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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지방법원 창문을 부수고 있다.(사진='추적60분' 화면 캡쳐)

 

KBS 탐사보도 프로그램 추적60분이 최근 방송한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편이 언론계와 시민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기명 칼럼에서 “언론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보도”라고 극찬하며 이례적으로 타 언론사의 탐사보도를 높이 평가했다. 


기자 경력 40년이 넘는 대기자가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이번 방송은 추적60분의 ‘계엄의 기원’ 2부작 중 후편이다. 


앞선 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했던 ‘부정선거’ 의혹의 기원을 추적한 데 이어 ‘가짜뉴스’가 생성되고 확산하며 확고한 믿음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추적60분이 집중 조명한 사례는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설’이었다. 


이는 12·3 계엄 당일 계엄군이 선관위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해커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는 음모론으로 윤석열 대통령 지지층 일부에서 중국의 선거 개입을 증명하는 핵심 증거로 여겨졌다. 


그러나 미군과 한국 정부 모두 이를 ‘허위’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이 음모론의 기원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음 등장한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유명 유튜버와 정치인 등이 이를 ‘합리적 의심’이라는 프레임으로 확산시키면서 음모론은 하나의 ‘사실’처럼 굳어졌다.


결정적으로 1월 16일 온라인 매체 스카이데일리가 <[단독]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됐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중국인 간첩 체포설’은 공식적인 언론 보도로 둔갑하게 되었다.


양상훈 주필은 이 매체에 대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어떤 매체”라고 언급했지만 스카이데일리는 네이버·카카오와 검색 제휴를 맺은 언론사이다. 


또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광고만 4억 원 이상을 수주한 종합일간지다. 그 영향력은 상당했고 해당 보도가 나간 뒤 수많은 유튜버와 정치인들이 이를 ‘공식 확인된 사실’로 받아들이며 더욱 확산시켰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변호인도 1월 17일 2차 변론에서 이를 인용하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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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희 씨이다.(사진='추적60분' 화면 캡쳐)

 

추적60분 제작진은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설’의 출처를 추적했고 보도의 핵심 취재원으로 알려진 안병희 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제작진은 안 씨와 스카이데일리 기자가 주고받은 130여 건, 1,200분에 달하는 통화 녹음과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최소 7건의 기사가 안 씨의 정보에 의존해 작성되었음을 밝혀냈다. 


녹취에 따르면 기자는 안 씨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기사화하며 “얘기되네요”라고 말하며 내용을 받아적었고 심지어 기사를 작성한 후 안 씨에게 교정과 검수를 받기까지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안 씨가 마지막 인터뷰에서 “다 속인 것”이라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자신을 ‘미국 CIA 요원’이라고 소개하며 정치인들과 정보기관 관계자들까지 속였던 그는 “여론 조작을 넘어서 여론 형성까지 성공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치인과 언론, 정보기관까지 속였으니 “저한테는 좋은 그림”이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처럼 허위정보가 검증 없이 보도되고 확산 과정을 보여준 추적60분의 탐사보도는 언론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뛰어난 보도를 하마터면 보지 못할뻔했다. 원래 이 방송은 2월 28일 방영 예정이었으나 KBS 경영진은 방송 하루 전 갑작스럽게 편성을 변경했다.


처음 제작진이 들은 이유는 “3월 1일 방영 예정이었던 다큐온 ‘3·1절 특집’이 좋은 프로그램이라 하루 앞당겨 방송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설명이 나왔다. 


3월 1일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추적60분 방송이 극우 단체를 자극해 KBS로 몰려와 난동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KBS PD 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KBS 사측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추적60분은 한 주 뒤인 3월 7일에서야 방영될 수 있었다.


KBS 사측은 ‘편성 순연’이 방송법이 규정한 편성 책임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언론노조 KBS 본부와 PD 협회는 이는 공정방송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며 공방위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방송법 4조에 명시된 ‘편성의 자유’를 근거로 편성권이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와 관련해 KBS PD 협회는 “편성권이 제작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데 오히려 그것을 무기로 제작진의 문제 제기를 차단하는 것은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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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추적60분' 화면 캡쳐)

 

추적60분의 이번 보도는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하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하며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제작진이 ‘사실’이라고 주장되는 내용을 철저히 검증하고 허위정보가 어떻게 믿음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준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탐사보도가 방영되기까지 편성 논란이 발생한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KBS 경영진이 외부의 반응을 우려해 보도를 지연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탐사보도 그 이상으로 대한민국 언론이 가짜뉴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공영방송이 정치적 외압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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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추적60분’의 ‘가짜뉴스 추적’ 보도… 언론계와 시민사회에서 높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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