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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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온지 일주일이 넘어간다. 태국에서 연구하며 지내다보니 이 지역의 사회성이 고스란히 비춰진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 같은 고고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의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대한 강렬한 레이더는 피해갈 수 없다. 태국은 트랜스젠더와 여성 사회가 공존하며 성소수자들의 천국이다. 보통 방콕의 번화가인 카오산 일대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흐리멍텅한 눈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듯한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 나오기도 한다. 내가 방콕에 머물면서 논문 작업을 위해 자주 가던 카페에도 성전환 한지 3년 된 트랜스젠더가 사장이다. 그 외에도 각종 동성애자들, 마약이 합법화 된 태국에서는 날마다 마리화나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들이 넘쳐난다. 방콕만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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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iss International Transgender Bangkok의 수상을 받은 트랜스젠더들,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태국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미인 대회가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하나는 국내 대회이고 또 하나는 세계 각국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참여하는 국제대회인데 3일 후에 태국 국내 트랜스젠더 미인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태국 전역에서 트랜스젠더 15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는데, 이 대회 입상자들에게는 모델이나 연예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지상파 방송으로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대회 우승자는 전 세계의 트랜스젠더들이 참가하는 미스 인터내셔널 퀸 대회에도 출전하게 된다. 이게 퀸인지 킹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국에서 트랜스젠더들에게 관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역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태국은 미얀마와 전쟁을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하다보니 나라의 남자란 남자는 모두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었다. 전쟁때문에 성비가 한 번 깨졌는데 그 성비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타이족의 아유타야와는 대체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유타야가 버마의 복속을 목적으로 비우호 정책을 취하자 화가 난 떠빈슈웨티는 아유타야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생한다. 16세기 중반, 버마족이 아유타야를 침략해서 잠시 동안 아유타야 왕국을 정복했다. 

 

그러나 아유타야의 왕인 나레쑤언(Naresun)이 코끼리를 타고 극적인 결투를 벌여 버마의 태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후, 버마인들을 격파했다. 1760년대에 버마족은 아유타야를 또 다시 공격했다. 1767년 아유타야 시는 버마족에게 약탈당했으며 많은 수의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때 상당수의 태국 남성들이 전사하는 등, 남자의 수가 줄어들자 아들을 잃기 싫은 어머니들은 아들을 여자로 키우기 시작한 것에서 제3의 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게 된다.


이처럼 태국에서는 자식들이 군에 끌려가 죽는 걸 원치 않았던 부모들이 아들을 여장시켜 징발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런 여성처럼 보이는 남자가 모계 중심 사회였던 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 것이라 볼 수 있다. 트랜스여성들이 스스로를 카토이(Katoi)라는 이름으로 제3의 성으로 정체화하고 사회에서도 카토이를 제3의 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제3의 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태국의 경우, 모계 중심 사회이다 보니 여성이 가지는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일부러 출세를 위해 성 전환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다. 그러나 태국이 정말 트랜스젠더에게 개방적인 이유는 태국이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인 것과 관련이 있다. '타이'라는 국명 자체가 태국어로 '자유'를 뜻하기도 하고 과거부터 태국인들은 성 주체성이 달라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차별하지 않았고 자신의 성 주체성을 드러내었어도 성 주체성에 혼란이 있는 경우, 성전환하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또한 이러한 성전환에 관대한 문화가 계속 이어져 현대에도 성 소수자들이 성 주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현재 태국 일부 공공 시설에는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외에 여장남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따로 설치될 정도로 성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정착되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태국은 부분적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로 징병될 나이가 되었을 때 여장남자들의 경우 자신이 오랫동안 여성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을 할 수 있다면 대부분 병역이 면제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 인터내셔널 트랜스젠더(Miss International Queen)라는 미스 타이 대회도 개최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전용 공연장이 태국 최고의 관광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은 다른 국가보다 성 전환자가 거주할 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며 성전환 수술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 해 평균 100여 명의 남성이 여성으로 변신한다고 나와 있으며 방콕에만 성전환 수술을 하는 병원이 20곳이 넘는다. 수술 비용도 선진국의 1/3 정도여서 외국인까지 찾아올 정도다.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만을 위한 전문 병원도 존재하며 전문 병원에서 심리 상담과 호르몬 치료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다. 호르몬 처방 뿐만 아니라 혈액 검사, HIV 검사 등을 받을 수 있다. 트랜스젠더들은 성을 전환한 뒤에도 정기적인 검진과 진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태국이지만 성전환을 했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남성으로 살아야하는 등 제도적 불편은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성 소수자에 대한 극도의 혐오 정서가 만연한 보수적 사회에 비하면 편하게 살 정도는 된다. 필자가 태국에 있다보니 주변에 여자가 많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정상적인 남성성을 배우기가 어려운 환경인 것도 맞다. 남녀 노동자 임금 격차가 3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은 남성 중심 사회로 불리지만 태국은 정반대다. 비즈니스 필드나 대학교 교수들도 남직원과 남자 교수가 드물 정도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방문판매라던지, 비즈니스 사업 파트너들도 여자들이 많다. 정장 입은 여성이 고객사나 기업 파트너, 연구 프로젝트 파트너들로 찾아 오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태국인들의 인식은 남자들이 책임감과 업무 능력이 여자보다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태국의 사회 분위기는 남자가 무직이면 그럴 수도 여겨지지만 여자가 무직이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가 여자로 살아가야 할 이유, 그리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도 분명히 작용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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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트랜스젠더와 여성 사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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