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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시바 총리, 첫 한일정상회담…“미래 협력에 기대”
- [카나나스키스=2025.06.18.] 이재명 대통령, G7 정상회의 계기 첫 한일정상회담…“보완적 협력으로 미래 지향적 관계 기대” 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첫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대면 정상 외교로, 외교적 상징성과 실질적 협력 모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13일 만에 이뤄진 것으로, 역대 정부들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빠른 시점에 성사됐다. 양국 정상은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외교,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회담은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저번에는 전화로만 인사를 나눴는데, 오늘 직접 뵈니 반갑다”며 친근한 인사를 건넸고,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님은 일본 방송에 자주 나오셔서 오히려 처음 뵙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유쾌하게 응답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앞으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국제통상환경과 외교질서가 불안정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인접국인 한일 간의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경제·기술·안보 분야의 실질적 공조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시바 총리 역시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국민 간 교류 확대와 협력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중동, 아시아 지역에서의 위기 상황은 우리 모두의 공동 과제이며,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경제협력 강화,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청년·문화 교류 활성화 등을 공동 관심사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단순한 친선 차원을 넘어, 양국 간 미래 협력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정상외교는 윤석열, 문재인, 박근혜 등 전임 대통령들과 비교해도 매우 이른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넉 달 뒤인 2022년 9월 뉴욕에서 기시다 총리와 첫 양자회담을 가졌고, 문 전 대통령은 두 달 후 독일에서 아베 총리와 회담을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임기 1년이 지난 뒤에야 대면 회담이 성사됐다. 이번 회담은 새 정부가 한일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특히 정권 교체기에 불거질 수 있는 외교 공백을 최소화하고, 지역 및 글로벌 이슈에 대한 공동 대응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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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시바 총리, 첫 한일정상회담…“미래 협력에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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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3 피날레 퍼레이드, 서울 도심 마비…환호와 불만 교차
- [서울=2025.06.28.] 서울 광화문 일대가 28일 저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의 피날레 퍼레이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2025 K-콘텐츠 서울여행주간’의 일환으로 서울시와 넷플릭스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오후 7시 30분부터 세종대로 광화문 교차로에서 출발해 서울광장까지 약 1시간 동안 펼쳐졌다. 퍼레이드에는 경찰 추산 약 5,000명이 참여하며 서울 도심이 붉은 ‘핑크가드’ 물결로 가득 찼다. 퍼레이드는 드라마 속 상징 캐릭터인 거대 ‘영희’ 구조물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드라마 의상을 갖춰 입고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장면을 촬영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을 알리는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축제로 기획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도심 교통 혼잡이라는 그림자도 남겼다. 오후 7시부터 광화문 삼거리에서 서울광장까지 이어지는 세종대로 일부 구간의 차로 8개 중 중앙 4개가 통제되었고, 서울정부청사 앞 방향 2개 차선도 추가 통제됐다. 버스는 세종문화회관 정류장을 무정차로 통과했고, 서울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오후 8시 30분 기준 해당 구간 차량 속도는 시속 15.4km에 불과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왜 드라마 행사 때문에 버스를 못 타게 하나”, “청소년 관람불가 콘텐츠가 도심 교통을 마비시키는 게 타당한가” 등의 불만이 SNS를 통해 이어졌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 서울광장에서는 오후 8시 30분부터 ‘오징어 게임’ 시즌3 팬 이벤트가 개최됐다.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 이병헌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팬들과의 소통이 이어졌다. 황 감독은 “이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끝이 난다는 사실이 섭섭하다”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땅따먹기’, ‘동대문을 열어라’, ‘우리 집에 왜 왔니’ 등의 게임을 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한편, 전날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시즌으로 공개 직후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평가의 온도차는 뚜렷했다. 뉴욕타임스는 “반복되는 공식과 상상력의 부족”을 지적하며 황 감독의 연출을 비판했고, 할리우드리포터는 “빈약한 캐릭터 구성과 실망스러운 결말”이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버라이어티는 “이전 시즌만큼의 강한 인상은 없지만, 마지막 몇 화에 몇 가지 설득력 있는 반전이 있다”고 평했다. 반면 타임지는 “시즌2의 혼란을 뒤로하고 시즌3에서 감독이 다시 본연의 매력을 되살렸다”고 호평했고, 콜라이더는 “모든 강점을 극대화한 압도적 피날레”라고 극찬했다. 블룸버그는 “우리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논평했다. 한편, 미국의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일반 시청자 500명 이상이 참여한 평가에서 100점 만점 중 50점을 기록해 대중 반응은 중간 수준에 그쳤다. 이번 피날레 퍼레이드는 K-콘텐츠의 문화적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대중적 이벤트였으나, 시민 불편과 콘텐츠 적절성에 대한 논란 역시 제기되며 복합적인 평가를 남겼다. 오징어 게임이 남긴 사회적 영향력과 문화적 파급력을 되짚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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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3 피날레 퍼레이드, 서울 도심 마비…환호와 불만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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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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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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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미국·프랑스처럼…‘스마트폰 없는 학교’ 법제화 가속
- "스마트폰 없는 교실" 법제화 파장... 교실이 바뀐다 [서울=2025.07.08.] 수업 중 울리는 카톡 알림음, 몰래 게임하는 학생들, 교사를 몰래 찍어 SNS에 올리는 영상들... 이제 이런 풍경이 교실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드디어 '스마트폰 없는 교실' 실현을 위한 법적 칼날을 빼들었다. 하지만 이 칼날을 둘러싸고 "교권 회복의 희망"과 "학생 인권 침해"라는 상반된 목소리가 격돌하고 있어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내년 3월부터 '스마트폰 금지'...드디어 법으로 정해진다. 지난 7월 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내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게 된 것이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단순한 '사용 금지'를 넘어선다. 교사와 학교장이 학생의 스마트기기 소지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까지 부여받게 된다. 기존의 교육부 지침이 "권고"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명령"이 된 셈이다. 교실 현장의 절규... "더 이상 못 참겠다" 왜 이런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을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답이 명확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5월 발표한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이를 웅변한다. 교사 10명 중 7명(66.5%)이 "수업 중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으로 인해 수업이 방해받았다"고 토로했다. 현장의 증언은 더욱 생생하다. "수업 중 학생이 게임 소리를 끄지 않아 주의를 주었더니 '선생님이 뭔데?'라며 대들었어요." 서울 모 중학교 교사 A씨의 경험담이다. 또 다른 교사는 "학생이 수업 내용을 몰래 녹음해서 편집한 뒤 SNS에 올려 조롱당했다"며 교권 침해의 새로운 양상을 호소했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하다가 폭언과 폭행까지 당한 사례들을 증언하며, "이제 법적 뒷받침 없이는 교실을 지킬 수 없다"고 절규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디지털 디톡스' 열풍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전 세계가 학교 내 스마트폰 규제에 나서고 있으며, 그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50개 주 중 26개 주가 교내 스마트폰 금지법을 시행 중이다. 뉴욕시는 2024-2025학년도부터 모든 공립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캘리포니아주도 주 차원의 금지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중학교에서는 스마트폰 금지 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평균 5% 향상되었다는 내부 보고서가 나왔다. 사이버 괴롭힘은 감소하고, 학생 간 직접적인 소통은 늘어났다. 프랑스는 더욱 과감하다. 2018년부터 초·중학생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등교 시 스마트폰을 수거해 하교 후 돌려주는 방식까지 도입했다. 프랑스 교육당국은 이를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며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율성 vs 보호"... 뜨거운 논쟁의 중심 하지만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자율적인 규칙을 마련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법제화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학생들과 일부 학부모들은 "스마트폰이 학습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고, 비상시 연락 수단으로서의 필요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더욱 강경 입장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 아동의 뇌에서는 전두엽 기능 저하가 관찰되었고, 이는 학업 성취도 저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자기 통제력이 낮아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이 매우 높으며, 이는 주의력 결핍, 충동성 증가, 수면 장애 등 다양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위협: 딥페이크까지 등장한 교실 문제는 단순한 중독을 넘어서고 있다. 일부 학생들이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교사를 조롱하거나, 사이버 폭력을 행사하는 전례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교권 침해를 넘어 학생들 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학교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균형점을 찾아라...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 결국 이번 법제화는 단순한 기술 규제를 넘어, 교육권·인권·안전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가치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교권 회복과 아동 보호라는 대의와 학생 자율성 간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한 심도 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스마트폰 없는 교실'이 우리 교육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까? 내년 3월, 전국의 교실에서 그 답이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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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미국·프랑스처럼…‘스마트폰 없는 학교’ 법제화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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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유태인들, 부하라 유태인들의 역사와 아쉬케나지
- 중앙아시아 부하라 유태인은 이란어 계열의 타지크어 중 부호리(Bukhori) 유태인 방언을 사용하는 모든 중앙아시아 유태인을 지칭하고 있다. 이들이 부하라 유태인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16~18세기에는 중앙아시아의 무역 상인들을 대개 부하라 인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는 아직 투르키스탄, 내륙아시아(Inner Asia), 중앙아시아(Central Asia)와 같은 어휘가 사용되기 전이었고 트란스옥시아나, 마와르 안 나흐르(Mawar An Nahr)와 같은 지명들은 과거에 사용되었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1970년대 소련 영내에 거주하던 부하라 유태인의 수는 통계상 30,000여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17,000여 명은 1970년대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호주로 이주했다. 오늘날 부하라 유태인의 인구수는 이보다는 훨씬 많은 180,00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스라엘이나 미국으로 이민 가기 이전에는 무슬림인 척 하던 경우도 많았고 다른 유대인들과 통혼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부하라 유대인 상당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우즈베크어와 부호리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며 대신 러시아어의 영향력은 아직도 강하다고 한다. 이들은 부하라 외에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페르가나, 타지키스탄의 후잔트, 카자흐스탄의 타라즈, 심켄트에도 많은 수가 거주했다. 원래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이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해당하는 호라산의 메르브를 거점 삼아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도시들로 이주하여 하자르 제국의 유태인들과 혼혈해 나타난 것이 이들의 기원이다. 이미 고대 말부터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 발흐 지역 내 유태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했다. 서기 4세기 무렵 유태인들은 고대 페니키아 인들의 유리 제조 기술을 중앙아시아로 가지고 들어와 유리 제조업을 전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 시대가 되면서 사마르칸트의 유태인 공동체가 서기 12세기 무렵 크게 부흥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원래 중세 초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유태인들이 가장 많았던 도시는 사마르칸트였지만 칭기즈칸의 군대가 사마르칸트를 파괴하는 와중에 전멸당한 이후 혈통이 끊겼던 것 같다. 원래 중앙아시아 유태인들은 페르시아 유태인과 거의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으나 16세기 이후 이란의 사파비 왕조가 영내의 페르시아 인들을 시아파로 개종시키고 중앙아시아의 수니파 투르크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양자 간의 왕래가 어려워지면서 분화되었다고 추정된다. 여기에 더해 사파비 왕조는 이들 유태인들과 경쟁 상대였던 아르메니아 인 상인들을 우대해 주었고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 인로 인해 유태인들의 생계 수단이 상당 부분 잠식당하면서 16~18세기 동안 페르시아의 유태인 인구 1/3 가량이 부하라 등등 중앙아시아 각지로 이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란 사파비 왕조에서 서쪽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교역은 아르메니아 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반면 사파비 왕조 동쪽에서도 그와 같은 이유로 유태인들이 주로 동쪽 수니파의 칸국들과 교역하면서 실크로드 무역로는 동과 서로 나뉘게 된다. 본래 부하라 칸국은 시나고그 건설을 허가하지 않았으나 이들은 마스지드 건설 기금을 후원하면서 그 부속시설로 시나고그를 함께 건축하게 하는 방식으로 예배 공간을 확보했다. 부하라 칸국의 통치자들은 개인 성향에 따라 유태인들을 탄압하는 경우도 있었고 관용을 베푸는 경우도 있었으며 부하라 유태인들은 종교 행사를 대개 집에서 몰래 치르곤 했다. 유태인들이 이주해 올 때 부하라는 무굴 제국에 군마로 사용할 말을 수출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차를 다른 지역으로 중계 무역하면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19세기에는 무굴 제국과 부하라와의 무역이 붕괴되고 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무슬림 상인들이 경쟁자였던 부하라 유태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에게 정복된 이래 이들은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소련의 지배를 연달아 받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유태인들을 러시아 제국의 신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간주했는데 이에 따라 러시아 제국 법을 적용받지 않았으며 병역 부담을 가지지 않는 대신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자기 명의로 사업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부하라 유태인들이 징집되었는데 이 가운데 10,00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소련에서 유태인의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 이후 대다수가 이스라엘로 건너갔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는 유태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선교 단체의 후원금으로 인해 많은 수의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소련이 붕괴하기 얼마 전 시점인 1987년 기준으로 소련 통계와 이스라엘의 부하라 유태인 커뮤니티의 통계를 합산한 바에 따르면 부하라 유태인의 수는 총 85,000여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45,000여 명은 구소련 영내에, 32,000여 명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미국 등지에 3,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1989년 부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유태인 이민 제한을 철폐하자마자 우즈베키스탄 내 유태인 인구의 대부분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해외 이주를 선택했다. 이스라엘에는 부하라 유태인 후손이 100,000~120,000명 정도 존재하고 있으며 미국에는 뉴욕 퀸즈(Queens)를 중심으로 50,000명 정도가 거주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전체를 통틀어 1,500명 정도로 부하라 유태인들이 남아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이 이슬람권에 해당되는 국가인 관계로 이러한 사정상 유태인들은 러시아인 이름을 사용하고 러시아인으로 행세하면서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 참고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는 150명 정도만 남아 있다. 부하라에서는 유태인 묘지나 시나고그가 구시가지에 남아 있다.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시대나 소련 시대에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의 이민과 정착이 이루어지고 소련 시대의 국가 무신론 정책으로 종교 및 종파가 다른 집단 사이에 통혼이 늘어나면서 아쉬케나지 혹은 러시아인이나 우즈베크인 등등과 통혼하는 사례도 흔했다. 이들은 같은 유태인인 미즈라힘(Mizrachim), 세파르딤(Sephardim)과 예법을 공유했으며 오늘날에는 여러 이유로 인해 아쉬케나지 유태인들과 빠른 속도로 동화되고 있다. 부하라에서 거주하는 기간 동안 이슬람으로 완전히 개종하고 무슬림과 통혼하는 인구도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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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유태인들, 부하라 유태인들의 역사와 아쉬케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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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중동의 핵 확산이 가능한가?
- 대다수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그 확산이 가속화되고, 미국과 서구가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다른 중동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질거라 어떻게 장담하는지 알 수 없다. 핵무기가 일반 군수산업처럼 막 찍어내고 그런 무기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가이드 알바를 할 때, 그거 가이드 하기 위해 핵 관련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그래야 관련 설명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 고객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그들이 열심히 귀담아 듣는 그 모습이 늘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가 우라늄 농축 과정 및 핵을 제조하는 원리에 대해 지난 번에 칼럼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타 중동 국가들이 이란처럼 왜 핵을 가질 수 없는지 알려드릴까 한다. 핵을 만들던, 원자력 에너지를 만들던, 모든 것은 원자로에서 시작된다. 한 개의 원자핵이 중성자 또는 감마선을 쏠 때, 많은 에너지들이 방출되는데 거의 크기가 같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더 작은 핵으로 분열하는 것을 핵반응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보통 우라늄, 플루토늄 같이 질량수가 큰 무거운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하여 더 가벼운 원자핵 2개와 2~3개의 중성자 등으로 쪼개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핵분열이라고 한다. 핵분열에서의 연쇄 반응(Chain Reaction)을 일으켜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을 분열시키고, 그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며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것을 원자력이라 한다. 핵분열의 연쇄작용과 이를 통제하려면 원자로(Nuclear Reactor)가 필수다. 임계점을 넘은 핵연료의 연쇄작용을 가만히 놓아 둔다면 그 반응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료봉을 여러 개 묶은 연료 집합체로 원자로에 다발로 삽입한다. 대개 경수로 형식으로 이용되는 원자로에는 감속재로 경수를 쓰고 고속 중성자를 사용하는 원자로에는 감속을 할 필요가 없기에 감속재가 없다. 전 세계의 원전의 80%는 경수를 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게 냉각수인데 보통 담수나 해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비상 노심 냉각 장치 (ECCS, Emergency Core Cooling System)를 위해서도 물은 필수적이다. 원자로에서 우라늄이 핵분열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들고, 증기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을 돌리는데 쓰인 증기는 공기 중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복수기로 보내져 바닷물인 냉각수에 의해 식혀져 온배수로 방류된다. 1,000㎽급 원전 1기에 초당 60~70톤의 냉각수가 사용된다.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손쉽게 얻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바닷가에 짓는다. 원자력발전소의 열을 식히는 모든 장치는 물이 필요하며 발전 과정에서 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중동은 대표적으로 물 부족 국가들도 많고 바닷가에 면해 있는 국가들은 오로지 해안가에 해수만 써야 하는데 바다가 주변국을 마주하는 국가들이 많다. 특히 원자로에는 끝없이 냉각수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만약 원자로에 냉각수가 끊기면 노심 연료봉의 온도가 높아지고 그러다보면 폭발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체르노빌이든, 후쿠시마든, 참사는 대부분 원자로의 노심에 냉각수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연료봉이 열을 받는 바람에 생긴 참사다. 게다가 이런 현상에서 핵을 주조하려면 일상에서 쓰는 저농축 우라늄과 고농축 우라늄(U235), 플루토늄을 생성시키기 위해사 핵연료 재처리를 해야 하는 시설이 필요한데 중동에는 없다. 그리고 이거 유지하는 것도 많은 양의 물이 들어간다. 게다가 이를 다루고 제어하는 핵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대개 사암으로 이루어진 사막이 많아 노출되기 십상이며 위험성은 더 커진다. 특히 햇볕이 뜨겁고 건조한 사막기후는 냉각수의 가장 큰 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중동이 핵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란이 핵을 가진다고 해서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알려둔다. 그리고 미국의 위협을 받고 이스라엘의 생존이 위협이 된다는데 이미 이스라엘은 핵을 가졌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애초부터 미국이 위험스러웠다면 미국의 알래스카와 가까운 러시아가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중동의 소형화된 핵무기가 미국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터질 위험보다 러시아가 쏜 핵무기가 뉴욕이나 워싱턴에 터질 위험이 더 높다. 그 이유는 거리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중동이 쏘면 유럽이나 영국 등 다른 나토 국가들이 요격할 수 있지만 러시아가 쏘면 캐나다 한 국가 밖에 거쳐 가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타격할 수 있다. 마침 러시아 캄차트카에 그와 같은 핵 미사일 기지가 있긴 했다. 그런데 더 가까운 러시아가 쏜다는 걱정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란의 핵무기를 막는 것은 미국의 생존과 안녕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란은 미국과 서방의 장기 제재, 적국인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고, 이스라엘은 매우 위협적이다.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이란은 핵을 선택했다. 먼저 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본국 수호를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이란은 여태까지 수많은 참을성과 자제력을 보여왔다. 그 하나만으로도 이란은 생각보다 위협적이지는 않는다. 다만 친미, 친서방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위협적이라는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호메이니 혁명 이후, 이란은 여태까지 이란-이라크 전쟁 외에는 전쟁을 한적이 없고, 해당 전쟁 또한 미국의 사주로 인해 사담 후세인이 먼저 침공해서 벌어진 전쟁이다. 따라서 이슬람 공화국 정권이 수립된 이후, 이란은 단 한 번도 남을 침공한적이 없다. 그런데 무엇이 위협적이란 말인가? 한국은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전쟁에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이란이 한국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북한을 부추겨 우리를 공격하기를 했으며 이란이 한국에게 무엇을 잘못을 했길래 한국이 이란에게 악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을 지원한 미국은 뭐가 되는거고 태평양전쟁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소련 보고 대일 참전을 부추겨 만주, 한반도 북부까지 장악하게 만들어 북한 정권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은 뭐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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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중동의 핵 확산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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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그리스 정부와 정당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경제 위기
- 그리스는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IMF와 EU에게 빌린 돈의 규모가 수백조 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IMF와 EU는 그리스의 국채를 가지고 있는 민간은행의 국채를 상환 의무가 있는 그리스 정부 대신 인수하는 방식으로 그리스 정부에 대한 구제 금융을 지원했다. 즉 2015년에 와서는 대부분 그리스의 국채를 민간이 아니라 IMF와 EU, 그 중에서도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 정부는 이들 IMF와 EU, 독일 및 프랑스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IMF와 EU에게 있어서 이 구제 금융 채권 상환은 일종의 구상권 청구인 것과 같다. 그냥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해주었다가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도 같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돈줄을 쥐고 있는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이 엄청나게 손해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협상은 순탄치 않게 진행되었다. 벌써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견제에 나서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렉시트라 불리는,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 자체도 용인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돈 갚을 것을 압박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급진좌파인 시리자 정권의 집권 이후 기존의 그리스 신민주주의 당 내각에서 추진하던 긴축 정책를 철회하는 일환으로 공기업이나 국유 자산의 민영화 및 매각 작업을 속속 철회했다. 사실 이를 덮어씌우게 된 나라가 바로 중국인데 중국은 많은 그리스 자산을 인수하려고 계약까지 한 상황이었다. 계약 직후, 중국의 계약 자체가 무효화되어 번복당하게 된 것이다. 이미 그리스의 경제 위기로 인해 그리스의 주식 시장은 붕괴 상태였지만 그나마도 시리자 당의 집권 이후 연일 폭락의 향연이 벌어졌다. 당시 매일 6~7%, 심하면 9% 이상씩 떨어졌다. 특히 2015년 1월 26일~1월 28일 3일간만 해도 무려 20% 넘게 폭락했다. 주식의 어마어마한 대폭락은 그리스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자산 이탈이 심해졌고 2011년 이후 그 빈도수는 높아졌다. 시리자의 급격한 반(反)긴축 성향이 IMF, EU등 채권자와의 갈등을 일으켜 자칫하면 그리스가 디폴트를 맞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수상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평소에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 타임즈를 챙겨보았던 것이 주효한 것인지, 아니면 채무탕감의 명분을 쌓을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그리스에 대한 최대 채권국 중 하나인 러시아는 기존 제재의 연장 자체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물론 그와 같이 반대하지 않았다 해도 EU 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대응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으로 상징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그래도 러시아에 대해서 추가제재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출한 것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러시아에서 그리스에서 요청만 해준다면 재정지원을 해줄수 있다고 밝히게 된다. 이에 대해 그리스의 증시는 다시 반등세를 탔고 러시아도 유가하락과 경제제재로 인해 자국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돈이 남아 돌았던 탓인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때와는 다르게 3700억 달러 수준에 달할 정도였다. 이는 러시아가 몇 년 정도를 어렵게 나마 버틸 수 있는 수준이 되기는 했다. 외환보유고가 떨어져 나가는 속도가 빠른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러시아가 이미 경제 제재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아는 EU 입장에서는 그저 그리스의 경제를 공략할 명분만 추가될 뿐. 시리자도 이와 같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재 연장에는 찬성했다. 그리스 금융위기 이후 IMF, EU, ECB (European Central Bank)가 구제금융을 하면서 언론에서 이 세 기관을 한 집단으로 묶은 것을 트로이카라라고 불리고 있다. 이러한 트로이카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보니까 국가부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프랑스에서 부채 관련하여 재협상을 할 수 있다는 용의를 밝히게 되었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도 그리스의 구제 금융 재협상을 지지했다. 그리스 정부로서도 일단 조금 온건하게 의견을 발표하여 일단 자금 융통에 대해 조금 트여 있는 상황에 있다. 물론 프랑스도 재협상에 응할수 있다고 했지만 그리스 정부에서 요구하는 채무 탕감은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자금 융통이 조금 트였다는 얘기일 뿐이다. 프랑스도 그리스 지역에 투자한게 많긴 하지만 2012년 이후 부채 정리가 있었기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로이카와 독일이 요지 부동인 상황이기 때문에 파국은 시간 문제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스에서도 결국 채무탕감 요구는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ECB와 독일이 그리스 시리자 정부에서 내놓은 국채 담보 안을 승인하지 않게 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2015년 3월 디폴트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3월 이전까지 시리자 정부가 ECB, 독일 정부한테 항복하지 않으면 그대로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서 그리스 정부는 미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거론하면서 중국에서 돈을 빌려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프라스 총리가 리커창 중국 총리에게 초청 받았다는 것도 공개했다. 그리고 리커창 중국 총리는 차프라스와의 통화에서 시리자에 집권하자 마자 민영화를 취소한다는 식으로 발표하며 뒤엎으려 했고 피레우스 항 프로젝트를 복구하라 요구했다. 그래서 차프라스는 이를 보장하는 답변을 했다. 2015년 2월 12일~13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5.4%를 얻어 2위인 그리스 신민주주의 당을 크게 앞서게 되었다. 아마도 당연히 귀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 싶다. 재협상을 앞두고 그리스 곳곳에서 친(親) 정부 시위 또한 발생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그리스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2015년 6월 5일로 예정된 만기까지 3억 700만 유로, 한화 약 3700억 원을 상환해야하는데, 이조차도 없다고 그리스 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EU와 IMF가 제시한 긴축 재정은 여전히 실시하지 않으면서, 빚 갚을 생각을 전혀 안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현재 EU와 IMF는 그리스의 디폴트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시리자가 몰락한 다음 이후 선거를 기대하는 실정에 있다. 물론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한 뒤, 할 수 있는 선거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개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2015년 7월 5일, 치프라스는 구제금융에 대한 국민투표로 진퇴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리스의 여론조사 결과, 지난달 말 카파 리서치의 여론 조사에서는 찬성 47.2%, 반대 33.0%로 나타났지만 자본 통제 이후에는 반대의 세력들이 시리자에 결집하면서 반대 54% 찬성 33%로 대역전을 일구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수상은 더욱 더 가열차게 반대표 결집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GPO가 이날 발표한 결과에서는 다시 찬성 47.1%, 반대 43.2%로 뒤집하게 된다. 이는 여러모로 팽팽한 접전이었고 반대의 숫자도 만만치 않아 그리스 의회는 여러모로 고민하게 된다. 결국 7월 5일 국민투표가 시리자 내각의 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어이 2015년 7월 5일 2015년 그리스 구제 금융 국민투표에서 구제 금융 반대 61% 찬성 39%라는 엄청난 득표율 및 일방적인 득표차로 구제 금융을 부결시킴은 물론 시리자 정권의 연장에도 가볍게 성공하게 된다. 출구조사 때까지만 해도 52:48의 근소 우세로 점쳐졌던 것이 순식간에 뒤집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리자 정권이 크게 실책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 EU 입장에서는 그리스를 자기들에게서 축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긴축에도 견디지 못했다. 이는 그리스 정부의 공무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소위 기득권층의 복지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상류층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은 유럽과 IMF 간에 이해 관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EU측은 부자들이 탈세를 하면 뒤엎어 버리라는 식이지만 IMF는 부자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가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반대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는 재산업화를 추진한 것도 아니다. 부패와 기형적 형태의 정치문화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시리자 정권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지만 시리자가 그 일부에 기여했으며 시리자가 정권을 잡고 집권을 거듭하고도 개혁을 그 동안의 공약과 다르게 급진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문제로 보기도 하는데, 중국은 주식이 폭락했었기에 한국 입장에서는 더욱 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자국 시장에 돈을 엄청나게 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여력이 없고, 러시아는 저유가 및 낮은 천연가스 가격으로 인해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크림 및 돈바스 지역에 개입했다가 서방 제재로 인해 GDP가 절반으로 폭락할 정도로 허약한 상황에 있었다. 다들 그와 같이 어려운 상황인데 그리스를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게다가 그리스가 기본적으로 신용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만 그리스를 지원하겠다 말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당시 집권 정당인 시리자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첫 번째, 국민들의 반대 요구를 무시하고 긴축을 계속하는 것은 EU가 그리스 정부에게 재국민투표를 요구할 공산이 클 것으로 보았다. 아일랜드도 처음에는 EU 리스본 협약에 사인할 때 국민투표로 부결되었지만, 2009년에 다시 투표를 하여 민주적인 정당성을 얻어내기도 했다. 두 번째, 정권이 퇴진한 뒤 악역을 중도파에게 넘겨 혼란을 주는 것, 세 번째, 그냥 나라가 망하는 길로 종합하여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결국 7월 중순, 시리자는 정당의 보존을 위해 고강도 긴축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그렉시트를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으나 그랬다가는 서드 임팩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알아서 붕괴 될 것이니 별 수 없는 현실에 있었던 것이다. 2015년 8월 20일 시리자가 구제 금융 찬반으로 인해 분당되자 그리스 국회의 의회를 해산하고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직에서 사퇴하게 된다. 2015년 9월 20일 조기 총선을 시행할 것을 정했으며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시리자의 지지율은 급락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당장의 과반보다 못한 1당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그나마 제1 야당인 신민주주의 당이 부진하여 1당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야당이 올곧게 건재했다면 이와 같은 경제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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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그리스 정부와 정당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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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우크라이나
- 이스라엘이 이란 테헤란에 대해 선제 공격에 나서자 푸틴 대통령은 6월 13일에 급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았으며 뉴욕에서는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렸지만, 격분한 양측의 감정을 두고 양측의 공방전은 당분한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란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미국이 주변에 배치하고 있는 해상 및 공중 자산들을 총동원하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와 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농후하게 되었다. 이럴 경우, 중동은 제3차 세계대전까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한 2023년 10월 7일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이란 기습 공격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핵심 지원 국가들의 관심과 이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대다수의 지원은 중동 지역으로 집중되고,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이 늘어나면서 우크라이나에게 최악으로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몰리고 있는 사이, 러시아군이 키예프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과 드론 공습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높아져 우크라이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스트라나.ua는 지난 13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이스라엘의 공습이 세계와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영향(Последствия для мира и Украины)'이라는 기사에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키예프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서방의 관심과 지원이 분산되고, 유가가 상승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강화되지만 유럽의 경제는 크게 약화될 것(Якщо напруженість на Близькому Сході зросте, це буде дуже погано для Києва. Увага та підтримка Заходу будуть перенаправлені, і хоча ціни на нафту зростатимуть, російська економіка зміцниться, а економіка Європи значно ослабне)"이라 예측했다. 특히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중동 문제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뒷전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도 이와 관련된 기자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우려가 있음을 인정했다. 러시아는 석유 수출로 큰 수익을 거두면서 강해질 것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서방의 원조 증가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까 걱정이 되니 절대로 줄어들지 않기 바라는 것이 젤렌스키의 바램이었다. 반대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같은 중동 사태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면 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쟁의 지속 기간과 더불어 그 규모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있다. 우크라이나가 꿈꾸는 최악의 악몽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면서 이란이 핵 무기 개발에 성공해, 집단서방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경우다. 반면 우크리이나가 생각하는 최선은 이란이 트럼프의 요구 조건에 응해 협상을 이루거나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하메네이 이란 정권이 내부 혼란으로 인해 완전히 전복되는 경우가 최선이다. 이는 집단서방의 큰 군사 지원 없이 마무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악과 최선의 경우는 현실화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란의 대처 방식을 학습하여 우크라이나에 핵을 앞세워 공격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매파들은 이스라엘의 대응 방식을 학습하여 서방 측에 더욱 가혹한 대러 제재 및 공격 수단을 도입할 수 있도록 트럼프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물론 관건은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가 가진 미국에 들이밀 수 있는 유력한 카드다. 이란-이스라엘 양쪽 정상과 급하게 통화한 것에서 보듯이, 푸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명확하고 효력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당초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에 반대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더 많아진다. 트럼프는 지난 6월 4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대화의 절반 이상을 이란 핵 문제에 할애했다.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외에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터커 칼슨은 지난 3일 전에,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메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터커 칼슨은 뉴 리퍼블릭(New Republic) 잡지에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격에 몰래 도움을 주었고, 이로 인해 미국이 깊이 관여했다고 하였다. 한편 1+1 등,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미국이 중동 전쟁에 휘말리는 것이 트럼프에게 있어 이는 매우 부정적인 전망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첫째,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적자 폭이 더 늘어나고 있으며, 둘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 온 외교 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셋째, 중동의 미군 시설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내 미군 전력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넷째, 이민자들을 추방함으로 인해 미국 내 갈등들이 내전, 혹은 엇비슷한 상태로 치달아 트럼프의 국내 정치적인 입지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아후,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트럼프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트럼프는 14일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이 오늘 아침 생일 축하 전화를 해왔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아주 잘 아는 이란에 대해 오랫동안 협의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적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그것은 다음 주에 이야기 하기로 했다(President Putin called me this morning to wish me a happy birthday. More importantly, we had a long discussion about Iran, which he knows very well. We spent much less time on Ukraine, which we will talk about next week)"고 했다. 우선 이란-이스라엘의 충돌 사태가 최우선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사태를 두고 중동 문제를 푸틴 대통령과 논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문제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면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게 되었다. 푸틴과 트럼프의 통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다음 주'에 이야기 하자는 트럼프의 발언이었다. 유리 우샤코프(Юрий Ушаков) 크레믈린 외교 담당 보좌관은 이 날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의 통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러시아는 6월 22일 이후 합의에 이르른 대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트럼프도 이를 주목하면서 조속한 적대 행위 종식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젤렌스키도 이 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포로 교환은 20~21일에 종료된다고 했으며 이후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추가로 3차 협상 때 참여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추가 협상에 관하여 같은 날짜에 우연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에서 동시에 나온 것이다. 우샤코프 보좌관이 6월 22일이라는 날짜가 이전에 합의한 대로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샤코프 발언의 맥락으로 볼 때,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 사이에서는 이전에 무엇인가가 논의된 것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분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여하는 서방의 주요 회담의 일정을 보면 매우 당연하게 들린다. 우선 젤렌스키와 트럼프가 만나는 G7 정상회의는 오는 17일에 종결된다. 이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4일 미국이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EU와의 무역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U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는 이란-이스라엘의 충돌을 배경으로 한 유럽 주요 국가들의 대 우크라이나 관련된 각종 생각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후 6월 24일에는 나토 정상회담이 시작된다. 참석 여부가 일단 모호했었던 젤렌스키도 나토 정상회담에 초대 받았다. 이에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만남은 피할 수 없고,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발발된 상황에서 젤렌스키가 운신할 폭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G7 정상회의가 끝나고 나토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는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입장과 상황 등을 감안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러시아의 휴전 및 종전 요구 조건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그 방향성이 정해질 수도 있다. 스트라나.ua는 나토가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어떤 식으로든 거부한다면, 전쟁 종식은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일정을 감안한다면, 젤렌스키는 사활을 걸고 미국과 G7, 나토 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분위기의 반전을 막아서야 할 입장이지만 이스라엘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네타냐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내부의 상황 및 트럼프의 입장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다. 이란의 반격이 시작된 현재, 이스라엘은 모든 화력을 쏟아 부어야 어느 정도 버티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미국을 이번 분쟁으로 끌어들여야 승산이 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따위가 아닌 중동 분쟁이 G7과 나토 정상회의에서 최우선 의제가 될 것으로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젤렌스키는 비록 두 정상회의에 참석하긴 하지만, 서방 측의 지원을 두고 네타냐후와 경쟁해야 할 입장에 몰리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에 의해 의제를 선점 당해 대 우크라이나 지원은 거의 의제에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더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G7도, 나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14일 FOX 뉴스와 인터뷰하기를 중동에 있는 미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군의 방공 시스템을 키예프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다. 헤그세스는 상원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방공 시스템을 중동으로 이전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미국은 전세계에 있는 미국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과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샤헤드 드론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주기로 약속한 요격 미사일 20,000발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초반에 중동으로 이전했다고 비난한 전적이 있었다. 젤렌스키에게 더욱 절망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중동의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가는 상황에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참전시킨다 하더라도, 지난 2003년 이라크 점령 작전을 재현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공습과 폭격만으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예멘의 후티 군대와 하마스, 헤즈볼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완전히 무력화하지 못했다. 이란이 앞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방공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더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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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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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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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유태인들, 부하라 유태인들의 역사와 아쉬케나지
- 중앙아시아 부하라 유태인은 이란어 계열의 타지크어 중 부호리(Bukhori) 유태인 방언을 사용하는 모든 중앙아시아 유태인을 지칭하고 있다. 이들이 부하라 유태인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16~18세기에는 중앙아시아의 무역 상인들을 대개 부하라 인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는 아직 투르키스탄, 내륙아시아(Inner Asia), 중앙아시아(Central Asia)와 같은 어휘가 사용되기 전이었고 트란스옥시아나, 마와르 안 나흐르(Mawar An Nahr)와 같은 지명들은 과거에 사용되었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1970년대 소련 영내에 거주하던 부하라 유태인의 수는 통계상 30,000여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17,000여 명은 1970년대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호주로 이주했다. 오늘날 부하라 유태인의 인구수는 이보다는 훨씬 많은 180,00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스라엘이나 미국으로 이민 가기 이전에는 무슬림인 척 하던 경우도 많았고 다른 유대인들과 통혼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부하라 유대인 상당수는 젊은 세대일수록 우즈베크어와 부호리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며 대신 러시아어의 영향력은 아직도 강하다고 한다. 이들은 부하라 외에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페르가나, 타지키스탄의 후잔트, 카자흐스탄의 타라즈, 심켄트에도 많은 수가 거주했다. 원래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이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해당하는 호라산의 메르브를 거점 삼아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도시들로 이주하여 하자르 제국의 유태인들과 혼혈해 나타난 것이 이들의 기원이다. 이미 고대 말부터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 발흐 지역 내 유태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했다. 서기 4세기 무렵 유태인들은 고대 페니키아 인들의 유리 제조 기술을 중앙아시아로 가지고 들어와 유리 제조업을 전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 시대가 되면서 사마르칸트의 유태인 공동체가 서기 12세기 무렵 크게 부흥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원래 중세 초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유태인들이 가장 많았던 도시는 사마르칸트였지만 칭기즈칸의 군대가 사마르칸트를 파괴하는 와중에 전멸당한 이후 혈통이 끊겼던 것 같다. 원래 중앙아시아 유태인들은 페르시아 유태인과 거의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으나 16세기 이후 이란의 사파비 왕조가 영내의 페르시아 인들을 시아파로 개종시키고 중앙아시아의 수니파 투르크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양자 간의 왕래가 어려워지면서 분화되었다고 추정된다. 여기에 더해 사파비 왕조는 이들 유태인들과 경쟁 상대였던 아르메니아 인 상인들을 우대해 주었고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 인로 인해 유태인들의 생계 수단이 상당 부분 잠식당하면서 16~18세기 동안 페르시아의 유태인 인구 1/3 가량이 부하라 등등 중앙아시아 각지로 이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란 사파비 왕조에서 서쪽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교역은 아르메니아 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반면 사파비 왕조 동쪽에서도 그와 같은 이유로 유태인들이 주로 동쪽 수니파의 칸국들과 교역하면서 실크로드 무역로는 동과 서로 나뉘게 된다. 본래 부하라 칸국은 시나고그 건설을 허가하지 않았으나 이들은 마스지드 건설 기금을 후원하면서 그 부속시설로 시나고그를 함께 건축하게 하는 방식으로 예배 공간을 확보했다. 부하라 칸국의 통치자들은 개인 성향에 따라 유태인들을 탄압하는 경우도 있었고 관용을 베푸는 경우도 있었으며 부하라 유태인들은 종교 행사를 대개 집에서 몰래 치르곤 했다. 유태인들이 이주해 올 때 부하라는 무굴 제국에 군마로 사용할 말을 수출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차를 다른 지역으로 중계 무역하면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19세기에는 무굴 제국과 부하라와의 무역이 붕괴되고 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무슬림 상인들이 경쟁자였던 부하라 유태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에게 정복된 이래 이들은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소련의 지배를 연달아 받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유태인들을 러시아 제국의 신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간주했는데 이에 따라 러시아 제국 법을 적용받지 않았으며 병역 부담을 가지지 않는 대신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자기 명의로 사업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부하라 유태인들이 징집되었는데 이 가운데 10,00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소련에서 유태인의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 이후 대다수가 이스라엘로 건너갔으며 소련 붕괴 이후에는 유태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선교 단체의 후원금으로 인해 많은 수의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소련이 붕괴하기 얼마 전 시점인 1987년 기준으로 소련 통계와 이스라엘의 부하라 유태인 커뮤니티의 통계를 합산한 바에 따르면 부하라 유태인의 수는 총 85,000여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45,000여 명은 구소련 영내에, 32,000여 명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미국 등지에 3,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1989년 부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유태인 이민 제한을 철폐하자마자 우즈베키스탄 내 유태인 인구의 대부분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해외 이주를 선택했다. 이스라엘에는 부하라 유태인 후손이 100,000~120,000명 정도 존재하고 있으며 미국에는 뉴욕 퀸즈(Queens)를 중심으로 50,000명 정도가 거주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전체를 통틀어 1,500명 정도로 부하라 유태인들이 남아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이 이슬람권에 해당되는 국가인 관계로 이러한 사정상 유태인들은 러시아인 이름을 사용하고 러시아인으로 행세하면서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 참고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는 150명 정도만 남아 있다. 부하라에서는 유태인 묘지나 시나고그가 구시가지에 남아 있다.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시대나 소련 시대에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의 이민과 정착이 이루어지고 소련 시대의 국가 무신론 정책으로 종교 및 종파가 다른 집단 사이에 통혼이 늘어나면서 아쉬케나지 혹은 러시아인이나 우즈베크인 등등과 통혼하는 사례도 흔했다. 이들은 같은 유태인인 미즈라힘(Mizrachim), 세파르딤(Sephardim)과 예법을 공유했으며 오늘날에는 여러 이유로 인해 아쉬케나지 유태인들과 빠른 속도로 동화되고 있다. 부하라에서 거주하는 기간 동안 이슬람으로 완전히 개종하고 무슬림과 통혼하는 인구도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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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유태인들, 부하라 유태인들의 역사와 아쉬케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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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중동의 핵 확산이 가능한가?
- 대다수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그 확산이 가속화되고, 미국과 서구가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다른 중동 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질거라 어떻게 장담하는지 알 수 없다. 핵무기가 일반 군수산업처럼 막 찍어내고 그런 무기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가이드 알바를 할 때, 그거 가이드 하기 위해 핵 관련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그래야 관련 설명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 고객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그들이 열심히 귀담아 듣는 그 모습이 늘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가 우라늄 농축 과정 및 핵을 제조하는 원리에 대해 지난 번에 칼럼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타 중동 국가들이 이란처럼 왜 핵을 가질 수 없는지 알려드릴까 한다. 핵을 만들던, 원자력 에너지를 만들던, 모든 것은 원자로에서 시작된다. 한 개의 원자핵이 중성자 또는 감마선을 쏠 때, 많은 에너지들이 방출되는데 거의 크기가 같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더 작은 핵으로 분열하는 것을 핵반응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보통 우라늄, 플루토늄 같이 질량수가 큰 무거운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하여 더 가벼운 원자핵 2개와 2~3개의 중성자 등으로 쪼개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핵분열이라고 한다. 핵분열에서의 연쇄 반응(Chain Reaction)을 일으켜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방출되는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을 분열시키고, 그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며 에너지를 생성한다. 이것을 원자력이라 한다. 핵분열의 연쇄작용과 이를 통제하려면 원자로(Nuclear Reactor)가 필수다. 임계점을 넘은 핵연료의 연쇄작용을 가만히 놓아 둔다면 그 반응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료봉을 여러 개 묶은 연료 집합체로 원자로에 다발로 삽입한다. 대개 경수로 형식으로 이용되는 원자로에는 감속재로 경수를 쓰고 고속 중성자를 사용하는 원자로에는 감속을 할 필요가 없기에 감속재가 없다. 전 세계의 원전의 80%는 경수를 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게 냉각수인데 보통 담수나 해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비상 노심 냉각 장치 (ECCS, Emergency Core Cooling System)를 위해서도 물은 필수적이다. 원자로에서 우라늄이 핵분열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들고, 증기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을 돌리는데 쓰인 증기는 공기 중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복수기로 보내져 바닷물인 냉각수에 의해 식혀져 온배수로 방류된다. 1,000㎽급 원전 1기에 초당 60~70톤의 냉각수가 사용된다. 엄청난 양의 냉각수를 손쉽게 얻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바닷가에 짓는다. 원자력발전소의 열을 식히는 모든 장치는 물이 필요하며 발전 과정에서 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중동은 대표적으로 물 부족 국가들도 많고 바닷가에 면해 있는 국가들은 오로지 해안가에 해수만 써야 하는데 바다가 주변국을 마주하는 국가들이 많다. 특히 원자로에는 끝없이 냉각수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만약 원자로에 냉각수가 끊기면 노심 연료봉의 온도가 높아지고 그러다보면 폭발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체르노빌이든, 후쿠시마든, 참사는 대부분 원자로의 노심에 냉각수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연료봉이 열을 받는 바람에 생긴 참사다. 게다가 이런 현상에서 핵을 주조하려면 일상에서 쓰는 저농축 우라늄과 고농축 우라늄(U235), 플루토늄을 생성시키기 위해사 핵연료 재처리를 해야 하는 시설이 필요한데 중동에는 없다. 그리고 이거 유지하는 것도 많은 양의 물이 들어간다. 게다가 이를 다루고 제어하는 핵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대개 사암으로 이루어진 사막이 많아 노출되기 십상이며 위험성은 더 커진다. 특히 햇볕이 뜨겁고 건조한 사막기후는 냉각수의 가장 큰 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중동이 핵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란이 핵을 가진다고 해서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알려둔다. 그리고 미국의 위협을 받고 이스라엘의 생존이 위협이 된다는데 이미 이스라엘은 핵을 가졌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애초부터 미국이 위험스러웠다면 미국의 알래스카와 가까운 러시아가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중동의 소형화된 핵무기가 미국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터질 위험보다 러시아가 쏜 핵무기가 뉴욕이나 워싱턴에 터질 위험이 더 높다. 그 이유는 거리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중동이 쏘면 유럽이나 영국 등 다른 나토 국가들이 요격할 수 있지만 러시아가 쏘면 캐나다 한 국가 밖에 거쳐 가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타격할 수 있다. 마침 러시아 캄차트카에 그와 같은 핵 미사일 기지가 있긴 했다. 그런데 더 가까운 러시아가 쏜다는 걱정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란의 핵무기를 막는 것은 미국의 생존과 안녕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란은 미국과 서방의 장기 제재, 적국인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고, 이스라엘은 매우 위협적이다.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이란은 핵을 선택했다. 먼저 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본국 수호를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이란은 여태까지 수많은 참을성과 자제력을 보여왔다. 그 하나만으로도 이란은 생각보다 위협적이지는 않는다. 다만 친미, 친서방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위협적이라는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호메이니 혁명 이후, 이란은 여태까지 이란-이라크 전쟁 외에는 전쟁을 한적이 없고, 해당 전쟁 또한 미국의 사주로 인해 사담 후세인이 먼저 침공해서 벌어진 전쟁이다. 따라서 이슬람 공화국 정권이 수립된 이후, 이란은 단 한 번도 남을 침공한적이 없다. 그런데 무엇이 위협적이란 말인가? 한국은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전쟁에 관여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이란이 한국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 북한을 부추겨 우리를 공격하기를 했으며 이란이 한국에게 무엇을 잘못을 했길래 한국이 이란에게 악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본다면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을 지원한 미국은 뭐가 되는거고 태평양전쟁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소련 보고 대일 참전을 부추겨 만주, 한반도 북부까지 장악하게 만들어 북한 정권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은 뭐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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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중동의 핵 확산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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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그리스 정부와 정당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경제 위기
- 그리스는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IMF와 EU에게 빌린 돈의 규모가 수백조 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IMF와 EU는 그리스의 국채를 가지고 있는 민간은행의 국채를 상환 의무가 있는 그리스 정부 대신 인수하는 방식으로 그리스 정부에 대한 구제 금융을 지원했다. 즉 2015년에 와서는 대부분 그리스의 국채를 민간이 아니라 IMF와 EU, 그 중에서도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 정부는 이들 IMF와 EU, 독일 및 프랑스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IMF와 EU에게 있어서 이 구제 금융 채권 상환은 일종의 구상권 청구인 것과 같다. 그냥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해주었다가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도 같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돈줄을 쥐고 있는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이 엄청나게 손해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협상은 순탄치 않게 진행되었다. 벌써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견제에 나서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렉시트라 불리는,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 자체도 용인할 수 있다는 식으로 돈 갚을 것을 압박하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급진좌파인 시리자 정권의 집권 이후 기존의 그리스 신민주주의 당 내각에서 추진하던 긴축 정책를 철회하는 일환으로 공기업이나 국유 자산의 민영화 및 매각 작업을 속속 철회했다. 사실 이를 덮어씌우게 된 나라가 바로 중국인데 중국은 많은 그리스 자산을 인수하려고 계약까지 한 상황이었다. 계약 직후, 중국의 계약 자체가 무효화되어 번복당하게 된 것이다. 이미 그리스의 경제 위기로 인해 그리스의 주식 시장은 붕괴 상태였지만 그나마도 시리자 당의 집권 이후 연일 폭락의 향연이 벌어졌다. 당시 매일 6~7%, 심하면 9% 이상씩 떨어졌다. 특히 2015년 1월 26일~1월 28일 3일간만 해도 무려 20% 넘게 폭락했다. 주식의 어마어마한 대폭락은 그리스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자산 이탈이 심해졌고 2011년 이후 그 빈도수는 높아졌다. 시리자의 급격한 반(反)긴축 성향이 IMF, EU등 채권자와의 갈등을 일으켜 자칫하면 그리스가 디폴트를 맞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시 수상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평소에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 타임즈를 챙겨보았던 것이 주효한 것인지, 아니면 채무탕감의 명분을 쌓을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시 그리스에 대한 최대 채권국 중 하나인 러시아는 기존 제재의 연장 자체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물론 그와 같이 반대하지 않았다 해도 EU 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대응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으로 상징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그래도 러시아에 대해서 추가제재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출한 것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러시아에서 그리스에서 요청만 해준다면 재정지원을 해줄수 있다고 밝히게 된다. 이에 대해 그리스의 증시는 다시 반등세를 탔고 러시아도 유가하락과 경제제재로 인해 자국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돈이 남아 돌았던 탓인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때와는 다르게 3700억 달러 수준에 달할 정도였다. 이는 러시아가 몇 년 정도를 어렵게 나마 버틸 수 있는 수준이 되기는 했다. 외환보유고가 떨어져 나가는 속도가 빠른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러시아가 이미 경제 제재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아는 EU 입장에서는 그저 그리스의 경제를 공략할 명분만 추가될 뿐. 시리자도 이와 같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재 연장에는 찬성했다. 그리스 금융위기 이후 IMF, EU, ECB (European Central Bank)가 구제금융을 하면서 언론에서 이 세 기관을 한 집단으로 묶은 것을 트로이카라라고 불리고 있다. 이러한 트로이카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보니까 국가부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프랑스에서 부채 관련하여 재협상을 할 수 있다는 용의를 밝히게 되었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도 그리스의 구제 금융 재협상을 지지했다. 그리스 정부로서도 일단 조금 온건하게 의견을 발표하여 일단 자금 융통에 대해 조금 트여 있는 상황에 있다. 물론 프랑스도 재협상에 응할수 있다고 했지만 그리스 정부에서 요구하는 채무 탕감은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자금 융통이 조금 트였다는 얘기일 뿐이다. 프랑스도 그리스 지역에 투자한게 많긴 하지만 2012년 이후 부채 정리가 있었기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로이카와 독일이 요지 부동인 상황이기 때문에 파국은 시간 문제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스에서도 결국 채무탕감 요구는 포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ECB와 독일이 그리스 시리자 정부에서 내놓은 국채 담보 안을 승인하지 않게 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2015년 3월 디폴트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3월 이전까지 시리자 정부가 ECB, 독일 정부한테 항복하지 않으면 그대로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서 그리스 정부는 미국,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거론하면서 중국에서 돈을 빌려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프라스 총리가 리커창 중국 총리에게 초청 받았다는 것도 공개했다. 그리고 리커창 중국 총리는 차프라스와의 통화에서 시리자에 집권하자 마자 민영화를 취소한다는 식으로 발표하며 뒤엎으려 했고 피레우스 항 프로젝트를 복구하라 요구했다. 그래서 차프라스는 이를 보장하는 답변을 했다. 2015년 2월 12일~13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5.4%를 얻어 2위인 그리스 신민주주의 당을 크게 앞서게 되었다. 아마도 당연히 귀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 싶다. 재협상을 앞두고 그리스 곳곳에서 친(親) 정부 시위 또한 발생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그리스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렸다. 2015년 6월 5일로 예정된 만기까지 3억 700만 유로, 한화 약 3700억 원을 상환해야하는데, 이조차도 없다고 그리스 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EU와 IMF가 제시한 긴축 재정은 여전히 실시하지 않으면서, 빚 갚을 생각을 전혀 안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현재 EU와 IMF는 그리스의 디폴트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시리자가 몰락한 다음 이후 선거를 기대하는 실정에 있다. 물론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한 뒤, 할 수 있는 선거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별개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2015년 7월 5일, 치프라스는 구제금융에 대한 국민투표로 진퇴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리스의 여론조사 결과, 지난달 말 카파 리서치의 여론 조사에서는 찬성 47.2%, 반대 33.0%로 나타났지만 자본 통제 이후에는 반대의 세력들이 시리자에 결집하면서 반대 54% 찬성 33%로 대역전을 일구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수상은 더욱 더 가열차게 반대표 결집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 GPO가 이날 발표한 결과에서는 다시 찬성 47.1%, 반대 43.2%로 뒤집하게 된다. 이는 여러모로 팽팽한 접전이었고 반대의 숫자도 만만치 않아 그리스 의회는 여러모로 고민하게 된다. 결국 7월 5일 국민투표가 시리자 내각의 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어이 2015년 7월 5일 2015년 그리스 구제 금융 국민투표에서 구제 금융 반대 61% 찬성 39%라는 엄청난 득표율 및 일방적인 득표차로 구제 금융을 부결시킴은 물론 시리자 정권의 연장에도 가볍게 성공하게 된다. 출구조사 때까지만 해도 52:48의 근소 우세로 점쳐졌던 것이 순식간에 뒤집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리자 정권이 크게 실책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 EU 입장에서는 그리스를 자기들에게서 축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긴축에도 견디지 못했다. 이는 그리스 정부의 공무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소위 기득권층의 복지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상류층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은 유럽과 IMF 간에 이해 관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EU측은 부자들이 탈세를 하면 뒤엎어 버리라는 식이지만 IMF는 부자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가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반대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는 재산업화를 추진한 것도 아니다. 부패와 기형적 형태의 정치문화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시리자 정권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지만 시리자가 그 일부에 기여했으며 시리자가 정권을 잡고 집권을 거듭하고도 개혁을 그 동안의 공약과 다르게 급진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문제로 보기도 하는데, 중국은 주식이 폭락했었기에 한국 입장에서는 더욱 큰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자국 시장에 돈을 엄청나게 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여력이 없고, 러시아는 저유가 및 낮은 천연가스 가격으로 인해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크림 및 돈바스 지역에 개입했다가 서방 제재로 인해 GDP가 절반으로 폭락할 정도로 허약한 상황에 있었다. 다들 그와 같이 어려운 상황인데 그리스를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게다가 그리스가 기본적으로 신용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만 그리스를 지원하겠다 말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당시 집권 정당인 시리자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첫 번째, 국민들의 반대 요구를 무시하고 긴축을 계속하는 것은 EU가 그리스 정부에게 재국민투표를 요구할 공산이 클 것으로 보았다. 아일랜드도 처음에는 EU 리스본 협약에 사인할 때 국민투표로 부결되었지만, 2009년에 다시 투표를 하여 민주적인 정당성을 얻어내기도 했다. 두 번째, 정권이 퇴진한 뒤 악역을 중도파에게 넘겨 혼란을 주는 것, 세 번째, 그냥 나라가 망하는 길로 종합하여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결국 7월 중순, 시리자는 정당의 보존을 위해 고강도 긴축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그렉시트를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으나 그랬다가는 서드 임팩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알아서 붕괴 될 것이니 별 수 없는 현실에 있었던 것이다. 2015년 8월 20일 시리자가 구제 금융 찬반으로 인해 분당되자 그리스 국회의 의회를 해산하고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직에서 사퇴하게 된다. 2015년 9월 20일 조기 총선을 시행할 것을 정했으며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시리자의 지지율은 급락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당장의 과반보다 못한 1당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그나마 제1 야당인 신민주주의 당이 부진하여 1당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야당이 올곧게 건재했다면 이와 같은 경제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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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그리스 정부와 정당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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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우크라이나
- 이스라엘이 이란 테헤란에 대해 선제 공격에 나서자 푸틴 대통령은 6월 13일에 급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았으며 뉴욕에서는 긴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렸지만, 격분한 양측의 감정을 두고 양측의 공방전은 당분한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란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미국이 주변에 배치하고 있는 해상 및 공중 자산들을 총동원하면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와 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농후하게 되었다. 이럴 경우, 중동은 제3차 세계대전까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한 2023년 10월 7일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이란 기습 공격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핵심 지원 국가들의 관심과 이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대다수의 지원은 중동 지역으로 집중되고,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이 늘어나면서 우크라이나에게 최악으로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몰리고 있는 사이, 러시아군이 키예프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과 드론 공습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높아져 우크라이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스트라나.ua는 지난 13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이스라엘의 공습이 세계와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영향(Последствия для мира и Украины)'이라는 기사에서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키예프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서방의 관심과 지원이 분산되고, 유가가 상승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강화되지만 유럽의 경제는 크게 약화될 것(Якщо напруженість на Близькому Сході зросте, це буде дуже погано для Києва. Увага та підтримка Заходу будуть перенаправлені, і хоча ціни на нафту зростатимуть, російська економіка зміцниться, а економіка Європи значно ослабне)"이라 예측했다. 특히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최대한 거리를 두고, 중동 문제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뒷전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도 이와 관련된 기자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우려가 있음을 인정했다. 러시아는 석유 수출로 큰 수익을 거두면서 강해질 것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서방의 원조 증가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까 걱정이 되니 절대로 줄어들지 않기 바라는 것이 젤렌스키의 바램이었다. 반대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같은 중동 사태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면 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쟁의 지속 기간과 더불어 그 규모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있다. 우크라이나가 꿈꾸는 최악의 악몽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면서 이란이 핵 무기 개발에 성공해, 집단서방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경우다. 반면 우크리이나가 생각하는 최선은 이란이 트럼프의 요구 조건에 응해 협상을 이루거나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하메네이 이란 정권이 내부 혼란으로 인해 완전히 전복되는 경우가 최선이다. 이는 집단서방의 큰 군사 지원 없이 마무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악과 최선의 경우는 현실화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란의 대처 방식을 학습하여 우크라이나에 핵을 앞세워 공격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매파들은 이스라엘의 대응 방식을 학습하여 서방 측에 더욱 가혹한 대러 제재 및 공격 수단을 도입할 수 있도록 트럼프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물론 관건은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가 가진 미국에 들이밀 수 있는 유력한 카드다. 이란-이스라엘 양쪽 정상과 급하게 통화한 것에서 보듯이, 푸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명확하고 효력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당초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에 반대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러시아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더 많아진다. 트럼프는 지난 6월 4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하면서 대화의 절반 이상을 이란 핵 문제에 할애했다.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외에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터커 칼슨은 지난 3일 전에,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메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터커 칼슨은 뉴 리퍼블릭(New Republic) 잡지에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이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공격에 몰래 도움을 주었고, 이로 인해 미국이 깊이 관여했다고 하였다. 한편 1+1 등,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미국이 중동 전쟁에 휘말리는 것이 트럼프에게 있어 이는 매우 부정적인 전망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첫째,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적자 폭이 더 늘어나고 있으며, 둘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 온 외교 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셋째, 중동의 미군 시설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내 미군 전력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넷째, 이민자들을 추방함으로 인해 미국 내 갈등들이 내전, 혹은 엇비슷한 상태로 치달아 트럼프의 국내 정치적인 입지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아후,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트럼프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에게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트럼프는 14일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이 오늘 아침 생일 축하 전화를 해왔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아주 잘 아는 이란에 대해 오랫동안 협의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적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그것은 다음 주에 이야기 하기로 했다(President Putin called me this morning to wish me a happy birthday. More importantly, we had a long discussion about Iran, which he knows very well. We spent much less time on Ukraine, which we will talk about next week)"고 했다. 우선 이란-이스라엘의 충돌 사태가 최우선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사태를 두고 중동 문제를 푸틴 대통령과 논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문제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면서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게 되었다. 푸틴과 트럼프의 통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다음 주'에 이야기 하자는 트럼프의 발언이었다. 유리 우샤코프(Юрий Ушаков) 크레믈린 외교 담당 보좌관은 이 날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의 통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러시아는 6월 22일 이후 합의에 이르른 대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계속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트럼프도 이를 주목하면서 조속한 적대 행위 종식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젤렌스키도 이 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포로 교환은 20~21일에 종료된다고 했으며 이후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추가로 3차 협상 때 참여할지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추가 협상에 관하여 같은 날짜에 우연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에서 동시에 나온 것이다. 우샤코프 보좌관이 6월 22일이라는 날짜가 이전에 합의한 대로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샤코프 발언의 맥락으로 볼 때,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 사이에서는 이전에 무엇인가가 논의된 것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분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여하는 서방의 주요 회담의 일정을 보면 매우 당연하게 들린다. 우선 젤렌스키와 트럼프가 만나는 G7 정상회의는 오는 17일에 종결된다. 이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4일 미국이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EU와의 무역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U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는 이란-이스라엘의 충돌을 배경으로 한 유럽 주요 국가들의 대 우크라이나 관련된 각종 생각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후 6월 24일에는 나토 정상회담이 시작된다. 참석 여부가 일단 모호했었던 젤렌스키도 나토 정상회담에 초대 받았다. 이에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만남은 피할 수 없고,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발발된 상황에서 젤렌스키가 운신할 폭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G7 정상회의가 끝나고 나토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는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입장과 상황 등을 감안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러시아의 휴전 및 종전 요구 조건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 그 방향성이 정해질 수도 있다. 스트라나.ua는 나토가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어떤 식으로든 거부한다면, 전쟁 종식은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일정을 감안한다면, 젤렌스키는 사활을 걸고 미국과 G7, 나토 정상회담에서 예상되는 분위기의 반전을 막아서야 할 입장이지만 이스라엘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네타냐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내부의 상황 및 트럼프의 입장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다. 이란의 반격이 시작된 현재, 이스라엘은 모든 화력을 쏟아 부어야 어느 정도 버티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미국을 이번 분쟁으로 끌어들여야 승산이 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따위가 아닌 중동 분쟁이 G7과 나토 정상회의에서 최우선 의제가 될 것으로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젤렌스키는 비록 두 정상회의에 참석하긴 하지만, 서방 측의 지원을 두고 네타냐후와 경쟁해야 할 입장에 몰리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에 의해 의제를 선점 당해 대 우크라이나 지원은 거의 의제에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더 전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G7도, 나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14일 FOX 뉴스와 인터뷰하기를 중동에 있는 미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군의 방공 시스템을 키예프가 통제하는 지역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다. 헤그세스는 상원 청문회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방공 시스템을 중동으로 이전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따라서 미국은 전세계에 있는 미국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과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샤헤드 드론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주기로 약속한 요격 미사일 20,000발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초반에 중동으로 이전했다고 비난한 전적이 있었다. 젤렌스키에게 더욱 절망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중동의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가는 상황에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참전시킨다 하더라도, 지난 2003년 이라크 점령 작전을 재현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공습과 폭격만으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예멘의 후티 군대와 하마스, 헤즈볼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완전히 무력화하지 못했다. 이란이 앞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방공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더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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