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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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내의 인도인 공동체는 고대 촐라 왕조 시절부터로 추정될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고, 말레이인들과 혼혈하면서 문자와 힌두교, 불교가 전파되고 말레이어에도 상당수의 산스크리트어 어휘가 유입되었다. 다만 당대에 종이를 대신해 쓰였던 패엽이 장기보존하기에는 좋지 않다보니 역사적인 사료가 많이 소실되어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이후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와중에 고아(인도)에서 많은 인도계 카톨릭 신도들이 유입되고 인도계 용병들이 정착하면서 말라카 반도의 소수민족 크리스탕의 기원이 되기도 하였다. 본격적인 인도계 대량 이주는 말레이시아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말레이시아에 주둔하던 영국군 중에는 시크교도 펀자브인 등 인도인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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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말레이시아 내에서 재개되고 있는 중국과 합작 사업들,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결정적으로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노예 무역을 금지한 대신 인도인 노동자들(타밀족)을 고무 농장에서 저임금으로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레이시아에 데려오면서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 이민자 수는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가 독립하면서 말레이시아 내 인도계 이민자들 역시 말레이시아의 국민으로 편입되었으나, 당시 말레이인들은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부미푸트라 정책을 통해 이들의 권리를 다소 제한하였다. 말레이시아 독립 초창기 시절에는 말레이인 상당수는 농민이고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이 도회지의 상권을 장악한 상황이라 교육 격차와 소득 격차가 심했다고 한다. 한편 영국이 중국인들을 이민으로 받아 채우기로 하자 현재의 말레이시아인 말레이 반도와 부속도서인 싱가포르, 페낭, 사바 일대로 중국인들이 많이 이주했다. 


특히 19세기부터 이민이 활발하였는데 이는 중국 내부의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1790년대 3억 명이던 청나라 인구가 1850년 무렵 4억 2천만 여 명으로 급증하면서 쌀 가격이 폭등하였고 인플레이션 효과로 실질소득이 줄어들었다.납세 수단인 은과 관련하여 청나라 조정은 동전을 평가절하하면서 농민들의 생활 조건은 더 악화되었고 이 때문에 소작농 상당수가 말레이시아 주석 광산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940년대에 영국령 말레이 반도 식민지가 태평양 전쟁 연간에 일본군의 침략을 받았다. 이 때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은 화교들을 탄압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화교들에 대한 학살도 벌어졌으며 위안부로 끌려간 화교 여성들도 많았다. 현재에는 일본과의 경제적 교류가 활발하고 일본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겉으로 반감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그대로 소개하여 일본의 역사적 만행을 잊지 말자고 가르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발전 과정으로 볼 때, 동남아시아 특유의 복합 사회의 특성을 나타냈다. 우선 말레이인 국가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오랫동안 중국계 말레이인, 즉 말레이 차이니즈들이 인구 60% 정도의 다수를 차지했다. 애당초 도시로서의 콸라룸푸르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개척했던 곳이다. 다만 최근에는 말레이계 비중이 높아져서 지금은 중국인 혈통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45% 정도로 43% 정도의 말레이인보다 약간 우위에 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싱가포르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과 비슷한데 대부분이 복건성과 광동성, 해남성 출신들이며 주로 민남어, 광동어, 조주어, 객가어 등을 가정에서 사용하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상호 간에는 표준 중국어를 써서 소통하며 밖에선 영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표기는 간체자로 표기한다.


인도인 혈통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은 10%으로 상당수이며 이들은 대부분 타밀어를 사용한다. 그밖에 유럽 혈통인 영국인 잔류 백인들, 한국인, 일본인, 아랍인들도 소수지만 있다. 이들은 저마다 역사적으로 거주구역을 달리하고 종교 및 언어, 직업, 생활 수준 등에서도 뚜렷하게 구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공업 종사자는 중국계가 압도적으로 많고 있으나 하급 관리 및 경찰, 군인 등은 말레이계, 택시 등 교통운수 종사자는 인도계가 많다. 그리고 종교에서도 불교나 기독교를 믿거나 무종교인 중국계, 힌두교를 믿는 인도계, 100% 무슬림인 말레이계는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이들 중국계 말레이시아 화교들을 이용해 현 중국 정부는 말레이시아 내에서 일대일로 사업을 재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말레이 반도 동부 해안 철도 연결(ECRL)" 프로젝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건설이 확정되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미루어오다가 2020년부터 첫 삽을 떴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었었다. 


그러나 2023년부터 현 철도 건설 사업이 재개되었다. 2024년에는 양국이 운영 및 유지 보수를 위한 합작 회사를 설립하면서 비용적인 문제는 해결되었다. 말레이시아 레일 링크(Malaysia Rail Link, MRL)가 ECRL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중국 교통건설 ECRL(China Communications Construction ECRL, CCCE)과 운영·유지보수를 위한 합작회사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MRL은 말레이시아 재무부 산하 기관으로 ECRL 프로젝트 시행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MRL과 CCCE는 이번 합작 회사에서 각각 지분 50%를 보유하며, 운영 적자에 대한 책임을 공동 부담할 예정에 있다. 이 방식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재정적 위험을 줄이고, 프로젝트 운영을 위한 공동 책임을 강화하고 있으며 MRL은 ECRL의 모든 자산을 완전 소유해 국가 이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제 파트너의 전문성을 활용할 계획에 있다.


참고로 ECRL 프로젝트는 말레이 반도 서해안의 포트클랑과 콸라룸푸르를 동해안 쿠안탄, 트렝가누, 코타바루 등으로 연결하는 총 연장 665㎞ 노선 건설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 공정률은 77%로 나타난다. 이 중 코타바루에서 콸라룸푸르 곰박 통합 교통 터미널를 연결하는 구간은 2026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7년 1월부터 운행 개시할 예정이다. 나머지 구간은 2027년 12월 완공 될 전망으로 앞으로 말레이시아 전 구간이 철도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기회를 말레이시아 내 중국 정부의 투자와 사업에 계속 잭팟이 터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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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그리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말레이시아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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