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vs 김문수 vs 이준석, 세 후보 공약에서 드러난 경제 철학과 미래 비전
공약은 많지만 돈은 어디서? 대선 후보 10대 공약 검증
[칼럼] 세 후보 10대 공약 비교: ‘미래’로 가는 길, 누구의 설계가 타당한가
2025년 5월 12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며 주요 후보 3인—이재명(더불어민주당), 김문수(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각각의 10대 공약을 제출했다. 공약은 각 후보의 정치적 철학, 정책 우선순위, 미래 비전에 대한 집약적 선언이다.
세 후보 모두 “경제성장”과 “미래 산업”을 키워드로 삼고 있다. 이는 저성장 고착화, 청년 세대의 불안, 지방소멸 위기, 그리고 글로벌 AI 패권 경쟁 등 복합위기에 직면한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방식과 철학은 뚜렷이 갈린다.
후보별 공약 분석
◼ 이재명 후보: 국가 주도의 미래 산업 설계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0대 공약에서 ‘국가 주도형 미래 설계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1호 공약은 인공지능(AI) 산업 집중 육성으로,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고성능 GPU 5만 개 확보를 통해 이른바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지역화폐 확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세종 행정수도 이전 등도 포함되어, 경제성장과 균형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공약의 다른 축은 복지 강화다. 아동수당 확대, 소상공인 채무조정·탕감, 온누리상품권 확대 등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민생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권력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포함돼 있는데, 검사 파면제를 신설하고 대법관 정원 확대, 국민소환제 도입 등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이다. AI 투자와 복지 확장, 공공인프라 확대는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은 “재정지출 구조조정”과 “총수입 증가분 활용”이라는 추상적 표현에 그친다. 결국 공약의 방향성은 명확하고 진보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확보되지 못한 채 비전만 앞세웠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정책 추진력과 재정 현실성 사이의 간극이 과제로 남는다.
◼ 김문수 후보: ‘자유 주도 성장’의 수호자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10대 공약을 통해 ‘자유 주도 성장’을 앞세운 보수적 경제 기조를 강조했다. 1호 공약으로 법인세·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와 기업 규제 대폭 완화를 내세웠고, ‘자유경제혁신 기본법’ 제정으로 민간의 자율성을 제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AI·에너지 3대 강국을 위한 민관합동펀드 100조 원 조성, 과학기술부총리 신설도 공약에 포함되어 있어 기술 혁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권력 감시와 정치개혁 공약도 강경하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사법방해죄 신설, 감사원법 개정 등을 통해 권력기관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이른바 ‘이재명 방지 감사관제’는 부패 방지를 위한 상징적 정책으로 해석된다. 의료정책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군가산점제 도입 등 청년층과 보수층을 동시에 겨냥한 공약도 포함됐다.
그러나 정책 전반에 세수 감면이 포함되어 있어 재정 수입 감소가 불가피한 구조다. GTX 확장, AI 투자 등 공공투자 역시 재원이 소요되는데, 이와 병행되는 감세 정책은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 보수적 원칙에 충실하되 재정운용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약점이다. 자유 시장의 활력을 강조하면서도 정책 간 균형을 맞추는 데는 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 이준석 후보: 탈(脫)권력과 청년 중심 ‘작은 정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10대 공약을 통해 ‘작은 정부’, ‘청년 중심’이라는 두 가지 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1호 공약으로 정부 부처를 19개에서 13개로 축소하는 행정부 개편을 제안했으며,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국무총리 중심의 실무형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와 공수처 폐지, 기재부 예산 기능을 총리실로 이관하는 등 행정 권력 재편이 핵심이다.
청년 정책에서는 ‘든든출발자금’이 주목된다. 청년에게 최대 5천만 원까지 1.7% 고정금리로 대출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으로, 주거·창업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인에게 최대 월 500만 원 연금을 지급하고, 신기술 규제 완화를 위해 ‘규제기준국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방에서는 상위 군인을 단기 간부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군 구조 개편도 약속했다.
특히 지방세 자율권 확대, 법인세 자치운용,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지역과 기업에 실질적 자율을 부여하는 정책들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실현력이다. 재원 마련 방식이 “기존 예산 재조정”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머물고 있어, 정책 실행의 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작은 정부’와 ‘청년 우선’을 동시에 추구하되, 자칫하면 상징성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됨에 따라 공약의 실제 실행력을 놓고 검증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며, 각 캠프는 보다 구체적인 재정추계와 실행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인은 ‘말’로 미래를 설계하지만, 유권자는 ‘실현 가능성’으로 그것을 평가해야 한다. 후보들의 화려한 청사진 너머, 현실과 접목되는 설계 능력과 조정 능력을 냉정히 살펴야 할 때다. 한국 정치가 더 이상 “포퓰리즘 예고편”에 그치지 않으려면, 공약에 대한 집요한 질문과 검증이 유일한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