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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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진이다.(사진=저널인뉴스DB)

 

“예수믿고 구원받으라!” 지하철 서울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울역사를 올라갈 때마다 듣는 소리이다. 소음에 가깝다. 서울역사 앞에 확성기를 켜놓고 예수 믿으라고 떠드는 종교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그 광경이 신기해서 그 근처를 둘러보았다. 


3곳이나 천막을 펼쳐놓고, 천막 안에는 테이블도 갖춰 놓고, 천막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춤추는 신도들도 있었다. 다행히 호객행위는 하지 않았다. 저들은 왜 저럴까? 내 눈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들의 행위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미소가 넘치기조차 한다. 


그들 눈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내가 아픈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천막에 써놓은 글씨로 봐서는 예수 전도회, 천리교라는 단체로 보인다. 서울역사를 방문할 때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루는 지인과 함께 서울역사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지인이 말한다. “저 사람들 왜 저러는 거야? 매번 저러고 있어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렇게 열심히 예수를 찾으니 예수가 사는 천국에 가면 저 사람들은 분명히 큰 상을 받을 것 같아요.” 확성기를 통해 전달되는 말의 내용은 단순하다. 


“예수는 다시 이 땅에 오신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으라.” “천국의 백성이 되어라. 예수믿고, 구원받으라. 할렐루야!”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선교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왠지 모르게 사이비종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교의 자유는 인정하겠지만, 확성기의 소음은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관할 경찰서에 문의해 봤지만, 법적 권한이 없기에 자신들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한 반성이 없을 때 사이비가 탄생할 것이다. 자기 편향에 매몰되어 비판적으로 자기반성을 할 수 없기에 맹신이나 맹종의 싹이 움튼다. 사이비종교는 그런 토양에서 자란다. 저들이 믿는 하느님의 자리에 히틀러가 자리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저들은 현대판 나찌즘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는 아직도 나찌즘들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히틀러가 나찌즘은 만든 것이 아니고, 모래알처럼 흩어진 나약한 개인들이 나찌즘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의 모든 것은 나의 덕택이고, 나의 모든 것은 여러분의 덕택입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대중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과 히틀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 상호의존적인 관계였다. 전체주의는 그런 곳에서 탄생한다.


아렌트는 유럽 계급체계의 붕괴에서 나타난 대중적 인간의 고독한 심리적 상황에서 전체주의의 뿌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00여 년 전 유럽에서 전체주의가 탄생한 것은 국민을 국가에 묶어두었던 보이지 않는 끈들이 모두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들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뿌리뽑힌 대중들이었다. 잉여존재였다. 그들은 그들의 공허함을 채워 줄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전체주의 운동은 그러한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오늘날 한국 땅에서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는 것도 그러한 운동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의 계급 붕괴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오늘날 현대는 계급의 붕괴가 아니라 정체성 혼란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끝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이다 보니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 그들이 설 수 있는 땅이 사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찾아오는 개인의 고독이나, 외로움, 그리고 불안이라는 감정이 맹신과 맹종을 낳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맹신이나 맹종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현상이다. 사이비와 정통의 기준이 참된 자기반성으로 본다면, 태극기부대는 왠지 모르게 사이비에 가깝다고 보인다. 그들의 집회에 성조기도 보이고, 이스라엘 국기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특히 정치적인 분야에서 사이비들이 많다. 민주당의 친문, 비문이나 친명, 비명이라는 구분도 일반 시민이 바라보기에 우습게 보인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건국전쟁>을 언급하면서 이승만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다. 


이승만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가에 의해 객관적인 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방적으로 이승만을 찬양하는 일부 역사가들도 있다. 그들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나 차이점이 무엇일까?


전체주의는 개인을 조직적으로 외롭게 만든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자기들끼리의 강한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강철의 끈으로 서로를 강하게 결속시킨다. 그곳에서는 생각의 자유를 누릴 공간이 없어진다. 그 속에서는 자유가 박탈당한다. 그들만 모를 뿐이다.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지만, 그들은 현실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기대어 설 땅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유하는 인간들이다. 전체주의는 과거의 역사적인 한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조건만 형성된다면 전체주의는 다시 탄생할 수 있다. 


서울역 광장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선교하는 집단이 바로 전체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온다면 그들을 위하여 서울역 어느 한 곳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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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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