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 사이의 해묵은 지역 감정
베트남의 지역감정 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한 대한민국
남북으로 1,600km에 달하는 국토 길이를 가진 베트남은 각각 북쪽과 남쪽 끝에 하노이와 호치민이라는 대도시가 자리하고 있다. 육로로 가기에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있는데다 두 지역의 기후대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따라서 오랜 세월 적으로 지냈던 역사가 혼재되어 있어 음식과 사람들의 성향까지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흔히 베트남의 하노이를 행정 중심의 도시이면서 역사, 문화의 도시로 인식한 반면 호치민을 경제 중심의 도시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각 도시의 사람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지역 차이를 넘어 외국인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두 도시의 차이를 비교하여 희화화하는 영상과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두 지역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에서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쪽은 중국의 지배를 1,000년 동안 받으며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국, 일본과 더불어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한데 비해,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남쪽은 태국, 캄보디아와 유사한 동남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며 전형적인 남방 불교인 상좌부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된 참파 왕국이 다스렸던 곳이라 애초부터 서로 간에 문화권이 달랐다.
이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남북이 통합되었지만 사이공(Sài Gòn : 호치민의 옛 이름)과 다낭을 중심으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이루며 중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프랑스 및 서양 문화가 들어와 여전히 동아시아 문화권인 북부 지역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이후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되었지만 1945년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해방되었으며 이후에 프랑스군이 재주둔함으로써 프랑스의 지배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1954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베트남은 이 때 체결된 제네바 협정으로 인해 북위 17도를 기점으로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한 북베트남과 자본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삼은 남베트남으로 다시금 분단되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의 수도로 기능했던 사이공(Sài Gòn)을 점령하고 베트남의 통일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남베트남의 편에 섰던 인사들을 향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는데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보트피플도 이와 같은 숙청의 과정에서 주로 발생했는데 주로 공산세력으로부터 반동적인 사상을 가진 집단, 그리고 서양 문화에 익숙한 집단, 중국의 영향을 받은 남방 화교 집단 등이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하노이는 중국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호치민은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었던데다가 프랑스가 만든 계획 도시였기에 서방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려왔던터라 개방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처럼 하노이와 호치민은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적도와 가까운 호치민이 1년 내내 여름이면서 무더운 열대 기후인 것과 달리 하노이는 우리 한국처럼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와 같은 날씨의 영향으로 인해 하노이와 호치민은 각각의 특화된 음식문화를 갖고 있는데 하노이에서는 소금이 많이 첨가된 쌀국수와 분짜(Bún chả, 완자와 면을 함께 먹는 음식)가 매우 유명하고 호치민은 채소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쌀국수와 달콤하거나 약간의 밍밍한 음식들이 발달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주로 중부 지역인 후에 지방의 음식이 가장 잘 맞아 후에나 다낭 등의 중부 지방 음식을 선호하는 것에 반해 하노이와 호치민은 각자의 음식이 베트남을 대표한다면서 온, 오프라인으로 끊임없이 설전을 벌인다.
날씨와 음식 뿐 아니라 도시나 정치, 경제적으로도 양측은 다르다. 행정 기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하노이와 베트남 경제의 중심인 호치민은 도시의 색깔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하노이와 호치민의 차이 중 하나가 시간 내 여가 활동 개념인데 예를 들어 밤 11시에 하노이 시민들은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근면하고 부지런함을 선호하는 반면 호치민 사람들은 밤 11시가 되면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러 밖으로 외출을 나온다.
필자가 직접 겪어본 두 도시의 느낌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노이의 경우 상대적으로 엄격하고 보수적인데다 경직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데 반해 호치민은 클럽과 술집 등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놀거리가 많고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넘쳐나며 친절하고 자유 분방한 분위기가 있다. 이어 언어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어감이 조금씩 다르고 발음 또한 여러 모로 차이가 나게 되어 있는데 베트남 또한 각 지역 사투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수도인 하노이 언어가 베트남어의 표준어인 만큼 호치민의 언어는 남방 방언, 혹은 사이공 사투리로 취급되고 있다.
하노이의 표준어는 좀 더 정중하면도 경직되어지며 무게감이 있는 느낌이라면 호치민의 방언은 매우 간드러지며 부드럽고 친절한 느낌이 강하다. 북쪽 하노이 측은 베트남의 전통복인 아오자이를 즐겨입지만 남쪽 호치민은 미니스커트와 가슴을 드러내는 옷 등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요즘은 하노이도 젊은이들이 미니스커트 및 가슴이 드러나는 옷 등을 즐겨입긴 하지만 호치민만은 못한 분위기다.
이처럼 두 지역의 문화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하노이와 호치민의 주민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간의 차이를 의미하는 베트남어인 꿉 포 디아 픙(Cục Bộ Địa Phương : 지역감정)은 지역 갈등의 문제를 다루는 뉴스 제목으로도 꽤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폐쇄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칼럼 또한 역시 각종 매체들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일상에서 하노이 사람들, 혹은 호치민 사람들이 서로를 험담하는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서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선입견들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베트남 내의 지역 감정은 점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처럼 극명한 두 지역의 차이에 대해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노이는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유교 문화의 영향 하에 있어 예의와 겸손을 사람의 최고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반면 서방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호치민의 경우,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최고 덕목으로 여긴다. 그래서 하노이 시민들은 호치민 시민들을 매우 헤프게 여기고 있으며 호치민 시민들은 하노이 시민들을 꼰대스럽다고 여기고 있다.
이와 같은 선입견이 생기게 된 이유로 북과 남으로 갈라진 역사가 만들어 낸 간극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통일 후, 하노이가 행정 수도로서 발전을 거듭해 온 반면 호치민은 공산정권의 통제 하에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피해의식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최근 보트피플 및 서방 유학, 이민 등으로 인해 베트남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베트남 경제 발전의 큰 동력으로 기여하고 있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따라서 양 지역 간의 갈등 양상도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노이 시민들은 부를 감추고 내세우지 않으며 겸손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반면 해외 유학파들 및 이민자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존재하는 호치민에서는 부와 소비를 당당한 노동의 보상으로 여겨 이를 자랑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두고 호치민 시민들은 하노이의 과묵함을 음흉하다고 표현하고 하노이에서는 호치민의 자유분방함이 천박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사회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질수록 다시 또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 굳어져 온 베트남의 지역 감정은 최근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는 바로 대한민국의 박항서 감독과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님의 선전이 그 계기가 된 것이다. 남북의 진정한 통일과 화합을 이룩한 것은 축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트남 국가대표의 승리를 기원하며 각 지역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응원했던 순간 만은 지역 감정이 사라지고 베트남이 오로지 하나가 됐다면서 많은 베트남인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통합이 축구 경기에 한해 나타난다면서 일시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경험이 베트남 국민 모두에게 통합과 단결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하노이와 호치민의 지역 감정은 한국의 영, 호남 지역 감정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한 과거의 기억과 비행기로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크다.
그리고 그와 같은 거리감에서 기인한 문화적 인식의 간극이 현재까지 견고하게 유지되어 지금의 지역 감정으로 단단하게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역 갈등은 원래부터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인식하며 지내온 베트남 사람들은 최근 축구를 통해 경험한 통합과 화해의 시간이 잠시나마 일시적일지라도 어쨌든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인들을 하나로 만들고, 그들에게 불필요한 미움과 편견을 없애게 한 것에 우리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