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TV 토론이 도입된 것은 후보자들의 철학·정책·가치관·사고력 등을 유권자들이 TV 생방송을 통해 직접 비교·평가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투표로 연결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TV 토론 없이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가 과연 대통령의 자격에 적합한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TV 토론을 통해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에게 각자의 정치적 소신과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표심을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기회라 하겠다. 그 때문에 대선에서 각각의 후보자들은 TV 토론에 상당한 공을 들이면서, 다소 초반에 밀리더라도, TV 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지지율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TV 토론은 경제 분야, 사회 분야, 정치 분야로 나누어서 모두 3차에 걸쳐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토론 수준은 TV 토론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매우 실망스러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TV 토론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번 TV 토론은 유권자들의 표심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으로 선두 주자의 지지율을 뒤에 각각의 주자로 서로 갖고 오려는 의도에 묻혀 버렸다. 이러다 보니 각각의 후보들이 판세를 엎을 정도로 강력한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유권자들의 관심도에 비해 그저 그런 정도에서 TV 토론이 끝나고 말았다. 한 후보는 상대방이 서로 합세해서 공세를 펼치니까 다소 방어적이거나 조심하면서 자세를 낮추는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후보는 전혀 준비가 안 되었다는 느낌과 함께 최소한의 펙트 체크도 하지 않은 채 토론에 참여해서 주어진 원고를 단순히 읽는 수준에 머물렀다. 또 다른 후보는 상대방의 말이나 의도를 간판하지 못하고,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자르는 식으로 자신이 옳다는 점만을 부각하면서 비호감도만을 상승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후보는 선명성에 몰입한 나머지 상대방을 추궁하는 데에 집중하다 보니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이번 대선에 참여하는 데 만족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 TV 토론을 보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말꼬리 잡기가 난무했으며, 심지어 전 국민이 TV 토론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데도 단연코 해서는 안 될 발언까지도 거리낌 없이 튀어나왔다. 사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지지율이 낮은 후보자가 지지율이 앞선 후보자를 공격하는 데에 지나치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달리 보면 이것은 토론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우선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자의 권한이 너무 없다 보니 종종 후보자들이 토론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사회자가 너무 토론 진행에 개입하다 보면 편파성 시비가 나올 수 있으니 그럴 바에는 아예 토론 과정에 개입하지 않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자의 존재감이 없어지고 사회자는 후보자들의 과도한 발언이나 논점 이탈에 대한 제지 등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자를 전문가로 해서 유권자들을 대신해서 송곳 질문이나 핵심적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하거나, 혹은 사회자와 더불어 전문가가 추가적 질문을 통해 정확하고 문명한 질문을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TV 토론 방송도 횟수를 늘리고, 후보자들이 자유롭게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토론에 익숙하거나 토론하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토론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토론에 임하다 보니, 결국 토론 능력이 언제나 아쉽고, 막상 토론하려다 보니 주어진 시간에 맞추려다 보면 정작 자신이 해야 할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난으로 일관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거나 자신의 관념에 얽매여 과거 그대로의 것을 답습하기 마련이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토론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인 아니라고 해서 토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토론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토론 방식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중요하기는 하다. 이번 대선 토론은 4자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4자 토론 방식보다 양자 토론 방식이 적합할 것이다. 그래야만 유권자들은 각각 후보자들의 정책과 비전 등을 비교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4자 토론 방식은 한 후보자들에게 주어진 시간도 양자 토론 방식보다 적어서 후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기 어렵다,
서로 정치적 공방을 벌이더라도 토론에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공방은 언제든 있을 수 있지만, 토론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론이 형식적으로 그저 후보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그저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후보자들이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국가지도자로서는 자질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택보다는 자신의 권력에만 눈독을 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과거 발언을 지나치게 들추어내고,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기만 하는 사람은 토론의 장을 통해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상대방보다 열세임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며 더 나아가서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이번 대선 토론에서 주도권 토론이나 답변 시간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어떤 질문에 대해 다소 엉뚱한 답변을 의도적으로 하거나, 회피하는 듯한 모습도 드러났다. 이것은 답변을 하면 자신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현재의 네거티브적 공방에서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토론은 자유롭게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것은 토론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는 경우에는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자연스럽게 각각의 후보자들이 스스로 가이드 라인을 정하면서 유권자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한 표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 토론처럼 진행되는 경우 자유로운 토론 방식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사실 이번 대선 토론에서 각각의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들은 서로 다른 관점이 있었을 뿐,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서는 과거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토론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토론이 전개되었더라면, 그리고 이것으로 정치적 공방을 벌였더라면, 그래도 토론에서 서로 동의하는 점도 있었을 것이고 혐오와 증오만을 불러오는 모습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하다 보니, 각각 후보자들의 주장들은 어차피 상대방의 공약에 대한 검증보다는 상대방 후보자의 인신에 대한 검증을 하려는 의도에 매몰되어 버렸다. 후보자의 인신을 검증하는 것이 이번 대선 토론의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에 ‘올인’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토론 수준이 낮다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번 대선 토론은 토론 방식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대선 토론의 목적이 유권자들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토론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저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토론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당한 선택을 위한 토론이라면, 관계기관들은 좀 더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토론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인 토론 방식과 토론 횟수 등은 이번 대선 이후에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다른 선거도 아닌 국가의 중대사인 대선에서 토론 방식이 문제가 있다면, 이것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 토론을 통해 토론 방식의 개선은 후보자들의 소신과 정책 방향, 철학과 가치관, 정책수행 능력 등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대선 토론이 후보자들의 관점보다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