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에 우크라이나 핵 폐기를 조건으로 한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Будапештський меморандум)의 내용
1. 미국, 러시아,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주권, 독립성, 현재 국경선을 존중한다.
2. 미국, 러시아,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이나 무력사용을 자제한다.
3. 미국, 러시아,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 위협을 자제한다.
4. 우크라이나가 핵 공격을 받는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사안을 논의한다.
5. 미국, 러시아,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공격을 자제한다.
6. 상기 조항에 변경이 있으면 따로 협의한다.

실제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의 내용을 보면 2항목에 "미국, 영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자제한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양 당위적으로 선언하고 있을뿐 누가 공격하고 누가 지켜주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없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예방하는 어떤 나라든지의 구체적인 방안이나 우크라이나가 공격받았을 때 이를 보복하기 위해 어떠한 반사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지, 혹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등에 대한 조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를 두고 국제 법학자들의 해석도 이런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각서가 당사국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기에 후일 민스크 협정을 맺기 전,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고 말았고 미국과 서구에서 또한 러시아의 침공이 있을 시,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떻게 개입할지에 대해 전혀 명분이 없는 부분이 되고만 것이다.
이와 같은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의 주 목적으로 나타난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s)에 대해 '안전이 위협받을 때,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가 침공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앨 정도로 명확한 안전보장 장치를 우크라이나가 요구했다'리고 했으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2009년 당시 NATO에 주재하던 우크라이나 대표 블라디미르 바실렌코(Владимир Василенко)는 우크라이나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를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 자체에 큰 권위를 부여하여 이상화하는 우크라이나 국내의 분위기를 비판하였고 각서상에는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s)이나 안전 보증(Security Guarantees)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외교적 보장(Assurances)이 현재 상태의 완전함을 선언하는 것뿐이라면 보증(Guarantees)이라는 부분은 미래에도 그 완전함을 확보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것임을 약속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각서에서 말하는 보장(Assurances)이라는 용어는 각서 체결 당시인 1994년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성과 주권과 국경선이 완전함을 확인(Assurances)한 것일 뿐이고 미래에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경선이 침탈 받는 경우에도 미국과 영국 등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성과 주권과 국경선의 완전함을 적극적으로 회복시켜준다는 의미의 보증(Guarantee)은 아니라는 것을 일러둔다. 사실 블라디미르 바실렌코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는 것과 같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친 NATO측이 NATO 가입을 서두른 이유 역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가 우크라이나의 미래 안전에 대단히 실효성 있는 문서가 아니라는 위기 의식 때문에도 있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가 체결되던 시점에서 요구했던 것은 독립 당시 확보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경선을 미국, 영국, 러시아가 인정(Assurances)하는 것이었기에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러시아, 혹은 미국과 영국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명확하고 구속력 있는 안전 장치인 군사적 보증(Guarantee)이 아니었다.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에서 언급된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Assurance)'은 당시 우크라이나 독립과 크림반도, 러시아의 흑해 함대를 둘러싼 갈등에서 러시아가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안전과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인정(Assurance)하는 맥락에서 삽입한 것일 뿐, 애초에 본 각서의 목적 자체는 장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과 영국에게 지켜달라고 요청하여 체결한 각서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려둔다.
당시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계 주민이 비중이 높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국가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에 대해서 그렇게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만약 올해 2022년 전쟁과 같은 위협을 당시에 느꼈다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다른 국가들인 폴란드나 체코처럼 서둘러 나토에 가입하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1994년 당시 러시아는 옐친 시대 당시 경제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야 할 명분과 여유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나토 가입 여론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