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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물어 가는 2025년의 마지막 즈음, 2026년의 국제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2025년 말 세계는 전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불안정한 국면에 놓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중동과 동북아에서도 긴장이 누적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식 거래외교로 유럽과 거리를 두며 변수가 되고, 중국은 유연한 이중전략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 유럽은 분열과 재무장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은 외교 복원에 성과를 냈지만 남북관계는 정체돼 있다. 국제정치는 가치보다 이익이 우선되는 선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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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1
  • 자유의 위기와 자기 진실성의 윤리
    본 글은 서구 자유주의의 역사적 흐름과 한국 사회에서의 왜곡된 이해를 짚어보고, 현대 자유주의가 직면한 이기적 개인주의와 양극화의 문제를 비판합니다. 저자는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사회』를 통해 개인주의 팽배, 도구적 이성의 지배,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세 가지 불안을 진단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기 진실성(본래성)의 윤리'를 제시하며, 인간이 고립된 존재가 아닌 타인과의 연대 및 '존재의 거대한 고리'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상호 인정과 공정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파편화와 배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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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2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 이후 국제정세
    2025년 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우세 속에 평화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영토 문제와 병력 제한 등 핵심 쟁점으로 진전은 더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조건으로 나토 가입 유보안을 제시했고, 마이애미 실무 협상이 향후 전개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럽의 무기력함 속에 동아시아는 중국-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며, 한국은 북러 밀착과 미중 갈등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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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훗날 문제 삼을 가능성 높은 러시아 지배하의 쿠릴열도
    러시아가 쿠릴열도 남단 이투루프·쿠나시르 섬을 대규모 군사도시로 개발하며 러일 영토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해 일본은 여전히 4개 북방도서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경제특구 지정과 군사기지 조성으로 실효 지배를 강화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국내 정치 결속과 외교 전략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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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0
  • 프랑스 마린 르펜의 체포와 피선거권 박탈의 적법성
    프랑스 대법원이 마린 르펜에게 징역 4년(2년 집행유예)과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하면서 2027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졌다. 르펜은 EU 자금 횡령과 보좌진 허위 고용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 관할과 형법 적용의 적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영향이 작용했다는 ‘정치 보복’ 의혹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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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9
  • 트럼프의 관세율 인상에 따른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시아의 현황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국가에 10% 이상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는 46%, 캄보디아 49%, 태국 36% 등 동남아 주요국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중국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라벨갈이’ 수출을 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베트남은 이에 나이키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다.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전략이지만, 결과적으로 동남아의 미중 균형과 인도·태평양 전략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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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8

실시간 Nova Topos 기사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1부)
    키르기스스탄의 총선은 앞으로 보름 (15일) 정도 남았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법률과 내각 법령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법령에 따라 오후 10시까지 축하 행사와 오락 행사, 카페, 레스토랑, 식당, 나이트클럽의 영업을 마쳐야 한다고 밝히며 이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전원을 차단할 것이라는 독재국가도 하지 않을 조치를 발표해 깜짝 놀랐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 시는 카페, 레스토랑, 바, 클럽, 연회장 및 기타 시설을 포함한 음식 서비스 시설,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장소의 관리자는 의식,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금지한다고 밝혔으며 전기를 소모하는 모든 기기, 에너지 집약적인 기기(전기 스토브, 히터, 오븐 등)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전원을 꺼야 하며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시끄러운 음악, 조명 등 시민의 공공 안녕을 방해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개최하는 것도 금지된다고 하였다. 주거용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시설에서 전기 발전기를 사용하는 것만 허용된다고 했다. 비슈케크의 스베르들로프스크 지역에서 법을 준수하기 위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업소를 급습하는 조치들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후 10시 이후 전력 절약 결정에 따라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처 : 한인일보) 이런 공지는 키르기스스탄이 전력이 부족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기를 사오는 문제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사실 키르기스스탄은 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매우 역동적인 시민성을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유일의 색깔혁명이 일어난 곳이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재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사드르 자파로프(Садыр Жапаров)가 제3차 색깔혁명으로 인해 2021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서서히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파로프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2005년에 발생한 키르기스스탄 첫번째 색깔혁명인 튤립폭동 때였다. 이 색깔혁명으로 인해 아스카르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자파로프는 그 해 총선에서 이식쿨 주(州)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에 진출헤 쿠르만베그 바키예프(Курманбек Бакиев)를 지지했다. 그러나 제2대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에 취임한 바키예프는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를 해산했고 2007년 총선에서는 강제로 야당을 원외정당으로 밀어내 버리는 최악의 헌정유린을 저지른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인 자니시베그 바키예프(Жанисибек Бакиев)를 국가안보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키르기스스탄 헌법을 위반한 족벌 정치였다. 바키예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지만 그의 족벌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껴 비서실장 직위를 던져 버리고 야권으로 전향한 메데트 사디르쿨로프(Медет Садыркулов)의 암살을 지시했다. 이 또한 야권 의원의 암살을 사주한, 불법행위이다. 또한 그의 아들 막심 바키예프(Максим Бакиев)는 2009년 10월에 신설된 중앙개발투자혁신청장을 지내며 공유 재산 불법 사유화를 비롯해 여러 비리를 저질렀다. 특히 이중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마나스에 있는 중앙아시아 유일의 미군 기지인 미 공군 기지에 연료를 판매하는 계약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렀는데 당시 러시아는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대한 폐쇄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바키예프는 미군 기지에 이와 같은 러시아의 압박을 이유로 매우 높은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미군에게 기지를 사용하는 협상을 체결했다. 여기에 나온 차액의 상당수를 가족이 운영하는 국영 기관을 통해 빼돌렸는데 이같은 부패행위는 러시아와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된다. 러시아로써는 중앙아시아의 미군 기지 폐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고, 미국은 자국 군대가 주둔하는 수수료의 너무 비싸 분노했다. 이후 2009년 7월 치러진 대선에서 바키예프는 77.4%를 득표해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 또한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 해 4월에는 수도와 전기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비슈케크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해 싱 위가 발생했다. 바키예프는 군경으로 하여금 비슈케크의 정부청사 앞 시위대를 향해 실탄 발포를 허가했고, 이로 인해 8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매우 폭력적으로 변해 정부와 국회, 검찰청 건물을 점거했다. 이에 야당 아타주르트(Ата-Журт)의 대표 로자 오툰바예바(Роза Отунбаева)는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바키예프의 탄핵을 통과시켰는데 바키예프의 충견이었던 자파로프가 맹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오툰바예바에 의해 축출되고 키르기스스탄 남부 오쉬로 쫓겨나고 말았다. 자파로프는 이후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자 잘랄아바트 출신인 캄츠베크 타시예프(Камцбек Ташиев)와 함께 남부지방인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게다가 오쉬와 잘랄아바트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친(親) 바키예프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었고, 이 지역은 바키예프의 주 거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는 바키예프와 현 대통령인 자파로프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한편 비슈케크에서는 로자 오툰바예바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 중앙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일한 여성 대통령인 오툰바예바는 보수적인 전통 유목민 체계의 키르기스스탄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래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 출신이지만 키르기스스탄 초대 대통령인 아스카르 아카예프가 그녀를 외무부 장관으로 세웠다. 그녀는 거의 숙청당해 별로 없던 개국 대통령인 아카예프파의 남은 정치인 중 하나였고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아카예프파의 고위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녀가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이유 또한 그녀의 뒷배경에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아카예프는 오툰바예바를 미국 대사로 보낸 바 있었고, 그녀는 미국 정가와 자주 만남을 갖고 친교를 쌓다가 영국으로 가서 주영대사까지 지냈다. 그리고 조지아 주재 UN 특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영국의 관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카예프가 축출된 이후, 아카예프 산하에 있던 각료둘은 바키예프 대통령에 의해 축출을 당했는데 그녀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았다. 막심 바키예프가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부당한 수수료를 챙긴 것을 폭로하여 비난한 인물이기도 했고, 2차 튤립폭동 당시 바키예프를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우게 도운 것도 미국이었다. 이 정도면 이 2차 튤립폭동이라 불리는 색깔혁명의 뒷배경은 미국이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르기스스탄 제4대 대통령인 로자 오툰바예바는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꽂아 놓은 "트로이 목마"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슈케크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툰바예바 정부의 영향력이 매우 약했다. 특히 2010년 5월 13일에는 바키예프 지지자들의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는 사태도 일어났는데 바키예프와 그 지지자들의 배후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있었다. 바키예프가 축출되었을 때, 러시아와 친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카셴코는 바키예프 세력에 대해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루카셴코는 민스크의 대통령 궁에 쿠르만베그 바키예프 대통령을 식사에 초대하고 그를 친구처럼 아꼈다. 둘의 나이가 겨우 두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현재까지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이처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지역 패권 장악 의도는 시민 혁명의 선거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혹은 선거활동을 하는 NGO 단체들을 재정적, 도덕적, 이념적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제2차 튤립폭동은 그러한 차원의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보여주는 일례로 자리 잡고 있는데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시위, 2005년 키르기스스탄 제1차 튤립폭동, 2008년 조지아 장미 시위, 2010년 키르기스스탄 제2차 튤립폭동 등으로 주기적으로 나타난 색깔혁명의 시도가 이를 방증한다. 색깔혁명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과 러시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색깔혁명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본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강화되어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 러시아의 국가 이익이 침해받거나, 과거 러시아의 앞마당인 구소련 국가들 지역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약화될 경우, 지역 패권을 둘러싼 미국 및 서방 세력과 러시아 간의 갈등은 지속된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남부와 비슈케크의 지역 갈등은 이러한 패권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키르기스스탄 남부는 친러시아 세력이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남부 지방의 혼란은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의 민족 분규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들은 우즈벡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이 면해 있기 때문인데 바키예프 지지세가 강한 키르기스인과 오툰바예바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우즈베크인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오툰바예바 정권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내의 비판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툰바예바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제3차 튤립폭동의 도화선이 된다. 2010년 10월 총선이 실시되었고 바키예프의 지지자들이 창당한 아타주르트가 오툰바예바의 사회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서 제1당이 되면서 여소야대가 된다. 오툰바예바는 아타주르트 및 사업가 출신 오무르벡 바바노프(Омурбек Бабанов)가 이끄는 레스푸블리카당(Республика партия)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였고, 바바노프가 새 총리가 되었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오툰바예바는 2011년 같은 사민당인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에게 대권을 넘기고 퇴임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키르기스스탄은 역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대한민국의 광학 판독 개표 장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 즉 전자개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고 투표자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 행위는 여전히 횡행했다. 여기에서 터진 가장 큰 문제는 쿰퇴르(Кумтөр) 광산 문제다. 이식쿨 주 남쪽 천산 산맥에 있는 쿰퇴르 금광은 캐나다 기업이 소유한 금광으로 키르기스스탄 GDP의 12%를 창출하고 있었다. 시르다리야 강의 수원지에 해당하는 빙하 밑에 위치한 쿰퇴르 광산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이전부터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자파로프는 노동자들과 함께 비슈케크에 집결하면서 금광의 국유화를 요구했다. 자파로프가 이끈 시위대는 2012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궁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그는 무력으로 정권 교체를 시도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석방되었다. 이후 카라콜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가 주지사 납치를 시도하자 그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의해 수배 명단에 걸리게 되었고, 자파로프는 키르기스스탄을 떠나 키프로스로 망명했다. 2017년 키르기스스탄으로 입국을 시도했으나 입국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납치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긴 투옥 생활을 하게 된다. 2016년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가 총리가 되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는 같은 당의 젠베코프를 지원했고, 젠베코프가 54.7%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이후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와 사이가 틀어진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차후로 설명하고자 한다.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거 이후 다시 부정 선거 시비로 대규모 집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젠베코프 대통령 역시 사임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들은 자파로프를 비롯해 여러 수감된 정치인들을 석방했다. 이와 같은 모진 키르기스스탄 현대사의 풍파를 겪은 자파로프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짙은 상태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통제와 탄압, 그리고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와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 사디르 자파로프 3자 간의 권력투쟁기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3부) - 사디르 자파로프의 사회 안정화 & 언론 및 사회 탄압의 양면성 사진 : 키르기스스탄 제3차 튤립폭동, 출처 : KATEHON 키르기스스탄, 튤립혁명, 튤립폭동, 중앙아시아 색깔혁명, 키르기스스탄 현대사, 사디르 자파로프, 오툰바예바, 미국, 러시아, 아카예프, 바키예프, 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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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7
  • 일본의 유일한 소수민족 문제, 아이누족과 훗카이도(北海島), 사할린, 쿠릴열도까지 포함된 역사 문제
    아이누족은 홋카이도·사할린·쿠릴열도에 살던 원주민으로, 메이지 정부의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전통 문화·언어·영토를 상실하고 사회적 차별에 시달려 왔다. 일본은 19세기 후반부터 아이누를 ‘구토인’으로 규정하고 관습과 생활을 금지하며 강제 이주를 시행했다. 현재 아이누족은 약 3만 명으로 파악되지만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과 낮은 교육률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지만, 최근에는 언어 교육, 전통 의례 복원, 문화 보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며 정체성 회복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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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5-11-26
  •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부패스캔들, 불법적인 그의 권력에 고비가 오는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최측근 티무르 민디치가 연루된 대형 부패 사건이 나부(NABU)의 대규모 수사로 드러나며 정치적 위기가 커지고 있다. 민디치는 젤렌스키와 가까운 인물로, 에너지 인프라 발주 과정에서 거액을 챙기고 해외로 도피했다. 러시아 공습으로 전력난이 심해지고 전황도 악화되는 가운데, 서방의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용도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미국·EU의 의중과 맞물린 이번 사건은 젤렌스키 권력의 중대한 시험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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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6
  • 중-일 정상회담 이후 중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일 정상회담 이후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건드리면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었다. 중국은 한일령,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 상임이사국 저지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일본은 강경 기조를 유지하지만 내각 내 친중 인사 부재와 보수층 결집 전략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관계 회복은 당분간 어려우며 한국은 중립적·실용적 균형 외교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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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6
  • 국제 정치의 속성과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한민국
    국제 정치의 속성과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한민국 한국인들 상당수를 보면 전쟁에 대해 많은 감성과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총에 맞아 머리 터져 죽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날 밤에 그 죽은 사람이 얼굴이 떠오르고 계속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되뇌어서 돌아다닌다. 그것을 벗어나면 평소와 같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밤마다 꿈속에서 나오고 결국 불면증 때문에 폐인이 된다. 이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사라질 수는 있겠지만 천둥만 치면 총이나 포를 쏘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깜짝 놀란다. 천둥이 바로 트리거가 되어 아직 심리적으로 잔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죽을 때까지 갖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한다. 전쟁이 터지면 많은 인명이 죽는 것은 당연한거고 인권유린, 전쟁범죄,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것, 끝도 없이 악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인거다. 거기에서 국제법 등을 다 지켜가며 인간적 다 따져가며 하는 전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가 했든, 그런거 하나 하나 다 지켜가며 하는 전쟁이 있던가? 전쟁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인권 유린인데 젊은 군인의 목숨과 약자 및 민간인들의 목숨,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의 목숨은 공평하게 1개 밖에 없고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목숨이 없다. 그 안에 고결한 도덕을 따지는 이상론들은 그저 상대방을 더 나쁘게 비난하는 선전도구이자 국제 정치적, 외교적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장치일 뿐, 아무 의미없다. 전쟁이란, 터지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하기 때문에 성역도 없고 도덕도 없고 서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만 있다. 그래서 전쟁은 늘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인권 유린이니 전쟁 범죄니, 도덕성, 불쌍하다는 감성 따위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어제 내가 러시아에서 일본에 제기한 사할린 학살, 중국이 오키나와에 원주민 언급한 것 등은 각 국가들끼리의 정치적 기싸움이다. 그러더가 선도 넘는 것이고, 관계도 악화되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전쟁에 돌입하지 않는다. 하는 척, 긴장감만 올려 놓고, 각자 자국의 국내, 외적인 정치적 수사를 통해 입지를 강화하거나 상대를 견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내가 됐든, 국제가 됐든, 관계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발언들을 자주 하여 국제적으로 상대를 자극한다는 것은 국내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외부로 환기시키며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정치적 권력 기반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게다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핸디캡이 있다. 일본 사회는 다들 잘 알다시피, 여성에게 그리 좋은 사회는 아니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매우 보수적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총리가 되었으며 총리로써 권력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단합된 질서가 필요하다. 일본 국내의 권력 구도와 질서 확립은 그녀가 뭔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튼튼한 기반이 된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약점은 그런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것에 있다. 그러려면 그녀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있는 "단합된 질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확고한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안보 문제"다. 물론 미국이 원한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계속 자극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에서 어제 강경발언을 했어도 이전 총리들에 비해 그 강도는 약했다. 그 이유는 사할린에 가스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게는 적당히 그 발언을 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 러시아 또한 지금까지 하는 것으로 봐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그러면 만만한 나라가 어디일까? 바로 중국이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다카이치 총리가 모를리 없다. 그러나 그녀의 국내에서의 취약한 입지 등을 생각한다면 그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 가장 큰 한 방이라 볼 수 있다. 그 역린을 건드리면서 중국이 발끈하면 그녀는 일본 내 국민들과 정치권, 군권 등의 단결을 요구하게 되고, 이렇게 단결된 힘은 그녀의 정치권력 구축에 큰 원동력이 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중국에 대놓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하는 미친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도 중국에 희토류에 약점이 잡혀 있다. 적당히 수위조절하면서 긴장감을 불어 넣어주고, 그로 인해 일본 내 그녀의 정치 권력의 입지가 단단해지면 그 때부터 관계 개선하는 측면으로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당장에 발끈하겠지만 이같은 다카이치 총리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상대의 발끈을 유도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만들면 그때부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잡는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적당한 기만(Deceiver)과 위선(Hypocrisy)이 서로 윈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정치는 절대로 순수하게 보거나 접근하면 안 된다. 한국에게 부족한 것은 어줍잖은 순수함으로 접근한다는 것인데 국제 정치에서 그렇게 접근했다가는 조선처럼 되고 말 것이다. 세계 역사와 국제 정치, 외교를 평생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나쁜놈이 가장 정치를 잘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 국의 지도자들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사진 :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국제정치, 일본, 대한민국, 중국,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정치, 국제정치의 속성, 하나의 중국, 러시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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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6
  • 최근 일본-중국 간의 외교 신경전을 두고, 필요한 것은 한국의 중립성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외교적 중립성이라는 것 자체를 아예 모르는 것 같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발언하자, 중국 오사카 총영사 쉬첸이 "다카이치의 목을 베겠다"고 했다. 이는 일본이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역린을 범한 것이고, 최악의 외교적 결례를 일본이 먼저했다. 이는 내가 러시아를 편들고 있기 때문에 중국 편을 드는게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양쪽을 판단한 것이다. 일본이 무엇이건데 대만의 유사시에 자위대를 활용할 것이라는지, 국제적인 인식 및 대만에 관한 국제법으로도 대만은 엄연히 중국과 한 몸이다. 대만과 중화민국으로 수교한 국가도 몇 없으니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 나라도 몇 없다. 공식석상에서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는 올라가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고, 대만 국가인 중화민국국가(中華民國國歌) 또한 공식적으로 부를 수 없다. 또한 대만은 해외에 대사관, 영사관을 둘 수 없고, 대신 대표부를 두는 것 정도만 허용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중국에게 한 내정간섭이고 권리침해다. 미국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있는데, 일본이 무엇이건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스르고,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인가? 외교관이 타국 총리를 참수하겠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뱉은 것은 도가 지나친 것은 맞지만 이는 일본이 넘어서 안 되는 레드라인을 넘어 먼저 도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를 편들어 애써 중국의 발언을 같이 비판할 필요는 없다.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미국도 넘지 않는 선을 일본이 넘었다. 다카이치는 중국의 대만 해상봉쇄 시, 일본이 존립사태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명확히 밝혔는데 이는 대만을 잃으면 오키나와가 사정권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대만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일본은 이중적인 입장을 버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존립사태위기에 직면했다며 대만 유사시 자위대를 동원한다는 것이다. 정말 중국과 겨루고 싶다면 다카이치는 "하나의 중국"은 위법이니 이를 깨고, 대만을 지키겠다고 정식으로 나서며 해상 자위대를 펑후 일대까지 파견하여 포를 진먼으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다카이치는 지금까지 그 어떤 액션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일종의 블러핑 수준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청나라를 깨부순 청일전쟁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과거의 청나라가 아니다. 청나라 수준의 무력을 지닌 국가였다면 서구 세력이 이미 20세기 초처럼 중국을 잠식했어야 맞다. 그런데 지금 서구 세력이 중국 어딘가를 잠식하고 있는가? 중국에 남아 있는 서구의 식민지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 한국 보수 진영들의 수준은 1894년, 즉 130년 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총영사의 참수 발언은 그가 히스테리를 부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침해한 역린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이 일본에 배치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극동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가혹한 보복"을 천명했다. 미국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은 9월 11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미국-일본 합동 군사 훈련의 틀 내에서 미국 이와쿠니 군사 기지에 배치되었는데 이는 아직 철수하지 않았다. 타이폰 시스템은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포함한 중거리 및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상 이동식 발사 시스템이다. 토마호크는 러시아와 미국 모두 2019년에 철수한 역사적인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에 따라 금지되었던 무기다. 이를 발사할 수 있는 발사대인 타이푼 시스템이 이와쿠니에 설치되었다면 사할린 지역에 러시아의 핵무기를 배치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전쟁의 긴장을 불어넣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이다. 그리고 중국은 희토류를 쥐고 있다는 것을 다들 엄청나게 간과하고 있다. 사실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중국이 쥐고 있는 희토류 목줄을 풀어준 것은 미국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대두 한 번 사주고, 희토류 수출은 유예했을 뿐이고, 미국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펜타닐 관세만 낮춰줬을 뿐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중국이 기술패권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하나도 없다. 여전히 중국제가 수출되고 있고, 공장이 풀 가동되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무슨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하는가? AI 기술 또한 중국이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미 AI 기술은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지 꽤 됐다. 그런데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도 최악인 시기를 겪었던 90년대에는 미국처럼 셧다운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의 셧다운에 대해 보수 진영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이는 자신들이 우상처럼 여겨왔던 미국의 위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고, 그것을 언급하면 자신들이 불리하기에 감추는 것이다. 셧다운이 종료되면 그때서야 언급할 것이다. 미국은 셧다운을 극복한 역시 초강대국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진정한 초강대국은 셧다운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셧다운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극복하는 것 자체가 자랑이 아니다. 정부 시스템이 올 스톱 된 것을 극복한게 무슨 자랑으로 여기는 것인가? 이는 그만큼 미국 내정이 혼란스럽다는 증거다. 그리고 일본이 강경노선으로 돌아서니 중국이 공포에 질렀다고 주장들 하던데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관을 시켜 협박 발언을 내뱉게했다고 하는데 한국의 보수 진영은 남의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시나리오를 쓰는 자들이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중국은 홍콩의 주권을 빼앗았다>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홍콩은 단 한 번도 주권 국가인적이 없는데 무슨 주권을 뺏나? 1997년 반환 이전에는 영국령 홍콩이었고,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다소 기형적 조건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조건부 공존하는 체제다. 즉, 중공령인데 그 안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홍콩과 마카오, 현재 두 곳을 갖고 있다. 이어 중국은 대만을 속국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만 정부를 중국이 인정하지 않는데 무슨 속국으로 인식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으로 여기고 있는데 무슨 "속국"으로 인식하는지, 대만이 주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럼 전 세계에 대만을 인정하는 국가가 왜 없는지, 그리고 왜 중화민국 대사관이라는 이름이 없고 타이베이 대표부라 이름이 붙여져 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UN에 정식국가로 왜 등록이 안 되어 있는지 설명해 볼 것이며 왜 미국이 "하나의 중국"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아마 한 명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 유사시에 한국은 중립이 최선이다. 지금 중국은 청나라 말기와 다르며 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물량공세는 이기지 못한다. 원자재로 재가공하여 물건 팔아먹는 국가들이 무슨 수로 무한정 원자재를 캐내는나라를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이란-이스라엘 전쟁에서 입증되지 않았는가? 이란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폭격할 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에로우시스템, 페트리어트 모두 방어에 실패했다. 예를 들어 10개 중에서 7개가 명중했지만 3개는 놓쳤다. 그런데 그 3개가 텔아비브에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텔아비브 공습 영상과 도시의 초토화 된 사진을 보면 그 피해의 참상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어떻게 그 물량을 다 막을 수 있느냐, 70% 요격률도 대단하다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는데 이스라엘에 설치해 놓은 시스템이면 다 막아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언돔도 안심하지 못해 에로우시스템과 페트리어트까지 구비해놨다는 것은 100%의 요격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30%가 뚫렸다는 것은 나중에 1,000개 이상의 드론 포함 미사일 보내면 적어도 300개는 낙하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폭발성이 준핵폭탄 급으로 고농축 우라늄이 탑재된 포탄을 탑재할 수 있다면 다 막지 못해서 요격에 실패한 1~2개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양산해낼 수 있다. 왜 이것을 생각하지 못할까? 시기적으로 현재 구한말과 비슷한 형태라는 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중국은 그때의 청나라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중국, 북한과 최전선에 있다. 대만과의 분쟁에 참여할 경우, 북한군이 휴전선에 공격 대형을 펼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의 군대가 대만으로 간 틈에 북한군이 공격해 내려오면 감당할 수 있나? 그러니 외교적으로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은 대만 유사시 중립이 최선이다. 사진 : 중국-대만-일본의 외교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출처 : Yahoo! JAPAN 중국, 대만, 타이완, 일본, 중국-일본 외교전, 다카이치 사나에, 하나의 중국, 대만 유사시, 일본 자위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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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6
  • 서안을 가다(2)
    양귀비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을까?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 ‘경국지색’의 주인공이 양귀비라면 양귀비는 무죄일지도 모른다. 예쁜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그런 양귀비를 만나러 간다.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거리 양옆에서 화청궁이라고 쓰인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화청궁은 당나라 황실의 온천 별장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름 별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지만, 그곳에서 양귀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죽은 양귀비를 볼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그곳에 가면 양귀비의 초상화 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만 화청궁 입구에 만들어진 양귀비의 춤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누워 바라보고만 있는 당 현종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상과 화청궁 내에 목욕을 마치고 나온 양귀비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만 있었다. 궁 내부에는 화청지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에서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 로프를 설치하여 그 로프에 몸을 매달고 춤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옥환(양귀비)은 당 현종의 아들 수와 결혼한 며느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해 당 현종은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그래서 양옥환은 양귀비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당 현종은 며느리와 결혼한 시아버지였다. 경국지색의 미모란 어떤 모습이길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화청궁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온천탕이 있었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온천욕을 즐겼다는 연화탕, 목욕 후 머리와 몸을 말렸다는 공간, 당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목욕탕 등 일부 건물에는 목욕탕만 있었다. 그곳이 왜 관광지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화청궁의 또 다른 볼거리는 1936에 발생한 시안 사변 현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장개석이 납치되어 머물렀다는 ‘오간청’이란 곳이 그곳이다. 그곳도 나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화청궁에서는 양귀비 모습에 대한 궁금증만 키우고 발길을 돌렸다. 양귀비를 만나고 나서 진시황릉 병마용으로 향했다. 진시황은 죽음을 극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진나라 황제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 갱에는 8,000여 개의 병사와 전차 조각상들, 각종 도자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제 본 한경제의 무덤이 작은 동산이라면, 진시황의 무덤은 큰 산이었다. 진시황릉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기 보이는 저 산이 진시황의 무덤입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냥 산이었다. 피라미드가 벽돌로 지어졌다면, 진시황릉은 산속에 황제의 관을 묻었다, 가이드가 가리킨 야산을 지나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진시황이 묻힌 곳의 규모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해보았다. 진시황릉 병마용 관광지에는 하루에 최대 8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그곳 출입구 문만 해도 10개는 넘어 보였다. 입장권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관 3곳과 최근에 개장한 박물관이 있었다. 1호 갱(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갱에 진열된 2,000여 개의 병마용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넓은 전시관 전체를 둘러싼 인파에 놀랐다. 제1 전시관은 길이 230m, 폭 62m, 지하 5~6m의 면적으로 축구장 2개 정도에 해당한다. 그 둘레를 관광객들이 모두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2 전시관, 제3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진입 금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 앞에서 병마용을 관람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3곳의 전시관을 둘러보고 난 후에 우리는 병마용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그곳 역시 관광객이 붐비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3곳의 전시관에 있던 토용들을 유리 상자에 보관하여 분산시켜 놓았기에 토용들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옷매무새, 말과 마차, 그리고 말과 마차를 움직이는 장군들의 모습을 보다 세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토용들의 옷에 새겨진 색상을 볼 수 있어서 그 당시 염색 기술도 발달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다.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8,000여 개의 토용들을 만들어 함께 매장했으니, 그는 분명 사후에도 하늘나라를 지배하려는 꿈을 꾸면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았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실크로드 쇼를 관람하기 위해 움직였다. 쇼를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공연장은 겉보기에 커다란 원통형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극장의 관중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무대는 큰 원통의 한 부분이었다. 연극의 한 막이 끝나면 좌석 전체가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좌석이 360 회전하면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의 제목은 ‘타령전기’였다. 낙타 방울 소리가 들려주는 실크로드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쇼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무대 위에 등장한 늑대와 낙타가 관중석 앞으로도 지나갔고, 무대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방울이 관람석에도 떨어졌다. 나도 약간의 물방울을 맞았다. 관람석의 좌석이 3,000석이라고 하니 그 극장의 규모가 상상이 갈 것이다. 연극 중에는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안 계곡에 있는 부처의 거대한 상도 등장한다. 그 당시 바미안 불상은 실크로드를 왕래했던 무역상인들의 안녕을 비는 곳이기도 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 출구도 매우 붐볐지만, 공연장 외부에는 출입구마다 번호가 있어서 약속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의 관광 중 진시황릉과 병마용 갱과 실크로드 쇼는 무엇보다도 규모적인 측면에서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무대가 3,000명의 관람석이 360도 회전하는 극장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역시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컸다. 중국 서안에서의 새로운 만남은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졌다. 어제 대당불야성 거리에서 느낀 넓고 화려함과는 달리 오늘은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의 모습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진시황릉 병마용 갱에서는 중국 황제의 위엄과 함께 황제의 허황한 꿈을 엿볼 수 있었다. 죽은 황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동원되었을까? 대륙이 넓은 만큼 황제의 꿈 역시 규모가 놀랍기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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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6
  • 서안을 가다(1)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방문한다는 설레임을 갖게 만든다. 서안의 옛 이름은 장안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장안의 화제다”란 말에 등장하는 장안이 바로 그곳이다. 고대 중국의 수도인 그곳! 당 왕조 때에는 세계 최대 도시였다는 장안의 모습은 어떨까? 또 진시황의 병마용과 중국 무협지에 등장하는 화산의 경치도 궁금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사람은 이명권 선생이었다. 그는 나의 책 『왜 다시 자유인가』의 출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인도 철학과 불교, 그리고 노자 철학에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런 그와 함께 장안을 여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그렇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여행 동반자는 나를 포함한 15명이었다. 공항에서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서안을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3시간 30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는 짧게 느껴졌다. 비행기가 서안 공항에 착륙할 때의 서안의 모습은 다른 공항과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하늘에서 본 서안 공항 주변은 넓은 들판과 드문드문 보이는 아파트가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평화로워 보였고, 착륙해서 본 서안 공항은 나의 예상과 달리 매우 넓었다. 입국 수속을 끝내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첫 관광지인 한경제의 무덤인 한양릉을 관람했다.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그곳에서 중국 황제들의 무덤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우리나라 임금의 무덤과는 너무 달라서 기이하게 여겨졌다. 우리나라 임금의 무덤이 작은 봉으로 잘 정돈되어 있다면, 중국 황제의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는 풀과 나무들로 무성한 작은 동산이었다. 한양릉도 그랬다. 중국 황제의 무덤이 관광지로 유명한 것은 황제의 무덤 주변으로 동서남북 사방에서 갱을 파서 그곳에 토기로 만든 수많은 토용과 각종 도자기가 함께 묻어 있어서이다. 한경제와 함께 묻힌 수장품들은 사람, 동물, 토기 그릇 등 다양했다. 한양릉은 진시황의 병마용을 관람하기 전의 맛보기용으로 적당했다. 한양릉을 관람한 후 서안 시내에 있는 실크로드 시발점인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곳이 관광지로 잘 정비가 된 곳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곳은 나의 예상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다. 도심 외곽 허름한 건물들과 함께 그곳은 가로 5m, 세로 약 30m 정도 공간에 낙타를 탄 상인들의 모습을 한 석고 조형물을 세워 놓은 것이 전부였다. 석고 조형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역사적인 고증을 통하여 그곳을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라고 지정했겠지만, 관광지로서의 모습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정비가 되지 않아 그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분명히 나와 같이 실망했을 것이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객들도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녁 식사를 위하여 서안 중심지에 위치한 대안탑 근처에서 있는 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대안탑은 여행 마지막 날 관광하기로 하였기에 멀리서만 바라보았는데, 현장법사의 동상과 주변에 조성된 넓은 공원과 조화를 이루면서 고색창연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대안탑은 무언가 많은 비밀을 간직한 곳처럼 보였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기 전이어서 현장법사의 동상과 대안탑을 뒤로하고 그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가이드 말로는 저녁 식사 후 현장 법사가 바라보는 쪽의 거리가 매우 아름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곳이 바로 대당 불야성 거리였다. 조명이 없는 그곳은 중앙에 조형물이 있는 넓은 광장에 불과했다. 그 광장 양옆에 있는 건물들은 중국 특유의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의 옛 건축과 달리 중국의 건축물은 지붕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천하제일면’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서 저녁 만찬을 하였다. 그곳에서 뺭뺭면이라는 것도 맛보았다. 면의 넓이는 2cm는 되어 보여 면의 두께도 독특했지만, 맛은 더욱 독특했다. 매운맛이기도 하고 짬뽕 맛이기도 한 이상야릇한 맛이었다. 이름이 더욱 독특했다. ‘뺭’자의 한자 획수가 무려 57획이나 된다고 하니 말이다. 저녁 식사 후 현장법사의 동상 주변 거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불야성이었다. 특히 붉은색 조명이 많았다. 거리에는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자신만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중국만의 문화였다. 경복궁에는 한국 전통 복장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중국 현지인들이 중국 전통 복장과 중국 전통의 화장으로 자신을 뽐내며 역사적인 유적지에서 자신들만의 추억을 사진에 담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처음에는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쇼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중국의 문화였다. 불야성 거리는 좌우의 폭도 매우 넓었다. 거리 중앙에는 각종 조각품들이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어두운 밤거리이면서 중국 한자를 모르기에 무엇을 상징한 조각물인지는 모르지만, 그 조각물을 배경으로 나도 한 장의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전통 복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과도 사진을 함께 찍었다. 대당 불야성의 거리에서 중국의 옛 수도인 장안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대당 불야성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화려했던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적인 넓이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깊이에서도 고대 중국의 옛 수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 관광한 한양릉과 실크로드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장안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중국은 거대했다. 시간과 공간에서 모두 그렇다. 대당 불야성 거리의 화려함을 담으면서 중국 서안의 첫날 여행을 마무리했다. 중국 서안에서 느낀 첫인상은 넓고 화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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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7
  • 3년 전, 필자의 러시아 군 헤르손 철수에 대한 견해 - 의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에서 재현된 러시아 군의 기만술
    3년 전, 러시아 군의 헤르손 철수, 어쩌고 보면 잘한 것이다. 어차피 우크라이나 군은 헤르손에 입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우크라이나 측이 행동한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헤르손에 있어봐서 아는데 헤르손은 드네프르 강 하류 지역에 위치해 있고 흑해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있지만 본래 그곳은 하류에 형성된 모래톱과 흑해 물살에 의해 형성된 뻘로 형성되어 있는 자연적인 늪지와 갈대숲으로 덮여진 저지대에 속한 지역이었다. 전체적인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가장 저지대에 있는 곳이라 카호프카 댐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헤르손은 매번 홍수를 겪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6일,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카호프카 댐의 갑문이 우크라이나군의 하이마스(HIMARS) 로켓 공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군이 발사한 하이마스 로켓 6발 중 5발은 러시아군의 방공망에 의해 격추됐으나 나머지 1발이 댐 갑문에 명중했고 갑문이 크게 손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댐의 갑문의 붕괴되면 헤르손은 순식간에 수몰될 것이다. 게다가 안토노프스키 대교까지 공격을 받으니 우크라이나 군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보다 가장 큰 것은 카호프카 댐의 갑문이 수리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이 댐에 집중되고 있고 주 타겟 또한 헤르손의 고립화이기 때문에 러시아 군 입장에서는 오히려 철수하는 측이 이득일 수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이미 거의 대피했고 시 자체를 청야할 것은 뻔하다. 게다가 이미 헤르손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헤르손 부지사 키릴 스트레모우소프가 언급하길 러시아 군대는 드네프로 강 동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고, 헤르손 주청사에 게양됐던 러시아 국기도 어느 순간 거두어 갔다. 헤르손 지역에서는 지난 한달 동안 심각한 전투도 없었고, 전선도 크게 바뀐 게 없다. 그런데도 카호프카 댐 갑문의 손상이 심하고 안토노프스키 대교가 완전 폭파되기 전에 떠나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미 철수했지만 철수할 것이면 조용히 하는게 아니라 떠들썩하게 정보를 흘리며 기만술을 펼친 부분이 오히려 안전한 철수를 완료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나도 <삼국지연의>에서 본적이 있는데 정확히 어떤 전투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위나라 군과의 전쟁에서 수세에 몰렸던 제갈량이 위나라의 사마의에게 철수한다는 정보를 퍼뜨렸다. 사마의는 이 정보를 듣고도 제갈량이 자신들을 끌어들여 섬멸하려는 계책이라 생각해 군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 사이에 제갈량이 피해 한 번 입지 않고 군을 안전하게 철수시킬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군 지휘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러시아측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생각한 우크라이나군 국방정보국 부다노프 국장과 젤렌스키는 러시아 군 철수설을 믿지 않았다. 그 덕택에 헤르손에 남아 있는 4만의 러시아군이 안전하게 철수를 완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젤렌스키는 러시아군이 매복해서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해 러시아 군이 안전하게 철수했음에도 헤르손 시내 진군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본인들이 공격하고 있었던 카호프카 댐의 수문을 러시아 군이 오히려 공격해 파괴한다면 헤르손은 수몰되고 우크라이나 군의 사상자가 극심할 것이기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다. 헤르손의 러시아 군을 수몰시키기 위해 댐을 폭파시키려던 우크라이나 군 수뇌부의 작전이 오히려 헤르손을 탈환하고도 입성하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또 다른 족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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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7
  • 터키 이스탄불의 전쟁 난민과 전쟁에 대해 무식한 대한민국 극우 노인들의 호전성
    몇 년전 터키 이스탄불 뒷골목의 이라크 난민 여성을 본적 있다. 젖먹이를 안고 바람 안 들어오며 그나마 따뜻한 뒷골목의 한 켠에서 먹고 잔다. 당시 또한 겨울 때인데 비록 이스탄불의 겨울은 영하로 내려가진 않지만 그래도 꽤 쌀쌀한 편이다. 이는 에게 해와 흑해 사이의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불어오는 바닷 바람이 차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집단 서방과 미국이 석유를 훔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IS를 발생시켜 나라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이 난민들은 이라크나 시리아 측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다. 이스탄불 뒷골목에는 이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터키 내 난민들 안 받아들이면 집단 서방과 미국이 제재하겠다고 협박하자 경제력이 바닥 상태인데다 미국의 경제 제재까지 받고 있는 터키는 울며겨자 먹기로 난민들을 받아들인 꼬라지가 이것이다. 난민은 서구 놈들이 발생시켜 놓고 터키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니 터키 입장에서는 억울할만도 하다. 이 난민 여성에게 터키어로 물어보니 터키어는 전혀 모르고 영어도 못한다. 할 줄 아는 영어는 Give me Money, Thank you, I from Iraq 가 전부다. 일단 아랍어로 대화를 시도해봤다. 나도 아랍어는 대학시절 때 공부했고 지금에야 쓸 일이 많이 없어 Speaking은 많이 잊어 먹었지만 Listening 은 가능하다. 이 여성의 남편은 모술에서 미군이 설치한 부비트렙에 걸려 폭사했고 부모님도 티그리스 강 상류에서 떠내려온 지뢰를 밟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여성은 젖먹이 된 딸, 그리고 이제 4살 된 쌍둥이 딸과 함께 터키 가지안테프에 왔다. 터키 정부가 난민들에게 집을 나눠줬지만 당시 터키 동부 가지안테프 대지진 때 그 집마저 붕괴되고 쌍둥이 딸 하나는 무너진 집 벽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 딸과 함께 이스탄불로 와서 젖먹이 딸은 얼마 나오지 않은 모유를 짜서 준다.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 420만 명이 살고 있는 터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다. 이들 중 약 10%만이 난민수용소에, 나머지 90%는 자신이 머물 집을 구해 살고 있다. 그런데 터키는 비유럽 국가 출신 난민에게 적용되는 1951년 제네바 난민 협약의 당사국이 아니다. 따라서 터키는 난민들에게 일시적 보호책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1월부터 터키는 노동 시장을 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난민들의 노동시장 진입엔 엄격한 제한이 따른다. 특히 기업이 고용할 수 있는 난민의 수를 종업원 수의 10%로 제한했다. 한편 기업은 난민을 고용해도 고용 당국에 고용 사실을 신고할 유인이 없다. 당국에 이를 신고하면 난민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당국에는 그에 따른 각종 사회 보장 부담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도 한국에서는 전쟁을 우습게 여기고 호전성을 가진 자들이 천지다. 전쟁은 이렇게 서러운 것이다. 전쟁을 서든어택 같은 온라인 게임으로만 접한 한국인들은 전쟁의 무서움을 모른다. 전쟁은, 누군가 공격으로만 피해를 입지 않는다. 자연재해도 함께 동반되어 온다. 그것이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어쨌든 온다. 보수우파 노인들 중에서 우리가 중국과 가까운만큼 선제 타격이 가능하다는 꿈에서 나올 헛소리를 하는 자도 있다. 중국과 면해 있는 서해안, 대부분 수도권에 생활권을 두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중국에서 쏘아대는 엄청난 물량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직접 받아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국민들이 저와 같은 꼴이 안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 6~70대나 먹고 호기롭게 헛소리를 하는 자들은 미국이나 일본으로 도망가면서 선동하면 그만이지만 도망갈 형편이 안 되는 국민들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또 이럴 것이다. "빨갱이들을 잡는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빨갱이 OUT!" 그러면서 큰일을 위해 나와 상관없는 이웃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긴다. 선동은 나팔수처럼 하고 실제로 실행할 어떠한 액션도 몸만 사리며 입으로는 금방 죽이고 척결할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런 자들을 보면 "자유 민주주의"는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면 그들만큼 파시즘스럽고. 전체주의화 되어 있는 집단은 없다. 그런 자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히틀러보다 더한 독재를 하게 될 것이다. 정말 우리가 배척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극단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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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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