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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2025년의 마지막 즈음, 2026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2025년 말 세계는 전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불안정한 국면에 놓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중동과 동북아에서도 긴장이 누적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식 거래외교로 유럽과 거리를 두며 변수가 되고, 중국은 유연한 이중전략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 유럽은 분열과 재무장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은 외교 복원에 성과를 냈지만 남북관계는 정체돼 있다. 국제정치는 가치보다 이익이 우선되는 선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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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위기와 자기 진실성의 윤리
본 글은 서구 자유주의의 역사적 흐름과 한국 사회에서의 왜곡된 이해를 짚어보고, 현대 자유주의가 직면한 이기적 개인주의와 양극화의 문제를 비판합니다. 저자는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사회』를 통해 개인주의 팽배, 도구적 이성의 지배,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세 가지 불안을 진단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기 진실성(본래성)의 윤리'를 제시하며, 인간이 고립된 존재가 아닌 타인과의 연대 및 '존재의 거대한 고리'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상호 인정과 공정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파편화와 배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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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 이후 국제정세
2025년 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세 속에 평화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영토 문제와 병력 제한 등 핵심 쟁점으로 진전은 더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나토 가입 유보안을 제시했고, 마이애미 실무 협상이 향후 전개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럽의 무기력함 속에 동아시아는 중국-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며, 한국은 북러 밀착과 미중 갈등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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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훗날 문제 삼을 가능성 높은 러시아 지배하의 쿠릴열도
러시아가 쿠릴열도 남단 이투루프·쿠나시르 섬을 대규모 군사도시로 개발하며 러일 영토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해 일본은 여전히 4개 북방도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경제특구 지정과 군사기지 조성으로 실효 지배를 강화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국내 정치 결속과 외교 전략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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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린 르펜의 체포와 피선거권 박탈의 적법성
프랑스 대법원이 마린 르펜에게 징역 4년(2년 집행유예)과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하면서 2027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졌다. 르펜은 EU 자금 횡령과 보좌진 허위 고용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 관할과 형법 적용의 적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영향이 작용했다는 ‘정치 보복’ 의혹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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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관세율 인상에 따른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의 현황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 10% 이상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는 46%, 캄보디아 49%, 태국 36% 등 동남아 주요국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중국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라벨갈이’ 수출을 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베트남은 이에 나이키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동남아의 미중 균형과 인도·태평양 전략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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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2025년의 마지막 즈음, 2026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 2025년 말 세계는 전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불안정한 국면에 놓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중동과 동북아에서도 긴장이 누적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식 거래외교로 유럽과 거리를 두며 변수가 되고, 중국은 유연한 이중전략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 유럽은 분열과 재무장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은 외교 복원에 성과를 냈지만 남북관계는 정체돼 있다. 국제정치는 가치보다 이익이 우선되는 선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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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2025년의 마지막 즈음, 2026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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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위기와 자기 진실성의 윤리
- 본 글은 서구 자유주의의 역사적 흐름과 한국 사회에서의 왜곡된 이해를 짚어보고, 현대 자유주의가 직면한 이기적 개인주의와 양극화의 문제를 비판합니다. 저자는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사회』를 통해 개인주의 팽배, 도구적 이성의 지배,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세 가지 불안을 진단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기 진실성(본래성)의 윤리'를 제시하며, 인간이 고립된 존재가 아닌 타인과의 연대 및 '존재의 거대한 고리'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상호 인정과 공정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파편화와 배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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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위기와 자기 진실성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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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 이후 국제정세
- 2025년 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세 속에 평화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영토 문제와 병력 제한 등 핵심 쟁점으로 진전은 더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나토 가입 유보안을 제시했고, 마이애미 실무 협상이 향후 전개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럽의 무기력함 속에 동아시아는 중국-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며, 한국은 북러 밀착과 미중 갈등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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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 이후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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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훗날 문제 삼을 가능성 높은 러시아 지배하의 쿠릴열도
- 러시아가 쿠릴열도 남단 이투루프·쿠나시르 섬을 대규모 군사도시로 개발하며 러일 영토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해 일본은 여전히 4개 북방도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경제특구 지정과 군사기지 조성으로 실효 지배를 강화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국내 정치 결속과 외교 전략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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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훗날 문제 삼을 가능성 높은 러시아 지배하의 쿠릴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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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린 르펜의 체포와 피선거권 박탈의 적법성
- 프랑스 대법원이 마린 르펜에게 징역 4년(2년 집행유예)과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하면서 2027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졌다. 르펜은 EU 자금 횡령과 보좌진 허위 고용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 관할과 형법 적용의 적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영향이 작용했다는 ‘정치 보복’ 의혹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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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린 르펜의 체포와 피선거권 박탈의 적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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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관세율 인상에 따른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의 현황
-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 10% 이상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는 46%, 캄보디아 49%, 태국 36% 등 동남아 주요국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중국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라벨갈이’ 수출을 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베트남은 이에 나이키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동남아의 미중 균형과 인도·태평양 전략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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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총선이 끝나면서 부각되고 있는 "체코 이니셔티브"
- 지난 10월 3~4일 양일에 걸친 체코 총선에서 ANO 2011과 당수인 안드레이 바비시가 승리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체코 이니셔티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체코 이니셔티브"는 2024년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는 80만 발 규모로 시작된 지원 계획이었는데 2024년 4월에 2025년 말까지 180만 발로 대폭 확대하겠다고까지 선언했다. 당시 체코의 야나 체르노초바(Jana Černochová) 국방장관은 2024년에만 다양한 구경의 포탄 150만 발을 공급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는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될 것임을 언급했다. 체코 정부는 2025년 가을까지 대(對) 우크라니아 지원을 지속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다고 밝혀욌다. 특히 155mm 및 152mm 대구경 포탄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는 미국의 군사 원조가 지연된 바 있었던 2024년 초, 우크라이나가 겪었던 포탄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것에 크게 기여했다. 체코 이니셔티브 발표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포탄 수의 격차가 축소되는 추세를 보였었다. 얀 리파브스키(Jan Lipavský) 체코 외교장관은 이와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간의 포탄 사용 비율이 1:10에서 1:2로 크게 개선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전장 방어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페트로 피알라와 파벨 대통령이 주선한 성과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영토 방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의 80%를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포탄 공급은 전쟁의 향방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체코 이니셔티브"의 추진 과정에서 엄청난 도전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러시아는 "체코 이니셔티브"로 인한 포탄 제공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유포했는데 주로 러시아 측이 제기한 부분은 품질과 성능에 대한 의혹이다. 이에 체코와 네덜란드 등에 소재하고 있는 독립 조사 기관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국제 조사에 의하면, 러시아가 체계적인 허위 정보 캠페인을 통해 "체코 이니셔티브"의 신뢰성을 훼손하려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24년 가을, 일부 언론들은 "체코 이니셔티브" 책임자들에게 전달된 다수의 서한을 입수하였는데, 이는 155mm 포탄의 신관 메커니즘 결함으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를 체코와 우크라이나 정부가 덮고 은폐했다는 주장과 내용이었다. 그러나 토마시 코페치니(Tomáš Kopečný) 체코 정부 대표는 이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러시아의 조직적인 허위정보 유포 시도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실제 조사에서도 품질 관련 문제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와 같은 상세한 조사 과정은 결국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어 중개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이 떨어지고 수수료를 횡령했다는 폭로를 하고 있다. 이는 "체코 이니셔티브"를 중개하는 기업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개 입찰이나 투명한 선정 기준 없이 5개의 체코 기업 만을 선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이는 EU 내에서도 몇 차례 지적되었던 부분이었다. 특히 일부 중개 기업들이 체코 정부 관료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서로 양분하여 나눠 먹을 수 있는 방산 비리의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처럼 체코 현지 기업과 현지 정부 간의 이해 상충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프로젝트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동유럽 특유의 부패 관행은 EU와 영국, 미국조차도 감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체코의 공여 자금으로 포탄을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중간 역할 수행하고 있기에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비리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체코 중개기업들이 부과하는 최대 13%의 수수료 또한 의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수수료는 우크라이나의 국영 조달기관의 상한선인 3%의 4배 이상이다. 이에 마리나 베즈루코바(Марина Безрукова) 전 우크라이나 국방 조달청장은 유럽 공여국들의 자금이 직접 우크라이나로 이전되지 않는 현행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다만 체코 측은 이와 같은 수수료가 안전한 포탄 운송과 책임 보장을 위한 추가 비용을 포함한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 사이 관계자들끼리 해먹을 것은 다 해먹고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있는 실정일 것으로 본다. 필자가 경험한 동유럽은 충분히 그와 같은 비리가 통용되고도 남을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체코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 지원이 널리 확대되었다.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등 나토 회원국들이 자금을 지원했고, 체코가 포탄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넘겨주고 있는 셈이다. 2025년 4월을 기준으로 유럽 국가들은 "체코 이니셔티브"에 총 8억 3,100만 유로(약 9억 4,3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나토의 회원국인 캐나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등은 더욱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안정적인 포탄 공급을 위해 재정적인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체코 이니셔티브"는 EU가 100만 발 포탄을 조달할 계획과 다르게 EU 역내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 시장에서 포탄을 조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개적인 지원을 꺼려하는 국가들로부터도 포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전제가 생긴다. 이에 EU의 계획보다 더 효과적인 공급망 구축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10월 체코 총선을 앞둔 2025년 9월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포탄 공급이 보장되었다. 이에 얀 리파브스키 외교장관은 현재 확보된 자금으로 2025년 9월까지 매월 정기적인 포탄 공급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총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체코 이니셔티브"는 EU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차원의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는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방위력 강화에 기여했지만 러시아군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체코 이니셔티브" 또한 그 효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편, ANO 2011을 중심으로 한 체코 야당은 2025년 10월 총선에서 승리했을 시, "체코 이니셔티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응하여 젤렌스키는 지난 5월 초, 체코를 방문했을 때, 야당 인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이니셔티브의 지속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합의 도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젤렌스키는 체코의 지속적인 지원이 우크라이나 방위에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난 총선에서 ANO 2011이 승리를 거둠에 따라 안드레이 바비시가 총리로 복귀한 즉시, "체코 이니셔티브"는 완전한 종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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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총선이 끝나면서 부각되고 있는 "체코 이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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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강력한 처벌주의인 "싱가포르 법 집행 모델"을 중국인 무비자 입국에 맞춰 적용해야
- 싱가포르는 벌금의 나라라 지칭될 정도로 도시 정화와 질서 유지가 매우 엄격한 국가다. 리콴유는 중국인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습관과 관습들을 모두 뜯어 고치겠다며 갖은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까지 모두 벌금을 물도록 강력히 규제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북한이나 원리주의 이슬람을 주창하는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벌칙이 강한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물론 중국과 같은 공산권도 벌칙이 강한 경향이 있으나, 이는 정치범이나 사회적 중범죄에 한하여 강한 경향이 있지만 쓰레기 무단투기와 같은 경미한 환경적 행위나 교통 위반 같은 경범죄의 같은 경우는 오히려 한국에 비해서 중국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외국인들 또한 싱가포르에서 범법행위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 일이 없다. 그런데 지하철 등 대중교통 내에서 취식금지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벌금을 쎄게 물고 나서 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공공기관, 버스,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엘리베이터, 슈퍼마켓, 백화점, 병원 등은 금연구역이다. 싱가포르는 주택 등 실내에서 흡연이 금지구역이라 층간 흡연 문제가 발생하면 벌금 물게 되어 있다. 누군가가 담배 냄새가 나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건물 내에서 연기를 감지하고 화재경보기가 바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것이 담배 연기로 판명되면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된다. 금연구역 외에는 재떨이가 있는 쓰레기통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는데 싱가포르인의 70%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로 이들 중 애연가들이 많으며 토종 말레이인들도 애연가들이 많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흡연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담배를 혐오하고 있기에 편의점에서 담배는 뭔가 진열장 같은 곳에 가려 놓으며 내놓고 팔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한국이나 일본의 편의점 계산대 뒤에 존재하는 담배 스탠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No ID No Sale” 등의 문구가 적힌 미닫이 문 형태의 진열장에 넣어놓고 판다. 이처럼 싱가포로 정부가 담배를 혐오하는 이유는 리콴유가 생전에 음주, 흡연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다. 만약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흡연하다가 적발되면 5,000 싱가포르 달러(SGD)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 금액은 한화로 약 546만원이다. 한국도 금연구역에서 흡연시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은 같지만 10만원 안팎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와 비교가 불가하다. 그리고 술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밤 10시 이후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어 있다. 싱가포르가 유독 타 선진국들보다 밤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유흥주점인 KTV도 밤 10시 이후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리고 가벼운 맥주집이나 레스토랑도 밤 10시 이전에 일찍 문을 닫게 되어 있다. 대신 집 안에서 마시는 것은 자유다. 이와 같은 규제가 생성된 계기는 2013년에 리틀 인디아 외국인 노동자 폭동 때문인데 당시 폭도로 돌변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술에 취해 폭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공원이나 돌아다니면서 마실 경우, 밤에는 100% 경찰서에 끌려가고 낮에는 사람들이 주의를 주며 이를 규제한다. 그리고 음주를 하고 싸움을 벌일 때 폭력 행위는 무조건 강력 처벌한다. 폭행 당사자는 감옥으로 간 이후, 태형을 선고 받고 매를 맞게 된다. 음주하고 싸움이 잦은 차이나타운에는 특히 폭력 행위에 대한 강력 처벌을 강조하는 계도 포스터가 간체자로 된 중국어와 영어로 공동 병기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도로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다 적발되면 약 300 SGD (한화 약 32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대중교통 탑승 중 생수를 포함한 음식물을 섭취하면 500 SGD (한화 약 54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음식물은 왠만하면 어느 건물 내부에서 먹고 대중교통에서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특히 이 같은 규제가 없는 것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이를 어겨 벌금 많이 물고 있다고 한다. 껌의 경우, 의학용 등 일부를 제외하면 전혀 판매하지 않으며 관광객이 자국에서 가져온 경우라도 공공장소나 거리에서는 껌을 씹을 수 없다. 게다가 껌은 싱가포르 내 반입 금지 물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껌 등 지정된 반입 금지 물품을 대량으로 소지하다 적발되었을 경우에도 1,000 SGD (한화 약 109만원)이다. 이어 공중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물을 내리지 않는 것 또한 불법으로 규정된다. 싱가포르는 영토가 작고 적도에 가까운 열대 기후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용변을 내리지 않고 방치하면 큰 위생 문제가 될 수 있어 더욱 예민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요즘 싱가포르의 공공 시설들은 보통 센서식 변기가 많다. 그래도 수동으로 변기 내리는 곳도 있기 때문에 경찰들이 잠복했다가 벌금 물리며 화장실에서 껌을 몰래 버리거나 음식물을 버리는 행위도 같은 불법 위생 혐의가 적용된다. 음주운전 또한 마찬가지로 예비 살인, 혹은 살인 미수로 보여지며 음주운전으로 인명사고를 내면 살인 미수, 혹은 1급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가 태형을 처벌 받는다. 또한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차량을 통해 월경을 할 때는 자동차 연료 탱크에 연료가 2/3 이상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 만약 2/3 미만일 경우에는 역시 벌금을 물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법안이 존재하는 이유는 말레이시아의 물가가 싱가포르보다 훨씬 더 저렴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지 않으면 싱가포르인들이 물가가 저렴한 말레이시아로 가서 기름만 채우고 넘어오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교통법 또한 매우 엄격한데, 보행자 무단 횡단은 잘 잡지는 않은 편이지만 차량이 신호 위반을 할 경우 단속이 심한 편이다. 보행자의 경우, 싱가포르는 불시에 무단 횡단 또한 단속하기 때문에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건너는 것은 당연하다. 교통법규 위반은 3회면 면허 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구급차, 소방차의 길을 내어주지 않거나 음주운전을 할 경우 벌금이나 징역과 더불어 태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사기, 마약 운반, 피싱 등은 징역형이나 태형 10대 이상, 심지어 마약으로 인해 사형까지 선고받고 집행되는 것이 일상이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마약 관련 범죄는 단순 소지나 운반도 무조건 인종 및 성별, 나이 불문하고 무조건 사형에 처해진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성범죄율이나 강력 범죄율은 타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 선진국들의 오랜 신경을 쓰게 만드는 마약 문제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운 국가다.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곳이다.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가 성범죄에 태형을 가하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징역 몇 년과 더불어 태형 동반(Mandatory Caine)으로 형법상 성범죄 처벌에 대해 태형 집행을 명시했다. 특히 아동 성범죄의 경우, 태형 대 수는 배로 올라간다. 길거리에서 들개나 길고양이, 새, 그리고 수달이나 들닭 등의 야생동물에 멋대로 먹이주는 행동도 엄격히 금지하며 이를 어길 시 막대한 벌금이 부과된다. 싱가포르는 부과된 벌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으면 10배가 넘는 2차 티켓이 날라오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싱가포르의 강력한 처벌주의인 "싱가포르 법 집행 모델"을 이제 한국에도 적용시켜야 할 때가 왔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무비자 입국에 대응하여 그들의 비도덕적 행위, 무례한 행위, 각종 범법 행위 등에 대해 강력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싱가포르형 모델"의 처벌 법으로 도시 청결 및 치안도 안전하게 유지하고 쎄게 물린 벌금은 우리의 국가 내 재정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어차피 중국인의 무비자 입국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이미 발생한 사안이라 다시 무비자 입국을 도로 물릴 수도 없다. 결국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이들의 행위들에 대한 대책을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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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강력한 처벌주의인 "싱가포르 법 집행 모델"을 중국인 무비자 입국에 맞춰 적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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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체코 총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의 재등장과 대(對) EU, 우크라이나 관련 정책 변화 가능성 (하)
-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는 올 9월 들어 지지율이 최고조 올라오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1일 의회선거 유세 집회 중에 괴한에게 금속제 둔기로 머리를 맞는 테러를 당해 병원으로 후송됐기 때문이다. 바비시는 체코 동부의 도브라시에서 이날 오후 지원 유세 중에 한 남성이 금속제 의수로 머리를 내리치는 테러를 당했다. 체코 경찰은 현장에서 테러공격 용의자를 즉시 체포했다. 이 날 현장에서는 바비시 외에도 여성 한 명이 다쳐서 치료를 받았다. 우선 바비시는 뇌 CT 촬영 등 모든 검사를 마치고 일단 퇴원했다. 바비시는 그날 밤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이번 테러 때문에 2일 선거운동 일정을 취소한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고 의사들도 휴식을 권해서 불행하게도 선거유세를 중지해야 한다. 올로모우츠 주 지역의 일정은 취소가 불가피하다(Kvůli tomuto teroristickému útoku jsem zrušil svůj dvoudenní kampaň. Musím počkat na výsledky různých testů a lékaři mi doporučili odpočinek, takže bohužel musím kampaň pozastavit. Zrušení mého programu v Olomouckém kraji je nevyhnutelné)."고 밝혔다. 우선 경찰은 일련의 테러 사건을 정신 이상자의 공격 범죄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카렐 하블리첵 부의장은 자신의 X 계정에 "이번 일은 선거 폭력이며 정치적 동기에 의해 경쟁자들이 가하는 폭력 테러"라고 주장했다. 체코의 선거는 10월 3, 4일 치러지는 의회 하원 선거로 치열한 선거전이 계속되면서 야당 의원들에게 테러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공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도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 암살 위기를 겪었다. 하물며 체코에서도 반(反) EU 성향인 바비시를 EU에서도 좋게 볼 리 없다. 특히 벤자민 롤이 이끄는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과 같은 NGO 단체들은 과격행위를 해서라도 바비시의 총리 등극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괴한의 정체는 정신이상자라기 보다, 벤자민 롤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당시 집권 총리가 친 EU 계열인 페트로 피알라라는 것을 감안할 때, 제대로 된 수사나, 정신 이상자의 공격 범죄라는 단순 범죄로 끝내려 했을 가능성 높다. 여기에서 바비시는 우선 그 괴한늘 쿨하게 용서했다. 괴한은 사건 후, 이틀 뒤 바비시에게 사과했고, 바비시는 허위 정보에 현혹된 것이라며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테러와 바비시의 쿨하게 용서한 행위 등은 오히려 체코 시민들의 지지율을 높게 만들었다. 바비시는 필자가 지난 상편에 언급했던 그의 회사인 에그로퍼트의 EU 보조금 관련 사기 혐의 등 법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는 상태였지만 유권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하고, 연금을 인상시킬 것이며, 에너지 가격에 상한제를 둔다는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급여 동결시키는 등, 유권자들이 원하는 부분들을 내세웠다. 그리고 EU가 강권하다시피하던 불법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문제와 기후 변화 정책에도 반대했다. 이어 피알라 정부가 체코의 어머니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체코의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 계획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폐기도 공언함으로써 우크라이나에 대한 체코의 무기 지원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바비시는 본인의 SNS인 X에서도 "체코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끌려가고 있다(Česká republika je zatahována do Ukrajinské války)"라고 주장하면서 체코 정부는 슬로바키아 정부와 공동으로 상호 발전을 위한 여러 안건들을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토 피초 총리와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피알라 정권의 얀 리파브스키(Jan Lipavsky) 체코 외무장관은 바비시 전 총리를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친러주의자라 비판했다. 이에 바비시는 리파브스키 외무장관에 대해 갖은 비하 발언을 쏟아내었고, 장관의 가족들을 조사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 유출되면서 크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ANO 2011이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이에 체코 정계의 전문가들은 향후 바비시가 체코의 외교 정책을 재편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슬로바키아의 피초와 헝가리의 오르반과 함께 EU보다는 친러로 다른 EU 국가들과 대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최근 친러 성향을 갖고 있는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과 유사한 행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슬로바키아의 외교 정책 기조를 전환한 로베르트 피초(Robert Fico) 총리에 대해 바비스가 지지를 보내는 등 향후 체코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면서 다가온 10월 3~4일 총선에서 체코 통계청이 약 98% 투표소에서 개표한 결과 바비시의 ANO 2011은 35%의 득표율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ANO 2011은 수도 프라하를 제외한 13개 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득표율에 따라 바비시의 ANO 2011은 전체 200석에서 80석을 확보했다. 반대로 페트로 피알라 총리의 중도 보수 스폴루(SPOLU)는 23%로 2위에 그쳤으며 피알라 연정에 참여하는 STAN당은 11.1%, 진보 성향의 해적당은 8.7% 득표하면서 ANO 2011에 크게 밀렸다. 득표율 5%를 넘기지 못한 다른 정당들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그러나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연정 구성을 위한 회담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며 SPD와 운전자당의 지지를 확보해 단독으로 소수정부를 꾸리고 조금씩 EU와 거리를 두겠다는 발표를 했다. 체코 운전자당(Motoristé sobě)은 친(親)석탄과 자유시장 노선을 지지하며, 자전거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정당이다. 강한 EU에 대한 회의주의 시각을 갖고 있고, 유로화 도입, 유럽 그린딜(녹색 정치), 젠더 이데올로기, 다문화주의에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 정체성과 문화 보존을 강조하며 이를 적극 장려한다. 전반적으로 국민보수주의와 우익대중주의가 혼합되어 있는 정당이라 볼 수 있다. SPD는 자유와 직접 민주주의(Svoboda a Přímá Demokracie)라는 정당의 축약어로 반(反) 이민, 반(反) 난민, 반(反) 이슬람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SPD는 이민자들이 주축이 된, 체코에서 매우 특이한 정당이다. 당수는 토미오 오카무라(岡村富夫, Tomio Okamura)라는 일본 출신의 체코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토미오 오카무라는 일본인 출신이지만 재일교포 3세라는 특이성까지 갖고 있다. 첨언하자면 토미오 오카무라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어머니인 오카무라 헬레나는 체코 모라비아 왈라키아 출신으로 1966년 그의 한국계 일본인이었던 부친 마스 오카무라(益岡村)와의 결혼하여 따라 도쿄로 이사했다. 어머니가 체코슬로바키아로 아들인 토미오와 함께 돌아오기 전까지 생애 첫 10년 동안 일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체코 국적으로 귀화하여 2012년 체코 원로원(체코 상원) 즐린 선거구 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체코 정계에 나서게 된다. 그는 2014년 3월 의회 연설에서 그린카드를 받은 외국인이라도 직업을 얻지 못하면 귀국해야 하며, 체코 내에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우익적인 주장을 펼치며 체코 내, 강성 보수 우익 인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ANO 2011과 SPD, 운전자 당과 같은 연립 정당들은 헝가리 피데스(Fidesz), 마린 르펜의 프랑스 국민연합(RN),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 독일의 AfD 등과 함께 유럽을 위한 애국자(PfE)라는 이름의 EU 의회 교섭 단체를 만들며 우파들끼리 연계하고 있다. PfE 소속 정당들은 하나 같이 EU 통합과 대(對)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바비시는 자신을 평화주의자라 내세우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종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비시의 이력과 그가 총리 1기 때 했던 정책들을 봤을 때, 평화주의보다 체코, 자국 위주의 실용주의적인 면이 더 돋보였던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체코 정국의 안정과 자신이 가질 총리직, 그리고 체코만큼은 LGBTQ와 같은 비상식적인 젠더 놀음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바비시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나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처럼 친(親) 러시아 색채를 대놓고 드러낸적은 없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지원 역시 전면 중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체코는 거기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체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중도보수 연정과 나토 군사위원장 출신인 페트로 파벨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고 있었다. 피알라와 파벨은 2024년부터 서방 각국에서 돈을 모아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사주는 일명 '체코 이니셔티브'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체코 이니셔티브는 체코의 피알라-파벨이 주도한 EU와 나토로부터 탄약과 포탄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당초 80만 발 규모로 시작된 지원 계획을 2025년 말까지 180만 발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것인데 야나 체르노초바(Jana Černochová) 체코 국방장관은 2024년에만 다양한 구경의 포탄 150만 발을 공급했다면서 시작 테이프를 끊었다. 우크라이나는 체코로 인해 155mm 및 152mm 대구경 포탄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했으며 포탄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총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체코 이니셔티브는 EU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차원의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얀 리파브스키 외교장관은 현재 확보된 자금으로 2025년 9월까지 매월 정기적인 포탄 공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ANO 2011의 총선 승리로 인해 체코 이니셔티브는 막을 내릴 것으로 보여 진다. 총선에 앞서 체코 피알라 정부는 반러 조치도 단행했다. 9월 30일 체코 외무부는 안보 우려를 들이대면서 국제공항 6곳에서 러시아 외교 및 공무 여권 소지자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체코 정부의 승인이 있거나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경우에는 입국이 허용되지만, 러시아 정부가 발급한 외교 및 공무 여권의 효력을 통째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조치는 EU 국가에서 체코가 처음이다. 체코 외무부는 이어 지난 8월 1일에는 러시아 내 모든 체코 비자 신청 센터에서 비자 신청 접수를 중단했다. 그러나 바비시는 이를 원상태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여러 인터뷰에서 러시아와의 더 큰 전쟁을 피하기 위해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최근 동유럽에서는 러시아 드론이 침범했던 사례 등으로 대러 경각심이 높아진 상황에 체코의 여당 측은 대대적인 "러시아풍"을 내세우며 안보 위기를 선거 유세의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선동했다. 피알라는 유세 도중 "체코 공화국이 완전한 자유, 번영와 함께하며 확고하게 서방의 한 부분인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또는 동쪽의 어떤 곳으로 전환할 것인가(Otázkou je, zda Česká republika zůstane silnou demokracií, pevně součástí Západu, s úplnou svobodou a prosperitou, nebo se obrátí k něčemu dále na východ, kam zamíří)"를 주장하며 러시아에 대한 적개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민들은 바비시와 ANO 2011의 손을 들어줬다. 체코는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함께 한 배를 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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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체코 총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의 재등장과 대(對) EU, 우크라이나 관련 정책 변화 가능성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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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월 10일은 대만에서는 쌍십절(雙十節), 우창 봉기로 인한 신해혁명(辛亥革命) 114주년
- 청나라 말기인 1911년 당시에는 이홍장과 서태후라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 모두 사라진 상태로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확장을 노리며 넓은 대륙을 잠식해 들어오던 도중에 청나라의 지식층들은 황실을 사수하여 열강들로부터 중국을 방어하자는 수구파와 서구의 영향으로 입헌군주제로 돌리고 영국처럼 의원내각제 가야 한다는 입헌파, 그리고 민주적인 공화정을 열망하는 혁명파 등으로 3분할 되어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여기에 각종 한족과 중화사상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세력, 비밀결사 등이 개입하면서 중원의 혼란상은 날로 극심해져만 갔다. 1911년 5월 8일 황족인 경친왕 아이신기오로 이쾅(Aisin-Gioro Yikuang)을 초대 총리대신으로 출범시킨 청나라의 첫 번째 헌정 내각은 많은 개혁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청나라의 일부 전향적 조치에 기대하고 입헌내각운동을 벌이던 자들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내각에서 한족은 13명 중 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만주족들의 각료 가운데도 수상인 경친왕을 제외하더라도 7명이 황족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개혁과 반대로, 만주족 귀족들과 황족들이 청나라 내, 이권을 완전히 독식하려는 의도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우전부(郵傳夫, 우체-통신부) 대신이었던 성선회(盛宣懷, 성쉬안화이)라는 인물이다. 청나라의 지도층은 성선회의 주도로 민영으로 돌아가던 자국의 철도를 강제로 국유화했다. 그리고 그것을 담보로 삼아 열강들에게 차관을 얻으려고 했는데 이는 고스란히 빚이 되어 쌓여만 간다는게 문제였다. 중국의 장거리 철도가 제대로 부설되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한 이후부터였다. 당시 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예산은 서태후가 이화원 중건과 더불어 회갑연 등에 사용한 예산이었다. 이 예산은 명목상으로 해군예산이었지만 이 중에는 텐진에서 산해관, 봉천(奉天)을 거쳐 길림까지 부설하려던 철도 건설비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때만 해도 해군아문(海軍衛門)에서 철도 부설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철도 건설 예산도 함께 편성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예산 편성도 서태후의 이화원 중건으로 탕진하는 바람에 청나라는 한반도로 대규모 병력을 전개시키지 못해 청일전쟁의 패배를 야기했다. 참고로 청나라가 철도 부설하려고 여순에서 생산했던 6,000톤의 레일은 결국 청일전쟁 중에 일본군에게 전리품으로 넘어갔다. 중국이 건설한 최초의 철도는 1881년 6월 9일 당산(唐山, 현 탕산시)에서 석탄산지 서각장(胥各庄)으로 이어지는 9.7km 구간의 철도였다. 후일 이 철도는 톈진까지 이어졌다. 이 철도는 6월 9일에 개통되었으며 개통일인 1881년 6월 9일은 조지 스티븐슨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이날을 개통식으로 삼은 것은 이홍장의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또한 중국인이 설계하고 공사한 최초의 철도는 첨천우(詹天佑)가 건설한 북경에서 장자커우(張家口)까지 180km의 거리로 이루어진 경장선(京張線)이었으며 1905년부터 1909년까지 건설했다. 북경에서 한구(漢口)까지 경한선(京漢線)이 건설된 정도였다. 그 외에는 북경에서 남경(南京)과 연결된 경포선(京滬線), 북경에서 봉천까지 연결된 경봉선(京奉線)을 1912년까지 건설하는 상태에 있었다. 특히 길이 1,212km의 경한선(京漢線)은 개통 첫 해인 1906년에만 350만 냥이 넘는 수입을 올리면서 철도가 어느 정도 돈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는 철도 건설이 붐이 일었을 정도로 청나라 전국에서 철도 건설 사업이 이어졌다. 신해혁명이 발발하기 직전 청나라의 철도 총연장은 9,000km에 이르렀을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1897년 당시 양자강을 지나는 지역에 철도 관련 부설 이익권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광저우(廣州)에서 한구까지 이어지는 철도인 월한선(越漢線)을 부설하는 것을 제안했다. 40년 동안 청나라를 부국강병 시키키 위해 전력을 다한 성선회는 이를 영국의 중대한 위협으로 판단하였다. 철로 부설권을 영국이 가지게 되면, 청나라는 주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그 상황에서 1900년 미국 자본(미국합흥회사)을 빌려 철도 국유화를 추진했다. 영국에게 받은 차관 400만 파운드를 연 5.9%로 철도 운영을 통해 30년 동안 갚아 나가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일이 잘 된다면 북쪽의 북경에서 내려오는 경한선과 남쪽의 월한선이 이어지면서 북경에서 광저우까지 이어지는 대동맥이 완성되는 것이었고 아마 광동 지역 개발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이 철도 건설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원인이 있었다. 첫 번째, 기술의 문제였다. 신해혁명이 발생한 1911년 당시 월한선 철도는 광저우에서 광동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와 주저우(株洲)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구간이 1911년에 간신히 개통되었고 우한에서 장사를 연결하는 구간의 공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 역사적으로 월한선은 여러차례의 중단 사태를 거쳐 1916년에 광저우 북쪽 삼수(三水)에서 소관(韶關)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완성되었으며 1918년에는 우한-장사 구간이 완성되고 마지막 남은 소관-주저우 구간은 북벌로 인해 국민당 정부가 들어선 1929년에 이르러서야 공사가 시작되어 1936년에 전 구간이 완성되었으며, 중국을 남북으로 철도를 연결시키겠다는 발상은 우한에 양자강 철교가 지어지는 1957년에 완성되었다. 이런 부분들은 지속되는 전쟁과 국내 혼란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두 번째로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와 같은 국유화 작업은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민간 자본으로 실시하는 철도 부설하는 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1903년 당시 사천성(四川) 총독이었던 석량(錫良, 시량)은 횡으로 이어진 철도인 사천-한구를 연결하는 천한선(川漢線)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외채가 아닌 민간자본에 의지하자는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러한 의견을 청나라에서는 "철로간명장정(鐵路簡明章程)"으로 철로의 민간부설을 허가하게 된다. 그리고 1905년 서태후가 총애했던 신하인 장지동(張之洞)은 호북(湖北), 호남(湖南), 광저우의 대표들을 모아 신상회의(紳商會議)를 소집하여 월한철도 부설권을 회수하게 된다. 이에 미국합흥공사에 675만 달러까지 돌려주면서 상인들의 주도로 일부는 관청과 합작하여 대량의 민간철도들이 부설되었다. 게다가 이는 단순히 중국의 유지, 유한 계급들의 금액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서민들과 거지들의 돈까지 모았는데 이것이 후일 폭동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성선회의 입장에서는 민영자본에게 이를 맡긴다는 것은 철도를 오히려 망치는 것이라 판단했다. 성선회의 원칙은 철도는 국력이기 때문에 지분 분할보다는 차관으로 외국자본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투자 회수가 길고 대량의 자본이 필요한 철도 산업이 국영화가 필요하다는 성선회의 견해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민간 주도로 넘어간 이후, 중국의 철도는 더더욱 개설이 늦어지게 된 것이다. 성선회는 장지동을 설득하여 민간 부설권을 회수해 1909년 독일, 영국, 프랑스 은행의 돈 550만 파운드를 빌려 지금의 호남 지방과 호북 지방의 철도 차관 계약을 실현했다. 물론 민간 진영들의 반대는 매우 심각했고 결국 장지동은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사망했다. 성선회는 민간 진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도 국유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차에 성선회가 새로운 내각의 우선부대신으로 오른 것이다. 그는 1911년 5월 민영화된 월한선과 천한선 전역을 국유화하는 것을 조정에 주청했으며 조정은 이를 받아들여 직예(直隷), 호광(湖廣) 총독을 거친 단방(端方)을 내려보내 일을 처리하게 했다. 그러나 갑자기 언제 돌려줄지 모르는 국가 보증만을 남기고 재산이 휴지조각이 된 자들은 여기에 가만 있지 않았다. 심지어 주식을 대신한 공채들은 철도가 완료된 뒤에야 보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4개 국 은행단에 600만 파운드를 연리 5%, 40년 안에 상환하기로 하면서 사천, 광동, 호남, 호북의 염세와 이금, 탄광까지 담보로 맡겼다. 결국 청나라의 민중들에게 있어 철도의 국유화가 오히려 철도를 외세에 팔아먹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일부 지역인 의창(宜昌)에서 만현(萬縣) 구간의 철도 공사는 중단되기도 했다. 결국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 시위가 발생했다. 5월 14일 창사에서 국유화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이를 시작으로 창사에서 주저우까지 철도 노동자들의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각지에서 서민들의 이권수호운동이 발생했는데 이를 보로운동(保路運動)이라고 한다. 이를 조직화된 것이 바로 보로운동회(保路運動會)다. 이어 동맹 휴학과 납세 거부도 나타났다. 특히 성선회를 민족의 역적으로 인식하여 그를 능지처참하자는 분위기가 사천성에서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결국 9월 7일에는 강력 토벌에 나선 경찰들로 인해 보로운동의 수뇌부가 체포되었고, 이에 사천성에서 일어난 10만 명이 넘는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여 경찰과 서민들 사이에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강에 띄운 유동나무 목판인 "수전보(水轉報)"는 수백판이 금강을 따라 떠내려가며 소식이 삽시간에 사천성 전역에 전달되었고 이어 보로운동회의 봉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9월 말 사천 영현(榮縣)에서 첫 봉기가 성공하였다. 이어 사천성의 성도(省都)인 성도(成都)의 도시 기능이 마비되면서 사태는 사천성만으로 축소시키기에는 무리가 되었다. 결국 이를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의 군대가 민중 봉기의 거점인 사천성으로 투입되었고 이로서 호북 지역의 중요한 군사 거점인 우창에는 군대가 비어 있게 되었다. 때마침 좋은 명분을 얻은 우창의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인 공화정을 열망하는 혁명파는 정부군의 파병을 구실로 1911년 10월 10일, 마침내 우창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이 봉기는 우창의 8사단 공병 제8 대대의 부사관과 사병들부터 시작하여 보병, 포병, 사관생도까지 가세했다. 총독 서징(瑞澂)이 도주했고 혁명군은 당일 우창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기반으로 하는 군사 정부 수립을 선언하게 된다. 이 때가 신해년(辛亥年)인 1911년이었기 때문에 신해혁명이라 지칭되고 있다. 신해혁명이 1911년 10월 10일에 일어나 십(十)이 두 번 들어가서 쌍십절(雙十節)이라 붙여지고 중화민국(中華民國), 현 대만 정부는 오늘을 중요한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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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0월 10일은 대만에서는 쌍십절(雙十節), 우창 봉기로 인한 신해혁명(辛亥革命) 11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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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체코 총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의 재등장과 대(對) EU, 우크라이나 관련 정책 변화 가능성 (상)
- 지난 10월 3일, 4일의 양일간에 체코에서 총선이 있었다. 이 총선에서 우파 정당인 ANO 2011이 압승을 거두며 기존 동유럽에서 EU의 영향력에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4년 만에 여당에 복귀한 ANO 2011은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다 2011년에 설립한 정당이다. ANO는 체코어로 '맞아'를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불만족스러운 시민의 행동(Akce Nespokojených Občanů)'의 약칭이기도 하다. 이 정당은 체코 제1의 부자인 바비시가 좌파를 극도로 혐오하여 급조한 정당이었는데 점차 체코 정계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각계를 대표하는 대표 정당에까지 올라섰다. 여기에 바비시의 철학이 결집되어 있는데 우선 국가의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인에 대한 면책특권을 폐지하며, 실업과 싸우고,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볼 때, 당은 종종 극우로 기울어지기 보다는 중도우파 성향에 가깝고, 이러한 부분에 있어 체코 기민당(KDU-ČSL)과 정치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안드레이 바비시는 늘 체코 공화국이 유로화를 채택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ANO는 더 이상의 유럽 통합과 더불어 "브뤼셀 관료주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바비시는 나중에 체코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균형 잡힌 예산을 갖게 되면 유로화를 채택할 수 있다 밝히기도 했다. 이는 약간의 이중적인 면이 있긴 한데 유로에 가입해 있으되, 제3 세계의 동향을 보고 그때가서 움직이겠다는 신중론이 들어가 있다. 필자가 공부하고 연구한 바비시는 경제적으로도, 정치 정책적으로도 매우 신중한 인물이다. 그는 또한 독일과의 긴밀한 유대를 위해 독일과 재정 콤팩트(Fiscal Compact) 조약을 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재정 콤팩트 조약(Fiscal Compact)은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2년 체결한 EU의 협약으로, 회원국의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하, 국가 부채를 GDP의 60% 이하로 유지하는 등 엄격한 재정 준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조세정책 등 일부 분야에서 바비시는 자영업자에 대한 부분 세제를 폐지하고, 취업 연금 수급자에 대한 부분세제의 부활 등 중도 좌파의 요소를 운동 정치에 재도입했다. 그는 또 당초 교육부의 1.1% 인상 제안과는 달리 학교 교사 임금을 2.2% 인상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의료 분야에서 바비시는 공공 의료 보험 회사들의 막대한 지출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ANO의 정치적인 입장으로 볼 때, 정치가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파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ANO 2011을 좌파에 두었으며 정치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중도 우파에 두고 있다. 그러자 안드레이 바비시는 인터뷰에서 ANO 2011은 "사회공감을 가진 우파 정당"이라 언급했다. ANO 2011은 2017년 총선 이전에 유로화 반대, 그리고 EU로 모든 것을 통합하는 문제, 이민 쿼터 등과 같은 유로화에 회의적 입장을 채택했다. 그러나 ANO 2011은 집권 이후 더욱 친 EU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유로화 문제와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반대했다. Echo24의 언론인 다니엘 카이저(Daniel Kaiser)는 EU에 대한 ANO 2011의 입장을 "유로-기회주의(Euro-opportunism)"라 불렀다. 그렇다면 ANO 2011의 수장인 안드레이 바바시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1954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났다. 바바시는 1980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동유럽 혁명이 벌어지는 도중, 1989년에 공산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민주화로 인해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내 상황에서 사업에 치중했고, 유럽의 대형 농화학 및 농기계 기업인 애그로퍼트(Agrofert)를 창업해 억만장자로 동유럽에 몇 안 되는 올리가르흐가 되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볼 때, 바비시의 재산은 4억 달러(한화 약 5,600억원) 정도다. 그러나 안드레이 바비시는 재산을 모을 때에 탈세, 뇌물, 자살로 위장한 경쟁자를 살인하거나, 갑질하는 등의 온갖 부정부패로 고발을 당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재판마다 무죄로 풀려났다. 그리고 2011년 ANO 2011이라는 정당을 창당하면서 대표가 되었다. 바바시는 2013년, 2017년 두 차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여당 대표로 체코의 총리 지위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바비시는 체코 총리가 되었다. 당시 바바시는 친유로에서 난민 수용 반대, LGBTQ 반대, 유로화 화폐 도입 반대 등을 내세웠고,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벌이는 등, 대놓고 친러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2019년, 바비시는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200만 유로의 EU 보조금을 불법으로 지급했다는 고발을 당하게 된다. 이에 관해, 유로 형사재판소에서 바비시는 기소를 당하게 되었고 여기에 저항한 바비시는 법무장관을 해임하고 마리 베네쇼바(Marie Benešová)를 법무장관에 임용하면서 사법 조작 논란까지 불거지게 된다. 바비시는 당시 이를 두고 "나를 끌어내려는 정치적 음모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임하지 않는다(Nikdy neodstoupím, protože je to politické spiknutí s cílem mě svrhnout)."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음해에 저항하기도 했다. 이에 친 EU 세력과 야당이 합세해 바비시 총리의 탄핵을 선동했고, 이에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는 약 25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여 "제2의 벨벳 시위"를 일으키고자 했다. 당시 시위는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공산주의 정권을 종식시킨 '벨벳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러한 시위에도 바바시는 끝까지 버텨냈다. 애그로퍼트는 2018년에만 최소 8,200만 유로(약 1,067억원)의 EU 보조금을 타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보조금 스캔들과 바비시 총리의 ‘이해충돌’ 문제를 지적한 EU 감사보고서가 유출되었다. 필자가 볼 때, 이는 극도의 친러 정책을 이끌고 있는 바비시를 끌어내리기 위하여 EU 측이 브랙시트로 EU를 탈퇴한 영국의 가디언에게 이를 일부러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 가디언은 이를 매우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고, 8,200만 유로의 EU 보조금을 체코의 납세자들이 상환할 처지에 놓였다고 서술하자 이를 본 체코의 시민들이 11월 17일에는 벨벳 혁명 30주년을 맞이해 들불 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NGO 단체가 존재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수백만의 순간(Milion chvilek pro democratii)’, 일명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이라는 단체였다. 이 시위를 선동한 단체의 대표는 벤자민 롤(Benjamin Roll)이라는 인물이다. 벤자민 롤(Benjamin Roll)과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이라는 단체는 매우 수상한 단체다. 벤자민은 카를 대학 복음주의 신학부에서 복음주의 신학을 전공한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다. 그는 2018년에는 동성 결혼 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고 로고스 조직의 지원 호소에도 서명했던 인물이다. 이쯤되면 그는 LGBTQ 추종자에 친 EU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난민 수용에 적극 찬성하고 러시아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인물이다. 이 NGO는 EU 산하에 들어가 있는 단체로, 국제 엠네스티와 더불어 EU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들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단체가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이고, 단장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이다. 마침 2019년 11월 1일 폰 데어 라이엔이 EU 집행위원장이 되어 주도한 첫 사건이 11월 17일 체코 벨벳 혁명 30주년 집회인 셈이다. 이런 정도면 EU가 이 집회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벤자민 롤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정치인은 왜 우리가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일부는 주말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Some politicians don't understand why we're here, and some think we're ruining their weekend. But the fight for freedom and democracy will never end).”라며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 했다. 벤자민 롤(Benjamin Roll)과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은 선거에 불복하여 조만간 다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들은 EU의 지원을 받고 있고, 반(反) 바비시 전선의 최일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 등으로 인해 바비시와 ANO 2011은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져 갔다. 체코 시민민주당(Občanská demokratická strana, ODS)과 체코 해적당(Česká pirátská strana, CPS)의 지지율 합이 50%에 육박하고 둘 다 반(反) 바비시 성향을 갖고 있기에 바바시는 실각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2021년 10월 8일부터 9일 양일간 진행된 총선에서 바비시 총리가 이끄는 ANO 2011이 6석을 잃으면서 패배했고, 바비시는 ODS의 페트르 피알라(Petr Fiala)에게 총리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나게 됐다. 다만 밀로시 제만(Miloš Zeman) 대통령의 내각 인준 거부 사태로 인해 피알라 내각 출범이 지연되면서 보름 정도가 지난 12월 17일에 퇴임하게 되었다. 이후 바바시는 제만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2023년 체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차 투표에서 34.99%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로 진출했다. 그러나 결선투표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현 연립 여당의 지지를 받는 군 출신 무소속 페트르 파벨(Petr Pavel) 후보에게 큰 격차로 밀려 결선투표에서 41.32%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2023년 2월 열린 ANO 2011 집행부 회의에서 그는 더 이상 야당이 집권할 것을 예상하여 미리 구성하는 내각인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예비 총리를 맡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뒤를 이어 제1 부대표인 카렐 하블리첵(Karel Havlíček)이 예비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바비시가 창당한 당이기 때문에 그의 당내 입지는 여전히 강력했다. 결국 1년 뒤인 2024년 2월에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대의원 98표 가운데 88표를 얻어 다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마침 제조업 강국이었던 체코의 제조업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막대한 지원 및 개입으로 인해 시민들의 불만이 상당한 상태였다. 이와 같이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반사 이익을 얻은 바비시와 ANO 2011의 지지율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게다가 바비시는 체코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비판하고 정부의 외교 정책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지지율이 급등했고 결국 2024년 6월 EU 의회 선거에서 7석을 차지하며 제1당에 올랐다. 이는 2025년 10월 총선에서 정권 탈환을 향한 신호탄이 되었으며 결국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 직위 탈환을 앞두고 있다. - 2025년 체코 총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의 재등장과 대(對) EU, 우크라이나 관련 정책 변화 가능성 (하) - 체코의 국제 정세 지형이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더불어 친러로 바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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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체코 총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의 재등장과 대(對) EU, 우크라이나 관련 정책 변화 가능성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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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여당 "조지아의 꿈"의 승리로 끝난 지방선거, 이어 발생한 불복 시위는 미국 NED가 기획한 색깔혁명의 시도인가?
- 조지아의 선거에 이은 선거 불복 시위는 끝이 없는듯 싶다. 이번 10월 4일에 있었던 조지아의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이자 집권당인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이 압승을 거뒀다. 이는 작년인 2024년 10월 26일 개최된 총선과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친 EU 정당인 야당이 맥을 못 추고 있었는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하자 조지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집권당인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 당과 조지아 4개 야당이 치열한 정치적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당시 조지아의 꿈 당은 총선에서 전체 투표수의 약 54%를 얻으며 4차례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전체 150개의 의석 중 조지아의 꿈 당은 직전 총선 결과인 90석보다는 적지만 과반을 넘는 89석을 차지했다. 4개 야권 정당이 뭉친 야권 연합은 총 61석을 획득했다. 야권은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총선 결과에 강력히 반발했고, 선거 다음 날인 10월 27일 선거관리위원회의 결과 발표에 불복을 선언했다. 이와 같은 총선 결과가 알려지자 10월 28일 수도인 트빌리시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조지아와 EU 깃발을 흔들면서 시위를 벌였다. 친서방 성향의 무소속 살로메 주라비슈빌리(Salome Zourabichvili) 전 대통령은 10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은 국민의 표를 훔친 사건이라 비판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현재, 작년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조지아의 서부인 아자리야 지역은 본래부터 친러 지역이었기에 대다수를 석권하는데 성공했고, 관건이었던 동부 지역 또한 몇 지역에서 접전이 있었지만 결국 64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승리를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조지아 선관위에서 55%의 투표용지를 집계한 결과, 조지아의 꿈은 전체 투표의 80% 이상을 획득했으며, 특히 접전이 예상됐던 수도 트빌리시 시장 선거에서 현 시장인 카하 칼라제(Kakha Kaladze) 후보가 73% 이상 개표 기준으로 7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무난히 압승했다. 물론 여당인 "조지아의 꿈"이 압승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이런 압도적인 패배에, 야당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거져 나오는게 있다. 바로 "부정선거 논란"이다. 이전 여론조사에서는 친유럽 성향의 야권이 주장하던 EU 가입에 대한 찬성이 80% 이상을 차지했었다. 특히 13년 전인 2012년 총선에서 조지아의 꿈에게 패배해 정권을 빼앗긴 통합국민운동(UNM) 측이 지방 선거 결과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했다. 조지아 제1 야당인 통합국민운동(UNM)은 전 대통령인 미하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의 정당이다. 이들의 배후에는 미국 국립민주주의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이 있다. NED, 이 간악한 집단은 명목상으로는 ‘NGO’에 속해 있는 집단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집단은 미국 CIA에 막대한 지원를 받고있다. 그 동안 NED 집단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크게 공헌한 집단이고,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 있다. NED가 내세운 인물이 바로 미하일 사카슈빌리이다. 사카슈빌리는 어릴 때부터 미 국무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컬럼비아 대학교와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미국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2003년 11월 23일, NED의 선동과 더불어 사카슈빌리는 친미, 친서방주의자들과 함께 손에 장미를 들고 시위에 나서 셰바르드나제의 정부를 불법적으로 뒤엎었다. 이것이 이른비 "조지아 장미혁명"이라는 CIA의 지원, NED의 기획, 행동대장 사카슈빌리와 UNM의 액션으로 "색깔혁명"을 일으켜 뒤엎어 버린 것이다. 특히 NED는 유럽에서 러시아와 맞서는 매파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유럽에서 러시아에 대한 온갖 악마화를 주도적으로 한 가짜 NGO 단체인 셈이다. 10월 4일 개표 이후, UNM은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와 여당이 조지아 국민의 승리를 훔쳤다(საარჩევნო კომისიამ და მმართველმა პარტიამ გამარჯვება წაართვეს ქართველ ხალხს).”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어 또 다른 야당인 변화를 위한 연합(Coalition for Change)의 니카 그바라미아(Nika Gvaramia) 당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가 ‘헌법적 쿠데타(კონსტიტუციური გადატრიალება)’라고 강조하며, 선거 결과에 불복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에 조지아의 독립 선거 모니터링 단체인 공정 선거 및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사회(ISFED : International Society for Fair Elections and Democracy)는 지방 곳곳에서 유권자들을 협박했고 표를 매수한 행위 등, 부정행위가 여러 건 적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지아 선관위는 지방선거가 각 지역에서 평화롭고 공정하게 실시되었다고 재차 강조했으며 비록 투표율이 41%로 적긴 했지만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참고로 ISFED 또한 EU와 NED의 끈이 연결된 단체다. 그리고 이들은 작년 총선부터 올해 지방선거까지 "러시아가 선거에 개입"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매우 익숙한 상황이다. 얼마 전에 끝난 몰도바 총선에서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선동한 바 있다.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도 어김없이 "러시아풍"을 꺼내 들었다. 얼마 전 체코 총선도 마찬가지고, 동유럽에서 선거는 "러시아풍"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동유럽의 각 집권당들은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강조하며 이를 적절히 이용해 집권을 이어 나가려 한다. 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가지고 EU를 멀리하자는 "급진적 변화(Radical Change)"보다 EU가 있는 상태에서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비하자는 "안정(Stability)"에 포커스를 두었다. 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잇다른 경제 위기에 지친 시민들은 변화를 요구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이를 억지로라도 눌러 오로지 "안정(Stability)"만이 국가와 국민을 구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러면서 소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가 예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동유럽을 공산화 시켰던 것처럼, 러시아 또한 동유럽을 침공할 것이라 선전하여 국민들을 선동한다. 이번 조지아 지방 선거도 마찬가지다. 결국 UNM은 러시아가 개입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을 지지하는 전 국민들이 시위에 참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불법적인 의회에 불참할 것이며, 국제 선거관리단의 진행 하에 총선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조지아의 전 총리이자 '조지아의 꿈'을 창당하고 막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여당의 비선실세인 비지나 이바니슈빌리(Bidzina Ivanishvili)가 나섰다. 그는 명예총재로써 존재하고 있는 인물로 조지아 GDP의 30%나 되는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바니슈빌리는 원래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친러 논란을 지우기 위해 2011년에 와서야 러시아 국적을 포기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조지아에서는 사실상 현 총리인 이라클리 코바히제(Irakli Kobakhidze)는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이바니슈빌리가 실질적인 실권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지방 선거의 승리는 세계적인 사건이며 국민의 뛰어난 역량을 제시하는 지표"라고 평가하며 여당을 두둔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바니슈빌리의 이러한 발언은 조지아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로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야당은 이바니슈빌리가 러시아어로 이 발언을 한 것에 분노하여 여당인 "조지아의 꿈"을 러시아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트집을 잡았다. 결국 야권 세력과 NED 등의 NGO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평화적 혁명'을 구호로 내세워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외치는 것은 평화적 혁명이 아니라 심각한 폭력이 동반된 폭동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부패와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대통령 관저 인근으로 행진했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위는 루스타벨리 대로와 자유광장 일대에 모여 정권 교체와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시위는 현지시간 오후 4시 루스타벨리 대로에서 시작되었다. 시위대는 도로를 완전히 봉쇄하고 조지아 의회 건물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또 다른 그룹은 자유광장 에 모여 성 게오르기 동상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집회를 이어니갔다. 한편, 트빌리시 국립 제1 대학에서 출발한 학생 행진대는 멜리키슈빌리 대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리고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When injustice becomes law, resistance becomes a duty).”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조지아 국기를 들고 “그루지야! 그루지야!”를 연호하며 조국을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극단주의 시위대가 대통령궁 울타리를 넘어 울타리 일부를 파괴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강제 해산에 나섰다. 이처럼 폭동에 가까운 격렬한 시위로 인해 전면 충돌로 비화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처음에는 '평화적 혁명'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대통령 궁의 울타리를 넘으며 경찰과 충돌을 야기했다. 평화시위라도 어떠한 선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와 같은 선을 이미 넘어버렸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대통령 궁 울타리를 시위대가 뛰어 넘어 진입하는 "평화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러시아 매체 RT에서 기가 막힌 장면을 포착했다. 이 울타리를 뛰어 넘어 폭동을 조장하는 자들이 "가면을 쓴 정체 모를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입수한 마지막 5번째 사진이 이들인데 이들은 가장 앞장 서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벌였다. 이렇게 되면 경찰도 흥분하게 되어 있고,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경찰은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려는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 차량 여러 대를 투입하면서 폭도들과 전투 아닌 전투를 벌여 이들을 대통령궁에서 쫓아냈다. 이들 "가면을 쓴 정체모를 남자들"은 근처 카페와 트빌리시 거리 곳곳을 공격하여 창문을 부수고, 가구를 파괴하고, 불을 질렀으며 러시아 국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조지아 내무부는 이번 사태로 경찰관 21명과 시위 참가자 6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이라클리 코바히제 총리는 "부상자 중 경찰관 1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전했다. 부상자 다수가 최루탄, 고무탄 등으로 인해 타박상을 입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내무부는 "시위가 평화적 범위를 벗어나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폭력 행위로 변질됐다"며 주최 측 인사들이 체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결국 UNM 소속 이라클리 나디라제(Irakli Nadiradze) 전 트빌리시 시의원, 야권 정치위원회 소속 무르타즈 조델라바(Murtaz Jodelabar) 전 검찰총장 등 야권 핵심 인사 5명이 정권 전복 선동 및 집단으로 폭력단을 조직한 혐의, 그리고 폭동을 획책한 죄목으로 전격 구속했다. 이들은 조지아 형법으로 유죄 판결 시 최대 9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가면을 쓴 정체모를 남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 "가면을 쓴 정체모를 남자들"이 NED의 맴버들이라 추측하고 있다. 아마 뒤에는 미국 CIA가 최종 보스일 것으로 보여 진다. 6일 현재 시위는 잦아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끊임없이 조지아의 내부분열을 획책하여 제2의 우크라이나로 만들려는 미 행정부의 속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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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여당 "조지아의 꿈"의 승리로 끝난 지방선거, 이어 발생한 불복 시위는 미국 NED가 기획한 색깔혁명의 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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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공원 묘역에서, 42년 전 오늘,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있있다.
- 오늘은 아웅산 테러 42주년. 한국은 한글날이지만 42년 전에는 미얀마 양곤 아웅산 묘지에서 북한에 의한 테러 사건의 비극이 있었다. 아웅산 묘지 공원에는 미얀마의 실질적인 국부라 할 수 있는 아웅산 장군이 잠들어 있는 신성한 곳이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현대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아웅산 묘역 테러사건"이라 불리는데 1983년 10월 9일 이곳 아웅산 묘역에서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을 상대로 북한이 테러를 저질러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1970~1980년대는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제3 세계 외교전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서로 상대방 국가와 단교하고 자기들과 수교를 요구하면서 상대방 국가를 고립시키려고 시도하는 한편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외교적 정통성과 국격, 위세 등을 인정받기 위해 양측이 냉전을 벌이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미얀마는 제3 세계 비동맹 국가였지만 사회주의 이념을 지지하던 국가였기 때문에 북한과 매우 좋았다. 그러나 경제 등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이 시점에는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많은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감안하여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미얀마를 대한민국과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확실히 만들기 위해 1983년 가을로 예정된 동남아시아와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호주, 뉴질랜드 순방에 미얀마를 첫 번째 순방국으로 지정했다. 당시 정부 핵심 관료들, 특히 외교에 밝은 노신영, 이범석 장관 등이 미얀마 방문을 반대했다. 미얀마가 국력이 약한 국가에, 군사 독재 국가의 특성상 외교를 통해 얻을 만한 실리적인 부분과 국제적 위상이 떨어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했고, 결정적으로 북한을 더 지지하는 성향의 국가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과 정상 외교를 맺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북한의 테러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이라 더욱 위험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3년 10월 8일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핵심 참모 및 관료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 수행원 일행은 서울을 떠나 양곤으로 향했다. 전용기가 무사히 양곤에 도착하고 공항에서 당시 미얀마 대통령인 우 산유(U San Yu)의 영접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영빈관에서 양국 정상 간 대담도 나누는 등 첫날 순방 일정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두환의 미얀마 순방 이틀째인 10월 9일의 공식 일정은 오전 10시 30분에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다. 행사를 위해서 서석준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등의 정부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먼저 인야레이크 호텔에서 아웅 산 묘소로 별도 승용차편으로 이동해서 10시 18분 쯤 아웅 산 묘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계철 주 미얀마 대사,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등 나머지 수행원들은 영빈관에서 의전 행렬의 선발대로 10시 10분 경에 아웅산 묘소로 출발하여 서석준 부총리 등 일행들과 최종 합류하도록 되어 있었다. 10시 26분 경 태극기를 단 감색 계통의 벤츠 280SE 차량을 선두로 한 제대 차량이 앞뒤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묘소에 도착한 후 공식 수행원, 기자, 경호원들의 시선이 자연히 이 차에 모아졌다. 창문이 선팅되어 있어 차량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으며 이 차에서 내려 도열에 합류한 이들은 바로 이계철 주 미얀마 대사 일행이었다. 수행원들끼리 간단히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고 이후 수행원들 모두 2열 횡대로 도열했다. 기자들도 촬영 준비를 했다. 아웅산 묘소의 나팔수들은 행사 진행 전 시범 삼아 연주를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웅산 묘소 참배 현장을 직접 볼 수 없었던 북한 공작원들은 애초에 폭탄의 폭파 시점을 전두환의 묘소 참배를 알리는 진혼 나팔 소리에 맞추기로 했었다고 한다. 결국 진혼곡 연주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테러를 진행했다. 나팔수가 시범 연주를 하지 않았으면 스케줄이 늦었더라도 전두환은 폭탄 테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폭발 이후, 한국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기타 수행원들이 부상당하였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뛰어난 경제학자이자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인 김재익(金在益, 1938~1983) 씨도 여기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김재익씨는 대한민국을 오늘의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경제 천재였던 인물이다. 그는 금융실명제, 물가안정화 정책, 정보화 정책, OECD 가입, 수입자유화 정책 등을 입안했고 한국 사회의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하여 금융과 재정을 긴축하고, 수입을 자유화하며, 임금 상승은 생산성 증가의 범위 내로 억제하고,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또한 경제의 능률 향상을 위해서는 개방과 경쟁이 필수적이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졌다. 김재익 덕분에 물가상승률은 20%에서 3.2%로 줄었고 경재성장률이 1980년을 제외하고 모두 10%를 넘었을 정도로 그는 5공 시대에 국가 경제를 활성화시켰던 아까운 인물이었다. 테러 사건 직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당시 미얀마는 군부가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였고 사실 우리보다 북한이 더 가까운 사이였다. 당시 미얀마 외무장관이 탑승한 차량의 타이어가 펑크가 났고, 세계 최빈국인 미얀마 특성상 택시가 주변에 없기 때문에 택시를 타는 것이 늦어지면서 오히려 전두환 대통령의 지각은 불가피했다. 미얀마 외무장관이 도착하지 않으니 전두환이 영접 요원들과 인사하거 향후 스케줄이 늦어지게 된 것이 테러를 당하지 않은 원인이 되었다. 이어 전두환 대통령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주 미얀마 한국 대사이자 비서실장인 이계철 대사가 태극기가 휘날리는 차를 타고 먼저 도착했으며 당시 경호실장과 처장의 시범 연주를 지시했고 진혼곡 나팔 소리가 나오자 전두환이 도착했다고 착각한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터뜨렸다. 그러나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은 참을 수 없는 무례였고, 이에 미얀마 정부를 포함하여 전 국민들 또한 격노했다. 이에 미얀마는 북한과의 국교를 즉시 단절했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로 최초로 북한을 국가 승인까지 취소했다. 이어 테러리스트 3명 중 2명을 사형시키고 나머지 1명 또한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복역 중에 사망했다 전해진다. 이후 아웅산 공원은 2012년까지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2012년 5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방문하여 당시 테러 때 희생된 관료들의 넋을 위로함과 동시 다시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 필자는 2019년 4월 6일에 미얀마 방문 때, 양곤의 아웅산 공원 묘소를 일부러 찾아 헌화했다. 당시 희생된 한국의 정치인과 기타 분들을 위해 짧게나마 묵념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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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공원 묘역에서, 42년 전 오늘,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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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금민영화에 따른 연금개혁문제
- 라틴아메리카의 연금 개혁의 원인은 재정적자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모두 부담하게 되면서 국가의 부채가 쌓이게 된다. 따라서 국가 주도로 인해 연금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연금개혁을 통해 부과하는 방식에서 개인 계정의 적립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연금 개혁은 크게 대체형(Replacement), 선택형(Multiple-choice), 혼합형(Mixed mode), 3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체형(Replacement)은 구세대에게는 부과 방식과 신세대에게는 개인 계정의 적립 방식을 적용시킨다. 선택형(Multiple-choice)은 구세대에게 부과 방식을 적용시키고 신세대에게는 부과 장식과 적립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혼합형(Mixed mode)은 구세대에게는 부과방식을 신세대에게는 부과방식과 적립방식을 혼합시킨 방식을 적용시켰다. 대부분의 국가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경우, 대체형(Replacement) 방식이고 선택형(Multiple-choice)은 페루, 콜롬비아, 혼합형(Mixed mode)은 코스타리카, 우루과이가 이용하고 있다. 연금 개혁 이후 여러 문제들이 개선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우선 개선된 점으로 볼 때,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고, 연기금 투자 수익이 증가하면서 자본시장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연금 개혁 이후 재정적자의 비율이 감소했으며 칠레의 경우 재정적자의 비율이 93%에서 60%로 감소했다. 연기금 투자수익이 크게 증가되었고 연기금 보유 자산의 증가와 연평균 수익률의 증가는 투자 수익의 증대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로 인해 자본시장이 발전할 수 있었다. 남미 각지에서 다양한 민간보험회사가 연금을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경쟁을 통해 민간보험사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보험시장에는 세계적 금융 자본도 진출해 있었다. 이로써 세계적 자본의 발전된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연금 개혁 이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연금의 가입이 낮다는 점에 있다. 개인별 계정의 경우 강제 가입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도입한 이후 연금 가입률이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소득 계층별 연금 가입률의 차이가 있다. 이어 비공식적 부문의 종사하는 사람의 가입률이 매우 낮다는 것에 있다. 고용불안에 놓여 있어 연금 가입을 계속적으로 할 수 없으며 현재 생활유지가 중요해 연금을 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소득이 높은 소득 5분위의 72.4%가 연금에 가입했으나 1분위의 경우 53.1%가 연금에 가입했다. 또한 젠더 간의 차이도 크게 나타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연금 가입률이 낮다. 이는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은 결혼, 출산으로 인해 연금 납부기간을 의미하는 보험료 밀도가 남성에 비해 매우 낮다. 이는 여성의 연금 급여 액 역시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띠라서 저소득 비공식 부문과 여성이 연금 수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투자 수익의 소득계층 격차가 있다. 고소득계층의 경우 과거 수익률 등의 정보를 활용하여 민간 보험을 선택하게 된다. 저소득 계층은 동료의 추천, 펀드의 저명도를 기준으로 민간 보험을 선택했다. 더불어 저소득계층은 고소득 계층에 비해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여 투자 수익률이 비교적 낮았다. 셋째, 과도한 연기금 관리 운영 비용이 든다는 점에 있다. 다른 보험 회사와의 경쟁을 위한 광고비, 마케팅 비가 많이 쓰이고 유지비, 투자비가 기존 국민 연금에 비해 많이 소요된다. 비용의 증가는 가입자 수수료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어 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었다. 안정성으로 인해 적립금의 50~58%가 국채에 투자되고 있다. 그러나 다변화된 투자, 그 중에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해외 투자가 국내 저축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국가가 해외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수익률을 위해서는 다변화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개혁 이후 국민 연금이 개선된 듯이 보였지만 한계점이 더욱 부각되게 된다. 따라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차 개혁을 하게 되었고 공적연금을 강화해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에 2차 개혁을 실행한 대표적인 나라는 칠레와 아르헨티나라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개인별 연금계정을 폐지했으며 칠레는 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연대 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개인 계정 연금을 폐지하는 대신 이를 보완하려고 했다. 연대 연금 제도를 통해 연금 급여가 일정 수준의 이하인 연금 가입자에 대한 소득 보장 제도가 마련되었다. 또한 젠더의 형평성을 위해 여성에게는 유족들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자녀의 수에 따라 일정 기간의 가입 기간을 인정했다. 또한 개인 별 연금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도 이루어졌다. 이에 운영 수수료를 완화하는 개혁도 존재했었다. 칠레의 경우 가장 낮은 수수료를 부과하도록 했으며 또한 수익률 향상을 위해 채권투자 이외에도 새로운 투자를 늘리는 방안도 개혁에 포함되었다. 연금 민영화 이후 남미 국가들에서는 문제 연금 사각지대가 증가하였고 운영 수수료가 기존 부과식 공적 연금 보다 높아 비효율적이라는 점이 제시되는 등, 관리 운영상의 문제도 나타났다. 이후 페루 국회는 조기 은퇴자의 연금 수령 가능 연령을 성별에 관계없이 50세로 통일했다. 페루 국회는 연금 관련법을 개정했다. 이번에 바뀐 조항은 조기 은퇴자의 개인연금(Private pension) 수령 시작 연령으로, 남녀 모두 만 50세 이후부터 개인 연금 수령이 가능해졌다. 페루는 이전까지 여성은 조기 은퇴 시 만 50세부터 개인연금을 수령할 수 있었으나, 남성의 경우는 만 55세가 지나야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페루 국회는 경제 활동을 이어 나가기 어려운 페루 국민에게 개인 연금 수령 가능 연령 개정안이 도움이 될 것으로 파악했다. 단, 만 50세 이상이어도 개인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납부한 가기 부담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했다. 따라서, 법률 개정에 따라 조기 은퇴 이후 개인 연금을 수령하고자 하는 가입자는 지금까지 연금 운용사에 납부한 자기 부담금이 법적 하한선 이상이어야 한다. 한편, 개정 연금법 시행 후 30일 이내에 은행, 보험사, 개인연금 펀드 등 연금 상품을 취급하는 민간 기관은 개정된 연금법에 따라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야 한다. 따라서 페루 국회가 대통령의 종신 연금을 박탈할 수 있는 법안을 가결했으나, 정부는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현 페루 대통령인 페드로 카스티요(Pedro Castillo) 대통령이 취임하기 바로 직전, 페루 국회는 퇴임 후 범법 행위로 기소당한 전직 대통령의 종신 연금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이에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비올레타 베르무데스(Violeta Bermudez) 당시 페루 총리(Prime minister)는 해당 법안이 오히려 대통령 임기 중 더 많은 비리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해당 법안은 다시 국회로 되돌아왔으며, 향후 처리 여부는 아직 미지수인 상태에 있다가 다시 9월 1일에 있어 연금 개혁을 시도하고자 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9월 5일 페루 정부가 청년층의 민간 연금 기금 납입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페루 시위의 트리거가 되었다. 이는 청년층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로, 전체 취업자 중 70%는 임시직과 일용직, 그리고 가족 내 무급 노동, 무등록 영세 자영업 등 비공식적인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다. 페루는 지난 6년 동안 대통령이 5차례나 바뀔 정도로 정국이 불안정하며, 갱단 폭력이 급증하고 마약 유통이 심화되어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이 극심한 상태다. 따라서 임기 말기를 맞이한 디나 볼루아르테(Dina Boluarte) 페루 대통령의 지지율은 2.5%, 의회 지지율은 3%에 그쳤다. 지난 2022년 12월 취임한 이후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명품 롤렉스 시계 여러 개를 뇌물로 받았다는 '롤렉스 게이트' 등으로 논란에 휩싸이고 있었으며 12건의 검찰과 경찰 수사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지난 7월에는 자신의 월급을 10,000달러(약 1,350만 원)로 2배 넘게 인상하는 대통령령을 의결해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젊은 Z세대들의 큰 불만을 야기했다. 수도 리마에서 Z세대 주도로 연금 개혁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것은 그동안 발생했던 페루의 갖은 비리가 쌓이고 쌓인 끝에 폭발한 분노였다. 페루의 18~29세 인구로 구성된 Z세대는 페루에서 전체 인구의 27%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반부패, 반정부 시위는 인도네시아, 네팔과 마찬가지로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9월 28일 시위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들이 리마 도심의 정부 청사 쪽으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돌과 화염병, 폭죽을 던지고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맞대응했다. 이처럼 충돌 과정에서 기자 1명, 경찰 1명을 포함해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29일에도 운송업 종사자 수백 명과 청년들로 구성된 시위대들이 행진하다가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하면서 폭력 진압을 변질되면서 강제로 해산되었다. CNDDHH 소속 마르 페레스 변호사는 "시위할 권리를 존중할 것을 경찰에 촉구한다. 대량의 최루탄을 발포할 정당성은 없었고, 더구나 사람들을 공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Instamos a la policía a respetar el derecho a la protesta. No había justificación para disparar grandes cantidades de gas lacrimógeno, y mucho menos para atacar a la gente)."고 비판했으며 잠시 강제로 진압되었다 해도 다시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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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금민영화에 따른 연금개혁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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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현재까지 러시아의 언어 및 문화 정체성을 대변하는 러시아 버스커들
- 러시아 거리 곳곳에서 버스커들의 연주에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며 평온하기도 하다. 러시아 버스커들은 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현재까지 러시아의 언어 및 문화 정체성을 대변하는 음악으로 여겨지게 된 ‘바르드 음악(Бардовская музыка)’의 후예들이다. 바르드 음악은 다른 말로, 영어의 ‘작가(Author)’와 그 뿌리를 같이하는 단어를 포함한 ‘작가의 / 작가주의적 음악(Авторская музыка)’이라고도 불린다. 이 표현에서 느껴지듯, 바르드들은 연행자의 이미지보다는 글을 쓰는 문학가의 정체성으로 비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점에 가면 시집의 형태로 출판된 바르드들의 작품집이 음악이 아닌 시 코너에 꽃혀 있으며, 작곡가를 뜻하는 캄포지타르(Композитор) 대신 시인을 의미하는 단어(포엣·Поэт)로 분류된다. 바르드들은 그러니까 ‘시 같은’ 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들인 셈이다. 러시아 친구들을 만나보면 푸시킨으로 대표되는 유구한 러시아어 문학의 전통에 큰 자부심을 표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바르드 음악은 이러한 러시아 시문학 역사의 한 자랑스러운 부분인 셈이다. 어떤 경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이오시프 브로드스키(Иосиф Бродский)와 같은 시인들의 글이 바르드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했다. 내 영혼은 지치지 않고 어둠으로 서둘러 가며 다리 위를 스쳐 지날 것이네 페트로그라드의 안개 속에서 4월의 부슬비 속에서 눈은 머리 아래 있고, 목소리 하나가 들릴 것이네. - 바르드들의 노래로 불려온 브로드스키의 시 《스텐시(Стэнси)》 중 ‘벗이여, 안녕히’ 바르드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바르드 음악이 독자적인 장르로 대두된 건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민족음악학자 제임스 도트리(James M. Daughtry)에 따르면, 혹자들은 러시아 땅에 존재해 오던 ‘노래시’의 형태와 바르드 음악의 기원을 연결 짓는다. 또 다른 이들은 ‘로만스(Romans)’와 같은 고유 장르들이 20세기 중엽 서구에서 유행한 기타 중심의 작가주의적 음악과 만나 태동한 일종의 국제적 현상으로 여긴다. 어떤 이들은 바르드 음악이 스탈린 시대 집단수용소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부른 노래들에서 기원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인텔리 젊은이들의 하위 문화에서 바르드 신(Сцена)이 태어났다고 여긴다. 바르드가 자유 · 비판 · 젊음의 하위 문화와 연관된다는 시각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Владимир Высоцкий)나 고려인인 율리 김(Юли Ким) 같은 대표적 바르드들의 노래 속에 있는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그들의 저항운동가로서의 행보들을 보면 수긍이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바르드 음악들이 1980년대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비공식적으로만 유통되었으며 여러 핍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별과 땅에 대한 애착, 민족애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다루어지기에, 바르드 음악을 저항과 휴머니즘이라는 특정 소재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러시아 시의 문학적 관습이 깊숙이 반영된 가사 쓰기와, 7현 기타 전통에서 나오는 특유한 화성과 멜로디에서 바르드 음악의 특징을 찾는 것이 보다 합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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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현재까지 러시아의 언어 및 문화 정체성을 대변하는 러시아 버스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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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토에서 몰디브를 마시며
-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을 TV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시청했다. 영화 끝 장면 “우리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마시자!”라는 대사가 지금 우리 사회에 꼬여있는 정치 현실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정이 씁쓸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이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법관은 구속하라고 하고, 어떤 법관은 석방하라고 하는 세상이니 어떤 법관의 판단을 믿을 것인가? 세상은 그렇게 둘로 나누어진다.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 어느 한 편은 법이 살아있다고 하고, 또 다른 어느 한 편은 법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는 말과 대상의 일치가 어긋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시적 언어의 향연은 분명 아니다. 영화 <내부자들>은 정치인, 언론인, 재벌, 깡패가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한 단면을 고발하고 있다. 10년 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깡패 대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이 그 역을 대신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돈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이 뭉쳐서 권력을 잡으면, 그 사회가 바로 독재사회이다. 우리는 다행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그러한 독재사회의 탄생을 막았지만, 영화 <내부자들>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여전히 그런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영화에서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현 역)는 유력 대통령 후보 정치인 장필우(이경영 역)와 유명 신문사 주간 이강희(백윤식 역)의 도움으로 조폭 두목이 된 자이다. 그는 대부업체는 물론이고 나이트클럽, 룸살롱, 연예기획사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운영으로 그 세계에서 회장님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재벌 오현수(김홍파 역)가 장필우에게 준 비자금 파일을 활용하여 더 큰 이덕을 얻으려고 하다가 그것이 발각되어 오른손이 짤리고, 폐인으로 살아가면서 장필우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또 한편에서는 장필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칠 것을 예감한 민정수석 오명환(김병옥 역)은 특수부 부장검사 최충식(정만식 역)에게 장필우를 수사할 것을 지시한다. 최충식은 경찰 출신 검사 우장훈(조승우 역)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 우장훈은 경찰에서도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서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검찰로 옮겼지만, 검찰조직에서도 줄도 없고 빽도 없는 무족보 검사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직속상관 최충식에게 충성을 바쳐 일하고 있었다.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검찰조직에 충성을 다했다. 그런 그에게 거물 정치인 장필우에 대한 조사는 자신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장훈은 장필우를 조사하다가 안상수가 오현수의 비자금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파일을 확보하려고 그에게 접근한다. 우장훈이 안상수에게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는 복수를 원하고 나는 정의를 원한다. 나는 검사니깐!” 하지만 우장훈은 검사니깐 정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정의라는 가면을 쓸 뿐이었다. 영화 속에는 우장훈이 피고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심문으로 말미암아 피고인이 자살하는 장면도 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우장훈은 고압적인 자세를 연출한다. 우장훈이 보여주는 영화 속의 케릭트는 정의와는 무관했다. 이 땅의 모든 검사가 우장훈과 같지는 않겠지만, 많은 검사들이 우장훈과 유사한 행동을 하리라 짐작된다.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는 정의의 이름으로 부정의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검사 우장훈이 언론인 이강희를 심문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 장면에서 이강희의 대사도 의미심장했다. 그는 우장훈에게 팩트만 말하자고 하면서 “말은 권력이고 힘이다. 누가 깡패가 하는 말을 믿겠는가?”라고 한다. 그는 언론을 이용하여 안상구와 관련이 있는 여성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 원인을 안상구의 강간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자살로 보도한다. 하지만 여성의 죽음만 팩트일 뿐, 그녀의 죽음은 타살이었다. 언론의 왜곡 보도는 사실을 허위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그 힘은 막강했다. 또한 그는 안상구가 청부살인업자였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면서 안상구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자회견을 한 안상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면서, 자신은 모든 의혹에서 풀려난다. 오늘날의 언론도 팩트를 왜곡하면서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또 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장필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우장훈이 검사직을 박탈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우장훈은 이강희를 찾아가서 다시 검사직을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이었다. 영화 제목 ‘내부자’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우장훈은 언론인 이강희와 유력 대선후보 장필우, 재벌 오현수와 함께 고급 요정에서 나체로 등장한 접대부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그곳에서 오현수는 이강희에게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돈으로 안되는 것이 어디있노? 너도 내 돈으로 글도 쓰고 밥도 묵는 거 아이가!” 그 장면이 모두 녹화되어 SNS에 퍼진다. 그것으로 장필우와 이강희, 오현수는 종말을 맞이한다. 우장훈도 검사직을 버리고 변호사로 살아간다.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온 안상구가 우장훈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여의도 건물을 바라보면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마시자!”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의 경계가 모호함을 상징한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안개는 악이 가장 좋아하는 은신처다. 두려움이라는 증기가 만들어낸 안개는 악의 냄새를 풍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불안의 기원』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두려운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함이고, 그로 인한 무감각과 무관심이다. 그 속에 조용한 독재는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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