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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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을까?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 ‘경국지색’의 주인공이 양귀비라면 양귀비는 무죄일지도 모른다. 예쁜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그런 양귀비를 만나러 간다.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거리 양옆에서 화청궁이라고 쓰인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화청궁은 당나라 황실의 온천 별장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름 별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지만, 그곳에서 양귀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죽은 양귀비를 볼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그곳에 가면 양귀비의 초상화 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만 화청궁 입구에 만들어진 양귀비의 춤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누워 바라보고만 있는 당 현종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상과 화청궁 내에 목욕을 마치고 나온 양귀비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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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내부에는 화청지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에서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 로프를 설치하여 그 로프에 몸을 매달고 춤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옥환(양귀비)은 당 현종의 아들 수와 결혼한 며느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해 당 현종은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그래서 양옥환은 양귀비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당 현종은 며느리와 결혼한 시아버지였다. 경국지색의 미모란 어떤 모습이길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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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궁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온천탕이 있었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온천욕을 즐겼다는 연화탕, 목욕 후 머리와 몸을 말렸다는 공간, 당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목욕탕 등 일부 건물에는 목욕탕만 있었다. 그곳이 왜 관광지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화청궁의 또 다른 볼거리는 1936에 발생한 시안 사변 현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장개석이 납치되어 머물렀다는 ‘오간청’이란 곳이 그곳이다. 그곳도 나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화청궁에서는 양귀비 모습에 대한 궁금증만 키우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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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를 만나고 나서 진시황릉 병마용으로 향했다. 진시황은 죽음을 극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진나라 황제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 갱에는 8,000여 개의 병사와 전차 조각상들, 각종 도자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제 본 한경제의 무덤이 작은 동산이라면, 진시황의 무덤은 큰 산이었다. 진시황릉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기 보이는 저 산이 진시황의 무덤입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냥 산이었다. 피라미드가 벽돌로 지어졌다면, 진시황릉은 산속에 황제의 관을 묻었다, 가이드가 가리킨 야산을 지나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진시황이 묻힌 곳의 규모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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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병마용 관광지에는 하루에 최대 8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그곳 출입구 문만 해도 10개는 넘어 보였다. 입장권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관 3곳과 최근에 개장한 박물관이 있었다. 1호 갱(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갱에 진열된 2,000여 개의 병마용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넓은 전시관 전체를 둘러싼 인파에 놀랐다. 제1 전시관은 길이 230m, 폭 62m, 지하 5~6m의 면적으로 축구장 2개 정도에 해당한다. 그 둘레를 관광객들이 모두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2 전시관, 제3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진입 금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 앞에서 병마용을 관람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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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곳의 전시관을 둘러보고 난 후에 우리는 병마용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그곳 역시 관광객이 붐비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3곳의 전시관에 있던 토용들을 유리 상자에 보관하여 분산시켜 놓았기에 토용들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옷매무새, 말과 마차, 그리고 말과 마차를 움직이는 장군들의 모습을 보다 세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토용들의 옷에 새겨진 색상을 볼 수 있어서 그 당시 염색 기술도 발달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다.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8,000여 개의 토용들을 만들어 함께 매장했으니, 그는 분명 사후에도 하늘나라를 지배하려는 꿈을 꾸면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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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과 병마용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실크로드 쇼를 관람하기 위해 움직였다. 쇼를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공연장은 겉보기에 커다란 원통형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극장의 관중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무대는 큰 원통의 한 부분이었다. 연극의 한 막이 끝나면 좌석 전체가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좌석이 360 회전하면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의 제목은 ‘타령전기’였다. 낙타 방울 소리가 들려주는 실크로드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쇼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무대 위에 등장한 늑대와 낙타가 관중석 앞으로도 지나갔고, 무대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방울이 관람석에도 떨어졌다. 나도 약간의 물방울을 맞았다. 관람석의 좌석이 3,000석이라고 하니 그 극장의 규모가 상상이 갈 것이다. 연극 중에는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안 계곡에 있는 부처의 거대한 상도 등장한다. 그 당시 바미안 불상은 실크로드를 왕래했던 무역상인들의 안녕을 비는 곳이기도 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 출구도 매우 붐볐지만, 공연장 외부에는 출입구마다 번호가 있어서 약속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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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관광 중 진시황릉과 병마용 갱과 실크로드 쇼는 무엇보다도 규모적인 측면에서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무대가 3,000명의 관람석이 360도 회전하는 극장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역시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컸다. 중국 서안에서의 새로운 만남은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졌다. 어제 대당불야성 거리에서 느낀 넓고 화려함과는 달리 오늘은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의 모습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진시황릉 병마용 갱에서는 중국 황제의 위엄과 함께 황제의 허황한 꿈을 엿볼 수 있었다. 죽은 황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동원되었을까? 대륙이 넓은 만큼 황제의 꿈 역시 규모가 놀랍기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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