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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구금 사태 후 복귀”…50여 한국인 근로자, 다시 미국 입국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에서 불법 체류 단속으로 체포됐던 한국인 근로자 317명 중 약 50명이 최근 미국에 재입국해 현장에 복귀했다. 당시 ICE는 강제 단속을 벌였고,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구금 후 전세기로 귀국했다. 이후 비자 복원 및 외교 협상을 통해 일부 인력이 다시 입국했으며, 현재 200여 명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본 사태는 대미 투자와 외교 신뢰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뉴스
    • 지구촌
    2025-11-22

칼럼 검색결과

  •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부패스캔들, 불법적인 그의 권력에 고비가 오는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최측근 티무르 민디치가 연루된 대형 부패 사건이 나부(NABU)의 대규모 수사로 드러나며 정치적 위기가 커지고 있다. 민디치는 젤렌스키와 가까운 인물로, 에너지 인프라 발주 과정에서 거액을 챙기고 해외로 도피했다. 러시아 공습으로 전력난이 심해지고 전황도 악화되는 가운데, 서방의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용도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미국·EU의 의중과 맞물린 이번 사건은 젤렌스키 권력의 중대한 시험대가 되었다.
    • 칼럼
    • Nova Topos
    2025-11-26
  • 최근 재기된 베링 해협, 러시아-미국 사이의 시베리아-알래스카 해저터널에 대한 이야기
    베링해협은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베링해협은 아시아 측에는 러시아령, 북아메리카 측은 미국령이다. 이 해협의 해저 대륙붕은 깊이가 35~50m 정도로 매우 얕은 편이고, 최단거리 해협은 85km에 달한다. 바다를 기준으로 보면 베링 해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북극해, 남쪽으로는 태평양 사이의 해협이다. 대륙과 대륙 사이로 놓여있지만 지질학적으로 볼 때 매우 안정된 지역이다. 판과 판의 기준으로 볼 때, 베르호얀스크 산맥 동쪽의 러시아 극동은 북아메리카와 같은 판에 속하기에 남쪽 캄차트카와 알류샨 일대와 다르다. 참고로 해당 지역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있기에 화산과 지진이 잦다. 그러나 베링 지역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벗어나 있어 매우 안정적인 지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해협의 수면 깊이가 얕으며 해수면이 가장 낮았을 시기에는 육지가 드러나 아시아와 북아메리카가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다. 베링 해협의 이름은 러시아 해군에 고용되어 이 바다를 탐사하여 첫 발견한 덴마크의 항해사 비투스 베링의 이름을 차용했다. 베링 해협은 미국과 러시아의 경계이며 베링 해협 한 가운데에 있는 다이오메드 제도의 서쪽에 있는 그레이트 다이오메드 섬은 러시아 영토이고, 동쪽에 있는 스몰 다이오메드 섬은 미국 영토다. 참고로 그레이트 다이오메드 섬은 러시아어로 라트마노바(Ратманова)라고 불린다. 비록 두 섬 사이의 거리는 3.7km 밖에 되지 않지만, 두 섬 사이로 날짜변경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시차는 무려 21시간 차이가 나는 특이한 지역이다. 두 섬의 영토가 갈라진 것은 1867년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할 때 이 섬의 중간을 기준으로 영토를 나누자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라트마노바 섬은 무인도이지만 미국령 스몰 다이오메드 섬은 사람이 살고 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스몰 다이오메드 섬에는 83명이 거주하는데, 주로 이누이트족이 거주하고 있고 경제는 어업과 상아 가공이다. 냉전 시기에 두 섬 사이를 두고 ‘얼음 장막’(Ice Curtain)이 쳐졌다. 소련과 미국은 두 섬을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물론 촬영하는 것조차 금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베링 해협은 태평양과 북극해를 분류하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협이다. 게다가 세계 군사력 1, 2위 국가인 미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마주하는 해협이기 때문에 정치,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에 속한다. 만약 러시아 제국 시절에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지 않아 소련 영토로 편입되었다 해도 이 해협의 중요성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북극항로가 개통되고 있는 현재, 그 중요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최근 키릴 드미트리예프(Кирилл Дмитриев) 러시아 대통령 국제 경제 협력 특별 대표이자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 대표가 러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베링 해협 해저에 110km 길이의 '푸틴-트럼프 터널' 건설을 제안하고 나섰다. 드미트리예프의 주장에 의하면 이 프로젝트는 80억 달러의 비용으로 8년도 채 안 되어 완료될 수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예산의 1/8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만약에 완공된다면 이 터널은 철도와 화물 운송 노선을 갖추어 공동 자원 개발과 러시아-미국 경제 연결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예프에 의하면 베링 터널은 아시아 횡단 철도 노선을 북아메리카와 직접 연결할 수 있게 하여 전례 없는 아시아-유럽-미국 운송 회랑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맞는 말이다. 베링 해협 해저터널은 또한 특히 북극 지역의 에너지 및 광물 분야에서 공동 자원 개발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지난 8월 15일 러시아-미국의 알래스카 회담에서 나타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의 공동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양국이 연결된 인프라에 공동 투자할 때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국 경제의 성장을 촉진할 것이며 침체기에 빠져 있는 미국 경제도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매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해저터널의 이야기는 이번에 언급한 드미트리예프가 처음으로 주장하는 얘기가 아니다. 베링 해협 해저터널 프로젝트는 인류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 기술 발전의 궤를 같이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보다 베링 해협을 통해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연결시키자는 구상은 1869년대 미국의 에이브러함 링컨 전 대통령 행정부 당시에 미국이 먼저했고, 러시아는 1905년 니콜라이 2세 차르 때 구상했다. 그 사이 1890년 콜로라도 준주의 주지사 윌리엄 길핀(William Gilpin)은 그의 논문에서 베링 해협을 거쳐 전 세계를 연결하는 코스모폴리탄 철도(Cosmopolitan Railway)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2년 후, 미국의 건축공학자인 조지프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가 베링 해협에 철교를 건설하는 방안을 러시아 제국에 제의했지만 러시아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8년 후인 1904년 미국 철도 신디케이트(Syndicate)가 같은 제안을 러시아에 타진했고, 러시아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고심끝에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배하고 제국 내 혁명 기운이 고조되면서 이같은 사업은 무산되었다. 냉전 시대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논의되지 않다가 냉전 시대가 끝난 이후, 21세기 들어 중국에서 고속철도를 미국까지 연결하자는 제안이 2014년에 제기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언급되었다. 이는 중국이 러시아, 미국, 캐나다를 한 번에 연결하자는 것이다. 또한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도 비슷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터널 공법이 발전했고, 영국-프랑스가 도버 해협을 뜷었듯이 베링 해협 또한 터널을 뚫어 연결하자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된다. 베링 해협의 최고 깊이는 55m로 영국-프랑스의 도버 해협 174m보다 깊지 않다. 영국과 프랑 스사이에 건설된 유로 터널은 해저 구간만 38km다. 물론 베링해에 터널을 뚫는다면 그보다 두 배는 더 길다. 하지만 툰트라 지역의 교통 여건과 수요 등이 비용을 상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러시아와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이 구상은 아직까지 주장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국제 인프라 건설은 공사 자금이 막대하고, 공사의 구상에 착공에서 완공까지 공사 기간이 길다. 더불어 거대한 공사에 따르는 공해 문제, 도시 문제, 문화 오염, 환경 파괴, 기상 문제 같은 것은 당연히 거론된다. 더불어 기술 문제와 건설 후의 경제성 등 정치, 외교, 안보, 군사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그만큼 이 공사는 세계 다극화의 각각 한 축을 맡고 있는 초강대국끼리의 국제적 공사다. 더구나 베링 해협의 터널 사업은 북극해 개발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혹독한 기후 여건과 자연 환경, 기후 변화, 기술, 자금 조달, 각 국의 전략 간의 조화와 충돌 및 정치, 외교적인 갈등 등 온갖 현안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베링 해협 해저 터널 건설에 대한 국제적인 공론화는 이미 활발히 논의 중이다. 이와 같은 모든 제한은 인류 사회와 역사적 한계 내에 있는 것이다. 역사는 21세기 신(新) 글로벌 시대로 진행되고 있다. 베링 해협 해저 터널은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 파급 효과는 직, 간접적으로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아메리카, 유럽, 동아시아 3대 거대 경제권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직접적인 물류의 증가 뿐 아니라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 개발과 연해주 개발, 알래스카 개발, 북부 캐나다 북극해 지역에 대한 개발 또한 이루어져 경제적, 정치적인 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될 것이다. 러시아는 2011년 8월, 650억 달러짜리 TKM-세계연결터널(TKM-World Link tunnel) 건설 구상을 발표하였고, 이러한 구상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연결을 위해 베링 해 중간의 양쪽 다이오메드 섬 간의 인프라 건설을 포함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시베리아, 캐나다 북극, 알래스카 지역의 광범위한 개발도 포함하고 있다. 베링 해협 해저 터널의 건설은 북극항로의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보아며 유라시아를 넘어 아메리카까지 포함하는 유르아메리아시아(Eur-Ameri-Aasia)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개념까지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 또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와 연계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트럼프가 추진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보다 여기가 훨씬 노다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는 기술이 좋고, 유라시아 터키 이스탄불의 마르마라 해협 해저에 터널을 연결한 경험이 있다. 우리의 경험과 기술은 이곳 터널 건설의 수주를 따내기만 한다면 세계 물류의 주역으로써 한 다리 걸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간접적으로 북극항로에 대한 우리의 지분도 살짝 걸쳐 놓을 수 있으니 트럼프를 통해 이 사업권의 수주를 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3,500억 중, 2,000억 불을 생째로 뜯기는 것에 대한 댓가로 이 사업을 잡으면 반강제로 뜯기다시피한 2,000억 불은 충분히 상쇄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에 대한 구상 자체가 우리 정부한테는 없다는 것에 있다. 국가가 번영하고, 국익을 챙기고 돈 벌 구석은 찾아 보면 얼마든지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모험을 하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탄식이 나올 정도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 칼럼
    • Nova Topos
    2025-11-12
  • 미국의 역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에서 실패와 중국과의 펜타닐 관세, 베네수엘라 위기
    미국에서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이 발발한 시기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마약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나타난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닉슨 이후에 등장한 모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유지하게 된다. 특히 공화당의 로날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는 마약과의 전쟁을 더욱 심화시켰고, 가수인 커트 코베인(Kurt Cobain, 1967~1994)의 죽음으로 인해 민주당인 빌 클린턴마저 가담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은 결과적으로 마약 이용자를 전혀 줄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비폭력 범죄자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흑인민권운동으로 그 위상이 신장된 미국 흑인들의 삶을 사회적, 경제적, 비공식적 차별로 새롭게 생성하여 결국 미국을 마약 천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미국 흑인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은 민권 운동 이전보다 오히려 하락했고, 이들의 권리를 찾는 운동은 폭동과 폭력 시위로 점철되어 갔다. 그저 금지된 약물인 마약을 투약했을 뿐, 폭력적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었고, 이들이 약물로 인한 전과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빈민층이 늘어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들을 교도소에 수감시키는 데 엄청난 세금을 써야 했다. 이처럼 폭증하는 재소자들로 인해 미국의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는 교도소와 교도관들을 늘려야만 했고, 이는 미국 재정에 심각한 부담이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수감자가 531명 정도의 비율을 갖고 있으며 이는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중국, 이란, 쿠바 같은 국가들보다 수감자들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미국은 수십 년째 수감자 인구와 인구 대비 수감자 비율에서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감소세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 비율은 5위로 줄어들지만 다시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계속 시설을 증설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재소자들을 감당하지 못하여 형기를 못 채운 잡범들을 석방시키기도 했다. 수용 한계를 넘어선 재소자들로 인해 관리 부실로 갱단간의 전쟁, 마약 유통, 살인 등 미국의 교도소는 범죄의 집합소가 된지 오래이고, 경범죄로 들어간 잡범들이 폭력적인 갱단 흉악범으로 변해 출소하는 범죄의 학교가 되어 버렸다. 단순한 마약 투약자가 교도소에 들어가서 갱단 조직원이 되어 출소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도소가 오히려 범죄자들을 양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미국에 존재하던 인종 간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특히 빈민가의 흑인과 히스패닉들은 꿈도 희망도 없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사회에 나오게 되면서 치안 위협이 극도로 높아지게 된다. 이와 같이 미국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부에서 이 정책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비폭력 단순 마약사범을 무조건 감옥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사용자 처벌, 대량 투옥 위주의 미국 사법 체계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현 2025년 기준으로 볼 때, 크게 개선된 바 없다. 미국 정치권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금지한 약물은 많지만 대표적인 것은 헤로인(Heroin), 코카인(Cocaine), LSD, 엑스터시(Ecstasy),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마리화나(Marijuana), 환각버섯(Psilocybin mushroom), 펜타닐(Fentanyl) 등이다. 여기에서 큰 문제는 펜타닐(Fentanyl)이다. 만약 중국의 펜타닐 원료 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미국의 펜타닐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결론적으로는 아니다(No!)이다.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 중국 대신 펜타닐의 원료를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미국 정치인들이 미국 마약의 문제를 볼 때, 마약의 무차별적인 공급에 있다고 주장하며 마약의 원료 생산지를 제거하거나 멕시코, 중국 등 공급 측을 제재하는 생산 차단에 주력해왔다. 최근에는 중국이 펜타닐 차단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경주 APEC의 미국-중국 회담에서 트럼프는 중국이 합성마약 펜타닐과 그 원료의 밀수출을 단속하면 펜타닐과 관련해 중국에 부과한 관세에 한해 완전히 폐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중국은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난 정말로 중국이 그럴 인센티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중국 정부의 펜타닐 단속을 보는 대로 미국 정부는 나머지 10%를 없앨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그와 같은 단속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결과는 전부 처참하게 실패했다. 소비만 있으면 공급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마약을 구입해주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마약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조직들은 아무리 처벌을 강화하고 마약 공급업자들을 체포한다고 해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마약을 조달해 와 미국에 유통시켰다. 오히려 규제와 처벌의 강화로 인해 마약의 가격이 올라 수익성이 증가하고 마약의 공급이 더더욱 증가하는 악순환만 반복되었다. 이와 같은 미국의 마약 수요 원인인 미국 사회의 내부에서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자와 판매 수단만 체포하고 단속한들 또 다른 공급자 및 수단이 등장해 대체할 뿐이다. 사실상 앞으로도 미국의 마약 수요가 감소되지 않아서 마약 판매가 막대한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면 앞으로도 미국의 마약 시장에 어떤 수단으로든지 끊임없이 제품 공급이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약과의 전쟁은 처음부터 마약 중독자들의 숫자를 갖은 형벌과 체포를 통해 감소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사실 이는 마약의 특성, 특히 미국에서 중독성과 해악으로 인해 처벌 및 관리 대상인 코카인, 헤로인,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성 진통제(Opioids), 메스암페타민 등의 약물들이 어떤 약물들인지 이해가 부족했었다. 일단 한 번 흡입하거나 사용하게 되면 단순히 그 주변이 공포와 폭력으로 인해 사용을 억제하거나, 혹은 자기 절제를 통해 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약이라 부르는 것이고 이에 대한 심각한 경각심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마약 투약자들을 투옥시키면 해결이 된다는 논리를 펼쳤지만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당연히, 한 번 맛을 본 마약 중독자들은 감옥에 들어갔다가 출소하여도 대부분 쉽게 마약을 끊지 못하고 상용하는 수준이 되었다. 약을 끊은 사람들조차도 단순히 처벌을 통해 마약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단순히 투약했전 투약자들조차도 투옥시키는 현실이 지속되자, 교도소의 숫자는 그만큼 늘어났지만, 당연히 단위면적당 수감자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늘어났고, 이를 관리할 인력과 자원의 부족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는 마약중독자들과 함께 격리되어야 할 마약이 교도소로 유입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관리가 되지 않을수록 교도소 내 범죄조직들은 간수들을 매수하기 쉬워졌고, 아주 극악의 환경에 마약까지 유통되니 죄수들 간의 폭력이나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강제라도 마약을 끊어야 할 중독자들의 중독 상태는 지속되어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이에 마약 범죄가 아닌 상태로 들어온 죄수들조차도 교도소에서 마약을 접하고 마약중독자가 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 된 것이다. 거기에 수감 생활 동안 겪었던 심리적,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 마약에 대한 유혹에 더더욱 취약해졌다. 특히 교도소 내 범죄 문제는, 도저히 교도소 자체의 인력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감옥의 겉모습은 간수들이 관리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감옥에 생성된 범죄조직들이 교도소를 반 정도 지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불어 관리 인력의 문제로 인해 부패 문제, 관리 소홀 문제 또한 심각했다. 이는 교도소에 들어갈 예산이 날이 거듭될수록 부족하다보니 교도관들에게 지급되는 봉급이나 복지 예산 또한 좋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는 교도관이 열심히 일했을 때 주는 인센티브는 없는데, 일은 매우 고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도관들도 관리에 대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약 중독 문제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온 죄수들은 직업을 잃고 노숙자가 되거나, 아니면 교도소 내의 극악한 환경 속에서 더 심각하고 위험한 범죄자가 되어 사회로 돌아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된 예산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마약 투약자 및 판매자에 대한 체포 및 처벌에 들어가는 것이다. 당연히 마약 투약자를 치료하고 재활하여 본질적으로 마약을 끊게 만드는 것이 교도관이나 경찰의 몫이 아니게 되었다. 이는 고스란히 시민 사회의 몫이 되었고, 날로 늘어가는 치료 및 재활에 들어가는 비용과 중독자 수에 비해, 관련 예산과 인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하면서 주 정부나 연방 정부는 이들을 지원할 역량이 되지 않고 여력도 되지 않으니 중독자 수가 줄지 않고 날로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이어 21세기 미국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 중 하나가 마약성 진통제 문제로 여겨진다.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사망자 수와 상용자 수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의 시발점이 되었던 미국의 열악한 의료 보험 제도, 각종 사회 복지 제도와 제약 회사들이 엮여 발생한 재앙 중 하나가 마약 문제보다 더 심각한 마약성 진통제 문제다. 이는 단순히 사용자나 판매자를 처벌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 또한 규제 대상이며, 이를 팔거나 쓰는 것 또한 처벌 대상이다. 그리고 그 강도 또한 낮지 않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많은 마약들을 불법으로 간주함으로 인해, 당연히 마약의 생산과 유통은 범죄조직들이 도맡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과 비교적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미국 정부의 영향력이 쉽게 닿지 않는 중남미 지역에 상당수의 마약 공장을 건조했다. 이들 범죄조직은 마약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된 현지 중남미 지역 범죄조직들은 엄청난 자금력을 지닌 초대형 마약 카르텔들로 진화했다. 이들은 국가의 정치, 경제, 사법,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멕시코, 브라질 등은 국가의 치안이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대 미국 마약 밀수 카르텔들을 방조하거나 지원하고 있다 주장하며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에게 "세계 최대의 마약 밀수범"이라 비난했다. 그러면서 마두로에 걸린 현상금을 2,500만 달러에서 5,000만 달러로 인상했다. 물론 이 같은 트럼프의 지적은 틀린 말은 아니다. 베네수엘라 군부는 1990년대부터 베네수엘라의 태양 카르텔(Cártel de los Soles)이라는 범죄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었다. 태양 카르텔의 경우 미국에서 테러조직이자 범죄조직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두로는 태양 카르텔과 연루된 군 장성 상당수를 정부요직에 임명하였고 태양 카르텔의 수익을 공유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여기에 트럼프는 태양 카르텔이 미국의 마약 밀수에 큰 지분을 차지하는 멕시코의 시날로아 카르텔(Cártel de Sinaloa)과 연관이 있다 주장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대통령은 이러한 트럼프의 의혹에 발끈하여 이는 사실이 아니라 반박 공표했다. 한편 베네수엘라의 외무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를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몰아 비난했다. 또한 트럼프가 자신과 연루된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이 저지른 아동 성범죄 사건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다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 외무부의 주장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2025년 6월 5일, 정부효율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SNS에서 트럼프 대통령와 설전을 벌이던 일론 머스크가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의 이름이 들어있다면서 그 문서들이 공개되지 않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추잡한 사건에 대해 트럼프는 침묵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외무부 측이 주장한 표면적인 이유로는 그것이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는 진짜 이유일 수 있다. 내부 정치적인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큰 사건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앞 바다인 카리브해에 다수의 군함들과 미사일 90기를 급파하며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또한 상륙 준비단 4,500명 가량을 베네수엘라 앞 바다에 배치하는 등 침공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같은 날 450만 명의 민병대에 총동원령을 선포했고, 현재까지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마약 카르텔을 청소하고 소위 갱단 두목이라 불리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처단한다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제프리 엡스타인과 성범죄 연루를 덮고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털어가는 등, 일거양득(一擧兩得)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맞다.
    • 칼럼
    • Nova Topos
    2025-11-08
  • 11월 4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의 전도사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살해된지 30주년 되는 날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팔레스타인 및 가자지구와 문제에서 휴전과 화의를 이룰 때 늘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는 총리 재임기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하며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협정 당사자들인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와 함께 노벨평화상까지 수상받았다. 사실 노벨평화상의 가치를 높여준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츠하크 라빈이다. 그러나 라빈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라빈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제거를 지시하고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이란을 맹비난했으며, 또한 제1차 인티파다를 강경진압하도록 명령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양면성이 있는 인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역사에서 라빈만큼 이스라엘 총리 중에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했는 인물은 전에도, 후에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행태를 본다면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평화 구축 노력과 하마스 집단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대비하여 아랍 측과 유화적인 태도 등으로 볼 때 훨씬 천사 같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제2차 오슬로 협약이 체결된 이후,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은 텔아비브에서 열린 중동 평화 회담 지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한 후 관용차에 탑승하던 도중 하레디 청년인 이갈 아미르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유태교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강경파가 암살을 목적으로 테러를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그러나 라빈은 자신과 같은 유태인들을 믿는다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현실은 라빈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험악했다. 하레디(Haredi)는 극보수주의 유태교 종파를 숭상하는 유태인 집단을 통칭하는 단체를 말한다. 하레디는 일부 종파를 제외하면 대개 폐쇄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은 토종 유태인들이 아니라 아슈케나지 유태인에 속해 있다. 게다가 매우 배타적이고 과격함으로 인해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당시 월간조선에서 근무하던 언론인인 조갑제씨가 라빈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를 마친 뒤 34시간 후에 암살당했다. 뜻하지 않게 조갑제씨가 한 인터뷰는 라빈의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되고 말았으며, 해당 기록은 월간조선 1995년 12월호에 수록되었다. 라빈을 암살했던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유태인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하레디 소속의 청년이다. 암살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아미르는 정부 수반을 살해한 혐의로 인해 유죄 판결 및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현재도 감옥에서 복역 중에 있으며 아미르는 총리를 암살한 자신의 행동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독방에 가둔 처분은 매우 가혹하며 팔레스타인 수감자들도 이렇게까지 생활하지는 않는다며 아주 적반하장식의 망언을 일삼았다. 게다가 아미르는 같은 종파인 하레디가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독방 수감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생활상의 불편함도 크게 없다고 한다. 감옥 외곽에서 아미르의 이미지는 배신자인 라빈을 죽인 애국자라는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 라빈 살해 사건 직후, 아미르 결혼하겠다는 유태인 여성들의 러브레터와 청혼 신청이 쇄도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아미르는 법적으로 혼인 관계인 여성과 면회를 통해 감옥 안에서 성관계를 맺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라빈을 뻔뻔스럽게 살해하고 감옥 안에서 이같은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웃기지도 않은 대우에 대해 방치하고 있는 것은 네타냐후 정부다. 그러니 네타냐후의 배후 지원설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아미르의 이와 같은 뻔뻔한 태도와 옥중 기행에 대해 당시 정치권은 겉으론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네타냐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이에 대해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사건에 대해 침묵은 곧 뒤를 봐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 라빈의 정치적 반대파인 보수우파 인사들도 한 나라의 정부 수반을 죽인 그가 저렇게 당당하게 애국자로 여겨지는 행태가 개탄스럽다며 탄식했다 하지만 이 또한 대외적으로 보여지기 위한 정치적인 쇼에 불과했다. 당시 이스라엘 정치권은 자신들과 대립 관계에 놓여있던 이웃 나라 이집트에서 무함마드 안와르 엘 사다트(Muhammad Anwar es-Sadat, 1918~1981) 대통령이 1981년에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자신들의 나라 대통령을 스스로 암살하는 것 자체가 후진국이라며 비웃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4년 만에 그 비웃음은 이스라엘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고, 아랍 국가들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국제적인 비웃음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를 비판하고, 또한 스스로 개탄하는 국제적인 쇼(Show)를 벌인 것이다. 라빈 총리의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지금까지 살아있으며, 여전히 감옥에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한편 안와르 사다트를 암살한 할리드 이슬람불리(Khalid Islambuli)는 재판 받고 교수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집트에서는 자신들의 나라 대통령을 암살하고도 암살범을 살려 두며 최고 대접해주는 자신들보다 더한 나라가 있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는 상태이다. 라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11월 5~6일을 국민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각 관공서들은 조기를 내걸었으며, 유흥업소들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각급 학교들도 임시로 휴교했다. 라빈의 시신은 이스라엘 국회의사당에 안치되어 100만여 명이 이곳에 조문을 위해 다녀갔다. 한국에서도 라빈의 무덤을 참배하던 히잡을 쓴 팔레스타인 여성이 울며 안타까워하는 사진이 보도된 바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정치적인 쇼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편이다. 이는 라빈과 아라파트가 체결한 오슬로 협정이 전쟁보다는 낫긴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의문스러운 협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라빈의 장례식은 예루살렘 헤르츨 국립묘지에서 유가족들과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John Major) 영국 총리, 당시 영국 왕세자였던 찰스 3세, 헬무트 콜(Helmut Kohl) 독일 총리, 로만 헤어초크(Roman Herzog) 독일 대통령,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 캐나다 총리, 이홍구 대한민국 국무총리, 빅토르 체르노미르딘(Виктор Черномырдин) 러시아 총리, 폴 키팅(Paul Keating) 호주 총리,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 UN 사무총장,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대통령, 후세인 1세(Hussein bin Talal) 요르단 국왕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엄수되었다. 그와 함께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면서 노벨평화상도 공동으로 수상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했으며 이스라엘 하레디들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끝내 불참했지만 유족들에게 애도의 편지를 보냈다. 손녀 노아 벤아르치(Noah Ben-Archi)는 자신을 극진히 아껴준 할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매우 컸기에 그 안에 복수심마저 자리 잡지 못했다며 눈물의 연설을 했다. 하관식 때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Kennedy) 미국 상원의원이 라빈의 관에 형인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F. 케네디의 묘역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기도 했다. 사건 이후 이스라엘 은행에서는 인플레를 대비한 고액권 발행 겸 그의 추모를 위해 500셰켈 지폐를 발행하면서 여기에 라빈의 초상화를 넣으려고 했으나 예상 외로 물가가 매우 안정되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자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는데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를 실행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네타냐후가 이를 백지화 시킨 것에 불과하다. 라빈에 암살에 대해 필자는 그 배후에 아랍과 전쟁을 원하고 팔레스타인의 인종청소를 원하는 딥스 & 네오콘, 그리고 네타냐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라빈 총리가 암살되기 직전 당시 극우파의 지도적인 정치인인 네타냐후가 평화 회담을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를 주도한 사실에 있기 때문이고, 그는 라빈의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시위대의 선두에서 관을 들고 행진하는 등 정국분위기를 험악하게 끌고가 암살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고한 타인을 죽이거나 해치려는 자에 대한 심판을 허용하는 유태교의 종교법인 할라카(Halakha)의 '추적자 원칙'(Din Rodef)을 적극 옹호하던 인물로, 유태인을 테러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할라카의 심판을 주장하며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라빈 총리 암살 직후 47세의 나이로 총리에 당선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그럼 미국은 어떨까? 빌 클린턴 자체가 문제가 많은 인물이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라빈과 아라파트 사이에 오슬로 협정 체결을 이끌어 냈고 2000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양측의 평화를 이끌어내려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츠하크 라빈을 가장 잘 이해한 인물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지위 및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겉돌기만 한 협정은 향후, 더 큰 분쟁의 불씨를 야기하는 결과가 되었다. 현 네타냐후가 하는 행위를 보면 라빈이 관뚜껑을 부수고 나와 통곡할 일이다. 그간 그가 노력했던 것이 네타냐후에 의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억지로 갈등을 봉합하려 하지만 라빈과 클린턴처럼 해도 쉽지 않은데 억지로 한다고 되겠는가? 결국 더 크게 터질 불씨는 키우는 셈이다. 현재 11월 4일은 이츠하크 라빈 추모일(Yom Hazikaron leYitzhak Rabin)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어떠한 추모와, 팔레스타인과 평화 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결국 그저 그런 날로 변해버린 이날은 중동의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씁쓸하게 곱씹고 있는 그런 날이 되었다. 그리고 30주년인 이날따라,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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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8
  •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당선과 우간다-인도계 미국인
    미국의 뉴욕 시장은 시의 공공서비스, 경찰, 소방 등 뉴욕시의 공공기관 및 법률을 집행할 권한을 갖는다. 임기는 4년 중임제이고 연임은 2번까지 가능하지만 재선 임기 종료 4년 후 재도전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본래는 임기 제한이 없었다. 2008년에 연임 제한을 2번에서 3번으로 늘리는 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되었다. 하지만 2010년 주민투표를 통해 다시 2연임제로 돌아왔다. 2010년 주민투표 이전에는 3선 시장도 매우 많았는데, 피오렐로 라 과디아(Fiorello La Guardia, 1882~1947), 로버트 F. 와그너 주니어(obert F. Wagner Jr. 1910~1991), 에드워드 카치(Edward Koch, 1924~2013),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가 3선 시장을 지냈다. 그런데 와그너와 카치는 4선까지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해 3선에 머물러야 했다. 미국 최대 도시의 대표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역임한 사람은 이후 고위 공직자로 선출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힘든 직업이라면 별칭이 있을 정도다. 시카고 시장과 마찬가지로 역대 시장 중 괜찮은 평가를 받은 시장이 드문 것으로 악명 높은데 그 중에서 에드워드 카치(Edward Koch, 1924~2013) 정도가 괜찮은 평을 얻었다. 카치는 뛰어난 소통 능력과 탁월한 업무 수행 능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3기 임기 때는 조금 평가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가 가장 좋았다는 평이 있다. 그는 "뉴욕의 영웅"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또한 퇴임 이후 최악으로 나락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당선됐다. 이전의 뉴욕 시장의 상당수가 이탈리아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는 좀 특이하다. 그는 우간다와 인도계이고, 종교는 이슬람이다.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 시장에 이슬람계 인사가 당선된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 33세로써 100여 년 만의 최연소 시장이다. 미국의 이민 시장이나 이민자 출신들로 채워진 미국 사회로 볼 때 그리 이상한 부분은 아니지만 아시아계나 아프리카계, 그리고 이슬람에 대해 민감한 미국으로 볼 때, 이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그러나 미국에 늘어나고 있는 인도인들의 숫자와 그들이 미국 사회 중심부로 진출하는 현상이 많아지고 있는 현재, 필자가 볼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1899년부터 1914년까지 영국령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서 캘리포니아를 개척할 쿨리들이 대거 미국에 들어오면서 인도계 이민자들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도계 쿨리들은 주로 새로운 대륙인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호주 대륙 등에 이주한 중국계와 달리 인도계는 동아프리카와 카리브 해 등으로 주로 이주했다. 1895년 영국은 케냐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 보호령을 창설하였다. 영국은 인구가 200만 명밖에 지나지 않았던 그 시절 케냐에 인도인들을 대거 이주시킬 계획으로 동아프리카 보호령에서 루피를 공식 통화로 지정하고 법률 체계를 영국령 인도 제국과 상당 부분 맞추어 놓았다. 영국에서는 케냐 현지 행정을 고아(인도)그 근교 콘칸(Conkan) 지방에서 온 카톨릭 신도 혹은 구자라트 지방 출신 파르시나 자이나교도 상인들에게 맡기고 경찰력이나 군인들은 펀자브인 시크교 신도들로 채웠다. 이미 케냐, 탄자니아의 스와힐리 해안 지대는 영국이 식민화하기 한참 이전 중세시대부터 인도계 상인들과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던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인도 벵골 지역에서 대기근이 일어나 약 2,000만 명이 사망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인 1896년에서 1901년 사이에 약 32,000명에 달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우간다에 철도를 건설할 목적으로 아프리카에 이송되었다. 반면 인도계 쿨리인 철도 노동자들은 오늘날 펀자브(파키스탄) 지방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라호르에서 모집되었다. 당시 철도 건설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 및 맹수들의 습격 등으로 트랙 1마일 당 약 4명에 해당하는 2,500여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철도의 완성 이후 철도 노동자들 중 고향에 재산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가족들을 데려오고 이들은 곧 케냐에 거주하는 친척들과 함께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게 된다. 1962년 기준 나이로비의 인구 중 3분의 1이 인도계였으며 케냐 전역에서 농업 이외에 다른 산업 분야의 4분의 3을 장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963년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당시 케냐에 거주하던 인도계 대부분은 현지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 캐나다, 남아공, 호주, 미국 등으로 재 이민하여 오늘날의 인도계 영국인, 인도계 캐나다인, 인도계 미국인, 인도계 호주인, 인도계 남아프리카인 인구의 한 축을 구성하게 되었다. 특히 우간다를 통해 온 인도계 후손이 미국에 정착했고, 이들중 하나가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라 생각된다. 같은 인도계로 이번에 트럼프와 지난 대선에 맞선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와 유명 뮤지션인 니키 미나즈(Nicki Minaj)가 있는데 맘다니와 다른 점은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정착한 인도계와 흑인 사이의 혼혈이라는 점이다. 1960년대 이후에 아시아계 이민이 대거 시작되면서 1980년에 인도계들의 숫자는 무려 30만으로 불어났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80만을 넘어섰고 2000년대에는 그 2배인 160만, 2010년에는 280만, 2020년대에는 440만 명에 이르게 된다. 인도계들의 이민이 많은 것은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영어를 지역 간 의사소통으로 쓰고 있지만 비즈니스 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리핀계 미국인들과 같이 영어가 되는 사람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도계 미국인의 소득과 수입, 교육수준은 아시아계 미국인 중 최고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류계층 인도인보다 요즘에는 그다지 미국 정부나 기업에서 활용할 인재가 아닌 교육 수준과 문화적 매너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자들이 유입이 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순수 인도계 주민의 수가 처음으로 중국계를 앞지르면서 인구 기준 아시아계 1위로 올라섰다. 현재도 고숙련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H1B 취업 비자 신청자의 75%를 인도인이 차지할 정도로 인도계 이민자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이 정말 고숙련 기술자들일까? 대개 보면 이렇게 들어온 인도인들 대부분이 3D 업계로 가서 일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젊은 층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힘든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은 미국 MZ 세대들의 빈 자리를 인도인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도계 인구의 증가로 인해 이들의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그런 가운데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뉴욕 시장에 당선된 것은 어쩌고 보면 예정된 수순이 아닐까 싶다. 이제 두고 보면 안다. 곧 있으면 LA나 시카고 같은 미국의 3대 대도시의 시장도 죄다 인도계로 바뀔 날이 머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전에 영국에 총리였던 리시 수낙이 있었던 것만 해도 이를 반증한다. 곧있음 프랑스 대통령, 독일 수상도 인도계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혹시 또 모른다. 미국의 대통령도 인도계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생각한다. 이 모든게 세계적 부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를 정복하고 축적했던 서구 열강들의 업보다. 과거 식민지가 되었던 그들이 이제는 서구의 주류가 되면서 역으로 서구를 주무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 칼럼
    • Nova Topos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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