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은 무슬림들이 착용하는 의복 중 하나로 전신 의복이 아니고, 얼굴 일부와 머리만을 둘러싸는 형태로 두르는 천이라 볼 수 있다. 히잡의 형태는 이슬람권에서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데 가령 앞머리를 드러내는 식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리는 게 정석인 나라도 있다. 히잡을 착용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중동의 경우, 사막의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지만 모스크와 마울슬랭 같은 종교 시설에서는 머리카락을 가려 남성들의 시선이 예배 이 외에 다른 쪽으로 가지 못하게 묶어 두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히잡을 착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지 환경적인 부분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이슬람권 여성이 히잡을 착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나라, 출신,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다만 해당 국가의 이슬람 사회가 얼마나 온건적이고 외향적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일례로 모로코, 튀니지, 터키처럼 무슬림 여성이라도 히잡을 반드시 착용할 필요가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 곳은 매우 온건적이며 외형적인 이슬람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히잡 착용에 대해 <꾸란>을 통한 종교적인 근거로 볼 때 제24장 <빛의 장> 제31절에서 나타난다.
"믿는 여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드러내는 것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머릿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의 아버지와 그녀의 아들과 남편의 아들과 그녀의 형제와 그녀 형제의 아들과 그녀 자매의 아들과 여성 무슬림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하녀와 성욕을 갖지 못한 하인과 그리고 성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하라. 또한 여성은 발걸음소리를 내어 유혹함을 보여서는 아니 되나니 믿는 사람들이여 모두 알라께 회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번성하리라."
문제는 이슬람을 창시했던 무함마드 당시에는 여성들이 히잡 착용에 대해 강권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이슬람이 나타나기 이전이라도 여성 차별은 존재했고, 당시 중동에서는 노출하는 여성을 매춘부로 간주하고 있었다. 중동이나 유럽 모두 7세기에는 여성이 사람 대접을 못받던 시대였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여기고 서로 존중하라 했으며 정숙하게 차려 입으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는 '육체적 욕망'을 죄악으로 규정하며 금욕의 실천을 중시하던 중세 시대 카톨릭과도 연관성이 있다. 이에 <하디스>에 의하면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들을 유혹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가리는 것이 무슬림에게 권장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7세기 이후, 중세적 관점으로 철저한 금욕주의를 실현하던 카톨릭도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한다고 인식했던 것이기에 여성들은 베일을 쓰고 그들의 머리와 목부분을 가리게 했다. 당시 카톨릭은 이슬람보다 더 엄격한 수도 방식을 선택했으며 매우 보수적이었다.
무함마드는 <꾸란>의 내용을 말하기만 했을 뿐 직접 집필하지는 않은 데다가, 유목민족 특성상 기록물이나 인쇄물도 대량생산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쿠란은 주로 구전으로 전파되었고 꾸란을 암송하던 이맘인 하피즈(Hapij)들이 정통 칼리프 시대 당시 내전으로 거의 처형되면서 무함마드의 말씀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무함마드 사후 서로 지역마다 통용되는 <꾸란>의 판본이 다르고 심지어 내용마저 다른 <꾸란>들이 출몰하기 시작하자 혼란을 우려한 3대 칼리프인 우스만이 무함마드를 보필하는 서기들이 가지고 있는 <꾸란> 원본들을 교차검증해 나온 결과물을 확증하였다.
이 결과물만이 <꾸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선언하게 된다. 우마르가 이렇게 <꾸란>을 표준화한 이후, 기독교의 복음서처럼 책에 쓰여지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위작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모든 내용이 기억에 의존한 채 보존되다가 쓰여진다는 것이 사실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따라서 <꾸란>은 무함마드의 계시만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 <꾸란>을 책으로 만들어 표준화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3대 정통 칼리파 우스만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수니파의 견해일 뿐이고 시아파에서는 표준 <꾸란>을 만들라 지시한 사람이 4대 정통 칼리파 알리라고 주장하고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라고 강요한 것은 무함마드가 아니라 이후의 통치자들인 것이다. <꾸란> 제24장 <빛의 장> 제31절의 내용도 무함마드가 직접적으로 저와 같은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온건적인 부분과 급진적인 부분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꾸란>을 온건적으로 해석하는 이맘들은 "OO 할 수도 있다." 라며 다른 해석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그러나 급진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꾸란>을 문자 그대로 믿으며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무서운 점이 <꾸란>과 <하디스>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경전을 만든 것이 사람이 썼을 뿐, 실제로 신(神)의 이야기이니 그대로 적은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으면 신(神)을 믿지 않는다는 것으로 간주한다.
아랍 여성들의 히잡과 아바야, 니캅 등의 복장은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건조한 사막기후에서 몸의 수분과 온기를 유지하는 데에 유용하지만 아랍이나 중동 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굳이 권할 필요가 없는 복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하고 상관없이 종교적인 입장에서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간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 용도를 바꿔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의 24장 30절에서는 남성에게도 정조를 요구하고 있디.
"믿는 남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들의 시선을 낮추고 정숙하라 할지니 그것이 그들을 위한 순결이라. 실로 알라께서는 그들이 행하고 있는 것을 아시니라."
이는 여성에게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 남성들에게도 예배시에는 최소한 배꼽부터 무릎까지는 완전히 가릴 것이 요구된다. 알라는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기 때문이다. 무슬림 남성들이 모자를 쓰고, 걸프 지역의 아랍인들이 쿠피야(Kuffiyah)라는 두건을 쓰거나 터번을 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여성차별이니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히잡은 이슬람 뿐만 아니라 유대교, 기독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같은 주요 종교에서도 의무적으로 착용되어 왔으며 카톨릭도 미사를 볼 때 여성들은 미사보를 쓴다. 러시아 정교회도 머릿 수건을 쓰며 다른 예시로 유대교의 키파와 시크교의 터번도 있다. 그걸두고 성별 차별이라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무슬림들의 시각이다. 최근 이란에서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란은 시아파 위주의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한 신정국가다.
앞서 내가 언급한 것처럼 무함마드는 히잡을 강요하지 않았고 단지 정숙한 복장을 지시했다. 몸을 정갈히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라는 것이 무함마드의 뜻인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원리주의 국가들은 히잡이나 니캅, 차도르, 부르카 같은 복장들이 정숙한 복장이라며 강요하고 있다. 이슬람의 원리주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뜻을 받들고 그것이 알라의 뜻이라 여기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세속적 권력욕을 위해 알라와 무함마드의 뜻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통치자까지 겸임하면서 반 세속적인 종교로 출발했다.
그런 무함마드의 뜻을 받들어 반 세속적 종교로 신정국가를 탄생시켰다면 적어도 무함마드와 <꾸란>의 뜻은 지켜줘야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란이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신정국가들은 종교적 원칙을 저버리고 있다.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21세기에서 가장 뒤떨어진 사상과 철학을 갖춘 국가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