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러시아 볼가 강변의 큰 도시 사마라를 방문했을 때 사마라의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있는데 TV를 통해 Россия 24 방송에서 전 독일 총리인 메르켈이 슈피겔과 자이트와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면서 카페에 TV를 지켜보고 있던 러시아 현지인들이 일제히 분노했다.

"Сука! (쑤까, 러시아어 욕)"
러시아에서는 상호 신뢰(Взаимное доверие)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을 매우 중시하기에 국가와 국가 간에 있어서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다면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이 러시아인이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거나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러시아에서는 비즈니스가 기본적으로 사람 중심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러시아인들이 밝히는 신뢰는 양쪽이 각자의 입장을 밝힌 후 토론을 통해 묘안을 짜내서 결국 양쪽이 원하는 결과를 내는 단계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과 어떻게 그것을 함께 할지 모색하는 것에 익숙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데 하물며 국가와 국가 사이는 더욱 그러하다.
푸틴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처음으로 대면한 것은 메르켈이 2002년 당시 독일 야당 기독민주연합(CDU) 대표였던 시절에 모스크바 크레믈린을 방문하면서부터다. 메르켈 총리는 당시 푸틴 대통령을 만나 “KGB의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농담을 건내기도 했다. 첫 만남 이후, 2005년 9월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는 베를린을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유력 차기 총리 후보인 메르켈 CDU 대표를 만났고, 양국 협력 확대 등을 약속했다. 메르켈은 당시 만남을 회상하며 "매우 열려 있었던 대화"였다며 흡족해했다.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독일어로 대화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푸틴 대통령이 KGB 시절 동독에서 근무한 적이 있기 때문에 독일어가 유창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한 차례 틀어진 것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문이었다. 이 때 메르켈은 무력으로 이 지역 위기를 증폭한 러시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상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맹비난했지만 그녀와의 신뢰를 쌓아오고 있었던 푸틴 대통령은 그래도 메르켈을 믿어주었다. 메르켈을 믿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2015년 민스크 협정에 참여했다. 독일, 프랑스가 중재한 이 협정은 메르켈이 아니었으면 푸틴 대통령이 협정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메르켈이 짜놓은 판이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그녀를 믿고 협정에 조인했던 것이다. 처음 맺어졌던 민스크 협정은 총 12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상태에서 조인되었지만 모호한 항목이 많아 몇 가지 더 수정 보안해 2차 민스크 협정을 체결했다.
1. 중무기를 전선 30km 뒤로 후퇴시키며, 양 측 전선 사이 30km 크기의 완충지대를 만든다.
2. 공세 작전을 금지한다.
3. 안전지대 너머 전투기의 비행을 금지한다.
4. 분쟁 지역 내의 모든 외국인 용병을 후퇴시킨다.
5. 민스크 협정 이행을 감시하는 OSCE 임무를 이행한다.
이 5가지 협정은 결국 하나도 지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계속 협정을 어기고 공격을 감행했고 수많은 돈바스 주민들을 학살했다. 메르켈이 퇴임한 이후,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특수 군사 작전이 감행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메르켈은 슈피겔과 자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폭로를 하게 된다. "민스크 협정의 목적은 평화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 이라고 하였다. 결국 민스크 협정은 평화가 아닌 러시아와 돈바스 주민들을 상대로 "협잡질"을 했다는 것을 실토한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행위가 신뢰를 저버리고 야비한 협잡질(Шулерство)을 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야비한 협잡질에 충격을 받았고 러시아인들도 메르켈의 야비한 행위에 분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로스발트와의 인터뷰에서 "서방 측과의 협상에 대한 신뢰가 거의 제로(0)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협상은 해야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 하였다. 이제 타협과 협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될 일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다. 메르켈의 이러한 폭로는 오히려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의 정당성을 세워준 꼴이 되었다. 현지 사마라에서도 이 같은 독일과 서구의 기만(Обман) 행위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구의 협잡질과 기만 행위는 오히려 러시아인들을 더욱 단결시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