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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인보(美容人譜)

 

미용, 길을 내다

대한민국 최초의 미용예술학 박사 홍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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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도화 박사

 

환하게 빛나는 미용의 선구자

-홍도화 박사

 

불모지의 땅에서 길을 내는 사람은

개척자이며 선구자에 다름 아니지

척박한 미용의 땅에

퇴비를 뿌리며 물을 주듯

미용시장을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것

진정으로 미용을 사랑하는 사람만 가능하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삶

학교를 세우고

최초의 미용학 박사가 되고

미용장협회 회장을 하고

후배들을 가르쳤지

명화 꽃 야생화 고전머리 재현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지

더불어 삶을 풍성하게 할

언어도 가다듬어

마음까지 살찌우고 있지

다시 태어나도 미용,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다 바쳐

미용의 길을 활짝 열어젖히리

우리의 미용

환하게 빛나리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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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모습과 애정이 담긴 연설에 매료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과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기자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 맺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쉽게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친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선뜩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성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홍도화 박사를 미용계 행사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홍도화 박사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주위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모습을 뵐 때마다 단아한 모습과 지적인 자태를 지녔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미용장협회 행사가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어수연 회장이 재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기자는 내빈석에 앉아 행사의 진행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빈석에 앉아 있던 홍도화 박사께서 축사를 하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전 회장으로서의 축사였습니다. 축사를 듣던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목요연한 연설내용뿐만 아니라 후배 미용장들에게 전하는 연설에서 미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연설이 고결한 모습과 더불어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감탄하며 축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설이 끝났을 때 기자도 모르게 힘찬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내성적인 기자였지만 축사를 마치고 기자 옆자리에 앉은 홍도화 박사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홍도화 박사도 무척 반기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용에 대한 몇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자는 홍도화 박사와 정식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미용장협회는 대전에서 연례행사처럼 송년회, 체육대회 등을 열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시집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친필 사인 시집을 직접 받으니 기쁨이 더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동료의식을 느끼는 법입니다. 같은 시인이니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지요.

홍도화 박사는 정이 무척 많고 후배 사랑도 남달랐습니다. 기자에게 괜찮은 미용인이 있으면 소개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후배는 작품을 잘하니 잡지에 작품을 실으면 좋겠다고 소개했고, 어떤 후배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인터뷰를 해달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후배를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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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홍도화 박사는 어려서부터 멋내는 일을 좋아했고, 그 일들이 좋아서 미용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열 살 때부터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오고 가는 등, 하교 길에서 아카시아 상순을 꺾어 거기서 나오는 진액을 친구들에게 발라주기도 하고 아카시아 줄기를 따서 그 잎을 다 따내고 머리카락에 물을 발라서 가는 줄기에 감아두었다가 풀면 꼬불꼬불해지는 신기한 웨이브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교복 입고 머리를 땋아 양쪽으로 내리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며 몰래 숨어서 울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니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니까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어야 했기에 이모가 운영하시는 미용실에 취업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미용실 환경은 아주 열악하였고 기술을 배우는 일은 어깨너머로 더듬더듬 배웠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울어야 했고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저녁 한 끼로 식사를 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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