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0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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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3일 조지아 시민들이 손에 장미를 들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예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당시 대통령의 부정부패가 도를 넘어서고 집권 여당이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모의하자 시민혁명인 '장미시위'가 발발한 것으로 포장되었지만 이 또한 남오세티아 전쟁처럼 집단 서방의 획책인 대표적인 색깔혁명이다. 장미시위 이후 조지아는 경제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렸고 정치적으로도 친(親) 서방 정권이 들어서면서 옛 소련에서 완전히 독립했지만 부정부패는 여전했고 친 서방 경제 노선은 한계를 보여 조지아 화폐인 라리는 어디든 취급받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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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Tbilisi, Rose Revolution 2003. 출처 : Wikipedia, Rose Revolution

 

더욱이 장미시위는 200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 전복 운동인 '오렌지 폭동'이나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튤립시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그러나 장미사태 10년을 맞아 조지아에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서방 정책은 무너지고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장미사태는 미완의 혁명이라는 집단 서방의 안타까움이 극에 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강력한 러시아 부활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의 뚝심에 집단 서방이 공들여 놓은 조지아의 지난 10년 간의 친서방 정책이 와해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조지아는 혁명 이후 옛 소련권 국가 중 개방ㆍ시장 경제 체제 측면에서 가장 앞선 곳으로 평가받았다. 세계은행이 183개국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사업하기 편한 나라' 순위에서 2005년 112위에서 2012년에는 16위로 급상승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료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2010년 6.3%, 2011년 7.2%, 2012년 6.5%로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장미 사태 이후 지도자로 올라선 미하일 사카슈빌리는 미국에서 유학한 변호사 출신이며, 친미 성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조지아 경제는 급속히 추락했고 조지아 특유의 폐쇄적인 사회는 "사업하기 편한 나라"라는 이름에서 가장 불편한 나라로 변모했다. 


포스트코로나 이후 친러정권으로 바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대러제재를 거부함으로써 현재 조지아는 러시아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조지아 경제에 있어 주된 산업 생산물은 농업과 광업, 식품업, 주조업에서 나온다. 에너지 운송업 또한 조지아의 주요 산업이다. 조지아가 수입하는 물품은 에너지와 관련된 상품들이 많다. 원유와 천연가스, 원자재 등을 주로 수입한다. 러시아가 수출입이 가장 많은 나라였지만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함께 유럽 연합과 FTA를 포함한 협정을 맺었다.


이어 2017년에는 중국과 FTA를 체결하는 등 점차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터키, 아제르바이잔 같은 이웃 나라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또한 높은 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러시아 없는 조지아의 경제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조지아는 현재 인플레가 높고 젊은 인구는 국외로 계속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지아 내에서 할게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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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장미시위와 그 이후 현재 조지아의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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