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 즉위…“평화와 사랑의 세상을 위하여”
바티칸에서 거행된 즉위 미사, 20만 명 운집…전 세계에 평화 메시지 전파
[바티칸=2025.05.18.] 교황 레오 14세 즉위…"평화와 사랑의 세상 만들자"
2025년 5월 18일(현지시각),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시선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집중됐다. 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 출신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69세)가 이곳에서 공식 즉위 미사를 집전하며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여정을 시작했다. 이날 미사에는 전 세계 180여 개국의 대표단과 20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운집해 새 교황의 탄생을 축하했다.
레오 14세는 미사에 앞서 **교황 전용차량 '포프모빌'**을 타고 광장에 등장했다. 방탄 장비 없이 열린 차량 위에서 그는 군중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을 안아 축복하는 모습으로 따뜻한 첫인상을 남겼다. 이후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안장된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을 참배하고 기도를 올린 뒤 야외 제단으로 나아가 역사적인 미사를 시작했다.
즉위 미사의 핵심 의식,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 착용
즉위식의 하이라이트는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 착용 의식이었다. 팔리움은 흰 양털로 만든 띠로, '길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선한 목자'를 상징한다. 레오 14세는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으로부터 팔리움을 서서 전달받았는데, 이는 앉아서 받았던 전임 교황들과 차별화된 겸손한 자세였다.
이어서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레오 14세의 **오른손 약지에 '어부의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 순금 반지는 교황이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후계자임을 상징하는 인장으로, 'LEO XIV'라는 라틴어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교황은 반지를 응시하며 두 손을 모아 깊은 기도를 올렸고, 이 경건한 순간은 신자들의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 감동을 자아냈다.
사랑과 일치, 그리고 평화의 메시지
첫 강론에서 레오 14세는 강한 울림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증오와 폭력, 편견, 차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경제 논리가 만든 상처가 너무 많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이러한 분열을 사랑과 일치로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일치(unity)'라는 단어를 일곱 차례, '화합(harmony)'을 네 차례 언급하며 분열된 세계와 교회를 향한 화해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미얀마,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분쟁 지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잊지 말자"**고 호소했다. 그는 "모든 협상자들이 나서서 평화를 전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바티칸을 전쟁 종식 협상의 장소로 제안했다. "교황청의 도덕적 권위가 평화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국제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세계 지도자들과의 외교 무대 개막
즉위 미사에는 전 세계 지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미국의 J.D. 밴스 부통령,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 등 20여 개국의 국가원수들이 직접 참석해 새 교황의 즉위를 축하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면은 미사 직후 로마 주재 미국 대사관저에서 이루어진 젤렌스키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의 비공식 회동이었다. 두 인물은 악수를 나누고 30여 분간 회담을 가졌는데, 이는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벌어진 공개 설전 이후 첫 공식 만남이었다. 이 만남은 바티칸 외교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해결의 중재자로 부상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새로운 교황의 상징과 철학
레오 14세는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소박한 행보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전통적인 붉은 신발 대신 검은 신발을 신었고, 미사 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전통 망토인 '모체타'를 착용해 교황으로서의 권위와 겸손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또한 그는 순금이 아닌 금도금 반지를 선택함으로써 절제와 소박함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도 이날 행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미사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정부 경축 사절단과 유흥식·염수정 추기경,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 한국 가톨릭 지도자들이 참석해 깊은 연대감을 표현했다.
레오 14세의 즉위는 단순한 교황직 승계를 넘어 **분열된 교회와 혼란한 세계에 전하는 '화해와 사랑의 선언'**이었다. 세계가 분열과 갈등 속에서 방향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새 교황의 등장은 인류가 다시 '하나 됨'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