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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거부 닷새째… 윤석열 전 대통령, 강제구인 불응 속 기소 초읽기
- 윤석열 전 대통령, 조사 불응 장기화...특검, 비대면 기소 가능성 시사하며 사법 긴장감 최고조 [서울, 2025년 7월 16일] -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 이후 연일 조사를 거부하고 강제 구인마저 불응하면서 사법 시스템의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특별검사팀(이하 특검)은 이례적으로 대면 조사 없이 기소할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윤 전 대통령의 '버티기'에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의 수사라는 점에서 국내 사법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선례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2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래 15일 현재 닷새째 일체의 특검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특검은 이틀 연속으로 구치소 측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인치 지휘를 내렸지만, 구치소는 전직 대통령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이유로 집행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는 법무부 산하 교정 기관이 특검의 정당한 사법 절차 집행을 사실상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로, 사법부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특검의 강경 경고와 윤 전 대통령 측의 반발 특검은 교정당국에 "이는 명백히 형사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경고했다. 또한 인치 지휘를 거부한 공무원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법질서 확립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지영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은 과거 법무행정의 수장을 역임했던 인물로서, 누구보다 형사 절차에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하며 윤 전 대통령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특검의 압박은 구치소와 윤 전 대통령 측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출정을 거부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특검이 강제 인치만을 고집하는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개 망신주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구치소 방문 조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특검은 "다른 피의자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크다"며 방문 조사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의 팽팽한 대치는 향후 수사 과정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 인물과의 접견, 논란 가중 한편, 윤 전 대통령은 16일 미국 리버티대학교의 모스 탄 교수와 일반 접견 형식으로 약 10분간 만날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탄 교수가 과거 국내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해 온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만남은 현재 내란 및 외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의 입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며, 정치적 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사법적 위기 상황에서 외부 인사와의 특정 만남이 불러올 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면 조사 없는 기소 가능성, 선례는? 특검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주요 혐의 조사가 이미 구속 전 소환 조사를 통해 상당 부분 완료되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향후 추가 대면 조사 없이도 기소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성을 얻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대면 조사 없이 기소가 이루어진 선례가 있어, 특검의 이러한 방침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이 끝까지 조사를 거부하더라도 사법 절차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윤 전 대통령을 둘러싼 내란 및 외환 혐의 수사는 정치적 파장뿐만 아니라 사법 시스템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검은 "출석 여부, 인치 시도, 조사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며 향후 사법 절차의 엄정한 집행을 예고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시험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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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거부 닷새째… 윤석열 전 대통령, 강제구인 불응 속 기소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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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사상 첫 3연패…한국 축구, 안방에서 자존심 꺾이다
- [용인=2025.07.15.] 안방에서 자존심 꺾인 한국 축구…사상 첫 한일전 3연패 굴욕 2025년 7월 15일 오후,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일본에 0-1로 패하며 사상 첫 한일전 3연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이로써 한국은 승점 6점(2승 1패)으로 준우승에 머물렀고, 일본은 3전 전승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전반 8분 실점, 끝내 만회 실패 경기는 시작 7분 만에 기회를 맞이했다. 나상호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했으나 곧바로 이어진 일본의 역습에서 혼혈 공격수 저메인 료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가져갔다. 이후 한국은 계속된 교체와 전술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정력 부족과 일본의 견고한 수비에 막혀 동점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스리백 실험과 교체 투입…결과는 아쉬움 홍명보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스리백 전술을 실험했다. 후반전에는 장신 공격수 이호재와 오세훈을 투입해 ‘트윈 타워’ 전략을 가동했으나, 유효슈팅은 단 1개에 그쳤다. 총 슈팅 수 9개, 코너킥 11회, 프리킥 12회 등 공격 지표에서는 우위를 보였지만, 골망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3연패, 그리고 한일전 무득점 굴욕 이번 패배는 2021년 일본 요코하마 평가전, 2022년 동아시안컵 0-3 완패에 이어 세 번째 연속 패배다. 세 경기에서 모두 득점하지 못하고 7실점한 결과는 한국 축구의 대일전력 격차를 여실히 보여준다. 역대 전적은 여전히 한국이 42승 23무 17패로 앞서 있지만, 최근 10경기만 보면 2승 3무 5패로 일본에 열세다. 일본 ‘2.5군’에 밀린 한국 ‘정예 K리거’ 이번 대회는 FIFA A매치 일정과 무관하게 치러져 양국 모두 자국 리거 위주로 구성됐다. 일본은 전원 J리거로 구성됐고, 일부 언론은 이를 ‘2.5군’으로 표현했지만 조직력과 전술적 완성도에서 오히려 한국을 압도했다. 반면 한국은 26명의 대표팀 중 K리거 23명, J리거 3명으로 ‘정예’로 분류됐음에도 경기력에서는 열세를 보였다. 홍명보 감독 “희망을 본 경기”…비판 여론 고조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은 “일본은 전술적으로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을 봤다”고 말했지만, 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술 혼선과 한일전 대비 부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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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러시아에 '혹독한 100% 관세' 경고…우크라 휴전 시한 50일 설정
- [워싱턴DC=2025.07.14.] 트럼프 “50일 내 우크라 전쟁 합의 없으면 러시아에 100% 관세”…2차 제재까지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종식과 관련해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았다. 현지시간 7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에 대해 매우 불만족스럽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예고한 ‘러시아 관련 중대 발표’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서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겨냥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유지하는 국가들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는 “나는 무역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왔다”며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우리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엇(PATRIOT) 방공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될 계획이다. 나토의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가 단지 방어무기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무기 지원은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에서 구매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의 대화는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이우나 다른 도시가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나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경고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이 본격적인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가와 외교가는 트럼프의 이번 조치가 대선을 앞둔 강경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에너지 및 무역 제재가 자리 잡고 있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 일부 국가들과 인도, 중국 등은 미국의 이 같은 관세 압박이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 중이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방공 능력 강화가 러시아의 군사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의 발표 직후 “미국과 나토의 리더십을 기대한다”며 “이번 발표는 전쟁 종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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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러시아에 '혹독한 100% 관세' 경고…우크라 휴전 시한 50일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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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논문 16편 논란…검증단 “자진 사퇴 촉구”
- [서울=2025.07.15.]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 논문 16편 연구윤리 위반 논란…범학계 검증단 “자진 사퇴” 촉구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논문 중 다수가 연구윤리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025년 7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범학계 국민검증단’의 대국민 보고회에서는 이 후보자의 논문 150편 가운데 16편이 “연구윤리 위반 소지가 크다”고 결론지었다. 검증단은 해당 논문들이 제자의 학위논문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자를 제1저자 또는 교신저자로 표기한 사례,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미표기, 중복게재, 표절률 과다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표절률은 최소 4%에서 최대 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논문은 실험 구조와 결과, 그래프까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후보자 측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7월 13일 국회에 제출한 참고자료에서 “논문들은 서로 다른 변수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실질적 저자는 본인”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해당 논문들은 연구 책임자인 본인의 국가 연구 과제를 제자들이 활용한 것으로, 건축공학 분야에서는 통상적인 관례”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후보자의 논문을 실은 한국색채학회와 한국건축학회는 “논문에 윤리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후보자 측은 논란이 된 16편 중 9편은 충남대 연구윤리검증위원회에서 ‘연구 부정행위 없음’으로 결론지었다며 인사청문회에서 충분히 해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치권 반응도 엇갈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 비공식 대화에서 “(이 후보자는) 내가 직접 추천한 사람은 아니다”라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발언이 나왔다. 반면, 범학계 검증단은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은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학계 전체의 윤리 기준을 흔드는 사안”이라며 자진 사퇴를 강하게 촉구했다. 이진숙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7월 16일로 예정돼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이 사안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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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논문 16편 논란…검증단 “자진 사퇴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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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구인 거부한 윤석열…특검, “15일 반드시 데려오라”
- [서울=2025.07.14.]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특검 강제구인 거부…15일 재시도 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은석 특별검사팀(이하 특검)의 강제구인 시도에 또다시 불응하면서 내란 의혹 수사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전 대통령은 14일 오후 2시로 예정된 서울고등검찰청 조사실 출석을 거부, 수용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아 강제 인치(구속 피의자를 강제로 소환하는 절차)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특검은 15일 오후 2시, 재차 강제구인을 시도할 예정이지만, 사법 절차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번 사태로 특검 수사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특검은 지난 11일에도 윤 전 대통령에게 첫 소환 조사를 통보했으나, 윤 전 대통령 측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에 서울구치소 측은 윤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출정에 지장이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특검에 회신하며 출석을 종용했다. 그러나 14일 특검이 강제구인을 시도하자 서울구치소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물리력 동원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강제 구인에 대한 기관 간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이러한 서울구치소의 입장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사법 절차 준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고충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이 전례 없는 사태라는 점을 들어 물리적 충돌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브리핑에서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은 구속된 피의자로서 법률에 명시된 인치 지휘에 따라야 한다”며, “이는 피의자 개인의 의사에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강조했다. 이어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은 검사로 재직하며 형사사법시스템 전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조사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자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실제로 과거 유사한 사례를 보면, 2000년대 초반 모 재벌 총수 역시 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거부하며 수사가 지연된 바 있지만, 결국 강제 구인에 불응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윤 전 대통령의 행동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여전히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출석이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현재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장시간 조사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의료 기록을 근거로 제시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의 이러한 주장이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구인 시도 역시 윤 전 대통령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공수처는 강제구인을 위한 물리력 동원을 검토했으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방문 조사 방안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윤 전 대통령 측의 거부로 불발됐다. 이러한 선례는 강제구인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출석 거부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이어가기 위해 박종준 전 경호처장과 이진하 경비안전본부장을 재소환하는 등 윤 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이는 핵심 피의자의 조사 없이는 수사 진전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주변 인물 조사를 통해 간접적인 증거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5일 윤 전 대통령의 재차 출석 여부에 따라 향후 특검의 조사 방식과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측에서 제기할 수 있는 방문 조사 가능성에 대해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제공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현재로서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으며 원칙적인 수사 방침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강경한 입장은 여론의 비판과 특혜 시비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특검은 박종준 전 경호처장과 이진하 경비안전본부장을 재소환하는 등 윤 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고 있으며, 15일 출석 여부에 따라 향후 조사 방식과 수위도 결정될 전망이다. 특검은 방문조사 가능성에 대해 “특혜 논란을 고려해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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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구인 거부한 윤석열…특검, “15일 반드시 데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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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찐윤’ 논란 속 혁신 드라이브…국민의힘 당 구조 대수술
- 국민의힘, '최고위원 폐지' 단일지도체제 전환으로 리더십 강화 시동…혁신 성공할까? [서울=2025.07.11.] 국민의힘이 당 혁신을 위한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7월 11일, 윤희숙 신임 혁신위원장 체제 아래 최고위원회를 폐지하고 당대표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로 전환하는 혁신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당내 고질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책임 있는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당내외의 비판적인 시선 속에서 이번 혁신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고위원 폐지, 단일지도체제 전환의 배경과 목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는 이날 제2차 회의를 통해 현행 혼합형 최고위원제를 폐지하고, 당대표의 단일 지도체제를 강화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기존 최고위원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당내 혼란을 야기하고, 중요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실제로, 지난 2022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들의 잦은 이견 표출과 공개적인 비판은 당내 혼란을 가중시켰고, 이로 인해 당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혁신위는 최고위원회를 폐지함으로써 당내 갈등과 '이전투구'를 줄이고, 당대표에게 책임과 권한을 집중시켜 신속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새롭게 도입될 중앙당무회의는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청년·여성위원장 등 총 9명으로 구성되어 매주 두 차례 회의를 통해 당무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기존 최고위원회의 의사결정 방식보다 효율성을 높이고, 당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을 간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전국 시도당 대표들이 참여하는 ‘전국민심회의’를 함께 구성하여 당의 민심 수렴 구조를 강화하고, 지역별 민심을 중앙 당무에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당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의 리더십과 '인적 쇄신' 논란 이번 혁신안은 7월 9일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윤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이루겠다"고 밝히며 강력한 혁신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동시에 "인적 쇄신의 칼을 휘두를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강조하여, 기존 안철수 의원 등이 제기했던 지도부 책임론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당내 인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구조적인 혁신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알맹이 없는 혁신'이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당내외의 비판과 혁신 성공의 과제 이번 혁신안 발표는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이 19%로 추락한 가운데 나온 것으로, 당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김상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주류는 지지율 하락에도 무감각하다”고 비판하며, ‘언더 찐윤’이라 불리는 숨은 친윤 세력이 수면 아래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혁신 시도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는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외부의 강한 의구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내에서도 모든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원들은 “혁신위 동력은 이미 상실됐다”며 전당대회를 통해 빠르게 새로운 당 지도체제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는 혁신위가 제시하는 개혁안이 충분하지 않거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당내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다. 실제로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2025년 7월 첫째 주)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19%로 직전 조사 대비 3%p 하락했으며, 이는 2020년 4월 총선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신위가 당내외의 비판을 잠재우고, 당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혁신안은 비상대책위원회에 보고된 후 당원 투표에 부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당원 투표는 혁신안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당원들의 지지를 얻는 중요한 절차이지만, 동시에 당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혁신안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국민의힘의 이번 '최고위원 폐지' 단일지도체제 전환은 당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과감한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낮은 지지율, 당내외의 비판, 그리고 '인적 쇄신'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과연 윤희숙 혁신위원장 체제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국민의힘을 진정한 의미의 '재창당' 수준으로 혁신시킬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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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찐윤’ 논란 속 혁신 드라이브…국민의힘 당 구조 대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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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드론 5회 북한 침투…특검 “북풍 기획 의혹 수사 중”
- [서울=2025.07.11.] 尹 정부 시절 북한 드론 작전, 정치 쟁점화…특검 "북풍 기획 가능성 배제 못해" 지난해 10~11월,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북한에 대한 무인기(드론) 정찰이 최소 5차례 이상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내란 및 외환죄 혐의를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11일 오후 2시 구속된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이번 무인기 작전은 당시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공천 개입 의혹과 ‘디올백’ 논란 등 정국이 소용돌이치던 시기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역 장교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드론작전사령부는 “윤 전 대통령 지시로 평양에 5차례 드론을 보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작전이 단순 군사 대응이 아닌, 정치적 목적의 ‘북풍 몰이’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드론 출격 시점은 김 여사 관련 특검법 재의요구권 행사 직후로, 국면 전환을 위한 고도의 기획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북한이 당시 화성-19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오물 풍선을 보내는 등 도발을 이어간 점을 고려하면 군사적 맞대응 차원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특검은 또 최근 해당 무인기 작전에 활용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드론 통제 차량이 폐차 직전에 보전 조치된 사실도 확인했다. 해당 차량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드론 시험용으로 쓴 것으로 추정되며, 평양에 투입된 무인기와 동일 모델일 가능성이 있어 폐차 시도 자체가 증거인멸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일부 국무위원만 참석시켜 형식적 요건을 채우고, 비화폰 정보 삭제 및 허위 공보 지시 등으로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새벽 구속돼, 124일 만에 재수감됐다. 특검은 향후 20일간 윤 전 대통령을 추가 조사하고, 계엄 공범 및 외환 혐의 관련자들까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무인기 침투로 인해 우리 군사기술이 노출됐을 가능성에 따라 ‘일반이적죄’ 적용 여부도 검토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군사작전 논란을 넘어, 정권 차원의 여론몰이 및 권력 남용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검의 수사 결과에 따라 정국에 중대한 파장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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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드론 5회 북한 침투…특검 “북풍 기획 의혹 수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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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박스쿨 논란 일파만파…尹정부 청와대 '지원 압박' 정황 드러나
- 대통령실, 특정 역사 단체 지원 압박 의혹… 교육계 정치 개입 논란 확산 [서울, 2025년 7월 11일] – 윤석열 정부 용산 대통령실이 특정 민간 역사 교육 단체인 '리박스쿨' 관련 단체 지원을 교육부에 압박했다는 의혹이 7월 10일 국회 청문회에서 제기되며 한국 교육계에 정치 개입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리박스쿨은 최근 대선 당시 댓글 조작팀 운영 의혹과 함께 극우 성향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활동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번 청문회는 교육부 국정감사 차원에서 열렸으며,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는 청문회에서 "마녀사냥을 당했다"며 의혹을 부인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내부 문건과 교육 활동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교육부 간부,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직접 연락받았다" 증언 김천홍 교육부 책임교육정책관은 청문회에서 손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글로리사회적협동조합'을 잘 챙겨달라는 요청을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으로부터 직접 받았고, 이는 압력으로 느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정책관은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는 취지로 해석했다"며 "행정부 내에서 이런 식의 연락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해당 조합은 지난해 '늘봄학교' 사업 공모에 참여했으나 평가 결과 탈락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탈락 이후에도 대통령실에서 지속적으로 관련 문의와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통령실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정성 훼손에 대한 교육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정부 사업 선정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모 사업은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외부 압력이나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원칙적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대통령실과의 연락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습니다. 강사 159명 배출… 공교육 이념 편향 우려 증폭 교육부 전수조사 결과, 리박스쿨 연관 단체에서 자격증을 받은 '늘봄학교' 강사는 기존 43명에서 116명이 추가로 확인돼 총 159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과학 및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공교육 내 이념 편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강사들은 전국 132개 초등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집중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일부 강사들은 정규 교육과정 외에도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해 역사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어 교육 내용의 적절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공교육 현장에 특정 이념을 가진 단체의 강사들이 무분별하게 투입되는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라며 "철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내부 문건에 "전두환 명예회복" TF 명시 한겨레는 리박스쿨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전두환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사 문제 연구회' 결성 회의 자료, 보수 우파 강사 양성 계획, 좌익 단체 대항 조직화 등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공개된 문건에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한 좌편향 교육 극복"이라는 표현과 함께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손 대표는 이에 대해 "역사를 왜곡한 적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전두환 명예회복이라는 표현 자체가 역사 왜곡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또한 내부 문건에는 "교육청 및 교육부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계획도 포함되어 있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계 진출 전략을 수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손효숙 대표, 현직 민주평통 자문위원 겸직 논란 경향신문은 손효숙 대표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직을 겸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임기는 2023년 9월부터 오는 8월 말까지로 현재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위촉 경위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은 통일 정책에 대한 자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직책으로, 손 대표의 겸직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리박스쿨의 정치적 성향과 자문위원직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자문위원 위촉 과정의 투명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민주평통 관계자는 "자문위원 위촉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덕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며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소속 단체 활동은 위촉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청문회 불출석 논란까지 불거져 한편, 리박스쿨과 연관된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손자 생일잔치'를 이유로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비난을 샀습니다. 김 이사장은 리박스쿨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기관의 책임자로, 청문회에서 핵심 증인으로 채택되었으나 개인적 사유를 들어 불출석했습니다. 국회 의원들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요구를 이런 식으로 회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재출석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손 대표 역시 청문회 당일이 되어서야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 논란이 있었습니다. 교육계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 확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계에서는 공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는 늘봄학교 강사 운영 지침을 재검토하고, 향후 강사 선정 과정에서 더욱 엄격한 심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현재 활동 중인 강사들에 대해서도 교육 내용과 방식에 대한 점검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야당은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대통령실의 교육정책 개입 의혹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여당은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라며 선을 긋고 있어, 관련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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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박스쿨 논란 일파만파…尹정부 청와대 '지원 압박' 정황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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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2.9% 인상…17년 만의 노사 합의, 노동계는 ‘퇴장’
- 2026년 최저임금, 17년 만에 노사 합의에도 노동계 거센 반발 [세종=2025.07.10.]– 2026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20원으로 최종 결정되며, 2008년 이후 17년 만에 노사 합의로 도출된 결과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최저임금 심의라는 세간의 큰 기대와는 달리 2.9%의 낮은 인상률을 기록하며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번 결정은 7월 10일 오후 11시 18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2차 전원회의에서 내려졌다. 2025년 1만30원에서 290원 인상된 1만320원이라는 수치는 수치상 노사 합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노동계는 합의 과정과 결과 모두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집단 퇴장하는 등 격렬하게 반발했다. 노동계, "기대에 못 미치는 인상률" 강력 규탄 민주노총은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1만210원~1만440원)**이 지나치게 사용자 측 입장을 대변하며 저임금 기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반면, 한국노총은 막판까지 협상 테이블에 남아 숙고 끝에 합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노동계 전체의 실망감은 감추지 못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사용자 측의 손을 들어준 기만적인 제안을 했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며, "이번 결정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외면한 처사"라고 규탄했다. 실제로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 2.9%는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역대 7번째로 낮은 수치로 기록되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의 첫해 인상률(2.7%)을 제외하면, 역대 정부 임기 첫해 최저임금 인상률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기대했던 노동계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경영계 "민생경제 고려한 양보"…실질 인건비 부담 호소 반면, 경영계는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고려할 때, 사실상 최저임금 동결까지도 검토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양보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에 주휴수당과 사회보험 부담까지 더하면 실질적인 인건비는 시간당 1만4,000원에 달한다며,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소상공인들의 경영난을 꾸준히 호소해 왔다. 이들은 이번 인상 역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월 환산 최저임금 215만 원…향후 고용노동부 고시 예정 이번 결정에 따라 2026년도 월 환산 최저임금은 주 40시간, 월 209시간 기준으로 215만6,880원이 된다. 이는 야간·연장근로 수당 및 사회보험료 등 각종 수당 및 보험료 인상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최종안은 고용노동부가 8월 5일까지 고시해야 하며, 2026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노동계는 이번 결정에 대해 이의 제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과거 사례를 비추어 볼 때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급변하는 경제 현실 속에서 노동 존중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회적 고민을 반영하는 핵심 이슈로 계속해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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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2.9% 인상…17년 만의 노사 합의, 노동계는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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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상가 옥상 추락 사고…11세 테니스 유망주 모녀 참변
- 경기 광주 상가 건물 추락사고로 3명 사망... "옥상 출입문 관리 제도 개선 필요" [경기 광주=2025.07.07] 지난 7일 오후 2시 36분,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13층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 경위 18세 여성 A양이 해당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A양은 1층 거리를 지나던 모녀와 20대 남성 위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A양과 11세 소녀가 현장에서 사망했고, 소녀의 모친(45세)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다음 날 숨졌다. 20대 남성은 어깨 등을 다쳐 치료 중이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니스 유망주의 안타까운 죽음 사고로 숨진 11세 소녀는 테니스 유망주 피루희 양으로 확인됐다. 대한테니스협회는 "피루희 선수는 씩씩하고 당찬 선수였으며, 지난 소년체전 선발전 탈락 후에도 '내년엔 꼭 갈 거예요'라며 꿈을 향한 열정을 보였다"고 애도했다. 피루희 양은 오는 11일 전북 순창 주니어 테니스 대회 출전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준비 중이었다. 협회는 해당 대회 경기장에 애도 공간을 마련하고, 참가 선수들이 검은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옥상 출입문 개방' 제도의 딜레마 이번 사고는 현행 건축법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건축법 시행령과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상가건물은 재난 발생 시 대피를 위해 옥상문을 닫은 상태로 유지하되 잠그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기도 한 건축직 공무원은 "옥상문을 물리적으로 잠그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화재나 지진 등 긴급상황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장치지만, 자살 시도나 사고로 인한 2차 피해가 빈발하면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반복되는 유사 사고들 옥상을 통한 투신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5월 대구 남구 상가 건물 옥상에서 20대 여성이 투신해 지나가던 80대 여성을 덮쳐 양측 모두 중상을 입었고, 2017년 경기 용인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상가건물의 옥상은 외부인 출입이 자유롭고 관리 인력이 부족해 안전사각지대가 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의 기술적 해법 제안 전문가들은 옥상 출입을 차단하는 대신 기술적 제어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다수가 이용하는 상가는 사고 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센서와 경고음, 출입 기록 시스템 등을 탑재한 출입문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와 맞물려 사회적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대응 체계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 수사 현황 경찰은 현재 A양의 투신 경위를 조사 중이며, 유서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A양은 사고 당일 해당 상가 건물에 입주한 정신과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옥상으로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의료기록과 병원 관계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고 배경을 조사하고 있다. 사회적 과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도시 설계와 법 제도의 공백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재난 대응과 자살 예방, 사전 안전망 구축이라는 다층적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고위험군 청소년과 그 가족에게 보다 촘촘한 돌봄과 심리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24시간 운영)청소년 전화: ☎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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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상가 옥상 추락 사고…11세 테니스 유망주 모녀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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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라이프 7월호 표지 촬영
- <2025년 7월호 표지 촬영> 모델:한수영(가수 겸 작곡가), 최홍림(코미디언 겸 가수) 총연출:그레이스(박준뷰티랩 명동점 대표원장) 헤어:연서(박준뷰티랩 명동1호점 원장) 메이크업:이수빈(에코쟈뎅 경복궁점 실장) 사진:박제승(오리지날스튜디오 대표) 7월호(창간 26주년 기념호) 표지 모델은 가수 겸 작곡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수영 양과 유명 코미디언 겸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최홍림 씨다. 두 분은 듀엣으로 ‘핸드폰이 어딨나’를 히트시키며 인기몰이 중. 진한 우정 관계로 맺어진 두 사람은 찰떡호흡을 자랑한다. 스튜디오 분위기도 유쾌 상쾌 발랄함은 물론이다. 두 분의 멋진 하모니 기대하시라. 총연출은 ‘박준뷰티 명동점’ 그레이스 대표원장이 맡아 의미를 더했다. 그레이스 원장은 성공적인 미용실 운영으로 우리 미용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녀만의 노하우를 표지 연출 인터뷰에서 탐하시라. 헤어는 연서(박준뷰티랩 명동1호점 원장), 메이크업은 이수빈(에코쟈뎅 경복궁점 실장)이 맡아 7월호를 멋지게 장식했다. 옆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박준 회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표지 촬영 후의 뒤풀이에서는 소맥 파티. 최홍림 씨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르고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다.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다. 신난 우리 곁을 음료수를 마시며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 한수영 가수는 기자와 오랜 친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볼수록 사랑스러운 그녀! 박준 회장님의 유머는 항상 즐겁다. 우리 모두 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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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3 피날레 퍼레이드, 서울 도심 마비…환호와 불만 교차
- [서울=2025.06.28.] 서울 광화문 일대가 28일 저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의 피날레 퍼레이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2025 K-콘텐츠 서울여행주간’의 일환으로 서울시와 넷플릭스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오후 7시 30분부터 세종대로 광화문 교차로에서 출발해 서울광장까지 약 1시간 동안 펼쳐졌다. 퍼레이드에는 경찰 추산 약 5,000명이 참여하며 서울 도심이 붉은 ‘핑크가드’ 물결로 가득 찼다. 퍼레이드는 드라마 속 상징 캐릭터인 거대 ‘영희’ 구조물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드라마 의상을 갖춰 입고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장면을 촬영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을 알리는 동시에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축제로 기획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도심 교통 혼잡이라는 그림자도 남겼다. 오후 7시부터 광화문 삼거리에서 서울광장까지 이어지는 세종대로 일부 구간의 차로 8개 중 중앙 4개가 통제되었고, 서울정부청사 앞 방향 2개 차선도 추가 통제됐다. 버스는 세종문화회관 정류장을 무정차로 통과했고, 서울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오후 8시 30분 기준 해당 구간 차량 속도는 시속 15.4km에 불과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왜 드라마 행사 때문에 버스를 못 타게 하나”, “청소년 관람불가 콘텐츠가 도심 교통을 마비시키는 게 타당한가” 등의 불만이 SNS를 통해 이어졌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 서울광장에서는 오후 8시 30분부터 ‘오징어 게임’ 시즌3 팬 이벤트가 개최됐다.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 이병헌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팬들과의 소통이 이어졌다. 황 감독은 “이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끝이 난다는 사실이 섭섭하다”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땅따먹기’, ‘동대문을 열어라’, ‘우리 집에 왜 왔니’ 등의 게임을 넣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한편, 전날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3’는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시즌으로 공개 직후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평가의 온도차는 뚜렷했다. 뉴욕타임스는 “반복되는 공식과 상상력의 부족”을 지적하며 황 감독의 연출을 비판했고, 할리우드리포터는 “빈약한 캐릭터 구성과 실망스러운 결말”이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버라이어티는 “이전 시즌만큼의 강한 인상은 없지만, 마지막 몇 화에 몇 가지 설득력 있는 반전이 있다”고 평했다. 반면 타임지는 “시즌2의 혼란을 뒤로하고 시즌3에서 감독이 다시 본연의 매력을 되살렸다”고 호평했고, 콜라이더는 “모든 강점을 극대화한 압도적 피날레”라고 극찬했다. 블룸버그는 “우리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논평했다. 한편, 미국의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일반 시청자 500명 이상이 참여한 평가에서 100점 만점 중 50점을 기록해 대중 반응은 중간 수준에 그쳤다. 이번 피날레 퍼레이드는 K-콘텐츠의 문화적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대중적 이벤트였으나, 시민 불편과 콘텐츠 적절성에 대한 논란 역시 제기되며 복합적인 평가를 남겼다. 오징어 게임이 남긴 사회적 영향력과 문화적 파급력을 되짚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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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3 피날레 퍼레이드, 서울 도심 마비…환호와 불만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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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밥이 되다-이태연 시인
-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44) 죽어서 밥이 되다 이태연(1964~ ) 비 갠 뒤 더 뜨거운 햇볕 상가 옆 한적한 인도 가장자리 한 뼘도 넘을 것 같은 지렁이 한 마리 죽어 있다 익사하지 않으려는 시도 혹은, 붉은 맨몸의 오체투지였나 동네 개미란 개미, 하루살이, 똥파리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기 제 밥벌이의 환락 중이다 아직 꿈틀대는 듯 보여 목숨아, 누가 그 몸의 문자를 읽어줄까 이태연 시인 경남 진주 남강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삼천포항 바닷가에서 보냈다. 2004년 시집 <아름다운 여행>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메마른 꿈에 더 뜨지 않는 별> <그래, 사람이다> 등이 있다. 물과 인연이 많아서 지금은 해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이태연 시인의 “죽어서 밥이 되다”입니다. “죽어서 밥이 되”는 것은 많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나뭇입니다. 대부분의 나무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새싹을 틔우며 성하(盛夏)를 거쳐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성하의 계절에는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서 무성한 잎을 만듭니다. 가을, 결실의 계절이 지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년을 기약합니다. 무성한 잎은 내년을 위한 밥에 다름 아닙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식들의 밥이 되는 경우가 또 있으니 부모님일 것입니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자식들은 험한 세상을 이겨내고 또 다른 존재로서의 자아를 완성해나갑니다. 여기 또 하나 죽어서 밥이 되는 존재가 있었군요. “상가 옆 한적한 인도 가장자리/ 한 뼘도 넘을 것 같은 지렁이”가 그것입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죽어 있”는 “지렁이”는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살 찌푸리고 지나가기에 충분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범상하지 않게 보입니다. 지렁이의 모습에서 “익사하지 않으려는 시도”와 “오체투지”를 읽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개미, 하루살이, 똥파리”의 “밥벌이의 환락”까지를 지켜봅니다. 그러면서 지렁이 “그 몸의 문자를 읽”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순간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쌓여진 찰나는 인생을 이루고 맙니다. 순간순간이 의미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존재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겠지요. “죽어서도 밥이 되”는 존재, 그 존재의 존재를 읽어가면서 사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삶은 더 풍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해봅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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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밥이 되다-이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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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훈 박사
-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실질적 도움을 드리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맞춤형화장품상담전문가’ 출간한양일훈 박사 -미용계에서 오래 활동하셨는데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40년간 화장품 산업과 교육 현장에서 피부 메커니즘과 맞춤형 화장품 상담 분야를 연구하고 실천해 온 양일훈 박사입니다. 오랜 시간 피부 생리학, 임상 미용학, 기능성 화장품 성분의 효능 및 전달 메커니즘에 주목하며, 현장과 학문을 잇는 융합형 리더로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화장품과 피부에 대한 지식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전문가들이 실전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화장품상담전문가’ 과정을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며,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전 적용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왔습니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현재 저는 양스코스메틱 대표이사, 양일훈코스메틱아카데미 대표, 한국화장품전문가협회 협회장으로 활동하며, 업계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차의과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의 강의뿐만 아니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서울사이버대학교, 원광디지털대학교 등에서의 온라인 강의 촬영으로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의 기업체와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한 초청 강연도 지속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최근에는 『맞춤형화장품상담전문가』 도서 출간을 기념하여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였으며, 전국 각 지회의 협력을 통해 출판기념회 전국 순회 행사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양스코스메틱의 전문 브랜드 ‘더말란스(Dermalance)’를 사용하는 맞춤형화장품처방전문점 원장님들을 위한 심화 교육 과정과 한국화장품전문가협회 마스터 교육 과정 개강도 앞두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마스터 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자, 지속적인 소통과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실질적 도움을 드리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책은 어떤 내용인지요? 이번에 출간한 책은 ‘맞춤형화장품상담전문가’를 위한 전문 교재로, 화장품과 피부에 대한 이론부터 현장 실무 상담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입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PART I 화장품 처방학에서는 맞춤형화장품상담전문가의 역할과 필요성을 시작으로, 피부 분류, 화장품 기능의 판단 기준 등 상담의 기초가 되는 이론을 다뤘습니다. 상담 전문가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초 체계를 확립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PART II는 화장품 성분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요, 화장품 원료를 구성하는 물질의 성질과 구조부터 시작해서 실제 화장품에 사용되는 주성분, 첨가제, 그리고 다양한 기능성 성분들의 작용 원리까지 폭넓게 담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품을 처방하거나 상담할 때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PART III는 문제성 피부 관리 파트로, 여드름, 예민 피부, 기미, 노화 피부 등 실제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피부 문제들에 대해 그 발생 원인부터 관리 방법, 진정 성분 처방까지 구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론 교육만 받더라도, 실무 현장에서 상담과 처방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관점으로 구성했습니다. 자격 취득을 위한 공부는 물론,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며 겪는 고민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설계한 책입니다. -미용계에서 계시면서 즐거웠거나 흐뭇했던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40년간 강의를 해오며 수많은 에스테틱 및 화장품업 종사자들을 만나, 제가 가진 지식을 진심을 다해 나누었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익숙지 않은 출발선에서 여러 어려움을 마주했지만, 그럴 때마다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찾으며 곁에서 손을 잡아드릴 수 있었던 시간들은 제게도 깊은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며 성장하고, 사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함께했고, 그 여정을 함께 축하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흐뭇하고 감사한 기억입니다. -전국의 미용인들께 한 말씀 미용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단순히 육체노동을 하거나 제품을 판매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각 미용 소비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을 실현해주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며,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본인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미용이라는 직업의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며 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기술과 마음이 누군가의 일상에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는 에스테틱과 화장품에 대한 고객 상담 노하우를 정리한 실전 상담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상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큰 목표는,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미용 교육과 현장 경험을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미용과 화장품 산업은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가치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국내외에서 활동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후배 양성과 교육 활동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다음 세대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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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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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투라협동조합
- “을 "기술은 나누고, 성장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아벤투라협동조합’ 김용빈 이사장 -본인 소개 및 아벤투라협동조합 소개 아벤투라협동조합 이사장 김용빈입니다. 저는 미용 경력 30년, 창원에서 헤어필’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벤투라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서 실력 있는 미용인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경남신용보증재단 등의 기관에서 60여 회 이상 컨설팅 활동을 수행했고, 100회 이상의 기술 전수, 미용 관련 기술 특허 4건 보유 및 1건의 발명 등록, 화학 시술에 필요한 친환경 서포트 제품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저희 조합은 단순한 협업 조직을 넘어, 경력 20년 이상의 실전 경험과 전문 기술력을 갖춘 미용 전문가들이 모인 전문 공동체로써 현재 강민재 감사님을 비롯하여 조현숙, 노경민, 배현선 이사님으로 구성된 이사진이 조합을 이끌고 있으며, 조합원 10명, 준조합원 16명, 일반 회원 170여 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현숙 이, 미용기능장님은 창원 봉곡동에서 조아라헤어테크를 20년 이상 운영하며, 풍부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용 산업 발전에 기여해오고 있습니다. 창신대 평생교육원 강의, 미용사 및 미용장, 이용장 국가자격 실기 감독, 각종 미용대회 심사위원, 대한미용사회 기술강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컨설턴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미용인의 품격을 높이고, 후배 양성과 업계 발전에 헌신하고 계십니다. 배현선 미용기능장님은 창원 도계동에서 헤어필을 20년 이상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펌·염색 분야의 전문 강사 및 미용사 실기시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각종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은 물론, 국회의원 표창과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 등 공적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탁월한 기술력과 리더십으로 고객 만족은 물론 지역 미용 산업의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밀양의 박정희 미용기능장님은 중앙회 고전머리 강사로 활동하면서 만학도로 자기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구의 박성숙 미용기능장님과 고광훈 이. 미용기능장님은 대학에서 후배양성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며 전문성 향상에 힘쓰는 훌룡하신 조합원들이 다수 계십니다. -협 -노-아벤투라협동조합의 히스토리 아벤투라협동조합은 2010년 미용 기술 스터디 모임에서 출발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 노력 끝에 현장 실무에 바로 적용해 고객 만족도와 매출 증대에 직접 연결되는 획기적인 기술을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미용인의 가장 중요한 수익의 원천은 기술이다.’라는 명제 아래, 기술 상용화와 최적화에 집중해 왔습니다.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원료를 사용해 브랜딩하여 2018년 협동조합 설립과 함께 본격적 저희 특허 기술에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하여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주요 연혁 및 성과를 살펴보면, 2018: 시술 서포트 제품 3종 개발및 생산, 아벤투라 상표 등록 2019: 기술특허(염색) 3건 등록, 천연유래 샴푸 출시 2020: 헤어 트리트먼트 신상품 출시 2021: 펌, 탈색 관련 특허 2건 등록, 두피토닉 출시, 소비자 선호 브랜드 대상 수상 2022: 헤어프리미엄컬러리스트지도사, 두피관리지도사, 헤어익스텐션지도사 등록, 프리미엄 브랜드 1Tier, 이리로 상표 등록 2023: 공식 홈페이지, 쇼핑몰, 블로그 운영 개시 2024: 아벤투라 실전 컬러앤펌 교재 출간, 트리트먼트 및 펌제 신제품 출시, 올해의 베스트 브랜드(미용 산업 부문) 대상 수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제-제품 유통 방식은=기술 기반 유통? 아벤투라협동조합은 제품을 단순히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전문적인 미용 기술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특히, 모이스쳐 콜라겐, 모이스쳐 케라틴, 천연보습인자, 연화 펌제는 특허 기술인 손상을 최소화하는 염색 및 탈색, 펌제 하나로 건강모발부터 극 손상모발 퍼머넌트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시술의 효과와 안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문 교육, 특허 기술 교육 이수 후 기술 숙련도를 갖춘 샵에 공급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천연샴푸, 두피 토닉, 고농축 트리트먼트인 어드롭의 홈케어 제품은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으나, 미용실 판매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설정하여, 오히려 매장에서의 리테일 판매가 활성화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재방문 및 제품 신뢰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펌-전-전국의 미용인들께 한 말씀 지금도 현장에서 고객과 마주하며 뜨거운 열정을 이어가고 계신 전국의 미용인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기술은 정직한 힘이며, 기술은 곧 나의 경쟁력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길, 아벤투라협동조합이 그 길에 함께하겠습니다. 고민이 있다면 나누고, 기술이 필요하다면 공유하며, 변화에 맞서 함께 혁신합시다. -앞으로의 계획 기술교육 커리큘럼 체계화 및 확대, 협동조합 전용 교육센터 설립 추진, 전국 단위 협업망 구성 및 미용인 권익 보호 활동 강화, 실전 컬러·펌 교재 기반한 교육 브랜드 론칭을 계속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아벤아벤투라협동조합은 기술을 나누고, 성장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미용산업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모든분들과의 협력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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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벤투라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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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심리 사전' 펴낸 이림영옥 별자리 커뮤니케이터
- ‘별 볼 일 있는 당신, 별나게 사는 법’ <별자리 심리 사전 > 펴낸 이림영옥 별자리 커뮤니케이터 이림영옥 별자리 커뮤티케이터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나마스떼! 별자리로 운명을 해석하는 천문해석학자(aka점성술사)이자 별자리 커뮤니케이터 이림영옥입니다. 우리 모두는 온전한 우주라는 별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빛과 힘을 전파하려는 의지로 세상 곳곳에 별빛을 뿌리는 별빛 배달부입니다. 키키라는 이름으로 상담 및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네,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마녀배달부 키키입니다. 키키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마녀 배달부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듯 별빛 배달부가 된 기분이 들어 마음이 하늘 높이 고양됩니다. 슬핏 들으면 키키킥 웃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서 유쾌해지기도 하고요. 기업 매거진 에디터로 오래 밥벌이를 하며 언어를 세공하던 훈련도 이 길을 돕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진심을 다해 온전히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보답인 거 같다는 생각으로 순간을 온생으로 살아가려합니다. -저서 <별자리 심리 사전>를 소개하면? 별자리와 심리를 접목한 독창적인 자기 탐구서로 모든 존재가 자기답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름다운 개인주의자를 위한 별자리 심리 사전》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 mz들의 핫트렌드인 MBTI의 심층버전이에요. 사실 MBTI와 별자리는 뿌리가 같고 12별자리는 3700년 된 MBTI인 거죠. 인문학으로 천문해석학을 공부하며 길흉화복을 맞추기보다는 자기만의 고유한 빛깔을 찾아주는 유닛 그룹인 우주살롱 친구 2명과 함께 호흡을 맞춰 썼습니다. 저희끼리는 아개별사라고 줄여 별칭으로 불러요. 아개별사는 12별자리별 시크릿 코드, 우정과 사랑의 관계 밸런스, 건강과 재테크 등을 담은 일상 밸런스 가이드 뿐아니라 익숙한 자신을 넘어 더욱 성숙해지는 해방가이드도 담았습니다.단순한 운세나 성격 분류를 넘어, 각 별자리가 담고 있는 우주적 상징과 심리적 흐름을 깊이 있게 해석합니다. 3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빅데이터인 12별자리의 상징과 개념을 바탕으로 원형적 심리 구조를 탐구하며, 타고난 자기 예너지를 이해하고 인간관계에 도움을 주는 조언들이 가득합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조언들도 그간의 공부를 통해 정제했습니다. 각 별자리별로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시크릿 코드를 이해하면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빛나며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 책이죠.(포부가 좀 우주적입니다. 하하) 자신의 가장 최고 버전을 경험할 수 있는 의식의 확장을 위한 미션과 실천 가이드도 사려 깊게 선정했습니다. 특히 서로의 우주에 불시착하지 않도록 관계 맺는 깨알 꿀팁과 궁합도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재밌고 유익하게 볼만한 책입니다. 평생 나로 살아왔지만 나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필독서죠.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가족과 친구도 궁금해 다른 별자리도 다 읽게 되는 술술 넘어가는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별자리 심리 사전>을 어떻게 집필하게 됐는지? 올해로 별자리를 공부한 지 10년, 강의를 연 지 7년에 접어들었어요. 10여 년 동안 별자리라는 렌즈로 사람과 세계를 탐구하며 쌓인 사례와 경험을 제 삶을 통과해 길어내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씨앗이 가만가만 싹트던 차에 우주살롱 친구들과 <별자리 일력>을 출간했던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아 첫 문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적 시선을 담되 조금 더 쉽고 재밌게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첫 책인 <별자리 오디세이>는 주먹불끈 쥐고 각 잡고 천문해석학을 공부하는 책이라 어렵다는 이야기를 제법 들었거든요.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대중적이고 보편적이며 생활 가까이서 별자리가 친구처럼 느껴지도록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즐겁게 썼습니다. 3명의 작가가 초고를 쓰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풍성한 사례들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연구하면서 6개월가량 호흡을 맞춰가며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별자리가 삶에 끼치는 영향은? 들숨에 별 날숨에 빛인 하루하루를 살아갈 만큼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있죠. 일상에서 별빛을 작동하고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저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줍니다. 천문해석학의 유니버스는 도덕적 순수성과 진실함을 닦아 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모든 것은 에너지이며 반드시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는 것, 나 또한 끝없이 변한다는 것을 매순간 알아차리게 해주거든요. 매 순간 변화하는 나를 인식하며 순환의 흐름 속에 소울 서핑을 하는 기분입니다. 더 잘 살게 하고 더 집중하고 몰입해서 사랑을 길어내도록 해주는 북극성입니다. 공부할수록 삶이 가벼워지고 기쁨이 많아집니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자면 기쁨의 역량이 나날이 증가하는 것이죠. ‘영원의 지혜’라는 경전을 통해 대우주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경이도 남다릅니다. 별자리를 해석하고 리딩하는 것을 명상처럼 느낍니다. 이젠 큰 파도가 밀려와도 두렵지 않아요. 어떤 조건에서든 제가 선택하고 자유의지로 항해하면 파도를 리드미컬하고 경쾌하게 파도를 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내 가능성을 잘 알고 나의 취약점을 알아차리며 다듬어가는 과정 속에 제가 더 커집니다. 비대해지는 자기가 아니라 매번 다른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겠다는 의지가 샘솟습니다. 나를 넘어 너라는 별과 나라는 별이 연결되어 별자리를 만들어가는 것도 참 좋습니다. -책을 내면서 겪은 에피소드 소개 마지막 교정을 보는 날, 3명의 작가가 창덕궁 가문비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합숙을 했어요. 그 밤의 치열과 신뢰의 과정이 책에 오롯이 담겨진 거 같아 제멋대로 애틋해졌습니다. 책 표지에 금색 오각별이 빛나고 있어요. 오각별은 익숙한 자기를 벗어나 다른 자기를 끝없이 실험하며 변형하는 우주적 인간을 상징합니다. 처음 표지에는 반짝이는 별빛만 있었는데 오각별로 바꿔 금박을 넣어주십사 출판사에 고집을 부렸죠. 고집을 잘 부리는 편은 아닌데 고집이 좋은 방향으로 모아지는 과정을 경험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천문해석학을 일상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싶어요. 일상에서 신성을 더 자주 발견하고 싶습니다. 별자리 탐사대 및 별자리 해방클럽 등 재미난 별 볼 일을 계속 꾸준히 해나가려 합니다.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요. 우주와 별이라는 진리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 쉽고 재밌게 별자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별자리 탐사대 시즌2는 각 별자리의 에너지가 쏟아지는 절기별 시즌마다 제철 별자리 에너지를 감각할 수 있는 책을 읽으며 문장을 수집하고 서사와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별자리를 알아가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해당 절기의 태양 에너지를 받아 내 안에 잠재된 별자리 에너지를 플레이하는 챌린지를 실천하며 ‘별생’을 사는거죠.망망대해의 무경계의 세계로 저를 안내하는 시를 좋아해서 언젠간 시집만으로 큐레이션 해 별자리 탐사대를 꾸리고 싶은 로망도 있습니다. 또한 내 안의 별을 깨우기 위해 드넓은 하늘의 별을 직접 보고 자신의 영혼의 지도를 읽는 별자리 여행 등 다양한 마주침으로 구석구석 별빛을 밝히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듣기를 좋아합니다. 또 누군가를 우주적 존재로 밝혀주고 환대할 때 가장 기쁩니다. 그 기쁨으로 균형을 잡으면 생명력을 힘차게 전개해 가고 싶습니다. 자기가 빛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마구마구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우주적 잠재력과 가능성의 날개를 달아주면서요. -독자들께 한 마디 누군가를 아름답게 돋우어주시는 당신들의 손길을 응원합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의 쓸모있죠. 아름답다는 말의 ‘아름’은 ‘나’라는 뜻이기도 해요. 나답게 빛나는 순간 가장 아름답다는 것 잊지 말고 당신도 당신답게 빛나시길, 우주는 늘 당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늘 아름다우시길 바랍니다. 별 볼 일 있는 당신, 별나게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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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심리 사전' 펴낸 이림영옥 별자리 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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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 출간한 연명지 시인
- 우리의 발걸음을 이끄는 이야기, 에세이집 『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 출간한 연명지 시인 연명지 시인 -본인 소개 저는 시의 정전기가 많은 괴산에서 태어나 책만 보면 두 눈을 번쩍이며 자랐습니다. 자연과 큐비츠하며 걷기를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제 시에는 비애의 정서가 많아, 한때 ‘하나님이 슬픔을 재능으로 주셨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두 번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타인을 향해 귀를 낮추는 방법과 마음의 속도를 줄이는 사랑법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끝 모를 깊이를 가진, 다정한 위로와 명랑함을 잃지 않는 시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2013년 미네르바 시선으로 『가시비』를 출간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사과처럼 앉아있어』 전자 시집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이 있습니다. 호미문학상과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2025년에는 시 작품이 코소보 오르페우스 신문, 파키스탄, 인도 등에 현지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이탈리아 토리노 시에서 주최하는 “딜런 토마스데이” 국제시 축제에 시 ‘로뎀나무 등불’로 참가했습니다. -에세이집 『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를 소개해주세요. 2019년 봄 프랑스 길, 2021년 산티아고 은의 길을 걷고 나서 Camino Blue에 빠졌습니다. 2022년 산티아고 여정을 생각하며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저와 남편이 찍은 사진들을 성심껏 골라 본문에 실었습니다. 한 편의 산문이 끝날 때마다 길이 나를 지나가며 슬픔에서 건져주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나간다는 것은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비워보니 나를 넘어 우리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비우고 싶어서 떠난 사람이었고, 순례길은 하나님이 나의, 나는 순례객들의 슬픔을 미행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는 그런 우리의 발걸음을 이끄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에세이집을 내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두 번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사람들과 만나고 치유 받은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하고 어떤 상황에 응답하면서 저는 전보다 성숙해졌다고 느낍니다. 산티아고 길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상처 속에 웅크린 누군가를 향한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통해 저희가 잠시나마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 중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네이버 카페 중에 <까미노 친구 연합>이라는 카페에 가입하면 산티아고 관련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위기에 처할 때면 단톡방에 도움을 구해도 됩니다. 준비물로 자기 발보다 큰 사이즈의 운동화, 바세린, 발가락 양말은 필수입니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가장 마음이 가는 에세이 한 편 소개해주세요. 엄마의 보따리(카세레스) 성벽으로 둘러싸인 카세레스 구도심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로마, 이슬람, 북부 고딕 및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남아서 중세 시대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다.이곳에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기도 했다. 카세레스에 도착한 날, 일찍 짐을 풀고 시간이 남길래 근처 현대미술관에 방문했다. 내부를 둘러보던 중 그곳에서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를 만났다. 처음 보는 작품인데도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가 만들어준 혼수 이불이 문득 떠올랐다. 부잣집 막내딸이자 막내 며느리였던 엄마. 나이 마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맏이인 내게 전적으로 의지했지만, 우리는 서로 다정하지 못하고 오래 불화했다. 내가 결혼할 때 엄마는 목화솜으로 혼수 이불을 만들어주셨다. 붉고 푸른 홑청은 아름다웠지만 이불을 무겁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결국 몇 년 쓰다가 목화솜만 새로 틀고 홑청은 버렸는데, 내가 버린 홑청과 같은 색의 홑청이<보따리>라는 작품이 되어 시선을 끈 것이다. <보따리> 앞에 멈춰 서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엄마를 생각한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딸임에도 마지막 힘을 끌어내어 내 손을 꼭 쥐던 엄마. 그때 엄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엄마와 나는 아직도 비스듬히 기대어 보이지 않은 곳에 창을 내고 있다. 미안함도 그리움도 모두 사랑이라는 걸까. (…) -앞으로의 계획 여전히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 걷고 자연의 언어를 가져와 시를 쓸 것입니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팔이 긴 시를 쓰기 위해 고요하게 세상을 바라볼 것이고, 12월쯤에 3번째 시집을 출간하려 합니다. -독자들께 한 말씀 누군가에게 “네 뒤에 내가 있어”라는 말을 듣는 날은 참 행복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적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명랑하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는 독자들과 함께 사랑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길 소망합니다.독자님들의 삶이 유쾌한 소란으로 가득하기를 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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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 출간한 연명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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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미용예술학 박사 홍도화
- 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 길을 내다 대한민국 최초의 미용예술학 박사 홍도화 홍도화 박사 환하게 빛나는 미용의 선구자 -홍도화 박사 불모지의 땅에서 길을 내는 사람은 개척자이며 선구자에 다름 아니지 척박한 미용의 땅에 퇴비를 뿌리며 물을 주듯 미용시장을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것 진정으로 미용을 사랑하는 사람만 가능하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삶 학교를 세우고 최초의 미용학 박사가 되고 미용장협회 회장을 하고 후배들을 가르쳤지 명화 꽃 야생화 고전머리 재현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지 더불어 삶을 풍성하게 할 언어도 가다듬어 마음까지 살찌우고 있지 다시 태어나도 미용,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다 바쳐 미용의 길을 활짝 열어젖히리 우리의 미용 환하게 빛나리 하리 단아한 모습과 애정이 담긴 연설에 매료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기자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 맺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쉽게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친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선뜩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성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홍도화 박사를 미용계 행사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홍도화 박사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주위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모습을 뵐 때마다 단아한 모습과 지적인 자태를 지녔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미용장협회 행사가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어수연 회장이 재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기자는 내빈석에 앉아 행사의 진행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빈석에 앉아 있던 홍도화 박사께서 축사를 하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전 회장으로서의 축사였습니다. 축사를 듣던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목요연한 연설내용뿐만 아니라 후배 미용장들에게 전하는 연설에서 미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연설이 고결한 모습과 더불어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감탄하며 축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설이 끝났을 때 기자도 모르게 힘찬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기자였지만 축사를 마치고 기자 옆자리에 앉은 홍도화 박사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홍도화 박사도 무척 반기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용에 대한 몇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자는 홍도화 박사와 정식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미용장협회는 대전에서 연례행사처럼 송년회, 체육대회 등을 열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시집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친필 사인 시집을 직접 받으니 기쁨이 더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료의식을 느끼는 법입니다. 같은 시인이니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요. 홍도화 박사는 정이 무척 많고 후배 사랑도 남달랐습니다. 기자에게 괜찮은 미용인이 있으면 소개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후배는 작품을 잘하니 잡지에 작품을 실으면 좋겠다고 소개했고, 어떤 후배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인터뷰를 해달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후배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홍도화 박사는 어려서부터 멋내는 일을 좋아했고, 그 일들이 좋아서 미용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열 살 때부터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오고 가는 등, 하교 길에서 아카시아 상순을 꺾어 거기서 나오는 진액을 친구들에게 발라주기도 하고 아카시아 줄기를 따서 그 잎을 다 따내고 머리카락에 물을 발라서 가는 줄기에 감아두었다가 풀면 꼬불꼬불해지는 신기한 웨이브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교복 입고 머리를 땋아 양쪽으로 내리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며 몰래 숨어서 울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니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니까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어야 했기에 이모가 운영하시는 미용실에 취업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미용실 환경은 아주 열악하였고 기술을 배우는 일은 어깨너머로 더듬더듬 배웠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울어야 했고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저녁 한 끼로 식사를 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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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미용예술학 박사 홍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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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은하에서 TWA 7b까지, 망원경이 바꾼 우주의 지도
- [서울=2025.06.27.] 인류의 눈, 132억 광년 너머로…제임스웹과 루빈천문대가 연 우주의 비밀 ― 제임스웹과 베라루빈, ‘우주 타임머신’이 된 과학의 눈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며 질문해왔다. 별은 왜 저기 있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은 ‘망원경’이라는 도구로 탐색해왔다. 그리고 2025년 6월, 인류는 두 개의 ‘눈’을 통해 우주의 기원을 엿보게 된다. 하나는 132억 광년 너머의 과거를 보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다른 하나는 광활한 하늘의 변화를 시간의 축 위에 담아내는 베라루빈 천문대다. 132억 광년의 기록, 반딧불 은하에서 들려온 이야기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웹 망원경은 빅뱅 이후 불과 6억 년이 지난 시점에 형성된 ‘반딧불 은하’를 포착했다. 이 은하는 마치 고대 유물처럼 우주의 유년기를 품고 있었다. 중력 렌즈 현상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복원해 얻은 결과 속엔,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아기 성단 10개가 존재했다. 이 성단들은 나중에 ‘축구공처럼 둥근 구상 성단’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성단이란 수많은 별이 중력으로 뭉친 집단이다. 우리가 현재 은하계에서 볼 수 있는 구상 성단은 대부분 수십억 년의 나이를 가진 고대 구조물이다. 반딧불 은하에서 본 성단은 이들 성단의 ‘유년기 사진’인 셈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과거다. 정확히 말하면 132억 년 전의 빛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은하와 성단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오래된 빛은 오늘의 우리에게 ‘우주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외계 생명체에 다가간 첫 걸음, TWA 7b의 의미 동아일보는 또 다른 흥미로운 관측 결과를 전했다. 프랑스 연구진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통해 외계 행성 ‘TWA 7b’를 직접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행성은 지구에서 111광년 떨어진 젊은 별 TWA 7 주변에서 공전하고 있으며, 토성과 비슷한 크기에 목성 질량의 약 30%에 불과하다. 기존 외계행성 탐사는 주로 별의 밝기나 중력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관측’이라는 혁신적 진보가 이뤄졌다. 중적외선 탐지 장비 ‘미리(MIRI)’와 별빛을 차단하는 ‘코로나그래프’를 이용한 이번 촬영은, 향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지구형 행성을 찾는 데 결정적인 기술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지구형 행성은 고체 표면이 존재하고 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어, 외계 생명 탐사의 핵심 대상이다. 천문학은 이제 ‘우주의 기원’을 넘어서 ‘우주의 생명’을 탐색하고 있다. 우주를 기록하는 거대한 눈, 베라루빈 천문대의 등장 이와 동시에 조선비즈와 한겨레는 칠레 안데스산맥 정상에 설치된 베라루빈 천문대의 첫 관측 성과를 보도했다. 이 천문대는 32억 화소를 자랑하는 LSST 카메라를 장착했으며, 한 번에 보름달 45배 크기의 하늘을 촬영할 수 있다. 단 7시간 만에 수천 개의 별과 은하, 2104개의 새로운 태양계 소행성을 포착했으며, 이 중 일부는 지구 근접 천체로 확인됐다. 베라루빈 천문대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이다. 앞으로 10년간 매 3~4일마다 하늘을 스캔해 우주의 변화를 기록한다. 이는 일종의 ‘우주 타임랩스’다. 초신성 폭발, 감마선 폭발, 미세한 천체의 움직임까지 모두 영상으로 남긴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데이터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하늘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되살리는 일이다. 우주를 해석하는 존재, 인간의 시선 경향신문은 제임스웹이 기존 허블망원경보다 10배 이상 향상된 성능으로, 우주의 가장 어두운 영역까지 관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직경 6.5m의 거대한 반사경은 18개의 조각 거울이 우주에서 펼쳐져 작동하며, 정밀한 연마 기술은 오차 범위 20나노미터 이내라는 놀라운 정밀도를 요구한다. 이 모든 기술과 과학은 결국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이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묻기 위함이다. 우주를 본다는 것, 존재를 되묻는 일 우주를 응시하는 일은 곧 인간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수십억 년이 걸린다는 사실은, 인간의 생이 얼마나 찰나인지, 그러나 그 찰나 속에서도 얼마나 먼 곳을 볼 수 있는지를 동시에 말해준다. 제임스웹과 베라루빈은 인간 지성의 거울이다. 과학은 이제 ‘도구’를 넘어 ‘철학’이 되었고, 우주는 그 철학의 캔버스다. 그 별빛을 따라 우리는 계속 질문할 것이다. 거기, 누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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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은하에서 TWA 7b까지, 망원경이 바꾼 우주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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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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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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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 2020년 신천지 때문에 코로나로 우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베트남은 가장 먼저 한국에 대해 문을 닫았고 이후로 쏟아져 나오는 각종 기사들은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적개감을 갖는데 충족시켜 주었다. 특히 그로 인해 혐베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시에 댓글로 확인했다. 이는 혐베와 혐한을 부추기는 기레기들의 글도 한 몫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베트남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본다. 베트남 현지에서 현지인 여성들에게 몹쓸 짓하며 각종 물의를 일으키고 간접적인 인종차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는 베트남 사람들은 후진국인들이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인종차별하며 비하하고 있는데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고 그럴 낮이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건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종차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을 마치 자기 아래로 보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베트남의 후진국 이미지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부분이 바로 아래 링크와 같은 부분이다.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같은 인류이자 문화 교류자로, 진정한 친구로 대해본 적이 있었는가? 베트남인들을 애초부터 깔보고 들어가면서 후진국인으로 업신여기고 베트남에 들어와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아지면서 현지인들에게 갑질하는 것,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8년 전에는 하노이의 카페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추행했던 한국인들을 필자가 때려 눕힌 적 있다. 그렇게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정작 위기 때 우리가 저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베트남 내에서 혐한이 생기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을 깔보고 갑질하며 무조건 자신들은 대우 받아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생성되었다. 이것은 베트남 현지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람 대접들은 해줬는지도 궁금할 지경이다. 특히 외노자들 때문에 일자리 없어서 외노자들 추방하라 주장하는 사람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정상적인 비자받아 한국와서 돈 벌어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인권 예우를 해주었는지도 궁금하다.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차별대우들을 받고 언제까지 참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현지인을 후진국으로 업신여기고 갑질하며 온갖 하대와 몹쓸 짓을 다하는 그런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베트남 사람들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류로 인식했다면 큰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 또한 베트남에서 어려웠을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필자 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어려움을 겪었었던 교민 사업가들, 교민들도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런 순박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고 게다가 과거에 문화적 수준이 조선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던 사람들이다. 같은 사례로 러시아권 국가들 얘긴데 사업 때문에 왔던 관광으로 왔던 간에 러시아권 국가들에 와서 현지 여성과 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이 "러시아권 국가의 여인들은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라는 소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모델급 여인이나 몇몇 혼혈 인종 중 미모가 있는 여인들을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인식을 가지고 러시아권 국가들에 오니 현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현지 러시아권 사업가들과 친분을 쌓아 놓으며 사업 파트너가 되서 만나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겠는가? 가장 안 좋은 것은 후진국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권 국가들에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돌아 다니고 한국 기업들이 스폰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 거만하게 들어와 상전처럼 행동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한다. 지금이야 러시아권 국가들의 정부와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적이지만 이런식으로 행동들을 하면 그 호의감이 얼마나 갈까? 상대 문화를 존중하고 동등한 잣대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화다. 러시아권 사람들을 우습게 알고 쉽게 현지 여성과 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지와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지를 이번 하노이 무인 사진관에서 폭행 사건이 표본이 되어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떨어진다고 예의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다. 과거에 결혼정보회사 등이 베트남 뿐이 아니고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매매혼 비슷하게 했던 행위들을 했었고 이들 나라들이 경제력이 낮다고 한국 남자들이 결혼해주면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이 베트남이나 중앙아시아, 러시아의 여성 대학생들이 결혼만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의 각 커뮤니티들에서는 반한감정, 혐한감정이 들끓고 있다. 지금 모든 베트남 커뮤니티들 이 여성들을 규탄하고 어디 사는지 칮아내느라 여기저기 제보도 받고 난리 난 상태인 것이다. 요즘 베트남 커뮤니티 내 박제방이 유명한데 이미 혐한으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커뮤니티에 박제되는 순간, 한국에서 베트남인들에게 얼굴이 팔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신상정보가 나돌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진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 숫자가 30만이 넘어가는데 한국 내 베트남의 커뮤니티들에서도 비판이 매우 거센 상태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으면서 늘 느끼는건데 한국인들은 동남아시아인들을 거의 거지보듯이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남베트남보다도 못살았던 나라가 현지인을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며 마치 노예나 종놈보듯이 대하고 있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도 저런 갑질 및 폭력을 행사하는 하는것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해도 다 알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 기업들이 밀려나고 투자도 어렵게 받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갖은 추태와 현지인들에 대한 멸시 등등 한국인 자신들이 베트남 현지에서 한 행위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베트남에서 환영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예의가 바르고 공사 구분이 확실해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현지인들을 존중하지 않는 졸부 마인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졸부 마인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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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베트남 하노이 사진관에서 벌어진 한국인들의 폭력 사태 -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들의 갑질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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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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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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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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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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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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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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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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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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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러시아의 바흐무트 함락과 젤렌스키의 일본 방문
- 젤렌스키는 지난 21일 프랑스의 정부 전용기 편으로 일본에 가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해당 시기는 나도 일본 도쿄에 가족 여행 중이었기에 현지 NHK 방송을 보게 되는데 NHK에서는 하루 종일 젤렌스키의 방일에 대해 떠들어댔다. 젤렌스키는 G7 지도자들과 만나 그토록 원하던 F-16 전투기를 제공받는 것을 동의받는 것과 3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새로운 군사 지원 패키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레오파르트 2 전차와 다르게 에이브람스 전차처럼 미국에서 언제 F-16 전투기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할지는 알 수 없다. 에이브람스처럼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같은 동의안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지 또한 알 수 없다. 이 문제로 인해 NHK에서 젤렌스키가 무슨 큰 성과를 낸거마냥 21~22일 이틀 동안 계속 뉴스 메인에 나오며 떠들어 댔는데 동의(Agree)하는 것과 확정(Decide)하는 것은 다른 얘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어 젤렌스키는 친러 성향의 인도, 브라질 정상을 만나 자신의 평화적 구상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일 뿐,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인도와 브라질의 정상들이 자신의 편에 서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표면상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으며 어차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들이 지지하건 말건,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에 어설프게 답변하면서 의도하지 않게 '격전지 바흐무트가 러시아군에 함락됐다'는 주장을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대해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유야 어쨌든 계획한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젤렌스키가 서방의 전폭적인 지지에 빠르게 보답하는 일일 것이다. 서방 측이 기대하는 반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 있어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450일을 넘기면서 서방의 각 국가에서 높아지고 있는 정치, 경제적 부담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한 각 국가의 시민들에게 쏠려 있는 피로도를 해소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부분도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이 2024년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의 예산을 확정 짓는 9월까지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한다. 4개월여가 남아 있지만 여건상 결코 젤렌스키에게 있어 넉넉한 날짜가 아니다. 뭔가를 보여줘야만 군사적을 더 받을 수 있기에 사실상 어쩌고 보면 젤렌스키는 심하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남은 4개월이란, 누군가에게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젤렌스키의 입장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 이유는 바흐무트 전선 때문인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20일 마침내 바흐무트 완전 함락을 선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군 총참모부는 바흐무트 함락 자체를 부인하면서도 "바흐무트의 상황이 위급하다"며 도시 철군을 승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일 밤에는 우크라이나군의 일부 철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측의 바흐무트 함락 부인에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있는 프리고진은 이에 반박하여 우크라이나의 군인 한 명도 도시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바흐무트의 시 경계선을 따라 1cm도 남겨두지 않고 장악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5월 20일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도네츠크 주(州) 마리우폴이 러시아 군에 함락됐다. 아조프스탈을 거점으로 결사항전하던 우크라이나 아조프 연대는 이 날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 상 바흐무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바흐무트의 함락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독일 일간지 빌트마저도 지난 18일 "바흐무트의 99%가 점령됐고, 우크라이나군은 도시의 가장 서쪽 거리의 한쪽만 통제한다"며 "몇 개의 건물을 지나면 서쪽으로 이바노프스코예 마을까지 거의 2km가 뚫려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에게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고 했다. 말랴르 차관도 "러시아 군이 바흐무트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며 "방어할 수 없도록 건물 토대만 남기는 초토화 작전을 쓰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군은 바흐무트 시 경계선을 지나 서쪽으로 열린 '흐로모보(Хромово)'로 진격해 도시를 북동쪽과 동쪽 두 방향에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흐로모보(Хромово)'는 쉽게 함락될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방어선인 잘루즈니 라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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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러시아의 바흐무트 함락과 젤렌스키의 일본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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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숨은 역사, 이 뜨 띠엔(李嗣先), 딘 끼엔(丁建)의 대당항쟁(對唐抗爭) 봉기
- 당나라 전기 농촌 사회의 분화와 신분제의 붕괴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북베트남 지역에 사족 중심의 향촌 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관청기록, 안남도호부 기록, 향안 등이 존재하고 있는데 향안의 경우, 한족 귀족들의 신분 확인 증거서류로서 향촌 자치 기구의 주도권 장악의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한족 귀족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당나라 고종의 시대에는 일부 천민의 부농화와 더불어 몰락 귀족들의 전호 및 임노동자화가 나타나면서 안남도호부 관할 귀족의 권위들은 급속히 하락했다. 이에 지방 사족들은 여러 종례들을 실시하고, 동족 마을을 형성하여 족적 결합을 강화하였으며 문중을 중심으로 각 학당과 향묘를 설립하는 등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큰 힘을 기울였다. 이 때 부농층이 관권과 결탁하여 향회를 장악하려 하면서 중앙의 관권이 강화되고 향리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이후 재지 사족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던 향회는 국가 권력이 향촌을 장악하게 되면서 점차 세금 부과 자문 기구로 전락하였다. 당나라 태종 말기에 나타난 안남 지역의 부농층은 경제적인 능력을 보유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필요하였다. 이에 정부는 납속과 향직 매매를 허용하여 도움을 주었다. 부농층은 정부의 부세 운영 제도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향임 직위 진출에 실패해도 수령 및 향촌 세력과의 타협으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리 뜨 띠엔과 딘 끼엔이 당나라 조정에 대해 저항 운동을 일으킨 것은, 대를 이어 착취한 귀족층에 대한 대대적인 반기로 당나라의 책봉을 받은 안남 도호부사를 죽이고, 자신들이 스스로 도호부사 지위에 올라 실권을 잡으려 하였다. 이에 참족과 크메르 제국이 운남 지방과 북베트남 지역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군부 형태로 참족과 크메르 제국을 저지하려는 것에도 목적을 두었다. 딘 끼엔의 반란은 상인들의 항의들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리 뜨 띠엔과 달리 딘 끼엔은 대제국인 당나라에 반항하는 번이(蕃夷) 증 하나로 그들은 상인 집단이었다. 그리고 리 뜨 띠엔은 농민 집단이었기 때문에 같은 반란이지만 서로 간에 입장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안남도호부 측은 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지만 모두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초반에는 실패했다. 다만 군사의 수에 비해 그 영향은 비교적 경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안남도호부의 토벌군은 타이응우옌에서 리 뜨 띠엔을 공격해 격파했고 호아빈에 웅거하고 있던 딘 끼엔이 훙 강을 건너 북상하자 당나라는 그들에게 합류한 참족 및 요족과 연합하여 딘 끼엔과 동맹관계에 있는 크메르 제국의 군사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어, 687년에는 크메르 군을 모두 격멸시키고 라오스 북부 지역을 점령하여 남진(南津)등에 5개의 현(縣)을 설치했다. 이와 같이 고립된 딘 끼엔에 대해 당나라군은 참족과 함께 딘 끼엔의 군대에 공격을 진행시켜 통 빈(Tống Bình)을 함락시키고 딘 끼엔을 참살하는데 성공했다. 당나라는 훙 강 서쪽 지역에 홍서현(洪西縣)을 두고, 이후 무려 9개의 현을 추가 설치했으며 측천무후 때는 주(州)로 승격시키면서 기미지배를 하였다. 이와 같이 당나라의 기미지배를 지탱하고 있는 6개 현(縣)의 명칭 중, 북평(北平), 교주(交州), 광북(廣北), 해평(海平)이라는 호칭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당나라 안남도호부의 주변을 안정시키게 되었으며 이는 황소의 난 직전까지 연결되었고 정해군절도사(靜海軍節度使)의 통치 시기까지 연결되었다. 보통 리 뜨 띠엔과 딘 끼엔의 봉기를 기점으로 당나라의 베트남 통치의 균형이 당나라로 서서히 기울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봉기가 당나라의 각 도호부들 통치를 통틀어 당나라 정부가 겪은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만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안남도호부에서의 피해는 당대 중국 대륙을 휘어잡은 당나라에게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한 타격이었다. 리 뜨 띠엔과 딘 끼엔의 봉기가 막을 내린 지 1년도 안 되어 당나라군은 골든트라이앵글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이 봉기에서 당나라의 안남도호부 측이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봉기가 개시된 후부터 따진다면 공식적으로 15만의 전사자, 실종자를 포함해 베트남의 3배가 넘는 약 30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확인 자료에 의하면 무려 50만으로 추정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북베트남 지역에서 8개월 동안 있었던 봉기의 결과로는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큰 규모였다. 이와 같이 승자인 당나라의 피해가 엄청났던 이유는 인명을 경시하는 당나라 조정에 집권한 계층의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부터 작전 능력의 차이로 인해 계속 패전을 거듭했던 당나라는 안남도호부가 존재한 하노이를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인과 한족, 귀족 계층의 선비족까지 소모품으로 이용했다. 물론 전략적으로 베트남 봉기군을 붙잡아 놓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그 희생이 매우 컸다. 또한 물적 피해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측천무후 이전 당나라의 붕괴 후 조금씩 드러난 기록들에 따르면 약 200개 군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군비가 이 하노이에서의 혈전에 소모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혈전의 무대였던 하노이는 지도에서 사라진 것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략적으로 보면 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임에는 틀림없었으나 피해 규모로만 놓고 본다면 승리라고 하기에는 매우 고통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자료들에는 이를 전투(Battle)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하노이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전쟁(War)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하노이 혈전처럼 비참한 살육의 현장들 중에서도 686~687년에 있었던 하노이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은 악한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지옥이었다. 군사 전략상이라는 관점을 벗어난다면 과연 이 전투에 승자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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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숨은 역사, 이 뜨 띠엔(李嗣先), 딘 끼엔(丁建)의 대당항쟁(對唐抗爭)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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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시대의 문학가이자 시인인 미하일 레르몬토프(Михаил Лермонтов, 1814~1841)의 죽음과 푸쉬킨의 죽음이 비슷한 이유
-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시대의 문학가이자 시인인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Михаил Юрьевич Лермонтов, 1814~1841)는 알렉산드르 푸쉬킨, 니콜라이 고골과 함께 러시아 근대 문학의 선참이자 러시아 문학 황금기의 기반을 공고히 다진 인물이다. 그는 27세의 나이로 푸쉬킨처럼 결투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우리 시대의 영웅(Герой нашего времени)>을 저술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으나 러시아에서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17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선장으로 정착한 스코틀랜드 리어몬트 가문의 후손으로 1814년 퇴역 대위인 아버지와 부유한 명문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레르몬토프는 스코틀랜드와 러시아 혼혈인 것이다. 레르몬토프가 세살 때 어머니는 패결핵으로 목숨을 잃고 그 이후 외할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미하일의 양육권을 두고 자주 싸움이 일어났는데, 이 일은 어린 미하일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어린 시절 허약한 체질이었던 그를 걱정해서 외할머니는 세 번이나 그를 카프카스의 온천으로 데려갔는데, 카프카스의 험한 산세와 자연은 소년의 감성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1828년 레로믄토프는 모스크바 대학의 귀족 기숙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시 창작에 매료되었다. 학생들이 잡지를 필사할 때 레르몬토프도 참여하여 여러 창작시들을 발표했다. 당시 레르몬토프는 이미 영어를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었는데, 특히 바이런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한다. 수업시간 동안 교수의 강의는 듣지 않고 책을 읽는 일이 많았던 그는 한 교수와 싸움을 계기로 대학을 중퇴하고 기병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러시아 황실 근위대에 들어갔다. 주로 신랄한 성격이었던 그는 러시아 황실 근위대에서 복무했던 도중 푸시킨의 죽음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자신이 어렸을 적 요양했던 곳이자 전방 지대인 카프카스로 좌천되었다. 수도에서 느긋한 바람둥이 생활을 즐기던 그는 카프카스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도시 문화에 때가 묻지 않은 체르케스인들, 고대 기독교 문명을 보존한 조지아에서의 생활에 영감을 받아 장편 시 악마, "견습 수도사",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을 집필했다. 오히려 카프카스에서의 유형 생활은 그가 그토록 갈구하며 상상했던 자유로운 생활이었다. 외할머니의 주선으로 레르몬토프는 반년 만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게 되었다. 1840년 그가 카프카스에서 구상했던 작품 우리 시대의 영웅이 출간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시집이 나왔다. 비평가들에게 일제히 "푸쉬킨의 적자"라는 극찬을 들으며, 벌써 젊은 나이에 문인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귀환한 지 얼마 안 되어 프랑스 공사의 아들과 결투를 벌인 스캔들로 레르몬토프는 다시 카프카스로 좌천되었다. 문인으로 유명인사가 된 지 1년 후 1841년 6월 15일 카프카스에서 사관학교 시절 동료와 결투를 벌이다 전 동료 니콜라이 솔로모비치 마르티노프(Николай Соломонович Мартынов)가 앙심을 품고 레르몬토프를 사격하면서 허망하게 사망했다. 레르몬토프의 마지막 결투에서 먼저 총을 쏘게 된 레르몬토프는 친구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뜻에서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았으나, 상대방은 그 다음 차례에 레르몬토프를 정면으로 쐈다고 한다. 레르몬토프의 죽음은 푸쉬킨의 죽음과 결말이 같았는데 유럽인들은 사람보다 명예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투 자체에 “나는 네게 당한 모욕을 참지 않는다”는 것을 표시하는 의의가 있기에 승패에 연연하지 않았고, 명예가 갈리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결투를 거부한 측이 명예가 실추된다 여겨졌던 시대였다. 상대방의 인신공격이나, 모함, 악행 등으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었기에 그 명예를 회복하고자 당당히 맞선다는 개념이 결투였기 때문에 모욕을 듣고 참거나 응대하지 않으면 바보 병신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유럽에서의 결투는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결투를 한 사람들은 귀족, 상류층, 문인, 저널리스트 등 소위 엘리트 계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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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시대의 문학가이자 시인인 미하일 레르몬토프(Михаил Лермонтов, 1814~1841)의 죽음과 푸쉬킨의 죽음이 비슷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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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지역 공동체 마할라와 집단 사회
- 마할라는 중앙아시아 농경사회에서 발달된 지역 공동체다. 마할라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1세기 문헌에도 나타나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는 마할라를 중동의 이슬람 공동체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마할라는 종교 · 민족 · 신분을 중심으로 모인 단일 목적의 집단이 아니라 이를 모두 수용하는 생활공동체라는 특징을 갖는다. 마할라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마할라는 법적 행정구역 단위가 아닌 자신들만의 구역 구분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이라는 행정구역 내에 역사적으로 자신만의 구역을 가진 마할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타슈켄트 시내의 도로변에서 ‘OOO 마할라’라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그러한 이유다. 둘째, 마할라는 비정부 지역공동체로 국가의 공식적인 행정조직과는 별개로 자신들만의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마할라에는 ‘오크소콜(Oqsoqol, 하얀 수염이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최고책임자가 있는데, 이는 마할라 구성원 가운데 연령과 경험, 지식 등을 고려해 주민들이 선출한다. 공동체의 중요 정책은 우리의 반상회와 같은 ‘켕가시(Kengash)’라고 하는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집행된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사람들이 구성한 하나의 공동체를 뜻하는 마할라는 구소련 해체로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고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그 역할을 정하기 시작했고, 국가 건설과 정권 안정화에 활용하기도 했다. 현재 마할라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기본 행정단위가 되었다. 모든 주민은 하나의 마할라에 소속된다. 도시와 농촌 등 전 지역에 10,000여 개가 넘는 마할라가 형성되어 있고, 보통 마할라 1개당 2,000명 가량의 주민이 속한다. 마할라는 단지 정부 주도로 사회를 통제하는 목적만이 아니라 범죄 예방, 국민의 체육활동 증진, 청년세대 교육 기능 등을 담당하며 포괄적인 사회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마할라와 한국의 새마을운동 간 유사성이 있다며 양국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마할리 내 여성들로 볼 때 여성의 임신과 출산, 아이 양육은 인류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인류사에서 늘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이다. 출생의례와 관련하여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종교적, 주술적 행위가 관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은 매우 복잡하고 위험한 과정으로 공동체의 단합과 협동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인간이 일생을 거치면서 각 중요한 시기마다 경험하게 되는 일생 의례에서 인간이 생명을 얻는 첫 과정인 출생의례는 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축소해 놓은 의례로 해석되기도 하며, 이에 대한 분석은 한 민족이 삶을 바라보는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즈베크인은 예로부터 자신들을 ‘아이를 사랑하는 민족(Bolajon xalq)’이라 부르며, 다산을 미덕으로 여겼다. 전통적으로 우즈베크 민족은 지역적, 혈연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하는 ‘마할라(Mahalla)’ 공동체에 속하여 삶을 영위해 왔으며,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례와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무상 노동을 제공하는 등 독특한 우즈베크만의 문화 의식을 형성해왔다. 이러한 상호부조의 관행은 우즈베크인들 사이에는 공동체를 이루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할라 공동체에서는 네 일과 내 일의 경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공동의 의무와 책임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출생의례 또한 우즈베크인들은 한 가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구성원 공동의 의무와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전통적으로 우즈베크인들은 출산을 ‘알라의 위대한 은총’으로 여긴다. 따라서 우즈베크인들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로 보았으며, 인공 유산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았다. 특히,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우즈베크 사회에서 아들은 가계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우즈베크 인에게는 여아보다 남아의 출생을 간절히 바라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경향은 ‘딸은 누군가의 적이다(Qiz bola birovning xasmi)’, ‘딸을 키울 바에야 소금을 보관해라(Qiz saqlagandan ko’ra, tuz saqla)’, ‘좋은 부인은 아들을 낳는다(Yaxshi xotin o’g’il tug’adi)’ 등 다수의 성차별적 속담을 통해서도 관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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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지역 공동체 마할라와 집단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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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 지난 7월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종결된 BRICS 정상회의는 회원국 수가 11개국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불참으로 인해 그 위상이 오히려 퇴색됐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같은 논리로 지난 10, 11일 로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10일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 URC 2025)와 11일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불참했다. 오히려 로마에서 벌어진 양일 간의 회의 의미가 BRICS 정상회의보다 더 반감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등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 참석자들이 초대된 만찬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키예프에 대한 유럽 대륙의 경제 지원은 무료 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Il Presidente del Consiglio italiano Giorgio Meloni ha ricordato che gli aiuti economici del continente a Kiev non sono un servizio gratuito)."고 서술한 이탈리아 일간지 란티디플로마티코(L'Anti Diplomatico)의 보도가 겨우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홀대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된 유럽 국가들이 로마에서 다시 반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결속을 다졌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의하면 10, 11일 이틀간 열린 로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kraine Recovery Conference)는 로마에서 우크라이나 기업들과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적 자원, 우크라이나 국내 각종 지역 문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등 4가지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는 2022년 스위스 루가노, 2023년 런던, 2024년 베를린에 이어 4번째 모임이었다. 이 회의는 2017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개혁 회의(Ukraine's Reform Conference)가 출범된 것이 시초로 러시아-우크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열린 로마 회의의 성과는 초기 자본금 2억 2,000만 유로의 특별 기금(Ukraine Recovery Fund)을 조성하는 합의에 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유럽투자은행(EIB)이 이 기금을 내년인 2026년까지 5억 유로로 늘리기로 했다. EU를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집행 위원장은 EU가 우크라이나 복구 사업의 지원을 위해 국제 금융기관들과 약 23억 8,000만 유로 상당의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3억 중, 18억 유로는 대출 보증 형태로, 5억 8천만 유로는 무상 원조 형태로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EU는 앞으로 규모를 최대 100억 유로로 키울 작정인데 EU는 나토 분납금인 국가 GDP의 5%를 맞춰야 하고 각 국의 분담금 지급 시기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U 분담 지원금을 만약 축소하기라도 한다면 국가 GDP의 상당 부분을 EU 분담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GDP 낮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가장 먼저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자국 운영 자금에 세금도 그만큼 부과해야 하니 부담되는 것은 EU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불만도 그만큼 심해질 것이고, EU 각 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들을 달래야 한다. 즉, EU는 우크라이나로 인해 서서히 자금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유로를 내놓기로 하는 등, EU 국가들도 개별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 나타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금 23억, 그리고 앞서 언급한 5억, 3억 유로와 같은 금액은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자금들, 초창기인 2022년과 비교해 보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우크라이나의 데니스 슈미갈 총리는 "앞으로 14년 동안 우크라이나의 재건 및 현대화에 필요한 재원은 1조 달러(Сума, необхідна для відбудови та модернізації України протягом наступних 14 років, становить 1 трильйон доларів)."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2개의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하나는 서방 측에 의해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과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 대한 특별세 부과로 5,4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부과하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의 민간 투자로 4,6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자는 완전히 날강도 짓이고, 후자는 민간 투자를 열어 EU 시민들의 피같은 돈을 빨아 먹겠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피해를 약 5,000억 유로로 추산한다고 주장했으며 슈미갈 총리의 1조 달러 주장을 부인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피해 보상을 하기 전까지, 러시아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며 비교적인 정상적인 주장을 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가 주장한 2개의 기금 조성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를 위해 민간 투자 부문을 맡아 온 미국의 대형 투자업체 블랙록(Black Rock)이 로마 회의 전날, 우크라이나 복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투자기업 블랙록 주도의 민간 투자 유치 건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핵심으로 보여졌다는 것을 착안한다면 자금이 급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CEO는 지난 2023년 젤렌스키와 회동한 이후, 민간 투자를 끌어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투자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그는 이번 로마 회의에서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랙록은 포기한 이유를 키예프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정책을 핑계로 들었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복구를 위한 투자 유치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지난 7월 6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당초 독일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 기관 투자자들의 초기 지원으로 수십억 달러의 유치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기관 투자자들이 협상을 일부 중단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블랙록의 민간 투자 유치 목표는 최소 150억 달러였는데 프랑스 업체가 블랙록의 역할을 이어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에 있어 최소 150억 달러라는 목표가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다행한 점은 미국이 복구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 키스 켈로그 대통령 특사는 이날 로마 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마셜 플랜'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광물 자원 거래로 조성된 특별 기금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에 앞장 설 것이라 언급했다. 이번 로마 회의에서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까지 논의되었다. 슈미갈 총리는 내년인 2026년 예산 편성에서 19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키예프는 2025년 러시아에게 입은 피해 복구 사업에 할당된 자금 지원을 절반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11일 로마에서는 전날 복구 회의에 이어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지닌 유럽 30개 국으로 구성된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우크라이나 지원 체제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제외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국가 연합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와 대러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공화당), 리처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민주당) 미 상원의원이 이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로마 정상회의의 성과를 말한다며 우크라이나의 휴전 감시를 위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윤곽을 잡있다는 것에 있다. 마크롱 과 스타머 총리는 비록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런던에서 화상 연결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우크라이나 파견군 규모를 50,000명으로 늘릴 수 있다며 허풍을 늘어 놓았다. 또한 이처럼 런던에서 합의했다며 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또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 작전 본부를 우산 파리에 두고 12개월 후에는 런던으로 이전, 순환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키예프에도 지부가 설립된다고 했다. 마크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직후 몇 시간 이내에 바로 작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평화 유지군의 운영 계획을 마련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평화 유지군에게는 우크라이나 지상군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우크라이나 영공 및 해상 안보를 지원한다는 역할도 부여되었다. 이를 위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훈련 교관들과 군수 물자 공급 및 병참 전문 요원들을 우크라이나로 파견할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크라이나로 파견될 평화 유지군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이 큰 관건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4월 미국이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에 정보 및 물류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지만, 공식적으로 지원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0일 미국의 구체적인 약속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린지 그레이엄과 리처드 블루멘탈 미 상원의원들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의지의 연합(Union of the Will)'은 로마 정상회의 이후, 공동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추가 평화 협상인 제3차 이스탄불 협상을 지지한다면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우선적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또한 나토가 2024년 약속한 대로 올해 최소 400억 유로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휴전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휴전이 발효되면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 휴전이 되면 곧바로 평화유지군을 가장한 나토군을 투입하겠다는 얘긴데 러시아의 휴전 협상 요구 내용과 완전히 배치되는 얘기다. 결국 유럽은 러시아와 휴전 없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휴전과 평화를 원하지 않는 것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이지 러시아는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휴전을 요구해도 EU와 우크라이나는 결코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올해 "로마 회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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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 11일 양일 간에 걸친 "로마 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 또한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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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막바지를 앞두고 있고,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휴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가 있다. 해당 국가는 카스피해의 막대한 자원을 기반으로 일약 부국(富國)으로 올라선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서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완충지대에 놓여 있으며 원유와 가스를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에서 수급받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자원 에너지 수급의 생명줄인 곳이다. 게다가 민족이 같은 투르크족 "형제의 나라"이자 "동맹국" 이상의 관계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송유관으로 가스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국가였다. 필자는 2022년 4월 4일에 페이스북과 브레이크뉴스 칼럼에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는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카스피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카스피해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바쿠 유전을 개발한 이래 소련과 이란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 일대 석유 자원에 눈독을 들인 미국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접근을 가속화하면서 카스피해 일대의 자원을 두고 분쟁이 시작되었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간주하고 이를 공평하게 분할해 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했고 이들도 카스피해 영역 인정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바다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유전(油田)을 가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았다. 이에 바다인 카스피해의 영해, 경제수역, 대륙붕에서 독점적 권리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의 영해로 설정된 지역에 자원이 거의 없는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연안국은 호수인 카스피해에 균등한 권리를 갖는다며 카스피해 공유 5개국이 20%씩 천연자원을 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지역에서 채굴되는 원유에 부분적인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텐기스 유전을 발견하자 카스피해가 바다임을 인정하고 입장을 바꾸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는 카스피 해가 바다로 규정되어야 12해리+EEZ에서 나오는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와 같은 아제르바이잔의 결정에 심사가 뒤틀렸다. 소련 시절에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기름을 마음껏 가져다 썼는데, 이젠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카스피 해를 호수라고 해야 해상 유전의 기름을 나눠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군사적 배경도 있다. 카스피 해가 호수이면 러시아와 이란은 자국 해군을 상대국 해안에 해군을 배치할수 있다. 이에 비해 신생 3개국은 강대국의 함선이 자국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면 국제해양법의 보호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놓고 다섯 나라가 오랫동안 티격태격하다가 2018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 해안도시 악타우에서 만나 ‘카스피해의 법적 상태에 관한 협정’(Convention on the Legal Status of the Caspian Sea)에 합의했다. 명칭은 바다(Caspian Sea)로 규정하고, 조약의 세부 조항에는 수역(body of water)이란 애매한 표현을 썼다. 얼핏보면 절충안 같지만 대체적으로 호수라고 규정한 현상유지의 협약이란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강대국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누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피해 지역은 2002년경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등 국제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었고 일본 역시 그 뒤를 이어 대규모 투자를 본격 착수했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2002년 4월 산업자원부와 5개사가 '카스피해 유전개발 컨소시엄'을 만들어 카스피해 진출 교두보로 선정한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1차 타당성 조사에 들어가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에 대단위의 원유와 가스가 발견되자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의 원유를 벨라루스로 수송하기 위해 오데사-브로디(Odessa-Brody) 파이프 라인을 직접 관리하기로 하였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h Deniz) 제2 광구 생산 가스의 대유럽 수출 경로 설정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광구를 통한 유럽으로의 가스수출은 2020-25년이 되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는 일부 광구에서만 유럽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 외 투르크메니스탄 여건이 허락한다면, 연간 10~25bcm 규모의 가스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 공동 건설을 추진했다. 카스피해 횡단 가스관의 건설 이후에는 EU와 투르크메니스탄 간의 협력 강화가 이어졌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진행으로 인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의 타당성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카스피해 연안 항만 발전 전략을 ‘직접적 시책’과 ‘관련적 시책’으로 나누었는데, 주목해야 할 직접적 시책으로 러시아 정부에서 극동 지역과 연해주 지역에서 진흥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우선적 사회 경제 발전 구역"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하고 있는 자유항 제도를 "마하치칼라 자유항(Свободный порт Махачкала)" 제도로 바꾸어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되는 화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염두로 둔 제도였고,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수출하는 주력 품목으로 선철(銑鐵), 철강 제품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카스피해를 경유한 대 이란 곡물 수출로 볼 때, 2016년~2021년 사이 307,000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022년~2025년에는 1,258,900톤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은 러시아와 이란의 교역과 맞물려 있고, 이 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이란의 교역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연안국들이 경제개발에 나서는 바람에 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 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자원 배분과 오염 방지에 관한 문제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문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 및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스피해에서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생겼다. 비록 군사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이 지역의 자원을 둔 긴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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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막바지를 앞두고 드리워지는 카스피해 위기(Caspian Sea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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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 브라질의 보수우파 진영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는 2018년 10월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당 소속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재선을 앞두고 마지막 임기 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대러시아 제재에 상당수 국가들이 참여했는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다. 이는 브라질이 러시아 비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브라질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국가의 운명을 코미디언에게 맡겼다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희극 배우 출신인 젤렌스키에게 사실상 전가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28일에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의의 질문에 브라질은 중립 노선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3월 1일 우크라이나의 난민에 대해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나서면서 확실히 중립으로 자리매김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일에 야권 대선주자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립 입장 표명을 연대 성명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천연 자원 부국인 브라질의 경제는 또 다른 자원 부국 러시아를 경제 재제한 집단 서방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이라 이와 야당의 입장 표명은 일종의 헤프닝이 되었다. 이후 보우소나루는 7월 24일 대통령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재선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26%, 보통 26%, 부정적 47%로 사실상 재선은 어렵지 않냐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10월 2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43.2%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인구 집중 지역인 남동부에서 약진해 개표 초기에는 이기고 있었는데 노동자 계급이 주로 사는 북동부 지역의 표가 합산되자 이는 판세는 뒤집혔다. 그러나 룰라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10월 30일 둘만의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연합을 주도했었던 1차투표 3위 브라질 민주운동의 시모니 테베치(Simone Tebet) 후보와 1차 투표에서 4위를 한 브라질 민주노동당의 시루 고미스(Ciro Gomes) 후보가 차례로 보우소나루가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더 광범위한 반 보우소나루 연대가 구성되었다. 10월 30일 진행된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개표 결과 좌파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1.8%p의 격차로 밀려서 재선에 실패해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민주화 이래 브라질에서 치러진 대선 중 최고 접전이었다. 브라질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더해 1994년 이후 선거로 당선된 브라질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한 사례들이 굳어져 브라질 정치계의 징크스로 남아있는 것 또한 이 날 선거에서 깨지게 되었다. 얼마 전 탄핵을 겪고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며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당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단임 상태에서 넘어간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로 얼마 전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에게 단임으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부패혐의로 인해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와 함께 수감된 룰라의 혐의는 모두 대선 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확정되었다. 심지어 지우마 호세프는 대선 10일 전 무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당시 룰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지도자라는 동정론까지 불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이 얼마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또 다른 대통령이 감옥에 간 정당과 맞선다는 최고의 이점이 모두 사라진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세계 최초로 얼마 전 탄핵을 겪은 정당에게 단임 상태에서 정권을 교체 당한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보다 약 8개월 앞서 정권을 교체당한 우리 대한민국의 문재인이다. 그러나 이것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1980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먼저 기록할 뻔했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그동안 부정선거 의혹을 외쳐 왔지만, 정작 자신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게 되었고, 퇴임 후, 이와 같은 부정선거 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다만 대선 1차 투표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브라질 국가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하원 513석 중 99석을 기록하며 1994년 이래 단일 정당의 최다 의석수 기록을 차지했기 때문에 보우소나루 입장에서는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1월 1일 침묵 끝에 권력 이양을 승인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하는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했다. 보우소나루는 조용히 퇴임할 계획이었지만 정작 지지자들이 대규모 선거불복 시위를 벌였고, 그 배후에는 보우소나루가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다. 11월 3일,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부통령 당선인과 접견하면서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논의했다. 아우키민 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공식 초청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연방 정부가 모든 정보와 협력을 제공하여 정권 이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우소나루는 12월에 퇴임해 2023년 1월 1일 열리는 룰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매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 정도로 트럼프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2023년 1월 8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룰라 행정부에 반발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1월 8일 오후 6시경 삼부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법원, 국가의회, 대통령궁이 모두 위치한 광장에 결집한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무력으로 여러 정부 시설을 불법 침입해 점거하였다.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가 아닌 홍수 피해를 입은 상파울루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동은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은 룰라 대통령과 통화하여 폭동에 반대하고 브라질 정부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폭동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냈으며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폭동에 대해 규탄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폭동은 힘을 받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브라질 당국은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했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폭동을 모두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가 폭동을 부추겼다고 비난했으며 보우소나루는 트위터를 통해 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와 관련이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한편 2023년 1월 15일 대통령궁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공개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4년간 긴급지출용 법인카드로 보좌진 21명과 함께 식료품, 주유 등 67억원 상당의 돈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보우소나루의 최측근이고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마지막 법무장관을 맡은 안데르송 토히스(Anderson Torres)의 집에서 계엄령에 관한 시나리오가 적힌 문건이 발견되면서 보우소나루가 계엄령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2023년 1월에 발생한 브라질리아 폭동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에도 잇달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등, 가혹한 정치 보복이 이어졌다. 앞서 내가 페이스북에 언급했듯이 정치 보복은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것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거대 집단을 이끌기 위해 필히 가져야 할 중요 매개다. 공산주의든, 자유민주주의든,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집단화 되어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권력이다. 당연히 이념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권력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정치와 권력은 필연적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혐의든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귀걸이다. 적용되어진 혐의의 이면에는 정치적 패배에 의한 정치 보복이 숨겨져 있다. 이처럼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이전 집권자나 현 집권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숙명과도 같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갖게 되면, 보복 및 숙청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정치가가 된다. 정치 권력은 그만큼 냉혹하고 비정하다. 결국 보우소나루는 내란 음모, 무장 범죄 조직 연루, 국가 자산 및 유적지 위협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편 보우소나루의 아들 에두아르두는 아버지에 대한 지지와 사면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시기에 트럼프 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올해 7월 9일 트럼프는 자신이 존경하는 보우소나루를 브라질 정부가 마녀사냥을 하고있다면서 브라질 정부에 관세 40% 올려서 50%를 부과했다. 트루스 소셜에 공개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인 수치이며 이번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Brazil's treatment of former President Bolsonaro is an international disgrace and this trial should not take place).”고 밝혔다. 그는 보우소나루를 매우 존경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가 없으며 단지 국민을 위해 싸운 것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트럼프는 관세 인상 근거로 “브라질이 미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Brazil is attempting to censor US social media platforms).”고 주장했다. 브라질은 2022년 대선 이후 각종 SNS와 치열한 대립을 벌여 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극우파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X 등을 통해 부정선거 및 인종주의, 증오발언,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수차례 계정 삭제 요구에도 X가 응하지 않자, 브라질 대법원은 지난해 8월 30일 X 접속을 차단하는 방침을 판결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브라질이 미국 기업의 디지털 무역 활동을 방해하고 다른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해왔다며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개시했다고도 언급했다.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규정이 무역법 301조의 내용이다. 트럼프는 공식 서한에서 50%의 관세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현 정권이 자행하는 중대한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브라질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0%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국가 대상 관세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미국이 상품 무역에서 7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브라질을 향해 지속 불가능한 무역적자도 이번 고율 관세의 고려 요인이라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에 제시한 50%의 관세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처우 문제만이 아닌, 브라질이 미국에 기록한 흑자 무역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한 것도 포함한 복합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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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의 행보와 50% 관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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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 트럼프가 러시아에 대한 중대발표를 하겠다 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자리에서 앞으로 50일 이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러시아에 100%의 혹독한 관세를 부과할 것(If the Russia-Ukraine war does not end, we will impose a harsh 100% tariff on Russia)이라 밝혔다. 트럼프는 자신들이 러시아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다며 만약 50일 안에 휴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가혹한 경제적 조치가 따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14일에 밝힌 관세 조치가 단순한 경제 제재를 넘어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하는 국가들까지 합류한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s)의 형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이라는 조치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온 인물이다. 본인 또한 이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다. 이어 전쟁을 멈추는 데도 무역은 매우 훌륭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본인은 이를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미국에 대해 대단한 마이너스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침도 밝혔다. 그는 최상급의 무기를 생산해 나토 동맹국에 공급할 것이며, 그 무기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전달될 예정이라 했다. 구체적으로는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비롯한 대규모 공격 무기들이 포함되며, 일부 무기는 기존 나토 보유분을 교체해 우크라이나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와 전쟁으로 붙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기다려온 순간이라 볼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방어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 탄약 등 다양한 범주의 군사 장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나토가 전비를 부담하는 조건이라 설명했다. 즉,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여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중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도 드러냈다. 그는 푸틴과 대화가 항상 친절했지만, 그 직후 키예프나 다른 도시들이 공격받는 일이 반복됐다며 매우 실망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푸틴이 약속을 지킬 인물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푸틴은 자신이 속였던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속이려 했다며 이제는 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히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 중 관세는 본격적으로 외교적인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가 현실화 될 경우, 에너지 시장은 물론 국제 정치 지형에도 큰 파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트럼프를 분석해 본다면 그는 친분이 있던 푸틴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그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푸틴은 순수한 선의 마음으로 국제 관계에 접근했다가 맹우라 여겼던 독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배신을 당한 바 있다. 따라서 푸틴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 또한 트럼프의 자주 바뀌는 말의 성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단순한 친목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무역을 별로 하지 않는다. 각종 경제 제재를 해도 러시아는 잘 버텨왔다. 내수 시장 활성화와 집단 서방의 결정에 반발하는 국가들과 교역하며 이들과 함께 집단 서방에 저항해 왔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 없고, 러시아를 달래기 위해 관세를 0%로 마쳤다. 그런데 무역 활동이 없는 러시아한테 100% 관세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다. 그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관세 폭탄에 러시아 또한 미국과 맞서 카드 하나를 더 구상할 것이다. 그와 같은 카드는 첫 번째, 미국과 대화 창구를 아예 닫겠다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여태까지 러시아는 대화의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며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단교라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에 쓸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그동안 미국에 제재하지 않았던 필수품목들을 제재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우라늄 농축 능력의 약 44%를 차지하며, 미국이 수입하는 핵연료의 약 35%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전체 우라늄 수입 중 러시아산 비중은 12%, 농축 우라늄는 27%에 달했다. 작년에도 이는 비슷했다. 러시아는 미국에 우라늄 수출을 0%로 제한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자력 발전 생산국 중 하나이며, 전체 발전량 중 약 19%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라늄이 단절되면 미국의 전력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 또한 가동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재앙이다. 세 번째,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동 개발을 취소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희토류 공동 개발을 제안한 바 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국방,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매우 높은 광물이다. 특히, 전기차, 스마트폰, 풍력 터빈, 디스플레이, 레이저,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첨단 제품의 핵심 부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또한 희토류는 존재한다. 다만 채굴된 원석에서 희토류 원소를 분리·정제하는 일인데 미국은 이를 분리하고 정제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아예 이와 같은 분리, 정제하는 시설이 없었다. 2023년 MP머티리얼스가 국방부 지원을 받아 희토류 정제시설을 구축했는데 아직 처리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은 환경규제가 느슨한 데다, 저렴한 전기와 노동력 덕분에 비용도 최소화하니까 저렴한 희토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고 정제 과정이 더럽고 복잡한데다 그렇다고 희토류가 금이나 은처럼 그렇게 비싼 금속도 아니니까 돈도 별로 되지가 않으니 미국에서 채굴된 희토류 광석을 정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보내졌던 이유였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여전히 수입 중인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BRICS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협박인 셈인데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BRICS 국가들은 러시아와 주로 교역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를 건드린다면 이 국가들은 미국에 각종 기본 원자재 제공에 대한 관세를 100% 이상 높이거나 제한하는 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희토류 산업을 쥐고 있기에 이를 대폭 활용성은 더더욱 높다. 트럼프는 최근 들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보다는 국제 공조를 통한 압박 노선을 강조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무역 제재를 활용하면서 다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고 있다.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미국이 나토를 통해 다시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전술핵과 전략핵 두 가지를 전진 배치하여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하여 특수군사작전에서 전쟁을 격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마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격과 정예병들이 투입되어 빠르게 전쟁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같은 행위, 특히 그의 감정 조절 장애는 미국에 크나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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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관세 위협, 효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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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 브라질 내 식량 안보 네트워크인 PENSSAN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말, 브라질 인구의 9%인 1,9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 말에는 이 수치가 15%까지 상승해 약 3,300만 명이 식량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브라질 헤알 화폐의 폭락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가 급상승 하여 쌀값은 70%, 콩기름 88%, 감자 48%, 우유는 21%씩 오르면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상파울루의 노숙자들은 지난 2년 동안에만 31% 증가하여 총 32,000명에 이르렀고, 이 인구의 약 10%는 어린이들이 차지했다. 이들 중 73%는 구걸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있었으며 미나스 제라이스 대학(UFMG) 공공 정책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상파울루 시내에서의 노숙자들은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까지 42,000명의 인구가 노숙자로 거리에서 연명하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발표된 Todas Pela Educacao의 조사에서, 6세에서 14세의 어린이 중, 학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코로나 이전보다 171% 증가해 244,000명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동들의 영양 실조 비율도 크게 증가했는데, 브라질 소아과 학회는 2022년에 4,135명의 어린이가 입원했고, 14세 미만 어린이의 절반 가량(46.2%)이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또 다른 사회 문제로는 마약과 아동들의 불법적인 노동을 꼽을 수 있다. 상파울루 중심에 있는 클라크랜드(Crackland)로 알려진 야외 마약 시장에는 판자촌 양쪽으로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클라크랜드(Crackland)는 매년 약 3,700만 달러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16년도 기준에 의하면 브라질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랙 코카인 사용자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에 실시된 브라질의 마약 사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인의 최소 3.2%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 이는 약 490만 명에 해당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남성의 경우, 5%로 여성(1.5%)보다 훨씬 높았다. 브라질의 사회 경제 연구소(ISES)는 아동 착취와 노동에 있어서도 1992년 780만 명에서 2019년까지 180만 명으로 크게 줄어 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동 노동과 관련한 노동청의 고발 건수가 2020년 1,560건에서 2021년 2,181건, 2022년 8월까지 1,700건으로 다시 증가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예측은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브라질 사회는 빈곤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최근 정치적인 문제 이후 첨예해진 정치적인 대립과 원주민들과의 갈등, 인종적 범죄 등 사회적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파리 경제 대학의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58.6%를 벌었고, 가장 가난한 50%는 상위 10%보다 29배 적게 벌었다. 재산 불평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의 최빈곤층들은 국가 전체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0.4%를 소유할 뿐이었으며 상위 1%가 브라질 부의 거의 절반(48.9%)를 소유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반영하는 것과 같이 2013년에 국가적 부패를 비난하고 공공 서비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면서 12개의 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에 25만 명이 참여한 바 있을 정도이다. 또 다른 갈등 요인은 인종 차이로 인한 차별에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5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면서 브라질에는 혼혈이 넘쳐났다. 20세기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인종차별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됐지만 백인 여성 뒤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유색 얼굴의 여성을 보는 것은 일반적이었며, 흑인이나 혼혈은 백인에 비해 월급도 5분의 3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의 문맹률도 백인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2012년 59개의 연방 대학과 38개의 기술 학교에서 인종에 대한 입학 할당제가 제정되었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2016년 브라질 인구조사에서 혼혈은 46.7%, 흑인 8.2%, 백인이 44.2%를 차지하고 있었다. UCLA의 사회학 교수인 텔레스(Edward Telles) 박사는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혼혈이 다수를 차지했던 1930년대까지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했다고 언급하면서 많은 유색 인종들이 인권 유린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도 노동 시장과 교육에 있어 인종차별은 만연해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이 선거 기간 흑인 퀼롬보(Quilombo) 사람을 소에 비유하면서 인종적인 긴장이 한층 격화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들을 향해 브라질의 역대 역사에 이질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유색 인종에 대한 경찰 살인은 5,804건이나 발생했고, 살인 피해자 중 이들의 비율은 75%를 차지할 만큼 브라질 사회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러한 지역적 사회문제가 빈번한 곳은 도시의 흔한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대도시인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흔하게 나타난다. 파벨라가 생성된 계기는 브라질 왕정이 붕괴되고 브라질 제1 공화국이 세워지던 당시 왕당파 성향이 강했던 바이아 주(州) 카누두스(Canudos)에서 제정 복고를 주장하는 반란인 카누두스 전쟁(Guerra de Canudos)이 발생하자 브라질 제1 공화국 정부는 흑인들로 구성된 진압군을 보내 진압했다. 그러나 이 때 임무를 완수하고 전역한 군인들이 연금 지급 같은 대책은 하나도 없었기에 있을 곳이 사라지게 되자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Morro da Providência, 섭리의 언덕)라는 언덕의 국유지에 무허가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전장이었던 카누두스에서 무성하게 자란 브라질 원산의 대극과에 속하는 식물인 파벨라의 이름을 따서 자신들의 마을을 모후 다 피벨라(Morro da Favela, 파벨라의 언덕)라고 이름 지었다. 이곳에 흑인 퇴역 군인들 말고도 다른 흑인들과 도시로 온 빈민들이 대도시 한 쪽 구석에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빈부격차 문제와 인종 문제, 교육 문제, 1970년~1990년대에 있었던 경제난이 심해지고 마약 문제가 겹쳤다. 그리고 이를 유통하는 범죄 조직인 마약 카르텔의 확산까지 나타나면서 파벨라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파벨라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가 장악한 곳으로, 브라질 정부의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엘패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이 정부보다 카르텔 혹은 경찰 민병대의 말을 잘 듣는 곳과 비슷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악명이 높은데 파벨라의 특성상 마약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영화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엘리트 스쿼드(Tropa de Elite)" 등에서 그 실상이 묘사된 바 있다. 이곳을 전담하는 브라질 헌병대 대테러 부대 BOPE를 취재한 플래툰 2016년 8월 호에 따르면 파벨라 내부는 범죄 조직들이 검문소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한다. 경찰이 제복을 입고 파벨라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실상 카르텔이 하나의 나라를 차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멕시코의 미국 접경 지대와 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찰관들은 순찰 등 평범한 근무 중에도 제복을 입을 수 없다. 브라질의 경찰들은 오직 갱단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될 때만 제복을 입는다. 이는 갱단들이 경찰을 알아볼 경우 뒤에서 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에는 경찰관이 큰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전직, 혹은 현직 경찰관들이 비번일 때 민병대로 투잡 활동하는 경찰 민병대들이 조직의 갱단이나 카르텔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구역으로 장악한 파벨라도 존재하고 있는데 당연히 민병대의 설립 목적부터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불순한 목적으로 공무원의 직업 윤리는 상관하지 않고 이들이 파벨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행위는 마약만 팔지 않을 뿐 갱단 및 카르텔과 유사하다. 치안은 최악이고, 내부가 사실상 무법지대라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여행자 신분으로 파벨라에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언급하고 있다. 파벨라의 내부 치안을 카르텔이나 갱단 혹은 경찰 민병대둘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파벨라는 브라질의 형법과 민법이 통하지 않는다. 파벨라에서 사망하면 시체도 찾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험악하다. 파벨라에는 애초에 자동 소총이나 폭발물 등의 엄청난 무장을 앞세운 마약 카르텔들과 브라질의 지방 경찰 및 연방 경찰인 BOPE 대원들이 매일 같이 준 전시 체제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대낮에 경찰 헬기가 카르텔의 로켓 런처에 격추당할 정도로 경찰이나 군인들이 들어가도 진압이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브라질 파벨라에서 생겨난 문화들이 현대 브라질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렘이 미국 흑인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칸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 미국 내 히스패닉 계통 문화의 주축 중에 하나이듯 이 파벨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펑크 카리오카(Funk Carioca) 가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서 탄생한 음악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치안이 매우 불안하여 문화인류학적 연구 때문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은 파벨라 지역의 앞에 있어 파벨라에서는 거대 예수상(Christ the Redeemer)의 앞을 볼 수 없다 한다. 이는 평생 약자와 빈민의 편에 섰던 예수마저 파벨라를 등지고 서 있는 것 같은 구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벨라는 예수조차도 외면한 동네라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밀거래 등 좋지 않은 범죄들이 예수상 뒤에서 만나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초등학교의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벨라 지역 초등학교는 출석율이 50%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개근상을 받을 정도의 학생이 1개 학급에서 1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취학 수준이 매우 낮다. 파벨라에서 마약 조직원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10대 중반의 나이에 조직원으로 가입하는 경우다. 따라서 파벨라의 10대들은 학력이라고 해봐야 기초적인 수준의 글과 셈을 겨우 익힌 반문맹 수준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층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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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갈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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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러시아의 바흐무트 함락과 젤렌스키의 일본 방문
- 젤렌스키는 지난 21일 프랑스의 정부 전용기 편으로 일본에 가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해당 시기는 나도 일본 도쿄에 가족 여행 중이었기에 현지 NHK 방송을 보게 되는데 NHK에서는 하루 종일 젤렌스키의 방일에 대해 떠들어댔다. 젤렌스키는 G7 지도자들과 만나 그토록 원하던 F-16 전투기를 제공받는 것을 동의받는 것과 3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새로운 군사 지원 패키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레오파르트 2 전차와 다르게 에이브람스 전차처럼 미국에서 언제 F-16 전투기가 우크라이나에 도착할지는 알 수 없다. 에이브람스처럼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같은 동의안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지 또한 알 수 없다. 이 문제로 인해 NHK에서 젤렌스키가 무슨 큰 성과를 낸거마냥 21~22일 이틀 동안 계속 뉴스 메인에 나오며 떠들어 댔는데 동의(Agree)하는 것과 확정(Decide)하는 것은 다른 얘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어 젤렌스키는 친러 성향의 인도, 브라질 정상을 만나 자신의 평화적 구상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일 뿐,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인도와 브라질의 정상들이 자신의 편에 서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표면상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으며 어차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들이 지지하건 말건,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에 어설프게 답변하면서 의도하지 않게 '격전지 바흐무트가 러시아군에 함락됐다'는 주장을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대해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유야 어쨌든 계획한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젤렌스키가 서방의 전폭적인 지지에 빠르게 보답하는 일일 것이다. 서방 측이 기대하는 반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 있어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450일을 넘기면서 서방의 각 국가에서 높아지고 있는 정치, 경제적 부담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한 각 국가의 시민들에게 쏠려 있는 피로도를 해소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부분도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이 2024년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의 예산을 확정 짓는 9월까지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한다. 4개월여가 남아 있지만 여건상 결코 젤렌스키에게 있어 넉넉한 날짜가 아니다. 뭔가를 보여줘야만 군사적을 더 받을 수 있기에 사실상 어쩌고 보면 젤렌스키는 심하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남은 4개월이란, 누군가에게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젤렌스키의 입장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 이유는 바흐무트 전선 때문인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20일 마침내 바흐무트 완전 함락을 선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군 총참모부는 바흐무트 함락 자체를 부인하면서도 "바흐무트의 상황이 위급하다"며 도시 철군을 승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20일 밤에는 우크라이나군의 일부 철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측의 바흐무트 함락 부인에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있는 프리고진은 이에 반박하여 우크라이나의 군인 한 명도 도시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바흐무트의 시 경계선을 따라 1cm도 남겨두지 않고 장악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5월 20일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도네츠크 주(州) 마리우폴이 러시아 군에 함락됐다. 아조프스탈을 거점으로 결사항전하던 우크라이나 아조프 연대는 이 날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 상 바흐무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바흐무트의 함락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독일 일간지 빌트마저도 지난 18일 "바흐무트의 99%가 점령됐고, 우크라이나군은 도시의 가장 서쪽 거리의 한쪽만 통제한다"며 "몇 개의 건물을 지나면 서쪽으로 이바노프스코예 마을까지 거의 2km가 뚫려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에게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고 했다. 말랴르 차관도 "러시아 군이 바흐무트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며 "방어할 수 없도록 건물 토대만 남기는 초토화 작전을 쓰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군은 바흐무트 시 경계선을 지나 서쪽으로 열린 '흐로모보(Хромово)'로 진격해 도시를 북동쪽과 동쪽 두 방향에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흐로모보(Хромово)'는 쉽게 함락될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방어선인 잘루즈니 라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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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러시아의 바흐무트 함락과 젤렌스키의 일본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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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숨은 역사, 이 뜨 띠엔(李嗣先), 딘 끼엔(丁建)의 대당항쟁(對唐抗爭) 봉기
- 당나라 전기 농촌 사회의 분화와 신분제의 붕괴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북베트남 지역에 사족 중심의 향촌 질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관청기록, 안남도호부 기록, 향안 등이 존재하고 있는데 향안의 경우, 한족 귀족들의 신분 확인 증거서류로서 향촌 자치 기구의 주도권 장악의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부분에서 한족 귀족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당나라 고종의 시대에는 일부 천민의 부농화와 더불어 몰락 귀족들의 전호 및 임노동자화가 나타나면서 안남도호부 관할 귀족의 권위들은 급속히 하락했다. 이에 지방 사족들은 여러 종례들을 실시하고, 동족 마을을 형성하여 족적 결합을 강화하였으며 문중을 중심으로 각 학당과 향묘를 설립하는 등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큰 힘을 기울였다. 이 때 부농층이 관권과 결탁하여 향회를 장악하려 하면서 중앙의 관권이 강화되고 향리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이후 재지 사족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던 향회는 국가 권력이 향촌을 장악하게 되면서 점차 세금 부과 자문 기구로 전락하였다. 당나라 태종 말기에 나타난 안남 지역의 부농층은 경제적인 능력을 보유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필요하였다. 이에 정부는 납속과 향직 매매를 허용하여 도움을 주었다. 부농층은 정부의 부세 운영 제도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향임 직위 진출에 실패해도 수령 및 향촌 세력과의 타협으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리 뜨 띠엔과 딘 끼엔이 당나라 조정에 대해 저항 운동을 일으킨 것은, 대를 이어 착취한 귀족층에 대한 대대적인 반기로 당나라의 책봉을 받은 안남 도호부사를 죽이고, 자신들이 스스로 도호부사 지위에 올라 실권을 잡으려 하였다. 이에 참족과 크메르 제국이 운남 지방과 북베트남 지역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군부 형태로 참족과 크메르 제국을 저지하려는 것에도 목적을 두었다. 딘 끼엔의 반란은 상인들의 항의들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리 뜨 띠엔과 달리 딘 끼엔은 대제국인 당나라에 반항하는 번이(蕃夷) 증 하나로 그들은 상인 집단이었다. 그리고 리 뜨 띠엔은 농민 집단이었기 때문에 같은 반란이지만 서로 간에 입장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안남도호부 측은 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지만 모두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초반에는 실패했다. 다만 군사의 수에 비해 그 영향은 비교적 경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안남도호부의 토벌군은 타이응우옌에서 리 뜨 띠엔을 공격해 격파했고 호아빈에 웅거하고 있던 딘 끼엔이 훙 강을 건너 북상하자 당나라는 그들에게 합류한 참족 및 요족과 연합하여 딘 끼엔과 동맹관계에 있는 크메르 제국의 군사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어, 687년에는 크메르 군을 모두 격멸시키고 라오스 북부 지역을 점령하여 남진(南津)등에 5개의 현(縣)을 설치했다. 이와 같이 고립된 딘 끼엔에 대해 당나라군은 참족과 함께 딘 끼엔의 군대에 공격을 진행시켜 통 빈(Tống Bình)을 함락시키고 딘 끼엔을 참살하는데 성공했다. 당나라는 훙 강 서쪽 지역에 홍서현(洪西縣)을 두고, 이후 무려 9개의 현을 추가 설치했으며 측천무후 때는 주(州)로 승격시키면서 기미지배를 하였다. 이와 같이 당나라의 기미지배를 지탱하고 있는 6개 현(縣)의 명칭 중, 북평(北平), 교주(交州), 광북(廣北), 해평(海平)이라는 호칭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당나라 안남도호부의 주변을 안정시키게 되었으며 이는 황소의 난 직전까지 연결되었고 정해군절도사(靜海軍節度使)의 통치 시기까지 연결되었다. 보통 리 뜨 띠엔과 딘 끼엔의 봉기를 기점으로 당나라의 베트남 통치의 균형이 당나라로 서서히 기울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봉기가 당나라의 각 도호부들 통치를 통틀어 당나라 정부가 겪은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만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안남도호부에서의 피해는 당대 중국 대륙을 휘어잡은 당나라에게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한 타격이었다. 리 뜨 띠엔과 딘 끼엔의 봉기가 막을 내린 지 1년도 안 되어 당나라군은 골든트라이앵글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이 봉기에서 당나라의 안남도호부 측이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봉기가 개시된 후부터 따진다면 공식적으로 15만의 전사자, 실종자를 포함해 베트남의 3배가 넘는 약 30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확인 자료에 의하면 무려 50만으로 추정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북베트남 지역에서 8개월 동안 있었던 봉기의 결과로는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큰 규모였다. 이와 같이 승자인 당나라의 피해가 엄청났던 이유는 인명을 경시하는 당나라 조정에 집권한 계층의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했다. 전쟁 초기부터 작전 능력의 차이로 인해 계속 패전을 거듭했던 당나라는 안남도호부가 존재한 하노이를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인과 한족, 귀족 계층의 선비족까지 소모품으로 이용했다. 물론 전략적으로 베트남 봉기군을 붙잡아 놓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그 희생이 매우 컸다. 또한 물적 피해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측천무후 이전 당나라의 붕괴 후 조금씩 드러난 기록들에 따르면 약 200개 군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군비가 이 하노이에서의 혈전에 소모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혈전의 무대였던 하노이는 지도에서 사라진 것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략적으로 보면 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임에는 틀림없었으나 피해 규모로만 놓고 본다면 승리라고 하기에는 매우 고통이 큰 것으로 보인다. 여러 자료들에는 이를 전투(Battle)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하노이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전쟁(War)이나 마찬가지였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하노이 혈전처럼 비참한 살육의 현장들 중에서도 686~687년에 있었던 하노이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은 악한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지옥이었다. 군사 전략상이라는 관점을 벗어난다면 과연 이 전투에 승자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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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숨은 역사, 이 뜨 띠엔(李嗣先), 딘 끼엔(丁建)의 대당항쟁(對唐抗爭)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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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왕조의 북아프리카 지배와 레반트 및 지중해에 끼쳤던 영향
- 파티마 왕조는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사회적”이고 혁명적인 시아파의 한 분파인 이스마일파의 이맘으로 집권했는데, 이는 본래 이슬람에서 예언된 메시아인 마흐디의 도래를 선언하면서 그와 같은 문구를 게재했던 것이다. 이 분파의 기원과 왕조 자체는 9세기 후반 이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파티마 통치자들은 창시자인 압둘라 알 마흐디 빌라를 시작으로 대부분 아라비아 출신이었다. 소카빌리아(Socavilia) 출신의 쿠타마 베르베르 족은 일찍이 파티마 왕조에 의해 이스마일파로 개종하여 그들 제국의 군대를 구성했다. 시아파는 우마이야 왕조 및 압바스 왕조와 같은 보편적인 수니파 칼리프들을 찬탈자로 여겨 격렬하게 반대했다. 대신에, 그들은 오직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를 통해 이어져 내려온 알리의 후손들만이 무슬림 공동체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나중에 그들의 추종자들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대표자라고 여긴 알 후세인을 통해 이맘이라는 형태로 새롭게 나타났다. 동시에,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는 진정한 이슬람의 정의와 전통을 회복하고 종말의 시대에 나타난다는 마흐디(Mahdī, 올바르게 이끄는 자)" 및 "카임(Qāʾim, 일어서는 자)"의 출현에 관한 종말론적인 예언이 분파되어 있었는데, 민중들은 이 인물이 시아파이자 알리의 후손일 것으로 여겼다. 이후 이와 같은 믿음은 시아파들 사이에서 그들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가 되었고, 죽거나 처형당한 몇몇 시아파 지도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그들의 추종자들은 이들이 은둔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약속된 날에 반드시 돌아오거나 부활할 것이라 믿었다.이러한 전통은 6번째 이맘인 자파르 알 사디크(Jafar Al Sadiq)의 계승 문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알 사디크는 아들 이스마일 이븐 자파르(Ismail Ibn Jafar)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지만, 그는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으며 765년 알 사디크가 임종을 맞이할 때 그의 후계자 자리는 공석에 놓여 있었다. 대부분은 알 사디크의 아들 무사 알 카짐을 새로운 이맘으로 추대하면서, 874년에 11대 이맘의 후계자인 12대 이맘이 자취를 감춘 이후 언젠가 그가 마흐디로서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몇몇 추종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심지어 이스마일 이븐 자파르가 사망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그나 그의 후손들을 또 다른 마흐디로 여겨 그의 귀환을 고대하게 되었다. 전자는 후일 12이맘파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후자는 7이맘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7번째 이맘의 정확한 신원은 논란이 되었지만, 대체로 9세기 후반까지는 이스마일의 아들이자 알 사디크의 손자인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로 여겨졌다. 파티마 칼리파국을 건국한 세력은 이 중에서도 7이맘파를 추종하는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이스마일의 이름을 차용하여 이스마일파라고 칭해졌다. 압바스 왕조의 시아파에 대한 가혹한 박해로 이스마일파의 이맘들은 은둔 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이들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특히 하룬 알 라시드(Harun Al Rasid, 786~809)의 통치 기간 동안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이 사망한 이후 초기 이스마일파의 행적은 더더욱 모호해졌다. 그러나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은 압바스 왕조 당국의 탄압을 피해 은둔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신자들을 모으면서 이스마일파의 세를 늘려 나갔다. 특히 그는 나중에 비밀 연락망을 구축하고 다와(Daʿwa, 초대 / 부름)라는 말을 전파하면서 그의 귀환을 준비하고 대표할 몇몇의 인물들을 선별했다. 이러한 비밀 연락망의 수장은 이맘의 실존 여부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 훗자(ḥujja)였다. 최초로 알려진 훗자는 시리아 사막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 살라미야에 정착한 후제스탄 출신의 부유한 상인 압둘라 알 아크바르(Abdula Al Akbar, 연장자 압둘라)였다. 곧 살라미야는 이스마일파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고, 압둘라 알 아크바르의 아들과 손자들은 이스마일파 선교의 주요 "원로(Grand Master)"가 되었다. 9세기의 마지막 3분의 1 동안, 이스마일파는 사마라의 혼란기로 인한 압바스 왕조의 붕괴와 이어지는 잔즈 반란으로 인해 수니파 세계가 일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하여, 그들의 지도력에 대한 정치적인 침묵주의와 12번째 이맘의 실종에 대한 12이맘파 신자들의 불만을 이용하면서 널리 분파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함단 카르마트 및 이븐 하우샤브와 같은 선교사들은 870년대 후반에 쿠파 주변 지역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882년 예멘과 884년 인도, 889년 바레인, 페르시아, 마그레브로 비밀 연락망을 구축하고 이스마일파의 교세를 확산시켰다. 899년, 압둘라 알 아크바르의 증손자였던 압둘라가 새로운 수장이 되면서 이스마일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기존 교리의 급격한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그의 조상들이 더 이상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에 대한 "훗자"가 아닌 정당한 이맘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또한 민중들에게 재림이 기대되었던 마흐디였다고 주장했다. 후일 파티마 왕조는 알 후세인이 이스마일 이븐 자파르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계보 및 기록들을 내놓았지만, 심지어 그들의 자료에서조차 이맘의 이름과 계승이 각각 다르며, 이로 인해 수니파 및 12이맘파는 파티마 왕조에 대한 모든 혈통적인 주장을 거부하고 그들을 사기꾼으로 간주했다. 압둘라의 주장은 이스마일파에 균열을 일으켰는데, 대부분의 이스마일파 공동체는 알 후세인에게 충성을 유지했으나 몇몇 선교사들, 특히 이스마일파 선교에 열성적이었던 함단 카르마트와 그 추종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크게 비난했다. 그들은 이스마일파 본래의 교리를 고수하면서 아라비아 동부(알 아흐사)에 정착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확보했고, 후일 카르마트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902년에서 903년 사이에 친 파티마 왕조의 충성파들이 시리아에서 대규모 봉기를 시작했다. 이에 대한 압바스 왕조의 빠른 대응과 그것이 그에게 가져온 관심은 압둘라가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 그리고 마침내 마그레브로 이동하도록 강요했다. 그곳은 이스마일파 선교사였던 아부 압둘라 알 쉬이가 쿠타마 베르베르족에게 교리를 설파하고 그들을 대거 개종시키는 등 일련의 진전이 있었던 곳이었다. 약 8개월 동안 북아프리카를 횡단한 압둘라는 904~905년 사이, 카와리지파 미드라르 왕조 치하의 시질마사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이프리키야의 혁명을 지켜보게 되었다. 파티마 왕조가 설립되기 이전에, 이프리키야를 포함한 마그레브의 상당 부분이 명목상으로 봉신 왕국이었으나 사실상 독립적으로 그 지역을 통치했던 아라비아 왕조인 아글라브 토후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893년, 아부 압둘라 알 쉬이는 오늘날 알제리 북서부 밀라 근처의 익잔(Ikjan)이라는 도시에 정착하여 바누 사크탄(Banu Saqtan, 쿠타마 베르베르족의 한 분파)에게 마그레브 최초로 시아파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글라브 당국의 탄압과 다른 쿠타마 부족들의 적대적인 태도로 인해, 그들은 익잔을 떠나 타즈루트(Tajrut, 밀라에서 남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부족인 바누 가슈만(Banu Gashuman)에게로 갔다. 거기서부터 그는 새로운 선교 활동에 대한 지지를 축적해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대적인 쿠타마 부족과 인근 도시(밀라, 세티프, 빌리즈마)의 아라비아 토후들이 함께 연합하여 그에게 대항했으나, 알 쉬이는 그들이 채 동맹을 맺기도 전에 우호적인 쿠타마 부족들과 함께 진격하여 저항 세력을 분쇄했다. 이와 같은 첫 승리는 알 쉬이와 그의 쿠타마 군대에게 귀중한 전리품을 가져다 주었으며, 이스마일파 선교에 대해 더 많은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 후 2년 동안 알 쉬이는 설득이나 강요를 통해 대부분의 쿠타마 베르베르족을 이스마일파로 개종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아글라브 토후국 통제 하의 주요 도시 거점들을 제외한 마그레브 대부분의 시골 지역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타즈루트에 기반을 둔 이스마일 시아파 신정국가를 설립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이전 이스마일 선교식 연합적인 부분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하였지만, 어느 정도는 현지의 쿠타마 베르베르족을 감안하여 그들과의 관계 및 부족 구조에 맞게 변화시켰다. 알 쉬이는 알 후세인과 자주 접촉하면서 이 조직의 수장에서 전통적인 이슬람 통치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아울리야 알라(Awliya' Allah, 하나님의 친구)라고 알려진 선교를 계속했으며 그들을 이스마일파의 교리로 인도했다. 서기 900년 무렵 이프리키야의 아글라브 토후국은 혼란 시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베르베르인들은 발라즈마(Balazma)에서 아라비아인들을 학살하고 튀니스에서 봉기를 일으키는 등 아글라브 당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반란은 902년, 아글라브 군대가 나푸사(Nafusa) 산에서 하와리지파 베르베르 군대를 분쇄하면서 일단락되었는데 그 직후에도 불안한 움직임이 계속 감지되었다. 902년, 아글라브 아미르 이브라힘 2세(Aglav Amir Ibrahim III)가 시칠리아로 원정을 떠난 틈을 이용하여 알 쉬이는 콩스탕틴(Constantin) 인근의 밀라(Mila)를 공격하여 함락시킴으로써 북아프리카에서의 아글라브 패권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된다. 이 소식은 카이로완의 아글라브 당국에게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고, 같은 해 10월 그들은 12,000명으로 구성된 토벌대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도록 했다. 알 쉬이의 군대는 이들에게 큰 저항을 못하고 당했는데, 두 차례의 패배 끝에 그들은 타즈루트를 탈출하여 익잔으로 피신했다. 곧 익잔은 파티미야 혁명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으며, 알 쉬이는 선교사와 첩자들로 구성된 그의 비밀 연합을 재구축했다. 이브라힘 2세는 남부 이탈리아에 머무르다 902년 10월에 사망했으며 압둘라 2세가 그 뒤 승계했다. 903년 초, 압둘라 2세는 익잔의 쿠타마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또 다른 원정을 시작했지만, 때마침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어진 내전으로 인해 이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903년 7월 27일 압둘라 2세가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 지야다트 알라 3세(Jiyadat Allah III)가 튀니스에서 권력을 쟁취했으나, 내전으로 인해 분열이 가속화 된 아글라브 정부는 이스마일파의 세력화에 대한 조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한 상태였다. 이는 알 쉬이가 이끄는 베르베르 군대가 밀라를 탈환하고 다음 해 10월이나 11월까지 또 다른 요새 도시인 세티프(Setif)를 함락시키도록 이끌었다. 이는 후일 파티마 왕조로 발전할 이스마일파 국가의 초석이 놓여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905년에 아글라브 왕조는 세 번째로 토벌대를 파견하였으나, 이들은 카유나(Kayuna)에서 쿠타마 군대의 기습을 당해 패배하고 말았다. 아글라브 군의 장군은 급히 도주해야 했으며 쿠타마 인들은 수많은 전리품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혁명군의 승리는 906년 3월 무들리 이븐 자카리야(Mudli Ibn Jakariya)의 휘하 아글라브 군대의 봉기가 일어나면서 큰 탄력을 받았다. 이 군사 반란은 아글라브 이프리키야 국가가 붕괴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조직된 토벌대를 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알 쉬이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친 아글라브 측 쿠타마 부족장들이 피신해 있던 요새도시 투브나(Tubna)를 점령하였다. 투브나는 일대의 주요 상업 중심지이자 아글라브 왕조의 핵심 군사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곳이 함락된 것은 혁명에 큰 의의가 되었다. 한편 지야다트 알라 3세는 증가하는 반란군의 위협에 대응하여 그의 궁정을 튀니스에서 카이로완 인근의 궁전 도시 라카다(Rakada)로 이전시켰으며 그곳을 요새화했다. 907년에 쿠타마 군대는 발라즈마, 바가야(Bagaya), 티지스(Thizis) 요새를 연달아 함락시켰으며 이로써 아글라브 왕조는 동부 알제리 고원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에 지야다트 알라 3세는 반혁명 선전을 강화하고 병력을 모두 집결시키면서 카이로완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907~908년 사이의 겨울을 그의 군대와 함께 마지막 거점이었던 알 아르부스(Al Arbus)에서 보냈으며, 북부로부터의 공격을 예상하고 그곳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후 1년 동안 양측 모두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서로 간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지지 부진한 전황을 이어갔다. 다만 908년부터 909년까지 알 쉬이 측이 튀니지 남부(Chotel Zerid)를 장악하고 투주르(Tujur), 나프타(Napta), 가프사(Gapsha)를 함락시킨 것만이 유일한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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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왕조의 북아프리카 지배와 레반트 및 지중해에 끼쳤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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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행정, 입법은 당시의 기준으로써 매우 선진적
- 로마 공화정은 그리스의 폴리비오스(Folivios) 등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우수한 정치 체제로 찬사 받았다. 특히 공화정은 Res Publica의 번역어로 나타나는데 이 뜻은 원래 “공공의 것” 혹은 “공동의 부”를 의미하며 사적 문제나 사유 재산과 반대되는 뜻으로 공적 문제와 공동의 재산을 지칭했다. 이 말이 로마의 통치 형태를 지칭하게 되어 역사적으로 B.C 5, 4세기에 발전한 로마의 공화정을 뜻하게 되었다. 로마 공화정은 과두정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로마의 정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고, 귀족들이 통치 행위를 균등하게 분담하면서, 다만 귀족 계층들이 권력을 전횡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법과 제도를 두고 있는 형태였다. 로마 공화정 시대의 헌법은 다양한 성문법과 로마 특유의 불문법, 관습에 기반 하여 거의 500년 동안 지속된 헌법이라 볼 수 있다. 로마 헌법의 기본적 구성은 로마 왕국 시절의 헌법에 기반 하여, 실질적이고 의미 있게 변모하면서 발전했다. 이러한 로마 특유의 공화적인 전통은 제정 시대를 지나 후일의 비잔틴 제국에서도 그 잔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로마 공화정의 헌법은 크게 세 가지 집단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도시국가의 과두 정치 체제의 중요 원리를 두고 운용되었다. ① 로마시민권자로 구성된 민회 ② 선출직 공직자 및 치안판사에게 조언하고, 그들의 법적 권위를 존중하며 행동하는 원로원 ③ 로마시민권자가 선출한 선출직 공직자(집정관, 법무관, 감찰관, 재무관 등) 따라서 로마 공화정 체제에서 평민은 호민관을 선출할 수 있었고, 민회는 그들의 이익을 이론적으로 보장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화정을 통치하는 것에 필요한 종교, 군사, 사법권을 행사하는 선출직을 돕거나 이를 견제할 수 있었다. 이는 원로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여러 성문법과 관습법을 통해, 전직 집정관, 전직 법무관 신분의 로마시민권자들은 담임 권을 보장받고 집정관, 호민관은 법률을 승인 또는 거부할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 B.C 4세기 무렵, 일반적으로 공화정 체제에서 최고위급 직급인 집정관, 고대 그리스의 아레오파고스보다 더 진보적인 의회인 원로원, 민회인 호민관과 같은 제도가 정착했고 원로원 중심의 과두 정치 체제가 안정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후기 공화정 체제로 불린 B.C 2세기 이후, 여러 혼란과 내전을 거치면서 서서히 공화정 체제의 여러 제도가 위협 받게 되었다. 이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로 불리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임페리움(Imperium)이라 불리는 통솔권 정쟁 이후, 술라 체제가 들어서면서 큰 전환을 맞게 되었다. 술라 개혁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으며, 이는 계속된 내전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장기간의 내전은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서 종식되었고, 그가 사실상 유일무이한 로마의 제1인자이자 아우구스투스가 되면서 “형식적인 공화정체-실질적인 제정(Publicum formale regimen - practica omissum)”으로 불린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원수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로마의 왕정 시대와 마찬가지로 공화정 초기에도 원로원(Senatus)은 순수한 자문 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위 정무관 역임 자들이며 종신직인 원로원 집단은 집단적 권위(Auctoritas)를 가졌고, 재정 통제권을 갖고 있었다. 원로원은 정무관들이 민회에 상정하는 모든 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평가 할 수 있었으며, 정무관의 자문에 대해 원로원 결의(Senatus consultum)를 내렸다. 정체가 발달하면서 집정관을 비롯한 정무관들이 법률로 규정되지는 않으나 실질적으로 중대한 대내외 정책에 대해 원로원에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그 영향력은 점차 강해지게 된다. 로마의 시민들은 정무관 선출, 법률 제정, 재판, 전쟁, 외교 등 주요 국사를 직접 결정하기 위해 민회에서 투표를 하였다. 로마의 민회에는 원래 세 가지가 있었다. 씨족과 부족의 중간 단위인 쿠리아(Curia) 30개로 구성된 쿠리아 회(Comitia Curiata), 최소의 군대 단위인 켄투리아(Centuria, 백인대) 193개로 이루어진 켄투리아 회(Comitia Centuriata), 부족 지역구(Tribus, 트리부스) 35개로 구성된 트리부스 인민회(Comitia Tributa Populi)가 그것이다. 그러나 신분 투쟁의 결과로 B.C 471년에 평민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트리부스 평민회(Concilium Plebis Tributum)가 생겨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정무관(Roman Magistrate, Magistratus)은 일정 수준의 주요 권한(Maior Potestas)를 보유하였다. 이들은 자신과 동급이거나 낮은 서열의 정무관이 내린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민관과 평민 조영관은 예외로 독립적인 관직이었다. 공화정 시기 각 정무관은 법에 따라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권력을 부여한 주체는 오직 로마의 인민으로 알려진 플레브스와 파트리키였다. 여기에서 파트리키 최고의 권력을 명령권(Imperium)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집정관과 법무관이 보유하였다. 더불어 명령권의 경우, 군사 지휘권에 있었다. 또한 모든 정무관은 강제 권한이 존재했다. 이를 통해 정무관들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였으며 로마의 시민들은 강제 조치에 대해 절대적인 보호권(Provacativo)을 갖고 있었다. 정무관은 권력을 보유하면서도 한편 신의 전조(징조, Omen)을 살펴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이는 종종 정적에게 악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정무관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는 상호성(Collegiality, 共治)이 존재한다. 이는 독재를 막기 위해 각 정무관 직위는 최소 두 명 이상이 맡았던 것이다. 다른 견제 수단은 보호권(Provocativo)인데, 이는 적법절차의 초기 형태로 오늘날 인신 보호 영장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어떤 정무관이 국가 권력으로 시민을 억압하려 했다면, 그 시민은 호민관에게 청원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정무관이 자신의 1년 임기를 마치면, 향후 10년 동안 해당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금지하였다. 이 제도는 집정관이나 법무관의 경우 문제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권을 연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해당 정무관은 임기가 끝나 공식적인 직위가 없어도, 사실상 정무관의 권한을 계속 보유하게 되었다. 이를 대행 정무관(Promagistratus)이라 한다. B.C 2세기 로마에 볼모로 잡혀왔던 그리스 출신의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집정관, 원로원, 민회의 기능에 주목하여 로마 공화정을 혼합정체(Mikte)로 규정하고, 이 세 요소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로마가 짧은 시간에 부국강병을 이루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였다고 격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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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Nova To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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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의 행정, 입법은 당시의 기준으로써 매우 선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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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200년 악연의 시작과 현재
-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악연은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된다.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은 카프카스 지역으로 남하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란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란 카자르 왕조와의 전쟁에 승리하면서 카자르 왕조의 근거지였던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정복하였다. 1828년에는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이란 카자르 왕조는 투르크멘차이 조약(Treaty of Turkmenchay)을 통해 국경선을 확정하였는데, 이는 아제르바이잔의 독립 이후, 오늘날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으로 거의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당시 러시아 제국은 아제르바이잔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이란과 내통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반란을 획책할 것을 깊게 우려하고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 제국은 시아파 무슬림 종무청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사용을 제한하고 대신 아제르바이잔어 사용을 장려하여 시아파 무슬림들의 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의 정책이, 아제르바이잔어가 현재 아제르바이잔에 정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조지아의 티플리스(Typlis, 트빌리시)와 보르조미(Borjomi) 등이 러시아인들의 온천 휴양지로 개발된 것과 달리, 아제르바이잔으로 러시아인들이 이민한 계기는 19세기 중반 바쿠에서 유전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남부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통치하던 카자르 왕조가 심각한 부패와 기근 문제가 최악의 참사로 일어났고, 이를 "페르시아 대기근(Persian Great Famine)"이라 불리는데 당시 대기근으로 무려 150만 명이 아사했다. 이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인 상당수가 국경을 몰래 넘어 바쿠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러시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섞여 살게 되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농촌 지역에서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이단으로 박해받던 몰로칸파(Mолокан) 신도들이 여타 러시아 정교회 신도들과의 갈등을 피해 아제르바이잔 일대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이슬람과 몰로칸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당시 카스피해에서 석유가 본격적으로 산업에 차용되던 20세기 초반, 바쿠에서 기적적으로 생겨난 검은 황금인 석유는 러시아제국에게 있어 산업 경제에 큰 이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석유가 채굴이 된다 하더라도 이 막대한 석유를 옮길 방법이 없으면, 혹은 석유 시추에 대한 기술이 없다면 소용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당시 기술로 본다면 석유를 이송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수의 노새를 이용해 실어 옮기는 것이었는데, 이는 발굴한 노력에 비해 옮길 수 있는 양에 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제국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스웨덴의 노벨 가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스웨덴의 노벨 가문은 여러 생각을 한 끝에 러시아 제국의 풍부한 수원의 흐름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실어 나르기만 한다면 바쿠 유전이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올 것임을 확신했고, 이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개시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사업이 바로 카스피해로 연결되는 볼가 강 하구인 아스트라한 습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때 볼가 강 각 곳에 카스피해에서 채굴되는 석유가 운반되기 시작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볼가 강 각 지역에 운하가 만들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러시아 볼가 강 유역의 운하들은 카스피해의 막대한 석유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시초가 된 셈이다. 당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은 석유 산업에 이렇게 발을 담구게 된다. 그는 서유럽에서 막대한 돈을 벌고 있었는데, 루드비히 노벨과 로베르트 노벨이 알프레드를 설득하여 석유 회사에 자금을 대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취득한 막대한 부는 노벨이 사망한 이후 제정된 막대한 노벨상 초창기 상금의 원금이 된다. 이후 노벨 가문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미국의 스탠다드 제국보다 약간 빠른 시기에 운하를 통한 운송 다음으로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는 송유관을 개발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노벨가문은 거의 세계 최초의 유조선인 조로아스터(Zoroaster) 호를 만들어 출항시켰다. 그러나 바쿠 유전이 가진 막대한 가능성과 그 효용성을 알아 본 사람들과 국가, 가문들은 스웨덴의 노벨 가문 뿐이 아니었다. 세계 석유 시장을 지배하면서 장악하고 있던 미국의 스탠다드 오일과 당시 세계 금융가를 장악하고 있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후원하는 로얄 더치 쉘(Royal Dutch Shell), 러시아와 라이벌이면서 그레이트 게임 등을 통해 러시아와 대적해왔던 영국의 부유한 상인들이 엄청난 투자를 했으며 미국과 독일 제국마저 바쿠를 노렸다. 로스차일드는 그동안 노벨 가문에게 돈을 지원해주면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었다. 이 때 스탠다드 오일이 바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전 세계 금융가에 퍼지게 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당시 세계 최대의 석유 제국이라 불리는 스탠다드는 미국 석유의 90%이상을 장악한 거대 기업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즉각 태도를 바꾸어 스탠다드와 동맹을 맺고 노벨 가문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거기에 아제리아 바투미 석유 회사까지 인수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석유사업에 뛰어들었다. 노벨 가문의 브라노벨은 1879~1883년에 이르는 4년 여 기간 동안 2,000% 생산량 증대를 노렸다. 그러면서 러시아 시장을 50%까지 장악하면서 카프카스의 로스차일드와 스탠다드를 위협했다. 그러자 로스차일드와 스탠다드는 바쿠를 과감히 포기하고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Ploiești)로 옮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이 꾸준히 바쿠에 유입하게 되는데 이 때 바쿠에 유입된 러시아인들은 대개 포그롬 사태로 인해 카스피해 일대에 이주해 온 러시아계 유태인들이었다. 이후, 바쿠의 인구 30%가 러시아계 유태인들로 자리 잡게 된다.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과 남다른 유대감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이들 러시아계 유태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상당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시대부터 남아있던 아제르바이잔 투르크인들이 유태인과 섞여 살게 되었는데 이들은 서로의 종교를 박해하지 않고 나름 평화롭게 잘 지냈다. 그러나 1905년이 되면서 크림 타타르족 출신 이슬람 모더니즘 사상가인 이스마일 가스프린스키(Исмаил Гаспринский)의 영향을 받은 신식 이슬람 학교들이 바쿠를 중심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투르크-타타르 민족주의의 광풍이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카스피해 일대에 불어 닥치게 된다. 이스마일 가스프린스키(Исмаил Гаспринский)는 범투르크주의를 기반으로 이슬람의 현대화를 주장하던 인물로, 부하라의 전통적인 이슬람 마드라사들을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무슬림 사회를 대표하고 있는 적폐로 묘사했다. 이와 동시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존재하는 립카 타타르 그룹들을 무슬림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사례로 내세웠다. 시아파 이슬람 세계에 속해 있었던 바쿠의 지식인들은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전통적인 농촌 마드라사들을 낙후한 무슬림 사회의 전형으로 보게 되면서 이란 문화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그 대신 러시아를 통해 수입된 서구식 민족주의 및 범투르크주의에 대단히 열광하게 되었다. 이는 후일 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이란과 거리를 두고 수니파 이슬람이 우세한 터키와 친교 관계를 강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아제르바이잔의 여러 이슬람 칸국들은 종파 문제 때문에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잦은 전쟁을 치르던 적대 관계였지만 이란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친(親) 오스만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1918년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붕괴되면서 소련이 출범한 이후에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자카프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이 되었다.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에 완전히 병합되었으며 당시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자치 형태의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남게 되었다. 이미 바쿠에는 1904년부터 볼셰비키 조직이 자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일찍이 바쿠 유전에서 근로하는 산업 노동자 계급들이 형성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들 노동자 계급들 대부분이 러시아계 유태인들이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1926년 바쿠에서 개최된 투르크어학 대회에서 아제르바이잔어에서 페르시아 문자 사용을 금지하고, 라틴 문자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해당 조치들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인들이 터키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며 러시아어 습득에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게 되니 다시 소비에트 정권은 1939년부터 아제르바이잔어를 키릴 문자로 표기하도록 방침을 변경하게 된다. 모든 소비에트 자치 국가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아제르바이잔에도 스탈린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의 민족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은 상당수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당했다. 소련의 일부가 된 이후, 스탈린 시절에는 50,000명이 넘는 아제리인들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당했는데 그중에는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남부 아제르바이잔 지역도 소련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소련은 아제르바이잔을 지배하면서 남부 아제르바이잔에도 잠시 소련의 위성국으로 알려진 길란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을 세웠지만, 이후에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병시켰다. 레닌 시기에 발생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는 스탈린이 아제르바이잔의 편을 들어주면서 나히체반과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귀속시키면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지역을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1988년 2월 27일에는 아제르바이잔계 무슬림들이 무리를 지어 거리와 아파트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을 공격하고 살해하는 숨가이트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이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게 된다. 당시 고르바초프 정권이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고 아르메니아인들의 보복으로 발생한 카살리 학살을 적극 지지하면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급격한 반러시아 시위들이 일어나 오히려 서방 세계와 미국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졌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 세계는 더욱 노골적으로 아르메니아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친서구 정책을 취하던 민주 정부가 붕괴되면서 헤이다르 알리예프(Heydar Aliyev) 정권이 집권하게 되었고 아제르바이잔은 친러 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용어는 러시아어 민족 자치어는 아제르바이잔어였고, 공교육은 러시아어와 아제르바이잔어로 이루어졌다.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대를 거치며 아제르바이잔 내 타트족 및 탈리시족과 같은 소수민족 집단이 모어인 타트어 등으로 글을 읽고 쓸 줄은 모르지만 러시아어로는 글을 자유자재로 읽고 쓰게 되면서 이들 소수민족의 글과 말은 완전히 사장되었다. 그리고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한 이후에 러시아어만 사용하게 되었고 같은 이유로 세대가 지나면서 점차 모어를 잊어버려 아제르바이잔인으로 완전히 동화되기 이른다. 러시아 제국 시대 바쿠 일대의 유전 지대가 개발되었던 영향으로 인해 아제르바이잔이 소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편이었다. 당시 적지 않은 러시아계 유태인들인 석유 화학 기술자들이 아제르바이잔 일대에 체류하였으나,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대부분 러시아 등으로 돌아가 버리고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에 잔류한 러시아 인들은 대개 19세기 초,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주해 온 몰로칸파와 유태인들의 후손들이기에 러시아에 돌아갈 연고지가 없는 사람들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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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200년 악연의 시작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