙잡혀 검찰로 넘겨지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정부패 이미지 개선을 위한 세관원들의 다이어트까지 시작되었다. 100kg 이상의 세관원은 욕심이 많은 부패 세관원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2019년 초에 임명된 멩켈레바 타체바 법무장관은 최근 불가리아에서 개혁의 대명사로 큰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그녀는 여성 법무장관이지만 고위 공무원 6,000여 명의 재산 변동 내역 공개를 추진하고 있는데다 정치인들의 기업 자금 유용의 방지와 사법부 개혁에도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정치범이나 조직 범죄 관련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분명히 하도록 요구했으며 또한 그 이유가 만약 법원의 잘못이라면 사법부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뿌리 깊은 부패와의 전쟁은 타체바 장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불가리아 정부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EU는 최근 불가리아의 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5억 유로, 약 8천억 원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물론 불가리아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평가 때문이다. 하지만 EU 가입과 함께 시작된 개혁은 수십년이 지나도 계속되어야 한다. EU의 평가와 지원과는 별개로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개혁은 국가의 정치 경제적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주춧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불가리아에 대해 미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불가리아인 6명과 64개 기관을 부패와 관련해 포괄적 역할을 한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렸다. 제재 대상에 오르게 되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해 접근이 제한되며 미국인과의 거래 금지 등 조처를 당하거나, 비자 제한으로 인해 미국 입국이 금지되는 불이익을 보게 된다. 제재를 받은 개인 중에는 전직 국회의원과 관리, 기업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 한 인사는 러시아가 불가리아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채널을 만들어준 혐의까지 받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불가리아는 EU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로서, EU 집행위로부터도 부패 근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던 또한 사실이다. 미국의 이와 같은 조처는 2018년에도 불가리아에서 대규모 반부패 시위가 벌어진 데 이어 선거를 앞두고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불가리아 국가 행정감찰관 콘스탄틴 펜체프가 언급하기를 불가리아의 사법부도 그 부패가 심하다고 밝혔다. 2009년 이래 사법부 내의 개혁이 없어 부패가 더 악화되었다고 진단하였으며, 개혁에 대한 사법부의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계속 될 것이라 하였다. 더불어 검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80%의 응답자가 불가리아 사법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며 개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 검사장 소티어 트산사로바에 대한 질문 결과 31%는 현 검사장 취임 후 긍정적 변화가 있다고 응답하였으나 40%는 결정적인 개혁은 없었다고 응답했으며 23%는 부패 정도가 이전보다 더 악화되었다고 응답하는 등, 다른 곳과 달리 사법부의 경우, 부패의 그 뿌리가 매우 깊어 이를 없애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시 논의되었던 사법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기소 시스템으로 투명하지 않은 사건 배당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또한, 악법과 빈번한 법률 개정도 문제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게다가 재무부와 사법부까지 관여된 고급 아파트 스캔들은 단일 규모로 볼 때 지금까지 부패 중 가장 큰 사건이라 언급했다. 플라멘 게오르기에프 반부패위원장은 2018년 재산 신고 당시 아파트의 186㎡에 달하는 테라스 면적을 누락하는 등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의 발표 후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은 2018년부터 반부패위원회를 맡아온 게오르기에프 위원장을 해임했다. 불가리아의 의회 역시 찬반 120대 3으로 게오르기에프 위원장의 퇴진에 찬성했다. 그러나 게오르기에프 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며 오래전부터 사임을 고려해왔다고 말하는 등,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여왔다. 게다가 당시 야당인 유럽발전시민당(GERB)의 부총재 역시 게오르기에프 위원장에게 아파트를 판매한 부동산 개발업자에게서 시장가격보다 저렴하게 고급 아파트를 구매한 의혹을 받고 사임하기도 했다. 고급 아파트 스캔들로 불린 이 사건으로 불가리아 사법부와 내각 장관과 차관들이 대부분 사임했으며 고위 관리의 도덕성 문제를 지적하고 성토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스캔들 재판은 올해가 최종 선고를 하는 해로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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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8
  • 터키 뿐 아니라 다음 날부터 모든 이슬람 국가들 이드 알 아드하(عيد الأضحى) 명절 기간의 시작
    터키 뿐 아니라 모든 이슬람 국가들은 내일부터 3일 동안 이드 알 아드하(عيد الأضحى) 축제 기간에 돌입한다. 그래서 오늘 토요일임에도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 것이다. 이드 알 피트르 축제 기간에 이드 알 아드하 축제 기간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최고 명절 기간 중에 하나인 것이다. 이드 알 아드하(عيد الأضحى)는 이슬람교의 중요한 정규 축제 중 하나로, 이슬람력 12월 10일에 열리는 제물을 바치는 축제이다. 이슬람 이전에 메카 근교에 있는 마나의 골짜기에서 있었던 제물을 바치는 관습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알라의 명으로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다 알라의 제지로 대신 염소를 바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식을 얻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Sarah)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을 수 없었다. 사라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인 하녀 하갈(Hagar)을 부인으로 맞을 것을 권했고 둘 사이에서는 장자 이스마일(Ishmael)이 태어났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실인 사라를 통해서도 아들을 얻게 되는데 100살이 되어 이삭(Issac)을 낳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렇게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 했고 아브라함은 그 뜻을 따라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Moriah) 산으로 향한다. 하나님은 미리 다른 제물을 준비해두고 있었고 아무 의심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랐던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내린다. <꾸란(Qur‘an)>에서는 이브라힘(Ibrāhīm, 무슬림들이 아브라함을 부르는 이름)이 하니프(hanif, 유태인도 아니고 그리스도교도도 아니며 우상 숭배자도 아닌 진정한 유일신론자)라고 말한다. 이슬람에서는 신께서 이브라힘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주저 없이 오직 신께 복종했던 이브라힘의 신앙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한다. <꾸란>에서는 또한 이브라힘이 진정으로 사랑한 아들은 이샤크(Ishag, 기독교 성서의 이삭)가 아닌 큰아들 이스마일(Ismaīl, 기독교 성서의 이스마일)이었고 하나님이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도 이스마일로 나온다. 기독교 성서 구약의 창세기 22:2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너에게 가리켜주는 산의 한 곳에서 그를 번제로 바쳐라”라고 되어 있으며, 16절에서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무슬림들에 따르면 이샤크가 태어났을 때 형 이스마일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이샤크는 독자가 될 수 없다. 결국 이 일화는 이샤크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며 제물로 바친 아들은 이스마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추방된 것도 이스마일이 아니라 오히려 이샤크 쪽이었다는 것이 이슬람의 해석이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먼저 하나님과 이브라힘의 약속을 매우 중시한다. 이 약속은 이샤크가 태어나기 전에 맺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마일은 ‘약속의 아들’이고 이브라힘의 합법적 상속자다. 그는 장자였고 할례를 했으며 합법적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마일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이 위대한 민족이 마침내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배출한 아라비아 민족이다. 무슬림들은 창세기에서 이샤크의 이름이 이스마일의 이름을 대신해 쓰인 것은 유태 기독교 전통의 구원의 역사에서 헤브루(Hebrew)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결국 역사적으로 유태인과 아라비아인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고 민족이 갈라진 계기는 바로 이브라힘의 아들 이스마일과 이샤크의 상속권 분쟁 때문이었다. 유태인들은 적통을 이삭으로 보는 것이고 아라비아인들은 적통을 이스마일로 보는 것이다. 결국 유태인과 아라비아인은 모두 이브라힘의 자손이라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이삭은 어머니가 유태인 출신이고, 이스마일은 어머니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유태교와 이슬람과 기독교는 모두 같은 역사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순례자뿐만 아니라 일반 신도들도 한 사람에 염소 한 마리씩(낙타는 7명이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의 3분의 1은 자기가 먹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데, 이 물건들은 신의 것으로 간주하여 매매하지 못한다. 신도들은 깨끗한 옷을 입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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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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