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의 전도사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살해된지 30주년 되는 날
1995년 11월 4일 이후로 표류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평화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팔레스타인 및 가자지구와 문제에서 휴전과 화의를 이룰 때 늘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는 총리 재임기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하며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협정 당사자들인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와 함께 노벨평화상까지 수상받았다. 사실 노벨평화상의 가치를 높여준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이츠하크 라빈이다. 그러나 라빈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라빈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제거를 지시하고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이란을 맹비난했으며, 또한 제1차 인티파다를 강경진압하도록 명령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양면성이 있는 인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역사에서 라빈만큼 이스라엘 총리 중에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이룩하고자 노력했는 인물은 전에도, 후에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행태를 본다면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평화 구축 노력과 하마스 집단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대비하여 아랍 측과 유화적인 태도 등으로 볼 때 훨씬 천사 같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제2차 오슬로 협약이 체결된 이후, 1995년 11월 4일, 이츠하크 라빈은 텔아비브에서 열린 중동 평화 회담 지지 집회에 참석해 연설한 후 관용차에 탑승하던 도중 하레디 청년인 이갈 아미르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유태교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강경파가 암살을 목적으로 테러를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그러나 라빈은 자신과 같은 유태인들을 믿는다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현실은 라빈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험악했다. 하레디(Haredi)는 극보수주의 유태교 종파를 숭상하는 유태인 집단을 통칭하는 단체를 말한다. 하레디는 일부 종파를 제외하면 대개 폐쇄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은 토종 유태인들이 아니라 아슈케나지 유태인에 속해 있다. 게다가 매우 배타적이고 과격함으로 인해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당시 월간조선에서 근무하던 언론인인 조갑제씨가 라빈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를 마친 뒤 34시간 후에 암살당했다. 뜻하지 않게 조갑제씨가 한 인터뷰는 라빈의 생전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되고 말았으며, 해당 기록은 월간조선 1995년 12월호에 수록되었다.
라빈을 암살했던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유태인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하레디 소속의 청년이다. 암살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아미르는 정부 수반을 살해한 혐의로 인해 유죄 판결 및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현재도 감옥에서 복역 중에 있으며 아미르는 총리를 암살한 자신의 행동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독방에 가둔 처분은 매우 가혹하며 팔레스타인 수감자들도 이렇게까지 생활하지는 않는다며 아주 적반하장식의 망언을 일삼았다. 게다가 아미르는 같은 종파인 하레디가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독방 수감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생활상의 불편함도 크게 없다고 한다. 감옥 외곽에서 아미르의 이미지는 배신자인 라빈을 죽인 애국자라는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 라빈 살해 사건 직후, 아미르 결혼하겠다는 유태인 여성들의 러브레터와 청혼 신청이 쇄도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아미르는 법적으로 혼인 관계인 여성과 면회를 통해 감옥 안에서 성관계를 맺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라빈을 뻔뻔스럽게 살해하고 감옥 안에서 이같은 최고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웃기지도 않은 대우에 대해 방치하고 있는 것은 네타냐후 정부다. 그러니 네타냐후의 배후 지원설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아미르의 이와 같은 뻔뻔한 태도와 옥중 기행에 대해 당시 정치권은 겉으론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네타냐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이에 대해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사건에 대해 침묵은 곧 뒤를 봐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 라빈의 정치적 반대파인 보수우파 인사들도 한 나라의 정부 수반을 죽인 그가 저렇게 당당하게 애국자로 여겨지는 행태가 개탄스럽다며 탄식했다 하지만 이 또한 대외적으로 보여지기 위한 정치적인 쇼에 불과했다. 당시 이스라엘 정치권은 자신들과 대립 관계에 놓여있던 이웃 나라 이집트에서 무함마드 안와르 엘 사다트(Muhammad Anwar es-Sadat, 1918~1981) 대통령이 1981년에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자신들의 나라 대통령을 스스로 암살하는 것 자체가 후진국이라며 비웃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4년 만에 그 비웃음은 이스라엘에서도 똑같이 재현되었고, 아랍 국가들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국제적인 비웃음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를 비판하고, 또한 스스로 개탄하는 국제적인 쇼(Show)를 벌인 것이다.
라빈 총리의 암살범 이갈 아미르는 지금까지 살아있으며, 여전히 감옥에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한편 안와르 사다트를 암살한 할리드 이슬람불리(Khalid Islambuli)는 재판 받고 교수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집트에서는 자신들의 나라 대통령을 암살하고도 암살범을 살려 두며 최고 대접해주는 자신들보다 더한 나라가 있다며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있는 상태이다. 라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 정부는 11월 5~6일을 국민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각 관공서들은 조기를 내걸었으며, 유흥업소들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각급 학교들도 임시로 휴교했다. 라빈의 시신은 이스라엘 국회의사당에 안치되어 100만여 명이 이곳에 조문을 위해 다녀갔다. 한국에서도 라빈의 무덤을 참배하던 히잡을 쓴 팔레스타인 여성이 울며 안타까워하는 사진이 보도된 바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정치적인 쇼일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편이다. 이는 라빈과 아라파트가 체결한 오슬로 협정이 전쟁보다는 낫긴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의문스러운 협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라빈의 장례식은 예루살렘 헤르츨 국립묘지에서 유가족들과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John Major) 영국 총리, 당시 영국 왕세자였던 찰스 3세, 헬무트 콜(Helmut Kohl) 독일 총리, 로만 헤어초크(Roman Herzog) 독일 대통령,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 장 크레티앵(Jean Chrétien) 캐나다 총리, 이홍구 대한민국 국무총리, 빅토르 체르노미르딘(Виктор Черномырдин) 러시아 총리, 폴 키팅(Paul Keating) 호주 총리,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hali) UN 사무총장,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대통령, 후세인 1세(Hussein bin Talal) 요르단 국왕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엄수되었다. 그와 함께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면서 노벨평화상도 공동으로 수상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했으며 이스라엘 하레디들의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끝내 불참했지만 유족들에게 애도의 편지를 보냈다. 손녀 노아 벤아르치(Noah Ben-Archi)는 자신을 극진히 아껴준 할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매우 컸기에 그 안에 복수심마저 자리 잡지 못했다며 눈물의 연설을 했다. 하관식 때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Kennedy) 미국 상원의원이 라빈의 관에 형인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F. 케네디의 묘역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기도 했다. 사건 이후 이스라엘 은행에서는 인플레를 대비한 고액권 발행 겸 그의 추모를 위해 500셰켈 지폐를 발행하면서 여기에 라빈의 초상화를 넣으려고 했으나 예상 외로 물가가 매우 안정되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자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는데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를 실행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네타냐후가 이를 백지화 시킨 것에 불과하다. 라빈에 암살에 대해 필자는 그 배후에 아랍과 전쟁을 원하고 팔레스타인의 인종청소를 원하는 딥스 & 네오콘, 그리고 네타냐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라빈 총리가 암살되기 직전 당시 극우파의 지도적인 정치인인 네타냐후가 평화 회담을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를 주도한 사실에 있기 때문이고, 그는 라빈의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시위대의 선두에서 관을 들고 행진하는 등 정국분위기를 험악하게 끌고가 암살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고한 타인을 죽이거나 해치려는 자에 대한 심판을 허용하는 유태교의 종교법인 할라카(Halakha)의 '추적자 원칙'(Din Rodef)을 적극 옹호하던 인물로, 유태인을 테러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할라카의 심판을 주장하며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라빈 총리 암살 직후 47세의 나이로 총리에 당선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그럼 미국은 어떨까? 빌 클린턴 자체가 문제가 많은 인물이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라빈과 아라파트 사이에 오슬로 협정 체결을 이끌어 냈고 2000년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양측의 평화를 이끌어내려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츠하크 라빈을 가장 잘 이해한 인물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지위 및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겉돌기만 한 협정은 향후, 더 큰 분쟁의 불씨를 야기하는 결과가 되었다. 현 네타냐후가 하는 행위를 보면 라빈이 관뚜껑을 부수고 나와 통곡할 일이다. 그간 그가 노력했던 것이 네타냐후에 의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억지로 갈등을 봉합하려 하지만 라빈과 클린턴처럼 해도 쉽지 않은데 억지로 한다고 되겠는가? 결국 더 크게 터질 불씨는 키우는 셈이다. 현재 11월 4일은 이츠하크 라빈 추모일(Yom Hazikaron leYitzhak Rabin)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어떠한 추모와, 팔레스타인과 평화 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결국 그저 그런 날로 변해버린 이날은 중동의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씁쓸하게 곱씹고 있는 그런 날이 되었다. 그리고 30주년인 이날따라, 더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