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체코 총선,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의 재등장과 대(對) EU, 우크라이나 관련 정책 변화 가능성 (상)
ANO 2011은 어떤 정당이며 "체코의 트럼프"라 불리는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는 누구인가?
지난 10월 3일, 4일의 양일간에 체코에서 총선이 있었다. 이 총선에서 우파 정당인 ANO 2011이 압승을 거두며 기존 동유럽에서 EU의 영향력에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4년 만에 여당에 복귀한 ANO 2011은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다 2011년에 설립한 정당이다. ANO는 체코어로 '맞아'를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불만족스러운 시민의 행동(Akce Nespokojených Občanů)'의 약칭이기도 하다. 이 정당은 체코 제1의 부자인 바비시가 좌파를 극도로 혐오하여 급조한 정당이었는데 점차 체코 정계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각계를 대표하는 대표 정당에까지 올라섰다. 여기에 바비시의 철학이 결집되어 있는데 우선 국가의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인에 대한 면책특권을 폐지하며, 실업과 싸우고,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볼 때, 당은 종종 극우로 기울어지기 보다는 중도우파 성향에 가깝고, 이러한 부분에 있어 체코 기민당(KDU-ČSL)과 정치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안드레이 바비시는 늘 체코 공화국이 유로화를 채택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ANO는 더 이상의 유럽 통합과 더불어 "브뤼셀 관료주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안드레이 바비시는 나중에 체코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균형 잡힌 예산을 갖게 되면 유로화를 채택할 수 있다 밝히기도 했다. 이는 약간의 이중적인 면이 있긴 한데 유로에 가입해 있으되, 제3 세계의 동향을 보고 그때가서 움직이겠다는 신중론이 들어가 있다. 필자가 공부하고 연구한 바비시는 경제적으로도, 정치 정책적으로도 매우 신중한 인물이다. 그는 또한 독일과의 긴밀한 유대를 위해 독일과 재정 콤팩트(Fiscal Compact) 조약을 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재정 콤팩트 조약(Fiscal Compact)은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2년 체결한 EU의 협약으로, 회원국의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하, 국가 부채를 GDP의 60% 이하로 유지하는 등 엄격한 재정 준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조세정책 등 일부 분야에서 바비시는 자영업자에 대한 부분 세제를 폐지하고, 취업 연금 수급자에 대한 부분세제의 부활 등 중도 좌파의 요소를 운동 정치에 재도입했다. 그는 또 당초 교육부의 1.1% 인상 제안과는 달리 학교 교사 임금을 2.2% 인상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의료 분야에서 바비시는 공공 의료 보험 회사들의 막대한 지출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ANO의 정치적인 입장으로 볼 때, 정치가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파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ANO 2011을 좌파에 두었으며 정치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중도 우파에 두고 있다. 그러자 안드레이 바비시는 인터뷰에서 ANO 2011은 "사회공감을 가진 우파 정당"이라 언급했다. ANO 2011은 2017년 총선 이전에 유로화 반대, 그리고 EU로 모든 것을 통합하는 문제, 이민 쿼터 등과 같은 유로화에 회의적 입장을 채택했다. 그러나 ANO 2011은 집권 이후 더욱 친 EU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유로화 문제와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반대했다. Echo24의 언론인 다니엘 카이저(Daniel Kaiser)는 EU에 대한 ANO 2011의 입장을 "유로-기회주의(Euro-opportunism)"라 불렀다. 그렇다면 ANO 2011의 수장인 안드레이 바바시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1954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났다. 바바시는 1980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동유럽 혁명이 벌어지는 도중, 1989년에 공산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민주화로 인해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내 상황에서 사업에 치중했고, 유럽의 대형 농화학 및 농기계 기업인 애그로퍼트(Agrofert)를 창업해 억만장자로 동유럽에 몇 안 되는 올리가르흐가 되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볼 때, 바비시의 재산은 4억 달러(한화 약 5,600억원) 정도다. 그러나 안드레이 바비시는 재산을 모을 때에 탈세, 뇌물, 자살로 위장한 경쟁자를 살인하거나, 갑질하는 등의 온갖 부정부패로 고발을 당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재판마다 무죄로 풀려났다. 그리고 2011년 ANO 2011이라는 정당을 창당하면서 대표가 되었다. 바바시는 2013년, 2017년 두 차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여당 대표로 체코의 총리 지위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바비시는 체코 총리가 되었다. 당시 바바시는 친유로에서 난민 수용 반대, LGBTQ 반대, 유로화 화폐 도입 반대 등을 내세웠고,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벌이는 등, 대놓고 친러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2019년, 바비시는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200만 유로의 EU 보조금을 불법으로 지급했다는 고발을 당하게 된다. 이에 관해, 유로 형사재판소에서 바비시는 기소를 당하게 되었고 여기에 저항한 바비시는 법무장관을 해임하고 마리 베네쇼바(Marie Benešová)를 법무장관에 임용하면서 사법 조작 논란까지 불거지게 된다. 바비시는 당시 이를 두고 "나를 끌어내려는 정치적 음모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임하지 않는다(Nikdy neodstoupím, protože je to politické spiknutí s cílem mě svrhnout)."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음해에 저항하기도 했다.
이에 친 EU 세력과 야당이 합세해 바비시 총리의 탄핵을 선동했고, 이에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는 약 25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모여 "제2의 벨벳 시위"를 일으키고자 했다. 당시 시위는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공산주의 정권을 종식시킨 '벨벳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러한 시위에도 바바시는 끝까지 버텨냈다. 애그로퍼트는 2018년에만 최소 8,200만 유로(약 1,067억원)의 EU 보조금을 타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보조금 스캔들과 바비시 총리의 ‘이해충돌’ 문제를 지적한 EU 감사보고서가 유출되었다. 필자가 볼 때, 이는 극도의 친러 정책을 이끌고 있는 바비시를 끌어내리기 위하여 EU 측이 브랙시트로 EU를 탈퇴한 영국의 가디언에게 이를 일부러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 가디언은 이를 매우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고, 8,200만 유로의 EU 보조금을 체코의 납세자들이 상환할 처지에 놓였다고 서술하자 이를 본 체코의 시민들이 11월 17일에는 벨벳 혁명 30주년을 맞이해 들불 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NGO 단체가 존재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수백만의 순간(Milion chvilek pro democratii)’, 일명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이라는 단체였다. 이 시위를 선동한 단체의 대표는 벤자민 롤(Benjamin Roll)이라는 인물이다.
벤자민 롤(Benjamin Roll)과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이라는 단체는 매우 수상한 단체다. 벤자민은 카를 대학 복음주의 신학부에서 복음주의 신학을 전공한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다. 그는 2018년에는 동성 결혼 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고 로고스 조직의 지원 호소에도 서명했던 인물이다. 이쯤되면 그는 LGBTQ 추종자에 친 EU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난민 수용에 적극 찬성하고 러시아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인물이다. 이 NGO는 EU 산하에 들어가 있는 단체로, 국제 엠네스티와 더불어 EU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들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단체가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이고, 단장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이다. 마침 2019년 11월 1일 폰 데어 라이엔이 EU 집행위원장이 되어 주도한 첫 사건이 11월 17일 체코 벨벳 혁명 30주년 집회인 셈이다. 이런 정도면 EU가 이 집회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벤자민 롤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몇몇 정치인은 왜 우리가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일부는 주말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Some politicians don't understand why we're here, and some think we're ruining their weekend. But the fight for freedom and democracy will never end).”라며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 했다.
벤자민 롤(Benjamin Roll)과 밀리온 츠빌렉(Milion chvilek)은 선거에 불복하여 조만간 다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들은 EU의 지원을 받고 있고, 반(反) 바비시 전선의 최일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 등으로 인해 바비시와 ANO 2011은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져 갔다. 체코 시민민주당(Občanská demokratická strana, ODS)과 체코 해적당(Česká pirátská strana, CPS)의 지지율 합이 50%에 육박하고 둘 다 반(反) 바비시 성향을 갖고 있기에 바바시는 실각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2021년 10월 8일부터 9일 양일간 진행된 총선에서 바비시 총리가 이끄는 ANO 2011이 6석을 잃으면서 패배했고, 바비시는 ODS의 페트르 피알라(Petr Fiala)에게 총리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나게 됐다. 다만 밀로시 제만(Miloš Zeman) 대통령의 내각 인준 거부 사태로 인해 피알라 내각 출범이 지연되면서 보름 정도가 지난 12월 17일에 퇴임하게 되었다. 이후 바바시는 제만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2023년 체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차 투표에서 34.99%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로 진출했다. 그러나 결선투표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현 연립 여당의 지지를 받는 군 출신 무소속 페트르 파벨(Petr Pavel) 후보에게 큰 격차로 밀려 결선투표에서 41.32%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2023년 2월 열린 ANO 2011 집행부 회의에서 그는 더 이상 야당이 집권할 것을 예상하여 미리 구성하는 내각인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예비 총리를 맡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뒤를 이어 제1 부대표인 카렐 하블리첵(Karel Havlíček)이 예비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바비시가 창당한 당이기 때문에 그의 당내 입지는 여전히 강력했다. 결국 1년 뒤인 2024년 2월에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대의원 98표 가운데 88표를 얻어 다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마침 제조업 강국이었던 체코의 제조업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막대한 지원 및 개입으로 인해 시민들의 불만이 상당한 상태였다. 이와 같이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반사 이익을 얻은 바비시와 ANO 2011의 지지율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게다가 바비시는 체코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비판하고 정부의 외교 정책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지지율이 급등했고 결국 2024년 6월 EU 의회 선거에서 7석을 차지하며 제1당에 올랐다. 이는 2025년 10월 총선에서 정권 탈환을 향한 신호탄이 되었으며 결국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 직위 탈환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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