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전된 철제 기술력들을 기반으로 카프카스인들은 B.C 12~8세기경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흑해 연안과 아르메니아 인근에 자신들의 최초 국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인류 시원과 연결되어 있고, 강력한 기술력을 보유했던 카프카스 인들은 막강한 국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와 문명에 의해 끊임없이 침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B.C 8세기에는 킴메르가 공격해왔고, 이후 흑해 해안 지대에는 그리스계 민족들이 상륙하여 도시를 건설했다. 그러한 민족들의 공격에 카프카스 인들은 이들의 세력과 혼혈하여 토착민으로 거듭났다. 이들 토착민들을 카르트벨리아 인들이라 불리게 된다. 이들은 콜키스와 이베리아로 나뉘어 카프카스 일대를 지배했다. B,C 7세기에는 스키타이가 공격해왔으며 B.C 6~2세기에는 사르마트와 마케도니아, A.D 1세기에는 로마, 3세기에는 동고트족, 5세기 후반부터 10세기까지는 비잔틴 제국의 침략과 강점을 거쳤다.

고대 시대부터 유라시아 유목 부족들과 고대 슬라브 인들이 모두 카프카스 일대를 공격했고, 강제로 점령하기도 했다. 결국 고대부터 근현대시기까지 조지아와 조지아 인들의 역사는 외부의 강점과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지아는 러시아어로는 ‘그루지야(Грузия)’라고 지칭되고 있으며, 조지아어로는 ‘사카르트벨로(Сакартвело)’라고 명명된다. 사카르트벨로는 조지아 인들이 자신들을 부르는 카르트벨리(Kартвелы)와 장소를 뜻하는 접사 ‘사(Cа-)’와 ‘오(-O)’가 결합한 말이다. 결국 사카르트벨로란 ‘카르트벨리가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어에서는 조지아의 국가 명칭을 ‘그루지야(Грузия)’, 조지아 민족을 ‘그루진(Грузин)’이라고 불렀으며,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러시아어 명칭들을 그대로 사용했다. 1389년 사제 이그나티 스몰냐닌(Игнатий Смольнянин)의 팔레스타인 여행기에서 구르지(Гурзи)에 대한 언급되고 있으며 아파나시 니키틴(Afanasi Nikitin)의『삼대양으로의 여행(Хожение за три моря Афанасия Никитина, 1466~1472)』에서 구르지야 땅(Гурзыньская земля)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이후 구르지(Гурзи)라는 용어는 러시아어에서 자모 교체 현상이 발생해서 그루지니(Грузины)로 변경되었다가 전통적으로 국가의 명칭을 뜻하는 러시아어 접미사 ‘이야(-ия)’가 붙어서 ‘그루지야(Грузия)’가 되었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그루지야는 조지아(Georgia)라고 부르며 일부 국가에서는 ‘게오르기야’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 명칭은 터키어로 그루지야 인을 뜻하는 구르지(Gurdzi) / 규르지(Гюрджи, Gurdzi)에서 차용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로 13세기 마르코 폴로는 ‘그루지야’를 조다니(Jorganie)라고 했고, 현대 터키어로는 구레이스탄(Gureista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것뿐만 아니라 조지아, 혹은 그루지야 / 게오르기야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여러 학설들이 존재하고 있다. ‘곡물 경작지’를 뜻하는 ‘게오르기야’에서 파생되었다는 학설도 있고, 그리스어로 ‘농부’를 지시하는 ‘게오르고스’에서 유래했다는 학설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중세 시대 수많은 사원의 이름으로 사용됐던 ‘성 게오르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학설도 존재하고 있고, 조지아를 통치하는 통치자 중 무려 12명이 ‘게오르기’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결과로 ‘게오르기야’가 국명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오늘날 조지아 영토인 이베리아 지역의 영토에 대한 최초 거주는 여러 근거로 볼 때 현 조지아 남동부에 존재하는 드마니시(Dmanisi) 지역의 발굴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약 180만 년 전부터 이 지역에 대한 구석기 유적의 발굴로 나타난다. 이는 후기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발굴된 아슐(Ashul) 문화로 알려진 무스테리안(Musterian) 시기의 것인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은 조지아에서 무수히 많은 동굴과 옥외 유적지들로부터 발굴되었다. 최초의 농경 신석기 시대 거주는 B.C 6000~5000년 사이의 시기로 추정되며 이에 대해 여러 도구기 나타나고 있는데 해당 지역의 흑요석을 사용하던 사람들은 가축들을 키웠으며 포도를 포함한 작물들을 재배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슐라베리-쇼무(Shulaberi-Shomu) 문화로도 알려진 신석기 시대의 문화로 이 문화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소와 양, 돼지와 같은 가축들을 방목하여 목축을 주로 행했으며 포도를 포함한 과수와 밀과 같은 곡류를 재배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슐라베리-쇼무(Shulaberi-Shomu) 문화로 알려진 곳에는 카프카스 인들의 대규모 정착을 근거하는 수많은 동굴들은 1960년대부터 발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에 발굴된 동굴들은 동부 조지아의 이미리스-고라(Imiris-Gora) 지역에 주로 분포해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B.C 5000년 시기로 알려졌고 이 동굴들에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집들을 포함한 많은 고대 정착지들이 나타났다. 그 주거지들은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기둥과 굴뚝이 있는 특이한 유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형태들과 함께 향후에는 조지아의 주거지들과 다르바지(Darbazi) 형식으로 형성된 건축지들이 발달하였다. B.C 4000~3000년 시기의 동석기(銅石器) 시대 기간 동안으로 놓고 볼 때 조지아와 소아시아는 쿠라-아락세스(Kura-Arakses) 문화의 근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쿠라-아락세스(Kura-Arakses) 문화는 B.C 2000년 시기의 트리알레티(Trialety) 문화로까지 이어진다. 동석기 문화에 속해 있는 동굴들은 베슈타셰니(Beshutasehni)와 오즈니(Ozni) 정착 유적으로도 나타났고 탄소 연대로 밝혀진 연대로는 B.C 4000~3000년 시기의 정착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후에도 아르트빈 지역에 위치한 트살카(Tsarka)의 트리알레티(Trialety) 주(州)에 있는 매장식 무덤이 존재하는데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하면 B.C 2000년의 시기들로 밝혀지고 있다. 이들 유적들 모두 진보되고 잘 발달된 무덤과 매장 양식이 증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