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비위 검사, 성폭력 사건 맡다…피해자 “국가가 또 가해자였다”
검사 기피 제도 없는 현실…성범죄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사각지대
[서울=2025.10.14.] "성비위 전력 검사, 성폭력 사건 담당" 피해자 2차 가해 우려 확산
2025년 10월 14일, 서울 서초구. 최근 성비위로 징계를 받은 검사가 성폭력 사건의 공판을 담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성폭력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가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6월, 성폭력 피해자 김정원(가명) 씨가 2심 재판을 앞두고, 자신이 연루된 준강간 사건의 공판 검사가 성비위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시작됐다. 해당 검사는 2020년 성매매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고, 법무부로부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공판을 맡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피해자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며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피해자는 검사의 배제를 요청하고 싶었지만, 현재 법제도상 검사를 기피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는 “하루하루 이 사람이 정말 잘해줄까 하는 불안감 속에 살았다”며, “혹시 밉보일까 봐 자신을 감추고 위축되어야 했다”고 밝혔다. 실제 2심 재판에서 새로운 피해 진술이 있었지만, 무죄 판결이 나왔고 검사는 상고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성비위 또는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검사는 총 5명이다. 이 중 3명은 현재도 현직 검사로 근무 중이며, 징계를 받았던 ㄱ검사는 지난달까지 인권보호관 업무까지 수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러한 성비위 전력 검사가 성범죄 사건을 맡더라도 이를 막을 법적·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경찰의 경우, 2022년부터 성범죄나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자는 여성·아동·청소년을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할 수 없도록 ‘인사운영규칙’을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아직 관련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도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성폭력 재판 방청 연대를 해온 활동가 ‘디(D)’는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 진술의 비중이 높은 만큼, 검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성비위 전력이 있는 검사를 성범죄 사건에서 배제하는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성비위 검사가 징계 이후에도 사건을 맡는 일은 단발성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보인다. 2020년, ㄴ검사로 알려진 인물은 거리에서 여성을 쫓아가다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나, 검찰은 ‘추행 의도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언론 보도로 논란이 되자 법무부는 품위손상으로 감봉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공정성 확보와 2차 피해 방지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규정 마련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영교 의원은 “성비위 전력 검사가 성폭력 사건을 맡는 것은 피해자에게 명백한 2차 가해”라며 “검사 기피 제도 도입과 함께 성범죄 담당 검사에 대한 자격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뢰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성비위 징계 이력이 있는 검사에 대한 인사관리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