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올라온 대통령”…이재명의 정치 서사
검정고시부터 헌정 질서 수호까지, 투쟁의 연대기
[칼럼] 무수저 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이재명, 한국 정치의 ‘반전 드라마’
2025년 6월 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세 번째 대선 도전 만의 쾌거였다. 그러나 이재명의 승리는 단순한 선거 결과가 아니라,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반전의 서사’이자, 기득권 질서에 대한 항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재명의 정치적 입지는 그의 출신과 생애 전반에 걸쳐 형성된 비주류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다.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가지 못한 채 12세부터 공장에서 일했다. 장애를 입고도 검정고시로 중앙대 법대에 진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겁이 없는 이유는,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라는 자조는 그가 걸어온 길을 함축한다.
정치 입문 이후에도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내내 기득권과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보수 세력뿐 아니라 당 내 주류로부터도 ‘비문’ ‘비명’ 인사로 견제를 받아왔다. 특히 대장동 개발 의혹 등 수많은 사법 리스크는 그의 정치 생명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법정에서 무죄를 받거나 정치적 반전으로 생존했고, ‘오뚝이 정치’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재명의 등장은 노동자·빈곤층·소외 계층의 정치적 대표성을 상징한다. 한국 정치가 오랜 시간 학벌과 혈연 중심의 엘리트 시스템으로 유지돼 왔음을 고려하면, 성남 공단에서 프레스 사고로 팔이 굽은 소년공이 대통령에 오른 현실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와의 정면 충돌 끝에 실현된 ‘계엄 해제’와 탄핵 가결,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대중적 지지도는 그의 리더십이 단순한 야당 대표를 넘어, 비상 상황에서 체제 수호자로 자리매김했음을 시사한다.
당선 직후에도 이재명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은 그의 임기 중 재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주요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루며 정치 개입 논란을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정치는 여전히 분열 상태다. 야당의 주도로 통과된 예산안, 정부 고위직 탄핵소추, 장외투쟁 등은 이재명의 강한 견제 정치를 보여주는 한편, 정치 실종의 책임론도 동시에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는 통합의 정치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쌓아온 정치적 자산은 ‘투쟁과 반전’이지 ‘통합과 조율’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통치 철학과 국정운영 방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환이 요구된다. 그는 더 이상 반대편을 공격하는 야당 대표가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향 경북 안동 도촌리 주민들의 바람처럼, 소외지역에 대한 실질적 배려와 지역 균형 발전도 그가 약속한 ‘민생 회복’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이재명의 당선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성장 서사’에 감동하고, 불평등 구조 속에서 자기 투영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동시에, 기득권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아웃사이더’의 등장이 어떻게 대중적 열망과 결합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재명의 ‘반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치적 전투가 아닌, 국정 운영의 실력으로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이재명은 ‘소년공에서 대통령으로’의 길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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