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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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대륙에 유럽인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었던 민족들을 총칭하는 단어가 에보리진이다. 또는 Indigenous Australian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라고 불리며 간혹 퍼스트 오스트레일리안 (First Australian)이라 부르기도 한다. Indigenous Australian이라는 개념은 다시 에보리진 호주인(Aboriginal Australians)과 토레스 해협 제도에 거주하는 토레스 해협 제도 원주민(Torres Strait Islanders)으로 분류된다. 최근 호주 원주민들이 '애버리지니'라는 명칭을 선호하지 않음에 따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라는 표현이 권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원주민에 대한 배려로 호주 국기를 게양할 때 대부분 원주민기도 함께 게양하고 있다. 호주 원주민(Indigenous Australians)은 유럽인의 이주 이전부터 호주와 주변 섬에 살았던 원주민이다. 호주 본토의 애버리지니(Aborigine)을 비롯하여 행정구역상 퀸즐랜드의 일부인 토레스 해협 제도의 토레스 해협 제도 원주민 및 태즈메이니아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등이 있으나, 태즈메이니아인은 백인 이주자에 의하여 거의 절멸당하였다. 현재 총인구는 80만 명가량으로 호주 전체 인구의 약 3.3%에 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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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boriginal men at the anniversary celebrations in Mutitjulu (EPA), 출처 : INDEPENDENT, By Tom Embury-Dennis

 

2021년을 기준으로 에보리진 호주인과 토레스 해협 원주민들을 합한 호주 원주민 인구는 812,728명이며 이는 호주 인구의 3.2%를 구성했다. 특히 노던 준주(Northern Territory)에서는 인구의 30%가 호주 원주민이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비중이 적다. 원래는 250여 개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상당수 언어가 사용되지 않으며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그래도 칼라라가우야 어나 피찬차차라 어와 같이 널리 사용되는 언어도 존재한다. 이들 언어의 사용자 수를 모두 합치면 5만 명 정도로 호주 내 한국어 사용자 수와 비슷하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인이 3/4, 무종교인이 1/4이며 1%만이 전통 종교를 믿고 있다. 퀸즐랜드 북부에서는 파마(Pama)라고 하며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늉아(Nyunga)라고 스스로를 지칭하였는데, 물론 지역차는 있지만 이를 차용하여 파마늉아 어족이란 언어구조학적 단어가 생겼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파마늉아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였지만 북부나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1885년에 출간된 독일의 백과사전 Meyers Lexikon에서는 이들을 흑인으로 분류했고 한동안 이러한 분류가 널리 통용되었으나,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 계열 흑인과는 유전적 특징이 전혀 다르다. 하플로 그룹의 조사 등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독자적인 그룹인 호주 인종인 것으로 여겨진다. 호주 원주민의 조상은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공통된 조상들과 유전적인 차이가 적어도 6~7만 년쯤은 떨어져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추측하여 보면, 대략 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인 예멘의 경류를 따라 남아시아로 진출한 이후 다시 오세아니아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이주 길목은 뉴기니 지역을 통과해 호주 대륙으로 정착한 것으로 본다. Y염색체 기준으로 보았을 때 하플로 그룹 S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4만~7만 년 전에 처음 호주 대륙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주 원주민 사이에 공통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호주의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와 사회 간에는 큰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다. 


각기 고유한 문화, 관습, 언어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호주에서 이러한 전통적 집단들은 보다 작은 지역 공동체로 분류되어 있다. 유럽인들이 처음 정착했을 당시 원주민은 대략 250개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현재는 많은 원주민이 영어를 사용하여 120~145개의 원주민 언어만 남아 있으며 그 중에서 13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멸의 위기에 몰려 있다. 유럽인이 정착했을 당시 원주민 인구가 얼마였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적게는 31만 8,999면 명에서 많게는 1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인구 분포는 지금처럼 머리강을 중심으로 하여 호주 동남부에 가장 많은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들은 유럽인의 정착으로 가장 큰 인구 감소를 당했다. 멜라네시아 인은 자연적으로 금발인 사람이 많은데, 모발 단백질의 돌연변이에 의해 자연 발생 된 것이라고 한다. 멜라네시아인 비율이 94%인 솔로몬 제도에서는 인구의 26% 정도가 금발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백인과 비슷하게 어렸을 때는 밝은 금발을 가지고 있다가 성장하면서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 성인이 된 뒤에는 어두운 갈색 머리로 변화하는 경우가 흔하다. 


멜라네시아 인들은 약 3~5만 년 전에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한다. 피부가 검지만 흔히 흑인이라 부르는 아프리카의 니그로이드와는 혈통이 전혀 다르다. 멜라네시아인은 태평양 섬 원주민(pacific island) 혹은 오스트레일리아 인종이라는 다른 분류로 묶이는, 이와 같은 오래된 인종 분류가 늘 그러하듯이 확실하고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개념은 아니었으며 아직도 유전학적으로 잘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호주 인종(Australoid Race)은 현생 인류의 인종 분류 중 하나로 여겨진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의 원주민이다. 이들을 두고 오스트랄로이드(Australoids) 인종이라 불린다. 호주 원주민, 멜라네시아 인, 동남아시아의 네그리토, 중부 및 남부 인도인, 일부 동남아시아 인들까지도 포함된다. 다만 20세기 후반 연구가 진행되면서 '-oid' 유형의 포괄적인 인종 분류에 비판적인 학자가 많아졌으며, 오늘날 오스트랄로이드를 비롯한 몽골로이드, 코카소이드, 니그로이드 등 학술적인 용어로는 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오스트랄로이드 계열 원주민을 네그리토(Negrito)라고 부른다. 


현대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은 선주민인 오스트랄로이드와 나중에 대만과 인도 등지에서 유입된 민족이 섞여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인도 아시아 대륙의 선주민이기도 하며, 아리아 인들이 남하하기 이전에 인더스 문명을 세운 만들었던 인종들이 이들이라는 설이 있다. 흔히 드라비다 인이 인더스 문명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하플로 그룹을 통한 연구에 의하면, 인더스 문명의 주민들의 유골에서 드라비다 인의 영향이 미미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같은 오스트랄로이드 계통이라도 각기 다양한 환경에서 오랜 세월 문화적으로, 관습적으로 분리되어 살았기 때문에 외모, DNA, 언어, 풍습 등이 많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한 때 대만 섬, 오키나와 제도에서까지 이들이 거주했던 것이 밝혀졌다. 또한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과 중동 지역의 교류로 인해 아라비아 반도나 아프리카의 뿔 지역 주민들에게 유전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밝혀졌다. 피부색이 짙고, 콧대가 낮으며, 코가 넓고, 곱슬머리 등 때문에 흑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잦지만 이들이 흑인과 닮은 것은 수렴 진화로 아프리카의 흑인과는 유전적으로 많이 먼 것으로 나타난다. 


호주 인종은 코카소이드, 니그로이드, 동아시아인 등 중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개의 인종이다. 이마가 넓고, 팔자 주름이 크며, 안와상융기가 인류 중에서 비교적 큰 편이다. 대부분 흑발 흑안을 가지고 있으나 멜라네시아인은 금발이 많다.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동남부 지역을 대영제국의 영토로 선포하고서 뉴 사우스 웨일스라고 이름을 붙인 이후 1788년 시드니를 중심으로 식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영국인 이주로 인한 피해는 학살 및 그들과 같이 들어온 수두, 천연두, 인플루엔자, 홍역과 같은 전염병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없었던 에보리진은 인구밀도 높은 동남부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큰 타격을 받아 인구가 급감하였고, 또한 이주민과 같이 들어온 성병 감염으로 말미암아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민 초기 315,000~750,000명이던 원주민이 급감한 주 요인은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과 같은 질병이며, 이 가운데 천연두에 걸려 병사한 원주민 수만 전 인구의 50%에 달했다고 추정된다. 이처럼 전염병과 성병, 그리고 탄압으로 말미암아 1788년과 1900년 사이의 애보리진 인구 90%가 감소했다. 비교적 풍족했던 남부 호주의 에보리진의 경우 대규모 유럽 정착민들이 채 도달하기도 전에 전염병으로 절멸했다. 


태즈메이니아 섬은 특히 타격이 컸는데 이주민 정착 초기 2,000~15,000명 수준이었던 에보리진의 인구가 1870년 무렵 거의 사라졌다. 인종학살이 가장 극심했던 1803~1834년 사이 333명의 에보리진이 학살당한 것도 직접적 원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주민과 함께 들어온 매독 등 전염병에 저항력이 없었기 때문이며, 대다수는 이러한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태즈메이니아 지역의 에보리진은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30년 사이(1803~1833)에 영국 이주자들과 함께 들어온 질병과 인종 탄압, 학살 등으로 인해 인구가 약 5,000~15,000명에서 300명으로 급감하였다. 1896년 이후로 역사학자와 과학자, 인류학자들에 의해 에보리진에 대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트루가니니'라는 여성을 마지막으로 순수혈통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내륙 지방은 원주민이 정착민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여 이민 초기 약 3,000명가량 백인 이주자가 살해당했다고 추정되지만, 백인 이민자가 살해한 원주민의 수 또한 10,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1850년대 식민지화가 안정되자 에보리진의 삶도 이주민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수렵 생활을 하던 원주민은 한 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고, 특히 광산 개발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음식을 받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약 1,200여 명의 애보리진이 군복무를 하게 되었고, 더 많은 군인이 필요하게 되자 그 이전까지 에보리진이 군복무를 제한하던 정책을 완화하게 된다. 1920년대에는 에보리진의 인구가 급감하여 절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졌으나 1930년대 전염병에 살아남고 면역력을 갖추게 된 원주민들이 다시 출생률이 높아지면서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호주의 에보리진들은 1900년부터 1972년까지 약 70여 년 동안 원주민들의 개화 정책 일환으로 호주 정부와 교회에 의해 정책적으로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백인 가정으로 입양 당했다. 이러한 강제 입양을 당한 당시 에보리진들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아이들(Stolen Children)이라 부르며, 이들은 최소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이들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기도 하여 일부는 법정 소송을 통해 2007년 9월 1일 호주 역사상 최초로 보상 결정이 내려지는 성과를 얻게 된다. 2007년까지 재임한 존 하워드 정권에서는 호주의 원주민 개화 정책이 이전 정권의 일이었다는 이유로 에보리진에 대한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2006년 11월 태즈메이니아 지역을 기점으로 에보리진의 후손들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져 태즈메이니아 에보리진 후예들만 약 40여 명이 향후 5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받기로 예정되었다. 


2007년 총선 승리로 집권한 케빈 러드 행정부는 2008년 2월 13일, 범정부차원의 첫 번째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연방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더욱 적극적인 과거사 사죄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기준 호주의 원주민들은 798,365명으로 호주 인구의 약 3.3%를 차지하고 있다. 2011년 인구 조사에서 495,757명은 호주 원주민인 에보리진, 31,407명은 토레스 해협 제도 원주민, 21,206명은 양쪽에 모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오늘날에는 호주의 다른 인종들처럼 뉴 사우스 웨일스 주와 퀸즐랜드 주 등 동부 해안에 가장 많이 거주하며 두 주에서 인구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원주민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노던 테리토리로서, 이곳에서 인구의 약 30%가 원주민이다. 오늘날 원주민은 대부분 영어를 구사하나, 음운, 문법, 어휘 면에서 원주민 언어의 영향을 받은 호주 원주민 영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들 상당수는 호주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최하층에 속하여 원주민 집단 내에서는 빈곤과 연관된 여러 사회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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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인 에버리진 이야기 : 호주 원주민들과 멜라네시아인들 이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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