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3차에 걸쳐 삼니움 전쟁을 치르게 된다. B.C 321년, 집정관 티투스 베투리우스 칼비누스(Titus Veturius Calvinus)와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Spurius Postumius Albinus Caudinus)는 각각 2개 군단씩 총 4개 군단을 이끌고 삼니움 족의 영역으로 침공했다. 이에 삼니움 인들은 가이우스 폰티우스(Gaius Pontius)를 지휘관으로 삼고 로마군에 대적했다.
폰티우스는 정면 승부로 로마군을 절대로 이길 수 없으니 유인책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는 먼저 삼니움 병사 10명쯤을 양치기로 변장시킨 뒤 일부러 로마군의 진군로 주변에서 양을 방목하게 했다. 로마군이 평범한 양치기로 여기고 불러다가 삼니움 인들의 동향을 묻자, 그들은 삼니움 인들이 로마와 동맹을 맺은 아풀리아(Apolia)의 루케리아(Ruceria)를 포위하고 있다며 답했다.

이에 두 집정관은 서둘러 루케리아로 가서 삼니움 족을 완벽하게 섬멸하기로 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도로 2개가 아펜니노 산맥에서 루케리아로 이어졌다. 아드리아 해를 따라 있는 첫 번째 도로는 평평하고 장애물이 없었지만 멀리 돌아서 가야 했기에 루케리아까지 가는 것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카우디움(Caudium) 협곡을 통과하는 산길은 훨씬 짧아 빠른 시일 안에 루케리아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두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고 산악지대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좁은 산길을 가다보면 중간에 풀이 무성하고 물이 잘 공급되는 평원을 만날 수 있었지만, 평원을 통과하면 루케리아에 이르기까지 좁고 험준한 길을 가야 했다고 한다.
두 집정관은 삼니움 군이 도주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카우디움 협곡을 통과하는 산길로 진격하기로 했다. 로마군은 몇 시간 동안 좁은 길을 강행군한 끝에 평원에 이르렀다. 평원에 숙영지를 세워서 휴식을 취한 뒤 행군을 재개했지만, 두 번째 산길을 지나가던 중에 바위 덩어리와 도끼에 베인 나무줄기로 진군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 때 삼니움 인들이 협곡 위 언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로마군은 그 때 함정에 걸렸다는 것을 파악하고 서둘러 퇴각하려 했지만, 첫 번째 산길마저 막혔다는 것을 곧 확인했다. 그리하여 로마군은 협곡에 갇힌 채 훨씬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삼니움 군에게 둘러싸여 궤멸될 위기에 몰렸다. 리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삼니움 군의 지휘관 가이우스 폰티우스는 수많은 로마군을 협곡에 가두어 버리는 작전이 성공한 것에 무척 흥분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선뜻 판단하지 못했다.
공격을 시작한다면 로마군이 격렬하게 저항하게 되면서 큰 피해를 볼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굶겨 죽이자니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어렵고 또 다른 로마군이 구원하러 달려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삼니움인 중 가장 현명하다는 평을 받던 아버지 헤렌니우스 폰티우스(Herennius Pontius)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는데, 헤렌니우스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그들 전원을 정중하게 대접한 후 로마로 살려 보내라.”
그러자 삼니움 인들이
“어떻게 잡은 적병들인데 그냥 돌려보냅니까?”
라고 반발하자, 폰티우스는 아버지에게 재차 서신을 보내 다른 방안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헤렌니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모두 죽여라.”
폰티우스는 아버지가 먼저는 모두 살려 보내라고 해놓고 이제는 또 다 죽이라고 권고하니 이상하게 여겨, 아버지를 전장으로 모셔오게 하여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물었다. 이에 헤렌니우스가 답했다.
“우리가 저들을 잘 대접해서 돌려보낸다면, 저들은 우리가 베푼 선행에 감동할 것이며, 우리는 매우 강력한 국가와 평화와 우호를 확립할 것이다. 반면에 저들을 모두 죽인다면, 로마는 두 집정관의 군대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힘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여러 세대 동안 전쟁을 미뤄야 할 것이다.”
폰티우스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고심하다가 재차 물었다.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중간의 길을 택하는 건 어떻습니까? 삼니움은 마땅히 받아야 할 승리를 받을 것이며, 로마인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패배를 받을 겁니다.”
그러자 헤렌니우스가 크게 화를 내며 답했다.
“그것은 친구를 구하지도 않고 적을 제거하지도 않는 짓이다. 로마인들은 패배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러나 폰티우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곧 전령을 로마군에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다. 로마군은 프레겔라스(Pregelas)를 비롯한 삼니움의 영역에 세워진 모든 식민도시에서 철수해야 하며, 병사들은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튜니카(Tunica)만 입은 채 멍에 하단으로 기어가라는 것이었다. 두 집정관은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이를 받아들였고, 로마 장병들은 삼니움 전사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며 멍에 아래를 통과해야 했다. 이를 거부한 로마 병사들은 가차 없이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치욕을 겪고 로마는 다시 칼을 갈았다. 결국 로마는 삼니움 족을 정복하고 전쟁을 승리를 마무리했으며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삼니움 족의 남성의 씨를 말렸다. 가이우스 폰티우스(Gaius Pontius)가 자신의 아버지인 헤렌니우스의 충고를 따랐다면 역사의 물줄기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완전히 죽여 굴복시키는 것도 아니고 좋은 대우를 해줘 친구를 해주는 것도 아닌, 모욕을 주는 것은 상대에게 뿌리 깊은 원한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면 분명히 칼을 갈게 된다. 영화 <친구>에서도 유오성이 열연한 준석이가 상택이에게 한 말이 있다.
"친구야. 앞으로 누구를 조질 일이 있으면 상대를 용서하여 친구로 만들던가, 아니면 보기만 해도 오줌 지릴 정도로 조져놔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해보자고 안 달려든다."
이게 인간 사회만 그런게 아니다. 미래를 보며 설계하는 지혜로운 자와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지휘관의 차이는 국가의 존망을 가르게 된다. 그리고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정세 관련 지혜이기도 하고 인류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보며 설계하는 지혜로운 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는 눈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삼니움 족은 그런 현명한 자가 있기라도 했지만 한국은 삼니움 족보다도 못하다.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지휘관만 있을 뿐, 주변에는 어리석은 지휘관에게 박수 쳐주는 어리석은 원숭이들만 득실거린다. 우리의 미래는 그래서 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