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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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차낙칼레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 그곳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심취해있었던 탐험가인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많은 연구 끝에 발굴에 성공한 곳이다. 그곳은 바로 트로이 유적..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무대이다. 많은 영웅들이 나타나고 그리스의 신들이 이 전쟁의 승자에 대해 내기를 걸었을 정도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은 기록상 10년여 지속되었다고 한다. 정황은 트로이 파리스 왕자가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네를 유괴하여 트로이로 돌아간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그리스는 동맹을 맺어 트로이를 공격했고 그리스 동맹군은 아가멤논 왕과 아킬레스를 중심으로 전쟁을 지속했다. 그리고 트로이는 영웅인 핵토르 왕자를 중심으로 그리스 세계와 맞섰다. 그러나 그리스 측의 아가멤논 왕과 아킬레스의 불화가 불거진 사이 트로이는 아시아 지역의 동맹군 파견을 요청하게 되고 이 전쟁은 결국 장기전으로 가면서 아시아 유목민족들도 참전하는 전쟁 양상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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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터키 트로이 유적 앞에 존재하는 목마,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결국 전쟁의 결과는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군에게 기만술을 사용한 그리스가 승리하였지만 이 전쟁이 사실이라면 그 의미는 유럽을 대표하는 그리스 세계와 아시아를 대표하는 트로이와의 국제전으로 두 세계의 진정한 패자를 가리는 것과 동시에 그리스 폴리스 세계가 본격적인 역사의 무대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여 진다. 이렇게 그리스와 맞대결을 펼친 트로이는 어떤 국가였을까? 


인터넷 기록을 찾아보면 트로이의 건설은 B.C 4,000년기 말이라고 나타나 있는데 지금은 B.C 4,000년 말의 지층 및 유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그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전부다. 현재 나타난 기층은 B.C 3,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이 도시를 발굴했을 시기인 1870년에는 탄소연대측정이라는 연대 측정 자체가 없었을 때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참조하여 그 연대를 추정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도시가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보다 후대의 것인 B.C 700년대의 유적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대 측정은 1985년에 진행했고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추정했던 B.C 3~4,000년 연대의 성벽 및 유적, 유물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했던 B.C 700년경부터 트로이의 진짜 역사라는 셈이다. 이 시기에 트로이 전쟁이 발생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흔히 트로이 발견 과정을 두고 <일리아스>는 신화적인 서사시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근세에 하인리히 슐레이만이라는 상인이 이 책을 읽고는 이것의 실존성을 밝히기 위해서 평생을 걸고 증명에 도전한 결과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이 발견되었다. 트로이 유적에서 대전쟁의 흔적이 발견되어 <일리아스>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서술된 작품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이야기가 통상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면 신화는 신화적인 관점으로 봐야하고 그것은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게 된 과정을 보면, 고고학자 캘버트가 이미 터키의 히사를리크 언덕(Hisarlık Tepesi)을 답사한 이후 학술 저널에 그곳이 트로이 유적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하고 후원자를 찾고 있었으며, 이 때 슐레이만이 캘버트를 후원하겠다고 나서게 되면서 함께 트로이 유적을 찾아 다닌 것이 맞다. 


물론 슐레이만도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하고 트로이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슐레이만이 주목한 곳은 그때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알려진 부나르바시 지역이었다. 그러나 슐레이만이 히사를리크 지역에 관심을 기울인 시기는 캘버트의 학설을 들은 이후였다. 그 동안 널리 알려져 있던 슐레이만이 여러 지역을 답사한 끝에 히사를리크 지역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점찍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슐레이만 본인이 언급하면서 일리아드의 시가 진실인양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슐레이만은 유적 발굴 과정에서도 트로이 함락의 극적인 상황에 맞추기 위해서 유물이 발견된 위치를 조작하려다가 캘버트가 발굴 노트에 발견 위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실패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트로이 발굴 이후에도 다른 사람에게서 유물을 사들인 후 자기가 발굴했다는 식으로 사기를 치다 드러난 사건도 비일비재 했다.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해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은 대단한 일이면서도 히사를리크 일대를 발굴한 것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굴의 이면에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사기 행위도 분명 존재했다.


고고학적으로 트로이라는 도시의 존재와 트로이 전쟁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트로이 전쟁은 고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인 사실로 여겨졌지만 후세에 와서는 신빙성 없는 신화로 치부됐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터키 서북부 지역에서 트로이 유적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굴함으로써 트로이 전쟁이 역사적인 사실일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1930년대에는 미국인 블레겐이 보다 정밀한 작업을 통해 트로이 전쟁과 같은 시대로 여겨지는 지층과 유적을 발굴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학자가 트로이 유적 발굴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한 상태다. 트로이에 그리스 영웅 아킬레스나 핵토르 같은 영웅들이 실제로 있었는지 등은 더욱 알기 어렵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를 썼을 때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이미 500년이나 지난 뒤였다. 따라서 호메로스 이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 와중에 신화적인 상상력이 덧씌워져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이 모호해졌다. 호메로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가 나돈다. 시각장애인에 문맹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리스가 목마에 병사들을 숨겨 트로이를 멸망시켰다는 전설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부분은 '일리아드'에는 없고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전한 것이다. 일부에선 그리스와 10년간이나 치열한 전쟁을 치른 트로이인들이 그렇게 부주의했을리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도 터키 차낙칼레와 히사를릭 언덕에는 아직 트로이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유적을 두고, 신화적인 부분을 부풀려 역사로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다. 터키는 트로이보다 역사가 더 오래되고, 실제 역사가 증명된 유적들이 많다. 그럼에도 신화적인 요소인 트로이를 실제 역사처럼 만들고, 홍보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가진 "상품성"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보다는 오로지 "상품성"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로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있는 역사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없애는데 골몰하는 자들이 많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사기성 넘치게 역사를 상품화 해도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러란 말이냐?" 라는 같잖은 정직함과 정의감, 그러면서 자신들은 옳고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같잖은 소신으로  뭉친 부류들이 많다. 그런 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지난 역사가 부끄러우니 이걸 지적하고 비난하며 그 때부터 이어온 노예사관을 가진 한국인들이라 그런 역사를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대로 인해 생긴 노예사관, 노예근성은 당연히 벗어던져야 하고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당시 중국에 머리 숙이며 사대했던 국가가 대한민국 뿐이었나? 주변 베트남, 태국, 미얀마, 대만, 오키나와 (류큐국), 일본, 여진족까지 중국에 사대했고, 사사건건 중국을 침략하고 노략질했던 몽골의 각 민족들도 중국에 머리를 조아릴 때가 있었다. 당시 중국의 연호를 쓰고 책봉을 받았으며, 중국식 달력을 이용하고 사상을 배웠다. 그게 그 때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였다. 일본 또한 그 질서에 속한 국가였다.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가 뭐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있는가? 그들은 수나라와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받으러 가는 일본 사신들이다. 일본은 서양 문물과 교류하기 전에는 역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한국 만의 잘못인가? 현대 세계가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에 따라가듯이 당시 동아시아에 속한 모든 국가들은 중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에 따라갔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현대 세계가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에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과거에 동아시아가 중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에 따라가는 것은 노예근성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은 노예근성이고,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에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칭 보수 우파들도 똑같은 노예근성에 있다. 과거 조선 시대 역사라 할지라도 없애는 것에 골몰하지 말고 이런 것은 일본을 배워야 한다. 일본 또한 신사에서 제를 올리고 있고, 전통을 중요시하여 새해마다 마쯔리 축제를 하며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새해 다짐을 한다. 


그런데 야스쿠니 제외하고 그걸 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다른 건 일본을 부러워 하고 배우라면서 이런 전통 수호는 왜 배우라고 권장하지 않는가? 그러니 당신들은 선택적 보수이자 미국과 일본을 떠받들며 당신들의 생명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어줍잖은 선택적 보수인 당신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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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남아 있는 트로이 유적, 역사적 진실과 상관없는 "상품성", 반면 대한민국의 유적에 대한 인식은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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