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위기와 한국의 선택: 하르그섬 공습, 트럼프 파병 압박 속 에너지·동맹 딜레마
한국이 처한 딜레마는 ‘파병이냐 비파병이냐’가 아니라, 에너지·동맹·전쟁 확전 사이에서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가의 문제다.
미국이 이란의 핵심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정밀 타격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외교 긴장이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 군함 파견을 공개 요구하며 동맹국의 ‘안보 부담 분담’을 정면으로 꺼내 들었다. 이란은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만을 공격하며 맞대응에 나섰고, 호르무즈 일대는 민간 선박까지 위험에 노출된 잠재적 ‘킬 박스’로 변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는 14일(현지시간) 이란 하르그섬 내 90여 개 군사 목표물을 정밀 타격했다고 밝혔다. 하르그섬은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가 통과하는 최대 석유 터미널로, 이란 경제의 심장부로 평가받는 곳이다. 미국은 이번 공격에서 저장 탱크 등 핵심 석유 인프라는 직접 겨누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미국 측 인사들은 “에너지 인프라 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르그섬 설비가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5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란 하르그섬 상공에서 본 원유 터미널과 군사 타격 흔적(생성형AI)
이란은 미국의 공습 직후 호르무즈 해협 밖 오만만에 위치한 푸자이라 항 인근을 공격했다. 푸자이라는 해협 봉쇄 시에도 비교적 영향이 적은 우회 수출 거점으로, 이곳의 타격은 중동産 원유의 ‘대체 루트’마저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시적인 선적 중단과 함께 해상 보험료 상승, 운항 지연 등으로 글로벌 물류망의 불안 심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민간 컨테이너선이 공격을 받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실제 대형 선박 항로 폭이 약 3km에 불과해 기뢰·드론·대함미사일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을 직접 거명하며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위해 군함을 보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단순한 협력 요청을 넘어, 향후 방위비 협상이나 통상·관세 협상과 연계될 수 있는 ‘안보 청구서’의 성격을 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기뢰 제거 능력, 한국 청해부대의 원양 작전 경험 등을 높이 평가하며 기여 확대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한국 정부는 “한미 간 긴밀히 소통하며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공식 입장 발표를 미루고 있다. 현실적으로 검토 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까지 확대하는 방식이다. 다만 2020년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 연합작전에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외교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편제될 경우, 한국군이 사실상 분쟁의 한 축으로 인식돼 이란과의 관계, 중동 내 자국민·기업 안전에 대한 리스크가 동시에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생성형AI)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상당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20%가 지나는 세계 최대 원유 공급 병목으로, 통과 원유의 80%가 아시아로 향한다. 한국 정유·석유화학·철강·해운 산업은 단기간 유가 급등과 운송 차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물가와 환율, 기업 투자 심리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미국과의 대규모 통상 협정을 통해 대미 에너지 수입을 늘려 온 상황에서, 중동 리스크 확대는 에너지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비축 전략 재점검을 더욱 압박하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사태의 구조적 쟁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하르그섬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미칠 구조적 충격이다. 둘째,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 기여도 제고가 향후 방위비 분담, 전략자산 배치, 통상 협상과 연동되며 한미 동맹의 성격을 ‘글로벌 공공재 제공 동맹’으로 재규정할 가능성이다. 셋째, 다국적군 참여 시 한국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선박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더라도, 실제 작전 환경에서 교전·피격 위험이 상존해 그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까. 단기적으로는 자국 선박과 해상 교통로 보호, 동맹 관리 차원의 실익이 중요하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입 다변화, 전략 비축 확충, 중동·인도양·동남아를 잇는 해상 루트 다각화 등 ‘구조적 해법’을 병행하지 않으면, 호르무즈 리스크가 반복될 때마다 같은 딜레마가 되풀이될 수 있다. 동시에 특정 국가나 진영에 과도하게 기울지 않는 균형 외교를 유지하면서, 국제해상 안전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책임 있는 기여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한국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