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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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9일은 러시아의 승전기념일이다. 여기서의 전쟁은 나치 독일군의 공격을 물리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아시아 지역에 있는 우리나라는 일본이 항복했던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지만, 유럽에서는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 혹은 9일을 승전기념일로 축하한다. 날짜가 다른 건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시점의 현지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즉 독일보다 시간이 빠른 러시아는 구소련국가들과 더불어 9일에 기념하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8일에 기념하고 있다. 1940년 독일군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점령한 후 프랑스로 진격하여 파리를 점령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주 반에 불과했다. 


화면 캡처 2025-05-11 052332.png
사진 : "Бессмертный полк" вернулся на улицы городов России, 출처 : Алексей БУЛАТОВ. Перейти в Фотобанк КП

 

반면 독일군이 방심하고 있던 소련을 선전포고 없이 공격해 들어온 1941년 6월 22일부터 소련군이 프루트강을 건너 루마니아로 진격해 나간 1944년 4월 8일까지 소련군과 시민들은 소련 땅에서 독일군 주력부대에 맞서 싸워야 했다. 독일군을 소련 땅에서 몰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3년에 달했던 것이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쟁이었던 것은 사망자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총 사망자 수는 5,000만~7,000만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이 중 소련인 사망자 수가 2,500만~2,700만명으로 추산된다. 대략적으로 말해, 전체 사망자 수의 절반이 소련인이었던 것이다. 독일군의 포위하에 2년 반 동안 봉쇄되었던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만 해도 적게는 64만명, 많게는 15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 연료, 의료품의 공급이 끊긴 상태로 버텨야만 했으니 아사와 동사자가 속출했다. 스탈린그라드 전선 또한 매우 격렬했었다.


스탈린은 독일군의 소련 침공 10여 일 뒤인 1941년 7월 3일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서 "이는 보통 전쟁이 아니라 총력전, 전체 소련 인민의 전쟁이다. 소련의 자유냐, 독일 지배하의 지배하에 복종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Это не обычная война, а тотальная война, война всего советского народа. Выбор стоит между свободой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и подчинением немецкому господству)." 라고 소련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역할과 전쟁에서의 공로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제3국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소련과 대결한 서방 진영에 속한 국가들은 흔히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된 연합군과 나치 독일군의 전쟁으로 이해하고 있다. 독일군이 패한 것도 1944년 6월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전황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체 사망자는 6,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중 40% 이상이 소련인이었다. 군인들이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물론 일반인들이 후방 유격대 활동, 적군의 보복, 강제 노역, 포격, 굶주림과 추위 등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처럼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승리였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기억이 비통하고 엄숙할 수밖에 없고, 승전 기념일이 가장 큰 국경일로 여겨지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대조국 전쟁은 애국심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소련군 사병의 평균 생존 시간은 24시간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스탈린그라드 시민들은 소개되지 않은 채 그 처참한 전쟁터 속에서 살았으니, 아이들은 얼어붙어 있는 시체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수하고 획득한 승리인 것이다. 


소련군 지휘관과 사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극심한 기아를 겪으면서도 버텨 준 레닌그라드 시민들, 독일군의 점령하에서 목숨 걸고 저항운동을 벌였던 게릴라 대원들, 여성임에도 전쟁터에 자원해서 간호병, 통신병, 심지어 전투원이 된 그녀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소련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오늘날 ‘대조국 전쟁’에서의 승리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자국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꼽는다. 그래서 매년 5월 9일이 되면 전 세계의 러시아인들은 광장에 집결하여 대조국 전쟁 (소독전쟁)에서 희생한 자신의 가족, 친지, 그 외의 인물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거리를 행진한다. 서서히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과 대조국 전쟁이 잊혀갈 때쯤 파시즘에 대항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의 넋을 기리는 것이 그들의 몫임을 깨닫고 역사적 기억을 보전하면서 2차 대전의 사건들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생각에 시민들은 거리에 나섰다. 


이것을 "불멸의 연대(Бессмертный полк)"라고 하는데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이 행진에 가장 선두에 선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인 드미트리 안드레예프(Дмитрий Андреев)는 현재의 러시아에 있어 승전 기념일은 러시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민족 통합 전략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승전기념일과 그를 둘러싼 기억 공간은 국민적 화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군사 퍼레이드, 불꽃놀이, ‘불멸의 연대’ 행진 등, 이러한 의식들을 통해 공동의 기억으로 인해 사람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이러한 의식들을 국민들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최대한 활용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군사 퍼레이드 개최 등 승전기념일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르려는 러시아 당국의 노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현장에서 퍼레이드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때로는 불만을 늘어 놓기도 한다. 모스크바에 사는 블로거 일리야 바를라모프(Илья Варламов)에 의하면 행사에 가까이 갈 수도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아니라 TV 화면을 위한 행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한 당국이 ‘기억과 추모의 날’인 승전 기념일을 ‘군사력 과시’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리 한국도 국군의 날에 군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이런 퍼레이드하면 전체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폭주할텐데 이 퍼레이드 기간동안 오히려 잠잠하다. 한국의 보수우파들 내에서도 비난이 많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에 대한 비난은 없다. 소위 문재인이나 이재명이 아닌 윤석열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도 보수우파들은 비난하지 않고 따라가는 분위기다. 전체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전유물인 군사 퍼레이드에 대해 비난이 없는 것을 보니까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는 그저 좌파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용인되는 집단이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문재인이나 이재명이 이러한 퍼레이드를 했다면 아마 전체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전유물인 군사 퍼레이드를 한다고 역시 공산주의자가 맞다며 비난했을 것이다. 이처럼 소위 "빨갱이"의 전유물인 군사 퍼레이드도 보수우파에서 출마해 당선된 대통령이면 보수우파들의 비난도 사라진다. 그런데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를 기획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할려면 제대로 해야한다. 러시아는 이 행사가 끝나면 "불멸의 연대" 행사와 행진을 한다. 시민들이 전쟁에서 전사한 애국 장병들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도 6.25 때 전사한 장병들, 연평해전, 천안함 사진들 있다. 들고 나와 행진하면 된다. 이와 같은 행사까지 하면 완벽하다. 이와 같은 행사들을 벤치마킹하여 한국 만의 것으로 만들어 그 전통을 가지면 아이들에게 애국심도 키워주고, 어른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싸웠던 조상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이 되니 그로 인해 국민 대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진다. 


정치적으로는 내부결속을 다지고 외부에는 주적인 국가들에게 대한민국도 이 정도의 국방력을 가지고 있다며 일종의 보여주기식 무력시위도 될테니 이와 같은 퍼레이드 행사는 일거양득(一擧兩得), 양수겸장(兩手兼將)이다. 대한민국도 러시아가 울고 갈, 아주 멋있는 퍼레이드를 광복 80주년인 올해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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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불멸의 연대(Бессмертный полк)", 전승절 행사 이후에 나온 행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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