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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6년 체르노빌의 재구성 - 체르노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이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부소장 겸 수석 엔지니어인 아나톨리 댜틀로프(Анатолий Дятлов, 1931~1995)의 지휘 하에 특별한 실험이 기획되어 있었다. 실험의 내용은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될 경우, 관성으로 도는 터빈이 만들어내는 전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가?'였다. 이와 같은 실험이 실시된 이유는 원전의 안전장치구조가 완비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원래대로라면 설계와 시운전 당시에 완료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특유의 "승리적인 조기달성"이라는 빠르게 성과를 달성하는 집단 공업 정책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실적을 위해 이를 누락하고 이미 발전소 완공을 선언하여 관련자들은 이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관련자들은 체르노빌 발전소가 이미 상업적인 운전에 들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안전성 테스트를 서둘러 완료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나톨리 댜틀로프 소장을 주재로 한 이 실험은 25일 낮 시간대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원자로의 정지를 막기 위해 안전 장치를 정지시키고 저출력 상태로 변경했다. 이 때 키예프의 전력 담당자가 낮 시간 대 전력 공급 유지를 요구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험이 지연되어 26일 1시부터 14시까지로 변경되었는데, 그 때까지 계속 저출력 상태로 장시간 안전 장치가 꺼진 상태에서 운전했다. 이것이 유력한 원자력 발전소 대형 사고의 원인이었다. 이 대형 사고를 접한 많은 사람들, 특히 현재에도 이 사고가 안전 장치도 없는 구식 소련 원자력발전소의 시스템이 그 원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자로에는 안전 장치인 최신식 ECCS가 장치되어 있었고 시설이 구식인 것이 문제가 아닌 실험 내에 안전 장치들을 꺼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실험 중에 이와 같은 절차가 들어가 있었고, 실험을 지도하던 댜틀로프는 이 절차에 따라 ECCS를 모조리 해제하고 실험에 임하는 엄청난 실수를 했던 것이다. 이 때 실험자들은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을 급수 펌프까지 가동시켜 노심 압력을 올렸으며 수동 제어봉을 6개만 남기고 전부 뽑은 상태였다. 규정상 최소 수동 제어봉은 15개였고 15개 내지는 16개에서 RBMK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댜틀로프는 실험 매뉴얼을 따라가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위험성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한다. 1시 23분 04초에 실험이 실시되었는데, 실험 도중 4호기의 전기 공급이 줄어 들면서 자연스럽게 냉각 펌프에 공급되는 전기의 양도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냉각수의 유입이 감소하자 원자로 내부가 과열되고 내부 증기압은 상승하면서 RBMK의 설계 결함으로 인해 원자로의 출력이 상승했다. 이를 제어하는 것이 제어봉인데 이를 뽑아 버렸는게 문제였고 결국 발전소는 폭발했다. 실험 시작 시간에서 폭발시간인 1시 23분 45초까지 거의 1분도 걸리지 않았으며 이때 누출된 방사능 물질의 총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400배였다. 폭발로 생긴 방사성 물질로 가득한 불꽃과 불씨들이 1km 상공까지 치솟았으며 이에 생존한 원전 직원의 목격담에 의하면, 폭발이 마치 화산 폭발과 같았으며 폭발 직후 거대한 푸른 빛줄기가 마치 레이저처럼 하늘로 솟구쳤다고 한다. 심지어 아름다운 광경이라 이를 구경하려고 원자로 근처로 온 주민들도 있었다.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 도시가 되었으며, 주변 마을들도 모조리 비워졌다. 이 때 수많은 땅에도 방사능이 검출되었는데, 향후 바람을 타고 번질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트랙터를 사용하여 땅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밑에 있는 오염되지 않은 흙을 퍼올려 덮어버리면서 방사능 유출을 최대한 봉쇄했다. 주변의 숲들도 같은 이유로 갈아 엎으려고 했으나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인해 그냥 출입 금지 구역으로만 지정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붉은 숲"이다. 원전에서 18km 떨어진 체르노빌 시는 오랫동안 유령도시로 남아 있었다가 2003년 체르노빌 복구 및 개발 프로그램(Chernobyl Recovery and Development Programme)이 시작되면서 관련자들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원전과 프리피야트 투어도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건물을 제외한 도시의 거의 모든 건물이 비어 있는 상태라서 유령도시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폭발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는 벨라루스이다. 당시에 바람이 북서쪽으로 불고 있었던 영향이 컸다. 만약 바람이 남쪽으로 불고 있었다면 수도 키예프에 낙진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로 방사능에 뒤덮이게 되니 전 세계가 겪을 수밖에 없는 더 큰 참사가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벨라루스에서는 소아 갑상선암 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벨라루스에는 이 사고의 낙진의 80% 가량 떨어져 지금도 벨라루스 국토의 남동부 지역 33%, 한국의 절반이 넘는 면적이 방사능 오염으로 출입 금지 구역으로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주 낙진이 있었던 벨라루스 제2의 도시 고멜의 경우, 대부분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정부의 노력으로 다행히 사람이 살 수 있고 경제성도 왕성해진 곳이 되었지만 지금도 고멜 도심지를 제외한 일부 지역은 방대한 양의 방사능 낙진으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폐쇄 구역으로 남아 있고 해당 지역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지난 2021년을 기준으로 벨라루스의 국토의 22%는 오염지역으로 남아있으며 이는 국토개발 계획에 심각한 장애로 남아있다. 벨라루스에서는 농작물의 원산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벨라루스에서 원산지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농작물을 사면 안 된다. 가령 고멜(Гомел) 지역의 경우 타 지역의 것보다 20% 이상 저렴한 가격의 채소나 과일 등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행경보사이트에 의하면 벨라루스 동남부 지역은 고멜, 모길료프(Могилёв)만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벨라루스 남동부를 여행할 사람일 경우 개인에 의한 판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식품을 구입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특히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30km 구역 안에 있는 카미린 지역의 경우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고 이곳에서는 아직도 농작물들을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30주기을 맞이하여 벨라루스의 토양을 검사해 본 결과 고멜 주에서 아직도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방사성 스트론튬이 들어있는 우유가 생산되고 있는 목장이 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45㎞ 떨어진 목장인데 2014년부터 50마리의 젖소를 키우며 하루 2톤의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한다. 국립 민스크 위생-전염병 센터가 이곳 우유를 조사해 봤더니, 암 등을 일으키는 방사성 동위원소 스트론튬-90이 벨라루스 농업부 기준치 보다 무려 10배나 더 검출됐다고 조사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벨라루스는 낙진 피해를 당한 2,200㎢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470개 마을을 소개했다. 하지만 농업국가인 벨라루스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커 오랫동안 비워 놓았던 땅을 최근 들어 다시 농장으로 만들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 이 농장의 우유는 벨라루스 밀카비타(Милкавита) 공장에서 전량 치즈로 가공되어 러시아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 나온 치즈의 96~97%가량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보로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출되었다고 하며 회사 관계자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체르노빌 사고지역 근처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보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러시아 소비자 보호 권리 감독청은 밀카비타 공장의 회사 관계자가 밝힌 내용에 절대 해당 지역에서 농작물과 유제품을 수입하는 일이 없다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그로드노(Гродно) 주 아스트라베츠(Астравец)에는 2019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벨라루스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50km 떨어진 곳이라서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갈등까지 생기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벨라루스의 원자력 발전소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선포했다. 사울리우스 스크베르넬리스 총리는 벨라루스 원전에 대한 리투아니아의 입장은 명백하고 원칙적인 것으로 아스트라비예츠 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전 가동은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투아니아가 벨라루스 원전 건설에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스크베르넬리스 총리는 벨라루스의 원전 건설 과정에서 핵 안전 및 환경 안전 수칙이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가동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원전을 지을 당시 건설 사고가 발생했었던 것을 들었다. 2018년 7월에는 크레인에 의해 이동되던 무게 330t 짜리 원자로 1기가 2~4m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현지 증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벨라루스 정부는 발전소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이 안전하다는 증거를 전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벨라루스의 원전 가동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앞으로 새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을 구매하지 말 것을 EU에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벨라루스는 원전 가동이 철저한 안전 기준에 따라 가동되고 있다는 입장에 있다. 블라디미르 마케이 벨라루스 외무장관은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안전 기준을 지키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리투아니아의 주장은 자국만 이익을 보려는 경제적인 속셈이 작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후 원래 거주하던 지역에서 강제로 소개된 이들은 벨라루스 내에서 '쨔르노빌찌(Чарнобыльцы, 체르노빌 민족)'라는 명칭으로 기피 대상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피해자들, 쨔르노빌찌에 관련한 이야기는 벨라루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евич)가 1997년에 저술한 <체르노빌의 목소리(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책으로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위해 10여 년에 걸쳐 1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2006년 미국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 칼럼
    • Nova Topos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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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6년 체르노빌의 재구성 - 체르노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이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는 부소장 겸 수석 엔지니어인 아나톨리 댜틀로프(Анатолий Дятлов, 1931~1995)의 지휘 하에 특별한 실험이 기획되어 있었다. 실험의 내용은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될 경우, 관성으로 도는 터빈이 만들어내는 전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가?'였다. 이와 같은 실험이 실시된 이유는 원전의 안전장치구조가 완비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원래대로라면 설계와 시운전 당시에 완료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특유의 "승리적인 조기달성"이라는 빠르게 성과를 달성하는 집단 공업 정책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실적을 위해 이를 누락하고 이미 발전소 완공을 선언하여 관련자들은 이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관련자들은 체르노빌 발전소가 이미 상업적인 운전에 들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안전성 테스트를 서둘러 완료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나톨리 댜틀로프 소장을 주재로 한 이 실험은 25일 낮 시간대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원자로의 정지를 막기 위해 안전 장치를 정지시키고 저출력 상태로 변경했다. 이 때 키예프의 전력 담당자가 낮 시간 대 전력 공급 유지를 요구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험이 지연되어 26일 1시부터 14시까지로 변경되었는데, 그 때까지 계속 저출력 상태로 장시간 안전 장치가 꺼진 상태에서 운전했다. 이것이 유력한 원자력 발전소 대형 사고의 원인이었다. 이 대형 사고를 접한 많은 사람들, 특히 현재에도 이 사고가 안전 장치도 없는 구식 소련 원자력발전소의 시스템이 그 원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자로에는 안전 장치인 최신식 ECCS가 장치되어 있었고 시설이 구식인 것이 문제가 아닌 실험 내에 안전 장치들을 꺼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실험 중에 이와 같은 절차가 들어가 있었고, 실험을 지도하던 댜틀로프는 이 절차에 따라 ECCS를 모조리 해제하고 실험에 임하는 엄청난 실수를 했던 것이다. 이 때 실험자들은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을 급수 펌프까지 가동시켜 노심 압력을 올렸으며 수동 제어봉을 6개만 남기고 전부 뽑은 상태였다. 규정상 최소 수동 제어봉은 15개였고 15개 내지는 16개에서 RBMK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댜틀로프는 실험 매뉴얼을 따라가고 있었기에 이에 대한 위험성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한다. 1시 23분 04초에 실험이 실시되었는데, 실험 도중 4호기의 전기 공급이 줄어 들면서 자연스럽게 냉각 펌프에 공급되는 전기의 양도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냉각수의 유입이 감소하자 원자로 내부가 과열되고 내부 증기압은 상승하면서 RBMK의 설계 결함으로 인해 원자로의 출력이 상승했다. 이를 제어하는 것이 제어봉인데 이를 뽑아 버렸는게 문제였고 결국 발전소는 폭발했다. 실험 시작 시간에서 폭발시간인 1시 23분 45초까지 거의 1분도 걸리지 않았으며 이때 누출된 방사능 물질의 총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400배였다. 폭발로 생긴 방사성 물질로 가득한 불꽃과 불씨들이 1km 상공까지 치솟았으며 이에 생존한 원전 직원의 목격담에 의하면, 폭발이 마치 화산 폭발과 같았으며 폭발 직후 거대한 푸른 빛줄기가 마치 레이저처럼 하늘로 솟구쳤다고 한다. 심지어 아름다운 광경이라 이를 구경하려고 원자로 근처로 온 주민들도 있었다.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는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 도시가 되었으며, 주변 마을들도 모조리 비워졌다. 이 때 수많은 땅에도 방사능이 검출되었는데, 향후 바람을 타고 번질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트랙터를 사용하여 땅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밑에 있는 오염되지 않은 흙을 퍼올려 덮어버리면서 방사능 유출을 최대한 봉쇄했다. 주변의 숲들도 같은 이유로 갈아 엎으려고 했으나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인해 그냥 출입 금지 구역으로만 지정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붉은 숲"이다. 원전에서 18km 떨어진 체르노빌 시는 오랫동안 유령도시로 남아 있었다가 2003년 체르노빌 복구 및 개발 프로그램(Chernobyl Recovery and Development Programme)이 시작되면서 관련자들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원전과 프리피야트 투어도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건물을 제외한 도시의 거의 모든 건물이 비어 있는 상태라서 유령도시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폭발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국가는 벨라루스이다. 당시에 바람이 북서쪽으로 불고 있었던 영향이 컸다. 만약 바람이 남쪽으로 불고 있었다면 수도 키예프에 낙진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로 방사능에 뒤덮이게 되니 전 세계가 겪을 수밖에 없는 더 큰 참사가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벨라루스에서는 소아 갑상선암 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벨라루스에는 이 사고의 낙진의 80% 가량 떨어져 지금도 벨라루스 국토의 남동부 지역 33%, 한국의 절반이 넘는 면적이 방사능 오염으로 출입 금지 구역으로 통제되고 있다. 그러나 주 낙진이 있었던 벨라루스 제2의 도시 고멜의 경우, 대부분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정부의 노력으로 다행히 사람이 살 수 있고 경제성도 왕성해진 곳이 되었지만 지금도 고멜 도심지를 제외한 일부 지역은 방대한 양의 방사능 낙진으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폐쇄 구역으로 남아 있고 해당 지역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지난 2021년을 기준으로 벨라루스의 국토의 22%는 오염지역으로 남아있으며 이는 국토개발 계획에 심각한 장애로 남아있다. 벨라루스에서는 농작물의 원산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벨라루스에서 원산지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농작물을 사면 안 된다. 가령 고멜(Гомел) 지역의 경우 타 지역의 것보다 20% 이상 저렴한 가격의 채소나 과일 등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행경보사이트에 의하면 벨라루스 동남부 지역은 고멜, 모길료프(Могилёв)만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벨라루스 남동부를 여행할 사람일 경우 개인에 의한 판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식품을 구입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특히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30km 구역 안에 있는 카미린 지역의 경우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고 이곳에서는 아직도 농작물들을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30주기을 맞이하여 벨라루스의 토양을 검사해 본 결과 고멜 주에서 아직도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방사성 스트론튬이 들어있는 우유가 생산되고 있는 목장이 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45㎞ 떨어진 목장인데 2014년부터 50마리의 젖소를 키우며 하루 2톤의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한다. 국립 민스크 위생-전염병 센터가 이곳 우유를 조사해 봤더니, 암 등을 일으키는 방사성 동위원소 스트론튬-90이 벨라루스 농업부 기준치 보다 무려 10배나 더 검출됐다고 조사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벨라루스는 낙진 피해를 당한 2,200㎢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470개 마을을 소개했다. 하지만 농업국가인 벨라루스가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커 오랫동안 비워 놓았던 땅을 최근 들어 다시 농장으로 만들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 이 농장의 우유는 벨라루스 밀카비타(Милкавита) 공장에서 전량 치즈로 가공되어 러시아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 나온 치즈의 96~97%가량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보로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출되었다고 하며 회사 관계자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체르노빌 사고지역 근처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보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러시아 소비자 보호 권리 감독청은 밀카비타 공장의 회사 관계자가 밝힌 내용에 절대 해당 지역에서 농작물과 유제품을 수입하는 일이 없다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그로드노(Гродно) 주 아스트라베츠(Астравец)에는 2019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벨라루스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50km 떨어진 곳이라서 리투아니아와의 외교 갈등까지 생기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벨라루스의 원자력 발전소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선포했다. 사울리우스 스크베르넬리스 총리는 벨라루스 원전에 대한 리투아니아의 입장은 명백하고 원칙적인 것으로 아스트라비예츠 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전 가동은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투아니아가 벨라루스 원전 건설에 극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다. 스크베르넬리스 총리는 벨라루스의 원전 건설 과정에서 핵 안전 및 환경 안전 수칙이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가동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원전을 지을 당시 건설 사고가 발생했었던 것을 들었다. 2018년 7월에는 크레인에 의해 이동되던 무게 330t 짜리 원자로 1기가 2~4m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현지 증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벨라루스 정부는 발전소 입지 선정과 건설 과정이 안전하다는 증거를 전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벨라루스의 원전 가동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앞으로 새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을 구매하지 말 것을 EU에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벨라루스는 원전 가동이 철저한 안전 기준에 따라 가동되고 있다는 입장에 있다. 블라디미르 마케이 벨라루스 외무장관은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안전 기준을 지키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리투아니아의 주장은 자국만 이익을 보려는 경제적인 속셈이 작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후 원래 거주하던 지역에서 강제로 소개된 이들은 벨라루스 내에서 '쨔르노빌찌(Чарнобыльцы, 체르노빌 민족)'라는 명칭으로 기피 대상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피해자들, 쨔르노빌찌에 관련한 이야기는 벨라루스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иевич)가 1997년에 저술한 <체르노빌의 목소리(Чернобыльская молитва)>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책으로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위해 10여 년에 걸쳐 1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2006년 미국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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