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0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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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우연히 국회도서관에 들렀다가 도서관 로비에 진열되어있던 <어떻게 만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 로비에는 검색하지 않아도 방문객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진열되어있고, 또한 로비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유료이지만 로비 한쪽에는 복사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다. 처음 방문한 국회도서관에서 붉은색 카바의 그 책은 나를 유혹했다. 그의 유혹은 강렬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는 나를 흥분시켰다. “이 저자는 어쩜 나와 생각이 이렇게 유사할 수 있을까?” 물론 새로운 기술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그 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끈기 없음이 그와의 이별을 재촉했다. 집중력이 흩어지니 책을 더 이상 탐색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읽지 못한 부분은 복사를 해서 집에 보관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붉은색 카바의 그 책이 다시 기억나서 복사한 대목을 읽어보았다. 복사한 부분은 원본의 아우라는 없었지만, 내용은 같기에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복사한 부분도 모두 탐색하였다. 아뿔사! 그러나 앞부분이 기억나지를 않았다. 아련한 기억만 남아있었다. 다행히 그때 그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을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적이 있어서 그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 기사의 일부를 아래에 함께 올린다. 아래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집단적 포기'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집단적 포기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잠재적 독재자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적 포기의 원인을 이 책에서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과 두 번째는 이념적 공모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념적 공모는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모든 독재자의 탄생은 주류 정치인들과의 공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이지만, 우리의 현실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잠재적 독재자를 가리키는 네 가지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나 유사했다. 첫째가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시민권 및 정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이다.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법률 위반을 문제 삼아 그들을 정치 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가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폭력단체로 몰고 가고, 야당의 대표를 사법처리하려고 하고, 시민언론을 탄압하는 현 정부와 매우 유사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기준으로는 현 정부는 잠재적 독재자의 정권이다.


만약 축구경기를 하는데 심판이 매수당하고, 상대편 주전 선수를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기 룰을 바꾸면, 그 경기는 공평한 경기가 될 수 없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법관을 자기편으로 앉혀서 법 집행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려고 하고,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꾸어 버리는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잠재적 독재자는 법의 이름으로 자신의 야심 찬 계획을 진행시킨다. 총이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키기에 깨어있지 않은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뒤늦게 그 속셈을 알아차린다.


이상이 그 당시의 기사 내용이었다. 최근 읽었던 복사한 부분에는 트럼프의 첫 당선을 두고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이후 미국 미래에 대해 세 가지 전망을 제시한다. 첫 번째가 놀랍게도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와 손을 잡음으로써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공화당 지도부는 극단주의자와의 위험천만한 동침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재빨리 과거의 평판을 되찾을 것이다.” 한국이 미국보다 민주주의가 더 발전한 나라일까? 최소한 국민의 전체적인 의식수준은 미국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힘을 잃어가는 기존의 지배적인 지위를 평화롭게 넘겨준 역사적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도 지적한다. 지금 우리의 기득권들의 저항 속에 우리는 그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가 미국 사회가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점차 상호 관용과 자제가 무너지고 되돌릴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를 것이라고 진단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런 진단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정치 경쟁자가 적으로 변할 때 정치는 전쟁으로 전락하고, 민주주의 제도는 무기로 바뀐다. 그 결과 사회는 끊임없이 위기를 맞게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대통령 탄핵으로 말미암은 조기 대선을 눈 앞에 둔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극심한 정치 양극화를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길은 엘리트 집단 간의 협력과 타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엘리트 집단이란 것 역시 정치와 한 통속으로 움직이니 그들 역시 정치 집단과 다를 바 없다. 정치가 양극화될수록 정치와 거리를 둔 엘리트 집단에 대한 부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도 정치화되어 있기에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엘리트 집단에 대한 스포트 라이트를 켜지 않는다.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의 미래는 한국 국민의 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도 밝혔듯이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국민이 깨어있어야 민주주의는 살아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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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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