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불교와 양곤의 쉐다곤파고다
미얀마 불교의 본산이자 미얀마의 상징
2019년 미얀마 불교의 본산이자 미얀마의 상징인 쉐다곤 파고다에 왔었다. 전설에 의하면 쉐다곤 파고다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고고학계에 의하면 쉐다곤의 상징인 높이 98m의 불탑은 사실상 6~10세기 사이에 몬족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이곳 승려의 기록에 따르면 불탑은 부처가 죽기 전인 B.C 486년에 지었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논란에 있다.

탑은 1300년대에 바고의 빈야우 왕에 의해 18m의 높이로 재건되기 전까지는 파손된 상태였다. 이후 몇 차례의 개축을 거쳐 15세기에 현재의 98m 높이가 되었다. 몬족의 왕은 바고의 쉐마우다우와 쉐다곤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불탑을 소유하고 있었다. 원래는 8m에 불과했으나 1362년에 빈야우 왕에 의해 20m의 높이로 증축되었다. 신사우부 여왕(1453~1472)은 탑의 높이를 40m로 높였다. 16세기 초까지 불탑은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순례지가 되었다.
미얀마 불교는 상좌부 불교, 또는 초기 불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얀마 인들의 삶에는 종교가 생활 곳곳에 뿌리박고 있다. 스님들을 존경해서 스님들 차량은 번호판도 달라서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되어 있기도 하다. 또 탁발을 통해서 재가자들이 수행자들에게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믿어 마을마다 순번을 정해서 기꺼이 자기의 것을 내어놓고 있다. 불교 신앙 덕분에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아 미얀마의 범죄율은 낮은 편에 속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욕망을 부채질하여 성장 가도를 달려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불교 신앙은 그런 부분에 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있다. 화려한 쉐다곤의 전각들을 보니 대단하고 화려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에는 미얀마 사람들의 대단한 불심, 그리고 얼마나 승려들에게 빨렸을까? 라는 생각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오전 시간 거리로 나가면 붉은색의 가사(승려가 입는 옷)를 걸치고, 줄지어 탁발을 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런 모습에서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미얀마 인구의 89%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미얀마 전역에는 약 61,000개의 사찰이 있고, 스님의 수는 대략 45~50만 명으로 추정된다. 미얀마와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는 자기완성, 즉 개인의 해탈에 주안점을 두고 수행을 하는 불교의 유형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전통적으로 국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불교가 미얀마의 정신적 지주로 정립된 것은 11세기에 바간 왕국을 건국한 아노라타(Anawrahta) 왕(1044~1017년)때다.
몬족 출신의 승려인 ‘싱 아라한’에게 불교를 사사 받은 아노라타왕은 다양한 종교를 상좌부 불교로 통합했다. 아노라타 왕은 최초의 통일국가른 이룬 통치자로서 다양한 민족의 통합을 위해 불교를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삼을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다. 이 때부터 미얀마의 불교는 바간 왕국의 뒤를 이은 여러 왕조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 속에서 순탄하게 기반을 넓혀 왔다. 미얀마 불교가 최초의 시련을 겪은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1948년까지 60여년 동안 지속된 영국의 식민통치 기간이었다.
영국 식민 통치자들은 불교를 억압했고, 영국을 대리해 미얀마의 관료제와 경제체제를 장악한 이슬람계 로힝야 족들의 불교 탄압도 극심했다. 이렇게 되자 불교계는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민족주의의 깃발을 들게 되었다. 1908년 ‘우 오타마’(U Ottama) 스님을 중심으로 미얀마 청년불교도연맹(YMBA) 창설되었고, 이 조직은 반영(反英)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