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09(수)
  • 로그인
  • 회원가입
  • 지면보기
  • 전체기사보기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44)

 

죽어서 밥이 되다

이태연(1964~ )

 

비 갠 뒤

더 뜨거운 햇볕

 

상가 옆 한적한 인도 가장자리

한 뼘도 넘을 것 같은 지렁이

한 마리 죽어 있다

 

익사하지 않으려는 시도

혹은,

붉은 맨몸의 오체투지였나

 

동네 개미란 개미, 하루살이, 똥파리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기 제 밥벌이의 환락 중이다

 

아직 꿈틀대는 듯 보여

목숨아,

누가 그 몸의 문자를 읽어줄까

 

이태연.jpg

 

이태연 시인

경남 진주 남강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삼천포항 바닷가에서 보냈다. 2004년 시집 <아름다운 여행>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메마른 꿈에 더 뜨지 않는 별> <그래, 사람이다> 등이 있다. 물과 인연이 많아서 지금은 해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이번 달 시는 이태연 시인의 죽어서 밥이 되다입니다.

 

죽어서 밥이 되는 것은 많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나뭇입니다. 대부분의 나무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새싹을 틔우며 성하(盛夏)를 거쳐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성하의 계절에는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서 무성한 잎을 만듭니다. 가을, 결실의 계절이 지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년을 기약합니다. 무성한 잎은 내년을 위한 밥에 다름 아닙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식들의 밥이 되는 경우가 또 있으니 부모님일 것입니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자식들은 험한 세상을 이겨내고 또 다른 존재로서의 자아를 완성해나갑니다.

 

여기 또 하나 죽어서 밥이 되는 존재가 있었군요. “상가 옆 한적한 인도 가장자리/ 한 뼘도 넘을 것 같은 지렁이가 그것입니다. “뜨거운 햇볕아래 죽어 있지렁이는 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살 찌푸리고 지나가기에 충분한 광경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범상하지 않게 보입니다. 지렁이의 모습에서 익사하지 않으려는 시도오체투지를 읽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개미, 하루살이, 똥파리밥벌이의 환락까지를 지켜봅니다. 그러면서 지렁이 그 몸의 문자를 읽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순간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쌓여진 찰나는 인생을 이루고 맙니다. 순간순간이 의미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존재 의미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겠지요.

 

죽어서도 밥이 되는 존재, 그 존재의 존재를 읽어가면서 사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삶은 더 풍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해봅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BEST 뉴스

전체댓글 0

  • 2463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죽어서 밥이 되다-이태연 시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