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에콰도르는 그 역사적 부침이 매우 심한 국가이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은 16세기부터 300여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19세기 이후 유럽의 인구 증가와 농토 부족, 저임금 중노동에 지친 스페인 본토의 빈농, 빈민들이 남미 각지의 식민지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현지 귀족이었던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온 빈농들이 자신보다 더 공식 계급이 높다는 점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스페인 본국이 나폴레옹 전쟁에 영향을 받게 되면서 남미 식민지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자 누에바 그라나다를 포함한 남미의 스페인 식민지들은 독립을 준비하게 된다.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1783~1830)는 식민지 개척자 및 정복자의 후손인 크리올(Criollo)의 지지를 받아 스페인 군을 축출하고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를 세우고 대통령이 된다. 그란 콜롬비아는 현재의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의 영토를 합친 국가다.
시몬 볼리바르의 사후,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와 함께 1830년에 분리 독립하였으며 독립 직후에는 플로레스 정권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립 당시에는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내전과 주변국들인 콜롬비아, 페루와의 전쟁으로 인해 상당수 영토를 잃어버리면서 영토가 현재와 같은 크기가 되었다. 플로레스 정부는 키토의 과두지배층을 중심으로한 기득권 집단을 지지계층으로 두고 있었지만 매우 독선적이었고 1845년 쿠데타가 일어나 플로레스 정권은 전복되었다. 이후 정부의 혼란은 약 130년 동안 지속되었고 1972년 군사쿠데타가 발생해 기예르모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된다. 군부는 토지개혁을 약속하면서 석유개발도 본격화 되었다 하지만 정작 석유로 인한 수입은 늘어나면서도 토지개혁은 지지부진하였고 1979년 민주 정권으로 정권이이양되면서 군부 독재는 막을 내렸다. 민주화 이후의 첫 째 민선 대통령인 하이메 롤도스가 1981년에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1982년 중남미 외채위기에 에콰도르는 디폴트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엘니뇨까지 겹치며 에콰도르는 다시금 어려움에 봉착했다. 결국에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1986년부터 진행된 저유가와 1987년의 대지진, 연간 수십%가량에 달하는 엄청난 고인플레이션과 임금수준의 실질적인 침체 밎 삭감으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1988년에 민주좌파당의 로드리고 보르하가 당선되었지만 경제정책은 달라지지 않았고 1990년대 초중반와서는 지속적인 경제위기에 어느 정도 면역성이 생기면서 에콰도르의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그럭저럭 안정세를 찾아갔지만 대신 빈부격차는 매우 심화되었다. 그러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심화되었고 치안도 불안정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자국 화폐인 수크레화를 포기하고 그냥 미국 달러를 가져다 쓰게 되면서 이전에 세자릿수였던 물가상승률도 한자릿수대로 떨어졌고 이후로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대를 넘본적이 한번도 없을정도로 물가가 안정되었다. 이 때부터 에콰도르는 중남미에서 치안은 상대적으로 좋아졌으며 소득수준도 아주 낮지 않기 때문에 은퇴 이민자들이 머물러 살기 좋은 나라 순위권에 자주 들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석유값 하락으로 인한 세수감소와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수출부진, 2016년 지진의 여파로 인한 재정지출의 급속한 증가로 경기침체로 이어지면서 다시 치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갱단이 점점 강성해지고 총격전과 살인이 빈발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대선을 불과 10여 일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이자 무소속인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Fernando Villavicencio)가 당일 수도 키토에서 선거 유세 중 총에 맞아 59세를 일기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피토’라는 별명을 가진 아돌포 마시아스가 이끄는 에콰도르 마약 밀매 카르텔인 ‘로스 초네로스’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BBC는 에콰도르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석유 무역을 통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지난 5년 동안 갱단들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일간 '클라린'은 국가의 강력범죄가 마약 밀매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서로 다른 마약 집단 간의 무력 충돌로 사망률과 범죄율이 치솟았다라고 한다.
이 총격 사건을 두고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조만간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 강한 반향을 일으켰다. 사건 당일 멕시코 외무부는 소셜 플랫폼에서 "에콰도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폭력적 행위"를 규탄했고, 페루 외무부 역시 에콰도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폭력 및 위협 행위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명하고 평화회복을 촉구하였다. 또한 이반 두케 전 콜롬비아 대통령은 에콰도르 국민의 편에 굳건히 서겠다고 밝히고 에콰도르 당국에 조속히 사건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남미 어느 국가든, 이 사건 및 유사사건조차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남미 각국의 정상들과 정치권들은 마약 밀매 카르텔과 어떤 식으로든 엮여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지하 경제 활성화로 인해 서로 공생관계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남미의 마약 카르텔과 뒤를 봐주는 자들은 미국 네오콘들이고 이들 또한 공생관계에 있다. 그러니 제대로된 수사가 될리 있겠는가? 게다가 FBI가 암살 사건 수사를 돕겠다고 나서는 것도 수상한 부분이다. 미국 연방수사국이 자국 범죄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텐데 여긴 미국과 다른 나라다. 후안 사파타 에콰도르 내무부 장관은 FBI 요원들이 이날 자국 경찰 간부들과 회동했고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들과도 곧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6명의 피의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피의자들 모두 콜롬비아 국적이라 하니 이권에 위협을 받을만한 거대 조직의 사주가 있었을 것은 충분히 의심해 볼 만 하다. 현지 경찰은 이들이 범죄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더 거대 세력과 연결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