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독일 정가에서 뜨거운 이슈는 아마도 독일 연방 정부의 내무부 소속 연방 헌법 수호청(Bundesamt für für Verfassungsschutz: BfV)이 이른바 극우파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함에 따라 이 정당의 해산을 놓고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AfD는 올해 조기 총선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기민당(CDU)과 기사당(CSU) 연합에 이어 원내 2당으로 급부상했는데, 기민당만 떼어 놓고 보면 AfD가 사실상 원내 제1당이 된다. BfV가 그렇게 지정한 까닭은 2019년부터 AfD에 대해 약 3년간 강도 높게 이 정당의 독일 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당내 만연한 민족주의와 혈통주의가 민주적 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정에서 의회가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다고 해서 정당 해산에 관한 결정이 바로 진행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이때 대체로 민주적 질서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존재했는지,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민주적 질서를 파괴할 구체적 행동이 있었는지 등을 검토해서 정당 해산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당장 AfD는 이 결정이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AfD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총선에 편승해서 현재의 독일의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주장하면서 AfD의 집권이 마치 독일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전형적인 나치의 수법이다. 그런데 극우 정당의 해산과 관련해서 한 가지 분명한 사례가 있다. 2001년 슈뢰더 총리 시절 연방 정부는 독일 민족민주당(NPD)이 헌법을 위반했다며 정당 금지 가처분을 허락해 달라며 제소했고, 당시에 연방 상·하원 모두 정당 금지요청서를 제출했다. 그때는 이민자들이나 난민들, 외국인들에 대한 극우파의 범죄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필자의 유학 시절이었는데, 슈뢰더 총리가 그와 같은 범죄가 독일의 국제적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언론에서도 극우파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반극우주의 시위가 빈번하게 있었다. 당시에는 NPD와 같은 정당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지만, 독일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한 측면도 있어서 극우파는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2017년 헌법재판소에서 NPD의 정당 해산 청구를 최종적으로 기각했다. 그러나 이때는 NPD가 아직 현재의 AfD와 같은 영향력이 별로 없어서 소수에 불과한 NPD에 대한 경계심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독일이 히틀러의 나치 정권 패망 이후에 극우파에 대한 여러 가지 조치를 계속해 왔지만, 일부 나치 추종자들 혹은 신나치주의자들이 여전히 독일 사회에 침투해 있다. AfD가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되면서, 이와 관련된 많은 사람, 공무원들이나 경찰들이 당국의 조사를 받는 것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도 잔재로 남아 있는 나치즘 혹은 신나치즘의 광기는 언제든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히틀러 시대처럼 되지 않은 것인데, 그 까닭은 상식이 있는 독일 국민이라면 나치즘의 광기가 결국 파멸이라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의 극우파 문제는 나치즘과 관련된 것 외에도 왕당파에 기반한 제1제국의 부활을 획책하는 시도로도 나타났다. 물론 사전에 발각되어서 관련자들이 모두 체포되기는 했지만, 21세기에도 이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보면 메르츠 총리의 입장에서는 이번 결정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메르츠는 연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깨고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해, 2차 투표에서 겨우 과반수를 넘겨 의회에서 총리로 인준을 받았다. 이번 AfD에 대한 연방 헌법 수호청의 결정에 대해 메르츠 총리가 다소 얼쩡한 태도를 취한다면, 그는 좌우로부터 상당한 공격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과연 대연정을 잘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메르츠 총리에게는 중요한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현재의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반색하고 강하게 이를 지지하는 사민당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사민당은 아마도 메르츠가 극우파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 아마도 1차 투표에서 일탈표로 나타났던 것일 수도 있다.
이번 BfV가 AfD를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한 것이 왜 지금이냐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만일 이러한 점에 우리가 치중하다 보면 마치 BfV가 정치에 개입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할 것인데, 이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독일 연방 정부의 내무부 장관도 분명히 독립적인 자체 결정이라고 했으며, 최종적인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만 판단하면 될 것이다. AfD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되면, 정당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나치와 관련된 특정한 행위라든지,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지난 총선에서 AfD는 몇몇 사람들이 그와 같은 행태를 보이면서 나치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어쩌면 표면적으로 승리했지만, 결국 집권에는 실패했다.
AfD는 과연 정당 해산으로 끝날 것인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BfV의 결정은 분명히 극우파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데, 어떤 정당이든 헌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조치라고 하겠다. AfD를 놓고 정상적인 당을 대우할 것일 주장하는 쪽과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책임을 강조하는 쪽이 서로 맞서고 있다. 전자의 입장은 총선으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공당이 극단주의적 성향이 있을지 몰라도 이를 한갓 단체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AfD의 정책이 민주적 질서를 파괴하는 극단적 행위들이나 정책들이 민주주의 위협으로 보고 이것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정당 해산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이 문제는 상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AfD의 득세는 분명히 독일의 현재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지난 정권에 대한 민심이 표심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민주적 질서와 헌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와 과정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번 BfV의 결정은 총선 결과와 무관한 것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내 정당을 해산하기 위한 결정은 매우 신중할 필요는 있다.
필자는 여러 번 극우파에 대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극우파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몰락의 길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AfD가 현재 독일의 상황에서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민심을 심리적으로 자극하면서 상당히 세력을 불렸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당을 단순히 과거와 같은 잣대로 평가절하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사실 AfD는 외국인, 이민자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증오, 그리고 나치즘에 대한 동경과 향수로 얼룩져 있다. 거기에 정당 운영도 엄격히 말해 외관상으로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상당히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포퓰리즘적이기도 하다. 물론 독일 사회는 여전히 이에 대한 방화벽을 갖고 있으며, 시스템을 통해 견제하고 방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독일의 시민사회가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언론도 학계도 정당도 마찬가지다.
이번 BfV가 AfD를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한 것은 그동안의 극우파에 대한 경각심이 늦추어진 탓에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일정 정도 통제할 필요성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이번 결정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AfD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BfV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조치여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BfV는 임의로 급조된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한 절차와 조사에 따라 AfD가 헌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제 AfD의 정당 해산 결정 청구에 대한 판결은 BfV의 손을 떠나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이 판결에 따라 AfD의 정치적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어떤 것도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