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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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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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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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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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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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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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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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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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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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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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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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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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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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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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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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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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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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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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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우크라이나
- 이스라엘이 이란 테헤란에 대해 선제 공격에 나서자 푸틴 대통령은 6월 13일에 급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았으며 뉴욕에서는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렸지만, 격분한 양측의 감정을 두고 양측의 공방전은 당분한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란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미국이 주변에 배치하고 있는 해상 및 공중 자산들을 총동원하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와 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농후하게 되었다. 이럴 경우, 중동은 제3차 세계대전까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한 2023년 10월 7일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이란 기습 공격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핵심 지원 국가들의 관심과 이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대다수의 지원은 중동 지역으로 집중되고,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이 늘어나면서 우크라이나에게 최악으로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몰리고 있는 사이, 러시아군이 키예프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과 드론 공습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높아져 우크라이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스트라나.ua는 지난 13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이스라엘의 공습이 세계와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영향(Последствия для мира и Украины)'이라는 기사에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키예프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서방의 관심과 지원이 분산되고, 유가가 상승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강화되지만 유럽의 경제는 크게 약화될 것(Якщо напруженість на Близькому Сході зросте, це буде дуже погано для Києва. Увага та підтримка Заходу будуть перенаправлені, і хоча ціни на нафту зростатимуть, російська економіка зміцниться, а економіка Європи значно ослабне)"이라 예측했다. 특히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중동 문제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뒷전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도 이와 관련된 기자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우려가 있음을 인정했다. 러시아는 석유 수출로 큰 수익을 거두면서 강해질 것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서방의 원조 증가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까 걱정이 되니 절대로 줄어들지 않기 바라는 것이 젤렌스키의 바램이었다. 반대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같은 중동 사태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면 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쟁의 지속 기간과 더불어 그 규모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있다. 우크라이나가 꿈꾸는 최악의 악몽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면서 이란이 핵 무기 개발에 성공해, 집단서방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경우다. 반면 우크리이나가 생각하는 최선은 이란이 트럼프의 요구 조건에 응해 협상을 이루거나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하메네이 이란 정권이 내부 혼란으로 인해 완전히 전복되는 경우가 최선이다. 이는 집단서방의 큰 군사 지원 없이 마무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악과 최선의 경우는 현실화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란의 대처 방식을 학습하여 우크라이나에 핵을 앞세워 공격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매파들은 이스라엘의 대응 방식을 학습하여 서방 측에 더욱 가혹한 대러 제재 및 공격 수단을 도입할 수 있도록 트럼프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물론 관건은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가 가진 미국에 들이밀 수 있는 유력한 카드다. 이란-이스라엘 양쪽 정상과 급하게 통화한 것에서 보듯이, 푸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명확하고 효력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당초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에 반대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더 많아진다. 트럼프는 지난 6월 4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대화의 절반 이상을 이란 핵 문제에 할애했다.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외에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터커 칼슨은 지난 3일 전에,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메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터커 칼슨은 뉴 리퍼블릭(New Republic) 잡지에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격에 몰래 도움을 주었고, 이로 인해 미국이 깊이 관여했다고 하였다. 한편 1+1 등,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미국이 중동 전쟁에 휘말리는 것이 트럼프에게 있어 이는 매우 부정적인 전망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첫째,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적자 폭이 더 늘어나고 있으며, 둘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 온 외교 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셋째, 중동의 미군 시설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내 미군 전력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넷째, 이민자들을 추방함으로 인해 미국 내 갈등들이 내전, 혹은 엇비슷한 상태로 치달아 트럼프의 국내 정치적인 입지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아후,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트럼프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트럼프는 14일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이 오늘 아침 생일 축하 전화를 해왔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아주 잘 아는 이란에 대해 오랫동안 협의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적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그것은 다음 주에 이야기 하기로 했다(President Putin called me this morning to wish me a happy birthday. More importantly, we had a long discussion about Iran, which he knows very well. We spent much less time on Ukraine, which we will talk about next week)"고 했다. 우선 이란-이스라엘의 충돌 사태가 최우선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사태를 두고 중동 문제를 푸틴 대통령과 논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문제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면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게 되었다. 푸틴과 트럼프의 통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다음 주'에 이야기 하자는 트럼프의 발언이었다. 유리 우샤코프(Юрий Ушаков) 크레믈린 외교 담당 보좌관은 이 날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의 통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러시아는 6월 22일 이후 합의에 이르른 대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트럼프도 이를 주목하면서 조속한 적대 행위 종식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젤렌스키도 이 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포로 교환은 20~21일에 종료된다고 했으며 이후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추가로 3차 협상 때 참여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추가 협상에 관하여 같은 날짜에 우연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에서 동시에 나온 것이다. 우샤코프 보좌관이 6월 22일이라는 날짜가 이전에 합의한 대로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샤코프 발언의 맥락으로 볼 때,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 사이에서는 이전에 무엇인가가 논의된 것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분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여하는 서방의 주요 회담의 일정을 보면 매우 당연하게 들린다. 우선 젤렌스키와 트럼프가 만나는 G7 정상회의는 오는 17일에 종결된다. 이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4일 미국이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EU와의 무역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U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는 이란-이스라엘의 충돌을 배경으로 한 유럽 주요 국가들의 대 우크라이나 관련된 각종 생각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후 6월 24일에는 나토 정상회담이 시작된다. 참석 여부가 일단 모호했었던 젤렌스키도 나토 정상회담에 초대 받았다. 이에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만남은 피할 수 없고,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발발된 상황에서 젤렌스키가 운신할 폭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G7 정상회의가 끝나고 나토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는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입장과 상황 등을 감안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러시아의 휴전 및 종전 요구 조건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그 방향성이 정해질 수도 있다. 스트라나.ua는 나토가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어떤 식으로든 거부한다면, 전쟁 종식은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일정을 감안한다면, 젤렌스키는 사활을 걸고 미국과 G7, 나토 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분위기의 반전을 막아서야 할 입장이지만 이스라엘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네타냐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내부의 상황 및 트럼프의 입장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다. 이란의 반격이 시작된 현재, 이스라엘은 모든 화력을 쏟아 부어야 어느 정도 버티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미국을 이번 분쟁으로 끌어들여야 승산이 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따위가 아닌 중동 분쟁이 G7과 나토 정상회의에서 최우선 의제가 될 것으로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젤렌스키는 비록 두 정상회의에 참석하긴 하지만, 서방 측의 지원을 두고 네타냐후와 경쟁해야 할 입장에 몰리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에 의해 의제를 선점 당해 대 우크라이나 지원은 거의 의제에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더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G7도, 나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14일 FOX 뉴스와 인터뷰하기를 중동에 있는 미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군의 방공 시스템을 키예프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다. 헤그세스는 상원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방공 시스템을 중동으로 이전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미국은 전세계에 있는 미국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과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샤헤드 드론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주기로 약속한 요격 미사일 20,000발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초반에 중동으로 이전했다고 비난한 전적이 있었다. 젤렌스키에게 더욱 절망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중동의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가는 상황에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참전시킨다 하더라도, 지난 2003년 이라크 점령 작전을 재현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공습과 폭격만으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예멘의 후티 군대와 하마스, 헤즈볼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완전히 무력화하지 못했다. 이란이 앞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방공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더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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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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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난민 통제 정책으로 인한 여러 논란들과 떨고 있는 미국 내 우크라이나 난민들
-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인도주의적인 사유로 허용되었던 난민들에 대한 임시 보호 조치들을 트럼프 정부에서 전격적으로 폐기하면서 논란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바이든이 대통령 재임 시기 때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넘어온 우크라이나인 약 24만 명에게 부여했던 임시적인 합법 체류 자격을 2025년 4월부터 전면 취소하면서 이들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우크라이나로 대거 강제 귀환당할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과 몇 년 전, 전쟁을 피해 미국에 안착했던 수십만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다시 추방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고 이는 바이든 행정부 당시의 포용 정책을 뒤집는 결과로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뿐만 아니라 쿠바, 아이티,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출신 53만여 명에 대한 패롤(Parole)에 대해서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트럼프는 패롤(Parole) 프로그램을 통해 입국한 남미와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들의 이민 신청을 전면적으로 중단했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입국한 이민자들은 주로 2년 동안의 임시 취업 허가와 추방 유예를 받았으며, 이 기간 내에 영주권이나 망명 등 추가적인 이민 혜택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이민 신청 절차가 중단되면서 미국에서 법적 신분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편 탈레반 정권을 피해 난민 신청을 해썬 아프가니스탄인 7만여 명에 대한 임시 체류도 재고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총 180만 명 이상의 중동 지역과 남아시아 지역의 이민자들의 법적 지위 박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모두 트럼프가 바이든의 이민 정책은 법치를 넘어선 것이라 주장하며 선거 기간부터 공약을 펼친 바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고 2025년 1월 20일에 서명된 행정 명령을 통해 모든 카테고리별 패롤 프로그램 종료가 공식화 되었다. 이와 같은 대규모 추방 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이것이 현재 나타난 LA 폭동이라 보면 된다. 이에 우선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쟁이나 탄압을 피해 온 난민들을 강제로 돌려보내는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전통적인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의를 수호한다는 역할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경우, 현지로 송환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 문제가 제기된다. 실제로 미군에게 도움을 주었던 전 아프가니스탄 정보 요원 중 한 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로 인해 체류 자격이 취소되어 구금되자 미국과 동맹을 맺고 싸웠던 자신이 트럼프에게 배신당했다고 탄식했다. 그는 자신과 아프가니스탄 민주정부는 목숨 걸고 미국을 도운 대가가 결국 미국에서의 추방이라면 충격적이라며 실망을 표했는데, 이러한 사연이 마침내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미국인들에게 여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미국의 이와 같은 송환 움직임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젤렌스키와 트럼프 대통령 간의 불화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우크라이나인 난민까지 돌려보내려 하자 키예프 당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실망과 유감을 표명했다. 따라서 유럽의 인권 단체들 또한 세계 난민들의 위기 속에 미국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민자들을 위험한 상황에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필자는 가족 초청으로 인해 합법적인 형태로 들어온 한국국적 영주권자나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자신의 경력을 늘리고 자본금을 축적하기 위해 6개월 정도 미국에 방문하며 왕래했던 나오는 사람들도 거주 의사가 없어보인다며 세컨더리 룸에 체포되어 끌려갔다는 소문들이 돌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들었다. 이 외에 영주권을 지닌 대학 교수의 부인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하는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연좌제로 추방 조치까지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난민 정책에 대해 미국 국내 정치 차원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공화당 내 강경파와 트럼프 지지층들은 불법 이민을 억제하는 것과 법 집행을 강조하며 대규모 추방을 지지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인권 옹호 단체들은 비인도적인 조치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주지사들과 시장들은 가혹한 대대적인 추방 작전에는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주 경찰과 교정 당국으로 하여금 연방의 대규모 이민 단속에 동참하지 않도록 지시하고, 일부 이민자 보호 도시 정책을 강화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난민 정책에 대해 일부 노선을 변화하려는 조짐이 있어, 무제한적인 이민 옹호에서 벗어나 하마스를 비롯한 테러범 동조 및 중범죄 이민자 추방에는 협조하겠다는 스탠스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범죄를 저지른 불법이민자 추방은 모두가 지지할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무차별 단속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죄 없는 사람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추방 정책이 일괄적인 접근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들을 반영하며 이민을 옹호하는 단체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패롤 철회 조치에 대해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연방 법원이 제동을 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으며, 18세기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EA)'을 난민들에게 적용한 것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 남용이라는 미국 연방 법원의 첫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몇몇 미국 내 학자들은 무차별적인 대규모 추방은 미국 내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키고 일부 산업, 농축산이나 건설 등 노무자들의 부족으로 인한 인력난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지하에 숨어 지내던 불법체류자들이 더욱 음지화되어 지역 사회와의 단절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조치는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이민자를 포용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국제 도덕적 리더십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향후 수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 단속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할 인권 침해 사례들이 추가적인 정치적 쟁점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의견을 표명한 외국계 학생들이 미국의 이민 세관단 속국(ICE)에 의해 연이어 체포되고 있는데, 일례로 한 터키계 유학생은 길을 걷다 사복 차림의 이민국 요원에게 체포되어 손이 묶인 채, 표시가 없는 차에 태워진 후 구금되었다. 체포에 대한 근거로 하마스를 지지한 것을 들었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반이스라엘 시위로 비자가 취소된 대학생이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입국장은 SNS를 검열했다고 하며 이 중에 반유대주의나 트럼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가에 적대적이라며 입국을 거부한 사례도 나타났다. 반대로 독재와 인권 탄압 국가로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이 비난하는 러시아는 SNS 검열을 하지 않으며 푸틴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국을 막는 치졸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을 비판한 전력이 있는 하버드 대학 소속 러시아인 과학자가 미국에 재입국하는 과정에서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된 사례가 나오면서 문제가 되었다. 사실 트럼프의 불법 이민 단속은 그 명분도 좋고 불법 이민은 강력하게 단속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강도가 매우 강하고 심지어 각 주에 위치한 국경 심사대에게 성과 할당제를 부여했다는 이야기까지 퍼질 정도로 매우 강압적인 형태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던 사람이 갑자기 세컨더리 룸에 끌려 가서 겁박을 당했다는 사례들이 끝도 없이 올라 오고 있다. 정작 중국인이나 베트남 불법 이민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은 대한민국도 저렇게 해야한다며 트럼프의 불법 이민 단속에 상당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민 단속은 적법한 절차와 합법적으로 국적을 취득한 외국계 모두에게도 위협을 주고 있어 그 논란은 매우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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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난민 통제 정책으로 인한 여러 논란들과 떨고 있는 미국 내 우크라이나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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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의 정체 : 폴란드 아쉬케나지와 본토 유태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네타냐후 가문
- 네타냐후는 친영국, 친미국 인사로 당시 총리였던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1922~1995)의 정적이었다. 이츠하크 라빈이 꾸준히 살아있었다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이러한 피비린내가 진동한 역사는 종식되고 양쪽이 모두 평화롭게 존속했을 것이다. 네타냐후의 이력을 보자면 그는 출생은 텔아비브에서 했지만 부친이 폴란드계 아슈케나지였다. 그의 부친인 벤치욘 네타냐후(Benzion Netanyahu)는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이다. 본래 성씨는 폴란드어식인 밀레이코프스키(Milejkowski)였지만 베냐민 네타냐후의 어머니인 칠라 세갈(Tzila Segal)을 만나 결혼하고 나서 바꾼 성씨가 네타냐후이다. 네타냐후는 히브리어로 '신이 주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참고로 어머니인 세갈은 오스만투르크 제국령 팔레스타인 출신의 토착 유태인이다. 아마 유태인들이 모계사회이자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풍속으로 미루어 볼 때, 팔레스타인 전역의 영유화를 꿈꾸는 베냐민 네타냐후가 아마 어머니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베냐민은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6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군복무하면서 중동전쟁에 참가했고, 이후 1980년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MIT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등, 신종 미국의 딥스테이트와 네오콘의 엘리트 과정을 거쳤다. 그가 악랄해질 수 있었던 것의 배경은 이러합 딥스와 네오콘의 엘리트 과정을 모두 습득했기 때문이고, 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주 UN 대사를 지내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 지역에 유태인들을 정착시키려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오슬로 협정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이를 비밀 회담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비공식적이 야합"으로 치부했다. 1993년 라빈 정부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는 가자 지구와 요단강 서안 지역을 위한 자치적 정부 계획의 시작과 그 지역들로부터 이스라엘이 물러남을 포함한 동의서를 서명하여 양국은 또한 자신들의 분쟁들을 풀리는 데 노력하는 데 동의하게 되자 네타냐후는 라빈을 매우 비난했고, 라빈이 오슬로 협정을 맺어 중동의 평화를 이룬 공으로 1994년 10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와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자 이를 "팔레스타인에게 나라를 판 댓가"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이후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의 킹스 오브 이스라엘 광장에서 집회에 참석한 이후, 극우파 유대인 과격론자인 이갈 아미르(Yigal Amir)의 총에 맞아 암살을 당했는데 이 암살의 배후에 아랍과 전쟁을 원하고 팔레스타인의 인종청소를 원하는 딥스 & 네오콘, 그리고 네타냐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라빈 총리가 암살되기 직전 당시 극우파의 지도적인 정치인인 네타냐후가 평화 회담을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를 주도한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시위대의 선두에서 관을 들고 행진하는 등 정국분위기를 험악하게 끌고가 암살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고한 타인을 죽이거나 해치려는 자에 대한 심판을 허용하는 유태교의 종교법인 할라카(Halakha)의 '추적자 원칙'(Din Rodef)을 적극 옹호하던 인물로, 유태인을 테러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할라카의 심판을 주장하며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라빈 총리 암살 직후 47세의 나이로 총리에 당선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난 개인적으로 라빈을 암살한 것은 네타냐후임을 의심하고 있다. 그런 인물이, 가자와 평화를 지키고 중동의 평화를 수호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는 ICC (국제형사재판소)의 수배를 받고 있다. 미국의 비호만 아니었으면 벌써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어야 하는 인물이다. 하마스의 공격과 침공을 비난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및 침공은 비난하지 않고 이란 따위가 핵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며 이스라엘의 공습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는 명예 유태인들과 이스라엘 2등 시민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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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의 정체 : 폴란드 아쉬케나지와 본토 유태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네타냐후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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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세 시대 유럽이 동아시아에 출몰했을 당시 동남아시아의 정세
- 동방의 강성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등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대양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을 따라 원양 항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그로 인해 대항해 시대가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유럽 세력은 좁은 유럽에서 넓은 세계로 시야를 확장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이는 후에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의 바탕이 된다. 대항해 시대 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의 지리적 입지 조건은 유럽 최대의 해상 무역 권이었던 지중해와, 그 다음가는 북해 및 발트 해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유럽의 변방이었다. 그렇다고 농업이라도 잘 되었음 좋은데 그와 같은 평야도 부족했다. 게다가 농지는 척박하니 결국 상업 중심지에서 떨어진 변방임에도 불구하고 상업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로 인해 포르투갈은 유럽 그 어느 나라보다도 상업 부르주아 세력이 강성했는데, 이는 포르투갈 왕위 계승 전쟁에서 전통 귀족 세력이 지지한 카스티야가 패배하고, 상업 부르주아 세력이 후원한 아비스(Abis) 왕조가 들어섰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업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탄생한 아비스 왕조는 자연스럽게 해양 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엔리크 왕자가 특별히 바다에 관심이 있었다보다는 국내 내부적으로 바다로 나아가야 할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의 국력으로는 유럽 대륙 내부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포르투갈이 갈 수 있었던 곳은 대서양과 아프리카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포르투갈은 14세기부터 마데이라를 발견해 식민화했고, 15세기에는 아조레스를 발견했다. 또한 레콩키스타의 완료와 오스만투르크의 팽창이라는 두 사건으로 인해 이슬람 세력에 맞서 더 넓은 지리적 발견과 기독교 선교가 요구되었으며, 이슬람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의 황금 무역에 대해서도 포르투갈 인들은 흥미를 느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요인은 포르투갈이 서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탐사에 나서게 된 원인이 되었다. 아프리카 항해가 성과를 거두자 인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스코 다 가마의 탐험이 시작되었고,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 항로 개척의 성과를 이룩한다. 16~17세기 유럽인들이 밀려왔을 때 동남아시아에는 오랜 역사의 근간을 이룩한 왕국들이 건재했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938년 베트남 인에 의해 응오(吳) 왕조가 수립되었으며, 이어 딘(丁), 레(黎), 리(李), 쩐(陳), 호(胡) 왕조로 이어졌고, 15세기 이후 후기 레(黎) 왕조가 막(莫) 왕조와 대치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중국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정권을 교체할 때마다 조공과 책봉을 요구하며 침공해왔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베트남에 서양인들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오랜 역사를 지닌 해상 제국이었다. 7세기에 스리위자야(Srivijaya) 왕국이 인도네시아 열도와 말레이 반도를 통치하며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해상 왕국을 건설해 14세기까지 이어 나갔다. 이후 오스만투르크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 세력들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로 건너와 마타람(Mataram), 반템(Bantem), 아체(Aceh) 술탄국을 건설해 할거했다. 태국에는 중국 운남(雲南)에서 거주하던 타이족(泰族)이 남하해 건국한 아유타야(Ayutthaya, 1351~1767)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캄보디아에서도 앙코르와트를 세운 크메르 제국이 600년을 지배한 후 멸망했지만, 그 후손들이 베트남 남쪽인 참파를 지배하에 두고 자치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한 동남아시아 인들을 볼 때 서양인들에게 아시아인들이 야만적인 민족들로 보였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향료 열도에서 주민들을 몰아내고 향료 나무를 심고, 현지인들을 노예로 부렸다. 베트남과 미얀마의 해안에 포격을 가해 항구를 만들려 했지만, 토착 왕국들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와 동시에 동남아시아의 왕국들은 서양인들의 총포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일본에 전해진 서양인의 조총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군사력 강화에 도움을 주어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 조선을 침공하는 원동력이 된 것과 같이 동남아시아의 왕국들도 서양의 선진 무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조선만이 서양 총포 기술을 받아들 것이 인색했을 뿐이다. 동남아시아의 거점은 말라카(Malacca)였다. 말레이 반도 서부 해안의 이곳은 말라카 술탄국이 지배했는데, 1511년 포르투갈이 1,200명의 병력과 7~8척의 전함을 동원해 말라카를 점령했고, 이어 1606년에 네덜란드에 탈취 당했다. 이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는 1824년 영국에 이양된다.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곧이어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동남아시아 해안가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현지 왕국들이 동원되었고, 그러는 가운데 서양의 총포 기술이 아시아에 이전되었다. 동남아시아의 왕국들은 그러한 이유로 인해 서양화기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베트남은 레 왕조(1428~1526) 때부터 서양식 총포와 화기를 생산했다. 이들은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 기술을 배웠고, 바다에 침몰한 유럽의 배에서 총포를 건지고 유럽인 기술자를 고용해 총포의 제작을 연구해 냈다. 17세기에 후기 레(黎) 왕조가 분열하여 북부에 찐(鄭) 왕조의 세력과 남부의 응우옌(阮) 왕조의 세력으로 분단되었을 때, 응우옌 왕조에게는 청동제 대표 1,200문을 보유했고, 찐 왕조의 세력도 50~60문의 철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1700년 대 말기, 떠이선(西山) 농민 반란군에게 추격을 받은 응우옌 왕조의 어린 왕인 푹 아인(阮福映)은 무수한 왕족들이 살해당하는 도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남쪽 메콩 강 삼각주로 도주했다. 이와 같은 패배와 상실로 인해 응우옌 푹 아인은 마침 베트남 남부, 메콩 강 지역에 존재한 프랑스 군대와 만나게 된다. 그는 프랑스 군의 도움을 받아 메콩 지역을 전전하며 피해 다녔고, 태국에 두 번이나 망명했다. 그를 따르는 군대도 없고, 지원하는 나라도 없었다. 1777년 푹 아인이 타이만에 있는 푸꾸억(Phú Quốc) 섬에서 프랑스인 선교사 피뇨 드 브엔느(Pigneau de Behaine) 주교를 만나게 된다. 응우옌 푹 아인은 프랑스인 신부의 성당에서 함께 지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푹 아인은 브엔느 주교를 통해 많은 프랑스 인맥들을 만났다. 폭 아인은 장남 푹 까인을 브엔느 주교와 함께 프랑스에 보내고 프랑스의 지원을 요청했다. 브엔느 주교는 파리로 돌아가 루이 16세에게 베트남 지원을 요청했다. 재정 파탄으로 혁명 전야에 있던 프랑스는 지원을 거부했다. 그 사이에 푹 아인은 사이공을 점령했다. 그는 군벌 보 타인을 사위로 삼아 다시 쟈 딘을 장악했고, 금으로 만든 꽃을 태국에 조공으로 지원을 얻어냈다. 왕복 6년 여(1783~1789) 동안 긴 여행 끝에 브엔느 주교는 카톨릭 세례를 받은 어린 왕태자와 함께 돌아왔지만, 푹 아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브엔느 주교는 사재를 털게 된다. 그 금액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교는 그 돈으로 최신식 프리깃함 2척과 용병 300명을 끌어 모아 푹 아인을 돕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교가 데리고 온 인물들이었다. 요새 건축술과 보병 훈련을 감독한 올리비에 드 퓨이마넬(Olivier de Puymanel), 서양식 범선 운영기술자 장 밥티스트 쉐뇨(Baptiste Cheño)와 필리프 바니에르(Philippe Vanier), 지도측량 전문가 장-마리 디요(Jean-Marie Dillo) 등이 합세했다. 이들은 푹 아인의 군대와 전술을 서양식으로 개조했다. 용병 중에는 무기 제조, 성곽 건축, 선박 제조 등이 가능한 기술자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쟈 딘 정권의 군사력 강화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푹 아인의 세력은 말라카, 페낭, 바타비야 등 당시 영국 또는 네덜란드 인들이 지배하던 도시로 가 선진 무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쟈 딘의 푹 아인 정권이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떠이 선을 이겨 낼 수 있었다. 메콩 강 유역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능력도 큰 몫을 했다. 푹 아인은 프랑스의 군사 기술을 배워 북진에 나서 베트남을 통일했으니, 이 왕조가 베트남의 마지막 응우옌(阮) 왕조이다. 더불어 서양의 군사기술은 아시아 토착 왕국이 절대 왕권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어 미얀마 페구(Peguk, 현재는 Bago)에는 인도인들이 화약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이 페구 성을 세 차례나 공략했지만, 페구를 지키는 현지군은 도리어 포르투갈 화기로 무장해 방어하며 버텨냈다. 17세기 초, 미얀마 군대는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던 시리암(Syriam)을 탈환하고 그곳에 있던 포르투갈 인들을 아바(Ava)로 이주시켰다. 미얀마는 포르투갈 인들의 무기를 근간으로 화기부대를 조직했다. 여기에다 코끼리 부대까지 편성해 화승총에 포병을 합쳐 막강한 군대를 만들어 인도차이나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미얀마의 통구왕조(Toungoo dynasty)는 1564년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을 공격했는데, 서양제 화포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미얀마에 대항하기 위해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도 서양식으로 무장했다. 1538년 파랍시 국왕은 120명의 포르투갈 인으로 근위부대를 설립하고 태국 병사들에게 화기 사용법을 가르쳤다. 16세기말에는 성능이 우수한 화약과 총포를 자체 제작했다. 하지만 아유타야는 버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줄곧 당하기만 했다. 태국이 버마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시기는 18세기 탁신 대왕(Taksin the Great, 재위 : 1767~1782년) 때였다. 1767년 4월 버마 왕국이 침공해 태국의 수도 아유타야(Ayutthaya)를 점령했다. 400년의 아유타야 왕조는 버마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했다. 그러자 태국 각지에서 타이족들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 한 사람이 탁신이었다. 탁신은 각지의 저항세력을 통합해 버마군을 격퇴했다. 비록 그는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지만 갑자기 세력 확대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화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에 나타난 분석이다. 탁신 대왕 때 포르투갈 조총에서 개조된 태국산 총은 일본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태국과 교역하면서 태국식 총을 거래했다고 한다. 한편 수마트라의 아체 술탄국은 오스만투르크의 지원을 받았다. 아체는 포르투갈이 점령하고 있는 말라카를 공격했는데, 오스만투르크가 아체에 대포와 탄약을 지원했다. 아체 술탄국은 오스만투르크에게서 지원받은 대포로 말라카를 공격했는데, 포르투갈은 또 다른 현지 술탄국인 조호루 술탄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말라카를 방어했다. 동남아시아 왕국 또는 술탄국들은 일찍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접촉했기 때문에 서양화기 도입도 빨랐다. 이들 나라는 일찍부터 민족국가를 형성했다. 호주의 동남아시아 역사학자 앤서니 리드(Anthony Reid)는 1570~1630년대를 걸쳐 동남아시아 교역 발전이 절정을 맞이했고, 이를 두고 ‘상업의 시대“라고 불렀다. 리드는 동남아시아의 지배자들이 상품 유통의 요충지를 장악해서 국제 교역로를 장악하면서 큰 이익을 취했고, 군사기술을 도입해 주변국을 통합하면서 강력한 왕권 하에 절대주의적인 국가를 형성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시기를 동아시아에 ’국가 형성의 시대‘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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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Nova To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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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세 시대 유럽이 동아시아에 출몰했을 당시 동남아시아의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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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고립되어 있는 국가? 이란의 배경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존재한다.
- 이란은 표면적으로 볼 때, 절대 다수의 수니파 국가와, 적대국인 이스라엘, 이란을 제재하고 견제하려는 집단 서방과 미국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은 시아파의 수장국이고, 시아파들을 규합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이란은 이와 같은 고립화를 경계하여 다방면으로 고립을 피하기 위한 외교를 벌여왔다. 이란은 수니파 국가들과 종파만 같을 뿐, 이해관계가 다른 중앙아시아의 5개국과 협력을 시도하고 있으며 혈통적으로 비슷한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통해 중국 및 러시아를 끌어들여 고립을 탈피하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멀리 북한, 예멘과도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중에서 이란한테는 강력한 뒷배가 러시아와 중국이다. 대개 사람들은 이란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고작 알아봤자 군사 협력 정도이고, 이란이 러시아제 무기를 다수 사들인 것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본 칼럼은 이란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원래 이란과 러시아는 사이가 좋은 국가는 아니었다. 러시아 제국은 그레이트 게임을 통해 중앙아시아를 장악했고, 이란에 영향력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코사크나 노가이족 위주로 소규모 접전을 벌이던 방식 대신 본격적으로 대군을 투입하여 카프카스 동부를 공략하면서 이란과 마주하게 되었고, 이어 이란의 카자르 왕국과 투르크멘차이 조약이 맺어졌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양국은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를 러시아-이란 전쟁이라 부른다.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 이란에 대한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였고, 아제르바이잔 남부 일대에 세력을 확대하는 등의 내정 간섭을 벌였으며 러시아를 평소에 견제하고 있던 영국이 이란을 지원했다. 러시아의 지나친 간섭에 분노한 테헤란의 군중들이 러시아 은행을 파괴하기도 하였으며 반러감정은 깊어져 갔다. 그러한 상황에서 1908년 이란 입헌 혁명이 발발해 카자르 왕국이 붕괴되었다. 1941년 소련과 영국은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점령한 바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은 철수했으나, 소련군은 이란 북부에서 철수하지 않고 여러 괴뢰 국가들을 세우며 이란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1953년 친소적 인사인 모하메드 모사데크(Mohamed Mosadek) 총리가 체포되었으며, 영국 주도의 중앙조약기구에 가담하며 소련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팔라비 2세는 미국과 소련 사이를 저울질하며 양국 정상들을 연이어 만났으며 팔라비 2세는 크레믈린에 초청되기도 했다. 1979년에 이란 호메이니 혁명으로 이슬람 신정 정권이 수립되면서 무신론의 소련을 더욱 증오하게 된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이란은 시아파 계통의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란은 소련에게 접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초창기 당시 이란군의 무기는 대부분 미국제였다. 이란 호메이니 혁명 이후, 이란의 외교가 친미에서 반미로 변화하면서 미국이 이란 측에 군수물자 수출을 완전히 금지했다. 당시 미국이나 집단서방은 이라크에 모든 지원을 했었다. 당시 이란은 프랑스나 중국 등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했으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와의 맞대결에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1989년부터 러시아와 이란은 관계 개선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양국은 매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란 정부는 팔레비 왕조 시절 당시 구입한 미국산 F-4 팬텀 전투기 등에 대해 부품 구입이 어려워 수리를 못하는 상황에서 소련에 이 전투를 증여하고, 그 대신 막대한 군수물자를 받았다. 이후 2010년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란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면서 미국을 견제하는 것과 관련한 이해 관계가 겹치게 되면서 양국의 우호관계가 증진되었다. 러시아와 이란이 경제적으로 서로 가스 공급 계약을 합의했다. 그리고 이란 유학생들이 러시아에서 유학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으며 이란에도 수천 여 명 규모의 이란계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대개 이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긴장상태가 높아지고 2015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해당 지역 러시아인들이 이란으로 건너와 난민이 되었다. 그리고 구소련 내 옛 카자르 왕조 영토 지역의 잔류한 이란인 후손들의 경우는 이란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기보다는 아제르바이잔 인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냉전 시절 소련으로 망명한 공산주의 성향이란인의 후손들과 푸틴 대통령의 정책으로 러시아의 경제가 성장한 이후 러시아로 생계형 이민을 떠난 이란인으로 나뉘고 있다. 현재 세계 정세는 점차 전략적 다극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중동에서 영향권을 확대하려는 집단서방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 중국 간의 다자간 전략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중동 또한 다극 세계 질서에 편입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기로에 서있다. 중동 지역에서 4개국이 보이는 행보를 보자면 이란과의 직, 간접적 협력 심화를 타진하는 러시아와 중동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여를 늘리는 미국과 EU로 대표되는 집단서방,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을 자국의 영향권으로 포섭하고자 하는 중국이 중동에서의 다극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란은 오랫동안 중동에서 나타나는 분쟁의 중심에 있었으며,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전 대통령은 8년 동안의 재임기에 걸쳐 미국 및 EU와 핵 협상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갈등을 봉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2018년 5월 9일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합의 내용을 담은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탈퇴를 선언하면서 양국 간의 협상은 파국을 맞게 되었다. 이후 이란은 대미 강경 기조를 강화하면서 핵 개발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대이란 제재를 재개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한 이래, 이란과 러시아는 자국에게 부과된 경제 제재를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러한 국제 정치에 있어 한 축을 이루는 강대국들 간의 영향권 확대 경쟁은 세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중대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적대함과 동시에 이슬람교 종파 갈등의 대상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도 마찰을 빚었었지만 최근에 화해 분위기로 가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배경으로 군사력을 강화해 나가는 이스라엘을 경계하면서 자국의 안보에 대한 불안정성을 타개하려는 일환으로 핵 개발이라는 강수를 두게 되었다. 이스라엘로 인한 안보 우려는 미국의 안보 지원 하에 있는 이스라엘의 입장으로 볼 때 자신들은 충분히 핵 억지력(Nuclear deterrence)를 갖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인도 언론 비즈니스 스탠다드(Business Standard)의 보도에 의하면 이브라힘 라이시(Ebrahim Raisi) 전임 이란 대통령은 몇 년 전, 기자회견에서 민간 부문에서의 원자력 산업과 역량 개발은 이란 국가와 국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하며 핵 개발에 대한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2022년 1월에 집권한 이래 최초로 이틀 동안 러시아를 방문한 이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방러 일정을 하루 앞두고 이번 방문이 양국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동과 중앙아사아 내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독립 국가인 이란과 러시아가 앞으로도 긴밀한 양자 대화를 바탕으로 안보와 무역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니서 6개월 후인 2022년 7월 19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이란 및 터키와의 3자 정상회담을 위해 테헤란(Teheran)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 이란 종교 최고지도자와도 면담했다. 해당 방문과 모임의 주체는 이란과 러시아의 협력으로 보여졌으며 터키의 역할은 내전으로 피폐해진 시리아에 관해 새로운 군사적 전략을 논의하는 정도로만 여겨졌다. 비록 이란 내부에서도 정부의 친러 노선이 오히려 이란을 러시아의 식민지와 유사한 상태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적인 의견 또한 나오고 있다. 현재 세계 정세를 감안하면 러시아 이 외에 밀착할 만한 잠재적 동맹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란 정부는 러시아와의 연계 강화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이란 내부의 움직임은 하메네이 정권에 대한 공공연한 불만을 토해내게 되었다. 서방의 오랜 제재로 인한 한계성은 이란 내의 불만을 심어주는 요인이 되었고 이번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자 해당 불만을 품었던 자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와 규탄을 촉구하는 등, 오히려 이란 국내의 단결력이 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하메네이 입장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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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고립되어 있는 국가? 이란의 배경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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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경제 제재에 대한 이야기
-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전 세계에서 한 국가를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경제제재를 가한 인류 역사를 봐도 매우 드문 사건으로 보인다. 심지어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들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정도로 러시아를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고립화 시키려는 상태에 있다. 특히 코로나가 아직 종식이 되지 않은 상황에 어느 정도 엔데믹을 준비하고 경제 회복의 길로 가려는 상황을 이번 전쟁으로 인해 다시 극악인 상황으로 가고 있으니 러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상황이다. 대러제재의 한 가운데 있는 러시아의 국가 두마 부의장 예프게니 페도로프(Евгений Федоров)는 러시아에서 철수한 외국기업들에게 5월 1일까지 업무에 복귀하라면서 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사업을 할 수 없는 역제재를 가하겠다는 방침을 제안했다. 예프게니 페도로브(Евгений Федоров)의 이와 같은 방침은 막심 레세트니코프(Максим Решетников) 경제발전부 장관에게 전달되면서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외자기업이 철수해 그 종업원들의 복지와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선택을 안겨 피해를 주었다면서 이와 같은 결정을 하라며 최후통첩을 날린 셈이다. 예프게니 페도로브(Евгений Федоров)는 러시아에서도 가장 극우적이고 강경파 노선의 경제인이자 국회의원으로 2014년 크림 병합 이후, 러시아에 제재가 가해졌을 때 서방의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 내 외국인 자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시켰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에도 외국이 취한 제재로부터 러시아인과 러시아 법인, 국가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관한 법안을 두마 하원에 제출하면서 일시적으로 이 법안이 일시적으로 승인된 바 있다. 이와 같는 제재 법안은 외국의 제재에 따른 자산 압류로 피해를 보았던 러시아인이나 법인이 해당 국가 국민이나 법인의 러시아 내 자산 몰수를 요구하는 소송을 자국 내 법원에 제출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승소 판결이 날 경우 외국인 자산은 러시아 정부 자산으로 귀속되며 제재로 피해를 본 러시아인은 이 자산 처리를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럼으로 인해 자국 기업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의도였다. 결국은 오바마 정권 이후,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러시아에 대한 대부분의 제재는 해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그 법안이 발의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미 러시아 경제 제재에 대한 맞대응책을 강구하다 2014년에는 일시적으로 행해졌던 것이 이번에는 사상 유래없는 대규모의 제재로 인해 확대될 것으로도 생각된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달러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동시에 금 구매를 늘리고 있었던데다 달러, 유로, 파운드 등 기축통화에 문제가 생겼을 때 더 많은 금을 가진 나라만이 자율성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태들로 인해 러시아에 투자한 국제 기업들은 아주 성가시게 생긴 셈이다. 대러제재를 감행하려는 각국 정부의 방침과 기업 비즈니스 사이에서 조만간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면서 이들과 제재에 동참한 정부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그런데 복귀기한이 5월 1일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당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길게보면 4월 말까지 간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분석가들의 여론을 고려해서 발표한 날짜라는 것이 현재까지 유력한 분석이다. 더불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보유 혹은 투자한 아파트 등 부동산이나 기업 자산을 팔고 귀국하는 일이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맞서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을 매각하고 철수하는 것을 제한하는 대통령령 발호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을 포함한 러시아로부터 비우호국가로 지정된 48개국이 그 대상 목록에 들어가 있다. 이즈베스티야에 따르면 러시아의 지적-부동산 등록청, 대한민국의 한국국토정보공사와 법원 등기소를 합친 개념인 로스레스트르(Росреестр)는 3월 17일 외국인 투자자의 대량 철수를 막기 위해 발령된 대통령령 제81조에 의거하여 부동산 거래에 대한 세부 시행 규칙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시행 칙령에 따라 비우호국가 48개국 출신 외국인들은 현지에서 아파트나 부동산을 매각하려면 재무부 산하 정부 위원회의 엄격한 허가를 받아야 된다. 48개국 출신으로 거래를 희망하는 외국인들은 러시아어로 된 신청서와 관련 서류를 러시아 재무부에 제출해 하여 해외투자통제 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는 부동산 거래의 목적과 주제, 내용, 시기, 조건 등 기본 정보 뿐만 아니라 수익자나 수익의 소유자에 대한 모든 정보까지 첨부해야 하기에 귀찮아 질 수밖에 없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와 법률가들은 아직 담당 위원회의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다, 기존의 관행 또한 존재하기 않았기에 이 모든게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다행히 무조건 규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계속 추가 제재가 이어진다면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갑작스럽게 제정된 새로운 규칙이 부동산을 개발하는 개발 법인에게도 적용되면서 핀란드 부동산 개발 회사인 유이트(ЮИТ)와 스웨덴의 보나바(Bonava) 같은 경우, 당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러시아 등록청이 정부 위원회의 허가를 받을 때까지 거래 등록을 일시 중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나타난 우려는 신청서 접수시 러시아만이 갖고 있는 절차상 복잡함과 요구하는 서류의 양이 늘어나면서 노골적으로 장기화시키는 특유의 번거로움에 있다. 이에 유력 경제지인 코메르산트(Коммерсантъ)에 따르면 현지 법무법인 펜 & 페이퍼(Pen & Paper)의 한 변호사가 말하기를 거래 신청시 이중 국적의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경우, 관련 자료를 접수하는 등록청과 중앙은행에는 없기 때문에, 이민청에만 존재하고 있어 매우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아직은 이 모든 것이 이제 시작 단계에 들어가 있고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러시아 내 경제-부동산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자칫하면 비용과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 조치가 "한시적(Временный)"이라고 명시한 것에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 종결되고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제되면 다시 평상시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제재의 해제가 언제 가능할지, 이 제한적인 조치가 언제까지 계속 될지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등 비우호적 국가들에 대해 보복적인 성격을 갖추고 대해진 이같은 조치는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 내 자산 회수를 제한하는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대통령령으로 발령되었기에 대러제재를 댓가로 볼 수 있다. 당시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 투자 자산의 회수에 대해 일시적으로 제한을 가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하면서 결정된 사항이다. 대통령령에 1만 달러 이상의 외화 국외 반출 금지가 포함된 것도 이와 같은 부분과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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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경제 제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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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발생한 반 정부 시위와 세르게이 푸르갈(Сергей Фургал) 주지사의 투옥 사건
- 2020년 7월 11일, 극동 연해주에서 가장 큰 도시 하바로프스크에는 9주 동안 시위와 피케팅이 진행되었다. 정치적 개혁과 개선도 목표로 두고 시위를 했으며 이들의 시위는 결국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의 퇴진"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처럼 많은 시민들이 러시아 현 정권이 불만을 가져 시위를 벌이게 된 이유는 하바로프스크 주지사였던 세르게이 푸르갈(Сергей Фургал)이 갑자기 투옥되었기에 그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비롯되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9주 연속으로 시위가 발생했고 러시아 정부에서는 3주가 지나자 시위에 대한 보도와 석방 시위를 전면 차단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시위가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벨라루스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었던 관계로 벨라루스 민주화 시위와 직간접적인 연관이 존재한다. 이는 직선거리 9,000km나 떨어진 벨라루스 민스크의 시위를 하바로프스크에서 거주하는 벨라루스 국민들을 통해 자세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하바로프스크 시위의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국기 및 하바로프스크 지방 깃발을 흔들며 벨라루스 민주화 시위를 지지함과 동시에 옛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국기도 함께 들며 시위하여 서쪽으로 9,000km나 떨어져 있는 벨라루스의 시위를 적극 지지했다. 2021년에는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모스크바에 열렸을 때, 푸르갈의 석방을 함께 요구하며 수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미래의 러시아(Россия Будущего) 당과 공산당, 공정 러시아당까지 여기에 합류하여 푸틴 퇴진을 외쳤고 하바로프스크의 텃밭 자유민주당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반전 시위에서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된 하바로프스크에서 왜 이와 같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것일까? 본래 하바로프스크 주와 콤소몰스크 나 아무레를 비롯한 아무르 강 지역은 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아니라 원내 제4 야당인 러시아 자유민주당(Либераль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России)의 대표적인 텃밭이었다. 자유민주당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우정당으로 당의 목적은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의 영토 복원이라는 황당한 명제를 갖고 있다.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이지만 동시에 인종주의적이고 동성애자, 여성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측 모두를 반대하면서 자본주의 개념의 사유재산은 인정하지만, 국가가 시장을 강력히 통제하는 협동조합주의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 즉, 명확히 말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반반 섞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 노선은 미국 정부나 유럽 등 서방 국가들, 고르바초프, 러시아 연방 공산당, 언론 매체,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러시아 내 리버럴 세력, 독신주의자, 이민자들을 강력히 배척하고 있다. 나도 하바로프스크와 아무르 강 일대를 다니면서 주민과 대화로 느낀 것은 대단히 보수적인데다가 인종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사람들도 많았다. 술 취해 동양인을 보면 시비걸어 폭행을 일삼는 인간도 꽤 있다. 그래서 하바로프스크에는 밤늦게 현지인 주취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신상에 별로 이롭지 못하다. 하바로프스크와 아무르 강 일대의 지방 의원들 중 상당수가 자유민주당의 두마 의원으로 들어가 있다. 게다가 러시아 본토인보다는 소련 시절, 외지인과 혼혈인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다당제를 허용한 이후, 최초의 야당으로 분리된 바 있다. 그들이 야당이 된 것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출신이 아닌 타 지역 소비에트 연방 인민공화국 룰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유태인 혼혈들이 많았는데 당 대표였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Владимир Жириновский)도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알마아타 출신에 유태인 혼혈이었다. 그러한 배경으로 인해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 공화국이 탄생했을 때 친(親) 정부 정권으로 돌아서 옐친과 푸틴을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을 받쳐주는 야당으로 활동했는데 2018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기까지 통합 러시아당의 2중대라는 굴욕적인 별칭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2018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과의 공조가 완전히 깨지는 사건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발생한다. 당시 선거에서 기존의 통합 러시아당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하는 이변이 발생했는데 그 자리를 차지한 곳의 대다수가 당시 제2 야당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자유민주당이 차지한게 문제였다. 이같은 상황이 발생된데에는 제1야당으로 올라선 공산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게 될 바에는 차라리 통합 러시아당을 떨어뜨리고 다음 선거에서 충분히 해볼만한 자유민주당에 몰표해 버린 것이었다. 공산당의 영수였던 겐나디 주가노프는 기존의 여당과 여당 2중대인 자유민주당의 사이를 갈라놓고 통합 러시아당을 낙선시켜야 지방에서 거대 여당의 세력을 축소시키고 차기 지자체 선거에서 공산당의 후보로써 해볼만한 후보들을 내세워 대결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통합 러시아당의 공약 실천 능력이 약하고 영향력 또한 부족한 시베리아 동부 지역에 대해 자유민주당에 집중적인 투표를 유도했던 것이다. 사실 통합 러시아당은 우랄 산맥 서쪽 유럽러시아 지역에 더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에 낙후한 시베리아 동부 지역과 연해주, 그리고 아무르 강 일대의 선거구에 대해서는 표 밭 관리에 안일했을 뿐더러 거의 관심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부분은 극동에서 통합 러시아당의 대참사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르 강 유역과 하바로프스크 지방에서 주지사 뿐만 아니라 의회 선거에서도 전체 36석 중 28석을 자유민주당이 차지하고 통합 러시아당은 28석을 잃고 단 2석만 유지한 대참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와 같은 대패에 깜짝 놀란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은 당시 대단한 충격에 빠져 푸틴은 수개월간 자유민주당 당선자들을 비롯해 야당 당선자들을 크레믈린에 부르지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자유민주당 소속이자 하바로프스크 주지사인 세르게이 푸르갈이 2020년에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모스크바로 압송되어 수감되었고 이에 당대표 지리노프스키는 이 사건이 사법살인이라고 규탄하며 사건이 발생한 2004년 당시와 2011년 마피아 집단들을 체포했을 당시에 벌어진 살인 사건 때는 러시아 실로비키 행정부들이 뭘 했냐며 정부를 비난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통합 러시아당과 자유민주당은 서로 등을 돌리게 되면서 노련한 공산당의 영수 겐나디 주가노프의 전략이 맞아 떨어지게 되었다. 이어 시베리아의 소도시 시장 선거에서는 선관위가 기존의 야권 후보들 출마를 무산시켰지만 여기에 대타로 출마한 주의 자유민주당 부당원들이 집권 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이 발생하면서 통합 러시아당은 시베리아 소도시 선거에서도 대패하는 이변이 연이어 발생했다. 시베리아 동부와 아무르, 연해주의 전권을 장악한 자유민주당은 결국 2021년 총선에서 약 7.5%를 득표하여 기존 의석보다 18석 감소한 21석을 차지했고 27석을 얻은 공정 러시아에 밀려 제4당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원내 극소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다. 그리고 같은 해, 알렉세이 나발니와 세르게이 푸르갈 주지사에 대한 석방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들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반전 시위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본래 자유민주당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당수인 지리노프스키도 크림 반도와 돈바스를 영유해야 한다는 공격적인 주장을 했지만 우선 그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더라도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의 집권을 막는것이 먼저이자 목표로 삼고 반전 시위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결론은 만약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이 축출되더라도 누가 대통령이 되고 집권 여당이 됐든 크림 반도와 돈바스 문제는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될 것이다. 전쟁은 하지 않더라도 어떤 방식이든 두 지역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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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발생한 반 정부 시위와 세르게이 푸르갈(Сергей Фургал) 주지사의 투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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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평화와 이스라엘과 아랍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던 평화의 전도사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1922~1995)
- 현재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공격을 한 차례씩 주고 받은 뒤, 소강 상태에 있고 양국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여기까지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스라엘은 보복 공격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따라서 중동 전역의 긴장은 한층 더 높아졌고, 이란과 이스라엘 양국은 전면전에, 핵전쟁까지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중동에 평화를 가져오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던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는 평화의 전도사라 불렸던, 이스라엘의 5대 총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1922~1995)이다. 이츠하크 라빈은 1922년 3월 1일, 예루살렘에서 탄생했다. 그가 탄생했던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패배하면서 영국의 지배 하에 들어간 팔레스타인 위임통지기 시대였다. 이후 라빈은 농부가 되기로 결심해 크파르타보르에 있는 카두리 농업학교에 다녔다. 이후 유태인 자치 지역의 준군사조직이자 정착촌 경찰 하가나(Haganah)에 들어갔다. 당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중에서 유태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는 유태인들의 자치 정부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하가나(Haganah)는 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라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1년 이갈 알론(Ygal Alon)의 설득으로 그가 창설한 팔마하 특공대에 입대했고 곧이어 시리아 침투 작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게 된다. 이 때 당시의 전공으로 소대장에 승진한 라빈은 1945년 아틀리트(Atlit) 수용소에서 200명의 유태인 불법 이주자들을 구조할 때, 부책임자로 구조 작전에 참가했다. 그리고 1946년 6월 라빈은 이른바 검은 토요일 사건(السبت الأسود)과 킹 데이비드 호텔 폭탄 테러 사건으로 인해 영국 당국에 의해 수백 명의 유태인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6개월 동안 라파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7년에 석방된 라빈은 같은 해 10월, 팔마하의 부사령관으로 다시 임명되어 이갈 알론 휘하에서 일했다. 1948년 봄, 라빈은 하렐(Harel) 여단의 사령관이 되어 포위된 예루살렘에 통로를 여는 나손(Nason) 작전을 지휘하여 그 이웃 도시인 카타몬(Katamon)과 세이크야라(Sheikyara)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이갈 알론의 지휘 하에서 라빈은 로드 전투와 라믈레(Ramlle) 전투에 참가했다. 그리고 남부 전선 작전 사령관으로서 네게브 사막과 에일라트시에 대한 반격 작전인 호레브 작전(Operation Horev)을 지휘했다. 라빈은 1946년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서 아랍 국가들과의 휴전 협정에 조인하는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이후 1953년 라빈은 영국으로 건너가 참모대학을 졸업했고, 1954~1956년에는 영국군 훈련소장을 지냈으며 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1956~1959년에는 북부 사령부의 사령관으로 복무했으며 1959~1960년에는 이스라엘 군 작전 사령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1961년에는 부총참모장에 임명되었고, 1964년 1월 1일 제7대 이스라엘 군의 총참모장이 되면서 6일 전쟁(Six-Day War)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당시 라빈은 총참모장으로서 이스라엘 군을 지휘했다. 라빈은 1964년 6월 5일 아침 8시 50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한 레이더 기지의 교대 시간을 노리는 진입작전을 고안했다. 그는 이스라엘 공군의 전투기들러 하여금 사막에서 1편대 당 4기씩 밀집 초저공 비행을 하며 이집트 방공망을 우회해 주요 공군 기지들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아랍 연합군 중 최대 전력이던 이집트 공군의 주요 기지들에 거의 같은 시간에 기습 폭격을 가하면서 6일 전쟁의 서막을 열었고 결국 나세르의 항복 받아내 승리로 이끌었다. 이어 1968년 1월 1일에 그는 총참모장으로써 전역과 더불어 주미 대사에 임명되어 미국에서 5년 동안 근무하게 된다. 이후 라빈은 1973년 봄 이스라엘로 귀국하여 이스라엘 노동당(מפלגת העבודה הישראלית)에서 활동하게 되었으며 1973년 이스라엘의 국회인 크네세트(הַכְּנֶסֶת)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여태 총참모장으로써 제3차 중동전쟁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1974년 4월 골다 메이어 내각에서 노동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골다 메이어 총리가 제4차 중동전쟁에서의 실책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 본토 태생으로 최초의 총리로 당선되었다. 라빈은 노동당의 당수를 지내기도 하였다. 라빈은 전임 총리들과 다르게 지난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큰 피해를 입힌 이집트에게 전향적인 태도로 나왔고 역시 이스라엘과의 화평을 맺는 것으로 외교 정책을 전환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18~1981)와 1975년 시나이에서 잠정 협정을 맺었다. 협정 결과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에서 약 30km 동쪽으로 철수하는 대가로 이집트는 이스라엘 선박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용했다. 1976년에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당한 에어 프랑스 항공기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한 대테러 작전인 엔테베 작전(Opération Entebbe)을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라빈은 내각 불신임 결의 문제로 하레디 정당과 갈등을 빚었으며 오일쇼크의 여파가 이스라엘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물가와 실업률은 크게 오르는 등 이스라엘의 경제는 급격히 침체에 머물게 된다. 물론 자연히 이스라엘 정국은 불안정했고 그에 대한 타개책으로 1977년 조기 총선을 치렀다. 그러나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와 관계가 냉각되는 바람에 총선에서 참패했고 여기에 미국 대사 시절 미국 은행에 자신과 부인의 계좌를 사적으로 개설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자 결국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된다. 이후 1984년부터 1990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내다가 1992년 2월 노동당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전국 예비 선거에서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1992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승리로 이끈 라빈은 7월, 총리 겸 국방장관으로서 제25대 이스라엘 내각을 구성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중재자로 하여, 라빈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과 평화 협정을 개시하면서 중동 평화의 전도사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그는 1994년 10월, 아라파트와 오슬로 협정을 맺었으며 이와 같이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아라파트 의장,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1920~2016) 외무장관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오슬로 협정으로 인해 PLO를 모태로 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되었고, 예루살렘 동부 지역을 포함하며 요르단 강을 경계로 요르단과 마주한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이집트와 마주한 가자 지구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로 결정된다. 따라서 같은 해, 라빈 총리와 요르단의 후세인 1세 국왕 사이의 회담이 열려 요르단과의 분쟁을 종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5년 9월 28일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을 3단계로 나누어 점진적 자치 지역 확대를 기반으로 한 제2차 오슬로 협약을 마련하여 팔레스타인은 마침내 독립 국가로써의 길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라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존을 누구보다도 염원했으며 오슬로 협정은 라빈의 이러한 노력이 적극 반영된 협약이었다. 제2차 오슬로 협약이 체결된 직후, 1995년 11월 4일, 라빈은 텔아비브에서 열린 중동 평화회담 지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한 다음, 관용차에 탑승하던 도중 이스라엘 민족주의 세력인 하레디 집단에 속한 청년 이갈 아미르(Yigal Amir)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라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정부는 동월 5~6일을 국민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각 관공서들은 조기를 걸고 유흥업소들도 일제히 문을 닫았으며 각급 학교들도 임시로 휴교했다. 라빈의 시신은 이스라엘 국회의사당에 안치되어 100만여 명이 이곳에 조문을 위해 다녀갔다. 라빈의 장례식은 예루살렘 헤르츨 국립묘지에서 유가족과 시몬 페레스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 영국 총리, 당시 영국 왕세자였던 찰스 3세, 헬무트 콜 독일 총리,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장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 이홍구 대한민국 국무총리,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 폴 키팅 호주 총리,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UN 사무총장,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후세인 1세 요르단 국왕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뤄졌다.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면서 노벨평화상도 공동으로 수상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의 테러 가능성으로 인해 불참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11월 4일은 현재 이츠하크 라빈 추모일(יום הזיכרון ליצחק רבין)로 지정되어 그의 평화를 향한 노력과 이스라엘 및 아랍 & 중동 국가들과의 공존을 위한 라빈의 위대한 뜻을 기리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네타냐후와 같은 전쟁광이 아니라, 이츠하크 라빈과 같은 평화와 공존을 상징하는 인물이 필요하다. 필자는 중동에서의 사태가 심상치 않아짐에 따라 라빈을 그리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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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평화와 이스라엘과 아랍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던 평화의 전도사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1922~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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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핵 전쟁 점화되나?
- 이스라엘이 마침내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선제 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수십 개 목표에 대한 선제 타격을 실시했으며 테헤란 시내 곳곳에 거대한 불길이 솟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선제 공격하면서 작전명을 사자들의 나라’(Nation of Lions)라고 명명했다. 이에 맞춰 이란도 이스라엘에 보복을 천명했으며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이란의 보복으로 인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예상된다며 이스라엘 영공을 폐쇄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 과정에서 지지부진하니 이스라엘이 먼저 선제 공격을 감행한 것인데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을 경우 이스라엘 내 미국 시설에 대한 공격을 가하겠다고 경고를 했었기 때문에 미국도 같이 이 사태에 휘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국외에서 치열하게 분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영토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자제해 왔는데, 이번 사태는 암묵적으로 설정되어 있던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이란의 핵과 관련이 있다. 이란의 핵 개발 시초는 1978~1979년에 발생한 호메이니 혁명 때부터이다. 그 이전에 팔라비 왕조는 친서방 정책을 펼치면서 평화적인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위한 개발에 대해 미국 및 주요 서방 국가들과 시설 건축을 논의 중이었다. 그래서 1970년에는 NPT에도 가입했을 정도로 당시 이란은 원자력 발전 수준의 발전소와 기술을 갖길 원했다. 그러나 이란에 호메이니 혁명이 발생함으로 인해 호메니이의 반서방 정부가 들어서게 되자 원자력 관련 모든 협력이 중단되었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원자력 개발을 단독으로 이어가기로 했으며 2000년대 IAEA의 사찰로 이란 곳곳의 비밀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을 행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써 이란이 전술 무기로써의 핵 개발을 한다는 우려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란은 이슬람의 종교적 분파 중 하나인 시아파를 국교로 삼고 있기에 기본적으로 수니파 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수니파의 수장 국가라는 인식보다는 친미, 친서방 국가라는 부분에서 더더욱 좋게 보지 않았다. 게다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또한 그리 좋지 않았었지만 지금 같이 악화일로를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이란과 이스라엘 양국이 서로 협력하기도 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무기 지원으로 이라크를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란보다 이라크를 더 위협적으로 보았고 원래 이스라엘이 가장 경계하던 대상은 국경을 접한 인구 대국이자 아랍권 최강의 군사 강국인 이집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제4차 중동전쟁 이후 미국이 이집트를 이스라엘과 화해시키고 그 대가로 이집트 군부에게 막대한 보조금과 군사 원조를 약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집트를 더 이상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이란의 경우 호메니아 혁명 이래, 친미에서 반미로 전향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우호관계를 맺는다 해도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요르단의 하심 왕가 역시 이스라엘과 화해했으며, 이스라엘 입장에서볼 때, 이집트보다 훨씬 대하기 쉬운 시리아나 레바논 측 군부 인사들만 상대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입장에서 매우 유리하게 정세가 변화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란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 사이의 국경 분쟁으로 볼 때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과 이스라엘이 분쟁을 벌이는 차원으로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리전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자동적으로 이어오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측에서는 자국 국방 안보에 가장 큰 위험 국가로 이란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이란이 이와 같은 대리전 양식으로 지원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자국 안보를 위해 타 종교인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즉, 이스라엘이 무너지면 이란의 다음 목표는 수니파 국가들이라는 주장을 하게 됐는데 시아파와 1,500년 이상 뿌리 깊은 다툼을 벌여온 수니파 국가들 입장에서는 이에 반론을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꽤나 설득력을 있었다. 이에 따라 이란의 급격하게 발달된 영향력에 반발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오히려 과거처럼 이스라엘에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을 견제하면서 때떼로 이스라엘과 협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걸프 지역에 자리 잡은 바레인, 카타르, UAE 등 아랍 왕정 국가들에게 이스라엘 자신들이 시아파와 대신 최전선에서 이란과 싸우면서 당신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는데 만약 이스라엘이 시아파의 공세에 무너지면 다음 목표는 당신들이다는 방식으로 곳곳에서 로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터키나 아제르바이잔과 같은 세속화 된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도 매우 중시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유럽과 미국이 모두 독재 국가이며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침공했다 여긴 아제르바이잔을 비판했지만 이스라엘과 터키만큼은 공개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미국 정계에 로비까지 해주는 등, 각종 공을 들였다. 이와 같은 로비와 터키 및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투르크계 국가들까지 비밀리에 관계 개선을 해왔고 이것이 터키에서 육성한 HTS가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을 뒤엎고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등, 한 때 이스라엘에게 매우 유리하게 해준 계기가 된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시리아와 이라크, 요르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을 두고 이란은 시리아와 이라크 내에 잔존하는 시아파들을 지원해주며 시리아와 이라크 자체를 이란에 종속시켜려 시도했다. 만약 이라크에 헤즈볼라의 레바논 수준의 친 이란 계열의 정권이 들어서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안보 위협 가해지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이 시아파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종 레바논이나 시리아 남부 지역의 군사 기지들을 폭격하는 것은 이와 같은 안보 문제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무기 개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생각하여 이를 자국 내 큰 안보 위협이라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은 핵 무기 개발 시설들을 이란 전역 곳곳에 가짜 핵 시설도 만들어 두고 혹시라도 모를 핵 시설에 대한 공습이 자행될까 우려하여 모두 지하화 시키는데 성공한다. 핵 관련 시설을 지하화 된 부분들을 인공위성 사진으로는 도저히 구별이 가지 않아 미국과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를 찾아내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스라엘이 주기적으로 이란의 핵 시설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란이 비밀리에 핵 개발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지만 그 핵 시설이 진짜인지 가짜로 만들어진 위장 시설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거기에다 이란은 이스라엘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이라크의 5배가 넘는 넓은 국토 각지에 핵시설을 숨겨 둔 상황이라 공습을 감행한다고 해도 상당한 준비를 갖춰야 하며,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은 편이다. 반면 이란이 핵을 보유하려 한 이유 또한 자국의 안보 위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란의 국외 정세를 보면 주변이 모두 수니파 적대국이다. 게다가 중동의 군사력을 양분라는 라이벌인 터키가 중동 최강의 지상군과 드론 부대를 가지고 버티고 있다. 제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화해했지만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가장 강력한 적대국이고, 미국과 서방이 이란을 제재하고 있다. 전체적인 지정학적 형태로 볼 때, 이란은 중동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란과 혈맹으로 후티가 있다 하지만 예멘과 이란의 지리적인 거리 차이도 상당하다. 따라서 이란 입장에서 핵 보유는 당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라크는 미국-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현재 미국이 철수했어도 여전히 큰 혼란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의 또 다른 이웃 국가이자 이란과도 가까운 알 아사드 정권은 이미 전복되었다. 이러한 국가들의 전쟁과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초토화 되고 있는 상황을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이란의 정치인들과 이란 정규군 및 이슬람 혁명 수비대의 이란군 고위 장성들도 모두 제대로 목도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핵 개발도 이란의 핵 개발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핵 개발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초 이스라엘의 핵 무기는 1966년 말 또는 1967년 초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에 대해 부인하지도, 시인하지도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세계는 사실상 이스라엘을 80~300여 개 정도의 핵탄두를 가진 핵 보유국으로 보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2008년 이스라엘이 150개의 핵폭탄을 보유하였다고 폭로했는데 이스라엘이 핵을 갖고 있는 것은 중동 내에서도 굉장히 큰 위협이다.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보유하고 있던 핵탄두의 조립을 명령했다. 만약 이 핵탄두가 사용되었다면 중동 전쟁은 벌써 핵 전쟁이 발생했을 것이다. 한편 이번 테헤란 공습으로 인해 이란의 보복으로 인한 확전을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란이 핵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핵실험에 어느 정도 성공했으며 핵탄두가 얼만큼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모를 뿐 아니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란이 공개되지 않은 핵탄두를 사용할 수 있고, 이스라엘 또한 공인된 핵탄두를 사용할 수 있다. 이대로 확전이 되면 제5차 중동전쟁에 핵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지금 중동은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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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핵 전쟁 점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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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상호 공습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
- 젤렌스키는 "거미줄 작전" 이후, X에서 러시아는 본성을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또 다시 총 400대 이상의 드론과 40발 이상의 미사일을 동원해 도시와 민간인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과 유럽, 전 세계가 러시아에 대해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에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4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이후, 거미줄 작전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이 불가피하다는 부분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의 전략 자산 공격에 보복하지 말 것을 설득했지만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하게 응징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고 언급했다. 이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이후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미국은 러시아 핵 전력에 대한 드론 공격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키예프는 워싱턴을 향해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카드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드론 공격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러시아와의 핵 전쟁에 끌려들어갈 것을 두려워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인해 젤렌스키가 갖고 있는 지도, 혹은 영토에 대한 견해가 바뀌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우크라이나 측은 푸틴 대통령에게 제대로 우크라이나를 폭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공군 기지에 대한 드론 공격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우크라이나가 우리의 디렉션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인 공격을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키예프 측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나 젤렌스키가 X에 남긴 언급에 대한 코멘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핵보유국의 입장에서 전략 자산을 공격 받은 러시아가 응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젤렌스키는 앞서 우크라이나를 공습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와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글을 SNS에 올렸지만, 트럼프는 여기에 전혀 대응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때로 공원에서 두 아이가 심하게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억지로 떼어 놓기 보다는 잠시 더 싸우게 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Sometimes, two children fight badly in the park, and in such cases, it may be better to let them fight for a while rather than forcibly separate them.)고 발언했다. 이는 젤렌스키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인 발언일 수도 있다. 러시아의 보복 수위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휴전에 동의하겠다고 한 우크라이나가 먼저 러시아에 도발을 했으니, 어디 마음대로 싸워보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방관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은 완전히 러시아 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와 같은 트럼프의 발언에 젤렌스키는 발끈했다. 그는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푸틴 대통령과 함께 놀이터에 놀고 있는 어린이가 아니다(Україна — це не дитина, яка грається на дитячому майданчику з президентом Путіним.)라고 운을 뗀 뒤, 그는 어린이들을 죽이러 놀이터에 온 살인자(Він убивця, який прийшов на дитячий майданчик, щоб убивати дітей)라고 반박했다. 이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한 아버지를 예로 들며 "오랜 전쟁으로 자녀를 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그가 온전히 느끼고 이해할 수 없을 것(Він ніколи не зможе повною мірою відчути та зрозуміти біль українського народу, який втратив своїх дітей у довгій війні)"이라고 트럼프에게 화를 냈다. 반면, 러시아는 트럼프의 "아이들 싸움" 발언에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린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러시아에게는 국가 이익, 안보와 직결된 실존의 문제지만 워싱턴과 접촉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У президента Трампа могут быть свои взгляды на российско-украинский конфликт, но для России это экзистенциальный вопрос, напрямую связанный с национальными интересами и безопасностью, и ей важно поддерживать контакт с Вашингтоно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비슷한 비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격렬한 싸움은 하키와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인데, 심판들이 잠시 시간을 준 뒤에야 경기를 중단시킨다"고 미국이 심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설명했다. 트럼프는 이후에도 백악관에서 메르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상호 공격이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위험을 높이고 있다며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중재를 통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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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상호 공습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