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은 흔히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랜 우리의 역사에서 볼 때 민족정신의 토대를 이루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때의 주역은 철학적 세계의 결정체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의 사유 체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학문으로 간주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상반된 인식 속에서, 우리는 주역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할까요?
역(易)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역의 이치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국보 1호로 지정된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한양 수도 남쪽 관문이었던 숭례문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북쪽의 숙정문(肅靜門)과 함께 서울의 사대문 중 하나로서 각각 독특한 이름과 의미를 지닌 주역 이치의 반영입니다.
그 가운데 흥인문(興仁門)은 주역에서 봄의 덕(元德)을, 돈의문은 가을의 덕(利德)을, 숭례문은 여름의 덕(亨德)을, 숙정문은 겨울의 덕(貞德)을 상징합니다. 이는 모두 주역에서 말하는 주역 하늘괘의 괘사 원형이정(元亨―利貞)에 해당하는 개념이니 주역이 우리 조상들의 정치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또 다른 예는 한글입니다.
한글 모음은 음(陰)과 양(陽)의 이치를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자음은 오행(五行)과 연결되어 ㄱ, ㅋ은 목기운(木氣運), ㄴ, ㄷ, ㄹ, ㅌ은 여름의 화기운(火氣運), ㅁ, ㅂ, ㅍ은 땅의 중화 작용을 대신한 토기운(土氣運), ㅅ, ㅈ, ㅊ은 가을의 금기운(金氣運), ㅇ 등은 겨울 수기운(水氣運)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한글 구성의 원리는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처럼 자연의 조화로운 이치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멀리는 사물의 이치에서 본뜨고 가깝게는 우리 신체의 구조에서 취한다는 게 주역 계사전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자음의 전체적인 형식은 우리 신체의 기능과 특성을 반영한 게 바로 자음의 원리입니다.
이처럼 주역은 우리 민족의 모든 정신의 토대로 작용합니다. 실제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일상으로 기억하고 살아가는 태극기는 어떻나요. 거기에는 전체적인 구도가 바로 주역의 이치입니다. 세상의 본질인 흰색 바탕, 해그림자의 무늬를 취해 온 태극 문양, 그리고 건곤감리의 네 괘는 이미 밝힌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거기에 반영된 음양과 사상의 구조 등이 주역의 전체적인 기본 원리입니다.
이처럼 역의 이치는 우리 삶과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이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첫째는 세상 모든 만물은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는 변역(變易)의 이치입니다. 그것도 물과 불의 상징적인 변화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겨울에 물이었던 게 여름이면 기체 즉 불로 변합니다. 그 과정의 변화는 겨울이 봄으로 봄이 여름으로, 여름이 가을로, 가을이 겨울로 바뀌는 자연의 순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주역에 관심을 둘 때 먼저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개념입니다.
둘째는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에도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이를 불역(不易)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여야 한다는 이치가 그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간이(簡易)입니다.
세상의 진리는 쉽고 간단합니다. 봄의 따뜻한 기운이 들판의 꽃을 피우는 데 특별한 계산이 필요하지 않듯이, 자연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조화를 이룹니다. 이처럼 변역, 불역, 간이는 세상의 근본 이치이며, 역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철학적 원리입니다.
이런 뜻을 배경에 두고서 주역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죽어서라도 실체가 분명하다는 실재론적인 사고를 품고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반문 끝에 돌아오는 답이 변하고 바뀐다는 주역의 개념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삶은 올바른 게 됩니다. 그럼 그게 어떻게 역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압축된 내용의 송(頌)
易의 노래: 세상의 이치
봄이면 꽃 피고
여름이면 겨울의 물, 불로 변하면서
우리 눈은 무엇을 보며 세상을 살아 갈까
변하는 가운데 변치 않는 이치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간단한 이치로 조화를 이루는 세상
흥인문(興仁門)의 봄 기운 ,숭례문(崇禮門)의 여름 기운
돈의문(敦義門)의 가을 기운, 숙정문(肅靜門)의 겨울 기운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 역의 이치
.원형이정(元亨利貞) 중천건(重天乾) 괘사 등에 의탁한
태극(太極)의 문양, 한글의 음양(陰陽)
주역의 깊은 철학 빌려서 활용하니
그것은 음(陰)과 양(陽) 그리고 다섯 가지 범주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불리우는 오행
해와 달의 움직임을 활용한 지혜임에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이(簡易)의 길 위에서
분명하게 속삭이는 주역의 가르침
우리가 보아야 하는 마음의 눈
변화 속에서 영원을,
다양함 속에서 단순함을,
언제나 따라야 할 옛사람의 지혜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