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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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지방도시나 마을들에는 버려진 집들이 많다. 대개 이런 집들은 처분을 해야 하는데 이런 집들의 처분은 굉장히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대한 땅을 갖고 있는 국가다. 따라서 수도인 모스크바는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다방면으로의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지방정부들을 두었다. 지방정부는 지방 주민들에게 세금을 걷지만 해당 주민들의 소득 수준을 간과할 수 없다. 소득 수준에 맞게 세금을 걷다보면 예산 집행은 연방 의회인 두마의 승인을 얻은 연방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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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담장이 처진 러시아의 전통 집,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그러나 연방 정부가 주는 예산으로도 한계가 있다. 러시아 토지법과 부동산법을 전공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버려진 집들 처분은 가장 먼저 걸리는게 예산과 인건비라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걸리는 것은 러시아 헌법에 보장된 사유재산 때문이다. 이 집들의 주인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데 보상금을 줄 돈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받아들인게 2018년에 개정된 주택법에 의거한 보험에 관한 부분이다. 이 "주택보험"은 우리 대한민국의 보험제도를 차용했다. 이건 한국의 제도가 굉장히 좋은 것이다. 


한국의 보험제도는 러시아에서도 엄지척을 들어올릴만큼 러시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의 사유재산도 보호하고 적절하게 보상도 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그럼에도 문제가 있다. 2018년 법이 바뀌기 전의 문제는 여기에 해당 사항이 안 된다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항상 계약서를 휴대하고 있고 바뀌기 전의 법령에 연방 정부의 도장까지 찍혀 있기 때문이다. 다 쓰러져 가는 이 집들, 참 처분이 곤란한게 지방정부의 큰 딜레마다. 한국의 경우, 88 서울올림픽 앞두고 미관에 문제가 있다며 판자촌을 화끈하게 밀어버렸지만 러시아는 사유재산 및 토지법상 2018년 이전 개헌하기 전의 문제가 걸려 있어 골치 아프다. 


사람도 살지 않고, 청소년들 탈선의 장소로도 이용된다. 저런 "폐가"들은 가로등도 잘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불빛이 약해 밤에 길 지나다니기 무섭다. 이처럼 치안의 문제도 있고 심각한 부분이다. 러시아 집의 담장 또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오래 전부터 외부의 위협을 막아 주는 기능만 아니라 국민을 통제하는 기능도 수행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 담장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담장에 항상 구멍이 나 있는 것. 담장이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지켜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주택의 창문 장식에는 전통적으로 두세 겹의 커튼과 레이스가 사용되고 창문은 심지어 3층까지 창살로 덮이곤 한다. 


완벽한 담장의 개념은 폐쇄 사회를 만들어 내며 안전 유지에 드는 거래 비용을 높이고 있다. 경비원과 감시원들은 의례 준수를 위해 생산 노동에서 열외가 된 사람들이다. 러시아에 담장 현상이 생겨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러시아는 일부 집단의 사람들이 자원을 장악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나라였다. 담장은 그들이 이 질서를 재생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둘째, 담장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 불신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불신은 소련 시절부터 쌓여 왔다. 키프로스나 스페인 어딘가에 가서 높은 담장을 보면 그 너머에 러시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셋째, 담장은 재산 문제와 관련돼 있다. 러시아에서는 민주체제를 도입한 이후 사유재산 보장을 약속했지만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유재산 보장은 매우 미약했었다. 사업가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사업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가 언제라도 이 사업을 '가로채 갈지' 모른다고 두려워 했다. 러시아에서 2010년 이전까지 유일한 재산 소유자는 국가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단순히 국가를 대리한 임시 경영자일뿐이다. 소련 시절의 심리가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산 소유는 언제나 잠정적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담장의 과대망상을 낳았다.


끝으로 담장은 끝없는 러시아 공간에 한계를 설정하고 형태를 부여하려는 모종의 시도이기도 했다. 담장은 모든 종류의 유출입과 원거리 이동을 제한하는 데 필요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이러한 담장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사유재산을 가지는 체제에 익숙해지면서 그 이전에 쌓여온 불신들도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대인 현재, 담장 현상으로 인한 부정적인 인식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러시아는 자본주의와 민주체제에 익숙해진 것이다. 게다가 세대도 소련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서서히 주축으로 올라오면서 이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지워지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그렇게 러시아는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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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지방도시나 마을들에는 버려진 집들과 러시아인들의 담장에 대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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