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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TV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시청했다. 영화 끝 장면 우리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마시자!”라는 대사가 지금 우리 사회에 꼬여있는 정치 현실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정이 씁쓸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이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법관은 구속하라고 하고, 어떤 법관은 석방하라고 하는 세상이니 어떤 법관의 판단을 믿을 것인가? 세상은 그렇게 둘로 나누어진다.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 어느 한 편은 법이 살아있다고 하고, 또 다른 어느 한 편은 법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는 말과 대상의 일치가 어긋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아무 말 대잔치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시적 언어의 향연은 분명 아니다.

 

영화 <내부자들>은 정치인, 언론인, 재벌, 깡패가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한 단면을 고발하고 있다. 10년 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깡패 대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이 그 역을 대신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돈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이 뭉쳐서 권력을 잡으면, 그 사회가 바로 독재사회이다. 우리는 다행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그러한 독재사회의 탄생을 막았지만, 영화 <내부자들>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여전히 그런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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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현 역)는 유력 대통령 후보 정치인 장필우(이경영 역)와 유명 신문사 주간 이강희(백윤식 역)의 도움으로 조폭 두목이 된 자이다. 그는 대부업체는 물론이고 나이트클럽, 룸살롱, 연예기획사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운영으로 그 세계에서 회장님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재벌 오현수(김홍파 역)가 장필우에게 준 비자금 파일을 활용하여 더 큰 이덕을 얻으려고 하다가 그것이 발각되어 오른손이 짤리고, 폐인으로 살아가면서 장필우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또 한편에서는 장필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칠 것을 예감한 민정수석 오명환(김병옥 역)은 특수부 부장검사 최충식(정만식 역)에게 장필우를 수사할 것을 지시한다. 최충식은 경찰 출신 검사 우장훈(조승우 역)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 우장훈은 경찰에서도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서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검찰로 옮겼지만, 검찰조직에서도 줄도 없고 빽도 없는 무족보 검사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직속상관 최충식에게 충성을 바쳐 일하고 있었다.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검찰조직에 충성을 다했다. 그런 그에게 거물 정치인 장필우에 대한 조사는 자신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장훈은 장필우를 조사하다가 안상수가 오현수의 비자금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파일을 확보하려고 그에게 접근한다. 우장훈이 안상수에게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는 복수를 원하고 나는 정의를 원한다. 나는 검사니깐!” 하지만 우장훈은 검사니깐 정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정의라는 가면을 쓸 뿐이었다. 영화 속에는 우장훈이 피고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심문으로 말미암아 피고인이 자살하는 장면도 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우장훈은 고압적인 자세를 연출한다. 우장훈이 보여주는 영화 속의 케릭트는 정의와는 무관했다. 이 땅의 모든 검사가 우장훈과 같지는 않겠지만, 많은 검사들이 우장훈과 유사한 행동을 하리라 짐작된다.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는 정의의 이름으로 부정의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검사 우장훈이 언론인 이강희를 심문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 장면에서 이강희의 대사도 의미심장했다. 그는 우장훈에게 팩트만 말하자고 하면서 말은 권력이고 힘이다. 누가 깡패가 하는 말을 믿겠는가?”라고 한다. 그는 언론을 이용하여 안상구와 관련이 있는 여성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그 원인을 안상구의 강간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자살로 보도한다. 하지만 여성의 죽음만 팩트일 뿐, 그녀의 죽음은 타살이었다. 언론의 왜곡 보도는 사실을 허위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그 힘은 막강했다. 또한 그는 안상구가 청부살인업자였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면서 안상구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자회견을 한 안상구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면서, 자신은 모든 의혹에서 풀려난다. 오늘날의 언론도 팩트를 왜곡하면서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또 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장필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우장훈이 검사직을 박탈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우장훈은 이강희를 찾아가서 다시 검사직을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이었다. 영화 제목 내부자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게 우장훈은 언론인 이강희와 유력 대선후보 장필우, 재벌 오현수와 함께 고급 요정에서 나체로 등장한 접대부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그곳에서 오현수는 이강희에게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 돈으로 안되는 것이 어디있노? 너도 내 돈으로 글도 쓰고 밥도 묵는 거 아이가!” 그 장면이 모두 녹화되어 SNS에 퍼진다. 그것으로 장필우와 이강희, 오현수는 종말을 맞이한다. 우장훈도 검사직을 버리고 변호사로 살아간다.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온 안상구가 우장훈의 사무실에 찾아와서 여의도 건물을 바라보면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마시자!”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의 경계가 모호함을 상징한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안개는 악이 가장 좋아하는 은신처다. 두려움이라는 증기가 만들어낸 안개는 악의 냄새를 풍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불안의 기원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두려운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함이고, 그로 인한 무감각과 무관심이다. 그 속에 조용한 독재는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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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토에서 몰디브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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