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미, 중 간에 합의 볼 숨겨진 또 다른 산업, 철강 산업
미국의 철강 산업 역사와 US 스틸, 미국 철강 제조업의 현실
경주 APEC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왔다. 이에 맞춰 시진핑도 한국에 왔다. 이로써 미국과 중국의 만남이라는 이른바 오랜만에 "빅딜"이 한국에서 성사된 셈이다. 경주 APEC 정상회담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미 관세 협상 문제, 한중외교문제 등이 있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과연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날 것인가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나서 할 얘기는 크게 대두 문제와 희토류 문제, 그리고 관세 협상 등등이겠지만 이 부분들은 예전에 칼럼에 쓰기도 했고 포스팅도 했기에 넘어가고 다른 얘기들에 대해 쓰기로 한다. 내가 중점 지어 언급할 부분은 바로 철강업이다. 철강산업은 해당 국가의 제조업을 살펴보는 지표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철강산업은 제조업의 기본이다. 철이 국가의 근간이 된 것은 고대 철기 시대에 철제 무기와 철제 도구가 전쟁 무기 및 생산량의 척도로 자리잡기 시작할 때부터다. 당시 국가의 부를 판별하는 것은 철과 소금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국내에서 유통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철은 농업 생산량을 극대화 하고, 막강한 무기로 국방을 담당했기에 예로부터 국가의 근간 사업이었고, 활용되는 범위에 따라 부강한 국가인지 아닌지의 척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의 수출과 유출은 국법으로 엄히 금지되기도 했다.
철은 근현대 시대에도 산업혁명의 주요 광물 중에 하나였다. 철을 이용해 중공업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서구 열강을 세계를 식민지로 삼았다. 영국이 대영제국이 된 것도,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 내 절대 강국이 된 것도,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도 모두 철강산업이 제조업의 근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는 AI 산업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철강산업은 AI를 구축하는데 기본이 된다. AI를 구성하는 컴퓨터의 기본 칩들이 철과 금속으로 되어 있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철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광물이고, 가장 많은 철광석을 보유하고 이를 제련하여 수출하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강한 강대국이다. 철강 생산량은 중국, 인도, 일본, 미국, 러시아 순이고, 철강 수출국도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인도 순이다. 모두가 알 만한 강대국들이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점점 철강 생산과 수출에서 계속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 제조업의 근간은 철강이고, 철강이 곧 국력의 상징이다. 미국이 점점 이 순위가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첫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버지니아 주에 첫 철강공장이 개설되었고, 1643년에는 메사추세츠 주에 첫 철강회사가 설립되었다. 1644년에는 펜실베니아 주에서 양질의 석탄과 철광석이 발견되면서 펜실베니아 주는 초창기 미국 제조업의 중심으로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1901년에 US 스틸이 설립된다. 당시 US 스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에 하나였으며 2/3가량의 미국의 철강을 생산했었고,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끄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회사였다. US 스틸의 설립으로 인해 20세기 초의 미국의 철강 산업은 유럽의 철강 산업을 뛰어넘었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효율적인 산업이 되었다. US 스틸 설립의 배경은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의 카네기 철강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카네기 철강은 철강 제조 능력의 발전과 시장 점유율 확장에 크게 몰두하고 있었으며 1870년부터 1896년 사이에 서서히 가격을 80% 이상 인하하기 시작하였다. 가격은 성공할 수 있는 척도이자 핵심 요소였다. 철강 생산 산업은 매우 큰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이었으며 공장의 용광로와 베서머 변환기가 크고 중단 없이 가동되면 될수록 철강 생산 비용은 더욱 저렴해졌다.
시설로 인한 높은 고정비는 철강 생산자로 하여금 최대한으로 공장을 가동하게 만들고, 시장의 수요가 적게 나타날 때는 가격을 겨우 한계에 몰린 비용보다 조금 높은 수준 정도로 책정하게 했다. 이와 같은 비용의 저렴화는 선순환을 불러와 지속적으로 공급 능력이 생기게 되었고, 낮은 가격으로 인하여 유럽에 비해 경쟁 우위를 갖추고 각 투자자들의 시설 투자로도 이어지게 된다. 1900년에 있었던 연회장에서 기업가들과 은행가들이 만나게 되었고 이는 다수 회사들의 합병이 논의되었다. 카네기 철강산업의 찰스 슈왑(Chales Schwab)은 합병을 통한 산업의 정상화와 효율화를 역설하게 되었고 이러한 슈왑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J.P. 모건의 주최 아래, 카네기 철강과 연방 철강 그리고 내셔널 스틸, 아메리칸 시트 스틸, 아메리칸 스틸 후프등이 합병해 거대 철강 기업인 US 스틸을 탄생시켰다. US 스틸은 세계적인 대기업 그 자체였다. 최초의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기업이었고 168,000명의 고용자들을 확보하면서 900만 톤애 가까운 철강을 매년 생산했다. US 스틸은 60%의 이상 미국의 철강을 책임졌다. US 스틸은 계속 불어나 1971년에는 두 번째로 큰 기업인 AT&T보다 3배 이상의 규모로 커졌고 스탠다드 오일이 분할될 당시보다 7배 이상 컸다.
그동안 유럽 열강들과 치열한 경쟁의 시기를 보내던 미국의 철강 산업은 US 스틸이 등장함에 따라 유럽 열강을 한참 뛰어넘어 결국 세계 철강 시장의 근본이자 상징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US 스틸의 최고경영자인 앨버트 개리(Judge Elberty Gary)는 근본적인 보수주의 경영자였으며 혼돈과 치열한 경쟁의 산업계에서 매우 안정적으로 이득을 가져왔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이전의 카네기 철강 등의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가격을 저렴하게 낮추어 큰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보하여 경쟁 우위를 확보했던 것과는 다르게 개리는 높은 가격을 설정하고 철강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더욱 높여 그 가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비록 큰 규모의 경제가 생산에 가격 우위를 준 셈이지만 이는 소비자의 후생보다 기업의 이윤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많은 경쟁으로 인한 성장에 익숙해져 있었던 전직 카네기 철강의 직원과 고위직들은 이와 같은 개리의 전략에 회의를 느끼고 다른 철강 기업으로 이직하게 된다. 1902년에 당시, 공정 과정을 단순화시킨 '유니버셜 빔 밀'(Universal Beam Mill)이 발명되었다. 이 발명자는 자신의 발명품을 US 스틸에 제안했지만 재정 위원회에 의해 거절당하게 되었고 결국 해당 발명품은 카네기 철강의 전 회장인 슈왑이 경영하는 베들레헴 철강이 도입해 처음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신제품과 함께 성장하는 철강 생산 시장에서 US철강은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게 되고 결국 경쟁에서 밀린 US 스틸은 1926년 결국 베들레헴으로부터 라이센스 권리를 사오게 되었다.
1920년에는 전기저항용접을 이용하여 큰 직경의 파이프를 만드는 공법이 발명된다. 이 공법은 US 스틸에 제출되었으나, 재정 이사회는 이 공법을 또 거부했고, 결국 US 스틸은 몇년 후, 다른 경쟁 기업이 성공한 이후에야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자 비슷한 시기에 생산 가격을 획기적으로 줄인 철판 연속 압연이 발명되었다. 철판 연속 압연은 1902년 US 스틸에서 이미 발명한 바 있다. 그러나 기술을 도입하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다른 기술을 가진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사들임으로써 라이센스 금액을 지급했다. 사내의 보수적인 문화와 전 카네기 철강 운영진들이 빠져나간 빈 자리는 US 스틸이 시장점유율을 잃고 기업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던 1941년의 US 스틸의 철강 생산량은 연간 3,000만톤으로 창설 당시보다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60%에서 35%로 하락하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 중에 미국의 철강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 다른 국가들의 철강 산업이 완전히 폐허가 되는 동안 3배 이상 성장했지만 전통의 철강 강국인 영국과 독일이 붕괴된 나머지 US 스틸을 포함한 미국의 철강 산업 기업들은 경쟁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안주하는 상태가 된다.
물론 폐허가 된 유럽에서 미국 철강을 사들여 전후복구를 했기에 1947년부터 1957년까지 매년 7%씩 가격은 상승했고, 미국은 떼돈을 벌었다. 전후 막대한 양의 철강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당시 최신 설비를 이용하여 설비를 확장했다. 당시 '개방형 난로'는 철과 액체 선철을 한 곳에 모아 재생 열 교환기로 녹였다. 1954년 90%이상의 미국 철 생산은 개방형 난로 용광로를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전기 아크로와 베세머 변환기를 혼합하여 생산했다. 하지만 신기술인 기본산소제강(BOF)이 등장하게 되면서 BOF는 철강의 대량 생산을 위해 이용했던 초기의 베세머 변환기를 재등장시킨다. 베세머 변환기는 공기를 액체 선철의 아래에 불어 넣는 방향으로 작동하였는데, BOF는 순수 산소를 선철 위로 불어 넣었다. BOF는 베세머 변환기의 단점인 질소취성, 제한적 광석 이용 등을 없애고 장점인 철에서 강철로 변환되는 시간, 고효율저비용, 낮은 설치 비용 등을 더 부각시켰다. 1952년 첫 상업적 BOF가 오스트리아에 설치되어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그러자 US 스틸은 이번에도 신기술 도입에 주저했다. 개방형 난로를 포기하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직 사용기한이 많이 남았고 가격 또한 비쌌기에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US 스틸은 결국 1964년이 되서야 후발주자로서 BOF를 도입했다. 같은 시기에 카이저 철강은 생산량의 43%를 BOF를 이용해 생산하면서 US 스틸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개별적인 잉곳 대신, 연속적으로 철 슬라브를 생산해야 하기에 압연을 제거해야 하는 연속 주조 기술에서 문제가 연달아 발생했다. 미국 기업들은 연속 주조 기술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하였지만 새롭게 철강 강국으로 재도약에 성공한 서독과 일본보다 도입에서 늦었다. 참고로 1975년에 미국은 9% 만이 연속 주조 기술로 생산되었지만 일본은 31%, 서독은 24%로 크게 앞서 있었다. 1960년대에 일본 등의 해외 철강 공급자들은 빠르게 BOF, 연속 주조 기술 등의 새로운 방식의 철강 기술을 도입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일본 철강 기업의 투입 요소 비용은 미국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1955~1970년 사이의 미국 철강 수입량은 생산량의 2% 미만에서 15% 이상으로 10배 이상 늘었으며 당시에 이는 매우 가파른 상승세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철강 기업들은 일본이나 서독 등 해외 기업들의 도전에 대해 기술적인 발전으로 경쟁한 것이 아니라 매우 불공정한 무역을 내세워 최강대국인 정부가 해결해주기를 바랬다. 결국 1968년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인해 서독과 일본의 철강 생산 기업들은 스스로 미국에 철강 수출을 제한하게 된다.
이후 1980년대 초기 US 스틸의 시장 점유율은 20%로 떨어졌다. 이처럼 떨어진 이유는 새로운 혁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주저했고, 회사 경영 마인드 또한 구식이었다. 당시까지 철강은 거대하고 집중화 된 철강 시설에서 생산되었다. 용광로에서 철광석은 선철로 변하고 개방형 난로나 염기성 산소 용광로를 거쳐서 강철로 변하게 된다. 강철은 잉곳이나 슬라브로 주조된 다음에 와이어, 막대, 플레이트, 빔, 시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다. 1960년대 후반, 미니밀(Miny Mill)이라는 새로운 철강 생산 시설이 등장했다. 미니밀은 광석이 아니라 전기 아크 용광로에서 다시 녹인 고철을 재료로 철강을 생산하였다. 따라서 광석을 선철로 만드는 고로가 없어지면서 미니밀은 거대 철강 생산 시설보다 1톤 당 1/10의 가격으로 저렴해지고 규모 또한 슬림해졌다. 게다가 고철은 철을 개방형 난로보다 비교적 적게 사용하는 BOF 기술 덕에 양 또한 충분했다. 고철은 구리 등의 분리하기 어려운 다른 금속들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BOF 기술로 생산되는 철보다 질적으로 좋지 못했었지만 미니밀 기술이 점점 발전됨에 따라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US 스틸은 가정의 미니밀이나 다른 저가 해외 생산 기업들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크고 비쌌다. 한 때 크기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가장 수익성 있는 철강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수익성에서도 열세에 놓였다.
결국 US 스틸은 10,000명이 넘는 고용자들을 구조 조정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1979년에 171,000명 이었던 고용자 수는 1995년에 이르러 21,00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US 스틸은 철광업과 운송업, 다리 건설업 등을 잇달아 포기하게 되었고 미니밀과의 경쟁에서 열세인 철강 시장에서 퇴진했다. 그리고 미니밀이 생산하기 어려운 철강 시트 제품에 집중했으며 기존에 남아 있는 몇몇의 거대 대형 철강 시설에서 생산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 시설들은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시설로 매우 노후화 되어 있었다. 1985년에 이르러 US 스틸은 150여 개 이상의 시설을 폐쇄하였으머 1998년까지 1973년에 비해 71%이상의 철강 생산 시설을 축소하게 된다. 이처럼 철강 생산을 감축한 이후, 생산성은 다시 증가했지만 US 스틸은 여전히 미니밀과 경쟁에 있어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수입량이 증가하고 미니밀이 시장 점유율을 잠식시키게 되자 이는 US 스틸 뿐 아니라 다른 철강 기업들에게도 위협이 되었다. BOF 기술을 도입하며 US 스틸에게 위협을 가한 카이저 철강은 18분기의 손실이후 1983년에 문을 닫았고 1997년에서 2001년까지 오랜 라이벌인 베들레헴 철강을 포함하여 30개의 철강 기업이 파산을 신청했다.
이는 미국 철강 산업의 몰락을 의미한다. US 스틸 또한 기술적 혁신을 선도하기에는 부족했다. US 스틸은 2020년에 미니밀 기업을 인수하고 미니멀 시설을 앨리바마에 건설할 때까지 미니밀을 도입하지 않았다. 게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수입 철강재 점유율이 15%를 넘으며 미국 철강업계의 위기의식이 고조되었었다. 질 좋은 철광석이 미국 본토에서는 서서히 바닥을 들어냈고,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막대한 양을 수입했다. 거기에는 일본과 우리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국이 새로이 철강 산업의 강국으로 진입했고, 막대한 양의 질 좋은 철광석이 중국에서 채굴되면서 미국은 중국에 철강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은 세계 1위 철강 수출과, 철강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급격한 성장을 두려워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철강 수입만큼은 제한적으로 하려 했다. 결국 혁신에도 뒤지고, 수입 철강에만 의존해야 했던 기업들은 잇달아 통폐합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 작년 2024년에는 미국 철강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US 스틸이 일본 철강 산업의 일본제철과 합병을 발표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합병 하기 직전, US 스틸의 시가총액은 80억달러 수준이었고 포춘500에 들지도 못하면서 사실상 매각에 가까운 합병이었다.
US 스틸의 사례는 쇠퇴한 미국 철강 산업의 일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망가진 미국의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해 트럼프 현 정부는 2025년 3월 12일부터 기존 대체 협정(쿼터, 면제 등)을 폐지하고, 25% 추가 관세를 모든 주요 철강 수출국에 전면 재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은 관세는 캐나다, 멕시코, EU, 한국, 일본, 브라질 등 미국과 협정을 맺었던 국가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2025년 6월 4일부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했다. 따라서 한국산 철강 제품은 50%의 관세가 부과되며, 철강이 포함된 파생 제품에도 이 관세가 적용되며 이는 중국도 포함된다. 미, 중 간의 회담에서 분명히 이 문제도 언급될 것이다. 미국산 대두를 중국이 팔아주면서, 희토류와 철강을 얻을 수 있고 그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것을 협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양질의 철강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미국의 제조업은 철강의 혁신으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